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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너희 하나님 190305강의요한복음

강남-요한복음 20장 17절(너희 하나님)190305a-이근호 목사

요한복음 20장 16절에서 17절 18절 일단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 선생님이라 하는 것은 학교 교사란 뜻이 아니고 극존칭입니다. 그 당시 최고의 인간으로서 가리킬 수 있는 최고의 지위인 사람을 선생님이라고 하는거에요.

왜 그러느냐 하면 자기 영혼을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잖습니까. 자기 영혼을. 거기에다가 도박 같으면 거기에다가 모든 판돈을 다 거는 건데 판돈을 거는 입장에서 대충 한 다리는 이렇게 긴가민가 한 다리는 세상에 이렇게 걸칠 수가 없어요. 그 유대사회에 랍비라고 하는 것은 한 다리는 걸치고 한 다리는 나중에 뭐 제가 신임하고 싶으면 그때 오겠습니다 그런게 용납이 안돼요. 랍비라는 것은 종교 사회이기 때문에.

신과 인간 사이에 일반인 사이에 신과 인간 사이에 랍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랍비가. 그건 왜 그러느냐 하면은 성전이 깨지고 하나님의 선지자가 끊어졌잖아요. 말라기 이후에 440년 동안 선지자가 없어요. 그 공백을 뭐로 메꿀 것이냐 하는 거에요. 신탁이 주어지지 않는 상태에서는 그 빈자리를 뭐로 메우느냐 하면 기존의 신탁을 해석을 하게 되고 그 해석해 놓은 것을 그것을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연구하고 분석해서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단절되지 않고 연속되도록 하는 막중한 사명을 지닌 사람이 랍비들이에요. 랍비들.

물론 선지자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계시받았습니다 라는 말을 안해요. 그러면 선지자가 왜 랍비가 그런 건방진 말을 못하느냐 하면 예언이라 하는 것은 그냥 내질러보고 보는게 아닙니다. 실제로 그렇게 성취되어야 되거든요. 그 다니엘에 그런 내용 있잖아요. 남이 꿈을 꿨는데 해몽해 주는 사람. 그건 선지자 아니지요. 적당히 좋은 말 하면 되지요.

그런데 당신 어젯밤에 이런 꿈 꿨지? 나하고 권투하는 꿈 꿨잖아. 그걸 말도 안했는데 미리 알아채버리면 헉! 뭐지 이분은?! 랍오니 이렇게 되는 거에요. 너는 나의 영원한 랍비가 되는 거에요. 그 정도 되면. 랍비 이상이죠 선지자는. 그래서 그 시대에 있어서의 자신의 영혼을 담보할 수 있는 사람,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랍비.

그 랍비가 그 당시 유대사회니까 이스라엘의 그 랍비가 있다는 것은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대적으로 억압받는 가운데 있어도 그들은 행복해요. 여러분 행복이라는 것이 소유가 넉넉해서 행복한게 아니에요. 왜냐하면 소유가 넉넉해져 버리면 그걸 나중에 그 소유가 빠지거나 사단나거나 줄어들 수도 있고 자기보다 먼저 소유가 많은 사람이 있으면 배가 아파서라도 화나서 질투심 때문에 행복하지 않아요.

인간이 진정으로 최종적으로 마감적으로 행복할 경우는 뭐냐 하면 내 영혼마저 갖다 앵겨도 그 사람에게 맡긴 내 영혼이 아마 빛이나고 미래가 잘된다는 보장이 있을 때 그때 행복해요. 그래서 매슬로우의 욕구설의 제일 마지막 단계가 ‘자아실현의 욕구’라는게 있거든요. 그거는 심리적 안정감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성경에도 그 비슷한 이야기가 누가복음에 나오지요. 그때 선지자 누가복음 선지자 시므온입니까? 그 누가복음 2장에 보면 시므온 맞지요? 시므온이 아기예수를 이렇게 안고 그 다음에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주재여~” 주님이여 이런 뜻이죠. 주님이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그 다음에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은 “종을 평안히” 여기는 그냥 평안히 되어 있지만 제가 이렇게 운을 띄웁니다. ‘종을 평아~~~안~~~히’ 놓아주시는군요. 이런 경지에 이르는거에요 시므온이가.

