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불신자 되기 190716강의요한복음

강남-요한복음 21장 18절(불신자 되기)190716a-이근호 목사

요한복음 21장 15절부터 읽어 보겠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 말이 뭐냐 하면은 내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았다라는 그 보증을 제 쪽에서 찾지 않겠습니다. 주님이 보증해주셨잖아요 라고 하는거에요.

주님이 내가 주님한테 사랑받는 것을 내 쪽에서 검증에 나설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사랑을 주셨기 때문에 그런 주님 쪽에서 보증을 해주셔야지 내가 주님 사랑합니다 외친다고 해서 그것은 사랑이라고 인정할 수가 없는 겁니다 라고 하는거에요.

이거는 아주 간단하게 말해서 이겁니다. 자신의 그 자기 기초를 내가 두지 않겠다. 나의 기초를 내가 두지 않겠다는 거에요. 내가 둔 기초 위에 나를 세우지 않겠다는 겁니다. 내가 둔 기초 위에 나를 세우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에게는 이게 나올 수 없어요. 모든 인간에게. 사람이 산다는 것은 단단히 자기 기초를 다지고 다지는 일이 그게 일상의 일이에요. 내가 나됨을 위한 기초를 먼저 다져놓고 그 위에 계속 거기에다가 쌓는 식으로 계속 쌓아나가는 식으로 인생을 그렇게 살아가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내 기초 위에 나를 세우지 않겠습니다 라고 베드로가 고백한 이유는 자기에게 찾아온 예수님이 자기하고 동일한 세계 속에서 옆에서 찾아온 것이 아니고 예수님은 이미 죽으셨잖아요.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분이잖아요.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분이라면 그 기초가 내가 여기 있는 이 쪽 기초로서는 주님과 연관지을 수 없고 함께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을 베드로가 아는 겁니다.

사람은 자기의 어떤 주관이 있으면 주관에 맞추어서 그 주관을 증명할 객관적인 사실을 자꾸 잡아당겨요. 내가 내 주장이 옳다. 내 주장이 옳다. 옳은 이유가 이런 이런 것 때문에 옳다. 이런 이런 것 때문을 객관이라고 하고 내 주장이 옳다라는 것을 주관이라고 하는 겁니다.

사람이 뭔가 내가 예수 믿는다고 하면 너 예수 믿는 증거를 대라고 하면 여러 가지 기도해서 병 낫는 거부터 해서 끌어모으잖아요. 객관적인 요소를 끌어모은다고요. 남들에게 납득이 되도록. 그런데 베드로 같은 경우에는 이게 객관이 없어요. 오직 주관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 세상에는 어떤 객관을 찾지 않고 객관을 누구한테 넘겨버리느냐 하면 주님 자체가 나의 주관에 객관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이 원인이 되고 그 결과로서 제가 여기 있습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주님이 원인이 되어서. 이 이야기는 바로 고린도전서 15장에 나오는 사도바울의 고백하고 똑같은 거에요.

내가 나 된 것은 참 이런거 참 이런거 참 시험치고 싶어. 이 대목 나오면. 어떻게 시험치느냐 하면 내가 나 된 것은 괄호. 다음 괄호 안에 들어갈 적합한 내용은 무엇입니까? 1번,2번,3번,4번,5번. 요새 수능 5번까지 나오니까. 나의 착함, 나의 성실, 나의 인내성, 나의 침착함, 나의 믿음 이런거.

이 중에서 내가 나 된 것은 들어갈 적당한 것은? 6번 이중에는 없다. 정답 몇 번이에요? 그냥 없다가 아니고 지우면서 나가야 돼요. 나의 착함, 내가 나 된 것은 나의 착함이 아니고 나의 성실 나의 노력도 아니죠. 나의 인내성, 참을성도 아니고 나의 침착함도 아니고 나의 믿음도 아니고 뭐냐 하면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자, 은혜의 구체적인 객관성은 뭐냐 하면 구체적인 객관성은 은혜라고 하면 모호하잖아요. 구체적인 객관성이 있어요. 뭐냐 하면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심. 이게 객관성입니다. 이걸 두자로 이걸 가지고 ‘복음’이라고 하고 이걸 좀 넓게 깊게 하면 십자가 복음이라고 합니다. ‘십자가 복음’.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거늘”이라고 사도 바울이 한 이유가 뭐냐 하면 십자가가 오고 오는 모든 성도의 유일한, 더 이상 둘이 필요 없는 유일한 only 유일한 객관이에요. 다른 객관에서 오면 그건 신앙이 아닙니다. 다른 객관에서 오면 신앙이 아니에요.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예수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사는 이 현실 속에서는 내 믿음을 보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 뜻이에요. 십자가를 믿는다는 뜻이.

