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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9 겨울수련회 - 아가서 강해(총9강) (재정리힘)자유게시판아가

2019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 아가서 강해(1강) 사랑과 생산 강의 이근호 목사, 정리 한윤범 목사* 기도합시다 !!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우리의 원함도 주님의 선제적 조치에 의해서 별로 필요가 없어 보이는 말씀, 현대 생활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말씀, 그 앞에 이렇게 모이게 해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이 말씀이 세상에 필요한지, 아니면 하나님 나라에 필요한지, 말씀을 듣고 보면서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아가(雅歌) - '노래 중의 노래' !!'아가(雅歌)' 라는 것은 아름다운 노래라고 되어있지만, 노래 중에서 최고의 노래란 뜻인데, 성경에서 유일하게 비교급으로 시작하는 대목이 아가서라는 겁니다. 노래 중의 노래, 그리고 그 안의 내용들이 전부 다 비교급으로 엮여져 있다는 말이죠. 무슨 말인고 하니, "무엇보다 아름답다. 혹은 무엇과 같다" 라고, 이렇게 비교급으로 주어지는 것은, 간극, 또는 간격, 다른 말로 하면 틈이 되겠는데, 틈을 점차 점차 메워나간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틈을 메워나간다는 것은 처음부터 틈이 있었다는 말이죠. 그러면 틈은 뭐냐 하면, 틈이 있다는 것은 '갈라져 있다' 라는 것인데, 그렇게 갈라져있는 것을 조금씩 조금씩 비교급으로 메워나간다는 말이죠. 즉 "이것보다 이것이 낫고, 또 이것보다 이것이 낫고" 라는 식으로, 계속해서 그렇게 메워나간다는 겁니다.그렇게 "틈이 갈라져 있다. 그리고 그 틈을 메운다" 라고 할 때는, 두 가지 전제가 나오는데, 첫째는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면 인간은 영원히 벌어져있다" 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계시가 없으면 벌어져있는데, 계시가 투입되면 극복이 된다" 라고 하는, 이러한 희망을 우리에게 제시한다는 말이죠. 그렇게 하나님과 인간 사이, 또는 하나님과 자연 사이에 벌어진 틈을 메운다면, 그 메우는 방식에 대해서, 만약에 우리 같으면 사다리를 만들어서 하늘과 땅 사이에 걸쳐놓든지, 그게 아니면 드론 띄워서 메우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하늘과 땅, 그 틈에 투입되는 '사랑' !!그런데 하늘과 땅에 사이에는 다리와 같은 게 투입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투입이 되는데, 그러면 그때 어떻게 하나님과 인간이 메워질 수 있는지, 그것부터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사랑의 반대말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가 쉽겠지요? 어떤 개념을 잡을 때, 반대말이 뭔지 알 때 원래 뜻을 정리하기가 쉽다는 것이죠. 사랑의 반대말은 힘인데, 그렇게 힘의 반대말이 사랑이라면, 그러면 사랑은 무엇을 빼는 것을 의미합니까? 힘을 모조리 다 빼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이죠. 힘이 있다고 할 때는 반드시 그 힘의 소유자가 등장하게 되어있는데, 즉 최종 소유자라는 겁니다. * 힘의 최종 소유자 !!그렇게 해서 가장 힘이 센 쪽이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분배해주게 되어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그게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면, 이 땅에 있는 모든 에너지와 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제공해주신 것이라고 하는, 그런 관계가 성립이 된다는 말이죠. 그렇게 결국에는 힘은 소유자가 되고, 소유자가 있다는 말은 소유자가 등장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소유자의 등장은, "내가 여기 있다" 라고, 즉 '있음' 이라는 것인데, 이 있음은 동일한 말로서 '존재'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여기 있다.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힘을 지니고 있다" 라고 생각한다면 이 간격을 극복되지 않는다는 말이죠. 즉 "하나님, 제가 힘을 가지고 있는데, 이 힘을 어떻게 사용하면 천국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한다면, 이것은 절대로 천국과 지상의 갭은 메워지지 않는데,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힘의 반대말이 사랑이라 했는데, 그 사랑은 특징이 있다는 말이죠. 사랑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인데, 그럴 때, 무엇을 지닌 자기 자신이라고 했습니까? 힘을 지닌, 즉 "힘을 소유한 자가 여기 있다" 라고 본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나' 라는 말이죠. 그러면 반대니까, "힘을 가진 나를 잊어버리면,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을 내가 발휘할 필요조차도 없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다시 정리하면 !!지금까지 강의한 것을 정리하면, 인간이 천국에 가고 싶어도, 죽어서 좋은 곳에 가고 싶어도, 자기가 놓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말이죠. 자기의 역량과 솜씨와 스킬, 재주, 그런 것들을 유지한 채로 천국에 가려고 한다는 겁니다. 자기의 아이큐, 자기의 학식과 덕식, 자기가 선행을 많이 한 것, 그런 것들을 지니고 말이죠. 