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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광주강의20190125a 마가복음13장 14-23절(잃어버린 하나님)-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마가복음

광주강의20190125a 마가복음13장 14-23절(잃어버린 하나님)-이 근호 목사 마가복음 13장 14-23절 14절,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 할지어다15절,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16절,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17절,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18절, 이 일이 겨울에 나지 않도록 기도하라19절, 이는 그 날들은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조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20절,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어늘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셨느니라21절,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22절,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 하리라23절,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마가복음 13장 14절,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한다. 멸망할 것이 서야 될 공간과 절대로 멸망할 것은 서지 말아야 될 공간이 이중으로 나누어지죠. 이 세상의 공간이 둘로 나누어진다는 것은 상당히 오늘날 현대적 공간개념에서는 의아해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공간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누구든지 거기 거하면 거기서 공간개념이 생기기 마련이에요. 텅텅 비어있는 화성, 멀리 있는 화성도 안에 사람이 살게 되면 화성인이 되어버리죠. 사람이 거기에 거주하게 되면 공간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람이 먼저 있고 거기에 공간이 들어가는 것으로 공간의 선택이 결정된다고 보통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 생각대로라면 여기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것에 선 것’이라고 하니까 절대로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공간이 따로 있다고 하는 거죠.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공간, 영원한 공간이죠. 영원한 공간이 되려면 이 공간에 누가 점유하고, 차지하고 있어야 되요. 영원한 분이 차지하고 있어야 되죠. 영원한 분이 차지하고 있으면 영원한 공간이 됩니다. 그러면 이 영원한 공간이 테두리 안이라면, 테두리 안이 영원한 것이라면 이 테두리 밖은 자동적으로 멸망의 공간이 되겠죠. 한쪽이 절대적의미를 부여하면 나머지기는 부수적인 의미가 되는 겁니다. 이거는 절대적이 아니고 절대적인 것을 받쳐주기 위해서 그냥 보조적인 역할을 할 공간이 되는 겁니다. 멸망의 공간은 영원한 것을 비춰주기 위한 종속된 공간이죠. 종속된 공간. 영원한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거기에 부스러기로, 그냥 시다바리 노릇을 해야 될 그러한 공간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영원한 공간이 있다는 말은 무엇을 반드시 동반하게 되어 있느냐 하면은 종속된 공간, 멸망의 공간이 병행하게 되는, 짝이 되게 되어 있어요. 짝이. 가라지를 알곡이라고 하지 않죠. 알곡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가라지도 함께 드러나게 되어 있어요. 좋은 고기만 있으면 안 되겠죠. 그냥 고기가 있으면 좋은 고기, 나쁜 고기를 모르지만 좋은 고기가 있으면 반드시 뭐를 불러오게 되어 있어요? 나쁜 고기가 짝을 이루어서 이것은 좋은 고기고 이것은 나쁜 고기다. 좋다는, 하나의 좋은 고기를 위해서 이게 부수적으로 있는 겁니다. 천국 갈 사람이 있다. 이거는 무엇을 뜻합니까? 이 땅에 지옥 갈 사람이 있다는 것을 필연적으로 그렇게 말해주는 거예요. 천국이 있다는 말은 지옥이 있다는 겁니다. 천국만 있고 그 다음에 지옥은 없는 그런 것은 없어요. 빛이 있으면 어두움이 있다. 요한복음 3장에 나오죠. 빛이 왔으되 사람들이 빛으로 오지 않나니, 이 말은 곧 이 세상은 빛이 없다는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전부 다 어둡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이 영원한 것을 구약에서는 묘사했는데, 구약에서는 영원한 것을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영원한 공간, 거룩한 공간을 성전으로 본 겁니다. 