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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광주강의20190426a 마가복음13장 24-27절(재림)-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마가복음

광주강의20190426a 마가복음13장 24-27절(재림)-이 근호 목사 마가복음 13장 24-27절 24절,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25절,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26절,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27절, 또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가 하나 등장합니다. 구름을 타고 오시는 그 존재를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26절에 보니까, ‘인자’라고 되어 있어요. 인자. 사람의 아들이죠. 사람의 아들인데, 기존의 사람과 달리 사람의 아들로 왔다는 말은, 인자로 왔다는 말은 기존의 사람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부정의 대상이 되는 거예요. 하늘나라에서 사람으로 간주하기에 곤란한 대상이 사람이다 이 말입니다. 부정의 대상이 돼요. 그러면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고 하나님이 창조한 존재답지 못하다면, 그 기준이 있어야 되잖아요. 그 기준의 용도로 오신 분이 바로 인자에요. 인자. 인자하고 사람하고의 차이점은 사람은 아담의 후손이지만 인자는 다윗언약에 준해서, 언약이 완성이 되었을 때 비로소 등장하는 사람, 그분이 바로 인자입니다. 그래서 인자가 하는 모든 말씀이나 그 행동이나 일은 항상 누구하고 극단적으로 대조가 될까요? 사람이 하는 일하고 대조가 되겠죠. 그럼 사람부터 따져야 돼요.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 사람은 가능성을 내다보면서 살아요. 그럼 벌써 제가 가능성이라는 말을 했으니까, 그럼 인자는 무슨 일을 하실까요? 불가능성이죠. 불가능성을 제시하는 겁니다. 불가능성. 흉내 못 내도록 하는 거예요. 따라하지 못하게 인자를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겁니다. 인간은 항상 어디에 기준 한다고 했습니까? 뭘 한다고 했습니까? 가능성. I can do it! 나는 그것을 할 수 있다. 항상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가능성대로 사느냐, 인간의 기억과 체험의 근거해서 거기서 뭐가 도출하느냐 하면은 의미와 가치와 목표를 제시합니다. 기억과 체험에 근거해서 의미와 가치와 목표를 제시하는 거예요. 인간은. 만약에 여기에 애가 있는데 애가 4살이다. 그러면 4살의 애에게서 나오는 모든 의미와 가치는 자기가 1살부터 3살까지 기억하고 체험한 것들에 근거해서 말을 내뱉게 되어 있어요. 3살 먹은 애가 “어머님! 남북통일은 저래서는 안 되잖아요?”라고 이런 식으로는 안 해요. 3살 먹은 애가 그런 식으로 이야기 하겠어요? 안 하죠. 자기 관심사가 아니라는 거예요. 자기 관심사가. 인간의 기억과 체험이라고 하는 것은, 이거는 단독적이라고 하는 겁니다. 단독적. 외부에서 오는 것을 참조로 할 뿐이에요. 사람들은 오해하기를 누가 가르치면 가르친 대로 한다고 하거든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가르치게 되면, 가르침을 받는 학생의 기억과 체험을 통해서 본인만이 기억하고 있고 본인만이 체험하고 있는 것과 교류해서 수용을 해야 되죠. 교류해서. 주고받으면서. 주고받은 것을, 가르치는 사람 앞에서는 얼굴에 티가 안 나도록, 안 들키도록 하는 거죠. 고분 고분하는 것처럼. 좋은 인상을 남겨서 참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다, 착한 자녀다, 착한 학생이다, 라는 자기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 고분고분하지만, 뺄 것 다 빼고요. 버릴 것 다 버리고 그렇게 해요. 어린 아이들도 항상 자기기억, 자기체험에 근거해서 의미와 가치를 제시하는데, 이것 역시 바로 자아구축의 현장이기 때문에, 자기 몸이 자아를 계속 구축하는 현장이 되는 겁니다. 애들도 얼마나 거짓말을 했으면 유명한 동화 있잖아요. 양치기 소년. 그 교훈을 애들에게 가르치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이유가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겁니다. 피노키오도 마찬가지고. 얼마나 애들이 주위에서 주어지는 어른들이 하는 모든 가르침 속에서도 자기화 시키는 거예요. 그게 자아화 한다. 자기화 시키는 거예요. 자기화. 