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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90301b울산강의-레위기 22장 : 거룩한 사물자유게시판레위기

20190301b울산강의-레위기 22장 : 거룩한 사물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시작합시다.

성물이 단일성으로 준 것도 중요하지만 특히 오늘 본문 같은 경우에는 이게 물체라는 것에 의미가 있어요. 성물, 물건이잖아요. 물건이란 뭐냐 하면, 보이지 않는 분이 슬그머니 자기 물건을 소지품을 남겨놓은 거예요. 하나님은 빠져버리고. 하나님은 숨겨져 있고 물건으로 하는 거예요.

그 물건을 만질 때 잘못 만졌을 때 규칙과 함께 담아서 물건을 앞에 세워버려요. 그러면 사람들 보기에 하나님 뜻이라 하는 것은 상당히 간편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가까이 느껴질 수 있어요. 왜냐하면 성물이 있다는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굉장히 좋은 장점처럼 보이지요. 애들한테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그림으로 보여주고 손으로 만지게 하면 그야말로 체험할 수 있게 하면 이해가 되겠다 하겠지요. 그런데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율법에 대해서 이해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우리는 저주받기로 태어났고 우리는 뭘 해도 저주받아야 되고 인간은 어떤 수단을 해도 천국에 못 간다는 것을 느끼라고 그렇게 준 거예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뭐라고 생각하느냐 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는데 뭘 걱정하느냐, 설마 우리를 버릴 리가 있겠는가? 왜냐하면 버릴 것 같으면 아예 이런 거룩한 물건을 우리 앞에 제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미 거룩한 물건을 줬다는 말은 우리는 괜찮다는 그런 뜻으로 오해한 겁니다.

그런데 그들은 성물을 통해서 주께서 주신 취지를 몰랐어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것이 성물에서 나오느냐, 아니면 그 성물을 지키는 인간에게 나오느냐고 묻고 있는 겁니다. 상당히 어려운 말이지요. 하나님이 제시한 거룩한 물건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는 사랑과 구원과 거룩과 온전함과 의가 거기서 나오느냐, 아니면 그 성물에 대해서 제대로 처신했을 때 인간 쪽에서 나올 수 있느냐, 라고 묻는 거예요.

자, 어느 쪽에서 나오겠습니까? 인간 쪽은 안 나오지요. 성물을 줬다는 것은 성물만 준 게 아니고 하나님이 원하는 모든 것도 그 성물 중심으로 새로운 원리를 너희들을 통해서 새롭게 구상하겠다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사랑과 구원은, 적어볼게요. 사랑은 필요하지요. 천국은 사랑의 나라니까. 사랑과 구원, 구원도 필요하지요. 천당 가야 되니까. 사랑과 구원, 천국, 부활 다 마찬가지입니다. 대표해서 사랑과 구원은 인간이 행하지 않는 순간에도 살아 있다.

사랑과 구원, 하나님이 원하는 의, 거룩, 이 모든 것은 인간이 행하지 않더라도 이미 거기서 살아 있는 거예요. 그걸 이스라엘 사람들은 몰랐던 겁니다. 그들은 조건부로 생각했어요. 주의 말씀을 줬기 때문에 지시에 따를 때 우리가 지시에 합할 때 비로소 의가 되고 사랑이 되고 구원이 되고 거룩이 된다고 생각한 거예요.

하나님도 인간 없이는 제대로 될 일이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것도 부정적이 아니고 긍정적으로. 자기 자신을 좋은 역할 맡은 걸로 생각한 거예요. 안 되는 역할 맡은 걸로 생각하지 않고 되는 역할을 맡은 것으로 생각한 겁니다. 그것은 아담에 속한 인간이 태고난 거잖아요.

사람이 살 때 힘이 되는 경우가 어떤 경우입니까? 자기가 쓸모 있다고 여기고 자기가 가치 있다고 여길 때는 사람은 어떤 고난도 이겨냅니다. 그래, 안 이렇게 죽어서는 안 되는 존재지, 라고 버틸 수 있어요. 나의 의미를 누가 가졌다면, 가져간 사람에 대해서 비겁하게 물러서거나 주저앉을 순 없다는 겁니다.

이걸 이번 수련회 아가에서 했었는데요. 그게 뭐냐 하면, 내가 있음에 내가 사는 게 아니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때문에 내가 사는 거예요. 그걸 존재의 이유라고 하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살면서도 버틸 수 있는 것은 네가 있기 때문이야. 언젠가는 만나겠지. 김종환의 물안개 필 때 사랑을 위해서 나오는 것 있지요.

그래서 사람은 사랑 없이는 못 살아요. 고린도전서 16장 22절에 보면,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받는다. 살아도 그건 산 게 아니다. 주를 사랑한다는 말은, 주를 이용하겠다는 말과 정반대말이에요. 나 잘 되기 위해서 주가 있다는 말, 그것이 아니고 이제는 상황이 뒤집어졌다는 거예요. 내가 어떤 형편에 있던지 제 형편에 대해선 신경 안 쓰겠습니다. 주님만 계시다면 저는 어떤 지경에 있더라도 저는 감사하겠습니다. 이게 사랑이죠. 이게 사랑입니다.

