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50강( 악령의 한계), 마태복음 112강 (운구 중) 190625
대전-50강 사무엘상16장15-16절(악령의 한계)20190625-이 근호 목사
사무엘상 16장 15절부터 보겠습니다.
15절,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을 번뇌케 하온즉
16절, 원컨대 우리 주는 주의 앞에 모시는 신하에게 명하여 수금 잘 탈줄 아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악신이 사람에게 임하죠. 그 사람이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 일단은 중요하고요. 사람이 악신 들리라고 요구한다고 해서 악신이 오는 것은 아니고요. 오지 말라고 한다고 해서 악신이 안 오는 것도 아니고. 상당히 악신에 대해서 또는 악령에 대해서 인간은 무능하죠. 어쩔 수가 없는 겁니다. 그리고 이 점은 악령에 대해서 인간이 무능하다고 해서 너무 서글프다고 여기지 마시고, 성령이 오실 때도 마찬가지거든요. 우리가 성령이 오라고 해서 오는 것이 아니고, 오지 말라고 한다고 해서 성령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니니까.
항상 악령이 오나 성령이 오나 인간은 연약하다, 같은 말로 인간은 무능하다. 그렇게 보시면 됩니다. 인간은 무능하거든요. 무능한데, 악신이 임한 자는 이 무능을 악령에 의해서 자기 자신을 뭐로 보느냐 하면은 유능한 존재로 착각하게 되어 있어요. 성신이 오게 되면, 성신이 온 사람의 특징은 자신의 죄를 아는 겁니다. 시편 51편에 보면 그게 나와 있어요. 시편 51편을 잠시 볼게요. 11절,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이렇게 되어 있죠.
다윗은 자기 자신이 죄를 짓기 전에는 성신이, 악신이니 뭐 자기하고 상관이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유능하니까. 아까 강의 처음에 시작할 때 했던 것을 복습해봅시다. 자기가 유능하니까. 유능하다는 말은 내 앞가림은 내가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겁니다. 근데 성신이 왔을 때 다윗은 뭐가 되느냐 하면은 유능한 자가 아니고, 무능 정도도 아니고, 아예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시편 51편에서 성신 앞에 왔을 때 자기는 죄인으로 노출이 되고, 그리고 난 뒤에 여기 9절에 보면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 하소서” 내 모든 죄를 도말하라고 그렇게 합니다. 성신이 임한 상태에서. 성신이 임하면 첫 번째로 졸지에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알게 돼요. 뭐, 유능이니 무능이니 그런 것은 딱 끝나버리고 내가 죄인인 것을 알게 되고, 그 다음에 죄인인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무슨 고백이 나오느냐 하면은, 성신이 오셔서 나를 죄인 되게 하신 작업은 뭐로 마감이 되느냐 하면은 죄를 들추어내면서 그 죄를 하나님의 의로 바꾸는 작업을 하시려고 나한테 찾아왔잖아요. 이렇게 되는 겁니다.
하나의 공식을 세우면 이렇습니다. 내 안의 죄의 생산은 곧 의의 생산이다. 내 안에 죄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내가 죄의 생산이죠. 이것은 곧 뭐의 생산이냐, 내 안의 의의 생산에 있어서 재료가 되는 겁니다. 재료가 되는 거죠. 그럼 이렇게 되게 되면, 죄 가운데 의로 가는데 있어서의 인간은 유능할까요? 쓸모 있을까요? 무능할까요? 무능이 되는 거예요. 이 무능을 찬미하는 겁니다. 이 무능에 대해서 감사하는 겁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간다고 하는데, 어린아이의 특징이 뭐냐 하면은 바로 모든 것을 부모한테 미룬다는 겁니다. “저는 못해요. 저는 할 수 없어요.” 스스로 어른 앞에서 자기는 별 볼일이 없고 자기의 작아짐 정도는 아무것도 아님을 인식하는 것이 어린아이입니다.