그렇게 자기화 시킬 때에 엄마가 애를 가르칠 때는 어떤 식으로 가르칩니까? 예를 들어서 엄마의 나이가, 애가 3살 먹었으니까 36세라고 합시다. 엄마 나이 36세. 36세 때 자기는 똑바로 옳은 길로 가르친다고 하잖아요. 근데 36세 된 엄마가 똑바로 옳게 가르치지만 그것은 35년 동안 자기가 기억하고 체험했던 가치를 남한테 강요하는 거예요. 강요하는 겁니다. 그렇게 강요한 것은, 강요했던 이유가 뭐냐 하면은 내가 이렇게 했더니만 이렇게 되었다, 라는 것. 따라서 이 원인과 결과의 고리를, 이렇게 했더니만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 아까 말한 가능성이에요. 이렇게 했더니만 이렇게 되었으니까 이걸 그대로 내 자녀에게 해주면 내가 원하는 결과를 도출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내가 원하는. 이거는 엄마의 가능성이죠. 이 가능성을 애한테 강제적이든 회유적이든 어떤 식이든 이야기를 하면, 그 애는 그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다 동의하면서도 나중에 자아에 의해서, 몸이 자아구축의 현장이거든요. 인간의 자기 몸에 의해서 전부 다 개조가 되고 변질이 돼요. 그래서 이게 인생 자체가 위조인생이에요. 전부 다 위조지폐 남발하는 거예요. 예, 예 해놓고는 전부 다 거짓말이에요. 대화하는데, 10분 동안 대화하게 되면 보통 거짓말 세 번한다고 하거든요. 많이 봐준 거예요. 10분 대화에 거짓말 3번하는 것은. 20분하면 6번. 동방삭이처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거짓말이 점점 늘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오래 살면 기대를 안 하죠. 기대를 안 합니다. 니는 해라, 나는 내 나름대로의 의미와 가치는 따로 챙겼으니까 됐다. 뭐 이런 식으로. 니는 니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산다. 왜냐하면 자아구축 했으면 그걸로 남는 장사거든요. 자아구축 했으면. 그러면 자아를 형태화시키면 이렇게 돼요. ‘표면이 매끈하다’가 돼요. 인간의 정신의 표면이 매끈해요. 정리정돈 잘 되어 있어요. 이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매끈하다고 했지만, 정돈, 정리가 잘 되어 있어요. 이것을 가지고 주관이 뚜렷하다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주관이 뚜렷하다. 표면이 아주 윤기가 나요. 매끈해요.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게 되면 그 정리정돈 된 표면이 전부 다 어떻게 되느냐 하면은 그 표면을 뜯어내버려요. 여자들 화장품 많이 바르잖아요. 그 화장품으로 피부가 윤기가 나고 촉촉하잖아요. 그런데 이 피부에 무슨 문제가 있어가지고, 뭐 이렇게 피부암에 걸렸다. 그러면 병원에서 이 매끈한 표면의 피부를 칼로 잘라내고 제키죠. 제키면 그 안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혼돈의 근육질이 나오죠. 핏줄, 근육질, 신경조직, 뼈 조직, 막 나오죠. 그거 정돈이 되어 있습니까? 정돈 안 되어 있습니까? 섬뜩하죠. 흉측하죠. 아주 얼굴이 굉장히 이쁜 사람이다. 이쁜 사람인데, 어디 남편한테 망치로 얻어맞았는지 눈이 퍼렇게 됐다. 그러면 그 균형미가 다 깨지겠죠. 거기다가 수술을 한다고 이렇게 하고, 안 그러면 화상입어서 하게 되면, 그 매끈한 얼굴의 균형미, 아름다움 모습이 피부조직을 한 꺼풀 드러내게 되면 그 안에 뭐가 담겨있어요? 혼돈이 있죠. 결국 혼돈된 인간의 육질, 근육질이 매끈한 피부로, 마치 정돈된 것처럼 조작하고 위장해온 거예요. 비싼 화장품 발라가지고 한 겁니다. 겉만 좋으면 되니까요. 속은 겉 뒤에 숨어져있으니까요. 그런데 세월이라는 것이 참 야속하지, 점점 앞에 매끈했던 것, 윤기 나던 것이 세월이 지나가면서 이거는 가능성이 뭐로 바뀌느냐 하면은 불가능성으로 바뀝니다. 불가능이 나이 한 60, 70만 돼도 자포자기 되죠. 바르지도 않고. 누구 만나야 한번 바르고. 며느리라도 온다고 하면 갑자기 입술에 빨간 것을 칠했는데, 빨강이 돋보일 때에 더 흉측해요. 섬뜩하다니까요. 방금 어디 괴기영화, 곡성영화 찍고 온 것 같아요. 차라리 그냥 평소대로 하지, 며느리 온다고, 사돈 온다고 입술 이렇게 바르니까, 입술만 딱 돋보이는 거예요. 방금 어디 생피를 먹은 것처럼. 드라큘라처럼 얼굴을 하고 있단 말이죠. 남편이 몇 번 말렸겠죠. 말려도 안 듣죠. 왜냐하면 그동안 정돈된 자아성 때문에. 나는 바르면 보다 더 이쁜 줄 알고 있어요. 그게 왜 그러냐 하면은 바르면 예쁘다는 것을 체험했고 그게 기억되어 있기 때문이거든요. 한번 공식으로 해봅시다. 원인과 결과에서 뭔가 립스틱 바르면 그 다음에 이쁘다는 것을 하나의 가능성의 공식처럼 사용하고 있었던 겁니다. 립스틱 짙게 바르는 것은 헤어질 때나 성질날 때나 립스틱 짙게 바르는 거죠. 주님께서 불가능성을 이야기할 때는 원인과 결과를 끊어버리는 겁니다. 