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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요한복음 19장 10절(나와 너)181204b-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요한복음

강남-요한복음 19장 10절(나와 너)181204b-이근호 목사

두 번째 합시다. 빌라도가 이제부터 약간 어렵습니다 빌라도가 관용했지요. 관용을 다른 말로 하면 포용이란 뜻으로 설명하는데 빌라도가 여유를 부리는 거에요. 법적으로서 당신 죽어도 되는데 법 말고 또 다른게 있다. 그 권한은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거기에 따라서 뭐냐 하면은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 못 박을 권세도 있다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스스로 뭐를 인정했느냐 하면은 스스로 초법을 인정한거죠. 초법을.

이 초법을 행사하려면 빌라도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 법에 효력을 정지시켜야 되는 겁니다. 법의 효력을 정지시키려면 정지시키는 당사자가 뭐냐? 초법적인 존재가 아니면 법을 효력을 정지시킬 수가 없어요. 여기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은 관용과 포용을 예수님에게 제시하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관용과 포용을 만약에 접수해 버리고 수용해 버리면 어떻습니까? 빌라도가 예수님 위에 존재하는 초법이 되지요. 빌라도는 영원히 ‘I’ 내가 되고 예수님은 영원히 뭐냐면 그 ‘I’ 를 빛내기 위한 그 관용과 포용하심을 더 높이기 위한 ‘you’ 너 you가 되는 거에요.

바로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빌라도를 누가 만났다? 예수님이 만나셨잖아요. 그럼 예수님이 만났다는 말은 빌라도가 예수님 만났다는 이 말은 지금 이쪽 세계에 누가 들어오느냐 하면 예수님이 지금 들어와 계신거거든요. 이쪽 세계 무슨 세계? ‘질서세계’. 그 질서세계가 뿜어내는 초법적인 현상을 우리들보고 주목해 보라는 거에요.

인간공동체가 법으로 운영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영적인 생각이 아니라는 겁니다. 법으로 정의로움 그건 눈으로 보이는거고 그게 아니고 초법적인 요소가 이렇게 어떤 음기처럼 음슴한 기운처럼 이렇게 흐르고 있는 거에요. 사람이 자기한테 유리할 때는 법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거기에 뭔가 불리하다 싶으면 왜 용서 좀 해주면 안되느냐 내가 율법에서 죄인인데 죄인이니까 율법 준 것은 죄인되기 위해서 죄인되게 하셨으면 하나님 용서하는 몫은 특권은 사면특권은 누가 가지고 있다? 그런 포용력과 관용은 주님 몫이니까 주님 나를 구원해 달라는거에요.

이게 바로 악마가 만든 기독교 아닙니까? 기독교 신앙이라고요. 악마가 만든 기독교 신앙이라고. 이게 교리 아닙니까 교리. 이천년 교리가 이런거에요. 어쨌든 나 앞에서 예수님다운 면모를 나한테 재롱을 부려봐라 재롱을. 내가 판단할테니까 딱 이러고 있을테니까. 하나님이든 예수님이든 삼위일체든 총동원해서 춤을 추던지 무용을 하든지 재롱을 부리든지 이쁜짓 해봐라. 이쁜짓 할 때 내가 아 이거 괜찮네 믿어줄 용의가 되어 있다는 거에요.

아주 건방을 떨어요 건방을 떨어. 아 그게 교회 상품 미끼 아닙니까. 그게 교회 미끼 상품이거든요 미끼 상품. 값없이 준다고요. 원래 백화점에 미끼 상품하지만 사실은 본상품 따로 있다고 하니까. 값없이 구원받지만 십일조 안하면 망한다 뭐 이런거. 본상품 있듯이. 저주 받는다. 자꾸 미끼 상품에 걸려드는거에요. 그런데 걸려든 당사자가 나빠요. 당사자가. 나빠도 나쁜 줄을 몰라요. 왜냐하면 다들 그러니까. 군중이거든요. 다들 똑같은 한통속이니까.

이 한통속이란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이게 한통속이란 말은 아까 권세 이야기했지만 한통속이란 말은 동일한 권세 아래 있다는 뜻이에요 한통속이란 말은 동일한 권세. 동일한 권세라는 말은 인간에게 뭘 주느냐 하면 소속감을 줘요. 소속감. 그런데 예수님이 이걸 가지고 죄라고 이야기하고 그리고 권세 이야기가 나와버리면 예수님은 결국 두 종류의 힘을 지금 이야기하는 겁니다.