성전을 영원한 공간, 거룩한 공간이라 했어요. 그러면 성전은 뭣이 있기 때문에 영원하냐 하면은 성전은 사람을 모시기 위한 공간이 아니겠죠. 그만큼 인간이라는 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럼 영원한 공간에 들어있는 것을 가지고 이것을 주의 이름, 구약적으로 하면 여호와의 이름 또는 하나님의 이름, 다 같은 말이에요. 하나님의 이름이 계시는 곳이다. 이게 영원한 공간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이 계신다면, 아까 처음에 강의한 것을 적용시켜봅시다. 주의 이름, 여호와의 이름, 하나님의 이름이 온다면 여기에 그냥 덜렁 등장하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등장한다고 했어요? 부수적인 것, 종속된 것이 함께 오겠죠. 그럼 주의 이름, 여호와의 이름, 하나님의 이름에 반대되는 이름은 무슨 이름이겠어요? 사람의 이름이겠죠. 그럼 공간을 둘로 나누면 사람을 위한 공간이 있고, 하나님을 위한 공간이 있겠죠. 그럼 하나님을 위한 공간은 절대로 사람을 위한 공간은 아닌 거예요. 사람을 위한 공간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 주의 이름, 여호와의 이름, 하나님의 이름의 특징은 이 공간을 만들 때 설계도가 있는 거예요. 그 설계도를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언약이라고 합니다. 언약. 자 하나님의 거룩한 공간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사람이 들어올 수가 없어요. 제단 뜰을 쌓을 때 사람이 정釘으로 쪼개서 제단 돌을 만들면 안 됩니다. 그럼 주의 이름의 성전은 누가 친히 만들겠습니까? 하나님이 친히 만드시겠죠. 사람이 만들지 못하고. 그럼 지금까지 강의한 것을 정리해보면 하나님의 거룩한 공간에 멸망한 것이 들어왔다는 말은 뭐냐 하면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 누구의 손때가 묻어있다?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한 공간을 세우려고 시도했을 때, 이거는 멸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멸망한 것이 침투한 겁니다. 주의 이름은 하나님의 언약을 앞장세우는데, 하나님의 언약이 아닌 요소가 인간의 의지겠죠. 인간의 욕구, 욕망, 종교적인 욕구라든지, 이런 의지가 이 안(주의 이름, 여호와의 이름, 하나님의 이름)에 스며들면 이거는 멸망할 것이 드디어 영원한 것에 스며 든 게 돼요. 스며 든 게 됩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달성돼야 되는데, 인간이 개입해버리면 뭣이 깨집니까? 하나님의 언약, 이것이 깨지겠죠. 하나님의 언약이 깨지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여러분들이 의아해하는 것은, 우리 생각에는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대로 하면 완전하고 완벽한데, 어떻게 그 연약하고 대수롭지 않은 인간이 끼어든다고 해서 그걸 왜 용납하느냐는 그런 생각이 들겠죠. 힘센 분이 계시는데, 되지도 않는 인간이 왔을 때에 그걸 한방에 쳐버리지 어떻게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다는 것을 허용하느냐 하는 것이죠. 그게 우리의 잘못된 선입견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을 할 때는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선악과나무를 아담이 심었습니까? 하나님이 심었습니까? 하나님이 심었죠. 심어놓고 따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것도 하나님이죠. 그럼 우리 생각에는 어떤 조치가 뒤따라야하느냐 하면은 이 선악과나무는 절대로 훼손되지 않을 조치를 뭔가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인간이 그 선악과 열매를 어떻게 했습니까? 따먹었죠. 따먹었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이게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은 이 멸망의 것이 있잖아요. 이 멸망의 것. 이 멸망의 것의 출처가 어디냐, 이 멸망의 출처가 하나님의 언약에 출처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속에는 우리 인간보기에는 대단하고 거룩하지만 그 뒤에 어두운 구석이 딱 숨겨져 있는 거예요. 어두운 구석이. 화투 패를 두 개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어두운 구석이 딱 있었던 거예요. 