이게 성령이 주는 자유에요. 나의 나 됨은 주님의 은혜라고 되어 있잖아요.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그걸 이렇게 합시다. 나의 나 됨은 모르겠다, 라고 해야 돼요. 지금 왜 내가 이렇게 사는지, 내가 어떤 행동을 했더니만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그 논리 고리를 작두로 끊든지, 안 그러면 칼을 갈아서 부엌칼로 하든지 해서, 좀 이렇게 끊어버리세요. 악한 내가, 내가 생각하는 악을 끊어버리면 곧 그게 선이다. 이게 악마가 인간에게 세뇌시킨, 정신적으로 장악하는 이게 상투적인 수법이거든요. 니가 악을 행하지 않으면 선이 된다는 겁니다. 왜? 선과 악은 니가 다 알고 있으니까. 선과 악을 아는 것이 악마가 들어왔다는 증거가 아닙니까? 그 증거에 의해서 우리 인간이 계속 휘둘리는 거예요. 우리 인간이. 인간이 하는 재주가 그 재주밖에 없어요. 악을 끊어서 선으로 합치자. 그럼 선하면 뭐하는데? 선을 하면 하나님이 봐주겠죠. 이게 뭐냐 하면 가능성이에요. 가능성에 계속 놀아나는 겁니다. 악마한테. 악마라고 해서 뭐 인상이 이상하고 그런 거 없어요. 악마가 오히려 양의 탈을 썼다고 했습니다. 악마가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말이죠. 뭐, 여기 계신 분 다 천사 같으셔서 욕하는 것 같다마는. 그 천사를 끊어버려야 되는 거예요. 천사를 찾아 사바사바사바~~♬ 천사를 끊어버려야 돼요. 원인과 결과를 끊어버려야 돼요. 이렇게 했더니만 이렇게 나왔다, 라는 결과를 끊어버려야 돼요. 니가 공부를 열심히 하면 남편이 바뀐다는 고리를 끊어버려야 돼요. 여고학교 교문에 니가 지금 공부를 열심히 하면 남편이 바꿔진다. 남편이 달라진다. 요새는 달라졌죠. 남자에게 니가 공부를 열심히 하면 여자가 바뀐다. 니가 원하는 여자가 공부도 안 하는 주제에 너한테 찾아오겠어요? 다시 하겠습니다. 세 살이든 네 살이든 인간은 그냥 곱게 가는 것이 아니에요. 몸은 그 몸인데 자아가 날로 구축되는 식으로 가요. 그 자아라고 하는 것은 바로 기억과 체험에 근거해서 자기 의미와 가치를 추구합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뭘 추구합니까? 여기 뭐가 있습니까? 목표를 추구하죠. 목표를 교회에서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 소망, 희망이라고 하는 거예요. 인간은 희망이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은 그만큼 나라는 인간은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으니까 무시하지 말라는 그러한 외침이거든요. 그것이 자아에서 나왔지만 자아의 정신적 표면은 매끄러워요. 뭔가 자꾸 단도리를 해가지고 자기 속에 있는 것을 안 들키도록 애를 쓰는데, 주님께서 와가지고 불가능성의 말씀으로 확 쑤셔버리면 우리 겉 표면에 있는 정신적인, 악을 버리고 선을 행했습니다, 라고 하는, 나는 거룩하고 경건합니다, 라고 하는 이것이 완전히 수술대에서 찢어내 버리면 속에는 손댈 수가 없어요. 그 혼돈과 혼란. 혼돈하니까 여러분 생각나는 것이 있죠. 창세기 1장 2절, 처음에 우주는 어땠습니까? 이 세상은 정돈되지 않았죠. 혼돈이죠. 혼돈이었습니다. 혼돈을 약간 예쁘게 포장한 것뿐이에요. 그 포장 뚜껑을 딱 열면 여전히 혼돈이에요. 그 혼돈이 선악을 앎으로 말미암아 이게 자체적으로 어떤 형식을 갖췄다고 이렇게 우기고 있는 겁니다. 혼돈이지만, 악을 버리고 선을 이정도로하면 얼추 괜찮지 않느냐고 스스로 자기 자신을 자위하고 위로하는 겁니다. 선악을 알라고 누가 이야기 했습니까? 그건 하나님이 말렸잖아요. 하지 말라고. 근데 누가 부추겼습니까? 선악을 알라고. 악마가 그렇게 했잖아요. 우리는 악마의 친구에요. 악마의 친구가 돼버린 거예요. 이 말은 악마의 말만 듣고 그 외의 말은 안 듣도록 이미 우리는 악마화 된 대상이 된 겁니다. 악마가 가라 하면 가고 악마가 오라 하면 오는, 그런 대상자가 된 거예요. 선을 행하게 되면 우리에게 부수적으로 주어지게 되는 것은 복이다. 그 복이 뭐냐, 내가 잘되는 것이 복이죠. 내가. 내가 잘되는 것이 복이죠. 그러니까 인간은 내가 잘된다, 내가 살아야 된다, 나는 행복해야 돼, 이게 치명적인 약점이에요. 이게. 이게 약점이라고요. 우리는 그걸 목표라고 보지만 약점이 된 거예요. 내가 행복해야 돼. 나는 잘돼야 돼. 나는 평온하다. 평온하니까 이건 하나님의 복이다. 이렇게 되는데, 여러분 평안하다, 평안하다, 할 때 주님께서 갑자기 오시잖아요. 주님께서. 인간이 가능성에서 그려내는 목표나 희망은 그저 가능성과 가능성 사이에 단절이 아니고 계속 연속적인 거예요. 연속적인 것. 원인과 결과에서 이어졌다고 본 겁니다. 이게 이제 필연이라고 하는데, 주께서 일할 때는 이걸 혼돈과 혼란으로 만들어버리시는데, 이게 필연이 아니고 뭐가 되느냐 하면은 우연 또는 우발성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 앉아있는 게 주님의 우발성에 의한 결과물이에요. 