기존의 소속된 소속 인간세계, 군중 그 소속과 거기서부터 배제당한 거기서부터 그냥 배척당한게 아니고 배제당했거든요.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여러분 머리 좋은 사람은 알겠지만 배제당했다는 말은 빠이빠이라는 말이 아니고 결별이라는 말이 아니고 이쪽에 관계를 유지하면서 예수님을 배척한 배제한 그 죄를 내가 필히 묻고야 말겠다는 관계가 유지되면서 배제당한거에요.

지난시간에 여러분 강의한거 기억납니까? 성경내용은 뭐냐 하면은 하나님에 의한 인간에 대한 복수에요. ‘복수극’입니다. 하나님에 의한 인간들에 대한 복수극. 아 참 치사하다 인간들 갈라고하나. 인간을 가는게 아니고 인간배후에 인간에게 소속감으로 준게 있어요 소속감. 초법적으로 소속감을 준게 있다고요. ‘권세’ 다른 말로 ‘주권’인데 주권은 이런거에요. 주권은 자신이 내부화시킬 수 있는 조건에 만족하는 겁니다.

주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이 안에 들어있는 전부다 자기의 내부화시킬 수 있다는 그러한 자신감 또는 통치성을 말하는거에요 주권이라는게. 그게 로마서 5장 보면 죄의 무슨 노릇이라고 했습니까? 5장 10절 죄의 왕노릇이죠. 이걸 말하는 거에요 죄의 왕노릇. 왕노릇이라고 하는 것은 힘에 누수가 있으면 그건 어설픈 왕이에요. 왕은 죄가 왕으로 통치한다는 말은 어느 누구도 그 죄에서 빠져나갔다? 못 빠져나갔다? 빠져나오고싶은 것도 아니고 하나의 소속감이라니까. 어떤 행복감을 느낀다니까요 죄안에 살면서.

우리가 생각한 악마가 노린 것은 뭐냐 하면은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라 이게 악마가 주는 소속감 상품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믿고 예수님 믿고 행복하게 살다가 죽어서 천국가라 그런 행복감을 주잖아요. 주님은 이 행복감은 배제가 아니에요. 지금 배척받는게 아니거든요. We are the world 우리는 한 세계고 하나다 하다. 죽은 마이클 잭슨이 생각난다. 우리는 하나에요 우리는 하나. 마이클 잭슨이 어린아이들 애들 성학대 했다는 소리 있는데 어린애들 아프리카 애들 많이 도와줬잖아요.

도와주면서 마이클 잭슨 사고방식이 뭐냐 하면은 바로 이것이 주기도문의 완성이라는 겁니다. 주기도문에 뭐라고 되어 있어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뜻은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온 세계에 어려운 사람을 도와준 이웃사랑, 주님의 이웃사랑을 펼침으로서 이것이 이 뜻이 우리를 통해서 하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그 뜻이다 라고 지금 마이클 잭슨은 노래를 통해서 이야기 한거에요. 빌리진 이런 것만 듣지 말고. 뒤로 쫙쫙 걷는 것만 보지마시고요. 빌리진 노래 가사는 이런 거에요. 춤추는데 그 여자가 애를 낳았데. 그 애 내 애 아니야 그 내용이잖아요. 가사가 굉장히 음침해요. 퇴폐적이고. 맞을걸?

악마란 공동체의식을 말합니다. ‘공동체주의’. 우리서로 하나의 소속감 속에 심리적인 안정감을 누리자. 그러나 주님은 반대로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온 것은 이 땅에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고 불화를 주려 함이라. 그런 구절은 안보이고 로마서 12장에 나오는 서로 할 수 있거든 화평하라 화평하라 하나님의 화목이 어떻고 화목제사가 어떻고 서로 화목하라 그런 것만 하거든요.

그걸 여러분 그렇게 모순돼 보이고 서로 뜻이 충돌돼 보이는 것은 무엇과 무엇을 구별 못해서 나오느냐 하면은 재생산과 창조를 구분 못해서 그래요. 예수님이 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은 창조입니다. 예수님은 창조고 마귀는 뭡니까? 재생산이에요. 재생산은 진보 발전 성화 진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어요. 재생산이 되려면 찌그러기 모아서 더 버리는게 아니고 죽이는게 아니에요. 계속해서 질 좋은 걸로 되살리는 것이 재생산입니다. 쓰레기 재생산하잖아요 재생산.