하나님께 몇 푼 받았어요? 어디 취직했어요? 얻은거 없지요? 천식이 낫고 그런거 있었어요? 없어요. 종의 마음을 편안하게 기쁘게 편안하게 놓아주는 것은 자, 뭐 때문에 그렇습니까? 뭐를 본거에요? 아기예수를 봤잖아요. 아기예수를. 이 내용이 들어 있는 책이 무슨 책이다? 누가? 그다음에 뭐에요? 누가? ‘누가복음’ 누가복음. 누가복음 2장 29절에 나오잖아요. ‘복음’.

그러면 교회가 교회가 해야 될 임무가 뭡니까? 교회 온 성도로 하여금 예전에 집에 불이 나고 부도 나고 애가 아프고 뭐 취직 안되고 결혼도 안하고 뭐 1억 5천 잃어버리고 사기당하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옛날엔 그것 때문에 안절부절 했고 그것에 휘말렸다 휘둘렸다 이 세상 사는 것이. 미세먼지만 해도 막 시달리고 뭐 물가 올라가고 내려가고 이런 것까지 가슴 덜컹 내려앉고 아파트 전세 올라가면 어찌 사노 그러한 휘둘리는 것, 이 세상 휘둘리다가 복음 자체가 우리에게 뭐를 제공해야 된다? 이제는 주의 영혼을 ‘평안~~히 놓아주는 거’에요.

실연을 당했든 모든 것이 주저앉든 남한테 웃사를 당하든 평안히~~~이것은 이게 바로 성령이 임해서 그랬다는거에요. 같은 성령이 임했다는데 왜 다른지 모르겠어요 하여튼. 성령이 임하는 사람은 그까이것 그까이것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그까이것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데 어떻게 교회 내에서 성령은 헌금 빠지면, 인원수 빠지면 덜덜 떨고 그런 성령이 어디 있어요 그런 성령이.

복음의 내용과 다를 때는 그건 뭐다? 복음이 기다? 아니다? 복음이 아닌거에요 그건 복음이 아닌거에요. 복음 이야기 나왔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우리가 지금 요한복음 하거든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하는데 제가 예를 든 것은 누가복음 2장 29절에 시므온이 아기예수 안아서 종을 평안히 놓아줬다 했지요.

뭐를 안았다고 했습니까? 방금 제가 뭐를 안았다고 했습니까? 아기예수, 아기예수죠. 이걸 오늘 요한복음 20장 오늘 본문에서는 그걸 몸이라고 하는거에요 ‘몸’. 몸이에요 몸. 이걸 칠판에 쓸 수 있는데 그냥 나직하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오늘 나직해서 좋으네 목이 안 아파서 좋다. ‘몸’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초월적 실체의 너희들이 아직 결합될 수 없는 몸이라는 뜻이에요.

“나를 만지지 말라” 했거든요. 초월적 실체의 몸이 따로 있고 그 몸과 질이 다른 몸이 바로 네 몸이라 이 말이죠. 그런데 주님의 초월적 실체의 몸과 네 실체, 흙의 속한 실체에 몸은 지금 예수님께서 부활한 입장에서는 이것이 만져도 되는 사이가 아닌 겁니다. 만져도 되는 사이가 아니에요. 그 만지지 못한다는 말은 그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결합이 안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몸은 어떤 몸이어야 되느냐 하면 죄인을 흡수해서 자기 안에 통합시키는 기능이 발현되는 그런 새로운 몸이 되어야 돼요. 아직은 아니다라는 거에요 아직은. 네가 전에처럼 내가 십자가 부활되기 전에처럼 네가 함부로 만지고 같이 잠자리하고 식사하고 그런 몸이 아니에요. 지금 어떤 중간에 전개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거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몸 자체의 실체가 변형되는 과정을 오늘 본문 요한복음 20장 16절에서 18절까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한테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가만 있거라 나 홀로 다할게” 라는 뜻이에요. “가만 있어. 내가 알아서 할게. 너희들이 네 자신을 변형한다고 구원되는 것이 아니야.” 네가 변형돼봐야 그 몸에서 그 몸밖에 나올게 없어요. 사람이 기껏 자기 몸을 굴린다는 것은 자기 몸이 갖고 있는 한계를 기껏 한계를 보여줄 뿐인데 그 한계라는 것은 자기 몸을 굴려서 정신적으로 어떤 쾌감과 기쁨을 얻으려고 하는겁니다.