그 비슷한 사랑이 뭐냐? 여자들이 아기를 낳고 난 뒤에, “아기야, 걱정하지 마라. 내가 어떤 수를 써서라도 네 분유 값은 댈게.” 그런 장렬한 마음, 그것이 바로 어렴풋이 유사한 사랑이라 할 수 있어요. 오늘 3‧1절 기념일이니까 말씀드립니다만 윤봉길 의사가 집을 나서면서 썼던 한시가 있어요. 그 시 내용이 뭐냐 하면, 남자가 밖에 나가서 뜻을 이루지 아니하면 집으로 돌아와선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홍커우 공원에서 벤또 던지고 죽어서 돌아왔잖아요.

사랑의 특징이 뭐냐 하면, 둘이서 하지만 하나가 사라지는 경우가 되는 거예요. 분명히 둘인데 각자 보기에 자기는 제로로 만들었으니까 나는 없앴으니까 누구만 남아요? 내가 사라지고 상대방만 남는 게 사랑이에요. 그러나 외부인이 볼 때는 둘이 남았지만 둘 사이에 들어가 보면 항상 저쪽은 남아있고 내 쪽은 저쪽만 있고 그래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해야 되는데 주님께서 어디로 사라졌습니까? 죽음으로 사라졌어요. 내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살아 있다고 사랑하느냐? 이렇게 묻는 거예요. 이건 인간의 능력으론 안 되지요. 바로 죽었던 분으로부터 연락이 와야 돼요. 그게 성령입니다. 죽었던 분에게서 연락이 오게 되면 산 사람에게 신경 안 써요. 살아 있다는 나한테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죽으신 분이 나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 있어요.

아까 이야기했듯이 죽음이란 사라진 거라고. 우리는 사라지신 분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안 사라진 것은 상대적으로 우리는 사랑할 필요 없어요. 미워해야 돼요. 한쪽을 사랑하면 한쪽은 미워하게 마련입니다. 천하 자식이나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하늘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가족을 미워하고 그러면 안 되지요.

왜냐? 없는 분에 의해서 주신 거라면 일종의 성물이니까. 이제 성물 이해되시죠. 성물이란 없는 분이 자기 자신을 내세워주신 거예요. 그렇다면 내 주위에 있는 가족이나 자식도 이걸 뭐로 보자는 거예요? 성물로 보자는 거예요.

그러니까 같은 인간이니까 사랑하자는 그런 인간적인 사랑을 말하는 게 아니고 반드시 주님이 개입해서 주님이 집게가 돼서 주님 사이에 연락이 될 때 비로소 우리 가정을 통해서 인간이 행하지도 않았는데 살아 있는 그 사랑과 하나님의 구원과 의와 거룩이 그 가정에서 피어나는 겁니다. 행하지도 않았는데 있어요.

그런데 교회 다니는 불신자들은 내가 그 말씀을 지켜야 거룩이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거룩은 주님 소유가 아니고 누구 소유가 되겠습니까? 그 말씀을 지켰던 내 소유가 돼버려요. 내 소유가 되니까 자기 자신이 아까워도 못 죽어요. 그동안 너무 충성한 게 아까워서 그 충성한 게 나의 것이 됐으니까. 너보다는 내가 낫다는 거예요. 왜? 나는 충성을 했다는 거예요.

자기를 부인하라 했는데 십자가는 반드시 앞에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 보라했는데 자기를 긍정하고 십자가를 바라보는 거예요. 엉터리 십자가에요. 그래놓고 한다는 말이 십자가 안다는 거예요. 십자가 알았으니까 이제는 부활 바라보자.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십자가라 하는 것은 예수님을 너무 사랑해서 내가 있더라도 나는 죽은 자로 간주하는 게 십자가입니다.

어떤 부부가 둘이 너무 사랑했어요. 아내는 아파서 강원도 홍천에 있고 남편은 약값 댄다고 서울서 아르바이트하고 온갖 것, 중국집 배달 등 열 몇 가지해요. 한 달에 한두 번 그 바쁜 중에 아내를 만나려고 밤에 차타고 와요. 만나고 헤어질 때 아내가 사랑하는 남편과 헤어짐이 아쉬워서 이렇게 해요. 당신 타고 가는 차를 보니까 마치 영구차가 나가는 것 같다고 해요. 오늘 제목으로 할까요?

참, 그 남편에 그 아내에요. 얼마나 남편을 사랑했는지. 그 여자가 누구냐 하면, 김종환의 아내에요. 당신 차 볼 때 영구차를 본다는. 우리는 매일같이 나를 실어 보내는 나의 영구차에 대해서 익숙해져야 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날 의식하는 순간 주님의 사랑은 날아가 버리고 그 앞에 나는 나만을 사랑하게 돼있어요.

그래서 성경 보면서 날 위로하려고 성경 봐요. 이미 자기만 사랑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레위기를 보면서, “주님, 나한테 뭐 해줄 건데요?” 맨날 지한테 뭐 해줄 것만 생각해요. 죽으라고 준 책을 살아 있는 나를 더 살려고 성경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거예요. 위로해주세요, 복 주세요. 성경 보고 복 받았다는 소리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교회 다니고 살림살이 나아졌다는 소리 듣게 해주세요. 맨날 자기만 생각해요.

이제부터 더 어려운 것 하겠습니다. 여러분 어려운 것 따라와야 돼요. 성물이죠. 성물은 사물이죠. 물건이니까 물체니까. 사물체계 또는 사물세계라 할 수 있어요. 사물계, 실제로 손에 만져지는 그런 것으로 주께서는 자기 자신을 율법으로 내세웠습니다.