하지만 그렇게 되면 누가 빛나느냐 하면, 가면 갈수록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기는커녕 자기 자신을 더 붙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남들에게 밀리지 않도록, 남들에게 질책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자기를 더욱 단단히 사수해야 한다는 말이죠.* 왕의 등장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은 한 사람만 하면 되는데, 그 사람이 누구냐 하면, 그 사람의 기능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왕' 이라는 겁니다. 왕이 나타나는데, 왕의 일은 법에 의해서 처벌한다는 말이죠. 처벌하는 기능인데, 그것은 왕 한 사람만 하면 된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은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여기 1장 1절에 보면, "솔로몬의 아가라" 라고 하는데, 솔로몬이 지은 최고의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솔로몬이 한 가장 아름다운 노래, 그렇게 번역해도 괜찮고 말이죠. 어떤 노래보다 더 아름답다는 겁니다. (아 1:1) 솔로몬의 아가라솔로몬이 자기 자신이 왕이란 것을 분명히 하는데, 그렇다면 왕은 유일하게 최종적인 힘을 가졌다고 했는데, 그러니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아니라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자가 왕이란 겁니다. 그런데 힘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던 왕에서 아름다운 노래가 나온다는 말이죠. 그것도 사랑의 노래라는 겁니다. 그러면 솔로몬이 사랑의 노래를 하면서, 그 가사 내용은 현실화하면서 점차 점차 무엇이 줄어들고 무엇이 늘어나느냐 하면, 자기가 가진 힘이 줄고, 그에 반비례해서 사랑이 증가한다는 겁니다. 즉 자기 낮춤, 자기 잃어버림이 증가한다는 말이죠. * 획득이 아닌 잃어버림으로서, 등장하는 '여인' !!그렇게 자기 잃어버림이 증가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여인, 즉 여자란 겁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언약을 가진 사람, 즉 하나님의 계시를 가진 사람인데, 그런데 힘으로 통치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오히려 힘을 쓰지 않고 힘을 내다버림으로서, 그렇게 잃어버림으로서 생산되는 게 있는데, 그게 바로 여인, 즉 여자라는 말이죠.그리스 신화에 보면 '피그말리온' 이라는 왕이 있는데, 그 왕은 괴팍해서 모든 이 세상의 여자를 증오하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자기가 여자를 조각하는데, 그리고는 '아프로디테' 라는 여신에게 부탁해서 거기에 생명을 부여해서, 자기가 조각한 그 여인과 결혼을 한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그 여인은 누구 소유냐 하면, 바로 왕 자신의 소유라는 겁니다.그런데 그 과정에서 왕은 자기 힘을 잃었습니까? 더 확고히 했습니까? 더 확고히 했는데, 그러니 잃어버린 게 아니라는 말이죠. 왕이 힘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곧 왕이 왕답지 못하고 권력을 내놨다는 뜻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솔로몬 왕은 이스라엘 왕이면서도, 그 힘을 사랑으로 쏟아놓고 그 결과로서 여인 하나가 등장한다는 말이죠.* 사랑은 어떻게 생기는가?여기서 정리해봅시다. 사랑에 대해서 "사랑이란 무엇이냐?" 라고 이야기하면 안 되고, "사랑은 어떻게 생기느냐?" 라고, 그렇게 질문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달리 말하면, 사랑은 '자기의식'에서 '타인의식'으로 전환하면서, 그 과정 속에서 발생한다는 말이죠. 무슨 말인고 하니까, "나를 버리고 저 사람이 된다" 라고 했을 때, 그냥 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고,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사랑이라는 겁니다. 즉 "내 자리에서 저쪽 자리로 이동한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그것을 제가 안양강의에서 뭐라고 했는고 하니, "나에게는 구원받는 나는 없고, 그러면 구원을 받는 나는 어디에 있느냐 하면, 내가 밀쳐버린 내 반대편에 구원받는 내가 들어있다" 라고 했다는 겁니다. 자기 반대쪽에 말이죠. 그러니 기존에 있는 '나' 라는 자의식은 십자가를 모독하고 공격하기 때문에, 구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죠. * 새롭게 생성되는, 예수 안의 '나' !!십자가를 공격하고, 하나님을 공격하고, 하나님 영광 대신 자기 영광을 취하는, 그러한 요소 때문에 밀려버린 그분 안에서, 없던 '나' 라는 것이 새롭게 생성되는 것, 그게 곧 예수 안의 '나' 라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 안의 '나'는 자기가 건너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건너갈 수 없는데, 왜냐하면 인간의 자의식은 남에게 건너가는 능력이 없다는 말이죠. 오히려 반대인데, 저쪽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성향이 있다는 겁니다.자기를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에 자기가 절대자이기 때문에, 자기가 왕이기 때문에, 그래서 남을 자기에게 복속시키고 지배하는 성향이 있지, 자기를 버리고 저쪽으로 건너갈 게 없다는 말이죠. 쉽게 말해서, 인간에게 있어서 엄격한 의미에서 남은 없는데, 인간에게 타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자기가 필요로 할 때만, 그 현장에서 자기가 타인이라고 명칭을 붙이고 규정을 해주면 된다는 말이죠. 