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67강-YouTube강의(마지막이라는 말)20190122-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

267강-YouTube강의(마지막이라는 말)20190122-이 근호 목사 제 267강, 제목은 ‘마지막이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마지막을 싫어해요. 마지막이 여러 가지 종류가 있거든요. 1교시 끝나면 딩동댕동~♬ 마지막 끝나죠. 그리고 연말이 되면 시간의 마지막이 있을 것이고. 기차타면 제일 마지막 칸이 있을 것이고. 마지막이라는 것을 왜 싫어하느냐 하면은 마지막이 돼버리면 무한이 안 되기 때문에 그래요. 자기가 유한한 존재가 되는 거예요. 그럼 유한한 존재가 되는 것이 왜 싫은가, 아무리 지금 내가 여유가 있고 넉넉하게 살아도 언젠가는 이 행복과 여유로움과 넉넉함이 결국 마지막 때가 되면 모든 것이 싹 사라지잖아요. 잃어버린다고요. 그러면 그 마지막이라는 것을 미리 땡겨서 해버리면 지금 내 행복을 갉아먹는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40대의 가장이 자기의 생일에 생일파티를 하고 있는데, 다른 데 사는 아버지 어머니가 축하하러 왔어요.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서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 부르고 케이크 자르고 난 뒤에, 아버지 어머니가 네가 옛날에 얼마나 공부를 잘했으면 지금 결혼한 것도 네가 훌륭해서 결혼했다고 뭐 이렇게 이야기하고, 며느리도 박사학위 따서 좋지? 우리 광산김씨 자랑거리가 뭐 이렇게 널렸다고 이야기하면서 하죠. 그런데 갑자기 “가만히 있어봐라. 조용히 해.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있다.” 그래놓고 하는 말이 “오늘이 너의 아버지로서 생일날 참석하는 것이 마지막 날이야.”라고 하면, 지금 한창 무르익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다 깨버립니다. 다 깹니다. 그럼 이 말은 아버지의 수명이 1~2년이 안 남았다는 말입니다. 왜 그런가, 사실 내가 너한테 안 알렸지만 암 말기라서 병원에서는 6개월에서 3개월 이상은 못 산다고 했다. 그래서 아들 생일 참석은 오늘로서 마지막이라고 해요. 이럴 때 아들이 아무리 철없어도 “에이, 3개월 뒤는 알아서 하고 지금 즐길 때 즐깁시다.” 이렇게 나오는 아들은 아무도 없어요. 우리나라 쇼트트랙의 유명한 선수가 있죠. 심석희 선수. 심석희 그 아가씨가 자신의 마지막을 선포를 했어요. “나는 코치한테 성폭행을 4년 동안 당했다.” 이거는 자기한테 마지막이에요. 마지막. 일종의 자살행위와 마찬가지입니다. 심석희 선수가 나라에 기여한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인데, 국민의 희망이었는데, 사람취급을 못 받았다고 했을 때에 심석희를 응원한 사람들이 같은 피해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죠. 그런 인간은 재판도 필요 없다. 죽여라! 이래 나오겠죠. 성경을 안 볼 때 하는 이야기에요. 성경을 안 볼 때. 사람들은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일상생활을 하지만 그 속에서 마지막이 얼마나 거부적인 요소로, 거부당할 수밖에 없는, 싫어버린바 된 용어가 마지막이에요. 그래서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길다 하잖아요. 수명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되 그걸 보완하기 위해서 예술적인 것을 하게 되면 나는 죽어도 내 작품은 남아있으니까 나는 살아있다. 뭐 이런 거. 그리고 나는 죽지만 내 자식이 내 제사를 드려주게 되면 나는 그 제사를 통해서 살아있다는 것. 또는 생물학적으로 내 DNA가 할당이 되고 계속 분배되니까, 자식들에게 조금씩 조금씩 조각조각 나누어지니까, 나는 죽어도 내 자식들이 살아있으면, 그것은 DNA가 널리 유포된 거죠. 높았던 내가 짜부라져서 전 세계적으로 내 자식들, 손자들이 가는 곳마다 내 DNA가 있으니까 곧 내가 있는 것이다. 뭐 그런 식으로 생물학적으로 위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거는 세상에서나 하는 이야기고요. 성경에서는 마지막을 뭐로 보느냐 하면 축제로 봅니다. 축제. 그 대표적인 것이 7×7=49+1=50 그걸 50년 째, 희년이라고 해요. 희년. 희년의 뜻이 뭐냐, 즐거운 날, 기쁜 날, 하나님이 나의 모든 짐을 다 일거에 못 본 것으로 해준 날. 