인간이 말하는 이 현실이라는 것은 현실이란 내 존재의 장이 확장된거에요. 내 존재의 장이. 내가 존재하는 그 장이라는 영역이 자꾸 넓혀진겁니다. 이 점을 좀 설명해보면 전에 어린이집에 가면 누가 어르신이냐 하면 6살 먹은 애가 어르신 되거든요. 왜냐하면 1살 2살 들어오니까. 진짜 6살 먹으면 어르신이라고 이야기해요. 어린 동생을 궁딩이 닦아주고 다 해요.

자, 그러면 2살의 현실과 6살짜리의 현실이 같을까요? 다를까요? 다르지요? 6살은 그만큼 확장되어 있는거에요. 현실이. 확장되어 있어요. 확장되어 있고 2살 짜리는 그만큼 그 6살짜리보다 덜 확장되어있어요. 2살 짜리가 노는 놀이가 정해져 있고 6살 짜리는 그것을 포함해서 봐도 게임까지 확장되어 있어요. 단어 구사하는 어휘력도 제한되어 있고.

그래서 인간의 삶은 뭐냐 하면 내가 생각하는 내가 기초가 되는 현실을 계속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자기 기초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 60 되도 마찬가지 70 되도 마찬가지 고집 고집 왠 고집이 그리 센지. 80 되도 마찬가지. 기초가 이미 나를 위한 기초거든요. 이걸 이 기초를 무너뜨릴 생각은 안하고 있고 이걸 버티기에 들어가요. 네가 고생좀해라. 나는 꿈쩍도 안할란다. 꿈쩍도 하지 않겠다.

이번에 수련회 이사야 하는데 이사야 공부하면서 제가 정리하고 있어요. 시온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충돌하는 산이에요. 시온이라는. 시온이 우뚝 섰잖아요. ‘시온’. 시온이라는 원래 뜻은 높은 고지에 있는 요새라는 뜻인데 이사야에 보면 우뚝 섰다고요. 우뚝 서있으니까 비행기고 뭐고 다 충돌하는 거에요. 그게 시온이에요. 시온의 기능이고.

이사야는 그때는 만국이 높은 곳에 온다는 거에요 높은 곳에. 다니엘에 보면 꼭 태산같애. 꿈쩍도 안 해. 그런데 사람도 마찬가지에요. 사람도 현실이 뭐냐? 이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가? 그건 자기의 기초가 뭐냐에 따라서 현실을 보는 눈이 달라져요. 기초가 뭐냐에 따라서.

축구 좋아하는 사람은 항상 뭐냐 하면 손흥민이가 지금 몸값이 얼마며 다음 리그에 몇 골 넣느냐 그게 자기의 심각한 현실이 되는 반면에 야구 좋아하는 사람은 류현진이가 언제 11승하느냐 거기에 관심이 있단 말이죠. 사람마다 현실에 보는 현실이 달라요.

따라서 주님께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제대로 안다는 말은 아예 자기 기초 자체를 없애버리는 겁니다. 기초 자체를 자기가 없애버리는거에요. 없애버리면 이거는 뭐가 되느냐 하면 사람이 뭔가 남한테 내세울 때는 자기가 나 이 정도다 자기 객관에 입각한 주관을 내세워야 이 현실세계 속에서 일원이 되는데 자기 기초가 없으면 이건 두자로 뭐냐 하면 공허함이에요. 공허함. 공허함이다 ‘공허함’.

일본의 아베 총리가 요한복음 21장 16절보고 깜짝 놀랍니까? 오늘 읽었던 오늘 본문보고 아베가 벌벌 떨고 이럽니까?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 본문보고 은혜 받고 그래요? 아니죠. 그 아베 그 사람한테 이 요한복음 21장은 뭐냐 하면은 공허함이에요. 다시 다른 말로 하면 비현실, 비현실. 전혀 현실점이 아니에요.