창조란 것은 뭐냐 하면 버려라는 거에요. 세상의 소속감을 버리고 어떤 군중이라는 그 힘, 군중의 힘 그 초법적인 것을 포기하라. 너는 뼈다귀란 말이죠. 너는 개이고 뼈고 흙이고 주제파악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재생산은 우리가 뭔가 힘을 보탤 수가 있어요. 우리의 행함으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대로 성경말씀은 뭐 폼으로 있나 이렇게 하면서 셩경말씀 주신 것은 우리보고 이제 성령받은 우리가 성령받은 우리 성령받은 자답게 거기에 성령에 합당한 의의 열매와 행함을 얻을 가능성과 잠재력을 획득했다는 겁니다. ‘획득’, ‘소유’죠.

여러분 획득 소유가 되어 버리면 절대로 소유자를 떠나지 못합니다. 자기 부인을 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소유했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악마가 노리는 것은 뭐냐? 혼자 홀로 살아라. 홀로. 너 혼자 있는거 좋아하잖아. 좋아하지요. 저리 가. 그렇지. 잘해잘해. 홀로 살아라. 뭐든지 혼자해라 혼자 힘으로. 왜 혼자 힘으로 해야하냐 하면은 어떤 성과가 왔을 때 자기 혼자 했다는 것이 좋습니까? 동업자 끼어서 같이 했다는게 좋습니까? 역시 혼자 먹는게 최고에요.

도박 이렇게 할 때에 도박 할 때 도박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뭡니까? 다 전부다 다 하고 단 한사람만 가져가는 거에요. 최종 결정전. 딱 한사람만 가져가는 거에요. 그 짜릿한 그 기분 때문에 도박하는 겁니다. 이 도박성향은 어떤 회사나 어떤 국가나 조직이나 교회에서 항상 궁금한게 항상 최고 자리에 누가 앉아 있는가가 궁금해요. 너희 교회 목사 누군데? 너희 집에서 최고 어른이 누군데?

그걸 묻는다는 말은 뭐냐 하면 묻는건 ‘I’ 내가 묻지요. 누구한테? 너한테 묻지요. 나 ‘I’에서 나온 질문자체가 다소 뭐로 해석되느냐 하면은 그 최고의 자리에 앉은 ‘I’와 나 ‘I’와 ‘you’와 나 누구 더 괜찮은 존재냐? 누가 더 쎄냐를 비교하고 싶어서 그런 질문을 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지난 주일날 설교하면서 성도의 질문은 다른 질문이 나와야 된다고 했지요. 내가 나를 나무라는 질문이 나와야 돼요. 너 언제까지 네가 주님을 핍박할거냐? 질문을 우리 속에서 형성되어야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빌라도이기 때문에. 빌라도가 우리가 대표자고 빌라도는 그 당시의 군중들의 대표자고. 군중들이 해야될 일을 자꾸 군중들은 누구한테 밀어넣습니까? 빌라도에게 계속 부추기고 계속 뒤에서 밀고 우리 시키는대로 하란 말이죠. 시키는대로 안하면 당신은 진짜 가이샤의 신하가 아닙니다 이렇게 나오지요. 15절에.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이거 지금 군중들이 진심으로 하는 소리 아니에요. 가이사가 그들의 왕이 아닙니다. 본인이 이미 왕 되었어요 본인들이. 인간이 누가 왕 돼요. 본인이 왕 되었다고요. 본인은 왕이기 때문에 왕은 늘 재생산 하고싶어요. 스스로 내가 되고 싶은 그런 목표가 있어요 인간은. 누굴 이용하던 간에 그게 왕이 되었든 빌라도가 되었든 누굴 이용하든 간에 그게 청와대에 있는 사람이든 어쨌든 간에 ‘I’는 계속 빛나는 영광스런 ‘I’가 ‘나’가 되고 싶어요.

그런데 성경에 사도바울이 소개하는 복음은 뭐냐? 고린도후서 4장에서 사도바울은 복음을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복음이란 ‘주님의 광채’ 이렇게 했어요. 이 광채라는 말은 뭐냐 하면은 곧 태양과 같아요. 밤에는 달 낮에는 태양. 태양 특징이 뭐냐 하면은 모든 우주를 태양 하나가 다 골고루 비취지요. 이게 광채 아닙니까. 세상 모든 것은 무엇의 광채다? 주님의 광채라고 여기는 그게 바로 복음을 아는 거에요. 복음을. 꼬라지는 이래도 주님의 광채를 받고 있다 이 말이죠. 이게 제가 이야기한 주님과의 관계성. 혼자 홀로 사는게 아닙니다.