천국은, 사람들이 뭐 천국을 보고 싶다, 천국에 가고 싶다, 천국은 어떻게 생겼을까? 이렇게 하는데, 천국에서는 얼마나 살기 좋을까? 하는 그런 질문들에서 뭐가 자꾸 빠지는가 하면은, 자기 자신이 무능하다는 사실,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자꾸 놓치고 있어요. 자기가 무능하고 죄인이고 그 나라는 내 힘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잊어버리게 되면, 그 나라가 좀 좋아졌으면 하는 기대감이 있어요. 왜? 내가 선택할 만큼 괜찮았으면 좋겠다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왜? 자기가 건방지니까. 적어도 나정도 되는 사람한테는 이 정도의 행복한, 완벽한 그런 상황의 나라는 주어져야 내게 걸맞다고, 내게 부합된다고 그렇게 우깁니다. 본인 자신이 누군지를 모르니까 천국에 대해서 자꾸 오해하고 있는 거예요.
변화산에서 베드로가 예수님 만났잖아요. 베드로는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여기가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뭘 모르느냐 하면은 주님이 이 천국에 있으니까 자기들이 의당 천국에 와 있는 자격이 되는 것처럼 오해를 한 거예요. 천국을 봤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이게 뭐냐 하면은 죄의 생산이죠. 천국이 되려면, 우리가 어느 나라 갈래? 지옥갈래? 천국갈래? 골라잡아라! 이런 입장이 아니고. 먼저 천국이 다가와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천국에 갈 수 없는 죄인이라는 인식이 스타트, 시작이 된 거예요.
어떤 인식이? 그런 죄의 생산이 정말 하나님의 천국을 이루고 의의 나라를 이루는 재료로서 이미 우리를 사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 과정에 포함이 된 거예요. 이게 바로 성신이 임할 때, 요즘 말로 하면 성령이겠죠. 성신이 임한 사람의 특징이에요. 지금 사울이 악신이 임했다는 그 상태를 설명하려면, 성신이 임한 것부터 지금 제가 설명을 해드리는 겁니다. 성신이 임하게 되게 되면 나를 위하여 주님이 계시다는 이런 관련성이 애당초 이게 없다는 것을 알아요. 나를 위하여 주님이 오시는 것이 아니고 주님 자신의 작업을 위해서 내가 거기에 말려든 거예요. 뽑힌 겁니다. 채택된 거예요. 주님의 증인이 되라고.
성신이 오기 전에 다윗은 이스라엘 왕으로서의, 뭐 이거 자기가 최고의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러나 성신이 오고 난 뒤에는 시편 51편에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하나님은 제사도 원치 않고 번제도 원치 않는다. 이 말은 제사, 번제 드려가지고 의가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께 뭘 헌금 바치고 봉사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요. 성신이 오게 되면 자기는 뭐합니까? 무능하죠. 무능한자가 전도하고 선교하고 헌금해봐야 이게 뭡니까? 이게 절대로 하나님께서 유능하다고 간주하지 않겠죠. 찬양하고 뭘 해봐도. 무능한 자인데, 그냥 무능한 자가 아니고 뭘 뿜어내는 무능한 자이다? 죄를 뿜어내는 무능한 자.
근데 이것이 나한테는 굉장히 손해가 될 것 같지만, 이게 주님의 의 생산 공장에 이미 작업이 뛰어들었기 때문에, 그러니 내가 이렇게 하면 할수록 누가 기뻐요? 주님 자신이 기쁘다면 우리는 그것을 소급해서 우리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의 기쁨이. 주님의 기쁨을 경유해서 나의 기쁨이 되는 겁니다. 이게 성신 받은, 성령 받은 사람의 특징이라면, 이 세상은 뭐냐 무능한 자를 사람취급해주지 않고 유능과 유능의 마주침이에요. 누가누가 유능 하냐, 누가누가 재주가 있느냐, 누가 쓸모가 있는 인간이냐, 카메라 하는 것도 제대로 못해가지고 유능하지 않잖아요. 누가 쓸모 있느냐의 대결장이에요. 누가 쓸모 있느냐의.
그럼 그 결과는 우리는 뭘 기대하겠습니까? 나는 남한테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유능한 자, 괜찮은 사람으로 등극되기를, 등장하기를 고대하겠죠. 이것이 바로 성신의 뜻이 아니고 악령, 악신의 뜻입니다. 자신의 유능에 몰입하고. 이걸 하기 위해서 평생을 여기다가 모든 걸 몰입합니다. 평생을 여기다 다 던져 넣죠. 어떻게 하면 자기의 무능이 들키지 않을까, 그런데 모든 인간은 모든 방면에 다 유능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하나의 유능을 가지고 모든 무능을 커버하겠다고 하는 이걸 가지고 뭐냐, 프로페셔널, 전문가라고 합니다. “니 전공이 뭐냐?” 전공이 뭐 어떻게? 망치질하는 겁니까? 배추 파는 거? 전공이 뭐냐?
