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양식 190405
20190405a 울산강의-레위기 22장 : 거룩한 양식
(강의:이근호 목사)
레위기 22장 3절부터 보겠습니다. “그들에게 이르라 무릇 너의 대대 자손 중에 그 몸이 부정하고도 이스라엘 자손이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에 가까이 하는 자는 내 앞에서 끊어지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제사장의 지시에 의해서 성물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제사장에게 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드려요. 인간이 하나님께서 성물을 드린다는 것을 이렇게 생각하시면 쉽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일단 두 가지라면, 첫째, 하나님을 그린다. 하나님의 물건을 대한다.
하나님을 그린다와 하나님의 물건을 대한다, 어느 편이 인간들에게 기본적으로 원하는 바냐 하면, 하나님을 보고서 믿고 싶은 거예요. 그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그리는 거예요. 하나님의 물건을 대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얼굴은 모르겠고 하나님이 관여하는 어떤 사물이나 물체나 물건을 조물딱거리고 그것을 마주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돌아가셨다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살았다는 소식이 왔을 때 어머니가 이것이 아버지의 물건이고 아버지의 손수건이고, 이게 자식들에게 좋겠어요,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것이 확실하겠습니까? 아버지 얼굴을 직접 보는 게 확실하겠지요.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하나님의 얼굴을 그림으로 그려서(그걸 성화라 합니다) 보여줄 때 나름대로의 하나님을 상상하면서 마음속에 두겠지요.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옛날부터 종교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그리는 겁니다. 자태를 그리는 거예요.
이것이 뭐냐 하면,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는 쪽을 선호하고, 물건을 대하는 것보다 그리는 것을 더 확실하게 여기는 거예요. 왜 하나님을 그리고 싶냐 하면, 인간이 스스로 자기가 여기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자기 자신에게 하나님도 같이 존재해서 상대하고 싶은 거예요. 하나님의 얼굴을 그려놓고 그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 이런 식으로요. 고린도전서 13장에도 나오지요. 그때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이요.
그런데 하나님을 물건으로 대하게 되면, 하나님의 손수건, 하나님의 바짓가랑이, 이런 것 있잖아요. 그런 걸 대하면 이게 하나에 찬송 책처럼 밖에 안 되거든요. 얼굴은 못 보지만 물건이라도 만져서 약간은 더듬어 가는 식으로 하나님을 구성해보자는 식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직접 안 나타나시는 이유는, 인간은 하나님 만나면 죽게 돼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를 발생하는 그런 신체를 아담으로부터 부모로부터 부여받았기 때문에 태어나는 것 자체가 죄를 짓는 존재란 말입니다.
그럼 여기서 공식 하나 적어보겠습니다. 죄가 있는 자는 무조건 죽은 자이다. 이 공식입니다. 국무총리든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 새로 당선되든 강원도 고성에 산불 나서 집을 날리니 마니 상관없이 자기 펜션이 멀쩡하든 간에 죄가 있으면 죽은 자에요. 죽은 자에게는 산불 나고 화장하는 게 의미가 없습니다. 죽은 자기 때문에.
죽은 자가 시집가고 죽은 자가 장가가고 죽은 자가 사고팔고 먹고 마시고 죽은 자가 하는 모든 것은 이미 죄로 인하여 죽은 자에요. 죄가 있으니 죽은 자가 되는 겁니다. 너무나 명확한 공식이에요. 이 공식이.
그래서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자기가 죄 있다 해놓고 산 사람으로 행세하는 그 뻔뻔스러움은 도대체 누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요. 성경을 백독을 하고 천 독을 한들 뭐합니까? 성경에 기본도 안 됐는데.
기본은 뭐냐 하면, 죄가 있는 자는 이유가 있든 없든 간에 지금 지위가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가정주부든 집에 백수로 노는 사람이든 그건 무조건 죽은 자에요. 그래서 죄로 인하여 죽었다 했잖아요.
이게 논리가 어려운 게 아닙니다. 현실에 실감이 안 나서 그래요. 태어날 때부터 자기를 산 자라고 계속해서 자기가 우기고 남들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이왕 살아 있는 인간, 더 가치 있게 빛내봐라. 이런 식으로 옆에서 격려하고 위로하고 부추기니까 자기가 마치 멀쩡하게 살아 있다고 착각들을 하시는 거예요.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죄가 있는 자는 무조건 죽은 자에요. 놀러가든 집에서 잠을 자든 죽은 자로 잠을 자고 놀러가도 죽은 자로 놀러가요. 우리 상식으로는 죽은 자는 놀러 못 가고 죽은 자는 축구도 못한다 하지만 아니에요. 얼마든지 죽은 자도 국회의원 나갈 수 있고 보궐선거에 당선할 수도 있고 0.1%에 들어갈 수도 있고, 얼마든지 공무원시험에 지원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죄가 남아 있는 이상은 그 사람은 무조건 죽은 자에요. 그래서 확실한 공식으로부터 확실한 것을 뽑아내야 됩니다. 모호한 데서부터 뽑아내면 안 돼요. 확실한 데서 확실한 걸 뽑아내게 되면, 인간이 하는 일은 뭐냐? 하루 온 종일, 평생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자기가 지옥 만들기 하는 거예요. 미국 유학 갔다 왔는데, 지옥. 올림픽에서 금메달 땄는데 그것도 지옥 만들기.