이것을 그림을 그리자면 주님 여기 계시고 그 하프라는 악기 있지요? 하프라는 악기의 줄 탱탱한 줄처럼 온 천지에 그 탱탱한 줄을 쫙 설치해가지고 그중에 우리가 하나씩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주님의 광채가 없는 곳이 없는거죠. 이게 얼마나 감사할 일이고 긍정적인 마인드 입니까? 세상 복입니까. 이게 복음이에요. 그런데 악마는 어떻게 됩니까? 주님의 광채를 꺾어버리고 주님의 자리에 뭘 집어넣어요? 바로 우리를 격려하는거에요. 우리를 도와주는거에요.

나라는 너 존재가 너 존재를 위해서 온 세상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네가 거기에 믿어라. 이게 최고의 행복이라는 거에요. 말이 맞지요. 이게 행복 맞지요 우리 죄인에게는. 내가 초법적인 존재 내가 적그리스도가 되는 것보다 더 좋은게 어디 있습니까? 아까 그 데살로니가후서 2장 마저 해봅시다. 제가 어디까지 이야기했느냐 하면은 소위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해도 그걸 적그리스도라고 알아챌 사람이 있다? 없다? 없는 겁니다. 왜? 군중들이 원해서 오야오야해서 받들어 모셨는데 제가 교회 생각하라고 했지요? 우리의 목사님 같은 목사는 없어. 최고야. 그게 적그리스도. 주님의 광채가 있을 자리에 교회 담임목사가 앉아있단 말이죠 거기에.

만약에 어떤 목사가 앉아 있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하면 아무리 목사를 존경해도 목사보다 더 존경스러운게 누구냐 하면 본인이에요. 본인이 목사를 존경한다는 말은 본인이 더 목사보더 더 존경스럽다는 내심을 그렇게 표현한겁니다. 계속해서 뭡니까? ‘나와 너’. 제목은 ‘나와 너’다. 나와 너 관계가 유지되는 거에요. 그러면 우리 목사님 최고 우리 목사님 최고 하는 것은 사실은 누구 최고라고 하는겁니까? 나의 광채가 최고 나의 광채가 최고라는 뜻이에요.

전부다 소위 하나님되겠다는 사람이나 그 받들어모시는 인간이나 똑같은 인간들이에요 전부다. 한 덩어리 된 인간들이에요. 그게 바로 예수님이 본디오 빌라도를 만났던 그 구조 있잖아요. 그 구조를 세상 끝날까지 계속 확장시키기 때문에 데살로니가후서 2장 같은 것이 나오는겁니다. 그렇다면 이 구조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되는가? 이 구조에서 벗어나려면 빌라도가 예수님 만났잖아요. 그러면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배척받은 식으로 그렇게 되지 않으면 빠져나올 수가 없지요.

예수님은 빌라도를 가지고 뭐냐 하면은 이렇게 봅니다. 빌라도야 네가 지옥 간다 겸손한게 아니고 네가 바로 ‘죄’다. 죄라는 것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너같은 존재가 하나님 보시기에 꼭 필수조건이었다는 겁니다. 군중도 마찬가지고. 그러면 예수님께서 빌라도를 하나의 ‘it’ 그것으로 본다면 결국 예수님 보기에 누가 최종적인 초법적 존재요 ‘나’가 되겠습니까? 바로 예수님 본인이죠. 그걸 뭐라고 표현하느냐 하면 이건 정말 논리를 좀 제가 뛰어 넘었는데 일단 논리를 뛰어 넘지 말고 해봅시다.

일단은 예수님 앞에서 빌라도 또는 가이사 왕 군중은 전부 한패된 건 인정하시죠? 예수님 앞에서. 그리고 우리는 관찰자 입장이 되는게 아니고 우리는 그냥 우리는 벌벌 떨고 있는 입장이죠. 그 당시 12제자가. 자 12제자가 재미있다 보자 이런 입장이 아니에요 지금. 지금 도망치고 있는 입장이라고요. 결국 예수님 편 아니에요. 예수님 배반할거고. 어느 누구도 예수님 앞에서 대표자가 죄를 키우는 죄를 죄되게 하는 대표자는 빌라도와 군중들이란 말이죠.