문제는 사람들은 네 전공이 뭐냐고 묻는데, 주님은 우리의 전공을 아예 묻지를 않습니다. 전공을 묻고 천국을 아예 안 보내줘요. 천국을 보낼 때 전공을 안 물어요. 왜냐하면 주께서 원하는 것은 상한심령이기 때문에.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죄가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죄가 된다면 따로 죄인 것과 죄 아닌 것을 설정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평생을 살면서 제일 심리적으로 프레스 되고 억압받는 경우가 어떤 경우입니까? 내가 죄를 지었다고 인정될 때, 그거는 누가 안 건드려도 마음이 굉장히 우울하죠. 사는 게 힘들고. 그게 착각이다 말이죠. 죄 아닌 게 없어요. 모든 게 죄가 되는 겁니다. 다 모든 게 죄인데 유난떨면서, 아이고 내가 이런 죄를 짓다니! 그건 뭔가 자기가 죄만 안 지었으면 내가 유능한 자로 남 앞에 내세울 게 있고 또 하나님 앞에 이 정도 하면 내가 성도답죠? 라고 내세우겠는데, 그 죄를 짓는 바람에 나는 완전히 음메 기죽어 산다. 기죽어 사는 것이 기분 나쁜 거예요. 죄인이 뭐 기죽어 살아야지. 뭘 기죽는 것을, 그것을 원통해하고 절통해합니까?
행복이라는 것은 비교에서 오는 것이거든요. 비교에서. 행복은 절대치가 아니고 상대치에요. 지금은 촌동네에서 좀 산다고, 밥 먹는다고 행복해하지만 서울 강남에 가서 살면 내가 이게 거지지 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저 동네에서 공부 잘한다고 까불대봐야 진짜 공부 잘하는데 가면 이거는 꼴찌 하죠. 상대적이거든요. 상대적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의 한계, 자기의 한치를 어느 정도인지 계속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모르고 있다는 것은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계속 꾸역꾸역 몸부림치고 있는 거예요. 자기가 누군지를 모르면서.
자, 이쯤 이야기했으면 여러분들이 악신 들린 자는 어떤가를 알겠죠. 악신 들린 자는 악신을 몰라요. 그게 특징이에요. 악신 들린 자는, 자기가 악령이 들린 자는 악령을 몰라요. 왜냐하면 아담 자체가 범죄하고 난 뒤에 악령에, 죄에 지배를 받기 때문에 멀쩡하다고 여기는 겁니다. 자기 자신을. 제가 언젠가, 오후설교인지 그런 이야기를 했죠. 개목줄이 풀리면 혼자서 세상을 배회한다고. 그러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목줄이 다 풀려가지고 어디가야 날 알아줄까, 하고 돌아다니는 거예요. 이 시장바닥부터 해가지고 모든 게. 모든 세상의 만남이 다 그래요. 전부 다 남한테 우습게 안 보이려고 노력하는 그 모습만 대따 보이고, 그것만 보이고, 그냥 아무도 자기를 지시하는 그런 사람이 없어요. 그냥 혼자 살아요. 독자적으로.
그래서 악신에 들린 자의 특징은 독자적이다. 독립적이다. 관계성이 없이 독립적이에요. 사무엘상 오늘 본문 16장에 사울 왕이 나옵니다. 사울 왕의 특징은 악신이 들렸다고 되어 있는 거예요. 본인은 악신 들렸는지 모른다고 했죠. 그런데 신하들은 이 사람이 좀 오버한다, 도가 심하다, 이러는 거예요. 자, 그 도가 심한 게 뭐냐 하면은, 너무너무 겸손해서 도가 심할까요? 안 그러면 잘난 체해서 도가 심할까요? 악신은, 악령자체가 하나님 앞에 대든 자거든요. 하나님에게 대든다는 말은 하나님이 여기 계시면 자기가 동등하다고 우기는 자예요. “하나님 니가 뭔데?” 이런 성질을 갖고 있는 자가 악령이거든요.
