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의미 190607
20190607a 울산강의-레위기 23장 : 시간의 의미
(강의:이근호 목사)
레위기 23장 해봅시다. 1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를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 거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
안식일을 지키라고 한 것은 이 세상 모든 민족에게 한 게 아니고 이스라엘 보고 이야기한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원래 하나님이 개입해서 새롭게 생긴 민족이에요. 하나님께서 개입하지 아니하면 생겨나지 않은 처음에 창조할 생기지 않은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이 없던 나란데 생겼다는 것은 무엇을 닮았느냐 하면, 원래 이 세상 땅과 하늘이 없는 건데 여호와 하나님의 개입으로 새로 생겼다는 것이 무척 닮았지요. 없는 데서 생긴 것이 이스라엘이라면 이 세상, 눈에 보이는 세계도 없는 데서 생긴 거예요. 그러면 없음이 있기 전에 유일하게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죠.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보시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뭘 품고 태어나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처음에 없었는데 새로 만들어졌다는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이스라엘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뭐냐 하면, 이 세상은 처음에 없었는데 창조해서 있다, 라는 사실을 공포하고 그걸 알려주는 역할을 없는 데서 새로 생긴 이스라엘에게 맡긴 거예요.
그러면 이스라엘이 전해야 되는 것이 없는 데서 있게 된 창조라면, 이스라엘이 해야 될 일에 결부되고 엮여지고 거기에 모아지는 것은 창조의 원리를 갖고 있는 것들이 모아지겠지요. 창조의 원리가 이스라엘에게 삽입/주입이 된다는 말은 이 원리가 그냥 흘러가다가 마지막에 창조의 목표, 창조의 완성을 보이기까지 멈추지 않을 거예요. 하나님의 계획은.
그러면 이스라엘이 여기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스라엘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뭘 보여주느냐 하면,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은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기 위해서 이스라엘이 있는 겁니다.
오늘 레위기 23장에서 시간이 여기에 주입되는 거예요. 시간이 주입된다는 말은 시간이 이스라엘과 결부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시간이 이스라엘을 다루겠지요. 어떤 의도로 다루느냐 하면, 하나님이 원래 의도했던 창조의 완성, 본래의 뜻과 목표를 드러내는데 시간이 개입해서 이스라엘을 다루는 겁니다. 이스라엘을 이스라엘답게 모양을 만들어가는 거예요.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정리할 수 있는 것은 뭐냐 하면, 구원의 초월성. 정말 구원이 하나님의 구원 맞느냐는 것은 뭘 통해서 알 수 있느냐 하면, 하늘나라 올라가고 지옥 구경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 우리 곁에 시간이 있다는 걸로 알 수가 있는 겁니다. 이걸 문장으로 적어보면, 구원의 초월성, 구원의 눈에 보이지 않는 면, 구원이란 것이 과연 살아 계신 하나님과 관련돼있다는 걸 알 수 있는 증거, 그건 굉장히 간단해요. 시간이란 말이죠.
그러면 모든 민족이냐? 아니에요. 이스라엘 민족, 하나님의 언약으로 택한 민족에게만 이 시간은 구원의 초월성을 보여주게 됩니다. 그게 뭐냐? 안식일입니다. 하나님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보통 안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요. 그들은 시간이 왜 있는지 몰라요. 가장 가까이 매일같이 겪는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이 있고,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다는 것을 시간이 말해주는 겁니다.
그걸 먼저 시범조로 보여주는 나라가 있었으니 그 나라가 이스라엘이에요. 안식일에 나무하면 죽는다. 저주받는다. 지옥이죠.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구원이 굉장히 쉽지요. 전혀 어렵지 않지요.
창세기 1장에 보면, 시간의 시작은 안식일이 시작이 아니고 낮과 밤이었어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한 날이라. 낮과 밤이 시간의 토대가 되는 겁니다. 낮과 밤이 여섯 번 왕복하고 일곱 번째 되는 날이 있었으니 그게 창세기 2장에 나와요. 그 날은 하나님이 창조를 완성하시고 심히 보기 좋았고 만족하신 날이 있었으니 그 날이 바로 안식일이라.
그러니까 다른 민족들이 이스라엘 나라 보면서 저 민족은 희한해. 6일 일하고 하루는 일도 안 해. 이것은 이스라엘이 창조했던 그 사실, 그 사건을 그들이 실현하고 있는 겁니다. 그걸 누가 하느냐? 이스라엘이 하는 게 아니고 시간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답게 모양을 만들어가요. 시간이 인간을 다루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한테는 그게 이상한 이야기가 되지요. 범죄 하고 타락한 인간에게 시공간이란 자기 자신을 위한 시공간이에요.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시간이 정해놓은 시간을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를 위해서 이스라엘이 존재하는 거예요. 철저하게 시간이 품고 있는 시간이 가리키는 대로 창조의 원리를 이스라엘은 자기 행동을 통해서 삶을 통해서 충분히 보여줄 책임이 있는 겁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상대할까요, 안식일과 상대할까요? 안식일과 상대해요. 매일같이. 일월화수목금은 노동하는 것으로 상대하고 마지막 토요일 안식일은 쉬면서 하나님과 상대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매개라는 것, 하나님과 계속 정상적인 관계라는 매개라는 것은 무엇을 통해서 증명이 되느냐 하면, 안식일을 기억하느냐로 증명이 되는 겁니다.