주님께서 왜 물체로 주셨느냐 하면, 물체는 만질 수가 있어요. 물체를 만지게 되면 그 물체를 함부로 만지는 쪽이 있을 것이고, 함부로 안 만지는 쪽이 있을 게 아니겠습니까? 함부로 만지면 하나님 나라에서 끊어진다는 거예요. 함부로 안 만지면 하나님 나라에서 계속 유지가 된다는 겁니다. 굉장히 하나님이 간편하게 하면서도 엄중하게 이야기하시죠. 물건을 주고 상당히 살벌하게 이야기하신 거죠.

그런데 학개를 잠시 보겠습니다. 학개를 보면 이 사물적 조치가 이스라엘 전체를 어떻게 망하게 했는지 나옵니다. 구약성경 1311페이지 학개 2장에 보면 10절부터 여러 절 되는데 제가 죽 읽어볼게요. 긴데요.

“다리오 왕 이년 구월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맞지요. 찾아보니 나오지요. 그 말씀이. 지금 하나님이 물었어요. 여러분 답변해보세요. 제가 물은 게 아니고 주님이 물었습니다. 되겠느냐고 묻는 것은 백발백중 정답은 뭡니까? ‘아니요’라고 대답해야지요. 성물이 되겠느냐? 성물이 안 됩니다. 이렇게 답변을 유도하게 되지요. 하나님께서. 그 다음에 봅시다.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니라 학개가 가로되 시체를 만져서(사물이니까 만짐이 가능하지요)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중에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예’라고 부정합니다. 맞습니다, 라고 했지요.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의 거기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따라서 너희들은 부정하고 부정하니까 하나님의 율법의 뜻에 따라서 저주받아야 돼, 라는 결론이 나온 겁니다.

이게 얼른 보니까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요. 지금 하나님께서 물체, 사물을 가지고, 아까 이야기했잖아요.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을 몰라요. 저주받은 줄 모른다고요. 자기가 태어날 때부터 저주받아야 합당하고 하루 세 끼고 햇빛이고 공기고 필요 없어요. 가뭄 들고 개죽음 당해도 우린 할 말 없어요. 그런데 문제는 자기가 그런 존재로 태어났다는 것을 시인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앞으로 착하면 될 것 아닌가. 선악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잘하면 되지, 성심성의껏 하면 되지 이렇게 나오지 백날 해봐야 소용없다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그렇게 되면 자살하기 때문에.

그런데 주님께선 추궁해나가는 겁니다. 어떻게? 만지고, 만지고, 만지는 거예요. 계속해서. 주님이 주신 사물의 특징이 뭐냐 하면, 잘못된 만짐은 더러움이 돼요. 참, 오늘 강의에서 제일 어려운 대목입니다. 하나님 뜻은 뭐냐 하면, 잘못 만지면 더럽다. 이걸 어떻게 바꾸느냐 하면, 더럽기 때문에 네가 함부로 만질 수밖에 없도록 내가 유도할게, 라고 된 거예요.

미칠 지경이에요. 하나님 앞에 잘해줘도 소용없어요. 하나님 쪽에서 우릴 뭐로 몰아갑니까? 더러운 본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상황을 그렇게 몰아가요. 20대에 교회 나와서 주일학교 교사하고 성가대하고, 어느 총각인지 모르지만 저런 믿음 좋은 처녀 데려가면 복 받은 거라고 주위에서 서로 중신 넣으려하고 괜찮은 총각 소개시켜주고 했어요.

결혼하기 전에 믿음 좋고 봉사 다하고 했지요. 결혼하고 난 뒤에 집안 다행스럽게 행복하고 따박따박 남편 월급 잘 주고 일찍 들어오고 아무 탈 없고 애들 잘 보고 살림도 남편이 다 알아서 설거지 다해주고 아내는 쇼핑하고 돌아다니고 친구 만나 수다 떨고 카페에 있어도 가정 잘 돌아가요. 남편이 양보해서 그렇겠지만.

그런데 그 아가씨 믿음 좋습니까? 믿음 좋은 거예요? 그래서 믿음 좋아지겠습니까? 20대에 성가대하고 주일학교 할 때 자기 본색을 알았어요, 몰랐어요? 몰랐지요. 선악구조를 갖고 있었던 거예요. 내가 지금은 가정형편이 그래서 시집도 못 가겠지만 잘만 하면 괜찮은 총각 물을 수 있다.

하나님이여, 저 성가대 봉사하는 것 보이지요? 괜찮은 총각, 다른 건 욕심내지 않겠습니다. 키 크고 인물 좋고 성격 좋고 믿음 좋고 돈 되고. 맏이 아니고 시어머니, 시아버지 일찍 돌아가시고 남편 유전자 좋아서 선천적인 병 없고 오직 나만 사랑하고. 다른 것 안 바라고 그것만 있으면 됩니다.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겠어요. 주위에서 자기 보고 믿음 좋다고 하니까 믿음 좋은 사람이 기도발 나올 것 아닙니까. 주위에서 다 그렇게 하니까. 그럼 하나님께서 왜 그런 총각 만나서 결혼케 했습니까? 니 본색은 절대로 주님의 뜻은 따라 본 적도 없고 따를 능력도 없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한 거예요. 그게 주님의 구원의 방법이라니까요. 안 믿어지지요.