주님의 우발성이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와서 이렇게 왔다고, 그걸 연속적인 계기로 억지로 연결시키려고 하지 마세요. 그러면 우리는 그 가능성의 늪에서 못 헤어 나옵니다. 이런 결과를 얻기 위해서 나는 이렇게 하면 되겠지, 라는 그것도 가능성이잖아요. 이렇게 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우리는 그 결과를 해명하기 위해서 나 스스로 설득되기 위해서 내가 원인을 조작하는 거예요. 왜? 인간은 기억과 체험을 못 버리기 때문에. 기억과 체험이라는 것은, 이거는 어디까지나 과거 아닙니까? 과거하고 현재를 억지로 이어나가려고 애를 쓰는 거예요. 인간들이 악마의 사주를 받고. 그럼 누구만 좋은 거예요? 악마만 좋은 거예요. 왜냐하면 인간들로 하여금 자기 잘남과 자기 가치와 의미와 가능성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한 악마는 자기 종 부리듯이 할 수 있는 겁니다. 그걸 로마서 6장에서는 죄의 종이라고 하는데, 인간을 죄의 종이라고 해요. 아담 자체를 죄의 종이라고 해요. 상당히 포괄적으로 언급하고 있죠. 죄의 종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악마의 종이죠. 종의 특징은 뭘까요? 종의 특징은 거기서 개인적인 자유가 허락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되죠. 개인적인 역량이라든지 사적인 가능성 같은 것은 발휘되지 못하죠. 종이니까. 노예잖아요. 노예. 주인님이 따로 있잖아요. 그러니까 죄가 주인님 노릇하고 있는 거예요. 죄를 죄 되게 드러내기 위해서 인간은 악마가 시키는 대로, 사주한 대로, 니는 이렇게 살아야 인간이라는 그 인간 자아성이 이미 확고히 되어 있고 구축되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악마가 제일 싫어하는 것 하나가 죽음이에요. 죽으면 모든 것이 무효화되잖아요. 무효화. 무효화되죠. 근데 인생이 죽잖아요. 그러면 인생 앞에다가 뭘 붙여야하느냐 하면은 그냥 인생이 아니고 무효인생이에요. 무효가 될 수밖에 없는 인생. 무효인생이라고 제가 글자를 썼잖아요? 이걸 지워버리면 뭐가 됩니까? 없잖아요. 인간은 자꾸 있음에서 있음을 끄집어내려고 해요. 왜냐하면 그래야 원인과 결과의 고리를 자기가 붙들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데 하나님의 일은 돌발적이고 우연적이기 때문에 반드시 뭡니까? 없음에서 있음이 나오죠. 그 없음에서 있음이 나오기 위해서는 있음에서 있음이 나오는 이 논리 고리를 어떻게 해야 해요? 계속 차버리는 겁니다. “이렇게 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라는 것을, 계속 주께서는 이걸 부정하는 거예요. 거부하는 거예요. 이게 뭐냐 하면 바로 성령의 일이에요. 성령님의 일은, 물론 성도에게만 해당이 됩니다. 성도만이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그래서 성도를 영의 사람이라고 하거든요. 반대말이 뭐겠어요? 육의 사람. 성령 받은 사람은 영의 사람. 성령이 없는 사람을 가지고 육의 사람이라고 하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성도를 언급할 때에 육의 사람부터 먼저 언급을 하는 이유가 영이라고 하는 것은 육이 없으면 설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 빛만 귀한 게 아니에요. 그림자도 귀해요. 그림자 제키고 빛만 찾으면 안 돼요. 그림자와 더불어서 빛을 설명해야 됩니다. 그림자. 그림자가 그만큼 귀한 거예요. 예수님이 빛이죠? 우리는 뭡니까? 예수님의 빛에 의해서 우리는 뭐다? 그림자가 되는 거예요. 예수님의 빛을 증거 하는 그림자가 되는 겁니다.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얼마나 영광스러워요. 자기가 단독으로, 따로이 자기 내부에서 나의 빛, 나의 그림자를 분류하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내가 주님에 의한 그림자라는 것을 아는 거예요. 전적으로. 몽땅 다. 올All. 모두가 그림자가 되는 거예요. 성령은 예수님의 영이기 때문에 빛으로 오잖아요. 빛으로 오게 되면 우리가 하는 시도가 있음에서 있음, 원인과 결과를 못 놓고 있어요. 이런 논리 구조를 못 놓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아까 오실 때 김밥 사오셨잖아요. 배부르죠. 배부른 이유가 뭡니까?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은, 내가 집어먹어서 배부르다고 하거든요. 이것이 잘못된 버릇이다 이 말입니다. 어떤 행동을 해서 배부른 게 아니라 배부르게 하신 거죠. 배부르게 하신 거예요. 김밥을 한 세 개 먹고 있는데 갑자기 북한에서 쳐들어온다. 