즉 "내가 너에게 필요하다고 꽃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 꽃은 나한테 와서 의미가 된다" 라는 겁니다. 이것은 부모자식 간에도 다 마찬가지라는 말이죠.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각자 따로 노는데, 그것은 부모자식,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가정에 방이 여러 개가 있듯이, 각자 각자 따로 논다는 말이죠. 각자 따로 놀기 때문에, 사실은 사랑이라는 게 없다는 겁니다. 단지 여러 사람이 한 집에 산다는 말이죠. 그러니 사랑이 없을 때, 그것은 제대로 된 하나의 공동체라고 할 수 없다는 겁니다. * 나는 사랑이 필요치 않아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고 하니, 이것이 오늘 첫 번째 강의에서 제일 중요한 것인데 말이죠. 그 사랑이 자기는 필요치 않다는 느낌이 든다는 겁니다. 솔로몬은 사랑 이야기를 했지만, 그러나 우리는 힘을 원하고 있지 사랑을 원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우리는 태어난 태생이 그러하다는 겁니다. 죽을 때까지 자기만 챙기는 쪽으로 우리는 살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제발 아닌 듯한 인상을 취하지 마세요(ㅋㅋ).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남을 사랑할 재주가 없는데, 남을 이용하는 재주밖에 없다는 말이죠.그러니 타인이란, 자기가 필요할 때 남이라고 명칭을 붙이면서, 살짝 그 사람을 이용하려고 임시로 "우리는 친구 아이가? 당신은 나의 아버지요, 너는 내 딸이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붙이는 것인데, 그래서 필요할 때마다 명칭을 부른다는 것이죠. * 자기 이름의 확장 !!그것을 어렵게 말하면, '자기 이름의 확장' 이라고 하는데, 물론 상대방의 이름은 개무시하고 말이죠. 자기 이름, 그러한 '나' 라는 존재를 강화시키기 위해서 상대방을 삼키는 본능 외에, 그것 말고 달리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렇게 살아가는 양식과 태도를, 그것을 그대로 누구에게 실행에 옮기겠어요?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에게 다 그대로 적용시킨다는 말이죠. 그래서 '내게 필요한 하나님', '내게 필요한 예수님', '내게 필요한 성령님',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자기를 비운다는 것, 이것은 그야말로 말이 안 되는데, 그래서 만약에 어떤 두 사람이 사랑을 한다면, 그것은 둘 다 미쳤다는 말이죠. 둘 다 정상이 아닌데, 그래서 사랑이란 기존의 노선에서 비켜나는 겁니다. 삶의 노선에서 벗어난다는 것이죠. 벗어나는 것, 이것은 위반이고 파격, 또는 전위적인, 그것이 사랑이란 말이죠.* 나의 원수를 갚아주소서 !!여기서 이사야서 37장 36절 읽어보겠습니다. 앗수르의 군대가 히스기야 왕의 유다나라 칠 때의 장면인데 말이죠.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 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 이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라고 되어있다는 겁니다. (사 37:36)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 중에서 십팔만 오천 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사 37:37) 이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하더니(사 37:38) 자기 신 니스록의 묘에서 경배할 때에 그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한고로 그 아들 에살핫돈이 이어 왕이 되니라"감히 이스라엘을 치다니 한번 혼나봐라" 라고 해서, 그래서 그날 밤에 앗수르 군사가 무려 185,000명이나 죽었다는 말이죠. 이 대목을 볼 때, 우리가 익히 교회에 와서 듣던 하나님의 하나님다움이라는 겁니다. 이 정도는 보여줘야,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이렇게 폭력적으로라도 완벽하게 지켜줘야, 우리가 하나님 믿는 어떤 즐거움이나 보람이 생기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인간은 평소에 자기가 자기를 지키고 싶은데, 그런데 너무 힘이 없어서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이죠. 그래서 예수님에게 "내가 친히 지키지 못한 내 존엄성, 내 가치를 지켜주시되, 아주 기적적으로 과격하게 파격적으로 나의 적을 박살내달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보람을 느끼는데, "그래, 바로 이것이었어. 정말 하나님은 그때 살아 계셨어" 라고 하게 된다는 말이죠.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간증을 하고 난리를 치는데, 즉 "내 몸이 암에 걸렸는데 그만 나았다" 라고 한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살아계심, 즉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이런 류의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때부터 어떻게 나옵니까? "나에게는 하나님만이 필요하고, 혹시나 필요하다면 나와 같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한 형제, 그런 형제들이 모인 교회가 있으면 더 무엇을 바라겠느냐?" 라고,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제가 방금 예를 들었을 때, 남자와 여자 나옵니까? 나오지 않는데, 사람과 사람들이 나온다는 겁니다. * 사랑은 미친 짓 !!만약에 어떤 교회에 교인이 50명이고, 다른 한 쪽은 5,000명이라고 하면, 그러면 여러분은 어느 교회에 가겠습니까? 어느 교회에 가야 돈을 적게 내느냐는 말이죠. 