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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사무엘상 45강(하나님의 변동), 마태복음 107강(관계망)강의-

하나님의 변동 (삼상 15장24-35절)

대전- 45강

이근호

2018년 12월 27일

본문말씀: 사무엘 상 15:24-35절

(삼상 15: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 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삼상 15:25)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삼상 15:2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삼상 15:27) 사무엘이 가려고 돌이킬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삼상 15:28)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서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삼상 15:29)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

(삼상 15:30) 사울이 가로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의 앞과 이스라엘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삼상 15:31) 이에 사무엘이 돌이켜 사울을 따라가매 사울이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삼상 15:32) 사무엘이 가로되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내게로 이끌어 오라 하였더니 아각이 즐거이 오며 가로되 진실로 사망의 괴로움이 지났도다 하니라

(삼상 15:33) 사무엘이 가로되 네 칼이 여인들로 무자케 한 것같이 여인 중 네 어미가 무자하리라 하고 그가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서 아각을 찍어 쪼개니라

(삼상 15:34) 이에 사무엘은 라마로 가고 사울은 사울 기브아 본집으로 올라가니라

(삼상 15:35)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사울의 말이 천상유수처럼 굉장히 신앙인처럼 보입니다. 사울이 신앙인처럼 보이는 이유는 우선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을 자기보다 더 높이여기고. 여기에는 말씀이라고 적혀있죠. 자기보다 말씀을 더 높이 여긴다, 자기보다 더 가치 있게 본다 이 말입니다. 자기를 하나님의 말씀에 비해서 낮추어보는 거예요. 자기는 하나님에게 종속되어 있다. 이 두 가지가 지금 사울의 입에서 나옵니다.

신앙입니까? 이거 신앙이에요? 첫째,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보다 더 높게 여겼다. 이 두 가지만 해도 한국교회에서는 신앙이라고 쳐주잖아요. 어디서 잘못되었느냐 하면은 첫 번째 이 하나님이 가짜라는 겁니다. 두 번째 이 하나님도 가짜가 됩니다. 그러면 진짜 하나님은 어디에 있느냐? 그래서 오늘 첫 강 사무엘상 강의가 어려운 거예요. 진짜 하나님은 어디에 있느냐? 진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라는 이 질문이 성립되는 곳에 진짜 하나님이 있어요. 이 질문이 성립이 되는 곳에.

무슨 이야기냐 하면은, 하나님이 이미 계신 것을 안다면 진짜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 라는 의문을 던지겠습니까? 안 던지겠습니까? 안 던지죠. 그렇죠. 내가 믿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라면 진짜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는 질문을 안 던진다 이 말이죠. 집에 엄마가 있는데, 엄마가 밥상차려 주는데 아들이 하는 말이, “어머니 같이 생긴 아주머니! 진짜 어머니는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쪽 어머니를 어머니로 간주하지 않겠다는 뜻이죠.

사울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보다 더 높였다. 지금 강의에서 이걸 막 시작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24절에서 사울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해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보다 더 높고, 자기는 거기에 종속되어 있고, 모든 만사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근데 이 하나님이 가짜일 줄이야 상상도 못하죠. 그 이유는 뭐냐 하면은, 그렇게 하는 사울 본인은 이런 하나님을 인정함으로써 자기를 뭐로 보느냐 하면 자기를 진짜 신앙인으로, 진짜 인간으로, 자기를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중에 있어요.

그러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종속되어 있다는 이것이 가짜라면, 진짜 하나님은 어디에 있느냐? 라고 제가 아까 물었습니다. 일단 정답에서 진짜 하나님은 없다가 돼요. 없고, 진짜 하나님이 없다면 이 세상은 누가 만들었고 인간은 누가 만들었느냐? 이렇게 문제가 나오겠죠.