목소리도 아픈데 제 얘기 할 것도 없어요. 호세아 봅시다. 호세아에 구원의 방법이 너무나 명백하게 나와 있습니다. 1257페이지. 왜 자꾸 선지서를 들추느냐 하면, 오늘 본문이 사실은 예수님 십자가에서 완성이 돼요. 그 중간에 선지서가 나오잖아요. 과정을 거쳐야 할 것 아닙니까.

호세아 1장 7절에 보면, 내가 너희를 구원할 때는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병거로 구원하지 않는다고 나와 있지요. 세상에선 힘을 원하지요. 능력 원하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은 활과 칼로 하지 않지요. 뭐로 하느냐? 긍휼히 여기죠. 불쌍히 여긴단 말이죠.

그러면 구원하는 방법이 불쌍히 여기는 거라면 그들은 뭘 해야 됩니까? 여기에 호세아라는 선지자가 누구와 결혼했느냐 하면, 창녀와 결혼해야 돼요. 완전히 바닥을 쳐야 돼요. 창녀와 결혼했다고 하니까 호세아가 마음이 넓어서 창녀와 결혼했구나. 이렇게 생각 안 하고 직업이 창녀지 얼굴이 예뻤겠지. 창녀인데 창녀 중에 제일 예뻤겠지. 너 같은 창녀는 처음 봤다. 성격 좋고 얼굴 예쁘고.

직업만 창녀지 나머지 요소는 일반 다른 여자들보다 뛰어나게 아름답다고 하지 마세요. 그냥 망가지고 망가진 여자로 보시면 돼요. 행 더럽고 성질 더럽고 지밖에 모르고요. 이스라엘이 감추고 있는 본색을 여자라는 인물에 다 담고 그 인물과 호세아가 결혼한 거예요. 이건 뭐냐 하면, 누가 봐도 도저히 긍휼을 받을 쨉이 된다, 못 된다? 긍휼 받을 쨉이 못 되기 때문에 긍휼로 구원하신 거예요.

그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으로 구원할 방법 없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고. 율법을 왜 줬습니까? 네가 어느 정도로 엉망진창인 것을 모르기 때문에 율법을 준 거예요. 깨끗하다고요? 그러면 내가 철저하게 사물체로 전달되는 거룩을 거기다 집어넣어봐?

여러분, 제사장이 자기가 성물을 쌌던 옷이 우연히 컵에 닿을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정해놓은 사물체계에 보면 성물에 더러운 것이 닿으면 그 더러운 것이 또 더러운 것 하게 되면 이미 저주가 임한 것이 다른 것에 저주를 오염시키는 거예요. 율법적으로 보면 저주가 저주를 오염시키지만 복음적 관점으로 보면 처음부터 저주받기로 돼있는 것이 발각되고 발각되고 노출되고 노출되는 방법을 사용하시는 거예요.

얼마나 주님께선 용의주도하게 일하시는지 몰라요. 뭐 예수 믿어서 구원받는다고요? 아니요. 집에 가만히 있어 보세요. 저주되게 하실 겁니다. 하나님 방법이 저주되게 하시고 저주의 힘이 어디서 나왔다? 십자가에서 나와요. 성물에서 나와요. 단일성에서 나온 거예요. 그게 최종성이고 유일한 기준이고.

심판 기준이 우리로 하여금 너 지옥 가야 돼, 라고 할 때 옳소이다. 그러면 천당 가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런 고백했다고 천당 가는 게 아니고 네가 저주받았다고 깨닫게 하는 것은 성령이 임해야 가능하거든요. 세상에 성령이 임하지 않았는데 자기 맨 정신으로 나는 지옥 가야 된다고 떠벌이는 사람 없어요.

다 지 잘난 맛에 살아가는 겁니다. 교회 가보세요. 다 지 잘난 맛에 살아간다고요. 그래서 교회 가면 눈치코치 하잖아요. 너보다 내가 낫다 이 말 아닙니까. 아이고, 인간 돼서 저렇게 할까, 하잖아요.

학개 다시 하겠습니다. 학개 이야기는 뭐냐 하면, 성전을 소홀히 한 겁니다. 하나님의 건물을. 너희가 성전을 소홀히 했다는 말은, 성전은 원래 거룩한 곳이에요. 거룩한 곳이 허물어지도록 방치했다는 말은, 성전 그까짓 것, 다시 말해서 거룩 그까짓 것, 단일성 그까짓 것, 요새 말로 십자가 복음 그까짓 것 없어도 나는 얼마든지 떵떵거리면서 행복하게 잘 먹고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뭉친 거예요. 이스라엘이 그 당시에.

여러분, 선지자를 보낸다는 것은 하늘에서 예수님 보낸 것과 같은 취지입니다. 그들이 정상적으로 돌아올 것 같으면 선지자 안 보내요. 선지자가 왔다는 것은 문제 있다는 겁니다. 지적사항이 있다는 거예요.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보고 찬송가를 불러도 은혜 안 되는데 어느 순간에는 어떤 구절 하나가 가슴에 와 닿지요. 이거 천사 보내신 거예요. 감사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은혜로 된다는 말은 뭔 뜻이냐 하면, 내가 주제넘게 시건방졌다는 것을 그 순간에 깨닫는 거예요. 주제도 모르고 내가 까불어도 너무 까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겁니다.