아주 쉬운 예가 바로 춤추는 거죠. 음악에 맞춰가지고. 음악에 맞춰서. 지금 다이어트하는 거기에서도 음악 틀어놓고 하지 않습니까? 잘 모릅니다만 음악 틀어놓고 하지요? 음악 틀어놓으면 뭐가 반응한다? 몸이 반응하고 가만있을 수가 없지요? 예민한 여성의 몸으로서는 가만 있을 수가 없지요. 흔들다 보면 땀 빠지고, 땀 빠지면 증발되고 증발되면 기분 썩 괜찮고 살 빼고 기분 좋고 오늘도 돈값 한거지요. 회비 낸 값을 하는거에요.

그 다이어트 하는 그 클럽이 얼마나 또 강사가 친절합니까. 또 잘생겼지 젊지 친절하지. 이미 결혼했습니다만. 그러니까 회원수가 곱빼기 부흥이 되는 거에요. 그냥 있기만 해도 부흥이 되는 거에요 있기만 해도. 교회는 부흥 안되고 하여튼 거기는 부흥되는 거에요. 왜? 몸을 몸에서 엔돌핀이 나오도록 그걸 상품화시킨 거거든요. 조치를 취했다 이 말이죠.

그런데 그 몸은 다른 몸을 흡수할 수 있어요? 없어요? 통합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자기 혼자 즐거워. 자기만 즐거워요. 자기만 댄스 춰요. 댄스 추고 춤춰요. 안동역이란 노래에 맞춰가지고. 안동역 앞에서 몸을 흔들어. 신나. 혼자하면 재미가 없어. 라인댄스를 해야돼요. I ‘can't stop loving you’ 그 노래에 맞춰가지고 잘 추는 사람 앞에 세워가지고 라인댄스 알아요? 컨츄리 음악에 맞춰가지고 미국에서 하는거 있어요. 안 그러면 유투브 찾아보세요.

몸의 쾌락 기쁨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몸을 그냥 운동에너지를 가해서 굴리면 되는 겁니다. 자기만 즐거워요. 자기만 즐겁다고요. 제가 왜 댄스이야기 자기 즐거움 이야기를 했느냐 하면은 사람들 쪽에서 다가가는 것 주님이라든지 하나님을 향해서 다가가는 것 그게 한계가 있습니다. 이번에 수련회 때 아가 했잖아요. 아가의 내용의 핵심은 어디 있느냐 하면 다가가는 사랑은 실패로 끝난다는 겁니다. ‘다가오는 사랑’이어야 한다예요.

다가올 때 다가오는 사랑이었는데 다가오는 그 사랑에 대해서 인간은 자기가 다가가는 쪽으로 나설 때 그건 항상 실패로 끝나요. 그런데 아가에 보면 실패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 난데없이 바람이 불고 향기가 넘치고 그래서 주변의 대자연이 두 사람이 결합하도록 도와주지요. 심지어 그 여자친구까지 도와줍니다. 그 여자친구가 어디에 소속됐느냐 예루살렘이 소속된 여자들이에요. 신부를 혼례 올리도록 도와주지요.

그 친구들의 춤을 무슨 춤이라고 하느냐 마하나임의 춤이라고 했어요. 아가에. 그것은 바로 천사들이 추는 춤이에요. 춤은 어디서 춘다? 예루살렘에서. 예루살렘 다윗언약에 의해서 의미있게 자리잡은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성전에서 사랑이 거기서 시작이 된다 이 말입니다. 사랑의 출처가 예루살렘이고 그 예루살렘 왕이 여자를 한 여자를 사랑하는데 남자가 다가가도 여자가 다가가도 이게 쉽게 성사되지 않아요. 늘 실패로 끝나요.

하지만 여호와의 질투심 그래서 거기 아가 마지막에 여호와의 불같은 질투심이 죽음보다 강한 질투심이 결국은 그 왕에 합당한 신부로서 혼례를 시킨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있는 모든 대자연은 그걸 후원해주고 도와주고 천사 기능하는 여자친구들도 도와주고. 그래서 아가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사랑이 일상 중에 하나가 아니라 사랑이 최종목표라고 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거에요. 사랑이 최종목표다. ‘힘’이 아니고 ‘사랑’이다.

제가 지난 오후설교에 그런 이야기했지만 그러나 사람들은 사랑을 삶의 일부로 보는 거에요. 왜 그러냐 하면 힘이기 때문에 그렇죠. 그래서 사랑의 반대말은 사랑을 가질 수밖에 그까이것 사랑, 돈 있고 힘 있는데 뭐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이처럼 사랑을 뒷전으로 만드는 그 무엇. 그게 바로 사랑의 반대말이에요. ‘힘’이에요. 힘입니다.

