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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90311b 부산강의 : [시편]17(10편)-악인의 발생자유게시판시편

20190311b 부산강의 : [시편]17(10편)-악인의 발생
(강의:이근호 목사)

첫째 시간에서는 이 세상 형편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악인들이 설친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을 위해서 버티고 있다. 언약의 문제는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주신 분이 처리를 해야지 이스라엘 형편은 인간이 해결할 없다는 거예요.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구약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국가 내의 문제란 사실을 생각해야 돼요. 이스라엘은 장차올 교회의 시범 공동체기 때문에 죄인들을 모아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 언약이란 일종의 본드 같은데 죄인들을 모아서 하나님 자신과 합세가 과연 가능할까? 이스라엘이 이걸 실험하는 실험실이에요.

죄인들은 곱상한 사람들이 아니죠. 죄인들에겐 죄가 나오겠지요. 그래서 시편 해석할 때 이게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게 뭐냐 하면, 의인들은 그냥 무상으로 구원받은 줄 알면 안 돼요. 구약 해석할 때 의인들의 등장하잖아요. 의인이기 때문에 그냥 무상으로 하나님과 함께 있다고 생각하시면 해석 잘못된 겁니다.

분명히 제가 그랬어요. 죄인들+하나님 자신이라 했습니다. 죄인들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만들 때 유월절이니까 어린양의 피를 바르지요. 피는 극단적 조치입니다. 최후의 조치에요. 저쪽의 어떤 행함도 안 받고 나의 행함이라도 너를 구원하지 못하고 구원하시는 분의 뭘 제공한다는 거예요? 내 살과 내 피를 먹고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영생이 없다. 요한복음 6장 53절 말씀처럼 그걸 그대로 앞당겨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행위가 뭐냐 하면, 우리 인간들 보기에 극단적이에요. 도 아니면 모다. 어중간한 것 없어요. 다 이루었다 하면 다 이룬 것이지 거기에 뭘 보탠다, 믿음으로 됐지만 행함으로 보태고, 이런 것 없습니다. 극단적이란 말은 최종적이란 말이에요. 최종적과 같은 말이 결정적이다. 결정적 세계에 공통점이 있어요. 뭐냐 하면, 이것만 반복하면 된다.

이것만 반복하니까 완료성이라 할 수 있어요. 십자가 사건 이후에도 십자가만 계속 되는 거예요. 에베소서 2장 7절에 보면, 너희가 하늘에 앉혔다고 돼있지요. 완료성이잖아요. 앉을 것이다가 아니라 앉혔다. 성령이 임하면 이미 하늘에 앉힌 거예요. 완료성이에요. 언약이에요.

아까 제가 이야기한대로 의인이라고 그냥 무상으로 들어가는 게 아닙니다. 죄인으로 해서 결정적으로 하나님과 함께 한다면 여기서 나오는 것은 의인은 없는 거예요. 의인은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있는 효과 또는 효력으로 없던 의인이 발생되는 겁니다. 따라서 인간이 돼서 나 죄인 안 하고 의인 할래, 라는 그러한 선택 권리는 인간에게 없습니다. 모두 다 죄인에 집어넣어야 돼요.

죄인으로 집어넣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죄인으로서는 나올 수 없는 의가 나와서 그 의로 말미암아 죄인이 구원받는다고 시편에 나와 있습니다. 애굽의 말과 병거로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뭐로 구원한다고 돼있어요? 하나님의 의로 구원한다 했지요. 시편에 여러 군데 나와요. 그냥 하나님의 의로 구원하면 되는데 앞에 애굽의 병거와 말을 왜 집어넣습니까? 이스라엘이 그걸 원했기 때문에. 원하는 그게 바로 죄라고 보는 거예요. 이스라엘 자체적으로 살아보려고 애쓰는 그것이 바로 죄가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논리를 따르면 이렇게 되지요. 이스라엘 입장에선 죄인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보통 사람으로 들어가죠. 사람으로 들어갔는데 하나님이 언약으로 해보니까 이 사람이, 사람이 아니고 뭐로 달라져야 돼요? 죄인이 되고 의인은 하나도 없이 돼야 되고 주께서 계속 함으로써 죄인밖에 없어야 되는데 희한하게 의인이 발생되고.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의 결과물로 의인이 나오고 그 의인이 하나님과 함께 있는 효과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의인의 나라가 돼야 된다는 것을 지향한다. 그걸 바라보는 그런 나라인 거예요. 온전한 나라는 아닙니다. 지금 어딜 가야 돼요. 신약으로 달려가야 됩니다. 완전한 의인의 나라로 지향해야 되는 거예요.

그럼 이 논리에 방금 제가 두 가지를 제시했는데 하나는 뭐냐 하면, 자기가 죄인이라고 아는 죄인은 있다, 없다? 없다. 자기가 의인이라고 여기는 의인은 있다, 없다? 없다. 결국 죄인이나 의인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이 개입하기 전에는 인간의 아이디어에 의해서는 그게 나올 수 없는 거예요.