하나님의 거룩한 선악과가 인간에 의해서, 또는 악마의 부추김에 의해서 쉽게 허물어졌다는 말은, 이것은 인간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단단함, 하나님 그 자체로의 완벽함, 그 모든 개념에 대해서 그것은 원래 하나님의 세계와 무관한 사고방식이라는 겁니다. 원래. 하나님이 허약하다, 쉽게 무너진다, 약하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죽임을 당한다, 피조물의 손에 죽는 창조주다, 이런 개념들을 인간들이 만들어냈다면 과연 그런 하나님이 만들어냈겠습니까? 로봇을 만드는데, 간담브이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외계에서 온 천하무적의 외계인들을 쳐부술 수 있다. 이게 바로 간담브이고 로봇 태권브이라면, 이렇게 만들어놨는데 애가 모르고 다리를 쳤더니만 와장창 다 무너졌다. 어린애 하나가 건드렸는데 다 무너졌다. 이거는 단단하고 대단한 히어로적인, 영웅적인 그러한 태권브이라는 이미지가 다 없어지잖아요. 너무너무 허술해 보인다 말이죠. 그 허술함이 그게 뭐냐 하면 빈공간입니다. 빈 공간. 인간이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은 빈 공간 속으로 벌써 사라져버리죠. 인간 쪽에서 찾을 때. 선악과 따먹으면 신처럼 된다고 악마는 인간에게, 우리에게 알려줬거든요. 선악과 따먹으니까 신처럼 됐습니까? 아니면 더 비참하게 된 거예요? 더 비참하게 된 겁니다. 그걸 죽음이라고 하는 겁니다. 따먹는 날에는 어떻게 된다. 정녕 죽으리라, 죽으리라는 것은 손에 아무것도 쥘 수 없는 게 ‘죽으리라’에요. 아무것도 쥘 수 없는 것. 그래서 이사야에서 우상을 가지고 뭐라 했느냐 하면 빈껍데기라 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아무것도 없으면 아무것도 없어야가 정상인데,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뭔가 있어 보인다는 것. 신체가 있고, 근육이 있고, 주먹이 있고, 이게 현실과 다른 비극적인, 불행적인 망상에 인간은 놓여있습니다. 허구이면서 허구가 아니라고 애써 부인할 수밖에 없는 처참한 생활을 보내는 것이 인간이에요. 자기가 허깨비이면서도 허깨비가 아니라고 애써 부정해야 되는, 그런 내부적인, 정신적인, 심리적인 균열, 찢어짐, 이런 것들이 인간이라는 것을 체험해가는 거예요.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다시 말해서 인간은 허공 속에 놓여있으면서,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허공밖에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뭘 찾았습니까? 성전을 불태웠잖아요. 그때 바벨론이 성전을 불태워야겠다는 것과 그래서는 안 된다고 버텼던 히스기야부터 해가지고 시드기야까지. 성전을 갖고 있었던 남쪽 유다나라 왕들이, 그 성전을 갖고 있어야 우리나라 정체성이 유지된다고 그걸 버텼던, 구약에서 이사야나 거기에 그 내용들을 비춰보세요. 결국 유다나라는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을 가지고 지키고 바벨론은 부술 필요도 없는 것을 부수는 거예요. 잘 이해가 안 되십니까? 십자가마을에서 십자가마을을 지켜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교회가 우리교회를 지켜야 된다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짓이에요. 교회를 지킨다는 말이 있지도 않은 허깨비를 지킨다는 말과 똑같은 말이에요. 그러나 인간으로서는 소위 종교생활이랍시고 하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모든 행동의 집결이 어디에 총집결됩니까? 교회라는 데에 집결되죠. 마치 그게 의미가 있는 것처럼. 허상인데. 인간은 아무리 땀 흘려 노력해서 만들어 놓은 그것이 허상이라는 것 외에는 내놓을 작품이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왜냐, 교회가 허상인데, 기껏해야 허상만 만들어놓는다는 것은 본인의 의지와 이성과 생각과 합리적인 모든 상식이 어디에 방향성을 갖고 있는데, 그 방향성은 무엇을 만들어내느냐 하면 모두 허상으로 만들어내는 거예요. 허상으로. 부모가 자식을 낳을 때 허상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근데 그 자식이 교통사고가 났을 때에 비로소 자식이라는 것도 내가 쥘 수 없는 허상이라는 것을 아는 겁니다. 부모가 마음에 들 때, 오래오래 사시고 저의 효도를 받으세요, 라고 했는데, 그 부모가 연세가 많아서 돌아가신다면 자식이 그 부모를 위해서 얼마나 웁니까? 왜 그렇게 잘해주셨던 어머니, 아버지 어디에 계십니까? 이게 원래 없어져야 되는 거예요. 이게. 모든 인간의 개체는 없어져야 되는 겁니다. 없어져야 될 것, 없어질 것, 허구적인 것을 희망으로 삼고 붙들고 있는 거예요. 모든 인간이. 국가라는 것도 마찬가지고 학교, 가정, 모든 교회, 모든 것이 이게 다 허구가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체가 허구이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 자체가. 허구가 되는 이유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 대목을 자기에게 적용시키는 거예요. 