그럴 때는 주변에 자기 환경과 처지가 갑자기 우울해지던가요, 안 그러면 기쁨과 감사가 터져 나오던가요? 기쁨과 감사가 터져 나와요. 바보같이 이런 은혜를 받아놓고 이런 복을 받아놓고 내가 뭐 하러 사소한 일 때문에 머리 싸매고 고민하고 걱정하고 염려하고 벌벌 떨면서 부들부들 떨면서 공포에 사로잡혀서 도대체 이런 복을 받아놓고 망했다고 철딱서니 없이 그 말이 왜 튀어나오느냐. 후회되면서 감사되는 거예요.

장사는 안 되지 종업원 둘 있지 돈 달라고 해대지 이놈의 장사 왜 했나 싶고. 누구 가정 이야기하는 것 아닙니다. 이렇게 해도 십자가 피로 용서받은 걸 생각하게 되면 까짓 것 망하는 세상 이 맛도 경험해볼만하지 뭐. 장사 안 되는 맛도. 이미 게임 오버인데요. 끝난 게임 아닙니까? 천당 가는 게임 끝났잖아요. 죽어도 천당이잖아요. 거지 나사로처럼.

남은 지옥 같은 세상에서 어떤 경험인들 못해요. 이런 경험, 저런 경험 해보지요. 그런 경험 속에서 내가 얼마나 부족하며 내가 얼마나 문젯거리도 아닌 걸로 머리 싸매고 망연자실 걱정 근심하는지 그런 것들도 체험해보는 주께서 주신 체험이기 때문에 괜찮아요. 아까 했잖아요. 사랑과 구원은 내가 행하지 않더라도 한다고요.

그래서 이런 말씀 있어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이제 이 말씀의 의미하는 바를 아시겠지요. 네가 행한 것과 주님이 주신 사랑은 별개 문제다. 이미 행함 없이 사랑을 받았으면 그까짓 것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가주고, 그까짓 것 겉옷 달라하면 속옷까지 벗어줘라. 그까짓 것 그게 뭔 대수냐 그 말이죠. 뭐 그렇게 심각한 문제냔 말이죠.

세월호 애 빠져죽었다. 세월 따라 갔겠지. 니 자식 안 죽었거든 그런 소리하지 마라? 내 자식 죽으면 그때 아는 거예요. 내 죄를 깨닫게 되면 초연하게 될 수 있어요. 남의 사정도 모르고? 그래 너는 내 사정 아냐 말이죠. 은혜를 아는 내 사정 알아?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라고요? 왜 함부로 이야기 좀 헐란다.

이게 뭐냐 하면, 최종성이잖아요. 모든 걸 아는 사람은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 같아. 최종성, 모든 인간은 어떻게 해도 지옥이다. 어떤 것을 해도 죄다. 헌금해도 기도해도 강의해도 설교해도 죄다. 은혜 받아도 죄다. 모든 게 죄 입장이거든요. 왜? 거룩은 없으니까. 거룩은 내 행함과 관계없이 이미 선물로 주어진 거예요.

왜냐하면 예수님 자체가 사물체로, 인간의 육체 자체가 사물 아닙니까. 사물체에서 짜내니까 한 자로 뭐가 나왔습니까? 피가 나왔잖아요. 사물이잖아요. 피로 말미암아 추상적인 죄가 없어진다는 거예요. 어떻게 사물과 추상이 연결됩니까? 인간의 논리로 풀 수 없어요, 이게. 보통 어려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보통 네가 잘못 만지면 죽는다든지, 문둥병이나 유출병이나 뒤에 나오지요. 성물을 먹지 못할지니. 좀 먹으면 어때? 그런 생각해보세요. 성물을 만지면 네가 죽는다고 했거든요. 과학적 사고방식으론 성물을 만지면 여기서 안 좋은 바이러스가 나와서 그게 잠복돼 있다가 며칠 뒤에 죽든지 이러잖아요.

선악과 따먹는 날에는 정녕 네가 죽으리라 해서 그 날 당장 죽었습니까? 안 죽었지요. 각종 바이러스 그런 것 없어요. 아담이 구백 살 이상 살았잖아요. 오래 살았어요. 창세기 5장 4절에,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매 그가 구백 삼십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살기도 오래 살았다.

따먹는 날에 안 죽고 930년까지 왜 길게 끌고 갑니까? 그 자체가 결국 죽잖아요. 죽음이 기다리면 이미 죽은 자에요. 죽을 때 되면 930년 남아있지 않습니다. 없어져요. 달랑 하루만 남아있어요. 죽는 그 날만 남아있어요. 그러면 뭐와 같으냐 하면 인간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돌아서면 아무것도 없어요. 지난날만 있지 사진첩에만 있지 진짜 현장에는 늙어가는 내 모습만 있지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성경을 볼 때는 이렇게 보셔야 돼요. 이미 죽었다 치고 봐야 돼요. 이미 죽었으면 유령이지요. 유령이 날아다니면서 성경보시면 돼요. 어린아이들 학부모 모임이 있지요. 학교에서 학부모 모임 있다고 하면 유령이 돼서 날아가세요. 학교 가서 유령인 체 다과회 앉아서 유령인 체 건의하세요. 맞벌이하는 데 애들 오래 붙들고 공부하라 하고 일찍 와서 사고 날까 걱정된다고. 방금 이야기하신 분 누굽니까? 김 유령입니다.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죽은 사람이 이야기하는 거예요.