이게 신약에 오게 되면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4장에 나오죠. 16절에서 18절.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서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내가 온 것은 희년을 선포하려고 왔다. 내가 여기 있으매 곧 희년은 기다릴 필요가 없는, 곧 나와 함께 있는 그들에게 희년은 이제부터 영원하다. 이것은 뭐냐 옥에 갇힌 자를 풀어줄 것이고, 옥에 갇힌 자는 옥에 갇힐만한 이유가 있어요. 근데 이게 풀어준다는 거예요. 가난한 자는 가난할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제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해방의 날이 된다.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오셨는데, 죄 용서, 자기 백성에게만 일방적으로 죄 용서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대신 어린양의 희생 제물로 오셨다. 그렇게 이야기한 겁니다. 축제입니다. 지금 제가 이렇게 말했지만, 제가 한 말도 잘못된 말이에요. 왜냐하면 이 세상의 인간들은 마지막을 뭐로 생각하느냐 하면 사적인 마지막과 개인적인 미래상과 연결시키잖아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용서하러오셨습니다, 해방하러 오셨습니다, 라는 이 말을 들으면 내 사적인 것은 포기를 안 하고, “아, 예수 믿으면 사적으로 형편이 펴겠네. 사적으로 나중에는 내가 떵떵거리며 살겠네.” 계속해서 사적인 욕구와 욕망의 달성으로 예수님 믿겠다고 나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거는 예수님 당시에 바로 예수님을 누군지도 모르고 따라갔던 열두 제자와 그리고 많은 대중들과 민중들도 똑같은 생각을 한 겁니다. “예수 믿으면 횡재할 수가 있다.” 심지어 제자들도 하늘나라에 가면 우리 중에 누가 높겠습니까? 자기 자리싸움 하고 있는 거예요. “예수님이 하늘나라에 가게 되면 우리는 부하직원들이니까 우리도 자리 하나 맡겠지.” 원래 정치하게 되면 정치 운동했던 사람들이 공기업 임원진이나 뭐 맡잖아요. 이런 것처럼 자기 이득과 관련해서 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게 아니라고 굉장히 여러 번 누누이 이야기를 했어요. 어린아이를 내세운다든지, 내 쓴잔을 마신다든지, 그 중의 하나 이야기가 바로 마태복음 24장에 나옵니다. 사적인 것과 마지막은 관계없어요. 사적인 것과 마지막을 끊어버리는 거예요. 나의 마지막은 없어요. 왜냐하면 나 자체라는 것을 인정 안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지막은 공적인 마지막입니다. 사적인 마지막이 아니에요. 공적인 마지막이에요. 하나의 예를 들겠어요. 심석희 선수가 폭로를 해서 일체 코치는 제자들에게 성추행, 성폭행을 못 한다고 법이 바뀌었다고 칩시다. 그리고 당했던 사람은 보상금을 나라에서 1억을 준다든지, 가해자한테 1억을 받아서 준다든지 해서 법이 바뀌었다고 칩시다. 사적으로 심석희는 영웅이 되고 그동안 아팠던 것이 보상이 되겠죠. 근데 심석희가 스케이트를 탈 때 제일 미운 사람이 있을 거예요. 제일 미운 사람. 그 미운 사람이 심석희도 모르게 자기보다 고만 더 고생을 많이 했어요. 심석희는 보상금으로 1억이 갔는데 그 사람은 보상금 5억이 갔어요. 그러면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가, 사촌이 논 사면 어떻게 됩니까? 갑자기 기분이 확 상하는 거예요. 그러면 공적으로 성폭행은 안 된다는 공적인 완성을 하려면 그 전에 뭘 포기를 해야 돼요? 내가 사적인 요구에 부응해서 공적인 것이 주어진다는 그 인과응보의 관계를 끊어줘야 되겠죠. 그렇죠. 쉽게 이야기해서 나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이 말입니다. 그게 바로 마태복음 24장 45절,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46절,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 이야기 나오고 25장에 달란트이야기 나오는 겁니다. 이건 뭐냐 하면 예수님 자체가 마지막이고, 25장의 열 처녀 비유가 뭐냐 하면은 개인적으로 그 마지막을 뛰어넘어서 지옥 안 가고 천국가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거는 이미 예수님이 말하는 마지막과는 전혀 상관없는 자기욕구, 욕심이에요. 주님의 마지막은 일방적으로 주님이 마지막이라는 것이 사적인 자기 안에 들어옴으로써 내 개인적인 열망, 욕구를 완전히 포기한 사람에게만 이게 실효성이 있는 마지막입니다. 그 마지막이 성경적인 마지막이에요. 