하나님은 어디서 어디를 만들어냈습니까? 없는 데서 있는 것을 만들어냈죠. 근데 하나님이 없는 데서 있는 것을 만들어낸 그 원리에 하나님 본인이 그걸 적용시켜버려요. 없는 하나님이 나오는 식으로 주의 이름은 나타납니다. 없는 식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있는 것으로 있는 것을 나타낸다? 안 나타낸다? 그거는 하나님의 창조원리에 위배되는 거예요. 있는 것은 어떻게 될까요? 없는 것으로 전환되어야 해요. 있는 것은 없는 것으로. 없는 것은 새롭게 나오는 것으로. 그게 대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누가복음 15장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는 유명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뭐냐 하면 탕자이야기가 있죠. 탕자이야기의 핵심은 뭐냐 하면 잃어버린 자를 내 아들로 삼는 거예요. 탕자이야기 그 전에 두 개의 이야기가 먼저 나옵니다. 하나는 어떤 처녀가 동전을 잃어버린 이야기, 또 그 앞에 보면 양이 100마리 있었는데 1마리 잃어버린 양이 있죠. 그러면 99마리를 놔두고 어디를 찾아갑니까? 1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죠. 잃어버림이 의미가 있는 거예요. 잃어버림이. 잃어버렸다가 되찾는 거예요. 잃어버렸다는 것은 현장에 있다? 없다? 없어서 의미가 있는 거예요. 이 현장에 없어서 의미가 있는 겁니다. 100마리 양 중에서 다 모든 것이 있는데, 없는 양은 1마리뿐이에요. 그러면 99마리는 있음이라는 이유 때문에 의미가 없는 거예요. 어디에 의미를 두느냐 하면은 없어진 데에 의미를 두는 겁니다. 이것은 뭐냐, 하나님 자체가 이 땅에 있다? 없다? 하나님 자체가 이 땅에서 사라져야 되고 없어야 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세상은 하나님을 붙들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멸망의 가증한 것은 영원한 것에 같이 합치하지 못하기 때문에. 합류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경의 원리는 잃어버림이에요. 잃어버림. 여러분들, 뭔가 잃어버렸다가 찾은 경우기 있죠. 그럴 때 참 좋죠. 앞으로 연세가 더 들면 깜빡깜빡 그런 경우가 더 생길 거예요. 지갑을 어디에 뒀더라? 어쩔 때는 안경을 위에다 쓰고 있으면서 안경을 찾는다고, 안경이 바로 위에 있는데. 그래도 괜찮아요. 안경이 있다, 없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다는 그게 색다른 창조적인 의미를 부여받은 거예요. 가끔씩 감사가 나오고 그렇죠. 건강도 잃어버렸다가 얻을 때 기쁨이 있는 겁니다. 안 그러면 자기가 늘 건강한 것처럼 생각하는 거예요. 인간은 자기가 없다는 생각을 안 해요. 그래서 문제에요. 없다는 생각을 안 하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을 하실 때는 우리를 잃어버린 자, 없는 자로 간주해서 영원한 공간, 천국이죠. 천국에 가려면 매일같이 하나님에 의해서만 우리가 있게 된다는 그러한 체험을 날마다 경험케 하는 그런 경우가 앞으로 계속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 계속 이야기를 해볼게요. 이 영원한 공간을 설명할 때, 지금까지 강의한 것을 여러분들이 잘 들으셨다면 영원한 공간은 하나님의 언약으로 세워진다. 그렇게 되겠죠. 그러면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성전이라는 것이 구약에 보면 가시적인, 눈에 보이는 건물로 이렇게 만들어 놨다 했죠. 근데 그 건물은 바벨론 군대에 의해서 완전히 불타버립니다. 그 말은 뭐냐 하면 성전에 어떤 의미를 부여받느냐 하면, ‘성전+성전 잃어버림’이라는 의미를 부여받는 거예요. 그리고 바벨론이라는 이방민족은 시다바리입니다. 아까 이야기한 대로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거예요. 보조적인 역할. 이방민족, 자, 바벨론 다음에 나온 제국의 이름이 뭐죠? 바사나라죠. 바사. 중국을 3대0으로 이겼던 이란이 바사나라에요. 페르시아. 그 다음에 나온 나라가 헬라. 헬라는 지금의 그리스에요. 그리스 마케도니아 또는 그리스. 그리스하고 마케도니아에서 지금 국민투표하고 있어요. 나라이름 바꾸자고. 마케도니아는 따로 있거든요. 따로 하지 말고 그리스로 통합하자고 하는데. 그 다음에 나오는 나라가 대표적으로 이 보조역할, 보이는 가시적인 국가, 시다바리 역할 하는 가시적인 국가, 성경에서는 바벨론부터해서 바사, 헬라, 그 다음에 가시적인 국가로 마무리 짓는 나라가 어디냐 하면은 로마죠. 로마. 이것을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름을 부정적인 이름을 붙입니다. 짐승이라고 해요. 짐승. 짐승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눈으로 보면 인간들의 집합체거든요. 국가라는 게. 그러나 인간들의 집합체에 플러스알파+α가 있어요. 