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46강(사무엘의 한계), 마태복음 108강(자기죽음) 190129
사무엘의 한계 (삼상 16: 1-11)
대전-46강 이근호
2019년 1월 29일
본문말씀: 사무엘상 16장 1-11절
(삼상 16: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삼상 16:2)사무엘이 이르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삼상 16:3)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네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사무엘 상 16절 1절부터 보면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이야기 하시는데 사무엘은 슬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인데 의견이 일치 돼야 하지요. 그래야 100% 전하지요. 지금 백성들은 사무엘이 인물이 얼마나 잘 났는지 말을 잘 하는지 관심 없어요.
사무엘이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여과 없이 중간에 새는 것 없이, 누수 없이 그대로 전달되기를 바라는 거에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만약 인간들 속에 하나님이 나타나면 모두 죽습니다. 다시한번 볼까요. 하나님이 계시고 그 다음에 인간이 있는데 하나님이 나타나면 인간은 다 죽어요. 그 중간에 선지자가 있는데 사무엘 선지자가 하는 기능 안에는 뭐가 담겨 있냐하면 죽여야 될 인간을 안 죽이고 계속 관계를 유지하는 요소가 이 안에 담겨 있겠지요.
그 요소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거에요. 약국에서 파는 당귀정 있잖아요. 약 겉에 단 것으로 싸서 입히면 순하게 넘어가지요. 그렇듯이 하나님을 직접 만나면 다 죽어요. 그렇게 되면 인간들이 다 죽어서 안 되니까 인간들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당귀정처럼 둘러쌌다면 이스라엘 백성도 선지자와 같이 하나님의 무수한 말씀을 그렇게 듣게 되어 있어요. 오늘날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함께가 아니어서 죽어야 되는데 하나님이 허락하신 용서하심으로 둘러 쌓여 있기 때문에 인간은 늘 용서받으면서 주의 진노도 전하게 되는 거에요. 마지막 심판인 진노를 다 전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어려운 이야기 하나를 하자면 하나님의 일의 중심이 어디쯤 있겠느냐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보통 하나님의 일은 창세 전에 있다고 하지요. 창세전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다음에 그대로 창조 됐잖아요.
그런데 에베소서 1장 10절에 보면 그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창세전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마지막 때에 있어요.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이 통일 된다고 했습니다. 숨어 있어야 될 중심이 이 땅으로 들어와 버렸어요. 예전에 초등학교 운동회를 할 때 장대 하나에 만국기가 걸려 퍼져 있고 이것을 우주의 중심으로 본다면 예수님이 중심으로 들어 온 거에요. 그러면 시간이라는 것도 창조에서 마지막까지가 어디서부터 펼쳐지겠습니까?
예수님으로부터 펼쳐지고 다시 예수님께로 모아지겠지요.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