인간에게 선악이 있지요. 선악은 항상, 여러분 지식이 있으면 간직합니까, 판단합니까? 지식은 판단하지요. 아까 먹었던 빵이 굉장히 맛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제일 빵을 잘 만드는 제빵사 앞에서 맛있다 하면 그 빵은 재료를 뭘 넣었고 뭐가 문제고 반죽을 숙성을 몇 시간 안 했기 때문에 빵 맛이 없다고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절대적인 표준이 없는 한 우리는 내가 맛있으면 맛있는 게 되고 내가 잘했으면 그냥 나는 선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거예요. 이건 뭐냐 하면, 동행하지 않고 인간들 단체가 돼버리면 서로가 서로를 비교하기 때문에 얼추 그 정도하면 넘어가자는 쪽이 돼버려요. 절대적 기준이 아니고. 그래서 인간은 절대적으로 자기 죄를 모릅니다. 그리고 인간은 절대적으로 자기 의를 모릅니다.

그때그때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십자가 기준으로 봤을 때 사람을 백 명 죽여도 절대적인 의인이 돼요. 창기가 남자를 천 명을 상대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절대적인 의가 되는 겁니다. 이것은 우리에게서 나올 수 없는 인식이에요. 정말 하나님이 갖고 있는 인식이지 우리에게 나올 수 없는 인식이에요.

그러면 그 의를 소지할 수 있느냐? 소지하는 용도가 의가 아닙니다. 의를 위해서 우리가 오히려 소지당하죠. 선악은 내가 소지하고 있는 입장이지만 하나님이 준비한 의와 죄는 우리가 소지하는 것이 아니고 그 의와 죄의 기능을 발휘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게 바로 언약 안에 방주 안에 있는 자의 특징입니다.

일단 그렇게 정리해봅시다. 두 번째 시간엔 뭘 하느냐 하면, 현재 형편은 이렇다. 악인들이 설친다.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이 세상은 악인이 없어야 되는데 등장했다. 이게 첫 번째 이야기라면 두 번째 시간에는 어떻게 이걸 처리할 것이냐? 어떻게 악인을 처리할 것이냐의 문제에요. 미리 한 번 봅시다.

18절 누가 읽어볼까요, 다른 분이. “고아와 압박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로 다시는 위협치 못하게 하시리이다” 여기 심판 나오지요. 심판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고아와 압제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한다고 돼있어요.

심판이란 말을 우리가 너무 흔하게 듣다보니까 식상해하는데 무슨 느낌인지 안 오지만 이걸 이렇게 봅시다. 소제한다, 청소하는 것, 제거하는 거예요. 어디서 제거하느냐? 제가 아까 강의할 때 이스라엘로 국한해서 봅시다. 이스라엘에서 그 자를 내보내는 거예요. 성경의 이런 생각이 우리 생각과 너무 다른 거예요.

우리 생각은 내 중심이기 때문에 내가 여기 있어요. 내가 인생 살다가 죽습니다. 죽으면 갈 곳이 두 군데에요. 하나는 지옥이고 하나는 천국이죠. 그러면 우리 입장에선 지옥에 들어간다고 돼있지요. 그리고 천국에 들어 간다가 되지요. 그런데 언약에 이미 앉은 사람은 뭡니까? 만들어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신약의 문제에요.

구약에서는 천국을 만드는 중입니다. 진행형이에요. 어떻게 만드는가? 있을 자격도 없고 있을 수도 없고 있을 필요도 없는 것을 어떻게 한다? 내보내는 식이에요. 구심점은 언약입니다. 언약을 모르는 자는 내보내야 되는 거예요. 내보낸다는 말은 이곳은 내가 포기 못한다는 뜻이겠지요. 집주인이 와서 세든 사람을 내보낼 때 그 말은 뭡니까? 이 집은 내가 주인인 것을 포기 못한다, 나가라.

시편에서는 나가라가 되고 신약에서는 들어 가라가 되는 거예요. 특히 이방인들에게는. 이방인들은 언약도 없고 율법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따라서 천국 간다면 하나님이 언약 중심으로 만든 이스라엘 중심으로 만든 그 나라에 합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돌 감람나무가 참 감람나무 되는 것은 접붙임 외에는 없어요. 하나님의 계획은 이스라엘을 포기한 게 아니에요. 끝까지 이스라엘을 본부로 삼아요.

본부로 삼고 이스라엘 가운데 이스라엘에 부합되지 않는 것은 내쫓아버리고. 그리고 이스라엘 밖에 있는 사람을 안에 들여보내는 방식으로 천국을 구성한 겁니다. 하늘나라를 만든 거예요. 내쫓고, 내쫓고 할 때 안 내쫓긴 사람을 뭐라고 이야기하겠습니까? 오늘 제목으로 정할까? 남은 자. 로마서 9장 27절에 나오는 말씀이죠. 남은 자 개념이에요.

