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51 - 열매와 실적
[19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51 - 열매와 실적 19,01,21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오늘은 교재 120페이지부터 하겠습니다. --------------------------------------------사도바울이 말하는 성령의 열매, 예수님의 부활, 재림, 이 모든 것은 어디서 나온 것이냐 하면, 바로 유일하게 소용이 있는 십자가가 사건화가 되어서, 그것이 아이온(세대)에서 반복적으로 실시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것을 전도서 9장 1절을 통해서 봅시다. --------------------------------------------(전 9:1) 내가 마음을 다하여 이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펴본즉 의인과 지혜자나 그들의 행하는 일이나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 미래임이니라 * 두 개의 세계 !!성령의 열매, 예수님의 부활, 재림과 같은 것은 성경이 다 나오는 것인데, 성경이 다른 책들과 다른 점이 무엇인고 하니, 다른 책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실려있지만, 성경은 인간들이 할 수 없는 내용이 들어있다는 겁니다. 천지를 창조하는 것이나 마지막 심판도, 우리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그래서 성경을 바라보는 마음은 아주 간단한데,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접어야 한다는 겁니다. 자기가 할 수 없는 것이 성경에 있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을 의미한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을 거부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들이 아무리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천국에서 만납시다" 라고 해도, 그것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렇게 우리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인간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구원이 되기 때문에, 그러면 당연히 "내가 할 수 있다" 라는 것은 방해가 된다는 겁니다. 성경을 보면 이런 내용들이 나오는데, 그런데 성경을 덮었다고 한다면, 우리가 어릴 때부터 줄곧 살아온 현실이라는 것이 우리 앞에 등장하는데, 그 현실은 자기가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계라는 인식이 굉장히 강렬하다는 말이죠. 그런데 성경을 펼치면 인간이 할 수 없는 것들만 있다는 겁니다.그런데 여기서 얼굴을 이 세상으로 돌리게 되면, 이쪽 세계는 어릴 때부터 자기가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계인데, 이것을 두고 사람들은 '현실' 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자기가 그냥 가만히 있는데 누가 돈을 주고 밥을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한 시간에 8,300원을 하는 최저임금이라도 받을 수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자기가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생기지 않는 것이 현실인데, 반면에 성경의 세계에서는 자기를 부정하는데, 왜냐하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으로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말이죠. 그런데 이쪽은 자기가 해야만 한다는 겁니다.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굶어죽는다는 것이죠.* 하나의 몸, 두 개의 자아 !!그러면 자아가 어떻게 됩니까? 몸은 분명히 하나인데, 그런데 두 가지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밖에는 없다는 겁니다. 즉 이 세상 속에서의 자아와, 성경 속에서의 자아가, 그게 동일한 자아가 아니라, 다른 자아이어야 한다는 말이죠. 자아가 다르다는 겁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성경 속의 세계라고 여기는데, 그런데 그것이 무엇이 문제인고 하니까, 현실이 자기를 품고 있다는 말이죠. 대구의 인구조사를 하면 자기도 숫자 '1'로서 포함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을 볼 때는, 성경 속의 세계 따로, 그리고 자기도 따로 되어있다는 말이죠. 그렇게 우리는 현실 속에 포함이 되어있기 때문에, 그런 상태에서 성경을 보게 되면 "어쩔 수 없다" 라고 하는 자기 위치가 밝혀진다는 겁니다. 즉 "현실 속에서 내가 이렇게 해야 산다" 라고 하는 원칙, 그것은 자기가 선택하고 결정할 문제가 아니고,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이죠. 물론 일을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는 있는데,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자기가 해야하는 일까지 대신해서 누군가가 해야한다는 겁니다. 즉 희생을 해주어야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그것은 남을 이용해서 사는 것으로, 즉 남을 등처먹고 산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부모가 이제 은퇴해서 생활비가 없어서 자식이 보태줄 때, 그러면 그것은 자식이 부모를 대신해서 일하는 것이고, 또한 자식이 돈이 없어서 부모가 생활비를 대주면, 그것은 부모가 대신해서 일을 하는 것이란 말이죠. 그렇지요? 아무튼 여기서는 자아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노동이라는 고된 일을 해야하는데, 그런데 그게 힘들기 때문에 하기 싫다고 하면, 그러면 누군가가 자기의 그 힘든 것까지 같이 해주고, 그러면 거기서 자기는 그냥 그것을 얻어먹는, 그런 구조가 곧 현실 속에 놓여있는 구조라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가 노력하든 남이 노력하든 간에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한다는 것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말이죠. 그렇게 현실은 고생을 요구하는데, 그 고생 속에는 자기가 남에게 희생을 당하든지, 아니면 남이 자기를 위해서 희생을 해주든지 하게 된다는 겁니다.* 과연 무엇을 얻으려고 그런 고생을 하는가? 그렇다고 하면, 그렇게 희생을 해서 이 현실 세계 속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합니까? 고생을 해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그리고 가끔은 오락도 하고 여행도 즐긴다는 말이죠.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이 과연 무엇이냐는 겁니다. 그것은 자아가 편하고 만족스럽다는 것인데, 현실 속에서 목숨을 바치겠다는 것은 안중근 의사 정도는 되어야지, 보통 사람들은 그게 아니라는 말이죠.모든 것이 다 자기가 중심이고, 그래서 그것들이 다 자기 좋아라고 있는 것인데, 그렇게 어릴 때부터 양육을 받아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것이 자기 안에 이미 습성화가 되어있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나' 좋아라고 있는 그 자아를 가지고 성경을 본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게 과연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과 맞느냐는 겁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내용은 인간의 일을 거부한다고 했는데, 창조, 심판, 부활, 재림, 그것은 전혀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죠. 그렇게 우리 인간이 결코 할 수 없는 것을 성경에 담아서,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성경을 믿어라"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 현실은, 자아긍정이 그 목표이고 목적 !!그런데 우리가 속한 현실은 무엇인고 하니까,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를 긍정하는 것이 아예 목표가 되고 목적이 된다는 겁니다. 즉 '자아긍정' 이라는 말이죠. 여기서 목표와 목적의 차이점이 무엇인고 하니, 목표는 최종점이고, 목적은 그 최종점을 향해서 가는 과정이고 그 방향이라는 것이죠. 그러니 먼저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 목적이라는 겁니다. 영어로 '골(GOAL)'은 목표이고, '에임(AIM)'은 목적이라고 할 수가 있다는 말이죠. 그렇게 이 세상의 모든 목표와 목적은 자기를 긍정하기 위함인데, 자기를 키우기 위해서,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제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 중에서 무엇이 빠졌습니까? 성경에서 이야기할 때, 현실 속에서, 우리 인간은 노동해서 살기 때문에, 자기가 편하려고 하면 남을 이용해야만 하고, 그게 아니면 자기가 고생을 바가지로 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협상과 타협으로, 그런 요령으로 버티는 것이 바로 현실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회사에 다녀도, 과장이 되면 부하직원을 잘 부려서, 그 직원이 한 일을, 그 성과를 가지고 자기도 뜯어먹는 구조로 되어있다는 말이죠. 즉 "고생은 니가 해라. 효과는 내가 보겠다" 라는 것인데, 그런 생각이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아무튼 자기는 편하고, 남들은 고생하고, 그게 부부든 무엇이든 다 그렇다는 말이죠. * 그러면 성경은 현실을 어떻게 보는가?그런데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