알파α라고 하는 것은 인간들의 모든 정신을 세뇌하고 통제하는 어떤 힘이 그들 위에 녹아져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말은 이런 바벨론, 바사, 헬라, 로마는 국가가 어떤 결정을 내리고 그들의 국회, 대통령이 행정을 어떻게 하든 간에 그 결정은 무엇의 결정이다? 보이지 않는 악의 결정에 그냥 그들이 순응하고 있는 겁니다. 악의 결정에. 그 악의 결정에 순응하는데, 순응하도록 배후에서 조종하시는 분이 누구냐 하면은 바로 주님이에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겁니다. 왜냐하면 모든 권세를 다 쥐고 있으니까. 악을 통제해서 그 악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을 어떤 하나님으로 보이느냐 하면은 잃어버린 하나님, 어디서? 이 땅에서 잃어버린 하나님으로. 잃어버린 하나님이니까 있다는 말입니까? 없다는 말입니까? 다른 말로 하면 없는 하나님이에요. 천지를 창조했는데 없어요. 천지를 창조했는데 없다면, 그럼 천지는? 천지창조 했으니까 있잖아요. 해와 달 있잖아요. 근데 그게 없어진다는 거예요. 누굴 닮아서? 하나님을 닮아서. 피조물은 하나님을 닮아서, 하나님이 없어지니까 천지창조 이것도 하나님을 닮아서 없어지는 거예요. 그 이야기가 성경이야기입니다. 사람 없어지는 마냥으로 없어지는 거예요. 오늘 제목을 한다면 ‘잃어버린 하나님’이에요. 하나님 자체를 잃어버렸어요. 그럼 천국 간 사람은 어떤 사람만 가느냐 하면은 닮은 사람이 가죠. 어떤 사람? 이 땅에서 잃어버린 사람. 결론적으로 이야기해서 누굴 잃어버려요? 본인을 잃어버려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거예요. 더 나아가서 지금의 나는 가짜고 진짜 나는 잃어버렸다는 자각을 갖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천국백성입니다. 어디 갔지? 나 어디 갔어? 너 있잖아. 아니야. 너는 가짜야. 진짜 너 어디 갔어? 진짜 자기 자신을 찾아도 찾을 수가 없어요. 없는 거예요. 너 거기 있잖아! 라고 하는 것은 누가 이야기하겠어요? 짐승이 이야기하는 거예요. 너 있으니까 잘해! 우리 엄마 어디 갔어? 엄마 있잖아! 아빠 있잖아! 동생 있잖아! 집에 강아지도 여기 있네! 이거는 짐승들이 이야기하는 거예요. 짐승들이. 짐승들이 하는 이야기는 절대로 잃어버리자? 잃어버리지 말자? 절대로 잃어버리지 말자. 있음에서 있음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는 이게 문명이고 과학이잖아요. 있음에서 계속 있게 하자. 있음에서. 내 건강, 천식 걸린 내 목숨 어디 갔지? 있잖아! 누워서 링거 맞고 약 먹고. 계속 있게 하자는 거예요. 계속 있게 하자. 병원에 누워서 월요일에 또 주사 맞습니다. 빨리 살려내서 계속 있게 하는 거예요. 기침 덜하게 하고.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싶다는 말은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내가 보고 있는 나를 부정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옛날에 친근하게 봤던 것, 내게 친숙한 것이 계속 내 주변에 있을 때에 나의 나와바리가 돼요. 나의 삶의 공간이 되는 겁니다. 그럼 나의 삶의 공간이 되면 그게 언약일까요? 아니면 멸망의 가증한 공간이 될까요? 멸망의 가증한 공간이 되는 거예요. 왜? 있음이 계속 주主가 되니까. 잃어버린 하나님의 대표적인 사건을 아시죠? 무슨 사건입니까? 십자가사건이죠. 십자가사건. 그러니까 성전이 불탈 때, 뭐 유대인들이 얼마나 애통해 했겠습니까? 그래서 유대인들을 달래기 위해서 아람사람 헤롯이 유대인들을 제대로 달래줘서 통치하려고 46년간 헤롯성전을 지은 거예요. 헤롯성전. 그 헤롯성전의 모델이 뭐냐, 그 모델이 바로 솔로몬성전을 기초로 해서 에스겔에 나오고 예언서에 나오는 것을 전부 다 이렇게 한 겁니다. 자 헤롯성전, 제가 가봤거든요. 면적을 크게 해서 보면 헤롯성전 주변에는 이방인의 뜰이 있어요. 이방인의 뜰. 이방인의 뜰을 해놓고 안에 건물로 주위를 맞춰버려요. 사실은 이방인의 뜰이 좀 더 커요. 성전은 이방인의 뜰보다 작습니다. 이방인의 뜰이라고 하는 것은 고유의, 에스겔 성경에 나오는 거룩이라는 것, 속된 공간과 성스러운 공간을 구별하기 위해서 이름을 붙인 겁니다. 이방인이라고. 이방인은 여기 계세요, 라고 우대한 것이 아니라 너희들은 여기까지, 라는 배척의 의미를 가지고 이방인의 뜰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 다음에 성전을 반으로 나누면 여자의 뜰, 여자의 뜰은 여자는 여기까지, 라는 뜻이에요. 방이 4개 있어요. 방이 아니라 사실은 창고에요. 창고인데, 나무창고, 나실인 창고, 여기는 포도주저장하는 창고, 문둥병자창고 해서 여자의 뜰에는 여기까지, 애들도 여기까지. 그 다음에 남자의 뜰도 있겠죠. 남자의 뜰을 같은 말로 이스라엘의 뜰이라고 해요. 이스라엘의 대표는 남자기 때문에. 이거는 뜰이 아니에요. 그냥 경계선이에요. 계단이 몇 개가 있느냐 하면은 15개가 있어요. 15개 계단이 있고, 그 다음으로 들어가면 제단이 있고, 솔로몬 성전의 본체가 모형으로 있습니다. 이게 뭐냐 하면 이 전체가 제사장의 뜰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어디에 섰겠어요? 