남은 자 개념이 마태복음에도 나와요. 두 사람이 쟁기로 밭을 갈고 있다가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두고 하죠. 남은 자 개념에 누가 받느냐는 개인구원은 위험천만한 발상입니다. 저는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교회가 왜 교회답지 못하는가? 개인구원 때문에 그래요. 애초에 그런 건 없어요. 주께서 우리와 거래하질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죽은 자기 때문에 죽은 자에서 만들어낸 범죄자기 때문에 범죄자에게서 나오는 모든 죄, 천국, 영생, 구원, 예수, 삼위일체, 모든 개념이 죄 개념이에요. 개인구원 사적인 욕망과 결부된 개념이라니까.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방인 구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유대인 되면 몰라도. 봐주는 식으로. 왜냐하면 그들은 개인 위주에요. 그 사회가. 자기만 살면 그만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유대사회에선 이스라엘을 위한 예정론, 선택론이 있는 거예요. 캘빈이 그래서 실패한 거죠. 개인구원용 예정론을 주장한 거예요.

창세전에 당신은 구원받기로 작정했습니다. 성경에 그런 것 없어요. 성경에 나오는 것은 창세전에 예수 안이죠. 예수 안에선 인간은 없어요. 개인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 개인을 대표하기 때문에.

그게 뭐냐 하면, 이름이에요. 이름이라 하는 것은 존재를 의미하는데 이쪽 이름을 지워진다는 것은 존재에 대한 말살을 의미해요. 어떤 키운다는 것은 그 존재를 인정한다는 겁니다. 다른 이름으로 구원을 줍니까, 안 줍니까? 다른 이름이 없다는 말은 다른 존재는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개인 존재는 구원의 대상이 안 됩니다.

그리스도만 구원의 대상이고 그리스도 몸의 확대를 통해서 지체의 자격으로만 우리가 구원이 되는 거예요. 그리스도의 몸을 구약 출애굽기에서 아들이라고 해요. 아들이 하나가 아니에요. 이스라엘이 아들이니까. 출애굽기 4장 22, 23절. 이스라엘은 내 아들이라 했거든요. 우리가 생각하는 아들은 개체를 생각해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언약적으로 개체를 아들이라 하지 않고 집단을 아들로 본 거예요.

그 집단은 조건이 있어요. 언약에 부합되는 조건이에요. 그래서 아들이라 해놓고 모세가 할례를 행하지 않으니까 모세를 죽이려고 했잖아요. 없애겠다. 언약은 살리고 너는 죽이고. 십보라가 아주 훌륭한 부인이 됐어요. 남편 살리는 방식이 남편에게 보약이라든지 비타민C 이런 것 주는 게 아니고 언약으로 해놓고 언약에는 피가 나오지요. 할례 한 피를 제시했을 때 그 피 보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살려줬습니다.

그때 십보라가 하는 말이, 당신은 내 남편 될 사람이 아니고 피를 증거 할 피 남편 돼야 된다. 의미심장한 이야기죠. 하나님께서 왜 그런 일방적 고집을 부리시냐 하면, 이 세상에 의인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그래요. 죄를 어떻게 조치해서 거룩한 그야말로 죄인은 근처도 못 가는 천국에 어떻게 집어넣을 것이냐는 그 고심.

그 고심책이 뭐냐? 자기 아들을 피 속에 합류하는 거예요. 예수님의 죽음에 합류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를 위해서 죽으면 되지 않느냐? 주를 위해 죽는다고 구원되는 게 아니에요. 성경해석하면서 우리가 이제는 너무 기복신앙하지 말고 예수를 위해서 죽읍시다, 하는데 그 해석 잘못된 거예요. 예수를 위해 죽을 위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도 하나의 시험이에요. 마귀의 시험 같아요. 채찍질하고 자기를 매질하는 거예요. 자기를 학대하는 거예요. 낮추고 더 낮추기. 그것 무슨 짓이에요. 도 닦는 거예요? 그런 짓하면 안 돼요. 알아서 하시면 된다. 그런 마음 가지면 되는 거예요. 어차피 내가 못하는 것을 인정하는 그것이 성령 받은 사람이에요. 자기 일이 아니잖아요. 주의 일이지.

우리는 특히 이방인이잖아요. 이방인이 뭘 해요. 자기 해당되지도 않는데 남의 시험에 왜 칩니까? 그건 이스라엘 보고 치라 하세요. 우린 시험 안 치르고 무시험 합격이에요. 이런 복이 어디 있어요. 티오가 차서.

여기서 제가 강조하는 것은 남은 자를 제거할 때 누가 남았다. 개인적으로 넌 안 됐다. 난 살아남았다. 이러지 말고 개인구원 논리로 하는 게 아니고 그걸 잘라낼 때 뭐로 잘라내느냐 하는 겁니다. 그 자르는 작업이 언약이에요. 자르는 작업에서 발생되는 것이 고아와 과부에요. 그리고 가난한 자.

고아 예를 들어봅시다. 오늘 여러 번 나오기 때문에. 부모가 없는 사람을 고아라고 합니다. 특히 고아라고 할 때 성년 된 사람이 아니라 어린아이를 고아라고 하지요. 그리고 고아의 특징은 뭡니까? 부모가 없기 때문에 자기를 돌볼 사람이 없겠지요. 그럼 유력한 집안의 양자로 팔려가든지, 보아스 나오미 가정을 챙겼잖아요.