당연히 5,000명이 모인 교회에 가는데, 점심 값을 내지 않아도 교회가 잘 돌아간다는 겁니다. 이미 벽돌로 건물도 잘 지어놓았고, 그러니 또 다시 건물을 짓는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죠.그런데 말입니다, 50명의 교회 속에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면, 혹은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면, 그러면 5,000명의 교회에 가겠습니까? 보지도 않고 50명 교회에 가는데, 그러니 사랑은 미친 겁니다. 힘의 논리를 이탈한 것인데, 돈의 논리, 힘의 논리, 출세의 논리, 승진의 논리, 건강의 논리를 다 벗어나는 것이죠. 돈이나 승진, 우리가 이런 것을 왜 선호하느냐 하면, 그게 자기 존재를 강화시키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자기가 만약에 기도해서 잘 되면,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뭉텅이 힘을 추가적으로 얻었다고 생각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기도했더니만 자식이 너무나 잘 돼서, 그 아버지를 유럽여행을 보내드리겠다고 하면, 그것을 잘 된 일이라고 합니까? 잘못된 것이라고 합니까? 잘 풀리는 집구석으로 보는데, 즉 잘 되었다는 겁니다.그런데 다시 아들이 탈북한 여자를 좋아해서 같이 북한에 들어간다고 하면, 그러면 그 집구석은 잘 된 집구석이 아니고 말아먹은 집구석이란 말이죠. 캐나다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 "엄마, 나는 보람 있게 살란다. 북한에 가서 선교할래" 라고 해서, "그렇구나. 내가 신앙적으로 잘 키웠구나. 그래, 알았다. 그리고 몸조심해라" 라고 했다는 겁니다. 사실 이런 부모도 거의 없지만 말이죠. 21살이 된 대학생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철딱서니가 없어서 인민일보 휴지통에 버렸더니, 그만 그게 걸려서 죽어서 돌아왔다는 겁니다. 그럴 때 "주님, 너무 감사합니다" 라고 나올 수가 없다는 말이죠. 어떻게 키운 예쁜 자기 자식인데, 그게 말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미국의 트럼프가 북한에 대해서 경제제재를 더 심하게 했다고 하는데 말이죠. * 힘이 있는 남자, 힘이 있는 여자 !!세상은 힘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은 아이들도 다 아는 이야기인데, 꼭 필요한 게 뭐냐 하면, 사랑이 아닌 힘이란 겁니다. 힘은 남자와 여자를 제치고 이야기하자는 것이죠. 남자와 여자를 따지지 말고, 남자든 여자든 간에, 돈 있는 남자와 돈 있는 여자가 중요하지, 그냥 남자와 그냥 여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그 앞에 무엇이 붙어야 하는데, 공직에 있는 여자들, 즉 교사, 의사, 약사, 그렇게 '사'자가 붙는 여자가 괜찮다는 말이죠. 노는 여자는 골치가 아픈데, 뭔가 붙어야 한다는 겁니다. 남자도 마찬가지고 말이죠. 남자가 얼굴만 예쁘다고 호텔 사장과 연애할 수 없는데, 적어도 능력이 있어서 호텔을 위기에서 건져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남자친구' 라는 드라마의 박보검처럼,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인물도 되고 능력이 있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라는 것이죠.그러니 힘이고 능력인데, 즉 남자와 여자를 제치고 힘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는 남자도 여자도 없는데, 힘을 가졌느냐고, 그것만 물어본다는 말이죠. "힘을 가졌어요? - 힘을 가지려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 그래요? 기도하고 난 뒤에 얼마나 추가된 힘을 얻었습니까?" 라고, 그것을 묻는다는 겁니다. 개척교회를 하는 목사라면, 상대방이 제일 먼저 묻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까, "교인이 몇 명입니까?" 라는 것인데, 그 다음으로 묻는 게 "헌금이 한 주에 얼마 나옵니까?" 라고 한다는 겁니다. 거기에는 여자는 몇 명이고 남자는 몇 명이고, 그런 것은 일체 묻지 않는다는 말이죠. 힘이 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그것을 묻는다는 겁니다. 그러니 교인이 50명인데, 전부가 다 KBS '동행'에 나오는 그런 비리비리한 사람들이라고 하면, 그러면 "아이쿠, 골치가 아프다. 괜히 물었다" 라고 되는데, 그래서 자수성가할 수 있는 교회냐고 묻는다는 말이죠. 교회도 사업인데, 모두가 다 마찬가지지라는 겁니다.* 남자와 여자가 아닌, 사람들을 원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은 사람들을 원하는데, 남자와 여자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그렇다면 남자와 여자를 왜 원하지 않습니까? 솔로몬처럼 자기가 남자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을 생산하는 것에는 왜 관심이 없습니까? 그것은 바로, 남자와 여자 문제는 일단 돈이 있고 난 뒤에는 저절로 해결이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남자와 여자 앞에 전부가 다, 돈이 있는 남자, 그리고 돈 있는 여자를 선호하는 입장에서, 자기가 만약에 돈이 있는 남자라면 얼마든지 여자를 골라잡을 수가 있다는 말이죠. 밥벌이도 못하는 남자가 여자에게 "나와 결혼해주겠습니까?" 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겁니다.제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이 세상은 남자와 여자가 우선이 아니라 사람들이 우선이라는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을 생각할 때 다음과 같이 나오는데, 즉 "내가 미워하는 사람 졸지에 망하게 하고, 나에게 도와준 사람은 제대로 도와줘서 힘을 응축하고 힘을 키우는데 있어서 하나님은 필요하다" 라고, 그렇게 생각을 한다는 것이죠. * 사랑이 아닌, 힘의 관계 !!