그러면 군중들과 빌라도가 이들이 합쳐서 이들을 합체하게 되면 그들의 예수님 처리하는 방식을 한번 보자 이 말입니다. 처리하는 방식은 바로 대체폭력이라는 건데. ‘대체폭력’이라는게 뭐냐 하면은 빌라도가 어떤 정치적인 판단을 내릴 때에 어떤 소란이 일어나고 질서가 문란해지게 되면 누구하나 희생타가 필요해요. 희생타를 때림으로서 저쪽을 때리는걸 대신할 때 대체폭력이 되는 겁니다. 이게 유대인의 지도자에서도 나왔어요.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11장 50절에 보면 이건 좀 기니까 그냥 읽어볼께요. “그 중의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 이게 대체폭력이에요. 하나의 공동체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말썽꾸러기 하나를 잡아다가 희생양으로 처리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에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 이 말을 스스로 함이 아니라 그때 52절에 보면 “온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이게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 지금 직접 누구보고 이야기하느냐 하면은 그 유대사회에서 로마한테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 희생타로 예수님을 하나의 죽여버리자 하는 그 작당과 그 모의와 그 실행을 실행의 그 모습을 뭐로 보느냐 하면은 주님께서 없는데서 창조니까 없는 백성 새로 만들 때 그 방식을 그대로 따라서 했다는거에요. 희생양을 주어서 자기 백성을 건져내는 방식을 따랐다면 그러면 새롭게 된 혼돈에서 질서에서, 질서에서 다시 혼돈으로 가는게 아니고 기존 질서를 배격한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기존 질서를 배격하는 조건하에 발생되는 겁니다.

그래서 마귀가 필요한 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 죄 많은 세상에 태어나야 되는겁니다. 우리가 겪었던 모든 것이 사실은 우리 때문에 주님이 겪은거에요. 구원되야 될 우리가 오해해서 주님을 곡해해가지고 우리가 주님을 핍박한거에요. 그 핍박했던 그 형편과 상황을 그대로 우리에게 되돌려주는 겁니다. 되돌려줘버리면 내 식이 초법이 아니고 주님 방식이 초법이 되어 버리면 우리는 졸지에 아무 것도 한 것도 없이 의인이 되요. 죄가 만들어진 우리가 죄의 재료가 될 우리가 주님의 소속됨으로 말미암아 의가 되어버렸어요 의가.

무슨 이런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습니까. 여러분 의인되는데 뭐했어요? 없잖아요.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뭐라고 했느냐 하면은 세상에 나갔을 때 성도들아 세상에 나갔을 때 제발 어리석음으로 살아라 어리석음으로. 어리석음이 구원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뭐냐 하면은 네가 어리석다고 자인하라 이 말입니다. 누가 우리를 어리석게 만들었습니까? 악마가 어리석게 만들었죠. 악마가 우리를 어리석게 만들었는데 우리는 악마 말은 OK.

악마가 우리를 똑똑하고 괜찮은 나로 만들어주는 줄 알고 허허 하면서 악마 말 듣고 사는거에요.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행복합니까?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행복합니까? 미국 가면 미국 이민 가서 어떻게 행복합니까? 캐나다 가면 캐나다 가면 행복할까요? 캐나다 살다가 한국 오면 한국에서 어떻게 행복합니까? 행복 빼놓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우리가. 그냥 행복만 생각해요 행복만. 왜 행복해야 되는데요? ‘나’니까. ‘나’가 들어가거든요. ‘나’니까.

그래서 데살로니가후서 그 뒤에 보면 지금 너희들은 모른다. 그런데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니 불법의 비밀이 뭐냐 하면은 초법 때는 초법과 상대해요. 초법은 초법대로. 지금 적그리스도가 초법이잖아요. 이 초법을 꽉 억제하는 꼼짝마라 하는 그분이 있어가지고 그분이 초법이 초법으로 다룰거에요. 그럼 나중에는 이게 좀 풀리게 되게 되면 다시 그대로 원상복귀가 되어 가지고 위대한 메시아여 구원자로 설칠겁니다. 그때 마지막 멸망이 주어지는 거에요. 주님이 악마를 다룬다는 이야기입니다. 초법이 초법을 다루는 거에요.

악마라는 것은 어디 있습니까? 물으면 안돼요. 왜냐하면 묻는 것 자체가 나 여기 있고 악마 너는 어디쯤 있습니까? 하는데 이미 우리는 악마화되었어요 우리가. 우리가 악마화되었기 때문에 악마가 악마 찾는다는 것은 모순된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자기 놔두고 어디 찾습니까? 악마의 특징은 홀로 사는거에요. ‘저리 가’에요 ‘저리 가’. 제목을 바꿀까싶다 저리 가로. 우리는 예수를 믿어서 구원 못 받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자체가 수상한 짓이에요. 그냥 주님 혼자 가시도록 붙잡지마세요.

