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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최종성 190111강의베드로전서

서울의존강의20190111a 베드로전서2장 20-21절(최종성)-이 근호 목사

베드로전서 2장 20-21절

20절,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절,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2장 20절을 제가 읽습니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래 되어 있죠. 여기 성경에 죄라는 것이 등장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날 때 앞장세우는 것이 있어요. 앞장세울 때 나오는 그 개념은, 니 돈 많냐? 니가 얼마나 건강하냐? 니가 몇 평짜리 아파트 사느냐? 자식은 공부 잘해? 이렇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다가올 때는 최종성을 가지고 다가옵니다. 최종성. 최종성은 쉽게 말하면 마지막이죠. 무엇의 최종성이냐 하면 모든 가치, 모든 의미, 모든 진리, 모든 판단의 최종성이에요. 하나님께서는 나는 이런 식으로 심판하고, 나는 이런 식으로 저주하고, 이런 식으로 복주고, 나는 이런 식으로 의미와 가치와 진리와 판단을 드러낸다는 것을, 사람에게 의논하지 않고 최종적으로 확정지었습니다. 죄가 뭐냐에 관해서 나는 너희들의 의견을 들을 의사가 없다는 겁니다. 죄가 뭐냐에 관해서.

“내가 살면서 죄 안 짓고 싶었는데 자식 키우면서 살다보니까 어쩔 수 없이 죄 지었습니다.”라든지, “내가 이만큼 살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약간의 죄가 있겠지만 내가 내 가정을 먹여 살렸으니까 나는 바르게 살고 있었습니다.”라는 것을 가지고, 자기 판단을 가지고, “약간의 죄는 지었지만 나머지기 대부분의 영역은 성실했고 의롭고 착했습니다.”라는 그것을, 주님은 그게 최종성이 아니라는 거예요.

최종성은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은 21절에 나오죠.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누가 죄냐 아니냐, 누가 진리냐 아니냐, 누가 의미 있느냐 라는 것에 최종성의 판단은 누구 몫이냐 하면은 사람들의 의견을 규합해서 내릴 것이 아니고 일방적으로 예수님을 통해서 결정지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날 때는 그냥 만나는 것이 아니고 죄라는 개념을 가지고 만난다고 했습니다. 죄라는 개념을 가지고. 죄를 앞장세워서 만나는 거예요.

그렇게 볼 때에 그 기준이 뭐냐 하면 예수님 본인이 기준이에요. 그게 마태, 마가에서 나로 인하여 언약을 세운다는 것이 그 말이에요. 인간 대 인간의 만남에서는 죄를 가지고 안 만나죠. 돈을 가지고 만나잖아요. 내가 봉사할 건데 얼마 줄 거예요? 일당 얼마 줄 거예요? 내 노력, 내 노동력과 저 사람의 노동력이 만난다 이 말이죠. 내 노동력의 구입을 원하십니까? 아닙니까? 그런 것을 묻는 거예요.

그리고 인간 대 인간의 만남에는 자기의 실적을 가지고 만나죠. 나는 이 정도의 실적을 가지고 있는데 너는 어느 정도의 실적을 얻었느냐? 세상 살면서. 그런 것을 가지고 만나는데, 거기서는 업적 같은 것, 실적 같은 것의 만남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자연적으로 뭐가 빠져 있느냐 하면 죄라는 것이 빠져있죠. 죄를 좀 짓더라도 성공하는 게 이게 남는 장사라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는. 사람 대 사람의 만남에서는.

부부가 한 20년 30년 살면서 밥상머리 앞에서 대화할 때, “우리는 평생에 죄 짓지 않았습니다.”라고 남편이 이야기할 때, 아내가 “그래서? 죄 안 지어서 얼마 벌어왔는데?” 이러거든요. “그래, 당신 죄 안 지어서 한 달 수입이 얼마 벌어왔는데?”라고 묻는 거예요. 이게 이 세상의 가치라 이 말이죠. 그리고 죄의 기준은, 내가 앞으로 잘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는 것은 죄의 계열에 들어가지를 못해요. 죄의 항목에 섞어놓지를 못해요. 앞으로 잘하겠다는 것이 없어요.