배부르지 않죠. 왜냐하면 김밥이 안 들어가죠. 북한에서 쳐들어오면 빨리 목포에 가서 이사할 준비를 해야죠. 튈 준비 해야지 한가하게 김밥 먹을 정신이 어디에 있습니까? 불안해하는 아내 걱정해야 되고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러니까 김밥 먹고 배부르다고 하는 것은 한가로이 여유를 주신 분이 따로 계신 거예요. 우리는 그런 것을 다 따로 떼고 보죠. 왜냐하면 원인, 결과 내 가능성만 생각하다보니까, 변수로 제공된 모든 하나님의 은혜를, 다 떼고 가실게요, 해서 다 잘라버린 거예요. 자기가 이렇게 노력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하니까, 그런 인간을, 그렇게 내가 단도리를 잘했던 내 가족이나 내 식구중 하나를 하나님께서 죽여 버리셨다 라든지, 뭔가 병으로 아파버리면 갑자기 우리는 악마의 모습이 발칵 나오죠. 분노가 나오죠. 더 이상 어떻게 하나님 앞에 잘해야 됩니까? 내가 이 가정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썼는데, 하나님이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면 나는 더 이상 어떻게 살라고 이렇게 낙담케 하십니까?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일을 하신 성령님이 갑자기 욕 얻어먹게 되어 있어요. 갑자기 자식 죽게 한 성령님이 욕 얻어먹게 되어 있다니까요. 그 인간 살리기 위해서 애 죽였는데 이거 뭐 항의가 막 들어오는 거예요. 왜 내 세계를 건드리십니까? 이래 된 거예요. 니 세계가 악마의 세계라 이 말이죠. 악마의 세계에 보금자리 하나, 아파트 하나 분양받은 거예요. 그냥. 보통 박람회 할 때 칸막이를 뭐라고 합니까? 부스라고 하죠. 우리는 부스 하나 할당받은 거예요. 이 땅에서. 악마의 세계에서 부스 하나 할당받은 거예요. 그러니까 관심사가 뭐냐, 정치에 관심이 있는 거예요. 나라가 잘되어야 내가 잘된다. 이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아무도 이야기해본적도 없고, 해도 소용이 없어요. 내가 갖고 있는 내 자아라는 것이 줄곧 이런 식의 기억과 이런 식의 체험을 내가 정리정돈해서 왔기 때문에 그래요. 그놈의 정리정돈이 문제라. 그 정리정돈을 왜 합니까? 깔끔 떨고 정리정돈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화를 많이 내는 사람이죠. 깨끗하게 해놨는데 친척 동생이 와가지고 막 뛰어내리고 이거는 누나 곰 인형이라고 해가지고 막 집어던지고 하게 되면 얼마나 화가 나는지 몰라요. 니 오지 마라! 이 사촌들아 오지마라! 이렇게 하겠죠. 그런데 세 살, 네 살 먹은 사촌동생들이 와서 자기가 어지르는 것보다 더 심하게 어질러버리면 애들은 좋아합니다. 자기 어지른 것은 흠이 안 되는 거예요. 그것이 주님의 방법이에요. 니는 죄의 종이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니가 얼추 죄를 지어도 그거는 내가 보는 죄에는 아직 멀었다는 거예요. 위로 삼아서 이야기한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래요. 우리가 우리를 용서 안 해서 문제죠. 주님은 우리 수준을 아주 엉망으로 보는 거예요. 전적 무능력, 전적 죄인이에요. 우리 자신이 자신을 몰라가지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겁니다. 아휴, 내 인생 이렇게 정돈해야 되는데, 아까 이야기한 부스죠. 내게 허락한 부스를 깨끗하게 정돈해야 하는데. 하나의 부스가 깨끗하게 되려면 옆에 있는 부스로부터 영향을 받아야 돼요. 인간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에요. 지 깨끗하고 깔끔 떤다고 혼자 사는 것이 아니에요. 이 세상에는 예상치 못한 많은 변수들이 계속 들어오는 겁니다. 이걸 주입 또는 개입이라고 할 수 있죠. 뭐 어디 개입한다, 주입한다, 라는 말을 사용한다는 자체가, 내 것의 경계선, 바운더리boundary는, 따로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내 것입니다, 라고 일방적으로 우김이 있기 때문에, 개입이고 주입이라는 말을 우리가 사용하는 겁니다. 내 것인데 이게 왜 들어오느냐 이 말이죠. 주님께서는 그 내 것을 어떻게 해요? 내 것을 파괴해버리죠. 민수기 21장 6절인가 찾아볼까요? 누가 한 번 읽어보세요.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됐습니다. 백성들이 불뱀을 보고 싶어서 기도했습니까? 이거는 돌발사태죠. 우연적이죠. 그들은 기억과 체험에 의해서 자기 단도리에 열중합니다. 그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와 똑같아요. 주께서 주신다면 내가 원하고 있는 내 과거와 체험에 의해서 더 좋은 것, 복이라는 이름에 더 좋은 것을 주기를 원했는데, 막상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그들에게 주입시키고 개입시킨 것이 뭐였습니까? 