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경들과 예수님 2004년 12월 5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20:29-34 20:29
Re..마 20:29-34 (소경들과 예수님)
이름 : 이근호(IP:)
소경들과 예수님
2004년 12월 5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20:29-34
20:29 저희가 여리고에서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좇더라
20:30 소경 둘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20:31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20:32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희를 불러
20:33 가라사대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주여 우리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20:34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저희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저희가 예수를 좇으니라
아직도 예수님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인간은 날 때부터 이단으로 태어납니다. 즉 자기 자신이 최우선이라는 말입니다. 자기보다 더 소중한 것은 아예 없다고 단정지으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들 가운데서, 자신보다 더 소중한 분이 있다고 믿어진다는 것은 참으로 믿기 어려운 기적을 받은 자입니다. 이런 자들을 가리켜서, '하늘로부터 난 자'라고 성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사람들에 의해서나 혹은 교회 안에서 강제적으로 성도로 만들어진 나온 자들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의 사람으로 작정된 자들이 서로 찾아지고 만나짐으로 등장된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이들에게만 영생이 주어지기 위해 무진장 노력하고 계십니다.
즉 가짜 천국백성들이 달라붙는 것을 떼어내기 위해 그들의 눈에 하나님과 예수님은 무진장 실망스러운 분으로 비치게 유도하십니다. 옛날 초대교회 때는 예수 믿는 자를에게는 사자우리에 집어넣고 죽게 했습니다. 이러한 강제 조치가 오히려 오늘날보다 신앙인과 비신앙인을 구분하기에 수월했습니다. 가짜들은 강압적인 폭력 앞에서 자진해서 다 떨어져나갔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마귀의 술책이 더욱 더 교묘합니다. 예수님에게 관심이 없으면서도 천국과 하늘의 복을 운운하는 숱한 교회를 부흥시켜서 사람들로 하여금 거기로 다 몰리게 하는 방식을 하나님께서 허용하심으로서 신자와 불신자를 구분 짓습니다.
그러나끼 참된 교회는 오직 예수님만을 외쳐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우선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인간들이 다 떨어져나가게 하는 겁니다. 그래도 안 떨어져 나가는 자는 가정와 사회와 신상에 어려움을 주어서 하나님에 대해 실망케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소경을 보세요. 자기 처지가 한심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줄기차게 예수님을 부릅니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여러분, 소경이라고 다 예수님을 찾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처지와 예수님의 나타남과 무슨 관련이 있다고 여기는 자만이 예수님을 찾습니다.
소경들이 무엇에 대해서 알았습니까? 소경들이 예수님을 부를 때 이렇게 부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소경은 이점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실 때는 '불쌍히 여기심'으로만 가능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은 졸지에 내세울 것이 없는 죄인의 위치에 놓여있음을 인정하는 셈이 됩니다. 즉 죄와 불쌍히 여김이 상호 연결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방식과 '다윗의 자손'과는 무슨 상관이 있는 겁니까?
시편 51:4-5에 보면,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다윗은 지금 절망 중에 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일개 하위직 공무원이나 평범한 농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이스라엘의 유일한 왕입니다. 그런데 그 왕의 입장에서 그는 범죄를 저지른 겁니다.
만약에 왕이 잘못하면 백성이 화를 입습니다. 물론 왕이 제대로 하면 온 백성이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이런 자리에 앉은 있는 자가 간음죄와 살인죄를 저지르고 말았으니 과연 다윗과 그 나라가 어떻게 될까요?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왕은 따로 계셨는데 그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참 이스라엘이 어떤 식으로 구원되는가를 알려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소경들의 의견처럼, 죄인에 대해서 불쌍히 여겨주심으로서 가능하다는 겁니다.
이점을 다윗은 죄를 짓고 난 뒤에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즉 자신은 남들보다 위대해서 이스라엘 왕이 된 것이 아니라 아예 죄의 극치와 인간들이 날 때부터 죄인 됨을 보여주기 위한 대표자로서 이스라엘 왕의 자리에 앉아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시편 51:16-17에 보면,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오로지 자신의 은혜만으로 자기 백성과 관계하신다는 말입니다. 바로 '다윗의 자손'이라는 개념 안에 이 모든 원칙이 다 들어있습니다. 두 소경은 이 '다윗의 자손' 개념과 자기 눈 앞에 있는 예수님과 연계시켰습니다.
자신들의 현 입장이 마치 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등장된 그 다윗과 동일한 입장이라는 겁니다. 범죄한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은 것처럼 자신도 죄인으로서 그 다윗이 용서받은 자리에 합류해 달라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지금 소경이 아니기 때문에 이 외침을 아스라이 먼 남의 이야기로 들리시겠지만 그 당시 소경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소경됨을 무엇보다도 실감하고 있었고 엄연한 현실이었습니다.
자 제가 여러분에게 문제를 하나 내겠습니다. 다음 중 어느 것이 가장 실감나십니까?
(1)오늘 본문의 두 사람이 소경된 것
(2)예수님의 십자가 지심
(3)오늘 아침 변비한 것
어느 것입니까?
사람들은 남은 일에 대해서 현실감이 떨어집니다. 그러나 소경에게는 자신들의 소경 됨 이상으로 예수님은 자신을 불쌍히 여겨 자신의 죄를 씻어줄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은 실제 상황으로 인식했습니다. 마치 우리가 자신의 변비 됨을 실제 상황으로 여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 소경의 눈에는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관심은 예수님이 그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뿐입니다. 자신을 무조건 죄인으로 간주합니다. 우리도 예수님 앞에서 이런 자세로 살아갈 마음이 있습니까? 죄인의 대표자로서 말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우리에게 마땅한 조치임을 알고 받아드려서 어디서 어느 자리에서는 "주여 불쌍히 여겨달라"고 예수님에게 외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