제사장 옆에 있는 거예요. B.C 168년경에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라는 짐승 가운데서 헬라장군이 여기에 뭘 세웠느냐 하면 제우스 우상을 여기다가 세워버렸습니다. 제우스 우상을 세웠어요. 그 세웠다는 성경구절을 피곤하시더라도 한번 봅시다. 다니엘서 9장 27절,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성전에서 제사와 예물을 금지한 그 자리에다가 미운 물건을 세웠다 했습니다. 다니엘서 11장 31절을 봅시다.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을 세울 것이며” 군대는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이라고 하니까, 아까 우리가 봤던 본문이 뭡니까?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하게 하는 곳에 선 것을 보거든”(막13:14)이라는 말씀이 생각되겠죠. 그 다음에 다니엘 12장 11절을 봅시다.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 이백 구십일을 지낼 것이요” 그렇게 되어 있죠. 미운 물건. 다시 이야기합니다. 처음에 헬라장군이 공간적으로 와서 성전에다가 미운 물건을 세우게 될 것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이 세웠던 성전은 무슨 성전이냐 하는 겁니다. 성전은 이미 불타버렸는데. 성전을 다시 짓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성전을 다시 짓는 것이 뭐냐 하면 느헤미야 6장 15절에 보면 “성 역사가 오실 이일 만에 에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근데 이 성전은 별로 규모가 작아요. 규모가 작습니다. 어쨌든 규모가 작든 말든 느헤미야가 와서 성전을 세웁니다. 성전을 세웠는데 세울 때의 의미가 예레미야라는 선지자가 약속을 한 게 있어요. 이 성전이 불타지만 70이레가 지나면 다시 이 성전을 세울 때가 올 것이다. 7+62+1하면 70이레가 되죠. 7이레는 성전이 세워지는 기간, 포로 잡혀가서 70년 포로가 끝나고 난 뒤에 다시 돌아와서 그때부터 7이레 동안 성전이 세워지고, 62이레는 성전에 시달리고, 1이레는 며칠이죠? 7일이죠. 7일인데, 이 1이레에는 하나님의 새로운 성전이 등장하는 거예요. 아까 하나님의 이름은 어떤 경우에 거룩한 공간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죠.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는데 이 1이레에 이루어져요. 1이레니까 이거는 7일이잖아요. 7이레는 다니엘에 보면 반으로 나눕니다. 그럼 뭐가 돼요? 3.5가 되죠. 3.5, 3.5가 되겠죠. 한때, 두때, 반때가 여기서 나온 이야기에요. 한때, 두때, 반때(3.5)는 예수님이 오셔서 새로운 언약을 시도하는 것이고, 그 뒤에 한때, 두때, 반때(3.5)는 시도한 그것을 드디어 완성시키죠. 이 시도할 때에 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하면은 아까 이야기한 잃어버린 하나님이 되는 거예요. 잃어버린 하나님. 아, 지금 여러분들이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하나님이 일을 너무 복잡하게 하신다 하는 생각이 들겠죠. 그런데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이 주시잖아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이 주실 때, 예를 들면 제가 어떤 물건을 줄 때 내 물건이 여기 있잖아요. 있죠. 있는 사람이 물건을 주게 되면, 내가 있고 물건을 줄 때, 줄곧 물건이 있다는 말은 준 사람이 있다가 된다 이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언약이 있어버리면 하나님은 있는 하나님이 돼요? 없는 하나님이 돼요? 있는 하나님이 되죠. 그러면 없는 하나님이 되려면 이 언약이 있는 언약이 아니고 소멸되어야 되겠죠. 언약이 소멸되게 되면 이 언약을 준 하나님도 없어질 수 있는, 없어지는데 성공할 수가 있어요. 없어지는데. 예수님이 메시아로 왔잖아요. 그럼 어떻게 됩니까? 없애버리면 되는 거예요. 자, 선악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한 것에 대해서 여기에 악마의 대처는 아주 간단합니다. 1번, 선악과 앞에서 벌벌 떤다. 2번, 안 따먹고 뺑뺑 돈다. 3번, 선악과 따먹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4번, 파내버린다. 몇 번이에요? 그냥 없애버리면 되는 거예요. 간단한 문제죠. “에이씨! 누구한테 감히 명령해?” 이러면 명령자가 사라지죠. 명령자체를 개무시 해버리면 뭐도 사라진다? 명령자도 사라진다. 선생님이니까 잘 알잖아요. “몇 페이지까지 숙제해주세요.” 학생들이 “야, 이거 무시하자.” 그러면 그 학급에 선생님이 없는 거예요. 선생님이 없어요. 명령을 자기가 찢어버렸기 때문에 명령자가 없는 거예요. 없어지는 방법은 말씀을 안 들으면 되는 거예요.