모든 성경은 죽은 자가 이야기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이야기하니까 죽은 자가 이야기하고,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자기가 죽었어요. 죽은 자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처럼. 사실은 우리 보기에는 살아 있는 것 맞지만.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려오는 겁니다.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거예요. 제가 지난 낮 설교에서 했잖아요. 스데반 집사와 거지 나사로가 여유 있다 했지요.

사물체에서 성물을 함부로 만지지 말라. 끊어진다고 했을 때 이런 것 먹지도 말라는 말은,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인간을 하나의 사물로 보는 겁니다. 그것은 장차 하나님이, 육체가 없으신 하나님이 사물로 오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겁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을 앞당겨서는 성물이 된 거예요.

예수님을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것과 성물을 잘못 만지면 먹지 말라는 것을 먹으면 지옥 간다는 것과 같은 걸로 봐라 이 말이죠. 왜 그렇게 하느냐? 인간 자체를 하나님이 사물로 신체로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을 신체로 봐야 될 이유가 뭐냐 하면, 인간이 죽는다는 것을 신체로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래요.

성경에서 살아 있다는 것을 호흡해서 숨이 나오면 살아 있는 거고 호흡에서 숨이 끊어지면 죽은 거예요. 요새는 병원에서 심전도를 갖다 놓고 조사를 하는 거예요. 우리 어머니 돌아가실 때 완전히 숨이 끊어졌어요. 돌아가셨다고 간호사가 적고 있는데 의사가 기다려봐라. 심전도 보니까 살아 있어. 그 모습을 계속 보고 있는데 심장은 뛰고 있는데 우리 느낌으로 뛰고 있는 게 아니고 그래프로 나타나는 거예요. 좀 지나고 나니까 그래프가 일직선으로 되는 거예요. 간호사에게 수습하라고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했던 어머니가 이틀 전에도 이야기했거든요. 살아 있었어요. 날짜를 적용하니까 돌아가셨어요. 오늘 며칠입니까? 3월 1일 아닙니까. 살아 있어요. 그런데 날짜만 지나가면 우리는 일직선으로 그어져요. 죽었어요. 죽은 자는 죽음의 믿음과 소망, 사랑 아무것도 없습니다.

살아 있을 때 주님이 그 사람 속을 통해서 무엇을 발현했는가가 중요해요. 예수님의 피가 살아 있을 때 나오도록 고백돼 있었는가가 그게 중요한 겁니다. 본인이 한 게 아니고 주께서 그렇게 하게 하신 거예요. 그래서 치매 걸려도 구원받습니다가 되는 겁니다. 오늘 제목을 치매와 구원?

치매 걸리면 예수고 뭐고 아무것도 몰라요. 그래도 구원받습니다. 왜냐하면 평소에 그 사람을 통해서 무엇이 발산되느냐? 주님의 사랑과 구원이 발산돼있거든요. 어떤 식으로? 나는 지금 죽어도 마땅하고 나는 죄인이라는 것이 정신 멀쩡할 때 죽어가면서 계속해서 그 모습이 발현되어 나왔거든요.

내가 행함으로 이렇게 산 게 아니고 은혜로 살고 햇빛과 공기도 주께서 한 것도 없이 그냥 공짜로 줬다는 것, 안 줘도 되는데 매일같이 미세먼지 극히 나쁨이 돼야 됨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사흘에 한 번은 숨 트게 하잖아요. 사흘에 한 번은 저쪽에서 편서풍 안 불어오잖아요. 한 번쯤은 울산도 괜찮아지잖아요. 울산도 일주일에 한 번은 날 좋을 때 있을 걸요? 날 좋은 게 정상이 아니고 나쁜 것이 정상으로 볼 정도로 우리 자신을 제대로 알아야 됩니다.

레위기 다시 봅니다. 문둥병자나 유출병자나 정하기 전에는 성물을 먹지 말라고 했거든요. 이게 중요하지요. 유출병, 문둥병, 인간이라 하지 말고 신체란 말이 맞는데 신체 또는 사물로 봅시다. 성물 자체가 물체기 때문에 인간도 같이 물체로 보자. 물체 대 물체로 언급은 이게 접촉이 가능하기 때문에 주께서 아주 쉽게 하나님의 거룩을 표현해주는 거예요. 거룩인 것과 아닌 것과.

거룩이 거룩이 아니고 거룩이 있음으로서 거룩을 잘못 되게 만지면 거룩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뭐가 돼요? 거룩이 아님이 비로소 그 현장에 나타나는 겁니다. 제가 말로 하니까 어렵지만 여러분 감은 오지요. 우리가 더럽다는 걸 몰라요. 거룩이 나타났을 때 더러움을 알아요. 우리 인간끼리 있으면 자기가 죄인인 걸 몰라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야 알아요.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간끼리 죄인이라는 것은 상대적이에요.

여기 4절에 나오는 문둥병자, 물체거든요. 물체라 해서 물체입니다. 이 물체는 그 당시 사회에서 어떤 거냐 하면, 문둥병자나 유출병 피가 흐르는 이 사람들은 신의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그렇다는 평판이 이스라엘 사람이나 고대 민족들에 퍼져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건강치 않기 때문에. 건강하지 않은 사람, 그걸 고질병, 난치병이지요.