왜냐하면 죄는 최종성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빼놓고는 다 죄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는요?” 이래 나오겠죠. ‘그리스도 빼놓고’에 우리는 포함이 되니까 우리는 자연적으로 죄인이 되었죠. 그게 죄의 최종성이니까. 그렇게 죄의 최종성을, 예수님 빼놓고 다 죄인으로 규정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만 의롭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 의롭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드러내는 것이 주의 목적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 이 죄악 된 세상에서 드러내기 위해서 하나님이 일하신다 이 말이죠. 따라서 우리가 개인적으로 죄인이냐, 죄인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우리는 뭐를 발견해야 되고 찾아야 되고 따라가야 됩니까? 예수님만이 의롭다는 것을 따라가면 돼요.

그 의가 어떻게 생산되는가는 베드로전서 1장에 나옵니다. 2절에 피 뿌림으로, 그런 식으로 거룩하심을 얻은 거예요. 피 뿌렸다 하는 것은 내 피를 섞은 것이 아니잖아요. 일방적으로 예수님 쪽에서 날아온 피다 이 말입니다. 예수님 쪽에서 피가 날아올 때 그 피가 날아온다고 생각하지 말고 의가 날아온다고 봐요. 어디에 뿌려지는가? 이 죄 속에서 뿌려지는 거예요. 카더가든의 명동콜링 들어보셨어요? 하얀 눈 위에 하늘에서 별빛이 떨어지죠. “새벽별빛 고운 흰 눈 위에 떨어져~~”

죄 속에 주님의 피가 뿌려진다는 것은 죄 속에 하나님의 의가 뿌려지는 거예요. 그게 죄의 최종성, 의의 최종성, 주님의 가치의 최종성, 주님의 구원의 최종성입니다. 최종성이라는 말을 바로 풀이하면 이게 마지막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근데 인간들은 마지막을 인정 안 해요. 마지막을 인정 안 할 경우에 있어서의 세상을 보는 형식에 있어서 차이가 납니다.

마지막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형식이 적절한 예가 되느냐 하면은 바로 스크린입니다. 스크린. 영화관에 가면 스크린에서 요란스럽죠. 총 쏘고 여러 가지하고 또 보헤미안랩소디라는 영화에 보면 그 막에서 퀸이 공연한 게 막 나와요. 라디오까까~~하거든요. 과자 좋아하는 애들은 그게 라디오까까에요. 라디오가가~ 라디오구구~ 라디오 블라블라~ 막 노래 나온다고요. 그러면 따라하고 굉장해요.

근데 그거는 어디입니까? 스크린 위에 나타나요. 스크린은 막이거든요. 막 뒤에는 뭐가 있습니까? 막을 들춰보면 거기에서 퀸이 나옵니까? 퀸의 퀸이고 뭐고 아무것도 안 나오죠. 아무것도 없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최종성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뭐로 삼겠다는 겁니까? 이 세상을 스크린으로 간주하겠다는 거예요. 스크린에 뒤에서 영사기로 비춰버리면 얼룩덜룩한 이미지만 남죠. 이 세상은 주님을 비추는, 그리스도의 통일성을, 최종성을 비추는 하나의 이미지의 흔적들이죠. 이 세상이. 이 세상이 그렇다 이 말이죠.

그런데 ‘레이더스’라는 영화에 보면, 인디아나 존스 나오는 탐험하는 영화잖아요. 아주 오래된 영화인데. 그 영화에 보면 고대 유물을 찾아가는데 막혀있어요. 동굴의 입구가 막혀있어요. 근데 어떤 주문을 외운다든지, 여기에 남겨진 정보나 비밀암호 같은 것을 돌문에 문지르고 하게 되면 갑자기 이 돌이 굴러 떨어지면서 없던 길이 새로 나오죠. 없던 길이. 그러니까 이거는 마지막이 아닐 때는 여기서 뭐를, 자꾸 무슨 이미지를 새로 그리느냐 하면은 길을 이미지로 그리는 거예요. 이게 오늘날 교회에서 가르치는 겁니다.

길이 있다는 말은 우리가 이 지점에 있으면 저 지점까지, 미래의 목표지점까지 여분이 남아있다고 보는 거죠. “앞으로 잘할게요. 앞으로..”라는 거예요. 남아있다는 말은 스크린을 거부하는 거죠. 스크린을 거부한다는 말은 자기는 스크린에 있는 얼룩덜룩한, 해병대 군복에 있는 얼룩덜룩한 무늬에 지나지 않는, 자기의 실체성이 있다? 없다? 전혀 실체성이 없거든요. 개인의 실체성이 없는 거예요.