이스라엘 법에 그러한 조항이 있어요. 그걸 고엘법이라 해요. 약자보호법이라 해서. 누가 건사를 해줘야 된단 말이죠. 왜 고아와 과부를 건사해야 되느냐 하면, 이게 땅 문제 때문에 그래요. 원래 이스라엘 땅은 여호수아에 보게 되면 땅은 자기 소유가 될 수 없어요. 약속의 땅은. 소유는 옛날 가나안 땅 토착민들이나 하라 하세요. 이스라엘이 정복해서 열두 지파에 땅 분배했을 때 열두 지파 자기 소유 아닙니다.

거기에 전부 다 파견나간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레위 지파에 속한 사람이에요. 이 땅이 유지가 되려면 레위언약, 모세언약이죠. 모세언약의 실효성이 계속 유지되는 한 땅을 임대차계약용으로 쓸 수가 있어요. 임대차계약금이 십일조라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영원한 땅 주인이고 그들은 품꾼이에요.

그러면 십일조를 내야 되는데 십일조를 낼만큼 풍성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이 되겠지요. 그런데 주님의 조건은 뭐냐 하면, 이 땅이 풍성하냐, 풍성하지 않느냐는 것은 너희들이 이 계약조건에 관심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저절로 풍성하게 젖과 꿀이 흐르도록 내가 조치를 하겠다는 거예요.

말은 쉬워요. 믿을 사람이 없어요. 말은 쉬운데 내 노동력이 제공되지 않았는데 결과가 나온다? 믿을 사람 없습니다. 그것을 분명히 하고 훈련시키기 위해서, 훈련이란 말은 어폐가 있지만, 그것을 각인시키기 위해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무슨 경험을 하게 했느냐 하면, 내 노동력과 무관하게 생존되는 환경을 제공했는데 그 환경이 뭐냐? 광야입니다.

광야에서 주께서 일부러 뺑뺑이 돌렸는데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뭐였습니까? 하늘에서 뭐가 내려와요? 만나지요. 만나가 요한복음 6장에 뭐라고 돼 있느냐 하면, 만나를 예수님께서 나의 떡이라 했어요. 내가 곧 만나에요. 내가 생명의 떡이에요. 예수님이 떡을 주니까 사람들이 떡으로 알았던 거예요. 주님이 주는 떡에 관심이 있었지 주시는 분엔 관심이 없었어요. 그들은 뭐냐? 떡을 주는 조건 하에서만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용의가 돼있는 거예요.

아까 제가 했잖아요. 인간은 체험한다고요. 인간의 체험은 뭐냐 하면, 내가 사는데 무엇이 실익이 있고 유익이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체험해서 자리 나름대로의 간증거리가 있어요. 주님한테 잘 보이는 나한테 살 것이 온다. 이게 생존 생계도 문제지만 더 나가면 개인구원과 관련돼있어요. 주께서 나를 구원해주시기 때문에 믿을 용의가 돼있습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이건 기독교가 아니고 무당종교입니다.

주님은 그런 식으로 자기 자신을 증거 하라고 성령을 준 적이 없어요. 성령 받게 되면 주의 일을 하겠지. 그것도 잘못된 생각이에요. 주의 일하라고 성령을 준 제 아닙니다. 내가 내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성령 준 게 아니에요. 주님은 나한테 관심 없어요. 죽을 인간한테 관심 둘 이유 없어요. 주님은 죽을 인간이 나한테 와서 어떻게 나를 증거 하는가, 예수님은 자기 자신에게 관심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오죽했으면 자기를 부인하고 따르라 했습니까. 그 떡 먹던 사람들이 오니까 물었지요. 답변을 안 해요. 네가 나를 따르는 이유를 내가 안다.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다. 다시 말해서 나한테 이분이 있으면 실익이 있다고 생각하고 나를 따라왔다. 그러나 너희들은 떡을 달라는 것이 하나님 일이라고 자꾸 믿고 싶은데 그건 떡에 관심 있기 때문에 그렇다. 진짜 하나님 일을 이야기해줄까? 하나님 일은 뭐냐? 나를 믿는 것이다.

그들이 듣고 뭐라고 하느냐? 믿지요, 뭐. 떡 주는데 못 믿을 게 뭐가 있습니까. 그 사람들 어디서 다 떠났습니까? 무슨 이야기에 다 떠났어요? 그렇지요. 내 살을 먹지 않고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한 자는 다 떠나요. 다 떠났다고 돼있지 않고 함께 다닌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돼있어요. 그 많은 사람이 다 가버렸어요.

너도 갈래? 제자들 보고 이야기했지요. 예수님 이야기했습니다. 새로운 공식을 떠난 상태에서 보낸 상태에서 이야기합니다. 선택 이야기에요. 너희를 위해서 내가 너희를 선택한 건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보내신 자, 그러니까 아버지와 아들의 일을 증거 하라고 너희를 나한테 붙여준 사람 외에는 내가 다 잘라낼 거야.