나 잘되기 위해서 예수 믿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하신 일을 미리 앞서서 드러내기 위해서 나는 이런저런 아픔과 괴로움과 그리고 이 땅에서는 희망을 갖지 말아야 된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 그 사람에게 그 마지막은 개인적인 이득과 연관되지 않고, 주님하시는 그 자체가, 주님의 계심 자체가 좋아서, 그것이 너무 행복해서 계속 마지막을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만이 재림을 기다릴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입니다.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60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7,167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병 나은 시기 / 190203 - 최고관리자 19-02-03
17,166 묻고답하기 긍휼 에베소서 최고관리자 19-02-03
17,165 강의 흠 190201 레위기 최고관리자 19-02-01
17,164 자유게시판 2019 겨울수련회 - 아가서 강해(총9강) (재정리힘) 아가 최고관리자 19-02-01
17,163 자유게시판 강남-요한복음 20장 11절(부활의 공격성)190122b-이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9-02-01
17,162 자유게시판 강남-요한복음 20장 11절(부활의 공격성)190122a-이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9-02-01
17,161 자유게시판 175강-창 45장 25-28절(야곱모시기)190130-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19-01-31
17,160 강의 사무엘상 46강(사무엘의 한계), 마태복음 108강(자기죽음) 190129 - 최고관리자 19-01-29
17,159 자유게시판 안양20190111b야4장15절(연출)-이 근호 - 최고관리자 19-01-28
17,158 자유게시판 안양20190111a야4장15절(연출)-이 근호 야고보서 최고관리자 19-01-28
17,157 자유게시판 11강-엡 2장 1(죄로 죽은자)190127-이 근호 목사 에베소서 최고관리자 19-01-28
17,156 자유게시판 광주강의20190125b 마가복음13장 14-23절(잃어버린 하나님)-이 근호 목사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19-01-27
17,155 자유게시판 광주강의20190125a 마가복음13장 14-23절(잃어버린 하나님)-이 근호 목사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19-01-27
17,154 자유게시판 221강-여호수아 11장 21~23절(전쟁과 기업)20190127-이 근호 목사 여호수아 최고관리자 19-01-27
17,153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물과 포도주 / 190127 - 최고관리자 19-01-27
17,152 묻고답하기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에베소서 최고관리자 19-01-27
17,151 자유게시판 174강-창 45장 16-20절(요셉의 나라)190123-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19-01-24
열람 ➜ 자유게시판 267강-YouTube강의(마지막이라는 말)20190122-이 근호 목사 - 최고관리자 19-01-23
17,149 자유게시판 266강-YouTube강의(성공)20190122-이 근호 목사 - 최고관리자 19-01-23
17,148 강의 부활의 공격성 190122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9-01-22
17,147 강의 유튜브 (266강, 267강). 성공, 마지막이라는 말 190122 - 최고관리자 19-01-22
17,146 자유게시판 10강-엡 1장 20-23(교회)190120-이 근호 목사 에베소서 최고관리자 19-01-21
17,145 자유게시판 220강-여호수아 11장 19~20절(강퍅)20190120-이 근호 목사 여호수아 최고관리자 19-01-20
17,144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12제자 / 190120 - 최고관리자 19-01-20
17,143 묻고답하기 죄로 죽은 자 에베소서 최고관리자 19-01-20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