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47강(과거체험), 마태복음 109강(목숨없음) 190326
과거 체험 (삼상 16:2-3)
대전-47강 이근호
2019년 3월 26일
본문말씀: 사무엘상 16장 2-3 절
(삼상 16:2) 사무엘이 이르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삼상 16:3)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네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삼상 16:4)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이르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삼상 16:5) 이르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성결하게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삼상 16: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삼상 16:8)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
(삼상 16:9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삼상 16:10)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삼상 16:11 )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삼상 16: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사무엘 상 16장 2절부터 3절까지 봅시다. 사무엘이 선지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 사울 왕 쪽 권력이 많지요. 사무엘이 걱정하고 있는 것이 눈치를 보고 있는 거에요. 만약에 사울의 의견과 달라진다면 단순히 사무엘이 쫓겨나는 정도가 아니라 죽임을 당하겠지요. 왜 그러냐하면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권력을 유지하려는 본능이 있어요. 자기 권력에 누수가 생기면 통치가 어렵습니다. 권력 있는 사람들은 남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통제하려면 무엇이 성립돼야 하냐 하면 내 것이 따로 있다고 여길 때만 통제가 되는 겁니다. 만약에 가족이 다섯 명이다. 아버지가 가장 노릇한다고 딸에게 일찍 들어오라고 하는 것을 통제라 하지요. 이렇게 통제하는 이유가 이 가정은 누구의 소유라고 여깁니까? 내 책임하의 내 소유라고 여기기 때문에 권력을 행사하는 거에요. 다른 사람은 이 통제와 통치에 계속 길들여지게 되면 누가 자기에게 명령하는 것을 당연시 여깁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계시고 성도가 있다면 성도는 분명히 신약 성경에 성령을 통해 하나님께 통해서 지시 받고 결정하게 되어 있어요. 제 말이 잘못된 말입니까? 잘못된 말이 아니지요. 왜냐하면 요한 1서 2장에 나오니까요. 27절에 보면 기름 부음이란 성령을 말하거든요. 성령이 없는 사람은 통제를 받으세요. 성령이 어차피 없다면 통치를 받으세요. 만약에 성령을 받았다면 누구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팔요 없지요.
(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왜냐하면 가르치는 분이 따로 있기 때문에 선생님이 두 사람이 필요하지 않지 않습니까? 늘 주님이 가르친다면 가르친 대로 살 수 밖에 없어요. 왜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셨냐 하면 사람들이 넓은 길로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렀습니다. 넓은 길이란 것은 예수님이 가신 길과 대조기 되는 것이에요. 고난 받아도 넓은 길이 되는 이유가 십자가에서 자기를 부인 하지 않는 것은 전부 넓은 길이 되는 겁니다.
아무리 주를 위해 고생하고 주를 사랑한다 할지라도 그 사랑하는 것 마저 부인 되야 되요. 천국 가는 길이 자기를 부인해야 된다는 것은 부인 할 것이 따로 있고 부인 안 해도 되게 남겨 놓을 게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전부 부인해야 되요. 왜냐하면 죄를 이야기 해주는 십자가이기 때문에 그래요.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을 이야기 해 드리겠습니다. 나쁜 소식은 우리가 뭐를 해도 죄가 된다는 것이고 좋은 소식은 죄를 통한 사람만이 구원된다는 것이에요.
나쁜 소식을 경유하지 않으면 좋은 소식에 들어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예를 들면 발람 선지자가 있었지요. 발람 선지자에게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우선 나쁜 소식은 나귀를 탔는데 전진을 안 하는 것이고 좋은 소식은 천사가 와서 자기와 상관한다는 것, 천사가 직접 자기를 다룬다는 게 보통 기쁜 소식이 아닙니다. 시시하게 사람과 상대하다니요. 사람과 상대 안하면 절에 가나 교회에 가나 마찬가지에요. 안 가도 마찬가지에요.
어차피 절에 가도 사람과 상대하고 교회에 가도 사람과 상대해야 하고 절이나 교회에 안가도 친구나 동창생하고 상대해도 사람하고 상대하는 거니까 똑같다는 말이죠. 가장 기쁜 소식은 가장 나쁜 소식 속에서 비로소 발견되게 되어 있어요. 오늘 본문 사무엘상에서 사무엘이 자기가 선지자라는 신분 자체를 굉장히 후회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 같았으면 어디 가서 제사장 정도면 묻지도 않아요. 선지자 되었다는 그 이유 때문에 누구의 공격 대상이 되냐 하면 사울 왕의 표적이 되는 겁니다.
