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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행 15"12-18 (야고보의 복음)우리교회사도행전

Re..행 15:12-18 (야고보의 복음)

이름 : 이근호(IP:)

야고보의 복음
2004년 12월 1일 본문 말씀: 사도행전 15:12-21

15: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15: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5: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15: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바
15: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5: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5: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15: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15: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15: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가 베드로의 이야기를 듣는 태도를 보세요. 결코 인간적인 경쟁의식이나 비교의식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베드로 당사자를 견제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는 하나님이 지금 어떤 식으로 일을 하시느냐 하는 점에 주안점을 두고 듣습니다.

바로 이렇듯 사람보다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는 사람을 만나기란 참 드물지만 '형제'라고 불리울만한 합니다. 진정한 천국의 형제는 이러합니다. 그런데 성도라고 해서 세상 모든 일을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 폭만큼 말하게 되어있고 고백하게 되어 있습니다. 야고보는 매사를 하나님의 은혜로 보지만 베드로가 이야기한 그런 사실에 대해서 그는 처음 듣고 반깁니다. 이처럼 성도란 새로운 일이 만날 때마다 그것조차 매번 은혜로 여깁니다.

하지만 불신자들은 새로운 것을 얻게 되면 그동안의 자신의 노동의 댓가로보고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기 용도로 으시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은혜란 무엇입니까? 아무런 받을 자격도 안되는데 주어진 것이 은혜습니다. 즉 금방이라도 하나님이 도로 가져가셔도 군말없이 감사할 준비가 되어 있는 마음이 은혜를 아는 마음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모든 일은 성도에게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로움으로 들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보면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더 크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뭔고 하니, 원래 구원이란, '구원이 안됨'을 전제로 한 경우에서만 성립되는 개념입니다. 즉 "저쪽은 그 어떤 경우라도 절대로 구원이 되지 못함"이라는 사실이 성립될 경우에만 이쪽에서 비로소 구원은 성립됩니다. 즉 '구원됨'은 필히 '구원 못됨'을 필히 생기게 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유대인이 택함받았다는 말은, 이방인들은 필히 택함을 입지 못했다는 말이 되고, 택함받은 자에게 구원이 돌아간다는 말은, 택함이 없는 이방인에게는 도저히 구원이 안돌아감이 성립되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이처럼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계곡이 가로 놓여 있습니다. 마치 천국과 지옥 같습니다. 서로 다른 세계를 형성해 왔으며, 서로 화합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점은 이방인들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4:22에서 인정했다시피,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납니다. 유대인에게서 구원자가 등장한다면 이는 이방인들을 배제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데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런데 이 야고보가 말하기를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이 구원원칙이 다 깨어집니까?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구원이 성사되는 것이 오직 '주의 이름' 덕분입니다.

그렇다면 주의 이름이 하시는 일이 예전부터 진정한 구원의 실체였습니다. 즉 구원이라는 것은 유대인 위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이름'으로 행하시는 그 일을 위하여 구원되어 왔다는 겁니다. 이점을 좀 더 상세히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야고보 사도가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바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라고 되어 합니다.

이것은 아모스 9:11의 말씀입니다. 여기 등장하는 '다윗의 무너진 장막'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겁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바에 의하면, 다윗의 장막은 결코 인간의 손에 의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손에 의해서만 세워진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노아의 방주의 노아의 손에 의해서 세워진 점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것처럼 다윗의 성전도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세워지는 것처럼 사람들은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성전은 하나님에 의해서 거부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비록 이름은 '다윗의 성전'이라도 그것이 다윗에 의해서 지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다윗에게 약속을 주신 그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성전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성전을 하나님은 어떤 식으로 짓게 될까요?

그것은 다윗의 죽음, 좀 더 자세히 말씀드려서 다윗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 짓게 됩니다. 다윗과 밧세바가 간통해서 낳은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이 다윗의 간절한 기도에게 불구하고 죽습니다. 이로서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 약속은 다윗의 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립니다.

그런데 그 다윗과 밧세바에게 다시 태어난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의 이름은 여디디아입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입은 자'입니다. 그 아들이 바로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의 등장은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총의 약속의 유효함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 솔로몬이 성전을 지으면 이는 곧 '죽은 데서 다시 살아난 자'에 의해서 짓게 된 성전과도 같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나타날 영원한 성전이 등장되는 원리를 말해주는 겁니다. 비록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도 그 성전이 유지되는 원칙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사랑의 원칙이어야 합니다.

그것에 실패하자 솔로몬 성전도 무너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성전이 유지되는 원칙을 아모스에서는 이것을 '공의'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는 말하는, 무너진 장막이란, 성전도 아니요 나라도 아니요 오직 주 되시는 분의 자기 언약 성취의 일환으로 만 가능하다는 겁니다. 따라서 아모스를 통해서 알려진 바처럼 유대인이든, 이방이든지 오직 부르시는 이들은 다 친히 하나님이 세우신 성막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성전이 지어지는 원칙은 '없는 데서 있게 하고 죽은 데서 살리는 식'입니다. 이 원칙에 준해서 이방인들이 구원의 세계로 넘어들어오게 됩니다. 이방인들이 구원되려면 아무리 신을 잘 섬기고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에 의하면 이방인의 구원은 그 전에 반드시 유대인들의 구원 자리에 궐이 나야합니다.

즉 구원의 빈자리가 생겨야 이방인이 그 자리를 대신 차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유대들이 자신이 구세주를 못알아보고 배척하는 일이 벌어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방인들 입장에서 구원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 없으면 안되는 일입니다.

그 많은 이방인 중에 누구는 구원하고 누구는 구원 안해주고는 결코 인간들의 자질이나 인품이나 품위나 성실도로 판정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예수님께서 은혜주기 나름입니다. 따라서 이방인들 중에 주의 이름을 부르러 자가 나타난다는 것은 사전에 주님께서 추방시킬 유대인들을 추방시킨 노력의 결과로 주어진 일입니다.

그러니까 아모스 9:11의 말씀 성취는 순전히 예수님께서 자기 숙제나 자기 맹세를 스스로 성취하시는 방식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인지 인간들이 예수님에게 뇌물주고 아부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구원의 은총입니까. 이 모든 섭리를 행사하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예수님의 솜씨에 경탄만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덧붙이는 말: 야고보의 저자가 누구며 사도행전 15장에 등장하는 팔레스틴 교회의 지도자가 누구냐 하는 점은, 알매오의 아들 야고보가 아니라 예수님의 육신적 동생 야고보라는 설이 우세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왠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사도로서 교회의 초석이 된다는 점(에베소서 2:20)을 부각하고 싶어서 알패오의 아들로 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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