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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부활의 공격성 190122강의요한복음

강남-요한복음 20장 11절(부활의 공격성)190122a-이근호 목사

요한복음 20장 11절부터 하겠습니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그렇게 되어 있지요.

천사하고의 대화가 가능한가요? 라고 물을 때 과학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천사는 존재하지 않아요. 천사는 인간이 상상해서 만들어낸거고 천사는 없습니다. 예수 믿고 복음 알고 성경세계사 인정하는 우리 앞에서 왜 천사가 없다고 이야기하느냐라고 한다면 천사 인정하고 하나님 인정하고 삼위일체 인정하고 다 인정해도 우리의 평소의 삶 자체는 천사를 인정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평소의 생활은 천사 없이 살면서 성경에 나오니까 성경에 옹호해줄려고 아양 떨려고 하나님께 아양, 이쁨 보이려고 천사 인정합니다. 막달라 마리아 천사 대한 것 내가 인정합니다. 그거 인정하면 뭐합니까? 생활이 달라져야지. 우리 평소의 생활이 달라져야 되지요. 천사와 대화가 가능하다면 그 천사와 대화 했다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대화를 했더라도 그 천사만난 티가 나야 되고 그 천사 만나서 변화가 일어나야 돼요.

대화됐다고 어울림이 있는게 아니고. 이게 대화되려면 평소에 천사가 없이 살아가는 우리 생활구조에 도대체 어떤 논리 체계가 형성되었기에 천사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다는 사고방식으로 우리 스스로를 위장하면서 스스로를 그렇게 정당화하면서 살아왔는가를 알아야 돼요.

도대체 우리가 어떤 사고구조를 가졌기에 그까이꺼 천사 없어도 우리는 별 아쉬움이 없는 식으로 그렇게 버틸 수 있느냐 이 말이죠. 그게 지난시간에 했잖아요. 그게 인과응보에요. ‘인과응보’ 너무 어려우면 그럼 쉽게 가겠습니다. 인과응보라는 말이 너무 어려우면 모든 결과는 원인이 있고 원인은 인간이 관여할 수 있다 이 사고방식이거든요. 이 과학적 논리 아닙니까.

원인을 우리가 조종하게 되면 결과도 우리가 달라진다. 결과가 달라진다. 왜냐하면 이 원인과 결과 이 과정 전부 다 우리가 다 알 수 있기 때문에. 파악이 다 가능하기 때문에. 이게 과학적이고 합리적 논리에요. 과학적, 합리적 논리입니다. 인간의 행함에는. 추워서 입었어요. 오늘 아침에 병원에 갔는데 병명이 나왔어요. ‘알레르기성 천식’. 앞에 뭐 붙어요 ‘심각한’.

알레르기 천식 같으면 분명히 원인이 있다는 겁니다. 이게 병원에서 한 이야기에요. 원인이 있으니까 천식 걸렸으니까 천식을 고치려면 원인을 수정하게 되면 천식은 낫게 됩니다. 이래서 한의원이든 병원이든 모든걸 하잖아요. 학원이든 전부다. 원인과 결과를 우리가 파악하고 있으니까 원인조정해서 결과 우리가 원하는 결과 만들어냅시다. 그렇게 나간다 이 말이죠. 여기에 무슨 천사가 필요합니까? 천사가 찾아와 사바 사바사바~여기 왜 천사가 왜 천사가 들어가요? 평소에 우리의 삶에는 천사가 필요 없다 이 말이죠.

우리 삶이 정당한데 우리 삶도 정당하지만 천사 하나 더 들어가면 더 정당하다 그거 아니에요. 천사가 들어갔다면 우리 삶, 천사를 고려해야 된다면 이 원인 결과든 이 사고방식 전체가 파탄 나야 됩니다. 파탄나야됩니다. 여기 원인 결과를 할 때 여기 반드시 들어가는게 있어요. ‘나’. ‘내가’ 천식걸렸다. ‘내가’ 병들었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하나의 예를 들겠습니다. 기침이 나고 기침이 나니까 밤잠을 못 잤지요. 기침이 나면 모든게 귀찮지요? 모든게 귀찮고 짜증나고 힘들어요. 몸이 아프니까. 치통도 마찬가지고. 그렇지요? 그러면 귀찮고 짜증 안 나려면 내가 기침 안하는 쪽으로 또는 이빨이 안 아픈 쪽으로 고치면 된다 이 말이에요. 그렇지요? 여기 지금 이 논리가 뭐가 문제냐 하면 ‘내가’ 편하려면 이 원인을 고쳐야한다 이렇게 하잖아요. ‘내가’ 편하려면.