그러면 베드로에게 하나님께서 일을 맡기는데 뭐를 맡겼냐? 공허함을, 공허함을 전파하라는 일을 시킨거에요. 공허함을 전파하라. 사람한테는 절대로 먹혀들게 전혀 없는. 절대로 채우지 마라. 공허함이 계속 공허함으로 계속 남는 일에 네가 전파하라는 거에요.

사람은 각자 자기 기초를 자기가 다지기 때문에 공허한 것은 뺍니다. 내 기초의 질과 내 기초를 더욱 우수하게 만들 것만 골라잡아 쇼핑하듯이 골라잡아서 그 정보를 계속 자기 유리하게 채웁니다. 이게 든든할거야. 이게 내 삶에 아마 실익이 있을거야. 이익이 있을거야. 내 삶을 더욱더 보장해 줄거야. 그런 것만 잔뜩 끌어모으거든요.

그런데 베드로가 하는 것은 뭐냐 하면 텅 비어있는 거에요. 텅 비어있어요. 이 말은 베드로가 하는 말은 인간이라고 생겨먹은 인간은 절대로 베드로에 대해서 혹하지 않는다. 베드로의 말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 뜻이에요. 바로 그 일을 네가 하라는 거에요. 세상에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여러분 지금 무슨 일을 하십니까?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을 하고 계십니까? 사람들이 아무리 믿고자 해도 안에 텅텅 비어 있는 내용같으면 사람들은 외면하려고 하지요. 거기에 기죽지 말란 말입니다. 사람들이 외면하는 것에 대해서 겁먹지 말고 기죽지 말고 거기에 대해서 쫄지 마세요.

왜냐하면 여러분 일에 성공하신거에요. “그래 예수 믿어줄게. 그럼 예수 믿으면 내가 어떻게 되는데?” 거기에 대해서 답변하지 마세요. 예수 믿는다는 것은 그 다음에 어떻게 될까가 결부가 안 되어있어요. 왜냐하면 예수 믿는데 그 다음에 ‘나’라는 것을 못 붙여요. 왜? ‘나’라는 것은 기초 자체가 무너졌기 때문에 내가 더 쌓을 수 있는 ‘나’가 용납이 안 되기 때문에 예수 믿고 난 뒤에 ‘나’라는 것은 그것은 질문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겁니다. 연결이 안 되는 거에요.

예수 믿는 것이 어떤 것이냐 하면 나의 미래와 나의 운명은 이미 객관이 주님 쪽으로 넘어갔잖아요 하는 거에요. 주님 쪽으로. 그게 믿음이에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주님 쪽으로 넘어갔고 주님 쪽으로 넘어간 것을 우리가 어떻게 확인하느냐? 나는 멍해 그냥. 왜 사는지도 모르겠어. 내 자신으로 봤을 때는 왜 사는지 모르겠어.

왜? 기초가 날라가버렸기 때문에. 기초가 없기 때문에. 살 이유도 없고 의미도 없어요. 세상 사람 보기에도 그렇고 내가 보기에도 그렇고 공허해요. 그 공허함, 그 공허함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삶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그 공허함을 사도가 아주 충실하게 이행하지요.

어떤 거지가 앉은뱅이 거지가 와서 조금 주세요 라고 하니까 그 베드로와 요한이 아주 참 싸늘한 이야기를 해요. 차가운 반응을 보입니다. 나에게는 네가 원하는 돈은 없다. 나한테는 은도 없고 금도 없다. 네가 원하는 것을 나는 줄 용의가 전혀 없다.

마치 오늘날 우리 소위 교회 다니는 교인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이 그거에요. 이것 주시옵소서. 저것 주시옵소서. 주님이 응답하시기를 나는 네가 달라는 것을 일체 줄 마음이 없다.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주 예수 이름으로 걸어라. 주 예수 이름. ‘주 예수 이름’.

주 예수님이 이 땅에 사시면서 얼마나 공허한 대우를 받았습니까? 아무.. 이 땅에.. 인간이 스스로 자기가 서려고 하는데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 존재가 누구냐 하면은 예수님이에요. 내가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내 존재가 일단 있고 내가 원하는걸 채워줄 때 그게 우상이 되는 겁니다. 우상이라는게.