시간은 크고 인간은 작아요. 인간은 누구 말을 들어야 되느냐? 시간의 말을 들어야 돼요. 왜냐하면 시간이 인간의 스승이니까. 현대인이나 일반사람들한테 이게 굉장히 낯설어요. 보통 우리가 스승이라 할 때는 신장 몇 센티, 몸무게 얼마, 라고 해서 사람이 등장해서 스승이 되잖아요.
그걸 스승이라 했는데 정확하게 말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를 연결하는 연결통로, 매개는 지난 시간 레위기 22장에서 제가 분명히 언급했습니다. 사물, 제물이라 했지요. 그리고 오늘 23장에서는 누구라 했습니까? 시간이 매개가 되지요. 시간이 인간을 다루고 관리하고 새로운 인간으로 천국 가는 이스라엘로 변모시키는 거예요.
제물 나왔지요, 시간 나왔지요. 신약에는 누가 나오느냐 하면, 바로 예수님이 나와요. 그래서 예수님이 중보자거든요. 그럼 예수님이 그냥 예수님이냐? 아니에요. 사물의 완성, 시간의 완성으로써의 예수님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12장에서 안식일의 주인공이에요. 모호한 안식일에서 인물 하나 튀어나온다. 그것도 완성적인 차원에서 인물로 굳어져 나온 시간이 사람 된 게 예수님이라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 되고 난 뒤에 시간은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아서 시간은 예수님 안에서 완성이에요. 이걸 쉽게 하든 어렵게 하든 마찬가지지만 이 세상에서 시간은 누굴 위해서 있다 했습니까? 날 위한 시간이라 했지요. 이건 예를 드는 게 어렵지 않습니다.
비가 온다는 것이 어떤 농사한테는 유리하고 어떤 농사에는 불리하겠지요. 그러면 비 오는 공간, 비 온다, 안 온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 때는 그것은 농사짓는 사람에게 의미가 있는 겁니다. 그러나 일반 회사원들에게는 비 오면 월급주고 비 안 오면 월급 안 주는 것 아니잖아요. 신경 안 써요. 나는 나지요.
그러나 농사짓는 사람이나 고기 잡는 사람에게는 시간에 얽매여있는 거예요. 마치 이스라엘 같아요. 만나가 평소에는 오지만 안식일에는 오지 않습니다. 철저히 시간이 이스라엘을 이스라엘답게 조정하고 생산해 나가는 겁니다.
제가 이렇게 하면 오늘날도 안식일 지켜야 하느냐고 하는데 시간의 완성이 오셨다니까요. 지금은 어린양 잡고 안 하지요. 복날 닭 잡고 개 잡는 건 있어도 양 잡진 않잖아요. 양 잡던 시절 있었고 염소 잡던 시절 있었고 소 잡아서 태워서 연기 피우던 시절 있었어요. 왜? 그게 그 당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매개기 때문에.
그것도 있었지만 시간을 지켜야 되는 그런 시절도 있었어요. 이스라엘에게. 오늘 레위기 23장처럼. 지금은 시나 절기나 때나 그런 것으로 너희를 얽매이지 못하게 하라고 돼있어요. 그게 여러분 아시다시피 골로새서 2장에 나옵니다. 16절에 보면, “그러므로 머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요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옛날 구약에는 이스라엘 신체, 육체와 하나님의 안식일, 사물과 관련된 율법이죠. 제사법과 결부시켜서 인간이 육체로써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야 될 책임과 의무가 부여됐던 거예요. 근데 신약에 오게 되면 우리가 육체로 내놓을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그 말은 우리 육체와 결부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다 지나간 거예요. 구약으로. 십일조나 맥추절이나 유월절이나 그런 것들은 다 지나간 거라니까요.
그럼 맥추절, 유월절, 안식일 몰라도 되느냐? 알아야 되는데 그냥 지키려고 알지 마시고 시간과 사물의 매개가 누구한테 완성됐는가를 응집해서 알아야 돼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그냥 알지 마시고 예수님을 쪼개보면 그 안에 안식일 들어있고 십일조 들어있고 율법 다 들어있는 거예요. 예수님을 안다는 말은 구약의 모든 것들이 예수님에게 이런 식으로 완성돼있다는 것을 아는 걸 의미하는 겁니다.
신약에 와서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여러분이 아는지 모르는지 후딱 지나가서 다시 정리해볼게요. 구약 때 우리의 신체는 하나님이 강요했고 임무와 책무를 주신 거예요. 지키지 않으면 저주받는다고. 그렇다면 이 말은 뭐냐? 아직까지 인간의 육체에 대해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