그런데 부활의 세계에서는요. 부활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이미 죽은 자신의 죽음에서 자기가 못 벗어나는 입장에서 부활이 신기한 거예요. 부활이 흔하디 흔한게 부활 같으면요 죽은 이순신 살아나서 돌아다니고 세종대왕 한글 말모이하고 있고 이러면 별로 부활이 신기하지 않아요. ‘말모이’라 하는 요새 새로 나온 영화를 이야기 합니다. 죽었던 강감찬하고 또 나오고 을지문덕 나와서 설치고 이러면 이거는 박물관이 살아 있어요. 이거는 박물관이 살아있다 영화하고 똑같은 거에요. 죽은 인디언하고 바로 왕이 나와서 인디언하고 서로 타협해서 데모하고 그런 영화거든요.

부활의 세계가 우리가 가지 못한다는 것은 부활은 우리에게 생소한 겁니다. 생소하기 때문에 이거는 생소하다는 말은 인간이 원인을 제공해서 부활이라는 결과를 낳는, 우리 나와바리 우리 세계하고는 안 맞는 세계가 되는 거에요. 그 말은 뭐냐 하면은 부활은 있겠다? 없겠다? 부활은 없는 거에요. 죽으면 그냥 끝나는 거에요.

과학은 반복되는 결과를 나을 때 그걸 진리로 간주합니다. 누구 할아버지 돌아가셨는데 나흘 되도 사흘 되도 무덤에 그대로 있더라. 무덤에 있을 수가 없지요. 요새는 80% 화장하는데 화장을 해버리니까 매장했으면 혹시 꿈틀꿈틀 하겠는데 화장을 해버리니까 자기 날라간 뼈다귀 다 찾으려고 하면 연못에도 뛰어 들어가야 되고 바다까지 다 쫓아가야 되요. 이거 안되거든요. 인간의 과학적 구조 내에서는 부활은 없는겁니다.

부활이 없어서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누구냐 하면은요 여기에 11절 봅시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고 있어요. 마리아가 부활을 믿은게 아닙니다. 마리아가 부활을 믿은게 아니고 예수님이 시신이 없다는 점이 아쉬워서 울고 있어요. 왜냐하면 시신이 있어야 자기가 계속 찾아가서 좋았던 시절의 회상이 가능하거든요.

제가 무슨 이야기하느냐 하면 아프면 기침나고 아프면 모든게 귀찮다라는 이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겁니다. 이게 왜 잘못됐느냐 하면은 누가 귀찮아요? ‘내가’ 귀찮은거에요 ‘내가’. 그런데 이것이 우리는 이 땅에서 맞다고 여깁니다. 이게 옳다고 생각해요. 이거 그르다고 생각하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부활을 한번 보자 이 말입니다.

부활의 세계에서는 예수님이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부활을 우리는 없다고 이야기하고 부활의 세계에서 보면 인간들은 결국은 인간의 마지막은 뭐예요? 부활이 아니고 인간의 마지막은 살다? 살다가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잖아요. 살다 죽으면 그만이에요. 죽은 자에요. 어차피 백년을 사나 오십년을 사나 지금 살아있다 하지만 지금 살아있겠죠 지금. 내일되면 또 내일이 지금 되거든요. 모레 되면 모레도 지금 돼요.

지금 지금 지금 하다가 알레르기 천식으로 호흡기 꽂고 헥헥 거리다가 숨 못 쉬어서 죽었다. 어느 누가. 강남에서 강의하다가. 결국은 일시적인 것을 가지고 거기에다가 최종적인 의미를 인간은 담을 수가 없어요. 죽었다가 정답이에요. 한때 살았다는 정답일 수는 없습니다. 한때 살았다. 서른 살 때 나는 힘이 최고조로 달했다. 서른 살. 서른 살 이상 되도 지금 힘 되 가지고 지금 권투 강사하는 사람도 있는데. 서른 살 때 무술로 보나 뭘로 보나 서른 살 때 힘이 절정에 이른다는 거에요. 축구선수 서른 살 때.

그러나 김광석 이야기에 의하면 지가 작곡한건 아니지만 김광석의 입장에서는 서른이 절정인데 갈수록 서른 살 + 하루 서른 살 플러스 이렇게 해가지고 점점 더 서른 살에서 멀어져 가는 거에요. 서른 살에 단명했잖아요. 점점 더 서른 살에서 점점 더 멀어져가요. 그래서 서른세 살에 자살했잖아요. 서른세 살 때. 자기가 예수님도 아니고. 죽었어요. 왜 죽었느냐? 서른 살하고 멀어진다고. 최고의 시절하고 멀어진다고. 사실은 서른 살과 멀어진게 아니고 죽음에 가까웠죠. 사실은 죽은거에요 죽은거.