그래서 '하나님'과 '나' 사이에는, 사랑의 관계가 아니고 힘의 관계라는 겁니다. 사랑해달라고 기도하는 게 아니고 힘을 달라고 기도한다는 말이죠. 물론 사랑한다고 말은 하기는 하는데, 하지만 그 사랑을 '톡' 하고 깨보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안에 뭐가 들어있습니까? 돈이 들어있고, 그리고 사랑이 사랑답게 되려면 어떻게 합니까? "제발 실효성이 있는 사랑이 되려면 힘을 지닌 것으로 선물로 주셔야, 비로소 그때 사랑이라고 이해하겠습니다. 힘을 제공해줄 때 그것을 사랑이라고 쓰고 힘이라고 읽겠습니다"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아가서를 제치고 보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남녀간의 사랑이 궁금해서 성경을 보는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 그래서 "나게 미진하고 모자란 힘을 주시옵소서" 라고 하는데, 그때는 아까 제가 인용했던 이사야서에서 이스라엘 적을 작살내는, 즉 "나를 괴롭히는 자를,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나 대신에 나의 원수를 갚아주세요" 라고 한다는 것이죠. 그런 하나님이 굉장히 영웅적이고 그야말로 자진해서 흠모할만한 그런 유일한 자기의 타인, 즉 남이 된다는 말이죠. 하지만 그런 하나님조차도 남이니까, 즉 "내가 주님이라고 부르는 그 순간 나를 위한 주님이지 주님을 위한 주님은 역시 아니다" 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잃어버릴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기 때문에 말이죠. 그런데 사랑은 미친 짓인데, 무엇에 미쳤느냐 하면, 아낌없이 "내가 여기 있다" 라는 것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여기 존재하는 것처럼 대신 누가 존재했으면 좋겠다. 그대 있음에 나는 없어도 좋겠다" 라고 한다는 것이죠.여러분이 생각할 때, 진짜 그러면 미친 것이라고 해서,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라고 하는데, 그런데 놀랍게도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는 모양인데 말이죠. 제가 노래 가사를 읽어드릴 테니, 가사 내용을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그 사람 나만 볼 수 있어요 내 눈에만 보여요 내 입술에 영원히 담아둘 거야 가끔씩 차오르는 눈물만 알고 있죠 그 사람 그대라는 걸 -------------------------------* 내 눈에 그 사람만 보여요 ♬이게 가수 이은미가 맨발로 부른 '애인 있어요' 라는 노래인데, "내 눈에 그 사람만 보여요" 라고 하는데, 자기 자신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죠. "당신은 내 존재를 대신함으로서 나는 당신만 보는 것으로 더는 소원이 없다" 라는 내용인데, 그야말로 미쳤다는 겁니다(ㅋㅋ). 노래를 부른 분이 여자니까, 결혼할 사람에게 이렇게 나온다면 엄마가 혀를 차면서 "한참 좋을 때다. 너도 애를 낳아봐라. 돈이 최고야. 너는 왜 그렇게 철이 없냐. 남자를 믿지 마라. 네 아버지를 봐라" 라고 하는데, 가만히 있는 아버지를 건드린다는 겁니다. 옆에서 축구중계 보고 있던 남편은 졸지에 당하고 만다는 겁니다(ㅋㅋ). 엄마가 딸에게 "네 아버지 때문에 내 인생을 다 조졌잖아" 라고 하면, 아버지는 가만히 있다가 참지를 못하고, "누가 뭐래? 가만히 있는 나를 왜 건드려?" 라고 하는데, 그러면 "당신이 결혼을 할 때 손에 물 한 방울도 안 묻히게 해주겠다고 했잖아?"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 이제 사람들은 물러가고, 남자와 여자가 !!그런데 솔로몬의 계시에 의하면, 사랑을 함으로서 비로소 사람들은 뒤로 물러간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물러가고 뭐가 등장하느냐 하면, 남자와 여자가 전 인류의 대표자로 등장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끊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것은 바로 계시를 받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왕, 그게 메시아라는 겁니다. 그 메시아에 의해서 새로운 여자가 탄생하게 되면, 물론 그 여자가 구원하는 것은 아니고 말이죠 그 여자와 남자 사이의 사랑이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최상급으로 비교하니까, 그래서 최고의 사랑이 나온다고 하면, 천국은 가는 것이 아니라, 천국은 그 두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천국은 어디 있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그 계시의 활동으로 없는 나라가 새롭게 펼쳐지고 만들어진다는 것이죠.왜 우리가 과거에 많아 먹어보았던 솜사탕이 있지요? 그것을 만드는 솜사탕 기계를 보면 어떻습니까? 설탕을 부으니까, 즉 분명히 딱딱한 고체가 들어갔는데, 그렇게 설탕이 들어갔는데 없는 공간에 뭔가 구름과 같은 물체가 피어나면서, 그게 눈에 들어온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게 구름이냐? 안개냐?" 라고 하면서 먹어보니까, 그렇게 맛이 있다는 말이죠. 이것이 미각인데, 그리고 만져보니까 부드러운데, 그게 촉각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냄새를 맡으니까 달콤한 설탕 향기가 나는데, 그게 후각이라는 말이죠.* 너는 꽃보다 아름답고, 그 어떤 향기보다 향기롭다 !!이 아가서를 수련회에 오기 전에 모두 읽어보셨을 텐데, 아닌가요? 하여튼 남자와 여자가 세세하게 모든 감각을 다 동원해서 후각, 미각, 촉각, 청각, 시각, 그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 스캔을, 즉 완전히 훑어버린다는 겁니다. 위에서부터 시작해서 아래까지 모두를 다 말이죠. 