자, 일단 하나님은 없고요. 두 번째는 뭐냐 진짜 하나님이 어디에 계십니까? 라고 질문을 할 때 그때 진짜 하나님이 나타나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이 실패하는 현장에 나타나요. 실패하는 현장. 인간이 생각하는 그 하나님 됨이 거짓임을 드러내게 하는 기능으로서의 진짜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다시 이야기해서 쉬운 예를 들면 아들과 엄마가 살고 있는데 서로 저녁식사를 합니다. 저녁식사를 하는데, 아들이 하는 말이 “어머님! 어머님은 진짜 어머님이 아닌 것 같아요?” 드라마에 그런 것이 있어요. 딸이 “어머님!” 하니까, “내가 니 어머니 아니야. 니 고모야.”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드라마를 혹시 보신 적이 있습니까? 지금 하고 있는 드라마인데. ‘비밀과 거짓말’이라는 저녁에 하는 일일MBC드라마. 회장부인이라는 사람이 “유경아! 나 니 진짜 엄마 아니야.”라고 하죠.

진짜 엄마가, 진짜 하나님이 아니 계시다는 것을 들통 내는 그 작업을 누가 하느냐 하면은 진짜 하나님이 하셔요. 진짜 하나님이 나서서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이 가짜라는 것을 진짜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사무엘상에서 진짜 하나님의 역할을 누가 하느냐 하면은, 누가 하겠어요? 사무엘선지자가 하는 겁니다.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진짜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사울로 하여금 니가 평소에 생각했던 그 하나님이 거짓된 엉터리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진짜 하나님이 그 현장에 등장하는 겁니다.

그러면 가짜가 없으면 여전히 하나님은 없다가 돼요. 가짜를 가짜로 들추어내는 그 작용을 통해서 진짜 하나님은 나타나시는 겁니다. 진짜 하나님은. 그러면 인간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정도해도 충분하지 않겠느냐 라고, 여기에 자꾸 집착을 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은 하나님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자기 자신이 좋아서 그래요. 자기 자신을 포기를 안 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을 통해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님이 들통 났잖아요.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아들뿐인데, 아들은 예수님뿐이죠. 나머지기는 이미 창세기 3장에서 쫓겨난 흙이 될 수밖에 없는,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거예요. 이런 이야기가 인간한테는 상당히 거북스러운 거예요. “내가 가짜라는 말이냐?” 이래 나오는 거예요. 그럼 하나님이 묻죠. “그럼 니 진짜인줄 알고 있었어?” 가짜냐, 진짜냐 하는 것은 사람들이 성경공부를 해서 아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 앞에 서있을 때 그렇습니다. 십자가라는 것이 중요해요.

십자가 앞에 설 때 인간은, 나는 저주받아 마땅함이 등장하는 겁니다. 보통 교회에서도 십자가이야기를 자주는 안 하지만 더러는 하죠. 십자가 앞에 죄인이라는 말을 공식적으로는 하고 있잖아요. 그럴 때 딱 뛰어들어서 물어보세요. “당신이 왜 십자가 앞에 죄인입니까? 나는 당신 같은 훌륭한 신앙인을 처음 보는데 당신은 왜 죄인이라고 합니까?”라고 하면, 저쪽에서 할 말이 없어요.

십자가 앞에서 죄인이라는 그것도 가짜에요. 그것도 구라 떨고 있는 거예요. 끊임없이 자기를, 그것을 자기 단도리라고 합니다. 자기를 괜찮은 자기로 챙기는데 스물네 시간을 소비해도 다 모자라요. 그것을 자기정당성이라고 하거든요. 자기가 옳다고 하는, 정당하다고 하는 그것을 위해서 전적으로 다 갖다가 쏟아 붓는 겁니다.

전에 대전모임에 오신 사람 중에서 누가 오셨느냐 하면은 지방교회 사람들이 오신 적이 있어요. 한 몇 개월 다녔는데. 지방교회에서 온 사람들이 방금 제가 한 이야기에 해당이 되는 사람들이에요. 지방교회. 워치만 니 하는 쪽에. 하나님은 관심이 없어요. 나 구원받겠다는 거기에 완전히 정신이 팔려있는 사람들이에요. 거기에 올인 하는 사람들이에요. 자기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라는 것.

구원받을 수 있는가를 생각하기 전에, 내가 왜 구원받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느냐를, 스스로 이게 반칙이 아닌가, 스스로 이게 잘못된 것이 아닌가를 물어볼 수 있는 그런 여력이 전혀 없어요.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어요. 내가 구원받고자 하는 이 짓도 나쁜 짓이라는 생각을 감히 할 줄을 모르는 거예요.