그건 누구의 힘? 본인이 갖고 있는 힘이지요. 목사가 교회를 가졌다. 이거 힘이잖아요. 가장이 빌딩을 가졌다? 이거 힘이란 말이죠. 나는 돈은 없지만 아이들을 8명 낳았다. 이것도 힘이다 이 말이죠. 나는 내 친구가 많다. 영구 친구도 있고 이것도 힘이다 이 말이죠. 여자혼자 살기 힘드니까 힘 있는 남자만나겠다는 거에요. 돈 주고 사겠다는 거죠. 그게 다가가는 사랑이에요. 그러니까 욕망이 있는 사랑은 실패로 끝나고 충동에 의해서.

주어지는 사랑이 되면 바로 그 사랑 앞에서 나라는 것은 사랑의 아이스크림 녹아지듯이 내 자신이 녹어져버려야 돼요. 내가 녹아지게 되면 뭐가 남는다? 나와 너가 있는게 아니고 중간에 뭐가 피어나요? 사랑만 피어난다. 이것이 아가서의 전체에 있는 분위기입니다. 다시 이야기하니 좀 기억이 좀 나십니까? 두 사람의 몸은 없어져 버려요. 없어지고 두 사람의 몸에 의해서 발견된게 있어요. 그게 ‘사랑’이다. 아가에 나오죠.

그런데 여기에 그렇다면 그걸 신약에서 너무 성급하게 적용하면 예수님의 우리의 신랑이고 우리는 신부다 이렇게 할 수 있겠지요. 할 수 있겠지요. 왜? 에베소서 5장에 보면 바로 예수님이 신랑이고 우리는 신부고 마태복음에도 나오고 하잖아요. 로마서 7장에도 나오고. 너무 성급하게 그렇게 이뤄버리면 중간에 중요한게 확 빠져버려요.

뭐가 빠지냐 하면은 오늘 본문이 빠져버린다고. ‘만지지 말라’가 빠져버렸어요. 만지지 말라를 저는 뭐로 보느냐 하면은 위반의 요소가 현재 주님과 결합할 때 그 위반의 요소가 우리 몸 안에 들어있다는 것을 우리가 까먹은거에요. 만지지 못할 몸을 가지고 우리가 우리 부모한테 태어났다는 사실을 우리가 놓쳐버리면 안된다 이 말입니다.

내 쪽에서 왜 다가갈 수 없는가? 위반의 그 주님의 몸과 합의를 하는데 방해되는 요소가 우리 안에 장착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거는 주님께서 부활한 몸을 마리아가 랍비여 랍오니여 선생님이여 하면서 만지려고 할 때 만지지 말라고 그 단절성을 다시한번 새롭게 부각시키는 취지가 바로 그 취지예요. “너는 네 자신을 아직도 모른다.”

우리 같으면 뭡니까. 주님 우리 아는 사이잖아요. 이렇게 나올거에요? 아는 사이하고 몸이 하나의 몸이 되는거하고 달라요. 우리는 또 이럴거에요. 주님 우리 아가 봤는데요 주님이 우리의 신랑이고 신부니까 주께서 능력 있으면 할 수 있습니다. 예, 능력으로 해내요. 성령오시면 할 수 있는데 그 과정을 놓치면 안된단 말이죠. 과정이고 뭐고 결과적으로 한 몸되면 되지. 아니요.

그러면 그것은 내 사적 구원용이 되어 버려요. 사적. 나만 챙기면 그만이지. 사적 구원 그것은 마귀의 주장이고 우리는 내 구원받기 위해서 성령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알리기 위해서 성경이 있는거에요. 개인적 구원 챙기면 우리는 코웃음치고 돌아설 인간들입니다. 주께서 만지지 말라 할 때는 우리는 약간의 불만 요소가 있을 수 있어요.

좀 만지면 어때? 그거 좀 만진다고 주의 일에 어떤 차질이 일어납니까? 차질이 일어나는데. 무슨 차질인지 모르겠는데요. 그러니까 너는 너를 모른다는 거에요. 너무 나댔어. 너무 함부로 예수님을 함부로 생각한거에요. 마리아가 오늘 본문에 마리아가 막달라 마리아일거에요. 마리아가 그냥 반가운 마음에 만지려고 했지요.