그렇게 보니 옷을 입지 않았는데, 그렇게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게 창세기 2장이 그대로 재현되면서, 잃어버린 낙원은 잃어버린 여자의 탄생으로 그 주변에 솜사탕처럼 새롭게 펼쳐지는, 그런 자연의 세계와 새롭게 등장한 남자와 여자를 비교할 때, "너는 꽃보다 아름답고, 어떤 향기보다 향기롭다" 라고 하는, 그 비교급이 아가서의 전부를 채우고 있다는 말이죠. * 아가서는 향기의 책 !!아가서는 향기의 책인데, 그러니 이 아가서를 통해서 새 창조가 풍기는 향기를 흠뻑 들이마셔야 한다는 겁니다. 이제 방법을 알려드리겠는데, 향수를 확 뿌리세요. 그래서 펼칠 때마다, 이것은 발삼 향, 무슨 향, 그렇게 향수를 뿌리면 된다는 말이죠.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지옥과 같은 이 세상에서 향기가 난다는 겁니다. 어떻게 사람의 몸에서 향기가 납니까? 그것은 있을 수 없는데, 왜냐하면 사람은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말이죠. 사람은 폐쇄되는 징후를 발산하는데, 즉 더럽게 환원되는 것에서 오는 증상을 보여준다는 겁니다. 20대에는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나중에 그 사람이 80이 되고 90이 되어서 치매에 걸려보세요. 사람이 나이가 들면 몸에서 냄새나는데, 그 냄새가 악취라는 말이죠. 향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모든 것이 파괴되어 간다고 하는, 그 내부적인 모든 구조가 쪼그라드는 것인데, 즉 무너진다는 말이죠. 깨지는 겁니다. 그래서 노인이 되면 바깥으로 나오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래서 국가에서는 어떻게 합니까? 노인들을 바깥으로 유인해서 소비를 늘리려고 지하철을 공짜로 태워주고 한다는 말이죠. 물론 저도 지하철이 공짜인데, 노인들이 예뻐서 그런 것이 아니고 소비를 진작시키려고 그렇게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절대로 소비가 진작이 되지 않는데, 자기들끼리 까마귀처럼 모여있다는 말이죠. 겨울이 되면 까만 옷을 입고 줄줄이 앉아있는데, 남자는 남자 까마귀, 또 여자는 여자 까마귀라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말씀대로 남자와 여자가 없다는 것인데, 뒤에서 보면 다 똑같다는 말이죠. (녹취 구 - 목사님, 앞에서 봐도 별로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ㅋㅋ)*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그러니 남자와 여자란 없는데, 그냥 남자도 사람으로, 여자도 사람으로 환원이 된다는 겁니다. 남자와 여자가 될 때는, 그것은 바로 새롭게 창조될 때라는 말이죠.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될 때 남자가 남자다운 겁니다. 그래서 이 세상엔 두 종류밖에 없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과, 그리고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은 천국에 가고, 없는 사람은 지옥에 간다는 겁니다. * 음행이란, 사랑하지 않을 때 !! 간음이란 뭐냐 하면, 그것이 에스겔서에 나오는데 말이죠. 음행이란 사랑하지 않을 때를 말하는데, 왜 그런고 하니까, 자기를 사랑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즉 자기를 잃어버리고, 자기를 부술 어떤 기회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남편과 너무 오래 살았는데, 그런데 어떻게 그런 남편을 사랑합니까? 그러니 남편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낮추고 자기를 잃어버리면, 그러면 아직도 남자나 여자로 대우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문제는 자기가 힘을 쥐고 있으니까, 이게 간음이 되고 음행이 된다는 겁니다. 누가 자기를 사랑하는 조건 하에서 사랑을 하겠다는 것은, 그것은 힘과 힘의 밀고 당기는 싸움이고 자존심의 싸움이지, 그것은 사랑이 아니란 말이죠. 사랑이 아니라고 해서 나무라는 게 아니고, 인간은 원래 사랑할 줄을 모르는데, 오히려 사랑한다면 그것이 미쳤다는 겁니다. 사랑은 미친 짓인데, 결혼이 미친 짓입니까? (ㅋㅋ)사람이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 어떤 과정 뒤의 실적을 노리게 되어있지, 과정 자체는 무시하게 되어있다는 말이죠. 그러나 사랑은 어디서 나온다 했습니까? 실적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어디서 나온다는 겁니까? 그 과정, 즉 자기를 잃어버리는 과정 속에서 나온다는 겁니다.예를 들어서, 왜 인간의 기도가 엉터리냐 하면, 기도는 반드시 무엇을 노리게 되어있습니까? 기도의 응답, 기도의 실적을 노린다는 말이죠. "내 남편이 아직도 복음을 모르고 있다. 내 남편이 아직도 교회를 안 나오고 있다. 주여, 제가 중보기도를 하겠습니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즉 중보기도의 시작부터 어떤 기대와 목표 달성을 노리는 것으로, 그 자체가 순수하지 않다는 말이죠.이것은 하나님을 자기 하인을 부리듯이 부리겠다는 것인데, 즉 "곰아, 내 앞에서 재주를 부려봐. 살아있다면 말이야. 그러면 내가 믿어줄게. 이번 일만 성사되면 십일조를 할 테니까 재주를 한 번 부려봐. 나무뿌리가 뽑힐 때까지 기도할 테니까, 당신이 살아있다면 재주 한 번 부려봐" 라고, 그런 식이라는 겁니다. 인간성이 망가졌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든 예수를 믿든 그 망가진 것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어느 장례식에서의 기도 !!제가 지난 토요일에 어느 장례식에서 갑자기 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돌아가신 분이 만70도 안 되었지 싶은데, 요새 70에 돌아가시면 웬일이냐고 한다는 말이죠. 암이 위에 전이가 돼서 그만 돌아가셨는데, 주로 외국에 돌아다니다가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은데, 송해 선생님을 보세요. 