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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악인의 발생 190311강의시편

20190311a 부산강의 : [시편]17(10편)-악인의 발생
(강의:이근호 목사)

시편 10편 할 차례입니다. 시편 9편, 10편, 시편을 보게 되면 악인들이 자꾸 나오지요. 악인들이 나온다는 것은, 이 세상이 처음에 하나님이 만드신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세상과 틀어졌다는 겁니다. 달라진 거죠. 처음 만드신 세상이 아니고 잘못된 길을 가고 있고 원래 만드신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폐기처분해야 될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조치는 어떠하십니까, 를 다윗을 통해서 보여주신다 생각하면 돼요.

시작 자체가 좋게 보는 게 아니고 이건 아니라는 것부터 출발하는 거예요. 그러면 성도가 되면 세상을 볼 때 어떻게 봐야 되죠? 하나님의 안목과 동일한 안목으로 세상을 보시면 되는 거예요. 이건 아니야. 뭔가 하나님의 조치가 있을 거야. 그렇다면 그 하나님의 조치는 무엇이냐? 이렇게 되는 겁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은, 성도와 불신자의 차이점이 뭐냐 하면, 성도의 특징은 하나님과 상대한다는 겁니다. 보통 학원 강사는 학생들과 상대하지요. 그리고 가게 주인은 손님과 상대하잖아요. 하루 종일. 그리고 주부는 손자나 남편이나 아들이나 그런 사람들과 상대하지요. 목사는 교인들 상대하고. 주로 상대하는 게 누구냐 하면, 사람과 상대하는 거예요.

사람 상대하는 것과 하나님 상대하는 것의 차이점은 뭐냐 하면, 사람과 상대하게 되면 자기 마음을 늘 숨길 수밖에 없어요.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사람을 상대하지요. 자식이 애 먹이면 패고 싶지만 나중에 엄마가 폭력적인 엄마로 낙인찍히면 안 되니까 참는 거죠.

이렇게 숨기는 거예요, 인간은. 서로가 서로의 본심을 내놓지 않고 인간을 상대할 때는 숨길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이 세상에서 인간과 인간을 상대할 때는 절대적 악이란 건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나쁜 짓할 때도 다 그만한 이유가 때문에 그래요.

시편 10에서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이런 고백을 한다는 것은 아까 말씀드린 데로 하나님을 상대하는 거죠. 하나님을 상대한다는 것은, 인간은 무능력하다는 것, 인간한테 기댈 것 없다는 것, 집안 식구한테 난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 인간들의 모든 약속과 모든 사랑과 애정과 그리고 열심이라 하는 것은 그다지 믿을 게 못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지금 다윗을 그렇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조치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지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왜? 이 세상 자체의 근본적인 표준을 악인은 없어야 되는 세상을 표준으로 했을 때 이 세상은 뭔가 잘못돼있다는 겁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세계를 표준으로 하지 말고 인간 대 인간이 만들어놓고 저질러놓은 그러한 세상이라면 우리는 좀 힘들고 어려워도 세상이 다 그렇지 뭐, 그런 식으로 굴러가는 것이고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데 내가 그렇게 신경 쓸 필요가 뭐가 있느냐는 식으로 그저 내 것만 잘 챙기고 나만 편하고 나만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겠지요.

그렇지요? 구태여 하나님이 어찌하여, 라는 호소를 할 필요 없잖아요. 나만 편하면 되니까. 악인이 와서 내 것을 도적질하면 경찰에 신고하면 그만이고요. 잡아서 보상받으면 그만이고. 세상에 대해서 내가 뭘 할 수 있는데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고 내 앞가림하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세상 일하겠어요?

목사님, 수면부족인데 하나님 어찌하여 수면부족입니까, 하나님께 호소합니까? 그저 잠만 푹 잘 수 있으면 더는 소원이 없겠습니다. 이런 것. 내 앞가림만 하면 그만이지 뭐 다윗처럼 인생을 거창하게 보느냐, 이 말입니다. 이게 왜 그러냐 하면, 신자는 하는 일이 있어요. 신자의 특징을 해볼게요. 불신자가 아닙니다.

신자의 특징은 첫째, 자꾸 없는 분으로부터 공급받는다. 불신자는 인간을 상대하잖아요. 내가 주고 반대로 저가 나한테 주고, 나는 줄 것 주고받을 것 챙기고. 사람을 상대하기 때문에. 이게 성경에선 불신자인데 사람들은 그냥 인간이라 하죠. 성경에서 말하기를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범죄자로 태어났다는 겁니다.

이왕 한 것 다시 해볼까요? 첫째로 인간은 범죄자로 태어났다. 범죄자의 속성, 범죄자의 본성, 범죄자의 본질로 태어났다. 두 번째가 죄가 뭐냐 하면, 그것을 감춘다는 것. 어떤 식으로? 하나님을 상대하고 인간들과 상대하고. 그렇게 정리하는 거예요.