개인구원용 같으면 누가 예수님 곁에 붙여있으면 안 되는 겁니까? 그렇지요. 가룟 유다가 붙어있으면 안 되는 거예요. 가룟 유다가 왜 붙어 있었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할 선택이기 때문에. 이제 캘빈이 뭐가 잘못됐는지 알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한 선택인데 캘빈은 기존 천주교를 의식해서 새로운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 성경에 보면 창세전에 여러분들이 구원받기로 돼있다. 이래 된 거예요. 개혁신학에 그게 포함이 돼버렸어요.

개인구원, 자기 구원받기 위해서 캘빈신학이 더 우수한 신학이라고 덤벼든 거죠. 실익이 있으니까. 그 신학 붙들고 살려고 하는 거예요. 의도 자체가 살려고 하는 거예요. 죽으려고 하는 게 아니고. 죽으려고 사는 게 아니고 죽는 척해서 살아보려는 거예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조치를 취했느냐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때 제가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다시 해봅시다. 이스라엘이 다윗 때 두 종류의 이스라엘로, 하나는 사울의 이스라엘과 다윗의 이스라엘입니다. 현재 사울의 이스라엘, 하늘에 태양이 둘이 없듯이 나라의 왕도 둘이 될 수 없겠지요.

성경을 보는 사람은 한가하게 생각합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으면 사울이 알아서 졌다 하든지, 왜냐하면 골리앗을 자기가 못 이겼잖아요. 하나님 나라 전쟁을 자기가 못했잖아요. 그러면 순수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나가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세상의 정치판이 그렇지 않지요.

우리는 어디서 초점을 맞추느냐 하면, 왜 사울은 자기가 왕이 안 됐음을 인정 못하는 이유가 뭐냐를 우리가 집중해서 봐야 돼요. 왜냐하면 그 사울의 모습이 우리 모습이기 때문에 그래요. 사울은 왜 권력을 내놓길 싫어했습니까? 이거에요. 자기 존재성을 위하여 나라도 있고 백성도 있어요.

처음에 사울은 나 같은 것이 어떻게 왕이 될 수 있습니까? 잘 생기고 키 크고 허우대는 좋다마는 나 같은 인간은 찾지 말라고 숨었어요. 굉장히 겸손하죠. 왕 되기 전에 사울은 겸손했어요. 그러나 누가 겸손하지 않느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겸손하지 않아요. 우리에게도 왕이 필요하다고 했고 하나님은 그걸 허락해서 기어이 사울을 왕으로 뽑은 것이 아니고 백성의 본심, 욕구 욕망의 대변자로 사울을 뽑은 거예요. 이것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홍준표, 나는 대권 도전 안 한다. 유시민도 안 나온다. 선언했지요. 만약에 여론조사에서 홍준표가 70% 됐고 유시민은 한 60% 된다면 내 뜻은 아니지만 국민의 뜻이라면 국민을 위해서 봉사하겠습니다. 나올 수 있어요, 없어요? 나올 가능성이 있지요. 사울은 헛방 허수아비에요. 사울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당시 이스라엘 전체 신앙상태가 얼마나 개판인지 대변해서 보여주는 인물이 누구다? 사울인 거예요.

사울은 누구 눈치 보는 거예요? 백성들 눈치 보는 겁니다. 아말렉 군대가 쳐들어왔는데 분명히 제사지내자고 사무엘과 약속이 돼있거든요. 약속시간을 누가 어겼느냐 하면 사무엘이 어겼어요. 적들은 점점 더 사기가 높아지고 이쪽 이스라엘 군대는 사기가 떨어져 기죽어있습니다. 누가 초조합니까? 사울이 초조하지요.

선지자 없는데 제사 드려, 말아? 에라 모르겠다. 백성들 사기를 고려해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백성들 눈치를 봐서. 딱 드리고 난 뒤에 까꿍하고 누가 등장했습니까? 사무엘이 등장했지요. 뭐라고 했습니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진즉 이야기하지. 약속을 누가 어겼습니까? 사울이 약속 어기고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얼마나 선지자를 존경하고 존중하는 데요. 떠나는 사무엘 옷을 붙잡을 정도로 겸손한 사람인데요.

백날 겸손하면 뭐합니까? 저쪽 백성들의 권력이 더 의식되는데, 살아 있는 사람들의 존재들이 더 의식되는데. 결국 사울이란 존재는 백성들 존재의 모자이크의 작은 조각에 불과한 거예요. 꼭 오늘날 우리를 닮았어요. 목사님, 우릴 너무 개무시하지 마세요, 라고 하는데 우리는 어지간한 경우를 미리 생각해서 까짓 것 내 목숨 달아나도 하겠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천하장사라도 의식 안 할 수 없는 일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자식입니다. 제가 어제 오후 설교 때 그런 이야기했지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믿음 시험할 때 적들을 치라 했습니까? 세상에서 벗어나라, 그런 것 했습니까? 그런 것 까짓 것 하지요. 어디 산에 가서 양 잡고 제사 지내라. 양 두 마리, 세 마리 잡겠지요.