그게 뭐냐 하면 예수님 초법이라고 하는 것을 요한복음 19장에서는 뭐로 되어 있느냐 하면은 통 돼요 통. 제목을 ‘통’해도 될텐데. 통 하니까 통아저씨 생각난다. 통이란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은 요한복음 19장 23절에 나옵니다.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통이란 말은 뭡니까? 둘이 될 수 없고 하나가 계속 견지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하나가. 그런데 이 사실이 유일한 하나거든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입었던 옷이잖아요. 예수님의 몸에 가치를 표상해주는거에요. 이게 하나의 옷 같으면 이렇게 통이 예수님의 초법을 이야기한다 제가 그렇게 무리한 알레고리식으로 해석을 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거기 24절에 보면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이것은 시편 22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시편 22편에 있어서 인간들이 예수님의 고유한 그 가치와 위상을 모르고 옷을 나누자 하다가 이게 나누면 둘 다 안 된다 싶어서 그다음에 제비 뽑아서 이걸 하나로 가지자 하는 행동을 한다는거에요. 시편 22편을 한번 봅시다. 그 내용이 나오는지. 18절, 16절부터 보면 시편 22장이거든요 거기보면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다윗이 성령을 통해서 이렇게 예언하고 있지요.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 하시오며 하게 되면 이제 여기 나오는 ‘나’라는 분은 어디로 빠진거에요? 아버지 세계가 아니고 인간세계로 넘어오신 ‘나’죠. 그러면 인간세계에 넘어 왔으면 예수님은 뭐냐 하면 인간세계에서 배척 대상이 되는 겁니다. 그럼 배척을 누가 주도하느냐? 예수님의 배척을 주도하면서 비로소 그동안 몰랐던 이 세상의 속성이 낱낱이 다 노출돼요. 예수님을 죽임으로서.

그래서 제가 설교할 때 그런 이야기했잖아요.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들의 설교가 뭐라고 했습니까?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거에요. 그게 노아의 방주같은 겁니다. 노아야 방주 지어라. 방주가 안과 밖을 결정하는 것처럼 지금 마지막 시대에 결정하는 것은 예수님이 죽었는데 어디서 죽었어요?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는 세계에서 죽었잖아요.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는 행복만 원하는 이 세계에서 하나님 오셔서 죽었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는 이 세상에 진짜 숨어있는 진짜 그 속내는 우리가 눈치 잡아야지 이거는 알아야됩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이 세상. 출세하고 애들 공부 잘 하고 남한테 칭찬받는 우리가 기대할 수 있고 희망을 걸 수 있는 유일한 장소. 내가 태어난 이 곳.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뭐 이런거. 유일한 이곳이 그냥 꽃만 폈으면 아무 탈 없지요. 꽃만 피면 괜찮아요. 복숭아 꽃 살구꽃. 살구꽃 피면 우리는 아무 이야기도 안합니다.

그런데 이 살구꽃 피는 이 동네에 누가 다녀갔습니까? 예수님 다녀갔다는 것이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들의 설교거든요. 악마한테 속았다는 겁니다. 속고 속고 또 속았다는 거에요.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 세상은 성질은 뭐냐? 하나님마저 내다버리고 무가치하게 처리하고 취급하는 그러한 지옥인걸 네가 왜 몰랐던가. 지옥에 살게됐다는걸 알게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경험이기 때문에 주님과 같은 경험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운 순간입니까. 세상을 좋게 본 것을 제가 여러번 반복합니다 어려워서. 세상을 좋게 보는 것은 그게 세상이 좋아서가 아니라 내가 거기에 소속감을 두고 싶어서 세상이 좋은거에요. 나한테 잘해주기를 기대해서 세상이 좋은 겁니다. 내가 나한테 귀하기 때문에 세상이여 그냥 나를 버려두지 말고 나 좀 챙겨달라고 하소연 하고싶어서 세상한테 아부하고 있는 거에요. 아부하니까 생각나는데 이 시간에 참석 못하고 열심히 검토해야될 우리 사장님. 열심히 지금 검토하고 있을거에요. 삼가 심심한 조의를 표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세상이 마음대로 안 되거든요.