사울 왕의 입장에선 사무엘이라 할지라도 너는 내 통치하의 사람이라 보는 거에요. 그래서 내 뜻에 위반하면 죽여 버린다는 겁니다. 본문 내용에도 나오잖아요. 나를 죽이리이다 라고 집에서 도 닦는 게 복음이 아니에요. 복음은 뭐를 남기냐 하면 복음의 현장을 유발시킵니다. 복음은 현장성을 줘요. 이런 말이 참 어려운 거에요. 어떤 현장에서 우리가 복음대로 살자! 이건 틀린 말입니다. 복음이 먼저 있고 그 복음에 합당한 현장이 추후적으로 만들어 져요.
더 알기 쉽게 말해서 복음이 먼저 있고 나중에 성도가 생기는 겁니다. 사람이 먼저이고 구원받으려고 복음이 나중에 있는 것이 아니고 창세전부터 복음이 먼저 있고 그 복음에 합당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요. 없는데 복음의 위력으로 만들어 지는 거에요. 우리가 복음의 공로자가 아닙니다. 아무리 주를 사랑하고 공로자가 아니고 수해자에요. 혜택을 입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혜택을 입었을 뿐이에요. 그 혜택이 어떤 것인지 아는 것은 복음의 현장화가 될 때
새로운 케이스 경우 또는 현장을 만들을 때 그 순간 아하! 나는 까불락 까불락 나설 위인이 못 된다는 사실이에요. 내가 나서서 내 구원이 성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복음의 현장에 있다 아니다를 어떻게 알아요. 복음의 현장에 특징이 뭐냐하면 반드시 세상에 내 것이라고 쏟아내는 권력의 압박감이 현실 적으로 다가 올 때 복음 속에 있는 겁니다. 권력이란 이 세상에서 뭐냐 하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최종적인 기준이 되요. 회사에서 권력의 판단 기준이 뭡니까?
네가 얼마나 믿음이 좋고 착실하냐 효자이냐를 묻는 게 아니고 돈 벌어주면 그 기업에서는 권력에 부합한 사람이고 돈 못 벌고 그 만큼 생산성을 못 내면 사표내고 나가야 할 악한 사람이에요. 기업 자체에 권력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면 교회는 뭐로 가득 차 있습니까? 교회 자체도 권력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이죠. 너의 발언과 행동이 교회가 커지는데 도움이 되는 지를 한번 생각해 봐라! 도움이 된다면 무조건 선이고 도움이 안 된다면 악인 거에요. 왜냐하면 교회는 자기꺼니까.
문제가 뭐냐하면 내 것이 따로 있다가 화근이에요. 인간은 내가 있는 이상 내 것이 확장되고 커지게 되어 있어요. 어떤 사람이 자기 강아지를 만지면 주인은 화가 날 거에요. 내 것에는 강아지까지 확장되어 있으니까 그것 건드리면, 내 소유물을 건드리면 곧 누굴 건드린 것이다? 나를 건드린 거에요. 옛날에 임금님은 자기의 그림자만 밟아도 죽여버렸어요. 자아가 자기 그림자까지 확장되어 있어요. 이 세상 구조는 텅텅 비어 있는 게 아니에요. 보이지 않는 레이저 같이 쏘아대는 촘촘한 망 속에 우리가 놓여있는 겁니다.
인간이 갖고 있는 것은 몸 둥아리 밖에 없어요. 그런데 세상이 요구하는 것은 너라는 것을 요구한다고요. 너는 몸이 아니에요. 너는 몸에서 세상에 촘촘한 권력 망에 한 지점으로 있을 때 비로소 남들 앞에서 너가 되고 그들 앞에서는 나는 나가 되는 거에요. 자기 몸이 아파서 자살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몸은 멀쩡하고 하루 세끼 먹을 수 있는데 자살하는 사람은 뭡니까? 그것은 몸이 아파서가 아니라 자아가 아파서 그래요. 자아 자체가 악마가 심어준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바이러스라 했는데
인간은 근원적으로 병들은 거에요. 너도 환자이지만 나도 환자에요. 전부 다 환자뿐이에요. 선악을 안다는 자체가 주님 보시기에 모두 환자에요. 먹지 말아야 될 독 사과, 독약을 먹은 거에요. 농약 마신 것처럼 농약에 취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