그렇다면 오늘 사무엘상 본문에서 등장인물이 누굽니까? 사울과 또 한 사람은 사무엘이죠. 사울과 사무엘이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요. 사울과 사무엘이 만나서, 지금 두 명이죠. 신앙생활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 혼자 하는 것이 아니죠. 성도는 예수님과 둘이 해야 해요. 그러면 사울은 가짜고 사무엘은 진짜죠. 진짜와 가짜가 만날 때 여기서 누가 등장한다? 진짜 하나님이 등장하는 겁니다. 진짜 하나님이 등장해요.

하나님이 일을 어떻게 하시는가, 가짜를 가짜라 하고 진짜를 진짜라고 하신다. 그렇게 일을 하시는 거예요. 그렇다면 사울과 사무엘이 등장하는 이 이야기, 사무엘상이야기가 성경이 기록된 것은 오늘날 우리보고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은, “니가 사울처럼 당한 경우를 니도 당해봤냐?”라고 우리보고 묻는 거예요. 우리는 남들이 우쌰우쌰 하는 대로 따라가 줬기 때문에, “너 신앙 아니야.”라고 누구한테 지적받은 적이 있습니까? 많죠.

다시 이야기합니다. 사울과 사무엘을 왜 등장시키느냐 하면은, 이 같은 경우가 우리에게 일어났는가를 우리한테 묻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한테 지적을 받아야 하느냐 하면은 예수님한테 지적을 받아야 해요.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십자가를 졌기 때문에. 이 물음은 “예수님한테 지적받은 경우가 있느냐?” 하고 동일한 물음입니다. 그러면 사무엘이 사울을 지적하죠. 지금은 누가 누구를 지적한다고요? 예수님이 우리를 지적하죠.

지적할 때, 하나님의 존재인정, 하나님을 자기보다 더 높이는, 아주 겸손해 보이는 이 모습, 그런 것들이죠. 하나님의 존재인정을 좀 더 세분화시킨 것이 뭐냐 하면 바로 삼위일체를 인정하는 거예요. 삼위일체를 인정하면 바로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두 번째 같은 경우, 하나님을 자기보다 높인다는 것은, 낮추고 또 낮추고 겸손하고 또 겸손하고 거룩하고 경건하고. 그럼 교회가 하는 일은 뭡니까?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인정하고 그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거. 이게 교회에서 하는 일의 전부가 아닙니까?

이거 말고 딴 거 있습니까? 늘 기존교회에 출석하고 있으니까 어떻습니까? 이거 말고 딴 거 있어요? 없어 보이죠. 이 전체가 가짜라는 것을 교회가 해야 되는 겁니다. 이 전체가 가짜라는 것을. 삼위일체 인정하고 낮추는 이것을 이단이라고 교회가 지적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된다 이 말입니다. 이걸. 이걸 지적할 수 있는 방법은 뭡니까? 괜찮은 신앙인이 등장해야 됩니까? 누가 등장해야 돼요? 바로 십자가가 등장해야 돼요. 십자가가. 십자가가 등장해야 돼요.

자, 그러면 이걸 지적할 수 있는 것이 뭐라고요? 이게 가짜 하나님이라는 것을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뭐다? 십자가다. 그럼 십자가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기에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경건해 보이는 것을 가짜라고 할 수 있느냐, 이게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오늘 본문 35절 마지막을 읽어보세요.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자, 끝에 뭐가 나왔느냐 하면 후회입니다. 오늘 강의 제목은 ‘하나님의 후회’입니다. 하나님이 후회하셨다는 거예요. 자, 제가 질문을 하면서 진도를 나가보겠습니다. 아까 첫 번째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했죠. 두 번째는 하나님은 높이고 자기는 낮춘다고 했습니다. 이 하나님 속에서 하나님의 후회하심이 나올까요? 안 나올까요? 안 나오죠.

왜? 하나님은 대단한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은 철두철미하고 실수가 없기 때문에. 실수 안 하신 분이 후회한다는 말은, “아하! 내가 일을 잘못했구나. 내가 이것도 모르고, 내가 미리 알지 못했네.” 이럴 때 후회가 되는 거예요. 여호와께서 사울을 이스라엘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신다는 말은, “사울 니가 그렇게 나올 줄은 사전에 꿈도 못 꿨다.”라고 할 때에는 후회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이죠.