그럼 악령을 받았다는 말은, 이 세상에서 천상천하유아독존 자기가 제일 높아요. 자기가 최고입니다. 최고니까, 산에 한 사람만 설 수 있는 산꼭대기에 본인이 우뚝 서 있는 거예요. 뭐 최고가 아니라도 그 밑에 새끼 산이라도 자기 나름대로 최고라고 여기는 거예요. 항상 자기가 최고일 때가 자기의 성격과 딱 맞아떨어져요. 일곱 살 먹은 애가 거실에서 안 놀고 문 닫고 자기 방에서 맨날 게임을 할 때, 자기 방의 공간은 뭡니까? 아무도 안 들어오죠. 그럼 이 방의 주인공은 누굽니까? 본인이죠.
이게 지금 자기 방의 작은 공간이지만, 이게 뭐냐 마운틴, 산 위에 홀로 있는 그것이 자기의 기본 성품과 딱 맞아 떨어지는 공간인 겁니다. 이걸 뭐라고 합니까? 자폐증이죠. 자폐증. 자폐증인데, 어른 되면 이게 뭐냐 하면은 집착하는, 편집증이에요. 편집증. 하나에 올인 하는 거예요. 이게 안 되면 사람의 정신이 둘로 쪼개지죠. 이걸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분열증이라고 해요. 이거는 뭐 여기가도 좋다, 저기가도 좋다, 자기 주제를 몰라요. 이 분열증 걸린 인간이 기껏 나다운 나라고 하는 것이 편집증, 둘 다 뭐냐 하면 정신병자. 그래서 인간은 정신병자와 정신병자 사이에 계속해서 헤매고 있는 거예요. 끈이 끊어져서, 개목줄이 없으니까 혼자서 세상 속을 살아가려고 하는 거예요.
자연은 뭐냐, 자연은 누구한테 매여 있습니까? 자연은 혼자 독자적이 아니에요. 자연은 누구한테 매여 있습니까? 갈릴리바다를 누가 잠잠케 했습니까? 예수님이죠. 자연은 누구한테 매여 있죠? 예수님에게 매여 있고 하나님에게 매여 있는 거예요. 근데 그 자연 속에 누가 살고 있습니까? 인간이 살고 있잖아요. 인간은 자연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자연 속에 악령이 침범했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한테 이런 과제를 드린다는 것이 무의미하겠지만, 과제를 한번 해보고 여러분이 답변을 해보세요. 내가 악령 들렸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내가 악령 들렸다는 증거를 한번 제시해보세요. 아까 우리가 공부했잖아요. 잘난 척도 같은 증상이 되겠죠. 아까 산위에, 마운틴위에 홀로 있고 남들을 내려다보고. 이게 뭐냐 하면은, 항상 마음속에는 어떤 소리가 있느냐 하면은 “날 무시하지 마라!” 하나님이라고 해서 배반한 천사를 무시하지 마라는 이게 악령이죠.
그래서 이사야 같은 데 보면 나 외에 다른 신은 없다고 하죠. 이 하나님이 하신 이야기를 악령들이 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최고다. 돈도 별로 없으면서 항상 건드리면 내가 최고다. 건드린 사람마다 다 튀어나오는 거예요. 강아지도 튀어나옵니다. 강아지도 뭐 최고다고 하지만, 뭐 사료주고 밥줄 때는 또 주인님이 최고다, 라고 꼬리 흔들고 난리도 아니죠.
악령 들린 증거를 찾으라는 말은 이미 인간은 뭐가 정상이다? 악령 들린 것이 정상이다. 이게 보편적이다. 이게 다수다. 이게 대세다. 이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이게 정상적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세상은 이게 되는 사회, 경쟁이 되는 사회, 경쟁사회라고 하죠. 누가 돈이 많나, 누가 월급이 많나, 누가 건강 하냐, 누가 50대에 갱년기를 수월하게 지나 가냐, 모든 게 경쟁이죠. 인간이 행복하다고 하는 것은 자기가 신인 것으로 확인될 때 행복한 거예요. 자기 악마의 품성에 환경이 잠시 부합될 때 행복을 느끼는 겁니다.
그래서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행복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모든 게 대조해서 상대보다 우위에 있다면 자기는 행복을 느끼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이게 맞다면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뭘 이상하게 느껴야 하느냐 하면은, 자기가 왕이라고 해서 돛대처럼 설치는 이게 이상한 것이 아니고, 분명히 최고의 자리에서 자기의 위세를, 교만하다든지 건방지다든지 그런 말을 듣더라도 자기 왕의 왕다움에 권위를 맘껏 발휘하고 아랫사람을 아주 낮추어보는 그게 왕의 마음이잖아요.