그냥 얼룩덜룩한 무늬, 여성들 원피스나 치마에 보면 무늬가 있잖아요. 여기 벽지에도 무늬가 있네요. 이거 꽃그림이잖아요. 향기 납니까? 향기 안 나죠. 이걸 긁어내면 꽃잎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벽지가 떨어지는 거예요. 재료는 종이고 이미지만 꽃이잖아요. 이게 원래 꽃이 아니라 이 말이죠. 우리 인간은 재료만 흙이고 이미지만 인간인 것처럼 보인다 이 말이죠. as if ~인 것처럼. 영어에서 말하는, 아닌데 ~인 것처럼. 왜? 이 자체가 스크린, 막이니까. 막이 얇다면 두께가 있을 수가 있어요? 없어요? 두께가 있을 수가 없죠. 막인데.

그런데 인간은 최종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뭔가 그 뒤에 무한한 길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 뚫려있다고 보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가수 전영이 부른 노래가 있어요. 어디쯤 가고 있을까~ 맨날 교회에 와서 나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에요. 어디쯤 가고 있을까? 어디쯤 가고 있을까가 돼버리면 본인은 이미지가 아니고 하나의 단독자, 개체를 갖고 있어요. 내가 열심히 하게 되면 앞으로 천국 가는 쪽으로 가까이 갈 것이고, 내가 농땡이 부리면 지옥 가는 쪽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럼 뭐가 날아가 버려요? 완전히 주님의 최종성은 무시되는 거예요. 그야말로 자기가 도 닦는 겁니다. 교회가 수련장소가 돼요. 자, 교회와 태권도 학원과의 공통점은? 송판 하나 깨면 노란 띠 준다는 거예요. 송판 하나 깨면 노란 띠 준다는 것하고 십일조 하면 장립집사 시켜준다는 것하고 이게 같은 급입니다. 우리 의존교회는 노란 띠 될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요. 뭐 십일조를 안 하니까 노란 띠가 될 수가 없죠. 하는지 안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안 한다 치고. 안 한다고 해야 편하니까. 애야! 니 장립집사 될래? 권사님 될래? 그럼 십일조 해야 된다. 검은 띠 하려면 보통 노력해야 되는 게 아니다.

태권도 도장하고의 공통점을 아시겠죠? 인간에게 발전의 여지를 주는 거예요. 희망의 여지를 주는 겁니다. 그리고 그만큼 띠가 노란 띠에서 검은 띠가 되면 가정이 복을 받는다? 안 받는다? 복을 받는 거예요. 자기 가정이 이미지가 아니고 자기 가정이 독자적인 실체라고 보는 겁니다. 내 가정 잘 되면 더는 소원이 없다 이래 되는 거예요. 내 가정 잘 되면. 그 가정이 잘 되고 합심이 될 거예요.

그 단합이 어디까지 가능한가 하면 지옥가도 같이 가는 거예요. 지옥 가서 한 가정 모였으니까 사이좋다. 거기 동서부터 올케까지 다 모였네. 여기 시장에 가보세요. 시장에 가보면 내가 보기에 전부 다 지옥 가는 사람 같아. 내가 잘못 봤는지는 모르지만. 물건 사고팔고 하면서 지옥가고 있는 거예요. 좀 깎아주소~ 이러면서 지옥가고 있는 거예요. 깎은 사람이나 깎아주는 상인이나 같이 지옥가고 있는 거예요.

이미지를 위해서 산다는 것은 이미지가 투영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가는 거예요. 근데 이미지가 아닌 사람은 실체가, 그리스도가 실체가 아니고 누가 실체냐 하면 자기 자신이 최종 실체기 때문에 장사를 하던 무엇을 마시든 무엇을 먹든 무엇을 하든지 간에 나의 영광을 위해서, 내가 실체니까 내 영광을 위해서 매진할 뿐이에요. 교회가든 기도를 하던 뭘 하든 간에 전부 다 나 잘되기 위해서 살아가는 겁니다.