그러면 이 하나님의 후회라는 이 요소가, 하나님의 절대적 존재와 하나님은 높으시니까 나는 낮춰야 된다는 이러한 공식에 이 후회가 들어갈 자리가 있어요? 없어요? 들어갈 자리가 없죠. 대단한 분인데 후회를 한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거죠. 앞뒤가 안 맞죠. 창세기 6장 5절부터 6절을 한번 읽어보세요. 5절,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과 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절,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여기 ‘한탄하시고’ ‘근심하시고’ 이렇게 하셨는데, 마치 인간에게 잔뜩 기대를 했다가 인간이 기대를 저버리니까, “아이고,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웠구나.”하고 탄식하고 근심하는 모습이 나타나죠. 하나님이 굉장히 허술하신 분이시네요. 하나님에게 굉장히 허술한 면이 있네요. 전지전능하시고 예정하시고 모든 것을 아신다고 해놓고는 뭔가 하는 일에, 계획에 자꾸 빵꾸가 나는 느낌이 들고 허점을 보이는 느낌이 들죠.

그러면 보통 하나님을 믿을 때는 절대 신뢰하지 않습니까? 하자가 없고 오류가 없음을 믿고 절대적으로 당신에게 기대겠습니다, 맡기겠습니다, 뭐 이렇게 한다 이 말이죠. 근데 후회하시는 하나님한테 맡겼다가는 같이 거덜 날 일이 있습니까? 이렇게 허술한 하나님에게 제대로 모든 것을 맡길 수가 있겠어요?

자, 여러분이 이야기해보세요. 하나님의 후회하신다는 그 취지가 뭘까요? 자,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죠. 하나님이 후회하신다고 하니까, 그럼 무슨 하나님을 믿는 셈이 돼요? 후회하시는 하나님, 어설픈 하나님을 믿는다는 셈이 된다 이 말이죠. 그래서 기존의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바로 하나님의 후회 같은 요소를 담아낼 수가 없어요. 그들은 사람들에게 대단한 분을 상품화시켜가지고 무조건 믿고 기대면 천당 간다는 이런 식의, 그걸 상품화시키고 그걸 전파하는데 급급하기 때문에, 하나님 가운데 숭숭숭~ 구멍이 났다는 이 사실에 있어서는 그들이 감당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의 후회하심의 취지가 뭐냐, 이 시점에서 너무 뜸들이지 말고 직접 말씀드려야겠죠. ‘모든 것과의 연관성속에서 하나님 자신을 일부러 참여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과의 연관성이에요. 모든 것과의 연관성이라고 하는 것은 ‘변하는 추이나 사태에 대해서 하나님이 자기의 모습을 조정해나가시는 분이시다.’라는 이 말입니다. 조정해나가시는 분.

골목식당에 나오는 백종원 셰프가 있죠. 그 사람이 처음에 나올 때 설탕을 막 뿌렸거든요. 맛있게 하려면 설탕을 뿌려라! 그전까지는 설탕은 몸에 해롭다고 하는 거예요. 근데 그 사람이 설탕을 막 부었다 이 말이죠. 근데 그 사람이 밥이나 죽이나 막 아무데나 설탕을 뿌렸습니까? 아니면 상황 봐서 집어넣었습니까? 상황 봐서 집어넣었죠. 추이에 따라 집어넣었죠.

인간들이 생각하는 고정된 하나님은 그냥 믿기만 하고 겸손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을 하죠. 근데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인간들이 터져 나오는 죄악과 더불어 변동하고 있는 거예요. 다른 모습을 계속해서 보이고 있는 겁니다. 알리안츠보험에서 나오는 상품 중에서 뭐가 있느냐 하면은 이게 있어요. 변액 상품이 있죠. 다른 데도 다 있지만.

변액 상품이 뭐냐 하면 고정금리가 아니라 주식이나 투자로 인해 이윤을 많이 주고 적게 주는, 말하자면 변액이죠. 변액. 변액이 뭡니까? 액수가 변한다는 뜻이잖아요. 액수가 변한다. 자, 과외를 할 때 “우리 애를 받아주면 한 달에 50만원을 줄게.” 이렇게 계약하는 가정도 있지만, “애가 성적이 오르면 10만원을 더 줄게. 근데 성적이 내려가면 10만원은 뺀다. 콜call?” 이런 게 있다고요.