왜냐하면 나 혼자 사는 동네가 지옥이에요.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잠을 자고 울고불고 나 자신의 행복, 내 가족의 행복, 내 직장의 번창, 내 교회의 부흥, 이게 전부 다 지옥이에요. 천국은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천국이에요. 지옥은 갈수록 내가 더욱 집요하게 되고 집착하게 되는 게 지옥입니다.
취직해서 뭐하고 있나? 열심히 직장생활 잘합니다. 그게 뭐냐? 내가 하는 재주는 뭐냐 하면, 지옥 만드는 재주 외에는 인간은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대구강의에서 그런 이야기했잖아요. 여자가 아기 낳고 젖을 줬다. 이게 나쁘냐? 그게 바로 지옥 만드는 행세에요. 지옥 만드는 모습이에요.
죄가 있는 것은 무조건 죽은 자요, 심판 저주받을 자요, 그 죄가 있는 사람이 하는 그것은 천국 만들기가 아니고, 천국 만들기는 주님이 하시고요, 인간이 하는 것은 지옥 만드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니까요. 열심히 연구하고 난 뒤에 쉬는 시간에 배 타고 도전한다고 노 열심히 젓고 지옥 가는 겁니다.
주특기 무엇입니까? 지옥 잘 만듭니다. 어떻게 만듭니까? 나에게 의미를 둡니다. 나에게만 모든 의미가 쏠리도록 그 일을 참 잘합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들였는데 우리 집안은 이러니까 너는 제사 제 때하고, 제사는 일 년에 열두 번밖에 안 되니까 잘하고 명절에 친척들 잘 섬기고. 그러면 되바라진 며느리가, “그래서요?” “그러면 우리 가문은 빛나지.” “어머니, 그게 바로 지옥입니다.”
모든 의미가 나에게 쏠린 그게 바로 지옥이에요. 지옥은 나로 인하여 행복을 얻고 나뿐인 세계, 나만의 세계. 인간이 태어나서 할 수 있는 재주는 지옥 만드는 것 외에는 아무 재주가 없어요. 그런 인간이 하나님 보고 싶어서 하나님을 그리고 싶은 거예요. 성화라 하지요. 거룩한 그림을 그리고 싶은 거예요.
그러나 오늘 본문 레위기 22장에서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얼굴이 아닙니다. 이게 어디서 낯짝을 나한테 들이대, 죽어. 그래서 얼굴이라는 것은 하나님 만난 모세도 하나님을 얼굴을 못 봤어요. 뒤로 주님께서 지나가도록 등을 돌려야 돼요. 얼굴을 보면 안 돼요. 죽어요. 죄가 있기 때문에 그래요.
지금 하나님께선 죄가 있는 인간은 백성 만들기 위해서 그 죄를 없애주는 일을 하시는 겁니다. 그 일을 하려면 먼저 우리에게 죄가 있고 이 죄가 우리 몸을 통해서 날마다 발산되고 있음을 인정해줘야 됩니다. 그리고 발산되는 그 죄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저주의 대상으로 심판의 대상으로 계속 열심히 추진해 나가는 거예요.
어떤 분의 메일에 답장을 이렇게 했어요. 지옥 가는 이 세상 사람들 가련하고 측은하게 여겨야 됩니다. 왜? 실컷 고생하는 데 그 고생이 지옥 가려고 고생하는 거예요. 아침 여섯 시에 출근해서 열 시에 퇴근하는 데 그 모든 일이 뭐냐?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지옥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생 힘들게 살아가면서 그 결과는 또 힘들게 지옥 가야 돼요. 살아서도 낙을 못 보고 죽어서도 낙을 못 보고. 인간의 선택지는 오직 그것밖에 없습니다. 나로 하여금 지옥 가게 하는 그 행위 외에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열심히 살아요, 하여튼. 알뜰하게 살고 가계부 쓰고 쿠폰 다 모으고 뭔가 열심히 사는데 지옥이에요. 이 땅에 열심히 산다고 낙도 못 누리고 죽어서도 지옥 가도 낙도 못 누리고. 바보 아니에요? 바보 등신 같아요. 지옥 가는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문제는 소위 복음을 안다는 신자가 그들을 부러워한다는 거예요. 그 딴 걸 왜 부러워합니까? 지옥 가는 게 그렇게 부러워요? 목사님, 그러면 우리가 방향을 틀어야 되지 않습니까? 방향을 틀어야지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기 때문에 방향 틀어야 돼요. 그런데 방향 틀어서 천국 간다는 객관적 근거가 어디 있습니까, 라고 물으신다면 쉬운 예를 들겠습니다.
만약에 희한한 버스가 있는데 그 버스는 빈 차에요. 운전사는 하나님이 보낸 천사고, 천사가 버스 운전하면서 어떤 사람을 태우느냐 하면, 천국 갈 사람들만 태우는 버스를 하나님이 운행한다고 봅시다. 버스 번호가 1004번이에요. 천사가 운전하니까.
거기에는 귀신만 태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