자, 여러분한테 물어봅시다. 구원은, 사람이 구원해요? 하나님이 구원합니까? 진짜 골목식당 백종원이 묻는 식으로 물어봅시다. 장사 할 거예요? 말 거예요? 라는 그 물음이거든요. 피자 만들지도 못하면서 피자집 하는 사람인데, 이래서 니 장사 할 거야? 말거야? 라고 묻는 것처럼. 정말 구원할 거예요? 말 거예요? 아니 천국 갈 거예요? 말 거예요? 제가 묻는 겁니다. 그러면 천국가고 싶어요. 그럼 그 다음 질문이에요. 그럼 누가 구원해요? 인간이 구원합니까? 주님이 구원합니까?

주님이 구원합니다, 라고 하지 말고 이렇게 하세요. 인간은 구원을 못합니다. 이렇게 답변하세요. 인간은 구원 못하죠. 근데 구원도 못해주는 인간에 대해서 왜 그렇게 의식하고, 왜 그리 예민하게 처신하고, 아양 떨고, 구원해주지도 못한 인간에게 왜 그리 눈치를 보며 삽니까? 사도들이 그렇게 살았어요? 여기 있던 애 둘이 어디에 갔어요? 저쪽으로 들어갔네요. 자식이 날 구원해요? 근데 엄마는 누굴 눈치를 봅니까? 애 눈치 보죠. 왜 그럴까요? 애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내 가정에 하나의 최종성을 두기 때문에. 나 있는 곳을 최종성을 두기 때문에.

그러면 구원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하신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하지 못하죠. 인간이 하지 못함 속에 뭐도 포함이 되어 있느냐 하면은 내가 나를 구원하지 못한다, 라는 것도 포함이 돼요. 내가 나를 구원하지 못한다. 내가 나를 천국에 보낼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걸로 마감되면 안 되겠죠. 그 이유가 무엇인가도 알아야 되죠. 두 가지를 알아야 돼요. 내가 나를 구원하지 못한다. 이 나 속에다가 인간을 집어넣어 봅시다. 나에다가 인간, 인간 공동체, 다 집어넣어 봅시다. 인간세계는 나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두 번째 알아야 될 것은, 왜? 왜 구원하지 못하느냐? 이것을 알아야 돼요. 왜? 그냥 구원하지 못한다. 주님이 구원한다. 이렇게 돼버리면 내가 주님을 믿는 그것이 구원한다가 돼버려요. 이거는 교회에서 저지른 사기 아닙니까? 당신이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거예요. 아니에요. 끝까지 주님이 구원해야 돼요. 내가 예수 믿는 내 믿음으로 구원되면 안 된다 이 말입니다.

내가 예수 믿으면 출발점이 내가 이미지가 아니고 뭐가 됩니까? 내가 실체가 된다고요. 우리는 아까 재료가 뭐라고 했어요? 흙이다. 흙이 자기가 알아서 인간되는 것이 아닙니다. 흙이 인간될 때 누가 개입했어요? 창세기에서 누가 개입했습니까? 성령이 개입했잖아요. 하나님의 성신이 있으매 인간이 흙에서 인간됐잖아요.

그 말은 뭐냐 하면은 인간이 스스로, “아이, 나 흙이 지겹다. 인간 좀 되자.” 알아서 대충 진흙가지고 터덕터덕 발라서 눈 코 입 만들어가지고 이래가지고 인간됐습니까? 아니죠. 우리가 성경을 평소에 너무나 모르고, 성경을 모르는 이유가 성경을 거부하기 때문에 그래요. 성경에 다가서지 않고 성경을 내던져버려서 그래요. 왜 성경을 안 보고 던지느냐 하면은 돈이 안 되거든요. 돈이 안 되는 이유 때문에 왜 던지느냐, 나는 돈이 나를 살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래요. 누가 그렇게 가르치던데?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는데? 사회 나가보니까 그것만이 대화내용이 돼요. 어느 정도하면 돈을 벌고 어느 정도하면 돈을 절약하고 어디 가면 출세하느냐? 그것만이 대화내용이 되었어요. 자 그렇다면 인간과 인간 사이의 대화내용은 이미 결정되었어요. 한 자로 뭐였어요? 인간과 인간 사이에. 돈이죠. 부부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돈 벌어오니까 아내가 좋아서 보너스 탔다고 “당신 이뻐요. 귀여워요.” “여보, 사기 당했어.” “죽어라.” 모든 대화내용이 상대를 이용가치로 보는 거예요. “나 살기 위해서 당신은 나 필요한 조건을 갖추어 다오.” 이 말입니다.