뭘 잡으라 했습니까? 그것도 미운 자식입니까? 마약하고 술 먹다 벤츠 타고 사람 죽인 그런 자식이에요? 어떤 자식이에요? 사랑하는 자식을 잡아요. 야곱이 어느 자식을 잃어버렸습니까? 사랑하는 요셉을 죽였잖아요. 그게 언약 안에 살아 있다고요. 모든 언약은 그 기준에 의해서 남은 자 되고 남은 자 잘리고 천국에서 내보는 바로 그 기준이에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기준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다고 천당 가는 게 아니에요. 예수 믿는 것도 하나의 핑계에요. 믿음 없음을 커버하는 핑계에 지나지 않아요. 주께서 직접 손대야 돼요. 가장 귀한 것을 잘라내는 그러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니까 그 나물에 그 밥이니까 그 믿음으로 구원받는 거예요. 믿음의 조상에게 일어났던 그 일을 그대로 우리에게 적용시키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얘 하나 잡아야 됩니까? 부엌에 가서 칼 갈아야 되겠네. 오늘 잡자. 오늘 너, 죽었다. 좋다. 아빠는 이기주의다. 나 잡아서 천당 가서 좋겠네. 잡을까요? 안 잡아도 돼요. 왜냐하면 새 언약은 이미 잡은 걸로 간주해서 그에 대한 모든 혜택, 잡음으로 인한 모든 혜택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기 그 앞에서 우리는 내가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을 정말 기쁨으로 또는 슬픔으로 또는 참담한 자기 모습으로 슬프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안 해도 된다는 이게 얼마나 큰 부여된 자유냐 말이죠. 이 자유를 만끽하는 즐거움으로 우리는 주의 증인으로 살면 되는 거예요.

다윗이 고아 편들고 가난한 자 편드는 이것이 취미 아닙니다. 다윗은 죽을 지경이에요. 시편 22편 보세요. 오죽했으면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지만,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돼있지요. 구약은 나의 하나님이고 신약의 예수님은 나의 아버지에요. 아버지기 때문에 아버지라 불러요. 본인만 아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리고 오늘 시편 10편 1절에,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이게 다윗이 본심이 착하다는 말이 아니고 주께서 언약 중심인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지금 어디까지 이야기했느냐 하면, 잘라내는 남은 자 이야기했습니다. 남은 자를 계속 추려내면서 이미 완성된 언약에서 나가는 겁니다. 미리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겠습니다. 남은 자를 잘라내는 데 남게 되는 자는 몇 명이겠어요? 제로에요. 한 명도 없어요. 이사야가 이미 예언했습니다.

이사야 6장에 보면 유명한 말씀 나오잖아요. 그루터기 나오지요. 그 그루터기가 어떻게 될까요? 십분의 일이 남아 있더라도 십분의 일도 용납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럼 뭐만 남아 있어요? 그루터기만 남아있는 거예요. 그 그루터기를 남아 있다고 이해하면 안 되고 잘렸다는 것의 증거로서 그루터기가 있다고 보라는 겁니다. 이사야가.

제가 읽어볼게요. 13절에,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그루터기의 기능은 뭐냐 하면, 요즘 말로 급작스럽게 논리를 비약시켜 적용시키면, “주여, 저는 왜 안 잘라냅니까?” 그런 뜻이에요. 진즉에 지옥 가야 되고 진즉에 저주받아야 될 저를 천국에 왜 넣어주십니까, 라는 쪽으로 반문이 돼야 돼요.

이 반문을 누가 하느냐? 사울이란 사람이 했지요. 주여, 누구십니까?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너는 이제부터 나의 증인될 것이다. 이미 합격했다는 뜻이에요. 합격의 통보를 그렇게 해요. 이제부터 너는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나중에 사도 바울이 그런 식으로 반응을 보이죠. 내 능력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두 자로 얘기해서 ‘자유’다. 나한테 신경 안 써도 되는 자유, 내가 안 챙겨도 되는 자유, 내 소유 아무것도 없어도 되는 자유, 그걸 오늘 본문에서는 가난한 자라 해요. 아무것도 없으니까 누구만 쳐다본다? 주님만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자유를 주신 거예요.

그럼 사도 바울의 재산이 얼마입니까? 재산이 아무것도 없었습니까? 그렇게 따지는 게 아니에요. 사도 바울이 백억이 되던 집이 열 채 있던 부동산이 15만 평이 되던 그는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워요. 성도는 그래야 돼요.

집 팔고 논 팔고 교회 갖다 바치지 말고 먹을 것 다 먹고 골프 칠 것 다 골프 치고 좋은 차에다 크루즈 여행에다 영화 나오는 족족 다 보러 다니고 봄 되면 봄옷 챙겨 입고 다 챙기면서도 세상에 그렇게 가난한 자가 없어. 왜? 내 것이 없으니까. 내 것을 챙기지 않으니까.

이상한 예를 들었습니까? 왜냐하면 나 이만큼 가졌다 너보다 낫다는 게 아니라 주여, 이 세상은 왜 이 모양 이 꼴입니까, 에 관심을 두는 거예요. 오늘 시편에 의하면. 남들은 지는? 할 거예요. 나도 좀 즐긴다마는 내가 날 알거든. 왜 이 꼴이냐? 나 같은 인간은 지옥 가야 되는데 왜 보내주는지 모르겠어. 무심코 던지는 그 말이 선교고 전도에요. 실적 있고 없고 따질 것도 없어. 난 이렇게 살아. 그게 전도고 선교라니까. 선교는 주님이 하시니까요.