그러니까 예수가 됐든 뭐든 간에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익히 내 기초를 단단히 하기 위해서 요청한게 있다면 이미 나 자신이 나에게는 이미 우상이 되는 겁니다. 우상 한번 정리할까요?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우상이란 내 속에 내면이 바깥에서 형상화된게 우상이에요. 내 내면이. 왜 사람들은 이 우상을 좋아하느냐 하면 바로 그 우상이 전에 내 안에 있었기 때문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인공지능이죠. 인공지능. 로봇 같은거. 다리가 하나 교통사고로 날라갔는데 걷고 싶다. 기다려봐. 똑같은 다리를 만들어서 보조를 하게 되면 자 뛰어봐라. 되지요? 그러면 그 다리가 얼마나 좋겠습니다. 왜? 내 원티드, 내가 원하는 내가 소망하는 것이 가시화됐잖아요. 그게 우상이 되는 거에요.

나는 이 복음교회가 교인수 한 100명이 좀 됐으면 좋겠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교회 옆에 있는 사람이 자기 교회 목사 못 살겠다 해가지고 100명 몽땅 와가지고 귀순해서 왔다. 주일날 100명 넘어버렸어. 바로 그 교회가 우상이 되는 겁니다. 사람이 슬픈 이유는 사람이 근심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내 우상을 치워줄 때 슬퍼요. 절망을 느낍니다.

이것 가지고 가시면 안됩니다. 이런 거에요. 주님 주신 것은 전혀 귀하지도 않고 그건 좋아하지 않고 내 내면의 것이 눈에 가시적으로 눈에 보일 때 그것 꼭 쥐면서 그것 못 놓겠다고 닦달내는 거에요. 딴건 줘도 이것 만큼은 이것 만큼은 좀 데려가지 말아달라는거죠.

그 대중가요 가사에 보면 그런 가사 그런 노래들이 들어 있어요. 임재범의 고백도 마찬가지지만 어떤 노래에 보면 이랬어요. 홍도야 울지마라는 아니고요. 어떤 노래에 보면 정말 사랑한 여자가 있어서 이제 그 여자만 있으면 나는 평생 행복하겠는데 갑자기 그 여자가 아파요. 그때 그 가사 내용이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딴 건 다 데려가도 좋은데 저 여자만큼은 제발 데려가지 말아 달라고.

그때 여러분들은 무엇과 연관시키느냐 하면 창세기 22장과 연관시켜야됩니다. 거기에 아브라함이 누굴 바칩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뭘 요구해요? 저기 말 안 듣는 이스마엘 죽으라고 합니까? 누굽니까? 이스마엘이 아니고 가장 사랑하는 이삭. 이삭을 잡으라고 하지요. 하나님께서 요셉을 형제들에게 미움받게 하잖아요.

요셉이 누구냐 하면 특별하게 옷을 입은 거에요. 채색옷을. 티 나도록. 다른 형제들에게 티 나도록. 손 대지마. 쟤한테 손 대지마라고 유난히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서 자기 사랑을 다 집어넣는 거에요. 야곱이 요셉을 지극히 사랑한 것은 야곱이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죽을 때까지 사랑했어요. 언니 레아는 사랑 안 했어요. 1+1로 세일할 때 들어갔기 때문에. 그건 꼴보기 싫어요. 끝까지 라헬을 사랑해요. 끝까지. 한결같아요.

그 아내 죽고 난 뒤에 그 자식을.. 다른 자식은 자식도 아니에요. 그 요셉과 그 동생 베냐민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죽여버렸잖아요. 야곱 눈앞에서. 야곱에게 있어서 요셉은 죽은 자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언약이에요.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을 경유해서 하나님 자신을 드러냅니다. 인간을 경유해서.

그냥 줘버리면 인간은 자기가 필요한 것 챙겨가지고 자기 것 만들기 쉽거든요. 아예 하나님께서 인간을 경유해버리면 인간이 내면 속에 본인도 모르고 있는 자기 내면이 이렇게 추잡한지를 온전히 다 드러내게 만들어요. 내 속에 더러운 것들을 그대로 주님한테 주님께서 그걸 자기 온몸에다가 그걸 쳐발라버려요. 우리 속의 죄를.