그러면 남편이 짜증이 나죠.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나보고만 돈 벌라고 하지 말고 당신도 돈 벌면 안 되느냐? 그럼 아내가 하는 말이 내가 돈 벌거면 미쳤다고 당신하고 사나?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신이 남편이지, 내가 돈 벌어서 뭐가 이쁘다고 당신한테 퍼 주냐 이 말이죠. 내가 힘들게 내가 벌었는데. 자식 내가 키운다. 그래놓고 하는 말이 돈 버는데 열심히 했기 때문에 이걸 죄라고 자꾸 몰아붙이지 마세요, 라고 나와요. 돈 번다고.

그래서 돈 벌어서 뭐 할 건데? 뭘 건졌다? 목숨을 건졌다는 거예요. 돈 벌어서 목숨을 건졌다는 거예요. 여러분, 목숨을 건지는 방법은요, 목숨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목숨을 버릴 때 목숨을 건져요. 지금 현대인들의 문제는 뭐냐 하면 제가 주일 낮 설교도 했지만, 지금 현대인들은 목숨을 버릴 장소를 못 찾고 있어요. 목숨마저 바꿀만한 가치 있는 것을 찾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안중근이가 괜찮죠. 유관순이는 괜찮아요. 왜냐하면 유관순이나 안중근이는 어디에다가 목숨을 바쳤습니까? 대한독립만세 일제해방에 목숨 바쳤죠. 물론 그 사람들이 무식해서 그래요. 대한독립이라는 실체는 없어요. 있지도 않은 허황된 데에다 목숨 걸은 거예요. 대한민국은 어디에서 생겨나느냐 하면은 대한민국을 거론하는 그 사람의 소유가 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이 생기는 겁니다. 아, 이거 어렵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대한민국이 있어요. 정치하는 사람이 정치해서, 밥벌이해서 밥 먹고 살겠다고 할 때 대한민국이 성립하는 겁니다. 제 말이 어렵습니까? 그럼 쉽게 해드릴게요. 우리나라에 피자가 맛있다고 소문이 난 이유가 뭐냐, 피자집을 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만약에 우리나라에 피자집을 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피자 맛있다는 사람도 한 사람도 없어요. 제가 오늘 오다보니까 길에 하늘색 오토바이가 여러 대가 있어요. 보니까 하늘색 페인트칠해서 피자집이 새로 생긴 모양이라. 전에 없던 피자집이에요.

왜 자꾸 피자가 맛있다고 합니까? 피자가 있으니까 그래요. 피자집이 먼저 있어야 돼요. 국민은행 근처에 조그만 피자집이 있었는데 그거는 망했어요. 내가 망할 줄 알았어요. 몸빼바지, 몸빼바지가 편하다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은 몸빼바지를 만든 제조업자가 있어서 그걸 누가 입어 착용해봐서 그래요. 대구 서문시장에 가보니까 몸빼바지 석장에 만원해요. 세상에 그렇게 헐은 바지를 처음 봤어요. 세장에 만원. 몸빼바지 한 장 입는데 1년 걸리니까 한 3년은 편하게 입겠어요.

다시 돌아가서 정치는, 왜 대한민국이 있다? 대한민국 만듭시다! 라고 하는 정치꾼들이 나타날 때 대한민국이 있는 거예요. 그 정치꾼을 만들자고 나선 사람이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목숨 걸자고 나선 유관순과 안중근 때문에 그래요. 그리고 그 사람 죽여서 덕을 보는 33인들. 상하이 임시정부. 김구부터 해가지고 이승만이 아니죠. 리승만부터 해가지고. 그들의 생산된 게임에 다른 사람들이 현혹돼서 그것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있다고. 우리나라에 국회가 있는 이유는 국회의원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북한이 존재하는 것은 김정은 때문에 그런 거예요. 김일성 일가 때문에 있는 겁니다. 김일성 일가 때문에.

이 말은 뭐냐 하면 세상이라는 것은 세상이 있고 인간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들이 뭘 만든다? 세상을 만들고 거기에 사람들을 복속시키고 복종케 한다 이 말입니다. 회사에서 꼴 보기 싫으면 사표내면 그만이죠. 사표내면 그만입니다. 한국이 살기 싫으면 캐나다로 이민가면 그만이에요. 요새 이민 한 백만 명 모집한다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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