그러면 살아있을 때 기침 나서 짜증난다 하지만 그러다가 죽어버렸잖아요. 그러면 죽음은 짜증난다 귀찮다 속상한다가 아닙니다. 죽음은 뭐냐 하면은 무의미에요. ‘무의미’. 있으나 마나에요 죽음이란게.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숨이 막힐 지경이에요. 이 무의미를 학교에서 당하게 되면 그걸 왕따라고 이야기합니다 ‘왕따’. 왕따라고 이야기해요.

고등학교 때 제가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학생이 하나 있었어요. 있는데 참 답답해요. 전부다 이렇게 툭툭 치고가고 놀리고 이래요. 몸이 좀 외소하긴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고 뭔가 성격상 가정문제인가? 성격상 말을 안 하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누가 와서 시비걸어도 그 반발이 없어요. 왕따의 표적이 된다고요. 그래서 그 애를 왕따하는 사람들이 학급에 몇 명 있었어요. 한 10명 정도 있었어요. 10명 많아요.

그리고 학급에 한 50명 좀 넘었으니까 옛날에는. 한 40명은 무관심해요. 저는 무관심하는 편에 속하는데 하도 당하니까 걔 편을 들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편을 들어봐야 소용없어요. 본인이 변해야 되는데 본인이 안 변하는거에요. 내가 결론내린 것은 왕따당할만하다. 왕따 시킨 사람을 옹호하는게 아닙니다. 가만있는 애를 왜 건드려 그건 미워요. 당해도 항상 이유가 있어요. 당할만한 이유가 있어요. 당할만해요. 왜 학교에 왔으면 공부도 못했어요.

좀 이렇게 목적을 두고 뭘 이렇게 해야 되는데 그냥 말도 없이 하루종일 있어요. 유심히 봤거든요. 나 같으면 가만 안 있는데 왜 저러지? 마치 나를 왕따 당해라. 나는 나 스스로 내가 보기에도 나는 의미 없다 하는거 같애요. 숨이 막힐 지경이에요. 내가 그 애라면 숨이 막힐 지경이에요. 학교 다니지 말지. 그래서 이게 뭐냐 하면은 인간이 아픈거 귀찮은거 기침나는거 힘든 것은 뭐냐 하면 있으나 남들 앞에 투명인간처럼 되는거 있으나마나 한거.

가족이 한 네 식구 되도 만약에 한명한테 아무도 말 안 걸어주면 그거는 있으나 마나가 되는 겁니다. 만약에 부부가 그렇다면 그건 갈라서는게 좋지요. 서로가 서로를 있으나마나 하는걸. 요새는 부부보다 개가 더 좋고 강아지가 더 좋고. 대화상대가 되니까. 고양이 같으면 “나비야~” 이러면서 안아주고 먹여주고 강아지도 마찬가지고.

예수님은 자진해서 왕따가 되신 분이에요. 그 예수님을 유대인의 통일된 의견은 유대사회에서 예수님 빼놓고 가자 우리끼리. 왜? 그럴 때 우리 사회는 의미가 있다는 거에요. 사람 사는 의미. 그 의미가 뭐냐 하면 바로 결과에 대해서는 우리가 원인을 손대면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이 의미, 이 의미에서 예수님은 빼돌리자. 제외시켜버리자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알다시피 예수 믿는다는 것, 참 예수 믿는다는게 예수 믿는 순간 우리는 자진해서 똑같은 길을 갈 수밖에 없어요. 왕따당하는 겁니다.

우리 십자가 마을에도 이번에는 참석 못했지만 늘 한번인가 참석하신 어떤 여자, 어제 목사님 되셨대요. 목사안수 받은 목사님이 복음을 받아들여서 저한테 고맙다고 저한테 전화를 했는데 그 전화가 고맙다고 전화한게 아니고 나중에 보니까 복음 때문에 교회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게 자기 신세가 한탄스러워서 전화한거 같아요. 복음을 알았다는 것 때문에 교회에서 자기를 빼고 가자는 거에요. 왕따시키고 가자.

그 교회 이야기가 뭐냐 하면은 십자가를 알면 그게 완성이 아니라는 거에요. 십자가 다음에 그 다음 순서, 나가가지고 실적을 원해야 되는데 왜 그때는 전도사니까 왜 전도사님은 왜 제자리뛰기 하느냐 왜 광야에 머물러 있느냐, 약속의 땅에 가야지. 왜 광야에 그대로 머물러 있느냐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언급하는거에요.