불뱀이죠. 불뱀. 불뱀을 줬을 때에, 사람들은 이걸 싫어하는바 되어 있어요. 싫다는 말은 뭐냐 하면은 내 경계선, 바운더리에 구축한 것에 필요 없는 것이 들어왔다고 보는 거예요. 필요 없는 것. 근데 필요 있다, 없다 결정을 누가 해요? 자기 나이까지 자기에게 구축된 자아가, “이거는 들어올 필요가 없습니다. 이거는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본인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거예요. 그게 바로 마귀나라 지옥 아닙니까? 지옥이거든요. 자기 경계선 쳐놓고 이 안에는 무조건 자기가 신이 되고, 자기가 주인공이 되고, 자기만의 세계, 자기가 황제가 되고, 자기가 교주가 되는 그 세계를 따로 구축하라고 배후에서 누가 이렇게 시켰습니까? 독립하자! 독자적으로 니가 최고다! 라고 누가 그렇게 한 거예요? 여러분이 했습니까? 누가 했어요? 악마가 그렇게 했잖아요. 그럼 주님은 언약을 가지고 누굴 공격하는 거예요? 악마를 공격하잖아요. 악마가 인간에게 저지른 그 원리와 원칙, 삶의 조건, 이런 것을 안 건드릴 수 없잖아요. 그게 뭐냐 하면 주입과 개입이에요. 불뱀이 외부에서 온다고요. 오늘 저녁에 여러분이 시험 한 번 해보세요. 여러분이 시험하면 안 되는데, 여러분이 침대에 주무시고 있는데, 옆에서 누가 못된 짓을 했는지 바퀴벌레가 한 열댓 마리 몰려와보세요. 그런데도 잠을 편안히 자면 그건 정말 성인군자고요. 장마철에 습기 찰 때, 화장실에서 올라오는 거머리 비슷한 거 있잖아요. 이런 거. 올라오게 되면 원치 않는 불청객이 오듯이 이렇게 하잖아요. 그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는 방법이 불청객, 불뱀을 보낸 거예요. 불뱀을. 하나님이 제시한 것이 되어야, 거기서 벗어나는 치료방법이, 인간이 그동안 자기가 철석같이 신조처럼 지켰던, 신처럼 여겼던 그 가능성, 내가 이렇게 했더니만, 원인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 라는 그 가능성이 불뱀 앞에서 어떻게 돼요? 이게 무용지물이죠. 그동안 인간의 가능성은 이거였습니다. 기도하면 그 다음에 뭐 받는다? 응답받는다. 이게 불뱀 앞에서 통하던가요? 안 통하던가요? 안 통하죠. 통할 수가 없어요. 주께서 주신 해결책은 뭐냐 하면은 제 3의 중개조건이에요. 제 3의 중개조건. 불뱀이 왔을 때 제 3의 중개조건이 뭐였습니까? 제 3의 중개조건이. 바로 놋뱀이었잖아요. 그 놋뱀이 요한복음 3장에서는 뭐라고 했습니까? 십자가죠. 그러면 십자가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 인생에서 뭣이 계속해서 들어와야 됩니까? 불뱀이 들어와야 돼요. 불뱀. 자식을 셋 낳았는데, 셋 다 불뱀1, 불뱀2, 불뱀3. 자식 둘인데, 둘 다 불뱀1, 불뱀2. 남편이 불뱀이고 아내가 불뱀이고. 원치 않는 불뱀으로 내가 구축한 내 자아의 행복, 내 의미, 내 가치. 그리고 거기서 형성된 유일한 내 목표와 내 소망과 희망을 깡그리 완전히 박살내는 그런 하나님의 사랑의 개입. 이게 사랑이겠어요? 이 바퀴벌레가. 고요한 나의 매끄러운 표면적을 완전히 좌절시켜버린. 악마는 뭐라고 합니까? 니가 기도 안 해서 그렇다, 니가 헌금 안 해서 그렇다, 니가 충성 안 해서 그렇다, 니가 나쁜 짓을 해서 그렇다, 계속해서 악마는 끝까지 셰퍼드처럼 물고 늘어지는 것이 뭐냐 하면은 논리구조에요. 원인과 결과. 가능성이라고 했죠. 이게 가능성 또는 합리성, 과학성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논리적 과학성. 이 원인에 의해서 결과가 나왔다. 따라서 니가 그런 결과를 해소하려면 뭐부터 바꿔야 된다? 원인을 바꾸면 결과가 바뀐다는 거예요. 계속 집요하게, 이거는 암 조직 같아. 끊임없이 우리를 물고 뜯습니다. 꽉 잡고 안 놓아주려고 하는 거예요. 연세가 많고 두 부부가 오랫동안 같이 해로하면 상당히 부럽죠. 그런데 인생을, 우리 인간으로 봐서는 세 살이 있어야 네 살이 있고 네 살이 있어야 다섯 살이라고 하잖아요. 그 사고방식 자체가 잘못된 거예요. 만약에 우리가 80에 죽는다고 한다면, 죽음이 있기에 79가 있고 죽음이 있기에 78이 있는 거예요. 출발점을, 스타트를 죽음에다가 두어야 돼요. 이게 인자의 모습, 인자의 방식이에요. 악마의 방식은 내가 이 땅에서 오래 살았는데, 오래 산 것을 주장한다고요. 그러나 마지막이 시작점이에요. 우리의 본 모습은 마지막에 드러나지 시작에 안 드러나요. 자식 낳아서 애가 이쁠 때 애가 얼마나 이쁘다고요. “아이, 이쁘다.” 그 이쁨이 이상하게 계속 오래가지를 않아요. 사그라들죠. 진짜 우리의 본모습은 우리가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이걸 죽을 때 알지 마시고, 10대, 20대, 진작 알았어야 되죠. 그렇다면 내 기억과 경험과 무엇과 대치가 되느냐 하면은 주님의 십자가의 기억과 주님의 십자가의 경험과 이게 대치가 돼요. 