그럼 지금까지 한 걸 정리해볼게요. 주께서 하신다가 뭐로 변경됐습니까? 나를 통해서 하신다로 바뀌었죠. 마지막 어려운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뭐가 있다? 하나님 있다는 데 이 하나님이 거짓말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이스라엘 자체에서 누가 쫓겨 갔습니까? 400명+다윗, 다윗이 쫓겨났지요. 그러면 둘 중에 어느 것이 이스라엘이냐는 겁니다.

권력을 쥐고 있는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아니지요. 이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이미 하나님께 대들었다는 증거가 바로 다윗이 쫓겨났다는 겁니다. 증거가 된다면, 내가 묻는 건 그거에요. 이스라엘이 믿는 하나님이 하나님이겠습니까? 아니지요. 그게 시편의 핵심이에요. 움직이는 다윗을 봐라. 하나님의 기능은 그 움직이는 다윗을 추적해봐야 아는 거예요.

약속의 땅에 걸터앉고 거기서 농사짓는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아니에요. 새로운 이스라엘이 남은 자의 잉태, 다윗을 통해서 배태되는 것으로 다윗언약이 있고, 다윗언약 안에 장차올 하나님 나라가 응축돼있어요.

그러면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면 뭐가 퍼진다? 풍선 안에 하나님 나라가 들어있다면 그 입구가 예수님의 십자가라면, 십자가가 반복되면 풍선 안의 공기가 확 퍼지겠지요. 그게 바로 하나님 나라에요.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숨겨져 있어요. 복음의 비밀이거든요.

어디 있느냐고 묻지 마세요. 하나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가 아니고 너희 안에 있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하늘나라는 뭐냐 하면, 나 자체 존재를 뭐로 보고 있느냐 하면, 주님의 증인이라는 사건으로 보는 거예요.

지금 나 아무것도 아니고 지옥 보내도 되는데 왜 주님은 저를 이렇게 언약 안으로 집어넣습니까? 그것도 쏙 집어넣었습니까, 라는 이러한 고백이 나오는 우리가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는 남은 자가 된 동시에 이스라엘이 되는 거예요.

이게 외부에서 보면 고아와 과부. 고아와 과부, 가난한 자의 공통점은 세상에 의지할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이에요. 그것을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그런 고백이 나오도록 몰아가시는 거예요.

그러면 4절 다시 해보겠습니다. 오늘 4절이 중요하니까요.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이제 4절 말씀만 설명하면 본문 해석, 시편 10편 해석된 거예요.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할 때 해석 이렇게 됩니다. 악인은 이 땅에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 없습니다. 그 다음에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그런 사람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왜 없느냐 하면, 이 세상은 자기중심이기 때문에 하나님 찾고 교만 안 하려 하고 하나님 공격하지 않습니다. 이게 해석이에요. 이 세상 모든 인간은 자기중심이기 때문을 놓치지 마세요. 내 중심이기 때문에 나 잘되기 위해서 하나님도 믿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하나님 멸시하지도 않고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애를 씁니다.

그렇게 한 사회가 무슨 사회지요?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사회지요. 예수님 십자가 지고 난 뒤에 유대사회는 뭡니까? 하나님 있다, 없다? 하나님 없고. 교만하고, 하나님을 배반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배반했지요. 왜냐하면 오신 하나님을 찔러 죽였으니까.

그러니까 인간은 자기가 죄인인 줄 몰라요. 그런데 언제 죄인인 줄 아느냐 하면, 십자가의 영, 성령이 올 때 십자가를 앞장세울 때 비로소 내가 죄인 중의 괴수인 것을 아는 거예요. 그리고 거리에 나가보세요. 죄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 죄인이지, 하면 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바르다는 식으로 살아왔다고 다 그렇게 생각해요.

특히 사울이란 사람이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고 율법에 흠이 없는 자이지요. 그러면 자기를 뭐로 봅니까? 자기는 의인이지요. 상대방은 죄인이 아니고 자기보다 약간 질이 떨어지는 의인이고. 다 그런 거예요.

스티븐 핑커라는 사람이 하버드대 교수로 심리학자인데 우리 안에 착한 천사 있다는 책이 있고, 또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 중에 [빈 서판]이란 책이 있어요. 타블라 라사라 해서 존 로크가 이야기한 인간은 본성은 없고 비어있다는 것을 반박한 책이거든요. 우리나라 번역상 받은 책이에요. 번역만 잘 된 게 아니고 내용도 뛰어나다고 하거든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2015년) 번역부문 수상작, 번역자 김명남.

이 사람이 인간의 본성 가운데 폭력성을 감화시키는 자동적인 속성이 진화되어 와서 옛날보다 지금 이 세상에 폭력이 줄어든 이유가, 인간이 더 착한 쪽으로 진화되고 있다는 주장을 한 거예요.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상줄 만하죠.