그렇게 공격하는 사람의 특징은 뭐냐 하면 성경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십자가를 통해서 죄 용서 해주고 그다음부터는 뭘 보장해주느냐 하면은 우리가 평소에 원했던 행복 있잖아요 행복. 내가 원하는 나의 세계. 그걸 그동안 내 힘으로는 못했는데 성령의 힘으로 주님 은혜의 힘으로 마음껏 나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도록 보장을 해주는 그 쪽에다가 승부를 걸어줘야 사람들이 모인다는 거에요.

성공적인 삶을 보장해줘야 되는데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항상 이미지가 뭐냐 하면 실패작이에요.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실패의 그냥 제자리뛰기 해가지고는 손님이 오겠느냐 하는거에요. 교회라는 것을 세우기 위해서 교회라는 결과를 낳기 위해서는 원인을 우리 쪽에서 조정을 해주면 교회 부흥이란 그게 오게 되고 자기는 이제 인권비가 빠진다는거에요. 그게 되는데 결과를 십자가로 스톱시켜버리면 맨날 십자가만 자랑해버리면 안되지 않느냐.

십자가만 자랑하면 안 된다 이거에요. 교회는 결국 웃어야 되고 행복이 넘쳐야 되고 교회는 보람이 있어야 되고 내 뜻대로 안됐는데 하나님께 기도해서 만사형통됐다는 그런 결과들이 나올 때에 소문 듣고 왔어요 해가지고 자꾸 사람들이 더 온다 소문 듣고. 맛집도 입으로 입으로 통하잖아요. 맛집도. 맛집 잘 되면 주차장 넓히고 주차장 넓히면 건물 넓히고 교회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건물 짓고 주차장 넓히고. 그럼 많은 사람 쪽이 진리에 가까우니까 그쪽에 갈거고. 왜 제자리뛰기 해가지고 손님 안 오게 하느냐? 그래서 이래서는 못하겠다고 이제 거의 나가라는 식으로 이렇게 했는데 나가라고 한 모양이에요.

근본적으로요 그럼 십자가 전하면 사람들이 모입니까? 이런 사고방식이 더 미워.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복음 전하면 교회 부흥된다. 이게 더 미워. 예수님의 부활의 입장에서는 뭐냐? 기침 나고 알레르기성 천식 이게 모든 것이 부활을 증거하기 위해서 생겨버렸다는 거에요. 부활을 증거하기 위해서. 네가 천식을 걸린게 아니고 천식이 네 안에 들어온거에요. 이런 의식이 있다 이런 발상 이런 생각이 부활의 생각과 현재 인간들의 죽음의 대한 생각의 차이점입니다. 죽었다가 부활했다 그걸로 당장 끝나는게 아니에요. 두 개의 현실층의 충돌입니다.

자, 이 두 상자 종이상자의 차이점을 보세요. 종이상자에 스카치테잎 딱 붙여가지고 단단히 붙였어. 붙이고 또 붙이고 이 안에 곶감 들었는지 온 곳에 다 붙이고 뜯는데 힘들어 죽겠어 이런거 하고. 그냥 박스인데 안에 내용물도 없어 이거는 그냥 종이 빈 박스인데 빈 박스를 활짝 열어놨어요. 그러면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면 이 (테잎 많이 붙인)박스 안에는 안 들어가겠지요. 그런데 이(아무것도 안 붙인)박스는 어떻습니까? 사방팔방 완전히 노출됐어요. 어느 놈이 오든 뭐가 오든 이거는 자기 차지다.

마치 재개발 지역에 이사 가고 나와있는 허름한 귀신 나오는 그런 빈집같이 애들 담배피러 갈 때만 가고 거기에 조폭들 싸움하는 세트장 할라하면 적당한 그거 있잖아요. 빈 창고. 그것처럼 아무나 들어오면 주인되는 데. 재개발했다가 부도 나가지고 철거물 툭툭 튀어나온 그거 있잖아요 건물. 영화보면 그런데 가가지고 뛰어내려 자살하고. 자살하고 난 뒤에 뒤늦에 경찰차 삐~하고 나타나고. 꼭 경찰이 뒤늦게와요.