여러분 주변에 dna 잘못 돼서 약하게 태어나서 골골한 사람들 있지요. 병원에 가도 병명을 모르겠다는 사람이 한두 명 본 게 아니죠. 많이 봤지요. 병명을 모르겠습니다. 아프다 하는데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런 사람 많잖아요. 그럴 때 우리의 느낌은 뭐냐 하면, 저주받았구나. 그러니까 이 기준은 뭐냐 하면, 멀쩡한 자기를 기준으로 삼을 때 병이 날 희망이 안 보이거든요. 그때는 뭐냐? 사람의 손을 떠났다 이 말이죠. 다른 말로 하면 신의 저주를 받은 거예요.

예수님 당시에 베데스다 못가에 못 고치는 사람들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선착순 한 명이죠. 왜 두 명이 안 되느냐 하면, 물이 움직일 때 한 명만 받아줘요. 한 명으로 물 움직임의 효과가 다했어요. 자비의 연못이라 하는데 자비니까 보너스를 주는 거예요. 이 말은 뭔 뜻이냐 하면, 네가 아파도 싸다. 네 죄가 아니면 네 조상의 죄 때문에 너는 분명히 그런 벌을 받아야 된다는 거예요.

율법에 보면 조상이 잘못하면 그 죄가 몇 대까지 삼사 대까지 가요. 십계명에 나와요. 어떤 사람이 날 때부터 소경됐다는 말은 태어나서 죄 지을 일은 없을 것 아닙니까. 그러면 날 때부터 소경된 것은 부모의 죄를 물려받은 거예요. 그러면 십계명의 원칙대로 조상 하나가 죄를 지으면 그 죄가 삼사 대 가는 거예요.

사람들은 그렇게 해석한 겁니다. 아까 첫째 시간에 했지요. 인간의 해석은 옳다, 그르다? 그르지요. 잘못된 참고로 십계명을 해석했고 하나님은 그런 잘못된 해석을 유도했고 그 잘못된 분위기에 물체적 접촉 관계를 충분히 이용한 거예요. 유출병, 문둥병 사람 손 못 댑니다. 건강한 사람 입장에서 저주받은 거예요.

그쪽이 저주받아줘야 자기 건강한 걸 저주의 반대말이 뭐다? 복이죠. 자기는 복 받은 거예요. 복 받아서 행운을 받아서 건강한 거예요. 다시 말해서 지가 잘난 거예요. 그래서 그걸 하나님은 어떻게 이용하느냐 하면, 네가 만약에 죄를 범하면 네 건강을 잃어버린다는 쪽으로 하나님이 이용해요. 왜냐? 인간은 물체기 때문에.

요한복음 8장에도 그런 말씀 나오지요. 간음한 여인에게 네가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도록 죄 짓지 말라고 하지요. 십자가 전입니다. 유대인의 사회에요. 인간은 신체로 돼있고 거룩은 거룩한 것과 접촉하면 거룩이 되지만 부정한 것과 접촉하면 부정하게 된다는 그것이 잘못된 해석이 꽉 차있던 그런 시대에요.

오늘 본문에서 유출병자에게 뭐라고 하느냐 하면, 그 다음에 뭡니까? 정하기 전에는 성물을 먹지 말라고 했지요. 아예 못 먹는 게 아니고 어떤 조건을 달아요. 뭡니까? 깨끗하게 하기 전까지는 성물을 먹지 말라 했지요. 먹으면 죽어요. 그러면 하나님의 계획은 드러났네요.

자, 거룩이라 해놓고 거룩에 접근해서 인간은 물체고 거룩도 성물이니까 추상이 아니잖아요. 구체적 물건, 성물이니까 물체와 물체가 접촉하게 되면 여기서 거룩이 발생되잖아요. 하나님께선 이렇게 하면서 중간에 조건을 집어넣습니다. 이러이러한 자는 거룩한 성물을 먹지 못한다. 만약에 먹으면 네가 저주받는다고 돼있거든요.

그러면 아까 이야기한 거룩한 것이 등장했다는 말은, 인간은 요구받게 돼요. 네가 거룩 쪽에 설래, 아니면 저주 쪽에 설래? 라는 요구받는 게 돼버려요. 그러면 인간은 오해하기를 지금 자기를 중립으로 보는 겁니다. 말씀대로 제대로 살면 내가 거룩해질 수 있구나, 라는 가능성을 기대하겠지요. 중립 쪽에 있으면서 내 선택에 의해서 어떤 괜찮은 결과가 주어진다고 생각하겠지요.

오늘날 교인들이 말씀 볼 때 다 그런 자세로 보잖아요. 나는 괜찮은데 이 말씀 지키면 복을 더 받고 어기면 내가 벌 받는다. 그 정도는 각오 돼있다는 마음으로 오잖아요. 그 생각이 잘못된 거예요. 아까 했잖아요. 하나님이 율법을 준 것은 너의 그런 시도 자체가 마귀적 사고방식이다. 저주받을 마귀적 사고방식이란 걸 알고 율법을 거기다 맡긴 거예요.