아직도 노익장을 과시하면서 버티고 있다는 겁니다. 제가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이 갑이고 인간은 을입니다" 라고 했는데, 즉 을이 갑을 쥐고 흔들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것이죠. 계속해서 기도하기를, "하나님이 갑이고 우리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셨습니다. 이번 장례식을 통해서, 이번 죽음을 통해서, 그 네트워크에 우리가 말려들었습니다" 라고 했다는 말이죠.제가 '네트워크' 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우리는 그 네트워크의 일부라고 했다는 겁니다. 이게 엄연한 사실인데, 선악과를 따먹고 자기가 최고이고 그야말로 돗대인 줄로 안다는 겁니다. 그런데 죽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의 모든 것이 다 사라진다는 말이죠. * 을을 위한 세상은, 없어 !!오늘 아침에도 그런 설교했는데, 죽을 날이 10년 남은 것과 1시간 남은 것과 차이가 없다는 겁니다. 빨리 들어오라고 호출하면, 즉 죽음이 부르면 가야 한다는 말이죠. 40년이 남았다고 해서 많이 남은 것 같습니까? 자기의 일방적인 40년이지 부르면, 쑥 가야 한다는 겁니다. 죽음은 진공청소기인데, '위이잉' 하면서 아파트 실내를 밀어보세요. 거기에 있는 바퀴벌레 하나가, "아직 내가 때가 안 됐는데" 라고 까불어도, 청소기를 대면 쑥 딸려 들어간다는 말이죠. 즉 "세상은 너의 때를 위함이 아니다" 라는 것인데, 즉 을을 위한 세상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겁니다. 갑이 갑질을 하기 위한 세상이지, 을이 을로 인정받는 세상은 없다는 것이죠. 그러니 자기 자신을 내놓아야 하는데, 자기 자신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겁니다. 자기 목숨을 바칠만한 그분을 만나야 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자기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믿고 넘기면 안 되는데, 왜냐하면 자기가 넘겨놓고는 그 사람을 자기 소유화를 시키는 본능이 우리 속에 작용하기 때문에 말이죠. 즉 "예수를 믿어줬으니까, 예수 당신은 나한테 이렇게 해야 돼"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 중요한 것은 '과정' !!중요한 것은 '과정' 인데, 그래서 여자를 만듦으로서 솔로몬은 드디어 왕이 아니고 무엇으로 변하느냐 하면, 그 여인의 남자가 된다는 말이죠. 드디어 사람들에서 여자와 남자가 생긴다는 것이죠. 여자는 남자를 소유하지 않고, 남자는 여자를 소유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둘 사이에, 둘의 만남으로 인해서 없던 새로운 것이 등장하는데, 그게 바로 '사랑' 이라는 말이죠.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고정된 사고방식이 있는데, 실체가, 즉 '나' 라는 몸 덩어리가 있으니, 실제로도 "내가 여기 있다" 라고 생각하는데,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것이 잘못된 생각임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공부하는 '나', 밥 먹는 '나', 사랑하는 '나', 기뻐하는 '나', 슬퍼하는 '나'가, 그것이 '우리'가 아니라는 말이죠. 공부하고 싶음에 말려든 '나'가 있고, 사랑이 일어남에 거기에 같이 끌려 들어간 '나'가 있고, 배가 고파서 밥을 먹게 되는 '나'가 있다는 겁니다. 자기가 배고픈 게 아니고, 배고픔이 먼저고, 그 배고픔이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신체가 어떤 변화를 일으키면, 덩달아 거기에 을로서 따라가야 될 '나'가 있을 뿐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전도서에 보면, 인간이 우선이 아니고 타이밍(때)이 우선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전도서 3장에 보면, "천하에 타이밍이 있으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라고 하는데, 이게 아가서까지 넘어온다는 겁니다.(전 3:1)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전 3: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전 3:3)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전 3: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전 3: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전 3: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전 3:7) 찢을 때가 있고 꿰멜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전 3: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그러면 인간은 주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바다에 파도가 일 듯이 늘 울렁거리고 출렁거리는, 그렇게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세상의 변화에 맞추기 위해서, 보조적인 위치로 들어가는 것이 바로 '나' 라는 겁니다. 그게 인간인데, 즉 울 때는 울라는 역할을 하라고 '나'가 있고, 웃을 때는 웃는 역할을 감당하라고 '나' 라는 것이 있다는 말이죠.아이를 낳았다고 하면 기쁠 때가 있는데, 그런데 그만 아이가 독감에 걸리면 슬퍼진다는 겁니다. 자기 아이가 독감에 걸리라고 간절히 기도한 적이 있습니까? 물론 그런 일은 없는데, 하지만 독감에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주님의 때는 우리가 주관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리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겁니다. 