4절 봅시다.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하나님을 없다 하는 것은 평소에 살아가는 모든 행동이 하나님 신경 쓰지 않고 살아온 거예요.

그러면 집에 가만있는 게 아니고 누굴 상대했단 말이에요? 사람을 상대한 거예요. 목회를 해도 사람을 상대한 거예요. 장사를 해도 손님만 상대한 거예요. 교사 돼서 학생만 상대한 거예요. 사람 대 사람을 상대해버리면 뭐가 없어지느냐 하면 신자, 불신자란 기준도 소용없지요. 사람 상대하는 데 신자, 불신자가 무슨 소용 있습니까?

시편 자체가 다윗이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단 말이죠. 그런데 오늘날 현대인들은 하나님께서 호소하기 보다는 그것도 귀찮아. 그냥 내 앞가림만 그만이라는 것. 앞가림만 한다는 것은 사람만 상대하면 그만이다. 귀찮게 하지 않는 한 나도 귀찮게 안 하면 그만이고. 자기 몸 편한 게 최고기 때문에.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호소한단 말이죠. 호소하는 이유를 뭐라 했습니까? 처음에 이 세상은 이러지 않았잖아요? 하나님께서 처음에 세상을 이렇게 만들지 않았잖아요, 라고 아주 거창하게 생각하는 겁니다. 대단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 대해서 다윗은 여기서 뭘 생각하느냐 하면, 원 창조를 생각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창조하실 때 없는 데서 있게 하셨잖아요. 있다는 말은, 창조가 만들어진 거니까 결과물이 있음이죠. 있음 안에 창조의 원리를 품고 있다는 본 겁니다. 창조의 원리를 있음이 품고 있을 때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다는 거예요. 심히 좋았다는 것이 하나님의 생각인 동시에 다윗의 생각이고 다윗의 삶의 기준이 돼요. 기준점이 된단 말이죠.

자기가 이런 기준점을 가지고 이런 기준으로 세상을 보니까 세상은 지금 있음이 뭘 누락시킨 거예요? 창조의 원리를 누락하고 공격하고 있지요. 그래서 시편 10편에 뭐라고 돼있습니까?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라고 하나님께 호소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이야기한 것을 이렇게 결론내릴 수 있지요.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점은 뭐다?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이 신자고, 불신자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해도 되고, 다른 말로 하게 되면 뭐만 의식하며 산다? 사람만 의식하고 산다. 목사는 교인들 의식하면 그만이죠. 부부는 서로만 의식하면 그만이고. 시장사람들은 오는 손님만 의식하면 그만이에요. 국민들은 대통령만 의식하면 그만이고.

사람만 의식하면 그만이에요. 그게 너무나 익숙해졌으니까 너무 자연스럽게 돼버렸어요. 그러니까 시편 10편도 우리한텐 낯설어. 왜냐하면 사람만 상대하니까 자기 몸 편하고 몸 건강하고 자기인생 만족하면 더 이상 신경 쓸 게 뭐가 있느냐는 식이죠.

그래서 신자의 특징은 첫째는 자꾸 없는 데서 공급한다는 거예요. 신자의 특징 두 번째는, 두 번째가 더 중요한데, 첫 번째는 자꾸 누구로부터 주어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고, 두 번째는 바로 그것을 증거 한다는 거예요. 신자의 특징은 하늘로부터 뭔가 계속 주어진다는 것을 증거 하는 용도로 자기가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그럴 때 있음 안에 창조의 원리가 같이 살아 있다고 보는 거예요. 그렇다면 하나님을 증거 한다는 말은 무엇을 증거 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나를 증거 하지 않겠다. 나 자신을 증거 하지 않겠다.

처음으로 돌아가 봅시다. 다윗이 보기에 이 세상이 정상이 아닌 거예요. 처음에 하나님이 보기에 좋았는데 시편 10편에 보면 왜 악한 자들이 있느냐?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이 조치를 해주시라는 거예요. 이런 태도 자체도 신자 태도에요. 왜냐하면 인간이 사람을 상대하게 되면 나한테 불편한 것은 조치를 누가 알아서 해요? 내가 알아서 하면 돼요.

하수구가 막혔다. 그러면 내가 뚫으면 되잖아요. 그러면 다른 사람이, 잘 흐르네. 누가 뚫었어요? 내가 뚫었어요. 내가 뚫었다는 말은 결국 누굴 증거 한다는 말입니까? 나 자신을 증거 하는 게 돼요. 다윗은 말하기를 그게 창조의 원리냐고 우리한테 묻고 있는 겁니다. 나는 존재할 가치 있습니다, 라고 우기는데 과연 그것이 하나님의 원리 맞습니까? 이렇게 되는 거예요.