그동안 자식들에게 얼마나 닦달했습니까. 공부 열심히 해서 출세하라고 좋은 대학 가야 네가 인간대우 받는다고 얼마나 닦달 냈습니까. 네가 이렇게 성적 낮은 것은 기도 안해서 그렇다고. 기도 안하고 엄마가 아는 복음 안 받아들여 너는 망했다고. 복음 받아들여도 우리도 똑같이 망해요. 우리는 복음으로 기뻐하지 망한 것 때문에 기뻐하고 이러면 안됩니다. 망하게 해주심도 마저 기뻐해줘야 복음으로 기뻐하는거에요. 그게 어리석게 사는 모습입니다. 앞으로 이름 지을 때 김 어리석음 박 어리석음으로 지으세요.

어리석음에서 오는 그 자유가 보통 자유가 아닙니다. 지금 왜 악마한테 시달리느냐 하면은 안 어리석으려고. 똑똑하려고 하는거에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성령께서는 우리가 무지한 것을 발굴해냅니다. 채굴해내요. 완전 비트코인이랑 똑같애. 완전히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암호화폐 만드는거에요. 끝까지 우리로 하여금 그야말로 희귀한 존재로 만들어 버려요. 우리 본인이 생각해도 내가 이상할 정도로 희귀한 존재. 그만한 자신감 자유감 있어야 되요. 그거 없으면 악마의 탁류에 우리는 휘둘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나를 버리시나이까 해 놓고 그 뒤에 나오는 이야기 뭐냐 하면 아주 짓밟히는 거에요계속해서. 여기 보면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여기 ‘나’라고 하는 것은 누굴 이야기해요. 시편 자체로 보면 누구 이야기 입니까? 다윗 이야기거든요. 그런데 다윗은 이런 현상이 없었어요. 언제 다윗이 옷 벗긴적 있습니까? 없잖아요.

그게 바로 ‘중복인생’입니다. 성도는 혼자 있는게 아닙니다. 성도의 몸은 주의 것이에요. 그런데 성도는 몸을 내 몸이라고 여기는 겁니다. 맨날 거울 보면서.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우리한테 양보 안해요. “그 몸은 내 몸이다.” “아닙니다 내 몸입니다.” 서로 갈등을 유발시키죠. 중복현상이에요. 지금 다윗이 나라고 이야기 하면서 사실은 그렇게 이야기하는 내 몸이 내 몸이 아니고 예수님 몸을 지금 발현하고 있는거에요. 다윗 몸을 통해서.

우리네 성도 인생도 꼭 그같은 길을 가는 것 밖에 없어요. 예수님이 가신 공생애의 모습을 우리 인생을 통해서 계속해서 반복하고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돈이 없어 욕 얻어먹는 것도 아니고요 남들한테. 행동 더 똑바로 못해서 욕 얻어먹는게 아니고 이상한 사고방식이 들어가지고 욕 얻어먹는거에요. 괴상한 사고방식. 천국 가려면 뭔가 해야 되지 않습니까? 교회를 가든지 뭘 하든지 선교를 하든지 뭘 해야 되는데 이미 창세전에 예정되었데. 그리고 태어난 것도 우리 엄마 깊으신 뜻이 아니고 주님 깊으신 뜻대로 하나님 깊으신 뜻대로 태어났대요 성도가.

그러면 주변에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그걸 증명하라는거에요. 그러면 우리는 증명하는 것은 내 소관 아니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증명인데 어떻게 더 살아가는 것에서 어떻게 따로 내어서 증명해 냅니까? 나머지는 증명 안되는거에요? 이런 고백이 나온다는 것. 이거는 어디서 배운게 아니잖아요. 나도 몰라.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으면 네 안에서 말한 것이 아니고 성령이 나온다. 주님에 대한 고백이 하신 일이 나온다는 자체가 우리도 깜놀이에요. 본인 자신도 깜짝 놀라지요. 내가 이러다 너무 미쳐가는게 아닌가. 좀 속도 조절해야되지 않나 이런 정도로.

18절에 보면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는다는 것은 옷 마저도 하나 남김없이 세상에 유린당했다. 철저히 유린당했지요. 그러면 예수님이 손해봤습니까? 아니면 세상이 손해본거에요? 세상은 그동안 악마가 감추고 감췄거든요. 악마가 있다는걸. 그게 예수님 오심으로 말미암아 악마는 너 ‘you’, ‘I’가 아니라 ‘it’. 악마는 존재가치도 없어요 ‘it’이에요. 그냥 악마=죄에요. 죄로 취급당하는겁니다. 죄진 악마가 아니라 아예 죄 그 자체가 악마에요.