하나님께서 문둥병자와 유출병자는 어떻게 해야 된다? 이것을 정하게 깨끗하게 하고 난 뒤에 만질 수 있다는 말 아닙니까. 그러면 여기서 갑자기 뭐가 들어갔어요? 문둥병과 유출병을 정하게 하는 방법이 뭐냐? 이게 사물이 돼요. 어린양을 잡으니까. 어린양이 또 사물 아닙니까. 물컹물컹한 짐승이잖아요. 전체가 지금 물체들이 배치돼있어요.

제단도 돌로 만들었으니까 물체지요. 물체니까 실제로 공간을 차지하게 되고 정한 시간에 따라서 칼로 짐승을 잡는 것도 피를, 피로 말미암아 죄 용서받는다는 피가 또 물체잖아요. 신약에서는 그게 물체가 아니고 십자가 사건이지만. 그걸 피라는 물체란 용어로 사용해버린 거예요. 왜냐하면 그 안에 십자가의 능력이 거룩하지 못한 우리를 행함과 관계없이 자체가 선물로 주어지기 때문에 피로서.

다 이해되는 걸 제가 무례한 욕심으로 생각하고 그냥 나가보겠습니다. 어린양을 예를 들어서 정결케 한다면 어린양이 소위 멀쩡한 사람한테는 소용없어 보이지만 문둥병, 유출병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무슨 분류다? 이미 그 당시 사회에서 저주받은 자로 분류된 사람이죠.

저주받은 자도 거룩에 참여할 수 있다는 조건을 거룩이 등장하면서 조항으로 이미 제시되고 그럼 사람은 어디 주목해야 돼요? 나는 문둥병 아니니까 기분 좋다, 먹자. 이러면 안 되고 정결케 할 때 여기에 뭐가 들어가느냐 하면, 희생이 들어가요.

여러분 오늘 아침, 점심 드셨지요. 그럼 거기에 뭐가 들어가겠습니까? 예수님의 희생이죠. 그러면 그 희생은 멀쩡하고 잘난 사람한테는 의미가 없지요. 그럼 우린 뭐냐? 문둥병자 되도 상관없고 유출병, 고질병 되도 우리는 어쩔 수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태어난 게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그 밥 안에 뭐가 들어있다? 그 피로 용서한 십자가의 은혜가 담긴 채 우리에게 밥을 먹으라 한 거예요. 그러니까 밥 속에 십자가가 들어있는 거예요. 밥을 씹는 게 아니에요. 십자가를 씹는 거예요. 십자가를 먹고 마시는 거예요. 먹든지 마시든지 복음을 위해서 사는 거예요, 우리가.

문제는 우리가 돌대가리라서 그게 생각이 안 난다는 것. 우린 밥 먹고 빨리 볼 일 보기에 바쁜 거예요. 반찬 없다고 투정부리기 바쁘고 국 식었다고 짜증내기 바빠요. 싫으면 니가 국 끓여 먹든지. 니는 손발 없나. 밥을 주는 것은 여자의 할 일이다. 헌법에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아무나 노는 사람이 밥 해야지요. 맞는 말입니까. 건강한 사람이 밥해야 되고 할 일 없는 사람이 밥해야 되고. 점점 그렇게 될 겁니다.

성물 안에는 율법이 들어있고 율법의 내용은 피입니다. 노아언약에서 정결한 피가 담겨있고 피를 성물이란 물체로 안에다 앙꼬처럼 담아놓고 그 성물로 알기 쉽게 유치원 아이들처럼 정말 어린아이처럼 가르치는 거예요. 이것 함부로 만지면 안 돼. 더러운 사람은 못 만져. 하지만 네가 정결한 제사를 드리고 예배를 드리면 저 거룩한 걸 만질 수 있어. 이렇게 가르치는 거예요.

그렇게 만졌으면 거룩이 된 거죠. 제대로 만졌다칩시다. 그러면 거룩이 돼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지요. 그런데 그 다음에 만질 때 정결한 예식은 생각 안 하고, 아이고, 귀찮아 죽겠어. 성물 또 먹나. 맛도 없는 것 또 먹나. 만약에 제사장이 또는 여기 제사장 자녀 가운데서 그 뒤에 나오는데 설정한 사람이나 흠 있는 사람은 더럽히지 말라는 하여튼 조건이 많아요. 자꾸 조건이 늘어나요.

조건이 늘어난다는 말은, 전에 거룩하면 됐지 또 거룩 되겠지. 이게 안 통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물체는 오래 안 남아요. 그 성과가. 여러분, 안식일 지키고 끝났습니까? 돌아올 안식일 또 있어요. 저번 안식일 지켰으면 구원된 겁니까? 다음 안식일 조져버리면 그건 다시 파멸이에요. 이게 바로 구약시대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는 어떻습니까? 단번에 너희가 거룩함을 입었노라. 거룩을 소유한 게 아니라 거룩이 덮쳤느니라. 예수님의 피로. 이게 히브리서 10장 10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제사가 구원되지 못한 문둥병 같은 우리를 자기희생으로써 하나님,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우리를 완전히 덮어서 커버했으니 우리의 자랑은 오직 십자가뿐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하신 일입니다. 우리가 지혜로 아이디어를 끄집어낸 일이 아니고 일방적으로 제시한 그 일 그 속에서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는 줄 알았사오니 그저 주님의 희생만 생각하고 주님의 십자가의 고마움을 표하는 성도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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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5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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