다윗은 이 세상에서 범죄자를 찾아냈는데 범죄자의 특징으로 두 가리를 봤지요. 첫째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범죄자로 태어났다. 그로 인하여 더 나쁜 범죄가 뭐냐 하면, 그것을 감춘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증거 한다는 것은 뭘 까발리느냐 하면, 인간이 감추고 있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지니고 태어났던 창조 원리에 위배되고 배치되는 그 사항을 까발리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라는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 그래야 하나님이 천지 창조한 기준은 생생하게 유효하게 견지되고 살아 있기 때문에 그래요.

다윗의 관심사가 내가 편하게 사는 게 아니죠. 창조의 원리가 생생하게 그대로 온 우주에 발휘되고 나타나고 증거 되기를 바라는 것 이게 바로 다윗의 자세입니다.

아까 제가 얘기한 첫 번째 신장의 특징은 뭐라 했습니까? 나는 한 게 없는데 자꾸 누가 줘. 하루에 잠을 세 시간이나 주시네. 잠자라고 세 시간이나 허락하시네. 자꾸 뭔가 공급해요. 그런데 세상에서 사람들은 뭐라고 합니까? 내가 이만큼 해서 이만큼 얻었다는 얘기를 계속해서 늘어놓는 거예요.

다윗이 신자가 아니고 보통 인간이라면 고개 끄덕이면서 너도 그렇게 사나? 나도 그렇게 산다고 할 수 있는데 자기 입장에선 분명히 하나님이 주셔서 사는데 저쪽은 자기 힘으로 산다고 버티는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다윗은 뭐라고 평가하느냐 하면, 그래 너한텐 하나님이 없어. 아니 하나님이 없기를 원하고 있어. 이렇게 되는 거예요.

시편 10편을 통해서 신자, 불신자를 나눴는데 신약에 와선 결정적으로 나누죠. 신자는 누굴 증거 하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자 되려면 반드시 조건이 필요해요. 혼자선 안 돼요. 모든 인간은 범죄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필히 자기 자신의 잘남과 변명으로 일관합니다. 평생을. 그걸 제가 두 번째로 자기 죄를 감춘다고 이야기했죠. 감추는데 그걸 건드리면 화를 내요. 반발하죠. 그 반발의 여파가 외부로 바깥으로 퍼져나가는 겁니다.

시편 10편 12절 누가 읽어볼까요.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를 잊지 마옵소서” 여기 갑자기 가난한 자가 등장해요. 가난한 자와 동급으로 등장하는 것이 14절에 보면,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고아가 등장하고.

고아와 가난한 자가 등장한다는 말은 어떤 뉘앙스를 주느냐 하면, 처음부터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가 심어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난할 이유가 없는 사회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가난한 자가 생겼다는 것은 누가 이 가난한 자의 재산을 탈취했다고 보는 거예요. 여기 굉장히 많지요. 7절, 8절에 그 이야기가. 은밀한 곳에서 엎드려 있다가 그들을 공격한다고 쭉 나오거든요.

그러면 여기서 이야기를 더 전개시켜봅시다. 제가 처음에 이야기할 때는 아주 큰 범위로 이야기했어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심히 아름다웠다. 그게 다윗이 보는 기준이라 했지요. 그런데 좀 더 심도 있게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선 이스라엘을 아름답게 만드셨다. 그리고 그것이 아름답다. 왜? 이스라엘 그 국가에서만 하나님의 창조 원리가 계속 살아 있기 때문에. 그런 기준으로 이스라엘을 보는 거예요. 택한 민족을 보는 거예요.

그렇게 봤을 때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는데 창조의 원리라고 제가 모호하게 이야기했는데 이스라엘이라는 구체적인 객관적인 국가가 등장하면서 창조의 원리가 용어가 바뀌어야 되겠지요. 이게 바로 언약으로 바뀌어야 되겠죠. 다윗 시대기 때문에 무슨 언약이겠습니까? 당연히 다윗언약입니다.

다윗언약만 언약이 아니고 그전에 언약이 있었지요. 무슨 언약이었습니까? 모세언약이었죠. 모세언약 이전에 최초 언약이 뭡니까?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언약인 노아언약이죠. 노아언약을 구체화시킨 것이 모세언약이고 모세언약을 구체화시킨 것이 다윗언약이란 말이죠.

노아언약은 창세기 8장에서 방주 안에 있던 정결한 짐승의 피, 희생을 받아서 하나님께서는 짐승의 희생, 제물의 희생, 죽음이죠. 죽음 안에서 은혜가 나온다는 걸 아는 사람에게는 복을 주신다는 그 내용이 노아언약입니다. 정결한 짐승 덕분에 더러운 노아가족도 물의 심판에서 무사히 벗어났다는 거예요. 이게 창세기 8장 마지막에 나오지요.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나오지요.

그래서 이것은 뭐냐 하면, 내가 무엇을 믿는 게 아니고 내가 무엇 안에 들어있는 거예요. 어디 안에 있느냐 하면,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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