서로 충돌을 일으켜요. 내 잘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어진 제 3의 중개적인 조건을 증거 하기 위해서 우리를 일찌감치 이 땅에, 1900 몇 년 도에 태어나게 하신 거예요. 십자가 증거 하라고. 예수님 증거 하라고. 그렇게 태어나게 하신 거예요.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에 이런 것이 있어요. ‘고장 난 벽시계는 멈췄는데 이놈의 세월은 멈추질 않네.’ 혹시 이런 노래를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나훈아가 부른 거거든요. 제목이 ‘고장 난 벽시계’에요. 집에 있는 고장 난 벽시계는 고장이 나서 스톱이 되어 있는데, 왜 내 청춘, 내 세월은 자꾸 가느냐 이 말이거든요. 이게 얼마나 오해인지, 고장 났기 때문에 세월이 가는 걸로 느껴지는 거예요. 고장 났기 때문에. 주님의 세계에서는 시간의 흐름이라고 하는 것은 언약 흐름에 준하기 때문에 신약에 와서는 시간의 흐름이 없어요. 그 자체가 종말이에요. 그 자체가. 그 자체가 종말이고 그 자체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죽음이에요. 죽음의 현상들을 마구마구 이 신약시대에 들추어주는 겁니다. 죽음의 현상들을. 죽는다는 것을 굉장히 섭섭하게 생각하는 그 이유가 뭐냐 하면은 우리의 과거의 기억과 체험 때문에 그런 오해가 생기는 거예요. 그 과거의 체험의 가치와 의미가 뭐냐 하면은, 일단은 내가 살아야 가치와 의미가 있다는 거예요. 산다는 것은 있는 것이 계속 있음으로 간다는 겁니다. 모든 사건을 전부 다 연결시켜가지고 마치 필연적인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처럼. 하나도 연속성이 없거든요.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주위에서, 예를 들어서 A라는 지점에서 B라는 지점으로 걸어갈 때에, 얼마나 많은 사태들이 주님에 의해서 조정 받는지 몰라요. 그야말로 A라는 지점에서 B라는 지점까지 7.5미터라면, 7.5미터에 도착했다면 여러분이 무사히 오신 줄 아시기 바랍니다. 무사히. 3층에서 화분이 안 떨어져서 천만다행이고. 오다가 동창생 안 만나서 제대로 왔다고 생각하시고. 우리가 모르는, 우리가 뭘 알겠어요? 우리가 모르는 많은 변수들을 주께서 다 제켜주고, 그걸 다 막아줬기 때문에 우리가 7.5미터를 전진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럼 이거는 계속해서 주님의 간섭이 개입되는 현장이거든요. 시간이라는 게. 근데 우리는 멀쩡하다고 생각하니까, 세월이 흘러간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세월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서는 계속해서 주께서 간섭하는 영역이지, 우리가 세월을 측정해서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아요. 흘러가기는 뭘 흘러가요. 제가 수요일에 설교했죠. 야고보서 4장 14절 이야기했죠. 인생은 뭐라고 했습니까? 인생은 안개라고 했죠. 자, 묻습니다. 세 살 애가 안개입니까? 안개 아닙니까? 세 살 애가. 안개죠. 그럼 열두 살은? 안개죠. 칠십 칠세는? 안개죠. 육십도? 안개죠. 안개 아닌 적이 없어요. 그럼 안개인데, 남자 안개 따로 있고 여자 안개 따로 있습니까? 그거 의미 없죠. 마지막에 천사와 같이 되면 남자, 여자 없어요. 그럼 뭐가 의미가 있느냐, 언약이죠. 그럼 언약에서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언약에서 우리는 인자류가 되죠. 영장류 그런 것 말고. 그게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은 오늘 본문 13장 27절에서 나옵니다. “또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아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갑니까? 인간으로부터 인자로. 인자에 집합하죠. 인자류의 사람으로 달라지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거예요. 이 말은 뭐냐 하면은 우리가 내뱉는 천국, 지옥, 구원, 이런 것들의 개념들이 전부 다 달라져야 해요. 우리 입장에서 하지 말고 주님 입장에서 다 달라져야 해요. 근데 우리는 아까 가능성, 체험, 기억, 여기에 무장되어가지고 내 입장에서 생각하는 천국, 지옥을 생각하는 거예요. 교회도 마찬가지고. 그렇게 생각한다 이 말이죠. 그럼 오늘 본문 26절에 보면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온다는데, 만약에 내 중심, 내 구원중심이 돼버리면, 구원중심이라면 예수님이 구름타고 올 일이 없어요.