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55 - 변동
[19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55 - 변동
19,04,15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실험실의 흰 쥐 !!
오늘은 교재 129페이지부터 하겠습니다. 여기에 보면 제목이 '8강, 실험실의 흰 쥐' 라고 되어있는데, 인간을 이렇게 실험실의 흰 쥐로 보려고 한다면, 어떤 안목이 있어야 합니까? 그것은 인간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전체적으로 말이죠.
그러한 안목이 있을 때, 즉 전체와 각 개인을 비교하면서, 도대체 인간이 무엇인지를, 그렇게 인간의 움직임을 전체적인 입장에서, 그들이 어떤 이유에서 태어났고 살아가는지를 살펴보게 된다면, 그러면 '실험실의 흰 쥐' 라는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여기 전도서에서 되풀이해서 나오는 구절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1장 9절인데, 즉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라고 한다는 말이죠. 새 것이 없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새 것은 포괄적인데, 그 새 것의 반대말은 옛 것이 되는데, 그 옛 것은 실험실의 흰 쥐와도 같은 입장에 놓여있다는 겁니다.
(전 1: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새 것은 크고 전부인데, 반면에 옛 것은 새 것의 입장에서 보면 헛되고 헛되다는 말이죠. 바로 그러한 안목이,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이 우리의 개인적인 안목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생활은 변화를 의미하는데, 즉 '변동' 이라는 말이죠.
예를 들어서, "십일조를 내지 않아도 구원을 받습니다" 라고 하면, 그래서 "돈도 없는데 내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면, 그러면 여기에는 그 어떤 변화도 없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십일조를 행함으로 천국에 가는 게 아니고, 십일조를 하지 않아도 천국에 갑니다" 라고 했을 때, "그러면 십일조를 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변동이라고 여기는데, 하지만 자기 자신이 달라지지 않았기에 변동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이죠.
* 신앙이란 변동이다 !!
그러면 "신앙이란 변동이다" 라고 했을 때, 그게 어떤 변동인고 하니, 만약에 개인위주로 사는 것은 다시 또 다른 형태의 개인위주로 산다면, 그것은 변화도 아니고 변동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무엇인고 하니, 전체를 다 아우르는 포괄적 안목을 가진 입장으로, 그렇게 변화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죠.
신앙이 없을 때는 무슨 입장인고 하니, 개인적인 입장인데, 즉 "나에게 이익이 될까? 손해가 될까?" 라는 것만 생각하는데, 그러한 개인주의에서 신앙이 오게 되면 포괄적인 입장으로 바뀌게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포괄적인 입장이 성경을 쓰신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보시면 된다는 말이죠.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받는 것인데,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받기 전에는 우리가 누구의 마음으로 살았는고 하니, 자기 위주로 살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고 난 뒤에는 자기 위주가 아니라 하나님 위주로 살아간다는 말이죠.
여기에서 염두에 두어야하는 것은, 하나님 위주로 산다고 하는 것이 "내가 하나님 위주로 산다" 라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포괄적인 내용이다" 라고, 그렇게 보는 안목이란 겁니다. 그게 전체적이고 포괄적인 안목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과거에는 자기를 위해서 살아가다가, 이제는 주님의 위해서, 즉 "내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지?" 라고 한다면, 그것은 변동이 아닌데, 왜냐하면 여전히 '나' 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것이 아니고, "내가 무엇을 하든 말든, 나는 오직 은혜로 얻어먹고 산다" 라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말이죠.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주님에게 제공받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변화이고 또한 변동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제목을 '실험실의 흰 쥐' 라고 했는데, 즉 "아하 나는 실험실의 흰 쥐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인데, 그게 바로 전체적인 안목이라는 말이죠.
* 결혼은 미친 짓이다 !!
하나님이 성령을 주신 것은 무슨 의미인고 하니, 마음이 서로 통해야 천국에서도 같이 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혼도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마음이 통한다고 인정하게 될 때, 그때 비로소 치러지는 것이 결혼식이란 겁니다. 마음이 맞지 않는데 억지로 맞추어서 살려고 한다면, 그것은 아니라는 말이죠. 일단 "저 사람과 장기간 마음이 맞을 수 있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해야한다는 겁니다.
어떤 의미에서 현대사회에서 결혼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고 기적인데, 왜냐하면 각자가 자기 자신밖에 모르니 말이죠. 그런데 서로 마음이 통한다고 여기는 것은 둘 중에 하나인데, 먼저는 착각을 했거나, 그게 아니면 상대방에게 얻어 챙길 것을 간파했을 경우라는 겁니다. 그러니 일종의 처세술이라는 말이죠.
예를 들어서, 남자 쪽에서 좀 잘산다고 하든지 하면, 반면에 여자 쪽은 궁색하게 살아왔다는 겁니다. 대식구에 화장실도 하나이고, 그래서 아침마다 난리가 난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