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강-YouTube강의(인생의 짐)20181218-이 근호 목사
262강-YouTube강의(인생의 짐)20181218-이 근호 목사 제 262강, 제목은 ‘인생의 짐’입니다. 보통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개인의 인생이라고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하잖아요. 그런데 성경에는 우리 개인을 단독으로 인생이 뭐냐고 그렇게 규정하지 않습니다. 인생이라는 각자 자기 인생을 주장하는 것을 조사해보면 다들 고생 다 했어요. 자기 인생이 고생스럽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이고 계속해서 자기를 지키려고 하는 동정심을 자기에게 보내는 겁니다. 자기 자신이 불쌍하다고 보는 거예요. 그 말은 계속해서 자기에게 우호적이죠. 자기를 옹호하려고 하고 자기를 응원하려고 하고 너무 일방적입니다. 그래가지고 인생이라는 것이 밝혀지지 않아요. 누구에게 마이크 대고 “당신의 인생은 어떻습니까?”라고 물으면 그 사람도 자기이야기 하고, 본인도 자기이야기 하고, 그 외의 경우의 수를 두 사람, 열사람, 백사람 계속해서 늘여봐야 고생했던 자기의 지난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이 말이죠. 그럼 성경에서 인생을 어떻게 보느냐, 성경에서 인생을 볼 때에는 하나님이 조성한 상황이 있어요. 환경이 있어요. 그 환경 안에서 인생이 비로소 밝혀집니다.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조성한 거예요. 이 말은 인간들이 살다보니까 그렇게 된 게 아니고 의도적으로,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인생이 무엇인가, 인간은 어떤 형편에 있는가를 의도적으로 꾸며놓은 그런 세팅 같은 것이 있습니다. 특히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는 아주 모델이 되죠. 우리가 오늘 봐야 될 것은 예레미야 5장 1절에 대해서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예레미야에서 몇 구절을 찾을 건데요. 우선 5장 1절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여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내가 이 성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했어요. 이게 예레미야 5장 1절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근데 방금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익히 아는, 벌써 사전조사가 끝난 상태입니다. 3절에 보면, “그 얼굴은 반석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 4절,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우준한 것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 5절, “내가 귀인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히 그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라고 되어 있어요. 지금 우리가 예레미야 5장을 보고 있잖아요. 예레미야 5장에서 하는 이야기를 보류하고, 산에 등산가서, 등산가게 되면 등산길이, 산책로가 원래 하나밖에 안나있거든요. 그럼 사람들이 이렇게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죠. 그들이 올라가고 내려가고 할 때에 친구들하고 재잘재잘 대는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세요. 예레미야 5장 이야기가 나오는지. 그들은 친구하고 등산하고 식사하면서 계속 누굴 만나서 이야기가 그렇게 꽃이 피는데, 아무리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오랜 시간을 보내도 정작 내 인생이 어떻게 되는지를 모르고 있어요. 자기 인생이. 예레미야 5장을 계속 더 읽어보면, 12절에 보면 아주 노골적인 말씀을 직접적으로 주께서 하신 대목이 나옵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인정치 아니하고 말하기를 여호와는 계신 것이 아닌 즉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요 우리가 칼과 기근을 보지 아니할 것이요” 13절, “선지자들은 바람이라 말씀이 그들의 속에 있지 아니한즉 그같이 그들이 당하리라 하느니라”라고 되어 있어요.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한다는 이야기는 곧 무엇과 연결되느냐 하면은 이 인간세계에는 재앙은 없다는 겁니다. 속닥거리면서 재잘거리면서 곧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재앙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친구하고 아주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겁니다. 오늘날 이 거리에 커피카페가 얼마나 많습니까? 카페에 가서 아무 테이블이나 녹음기 대고 그들의 하는 대화를 한번 들어보세요. 전제가 뭐냐 하면 하나님이 계신지 아니한지 재앙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그 다음부터는 자기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뭔지를 몰라요. 그런데 예레미야 4장 19절에 보면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 네가 나팔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아까 한 것은 5장이고 방금 한 것은 4장이거든요. 제목이 ‘인생의 짐’이다 이 말이죠. 그럼 예레미야에게는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남들이 갖고 있지 않는 기상예보 하듯이 예고적이고 예보적인, 그러한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예레미야입니다. 오늘날 성도의 모델에 속한다 보시면 돼요. 성도라 해가지고 교회 가서 노닥거리고 놀고 하는 그게 성도가 아니에요. 성도란 성경에 주신 상황 속에서 예레미야가 겪었던, 예레미야가 느꼈던, 예레미야가 체험했던 것을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동일하게 이 시대, 2018년도 이 겨울 이 시대에 똑같이 느끼게 하는 사람, 그것이 말씀이 작렬하는 같은 공간에 소속되어 있다.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성도는 개인적인 희망이 좌절되고 개인적인 욕심이 끊어져서 인생 울고불고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예레미야같이, 이 시대 이 상황 자체가 그들이 한결같이 하나님의 법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이 세상의 원칙을 놓쳤다는 것을, 성도만은 이걸 꿰뚫고 있어야 돼요. 성도만은 꿰뚫고 있어야. 요리전문가가 골목에서 식당 하는 것을 보면 한심스럽죠. 저래서는 손님이 안 온다고 이렇게 답답해하잖아요. 그럴 때는 뭐라고 합니까? 요리전문가는 그 사람의 식당을 꿰뚫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죠. 꿰뚫고 있다. 전문가니까요. 성령을 받은 사람은 이 세상을 분별하는 전문가입니다. 예레미야 같아요. 보통사람들은 자기 개인만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문제에 울고불고 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4장 19절에서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다. 이거는 뭐 개인적으로 사기당해서 괴로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에게 인생의 짐이 짊어져있는 거예요. 그 인생의 짐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이 시대적 상황과 결부되어 있는 짐, 이 짐의 원형은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졌던 인생의 짐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사적으로 잘 먹고 잘살라고 일했습니까? 이 땅에 나타났습니까? 예레미야가 개인적으로 개인의 영달을 취하기 위해서 가슴 아프게 답답해하는 거예요? 돈 뜯긴 적 있습니까? 사기당한 적 있습니까? 그거 아니죠. 내 인생 없죠.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령 같은 존재에요. 자기인생 없어요. 성도의 존재자체가 예고적이고 예언적 소양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것은 성도가 복음 믿고 잘 먹고 히히낙락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가 갔던 그 길을 가는 거예요. 끝으로 예레미야 5장 1절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그 넓은 거리에 가서 한 사람이라도 진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이 성을 멸하지 않겠다는 주님의 그 말씀을, 성도는 자기인생의 짐으로 져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