근데 왕이 만약에 순해빠졌다. 그게 좀 이상하죠. 왕이 갑자기 순해빠졌다 하면 이상하다 이 말이죠. 성신이 누구한테 왔느냐 하면은 다윗한테 왔습니다. 그리고 악신은 누구한테 왔느냐 하면은 사울에게 왔습니다. 그전에 다윗이, 지금 우리가 16장을 하고 있죠. 성신이 다윗에게 임하고, 성신이 다윗에게 임한 것은 사무엘이 찾아와가지고 차기 왕으로 기름을 부을 때 성신이 온 거예요. 그러면 아까 우리가 배웠던 공식을 해봅시다. 자, 성신이 왔다는 말은 다윗에게 좋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다윗이 하나님의 일에 쓰였다는 말입니까? 쓰였기 때문에 다윗에게 좋다고 하면 안 돼요.
우리가 다윗을 사울과 비교해가지고 사울보다 다윗이 낫다고 이렇게 하면 안 돼요. 이러면 우리가 아까 이야기한 악신 들린 품성을, 본성을 또 드러내게 되는 겁니다. 나 누구 편에 설래, 이렇게 된다 이 말이죠. 다윗은 하나님에게 쓰임 받는 거예요. 다윗에게 성신이 임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다윗을 중심으로 해가지고 지금 이스라엘과 더불어서 뭘 하느냐 하면은 전쟁을 시작한 거예요. 전쟁을.
이스라엘의 주인이 누구냐 하면은 하나님이거든요. 근데 주인은 하나님인데 이걸 망친 요소가 있어요. 사울이거든요. 그러면 왜 망쳤는가를 알아야 될 게 아닙니까? 그거는 사울에게 악신이 임해서 사울적인 인식과 사고방식이 하나님이 주인 되는 그 나라, 이스라엘을 망치고 있음을 하나님께서는 보여주기 위해서, 너희들이 다윗에게 어떻게 했느냐를, 그 증거를 역사를 통해서 이제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가면서 전개하면서 보여주시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죠.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으로 임한 것은 내 일이 아니에요. 내 하는 프로페셔널의 일, 내 일이 잘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무슨 뜻이 있는데 그 뜻은 뭐냐 하면은 왜 세상은 멸망해야 되는가를 성령을 보낸 사람과, 이걸 하나님께서 성령을 받은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성령 받은 사람의 전쟁이 아니고 주님의 전쟁에 성도가 말려들게 하는 방식을 사용하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가는 그 길을 성도는 본인도 가고 싶죠. 본인도 가고 싶은데 누가 못 가게 하느냐 하면은 성령께서 “너는 그쪽은 안 돼!”라고 강하게 막아버립니다.
자, 세상이 가는 길은 누가 최고다? 내가 최고다. 내가 최고다, 라는 이런 의식을 물론 성도도 매일같이 가져요. 갖지만, 성도한테는 이게 용납이 안 돼요. 내가 최고다, 나는 남한테 지기 싫어, 바로 그게 뭐냐 하면은 이게 죄의 생산인 것을 성도는 알아요. 죄의 생산인 것을. 그래서 내가 남보다 더 낫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는 죄용서가, 죄 용서를 다른 말로 의죠. 하나님의 의가 되는 생산라인에 내가 들어갔기 때문에 구원받는 거예요. 그 라인, 그 관계가 나를 구원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거는 인간들에게는 성신이 없고 악신이 있기 때문에 자기밖에 없고, 독자적으로 자기밖에 없어요. 인간은 누굴 믿습니까? 인간은 나를 믿어요. 나를 믿기 때문에 다른 믿음이 들어갈, 끼어들 여지가 없어요. 내가 나를 믿는데 또 누굴 믿어요? 나한테 허락 맡고 들어와야지. 내가 나의 파수꾼이고 내가 나의 전부인데. 그런데 그게 바로 그들은, “악마야! 너는 내 허락이 없이는 못 들어가.”라고 하지만, 그게 이미 악령에 걸렸기 때문에 큰소리치는 거예요. 악마는 그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