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본 중에서 재림에 대해서 설명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요. 제가 아는 한. 제가 뭐 알겠습니까? 제가 아는 한 재림에 대해서 이야기 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어요. 전부 다 재림이야기하면 무엇과 연관시킵니까? 자기 구원과 관련되어 있어요. 그건 엉터리 재림이에요. 예수님이 오실 이유가 없는데 왜 오십니까? 재림이 만약에 돼버리면 재림이 되어야 다 이루었다가 돼요. 재림 이전에는 미완성이 돼버린다고요. 여러분, 그런 의문점이 없던가요? 십자가로 죽고, 죽고 난 뒤에 우리가 성령 안에서 예수님이 오시면 부활이 되잖아요. 그러면 그거면 됐지, 굳이 재림할 필요가 없다 이 말이죠. 세상에서 죄 있는 우리를 죄용서 해주셔가지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합류해서, 죽은 자 가운데서 우리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우리 몸의 부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몸의 부활로 구원한다. 아니, 그 이야기로 뭔가 모자랍니까? 그것으로 뭔가 부족한 거예요? 이 더러운 세상에 다시 오실 이유가 없잖아요. 어디 뭐 채무관계에 있습니까? 어디 돈 받으러 오신 거예요? 마치 뭐와 같은가 하면은 우리가 빚을 못 갚아서 악마한테 매여 있으니까, 악마는 채권자고 우리는 악마한테 빚을 진 채무자 입장이고. 주께서 오셔가지고 “니 얼마 빌렸노?” “예. 죽어도 못 갚을 죄를 졌습니다.” “그래. 내가 갚아줄게.” 그래서 우리가 십자가 피로 죄 값을 치르고, 드디어 우리가 죄 없는 상태에서 악마가 우리한테 요구할 수 있는 어떤 채무관계가 없다 이 말이죠. 악마가 우리에게 뭘 요구합니까? 율법에 의해서, 말씀에 의해서 우리의 죄를 지적하는, 그 지적할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는 거예요. 골로새서 2장에 나온 말이죠. 그 증서를, 채무증서를, 율법이란 증서를 찢어버렸다 이 말이죠. 그러면 우리는 죄 없는 상태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잖아요. 그렇죠. 그렇다면 거기에 재림이라는 것이 들어갈 이유가 없고, 여지가 없는 거예요. 그러면 왜 예수님이 재림으로 또 오십니까? 우리는 지금 천국에 다 갔는데. “아이고, 빚 다 갚고 고맙습니다.”하고 있는데. “야! 손잡고 내려가자.” “어디로 내려갑니까?” “세상에 내려가자.” 그 더러운 세상에 왜 갑니까? 갈 이유가 없죠. 주님도 한 오지랖 하십니다. 이미 떠난 세상인데 멸망시키면 그만이지 왜 오셔야 됩니까? 오실 이유가 빠진 거예요. 주님이 하신 일이 빠졌다는 말은, 우리가 빼고 구축한 구원론이 엉터리 구원론일 가능성이 굉장히 농후한 거예요. 뭐, 이거 빼고, 구원받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 있잖아요. 그 욕망에 미쳐서 성급하게 성경구절 가지고 와서 땜질한 거예요. 방금 제가 욕망이라고 했죠. 욕망을 제가 초반에 뭐라고 했죠? 이걸 가지고 우리의 목표라고 했어요. 인간의 목표가 있는데 그 목표가 뭐냐, 결국 자아의 완전함, 자아의 편안함, 자아의 행복, 자아의 영원한 복락. 그러니까 내가 천국 가고 싶은 것은 누구 좋아라고? 내가 잘되기 위해서 천국행을 원하는 거예요. 완전히 빌고. 근데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인간은 달라져야 된다고 했죠. 자아 이 자체가 이게 어디서 투입이 된 거예요? 악마가 시킨 대로 형성된 자아잖아요. 이렇게 돼버리면 천국 가는 것이 뭐가 되느냐 하면 가능성이 돼버린다고요. 내가 예수 믿었다는 원인으로 말미암아 그 결과로 천당 가는 것이 돼버려요. 이거는 결국은 ‘라이언일병구하기’처럼, 내가 나를 구하는 방식인데, 이 모습입니다. 물에 빠졌는데 자기 운동화 끈을 잡아당기면 내가 물에서 빠져나옵니까? 자기 발만 떡 들리죠. 몸체는 더 엎어져 물속으로 더 들어가고. 뭐, 꼭 실험 안 해도 되겠죠. 욕조에 누워서 여러분 발을 한번 잡아당겨보세요. 외부인이 말고 스스로 자기가 땡겨 보세요. 안되죠. 불가능하잖아요. 자아가 아는 방식으로 구원론을 형성할 때는 뭐가 빠져있다? 재림이 빠져있는 거예요. 재림을 넣어버리면 지금까지 구원론은 잘못된 구원이라는 것이 들통 나는 겁니다.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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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5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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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