오늘 시편 하나님의 언약과 비교해보세요. 언약과 비교할 때 그것 때문에 다윗은 쫓겨났고 그것 때문에 예수님은 죽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세요. 우리의 타고난 죄가 얼마나 하나님을 죽게 한 것인가를 우리는 깨달아야 돼요. 왜냐하면 이 시편 10편을 유대인들이 몰랐을까요? 아는 정도가 아니고 어릴 때부터 달달 외웁니다. 랍비한테.

그래서 그들은 해석할 때 어떻게 합니까? 이스라엘은 영원해야 된다는 그 전제를 깔고 시편 10편을 보는 거예요. 그러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것은 전부 다 악인이 되는 거예요. 이게 뭐냐? 개인적인 집단이에요. 집단인데 모든 움직임은 마치 개인의 움직임처럼 똑같이 움직이는 거예요.

이게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내 교회, 우리 교회. 뭡니까? 교회란 단체를 이야기해놓고 자기 자존심에 대한 증거물로 사용하잖아요. 세상 모두가 출발이 뭐냐? 나부터 출발해요. 그런데 아까 처음에 강의했듯이 하나님 보시기에 그 나가 문제 있다는 거예요. 그 안목은 언약 속에 있을 때나 비로소 알아요.

끝으로 한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에 봅시다. 18절에 보면, 그전에 악인의 팔을 꺾으시고 하는데 18절에 심판이 나오지요. 심판 이야기하고 마치겠습니다. 심판인데 첫 번째, 잘못된 심판은 뭐냐 하면, 나를 심판하는 게 잘못된 심판이에요. 구원도 개인주의 구원처럼 심판도 개인주의 심판인 줄 알고 있어요. 나를 심판하는 것이 심판이라고 여기는 겁니다.

그러나 노아언약에 의하면 심판은 우리 안에 뭔가 둘러싸는 게 심판이에요. 개인이 아니고 환경이에요. 환경 자체가 심판이에요. 만약에 개인 심판에 빠져있으면 누가 삿갓 쓰고 와서 염불 외우면서 아아, 이 집에 액운이 끼었구나. 이건 천도제를 지내야 돼. 도를 아십니까? 사 대가 복을 받을 거요. 이러면 거기에 아줌마들은 넘어가요. 왜냐하면 아줌마들은 지 자식밖에 모르기 때문에. 자기 해로움은 끄덕도 안 하는데 자기 자식 해롭다면 완전히 혼이 다 나갑니다.

그래서 교회 헌금 봉납도 자식 잘되라고 하게 되면 헌금이 나오게 돼있어요. 자식 위해서 이 교회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면 부모의 모성과 부성에 호소하면 아낌없이 나오게 돼있어요. 여러분 잘된다고 하면 안 나와요. 늙어 죽으란다. 있는 연금도 귀찮은데 뭐하려고. 자식 하면 예하고 다 바쳐요.

기어이 사적인, 가정도 하나의 사적 아닙니까. 사적인 저주에 떱니다. 따라서 제가 일반교인들한테 합니다. 누가 저주하거든 찬스인 줄 알고 저주를 받으세요. 그게 구원의 길입니다. 시궁창에 들어가지 않으면 천국에 못 들어가잖아.

사도 바울처럼 십자가 저주 아닙니까?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저주받음으로써 비로소 안 보이던 천국이 환하게 보여요. 내가 그동안 틀어막았어. 내가 그 좋은 천국을 살고자 하는 의욕과 욕망이 천국의 소식, 복음을 엉덩이로 틀어막았어요. 전부 다. 그래서 성령께서 네 엉덩이 좀 치워라. 엉덩이 치우면 하나님 보이는데. 맨날 저주 오지 말고 복 주옵소서. 이러고 있으니까 자기가 천국을 막아놓고 자기가 자기 구원 막아놓고 누구 탓을 합니까.

심판은 환경으로 옵니다. 우리는 거기 소속된 거예요. 따라서 환경만 바뀌면 환경만 천국이라면 이미 그 사람은 어떤 인물이던 관계없이 세리가 되던 강도가 되던 이미 천국입니다. 왜냐하면 환경 자체가 부활의 환경이면 이미 심판을 이긴 거예요.

누가 율법으로 널 쏘더냐 말이죠. 율법이 널 쏘도록 왜 허용하느냐 말이죠. 왜? 율법이 쏘는 것은 생명한테는 죽음에서 벗어난 사람한테는 율법이 쏘질 못하게 돼있어요. 율법이 쏘는 과녁은 생명을 보고 쏘는 게 아니고 죽으라고 쏘거든요. 이미 죽은 자한테는 선악적인 율법이 아무 소용없어요.

율법은 우리 육신이 어떤 성질이 성깔머리가 있느냐를 까발려서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기뻐하는 용도로 우리에게 허락하신 거예요. 로마서 7장 이야기입니다. 오호라 곤고한 사람이로다. 곧 이어서 뭐라고 합니까? 기뻐하리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뭐가 없나니? 정죄함이 없나니. 정죄함을 가지자는 말이 아니고 이것을 증거 합시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 심판에서 벗어난 상태인 것을 우리가 왜 몰랐습니까? 자꾸 독자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니까 우리가 우리 구원을 기쁨을 막았습니다. 이제는 혼자 살지 말고 주와 함께 있는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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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5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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