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성경말씀을 안 들으면 그만이에요. 하나님은 제발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제발 그래야만 너희들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작전에 너희들이 옴팍 말려드는 자들이 된다는 겁니다. 여기 오늘 본문 마가복음 13장 14절에 보면 멸망의 가증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냥 가증한 것이 아니고 앞에 뭐가 붙어요? 멸망이죠. 그냥 멸망받기로 작정된 자가 누구냐를 드러내기 위해서 하나님 쪽에서 자기가 사라지는 방식을 취하시는 겁니다. 나를 사라지게 했을 때에 너희는 뭐다? 그야말로 멸망될 자로 부각이 되고 확정이 되는 겁니다. 이 말씀이 아주 유명하고 아주 제가 좋아하는 말씀인데, 요한복음 15장 22절에 보면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이래 되어 있죠. 예수님이 오시지 아니하면 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예수님이 오시지 아니하면 그들의 죄가 없어요. 그들이 율법을 가지고 해석할 때 어쨌든 간에 우리는 죄인이 아니고 의인이라는 쪽으로 해석을 다 한 거예요. 오늘날 교회에서 성경말씀 할 때 교회가 하는 일이 뭡니까? 이런 일을 한 거예요. 성경말씀을 두고 그래서 우리 스스로 박수칩시다, 라고 하는 거예요. 왜? 오늘도 이 말씀처럼 안식일 지키라고 해서 교회 예배 나오고, 십일조 하라고 해서 십일조 했고, 복음 전하라고 해서 복음 전했고, 계속해서 자기들은 무슨 목표를 두고 말씀을 해석하겠어요? 우리만큼은 말씀을 안 지키는 자가 아니라 유일하게 지키는 자인 것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서 계속 그 말씀을 버릴 수가 없는 거예요. 왜? 말씀이 있어줘야 자기가 의롭고 정당하니까.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안 잃어버리려고 하는 거예요. 교회들이. 교회가 의미가 있다고 여기게 만드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딱 왔을 때에, 십자가가 딱 왔을 때에 주님께서 옆에 누굴 두셨습니까? 강도, 세리, 창기. 세리는 마태고. 아무것도 모르는 죄인이라고 여겼던 사람은 베드로죠.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떠나소서.”라고 했잖아요. 주님보고 떠나라고 하는 베드로. 세리자리에 앉아서 돈 챙기고 있는 마태. 그냥 부른다고요. 12년 동안 앓은 혈루증 여인, 강도, 문둥병자, 그냥 부르는 이유가, 그들의 특징이 앞서서 이야기한 사람들과 어떤 차이가 납니까? 세리 같은 경우에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자꾸 세리하니까 박세리가 생각이 나는데, 그 세리 말고, 그 세리라는 사람과 바리새인하고 배틀이 붙었잖아요. 배틀. 성전에서 배틀이 붙었죠. 차이점이 뭡니까? 바리새인은 자기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했잖아요. 근데 세리는 어떤 기도를 했습니까? 감히 얼굴을 못 들죠. 자기를 가지고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 앞에 자기는 뭐다? 죄인입니다. 어떤 처분도 달게 받겠습니다. 어떤 처분도. 나를 없앤다고 할지라도 제가 거기에 저항하지 않겠습니다. 나를 없앤다, 죽인다고 할지라도 저항하지 않겠습니다. 천식으로 나를 죽여도 나는 저항하지 않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없어지게 되면 이 성전도 없는 거죠. 내가 없어지면 이 성전도 없는 거예요. 세상의 모든 것이 허상이에요. 나는 이 땅에 태어나서 없어져야 마땅한 그런 환경 속에서, 나와 같이 없어질 세상 환경 속에서 같이 없어집니다. 그럼 그 안에, 그 앞에 누구만 있으면 되죠? 예수그리스도만 있으면 되죠. 예수그리스도가 있든지, 세상이 있든지 둘 중의 하나에요. 세상이 있으면 예수님은 없고, 예수님이 나타나면 세상은 그 앞에서 없어지는 것이 마땅하고.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대접처럼 다 없애버리죠. 몽땅 다 없애버리는 거예요. 우리가 아끼고 우리에게 친숙했고 우리에게 과학의 관찰의 대상이었던 모든 것은 다 없어질 것들이에요. 왜? 거룩한 곳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침노했기 때문에. 점령을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점령하도록 누가 옆에서 다 유도했습니까? 하나님 자신이죠. 왜? 하나님 자신을 어떤 하나님으로 만들기 위해서? 없는 하나님으로, 하나님 나는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 없으면 뭐도 없습니까? 천국도 없죠. 그러면 천국은 어디에 있느냐 할 때, 여기 있다고 저기 있다고 말하지 마라. 여기도 없고 저기도 없다(눅 17:21). 그러면 천국은 어디에 있느냐, 내가 있는 그곳이 바로 천국이다. 예수님이 계신 곳이 바로 천국이다. 없는 데서 있는 곳으로는 갈 수가 없습니다. 