그래서 그걸 가지고 로마서 8장에서는 죄 있는 육신의 몸으로 오셨다 이 말이죠. 죄 있는 육신의 몸으로 오셔가지고 그 죄는 주님의 죄가 아니고 우리에게 있던 죄에요. 우리 내면에 죄에요. 그러니까 네가 진짜 네 내면을 믿으려면 딴거 믿지말고 네 내면속에 있는 네 죄를 믿어라. 네가 죄인임을 믿어라 이게 믿음 아닙니까? 이게 하나님의 언약 속에 있는 자의 고백이잖아요. 시편 51편에.

십자가가 빠진 것은 이것은 진리도 아니고 복음도 아니에요. 부채표가 아닌 것은 활명수가 아니듯이 십자가가 빠져 버리면 이것은 교회도 아닙니다. 그냥 절이에요. 사찰이고 절이에요. 전에도 수십번했어요. 교회 올 때만 완전히 우리 내면을 완전히 엑스레이 사진 찍듯이 다 들통나야 돼요.

내 기초 내 숨겨 놓은 이것은 뺏기고 싶지 않은 그 기초 하나 숨겨놓고 그걸 어떻게 더 윤기나게 빛나게 끌어모으기 위해서 또 오늘도 어떤 좋은게 있는가 그것 전부다 내 것 차지하려고. 하나님께 복받아가지고 내가 더욱더 나로 인하여 살맛 느끼는 그런 삶을 계속 영위하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은 이 은혜라는 것은 뭐냐 하면 이 세상에 없는 거에요. 그럼 어디 있느냐?

이땅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다른 인간세계에 바깥에서 여기 부활의 세계 또는 영적세계 또는 생명나무의 세계 다른 말로 생명의 세계 이런 새로운 세계가 우리는 모르는 현실을 만드신 분이 우리를 내왕했을 때 왕림했을 때 찾아왔을 때 여기에 바로 이것이 옴으로서 우리 자신은 나의 기초를 내가 여기에 그냥 둘 수가 없지요. 나의 기초가 이쪽에 있어야지 이쪽에 있으면 안되잖아요.

그래서 주께서 내가 주님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항상 정답은 마지막에 나에게로 의미가 종결되면 정답이 아니라고 했지요. 마지막 정답은 주님의 하신 일에 참여되는 방식으로 엮어져야 돼요. 내 일은 없고 내 일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주님의 일이고 그 의미는 주님의 지금 살아서 부활하셔서 살아계시니까 부활하셨으니까 살아계셔서 일하신다는 거에요.

그래서 요한복음 21장 같은 경우에는 요한복음 20장에서 이미 부활하고 난 뒤에 그 이후의 일이에요. 베드로를 지금 상대하는 사람이 그냥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 봤을 때 지금 베드로는 귀신하고 상대하는거에요. 지금 베드로하고 지금 예수님하고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들은 네가 죽은 귀신하고 이야기하는 거하고 똑같은 거에요.

죽은 귀신하고 이야기 안하면 네가 신자가 아니라는 거에요. 오늘날 성도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게 성도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죠. 그래서 제가 어제 대구강의 하면서 인간이 성도되는 퍼센트가 몇 퍼센트라고 했습니까? 0%. 0%. 사람이 교회가주는 것은 몇 퍼센트라고 했어요? 앞면 바꾸고 50%라고 했지요.

그동안 잘해줬으니까 너희 교회 구경 한번 가볼게. 갈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고 반반이에요. 그러나 성도되는 퍼센트는 제로에요. 0%입니다. 교회와서 놀기는 잘 놀지. 식사당번 누구고 표 짤까 말까 쓰잘데기 없는 그런 것 가지고 논쟁하지. 교인되기는 쉬워요. 그러나 성도라고 하는 것은 0%라고요.