아무것도 없어 그냥 벽면만 있어요. 이게 인간이라는 겁니다. 인간은 내가 만들어놓은 것이 아니고 누가 들어오면 들어온 그것이 그 인간의 주인 차지가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것도 모르고 내 천식 또는 내 성공 내 아파트 전부다 앞에 ‘나’를 다 붙여요. 내 자식. 아들 놓고 딸 놓고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못 하는데 아들 낳으면 내 아들이다. 딸 낳으면 내 딸이라는 거에요. 딸이 내 영역에 그냥 쑥~흐르듯 들어와 날 차지했는데.

성경에 뭐라고 하느냐 하면 악령이 들어오면 못 말린다는 거에요. 성령이 들어오면 못 말린다는 겁니다. 악령은 말리겠죠. 성령이 악령보다 이기죠. 왜냐하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악령을 이기고 거기서 탈출한 능력이 성령의 능력이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을 비난해도 구원받지만 성령을 비난하면 성령을 거부하면 이 세대와 오는 세대까지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할 것이다. 마태복음 12장 나오는 이야기에요. 32절인가 나오는 이야기죠.

우리 생각에는 내가 인생의 내 주인공인데 영적세계, 악마와 주님세계 하늘나라 세계 보면 이거는 주인이 전혀 없어요. 주인이 없어. 누가 차지하기 나름이에요. 누가 들어와서 차지하느냐. 차지하기 나름이에요. 횡단보도 건널 때 횡단보도 건너는 그 덩치는 누구냐? ‘나’라는 거에요. 내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는 거에요. 나는 횡단보도 건널 때 횡단보도 파란불 끝나면 저쪽에 무사히 도착된다는 이런 원인과 결과를 미리 생각하고 차분차분 건너고 있습니다.

차가 와요. 저 차는 어떤 차냐 하면 일체의 음주운전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음주운전 차가 받아버리는데? 나라는 이 빈 봉투 비어있는 텅텅 비어있는 다 헤어진 이 종이상자, 이 종이상자에 음주운전 들어와버리면 나는 그냥 죽게 되어있어요. 심석희 선수가 코치한테 4년동안 성폭행 당했잖아요. 왜 당했습니까? 만약에 코치가 성폭행한게 아니고 비리비리한 농땡이 동네 오빠가 건드렸다 하면 대번에 신고했을거에요. 왜 동네오빠 그것도 비리비리, 비리비리 오빠 공부도 못하는 비리비리 오빠가 건드리면 신고 손가락으로 욕만 하고 따라와도 신고할 감인데 왜 코치가 성폭행까지 해도 왜 신고 못했습니까? 처음에.

왜 못했을까요? 미투가 뭡니까? 옛날 그때는 미투도 없었어요. 10년, 20년 전에는 미투도 없었는데 미투고 빚투고 뭐고간에. 요새는 빚투도 있고. 왜 미투가 최근에 최근이 아니고 왜 지난걸 왜 합니까? 그때는 뭐냐 하면은 인과응보, 원인과 결과를 자기가 예상했다는 것. 저 코치 말 안 들으면 이 가난한 내 집안은 누가 살리나. 내가 열심히 스케이트 타고 달려야 우리 집안이 산다. 내 희망과 내 구원은 이것밖에 없다. 끝까지 참아야지 이랬단 이 말이에요.

그걸 가지고 히브리서 2장에 이렇게 되어있어요. 죽기를 무서워해서 마귀한테 종노릇한다. 죽기가 무서워서 마귀에게 종노릇해요. 시집가기 전에는 교회 성가대 주일학교 좋은데 시집 가려고 온데 충성을 다 해놓고 막상 시집가니까 남자가 너무 멋져. 그만한 인물되면 인성 후져도 괜찮다는 그렇게 해서 시집갔더니만 불도의 불도의 온갖 점치는것부터 해가지고 미신은 다해. 교회 못 다니는 것은 기본이 되어 버렸고 제사는 필수가 되고 1년에 제사 8번은 필수가 되었다. 그 아주머니는 제사 음식하는게 취미였어요? 아니잖아요.

왜 그렇게 했어요? 죽기를 무서워해서 히브리서에는 그렇게 되어 있어요. 죽기를 무서워한다고 되어 있지요. 말이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말씀을 할 때에 살아볼라고 살고자했기 때문에가 아닙니다. 뭐라고 했느냐 하면은 살고자 하면은 아이고 좀 못 살면 어때 이렇게 되는데 그게 아니고 어느 인간도 살고자 하는 인간이 아니고 죽기를 그다음에 무슨 말했어요? “죽기를 무서워해” ‘공포의 울림’. 이 세상은 공포의 울림으로 작동되고 있습니다.

빈 종이 박스에 귀신이 그냥 들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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