왜 그랬느냐 하면은 마리아의 마음은 자기 몸이 있잖아요. 인간의 몸은 내부적으로 어떤 단절성을 생각을 못하고 있습니다. 어제 그 몸하고 지금 내 몸이 동일한 동일 실체라고 본거에요. 어제 주님을 만났으니까 오늘도 주님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겁니다. 누가복음 8장 42절에 이런 말씀 나옵니다. 여러분 잘 들으면 잘 아실 말씀이에요. 43절에 42절에 중간에 후반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옹호하더라” 여기에 열두 해를 혈루증을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한 여자가 12년 동안 피를 흘리며 하혈하는 그러한 아주 비참한 병을 참혹한 질병을 앓고 있었어요.

여자가 뒤도 와서 그 옷가를 손을 대매 혈루증이 즉시 즉시 그쳤다고 되어 있어요. 즉시 그쳤다. 자, 몸 만졌습니까? 옷 만졌습니까? 단지 옷만 만졌을 뿐인데 즉시 혈루증이 그 저주받은 그 질환이 즉시 나았어요. 즉시 나았다는 말은 이 병 고침이 여자의 건강회복에 의미를 두지 않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짐작하겠지요?

즉시 나은 거에요. 차츰차츰 좋아진게 아니고. 차츰 원기회복한게 아니고 즉시 나았다고 하는 것은 12년이에요. 12년과 즉시를 한번 비교해보세요. 12년 동안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참 고생했거든요. 남자들은 그냥 남자 아니고 군에 갔다온 남자들은 이걸 알아요. 우리할 때는 거의 3년이었거든요. 34개월. 36개월 34개월 동안 했다구요. 34개월 했다고요.

34개월 동안 한시도 잊지 못하는 것이 뭐냐 하면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거에요. 내 자유시간 갖고 싶다. 국방부가 준 스케줄말고 내가 내 임의대로 초이스할 수 있는 선택하고 정할 수 있는 내 자유를 얻고 싶다 그게 34개월 동안 한시도 잊지 않아요. 어떤 사람은 달력에다가 가위표치고 이럽니다. 빨리 죽고 싶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 너무나 허망하게도 제대날이 오게 되면 부대에서 빨리 나가라고 합니다. 즉시. 그러면 기다린 보람이에요? 아니면 국방부의 명령이 더 셉니까? 어느 쪽이에요? 취지가. 오래 기다렸으니까 그만큼 기쁨이 오는게 아니에요. 이거는 있으라 하면 있고 제대하라면 제대하는 그 명령에 우리는 그 제대군인은 종속되어있는 거에요.

즉시 나가야 돼요. 오래 있으면 안돼요. 오래 있으면 또 내일의 밥은 제사과에서 제사과라 하는 것은 밥하고 이런거에요. 제사과에서 그 사람에게 해당되는 밥이 안 나옵니다. 즉시로 나가야 돼요. 3월 23일 제대를 했는데 내 군대 이야기를 왜 하나? 그런데 눈이 펄펄 오죠. 3월말에 눈이 와요. 제대한 사람이 나 혼자 밖에 없어요. 서글프기 짝이 없어요. 뒤돌아보니까 고생했던 그 부대. 처량하기 짝이 없어. 그 의미를 몰랐는데. 내 운명이 내 열심과 내 인내와 노력과는 전혀 무관하구나. 나의 미래라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12년 했느냐 15년 했느냐 묻지 않고 38년 동안 병 들었느냐 묻지 않고 딱 믿기만 하면 즉시로 그만 ‘꺄르륵’ 합격. 주님의 주저 없는 조치에요. 나하고 사전에 조율하거나 의논하거나 협상한 적이 없습니다. 일방적, 그냥 국회에서 세 번 두드리는 것처럼 그냥 선포로 끝나버려요. 너는 해방이다. 너는 해방이다. 그런데 이 방금 누가복음 8장 42절이 어느 책에 있다고 했습니까? 어느 책에 있다고 했어요? 어려운 문제 아닌데. 이거 어느 책에 있다고 했어요? 누가복음에 있지요. 누가 복음이잖아요 “복음”.

복음은 뭐다? ‘즉시’. 아까 누가복음 2장 이야기는 종을 편안히 놓아주시는군요. 그리고 누가복음 8장은 즉시. 그럼 교회에서 외쳐야 될 것은 무엇입니까? 즉시로 종이 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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