왜냐 하면 성도의 주도권은 성도되는 나한테는 없기 때문에. 나에게는 주도권이 없기 때문에 그래요. 내가 나를 요리해서 내가 나를 관리해서 성도되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걸 요한복음 20장 지나서 20장, 21장에서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거에요. 예수님이 살아서 찾아오지 않으면 베드로는 결코 구원받은 베드로가 될 수 없다 지금 그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따라서 베드로의 앞으로 베드로의 일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베드로의 일이 아니고 뭐냐 하면 베드로의 일이 아니고 주님의 일이라고 해도 되지만 다른 말로 주님의 현실이다. 주님의 현실. 아까 주님의 현실을 뭐라고 했습니까? 공허함이죠. 그래서 주님의 현실의 특징은 늘 공허함 또는 다른 말로 하면 허망함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령 받지 않고 교회 한 50년쯤 다닌 사람이 어느날 생각해보니 “내가 예수 믿는 것이 다 이거 뭐지? 예수 믿는다고 해 놓고 예수님 한번도 안 만나보고. 에이 예수 믿는다는 것 때려치우자. 이게 믿고있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다.” 이렇게 되거든요. 그게 왜 그러느냐 하면 예수 믿는다는 것이 이 세상 사는 자기 자신의 입장에서는 공허함의 연속이에요.

저는 이걸 공허함의 생산이라고 하는데요. 어렵게 말해서 계속 공허함을 만들어줘요. 뭔가 객관적인거 뭔가 손에 쥐고 ??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49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7,442 자유게시판 강남-요한복음 21장 18절(불신자 되기)190716a-이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9-07-29
17,441 자유게시판 245강-여호수아 23장 9~11절(하나님과의 동행)20190728-이 근호 목사 여호수아 최고관리자 19-07-29
17,440 묻고답하기 그리스도 몸 세우기 에베소서 최고관리자 19-07-28
17,439 자유게시판 대전-113강 마태복음26장 28-31절(포도주 세상)20190723-이 근호 목사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19-07-25
17,438 자유게시판 대전-51강 사무엘상17장1절(현실구성)20190723-이 근호 목사 사무엘상 최고관리자 19-07-25
17,437 자유게시판 197강-창 50장 22-26절(몸의 이중성)190724-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19-07-25
17,436 자유게시판 정석훈목사 7월 집회안내 - 최고관리자 19-07-24
17,435 강의 사무엘상 51강( 현실구성), 마태복음 113강(포도주 세상) 190723 - 최고관리자 19-07-23
17,434 자유게시판 안양20190712b야5장12절(맹세) - 이 근호 목사 - 최고관리자 19-07-23
17,433 자유게시판 안양20190712a야5장12절(맹세) - 이 근호 목사 - 최고관리자 19-07-23
17,432 자유게시판 33강-엡 4장 7절(선물과 복음)190721-이 근호 목사 에베소서 최고관리자 19-07-22
17,431 자유게시판 244강-여호수아 23장 6~8절(율법의 백성)20190721-이 근호 목사 여호수아 최고관리자 19-07-21
17,430 강의 [19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59 - 코스프레 - 최고관리자 19-07-21
17,429 자유게시판 광주강의20190719b 마가복음14장 10-21절(나와의 결별)-이 근호 목사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19-07-21
17,428 자유게시판 광주강의20190719a 마가복음14장 10-21절(나와의 결별)-이 근호 목사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19-07-21
17,427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어린이와 천국 / 190721 - 최고관리자 19-07-21
17,426 묻고답하기 선물의 출처 - 최고관리자 19-07-21
17,425 자유게시판 196강-창 50장 15-21절(요셉의 용서)190717-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19-07-18
17,424 자유게시판 283강-YouTube강의(환란)20190716-이 근호 목사 데살로니가후서 최고관리자 19-07-17
17,423 자유게시판 282강-YouTube강의(성령)20190716-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19-07-17
열람 ➜ 강의 불신자 되기 190716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9-07-17
17,421 강의 유튜브 강의 (282강, 283강) 성령, 환란 190716 창세기 최고관리자 19-07-17
17,420 자유게시판 서울의존강의20190712b 베드로전서3장 1절(몸의 여분)-이 근호 목사 베드로전서 최고관리자 19-07-16
17,419 자유게시판 서울의존강의20190712a 베드로전서3장 1절(몸의 여분)-이 근호 목사 베드로전서 최고관리자 19-07-16
17,418 자유게시판 32강-엡 4장 4-6절(하나)190714-이 근호 목사 에베소서 최고관리자 19-07-15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