다만 갑이 하신 일에 따라가기만 해도,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것, 즉 사랑이 나타나고, 그 사랑은 우리가 목숨을 걸만한 것이죠.사람이 팔십을 살았다고 하면, 굉장히 오래 산 것 같은데 말이죠. 그런데 그것이 냉정하게 분석하면 이렇습니다. 80년 살았으면, 79년 11개월 29일은 없어졌다는 겁니다. 지금 있는 것은 뭐냐 하면, "지금 내가 있다" 라고 하는, 달랑 이것밖에 없다는 말이죠. 80년을 살았다는 것은 날아가 버리고, "오늘이 며칠이야?" 라고 하는, 그 '오늘'만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이 전부라는 말이죠.* 욕망의 사랑, 충동의 사랑 !!사랑의 특징은, 미래라는 것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충족이 된다는 것인데, 즉 "지금 이 순간 사랑하면 오케이!", 그렇다는 겁니다. 바로 그 점을 알려주기 위해서 제가 교재를 썼는데, 교재 1페이지에 보면 서론 나오고, 그 밑에 뭐라고 되어있습니까? '충동으로서의 사랑' 이라고 되어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식하느냐 하면, 항상 어떤 개념을 잡을 때는 대비되는 비교되는 것을 염두에 두면 되는데, 즉 욕망으로서의 사랑이 아니란 말이죠. 욕망과 충동의 차이점은, 욕망은 결핍에 의해서 불만족이지만, 충동은 오히려 결핍 때문에 그 결핍을 통해서 만족하는 겁니다.제가 어려운 말을 그냥 던졌는데, 욕망과 충동의 차이점은 무엇인고 하니, 욕망은 늘 만족하기 위해서 찾아가지만 그 결과는 늘 시답지 않다는 말이죠. 늘 불만족으로 끝난다는 겁니다. 이게 인간의 욕망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충동이라 하는 것은, 그 미흡함, 즉 채워지지 않음을 통해서 만족도가 더 높아진다는 겁니다.이래서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요? 예를 들어서,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카페에 있는데 남자가 아침에 양치질을 제대로 못해서 이빨에 고춧가루가 끼어있다는 말이죠. 그럴 때 여자의 경우에 욕망은 뭐냐 하면, "내가 눈이 삐었지. 내 시각에 문제가 있어. 저것을 내가 무엇이 좋다고 말이야" 라고 하는데, 그래서 뭐라고 합니까? "오빠, 우리 헤어져!"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여자가 왜 그렇게 나옵니까? 불만족스러우니까 그렇다는 말이죠. 그렇게 자기 몸 하나 제대로 단장을 하지 못하는 인간에게 자기를 도저히 맡길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헤어지자고 나오는데, 이게 바로 욕망이라는 말이죠. 욕망으로서의 사랑은, 상대방을 통해서 자기가 사랑할 조건을 만들어서, 거기에 상대방이 맞추기를 원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조건이 될 때,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배려를 해주겠노라" 라고 하는 하는데, 그러니 대부분의 사랑은 욕망으로서의 사랑이란 말이죠. * 잠시, 이근호 대중문화 평론가를 모시고 !! 그 욕망으로서의 사랑이 어떤 내용이냐 하면, 교재 13페이지를 봅시다. 고상한 십자가 마을 수련회의 교재에 천박하기 짝이 없는 뽕짝 가사를 쓴다는 것은 수준을 많이 낮추었다는 겁니다. 김진룡 씨가 작사하고 노래는 조항조가 불렀는데, '거짓말' 이라고, 이게 여자가수가 불러야 적당한데 말이죠. ---------------------------사랑했다는 그 말도 거짓말돌아온다던 그 말도 거짓말세상의 모든 거짓말 다 해놓고행여 나를 찾아와 있을너의 그 마음도 다칠까너의 자리를 난 또 비워둔다---------------------------그래서 주인공을 여자로 생각해봅시다. 사랑했다는 그 말도 거짓말이라는 것인데, 이 노래의 가사를 보면, 그야말로 부처가 나셨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내용인고 하니까, 여자가 매일 자기에게 거짓말을 해도, 혹시나 찾아와서 마음을 다칠까 걱정이 되어서 또 다시 그 여자의 자리를 비워둔다는 말이죠.또한 가관이 뭐냐 하면, "이젠 더 이상 속아선 안 되지. 이젠 더 이상 믿어선 안 되지" 라고 해놓고는, "다시 한 번만 더 너에게 나를 사랑할 기회를 줄게" 라고 한다는 겁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자기가 그렇게 끝까지 배려해주겠다는 말이죠. 그러니 이게 무엇입니까? 욕망으로서의 사랑은 반드시 뒤끝이 있다는 겁니다. 사랑을 하지 않는다고 천명해놓고, "내가 떠난 그 자리에 다른 사랑으로, 내가 없는 자리에, 내가 사랑을 하지 않은 그 자리를 채우지 말아달라" 라고, 그것은 백지영이 이야기했다는 겁니다. '사랑 안 해' 라는 노래가사에 보면 나오는데, "내가 없는 그 자리에 다른 사랑으로 채우지 말아달라" 라고 신신당부 해놓았다는 말이죠. 그러니 뒤끝이 있는데, "나를 떠나보내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만 해봐" 라고, 그렇게 나온다는 겁니다.시간이 갔습니다만 신이 나는데, 그래서 약간만 더 해보겠는데 말이죠(ㅋㅋ). 물론 그런 사랑노래도 있지만, 반면에 이런 사랑노래도 있다는 겁니다. 즉 "보고 싶다. 예쁜 그대 돌아오라. 나의 궁전으로" 라고, '명동콜링' 이라고, 카더가든이 불렀던 노래인데 말이죠. '더 팬' 이라는 프로에서 나왔는데, 요새 뜬다는 겁니다. 그렇게 사랑도 두 종류가 있는 것을 아시고, 10분만 쉽시다. 2019.01,23 재정리함 - 녹쥐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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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6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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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