하나님이 유동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인간이 신을 생각할 때 인간보다 월등히 우월적인 존재로 고정화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주께서는 알아요. 인간의 고정화된 신이 바로 뭐가 되느냐 하면 그게 바로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우상이 돼요. 나는 부족하지만 주께서 안정되게 해주시면 내가 언제든지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는데, 이럴 때 하나님 좋아라고 섬기는 거예요? 누구 좋아라고 섬기는 거예요? 어쨌든 간에 자기 자신은 손해 안 보려는 의도가 굉장히 강렬하죠.

다시 말해서 “나는 결코 어떤 경우도 가짜가 안 될래.”라는 의도가 굉장히 강렬할 때는 모자란 나보다, 부족한 나보다, 연약한 나보다, 나약한 나보다, 한계성 있는 나보다, 그보다 월등히 대조되고 차이 나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설정해놓고 그걸 상품화로 날려버린 거예요. 바겐세일 하듯이 그것도 바겐세일해서 마구 날려서, “믿고 의지하면 여러분의 장래는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믿고 의지하세요.”라고 할 때에, 그게 바로 사무엘상에서 가짜하나님이 되는 겁니다.

사람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거기에 따라서 하나님이 같이 변화하는 겁니다. 유도리(형편이나 경우에 따라서 일을 처리)라고 하죠. 자, 그러면 인간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자, 인간은 어떻게 나옵니까? 하나님을 언급하면서, 또는 누굴 대하면서 항상 인간은 뭘 갖고 나오느냐 하면은 목표를 가지고 신에게 나와요. 또 타인에게 나옵니다.

지금 사울왕의 목표가 있어요. 사울 왕이 누구하고 싸우느냐 하면은 아말렉과 싸우죠. 그럼 사울 왕이 이스라엘 왕이잖아요. 저쪽은 아말렉 왕이 누구냐 하면 아각이에요. 아각이라는 이름이 32절에 나옵니다. 아각이 나오죠. 그러면 저쪽의 왕, 아각은 아말렉의 왕입니다. 이쪽은 누가 왕입니까? 사울 왕이죠. 사울이 사적인 목표, 의도가 있었어요.

뭐냐 하면 저 아말렉을 자기가 지배하겠다, 접수하겠다는 사적인 욕망이 있었습니다. 왜 이런 목표를 세웠느냐 하면은 아말렉을 접수하게 되면 사울은 점점 더 왕의 지위가 공고히 되고, 자기의 권력이 더 세지는 거예요. 수제비하기 위해서 밀가루 반죽한 것에 또 다른 반죽을 치대버리면 그야말로 더 커지잖아요. 권력도 그렇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권력도. 내 소유에 저 타인의 소유까지 겹쳐버리면 내 소유는 커지고 확장이 되겠죠.

개척교회 하는 목사님들이 제일 바라는 기적중의 하나가 옆에 있는 교회 목사가 말썽피워서 나오고 난 뒤에 그 교인들이 우르르 자기교회로 다 오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거는 뭐 전도할 필요도 없어요. 가만히 있는데 왔다 이 말이죠. 저쪽에서 십일조 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그거 계산한다고 바쁘죠. 십일조 한 사람이 몇 명이냐? 푼돈 말고. 한주에 와서 5천원 내는 사람 말고. 정기적으로 십일조, 목돈 내는 사람. 그게 제일 관심사에요. 그거뿐이라니까요.

이게 목표가 돼요. 사무엘상 15장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사울 왕에게 아각 왕이 갖고 있는 이게 뭐가 되느냐 하면 이게 유혹이 돼요. 유혹. 여러분 유혹이 없는데 목표가 세워질까요? 아니 목표를 세울 때, “나는 물에 빠져 죽을래.” 이것을 목표로 세우는 사람은 없잖아요.

겨울철 날씨가 춥다. 백화점 앞을 쓱 지나가다보니까, 세상에! 내가 입었으면 평생에 더는 옷이 필요 없을 정도로 딱 맞춤. 그것만 입으면 내 목숨이 달아나도 소원이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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