계신 분이, 계신 예수님이 그 사람을 초대해야 되고 내 사람으로 만들어줘야 해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가 없는 겁니다(요6:44). 자기가 원하는 자는 친히 택해요. 손들고 저요! 저요! 하지 마세요. 손 다 내려라! 다 내려! 내가 뽑아서 세울 거야! 잃어버린 자로. 잃어버린 자 되게 하신 그런 경험이 있다면 여러분들은 택함 받은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이 상실된.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고 성경공부 했는데, 점점 그런 자신이 상실되는. 키가 점점 작아져서 꼬마가 되어 없어지는 것처럼. 어디서 키 작은 것이 멋있는 척... 갑자기 뒤끝이 있는 것 같은데. 감히 주의 종을... 아무것도 아닌, 그야말로 아임낫씽I'm Nothing이거든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어야 돼요. 왜냐하면 주님께서 아무것도 아닌 방식으로 주님만 높일 수 있는, 방식이 그 방법밖에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리스도만 계신 것으로만 족한 성도. 그런 관계가 앞으로 우리가 천국 가서 사는 삶의 방식이에요.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이 천국의 삶의 방식이에요. 그 방법 외에는 없어요.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경험하지 않으면 죽어서 천국에 못 가거든요. 지금 첫째시간에 하는 것은 어디에 집중했느냐 하면은 공간에 집중했죠. 공간. 공간에 거룩한 것과 성전이 불탄 것, 그래서 성전에 가증한 것이 섰을 때, 이런 의미가 결국은 하나님의 언약의 공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스스로 철수하는 방식을 사용했다고 했죠. 스스로 철수하는 거예요. 스스로 자기가 있던 이름, 주의 이름이 있는 곳을 불태우도록 바벨론을 부추긴 거예요. 이란한테. 스스로 자기 몸에 기름 붓고 완전히 분신자살 한 것과 똑같은 거예요. 자 내 몸에 기름 붓고 불태워버려라! 성전이 없다고 난리에요. 성전이 없다고 난리를 치니까, 그 성전 없는 것을, 왜 내가 스스로 불태워지는가를 공간이 사라지는 그 다음에는 그와 유사 공간을 만들어요. 70이레를 통해서. 그럼 70이레는 시간일까요? 공간일까요? 그건 시간이죠. 시간 속에서 성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게 약간은 복잡해요. 이게 요한계시록에 나오는데, 그게 70이레를 통해서, 아까 7이레에 보면 뭡니까? 7이레가 둘로 쪼개지죠. 3년 반이죠. 3년 반 플러스 3년 반이 아니고, 3년 반 뒤에 3년 반이 들어있어요. 3년 반은 성전이 부서지는, 메시아가 죽어가는 동시에 그 기간이 오히려 이 세상이 상상도 못할 진짜 메시아가 등장하는 기간이 동일한 기간이 되는 거예요. 3년 반, 3년 반을 종이를 접어버리자 이 말입니다. 한 장의 종이가 7이레라면, 이걸 반으로 접으면 뭐로 보입니까? 3년 반으로 보이죠. 이걸 펼치면 7이레에요. 너무 약 올리는 것 같아서 제가 둘째 시간에 할 것을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 9절을 한번 읽어보세요.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여기 우리는 분명히 예수님이 사흘 동안 죽었다고 하는데, 여기는 사흘 반 동안 십자가에 죽어있었다고 되어 있죠. 물론 두 증인입니다. 두 증인이 사흘 반 동안. 물론 사흘 반 동안, 11장 2절에 보면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아까 이방인의 뜰 나왔죠. 제가 이방인의 뜰을 그림으로 한 이유를 알겠죠. 강의 처음부터 다시 하겠습니다. 이방인의 뜰, 뭔가 성과 속을 구분한다는 것은 거룩을 거룩되게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반드시 속된 것이 옆에 배치가 돼 있어줘야 해요. 배치가. 공간적으로 우리가 쉽잖아요. 수도원 생각하면 간단해요. 수도원은 수도사들이 제의를 치르는 공간이에요. 제의가 뭐냐 하면 예배, 제사, 축복, 성수뿌리고. 그러면 수도원 바깥은 성수를 안 뿌렸잖아요. 그럼 속된 거죠. 그럼 수도원들이 제의를, 제의, 보통 제사, 제례라고 하는데, 제의를 뿌리는 이유는 이 자연 속에 있는 악한 기운들이 이 공간에는 침범하지 말라는 거예요. 가뭄이나 도적이나 병충해나 이런 것이 우리가 성수를 뿌리고 축복을 해준 그런 공간에는 오지 말라고 성스러운 공간이라고 테두리를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해놓은 거예요. 옛날 영국이나 스코틀랜드 이런 데에 보면 그런 수도원들이 많이 있었어요. 수녀들 신부들을 보면 어떻습니까? 진짜 정신병자들 같아요. 자기가 거룩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고요. 뭔가 제사제도를 동원해서 자기를 완전 무장했으니까.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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