그걸 가지로 로마서 5장에서는 죄의 왕노릇해서 죄를 인격화 시켜버립니다. 죄가 왕이래. 우리가 뭘 행동 잘못한게 죄가 아니고 죄라는 어떤 덩치가 있다는거에요. 그게 왕이래요. 왕이니까 세상은 왕국이죠. 무엇의 왕국? 죄의 왕국이 되는 거죠. 그 죄의 왕국이 가르치는 것은 홀로서기. 너는 너의 행복을 추구하라. 할 수 있는 행함을 다 동원해서. 스스로 돕는 자를 하나님은 도와준다. 아까 이야기했죠. 하나님이라는 자체가 이미 내가 있는 이상은 내가 장착되고난 뒤에는 하나님 ‘you’가 될 뿐이에요.

다시 한번 정리합시다. 빌라도가 주장한 것은 뭐냐 하면 기존 세계에 자기가 지배하는 유다사회가 안정감을 얻는 것 질서를 회복하는거에요. 지금 예수님 때문에 문제가 일어났거든요. 의견도 분분하고 따라서 평정하기 위해서는 재생산, 사회의 질서를 재생산을 할 책임이 총독한테 있는겁니다. 그 책임을 하면서 빌라도 자체가 법에서부터 벗어나려고 했어요. 초법적인 행동으로 하려고 했지요. 내가 봐주께 봐주께. 내 권세가 법보다 더 세다는 것을 알려줬습니다. 그런 고백이 나옴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은 인간들이 아는 인간들이 지어낸 우리 법대로 하자는 그 법 말고 다른 음슴한 기운이 오히려 법을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노출되었죠.

요한복음 다시 돌아가 봅시다. 요한복음 19장에서 “통으로 짠것이라.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아까 시편 22편하고 좀 다르지요? 시편에는 뭡니까? 겉옷은 나누고 속옷은 제비 뽑는다고 이렇게 되어 있지요? 그냥 뭡니까? 그냥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이렇게 되어 있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하면 구약에 있는 문자대로 그 뒤에 뭡니까? 24절 마지막에 뭡니까?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되어 있잖아요. 인간들의 법적인 질서에서 응한다는 것은 똑같은 말이 돼야 되요. 그래야 응한다는 말이 과학적으로 합리적으로 옳다고 돼있어야 되요. 이런 예가 마태복음 1장에 나오지요. 천사가 와서 마리아가 임신했는데 이름을 짓게 합니다. 그 이름을 천사가 이름을 지어요 천사가. 이름이 뭐냐 하면 이름이 예수. 여호수아 또는 예수. 예수라 해놓고 거기에다 풀이를 해놨죠. 이거는 풀이가 무지무지하게 길어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되어 있어요. 그런데 예수 여호수아란 말은 그냥 간단하게 인간사회에서는 질서사회에서는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구원자인데 뭐 붙는게 많아요. 자기 백성을 죄라는 말 거기 예수 안에는 없어요. 그런데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자기 백성이 현재 어디에 소속되어 있습니까? 세상에 소속되어있다고 해도 되지만 예수님 입장에서는 뭐냐? 그냥 죄 속에 갇혀있는 거에요.

그런데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말은 그 갇혀있는 백성이 알아서 스스로 구원될 수 있다? 없다? 구원될 수 없는거에요. 그 원칙을 견지해야 돼요 우리가 성도가. 성도는 뭐냐? 그 원칙이 계속 유지되는 것을 말합니다. 내 행함으로 구원되지 않았습니다를 유지해야 돼요. 그 이유가 뭔데? 그 이유는 살아가면서 점점 더 느껴지는거에요. 복음알고 십자가를 아무리 해도 내 재산 내 자식이 최고고 내 가정이 최고고 먼저 나와 관련된 그것은 남한테 빼앗기기 싫어요. 왜? 내거니까.

내 평생 노력하고 투자하고 참고 견디면서 눈물 흘리면서 얻었던 것 그거 미쳤다고 남한테 빼앗깁니까? 그 공로. 교회와서 엎드려서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그 기도를 못 잊어요. 그래서 어머니기도 못 잊어 하는 찬송가 있잖아요. 남의 어머니 아니라 우리 어머니기도. 내가 기도한 것 이 교회에서 땀 흘리고 일했던 것 잊지를 못합니다. 거기서 구원 못 된다 이 말입니다. 나의 명예와 나의 체면에서 나의 자존심에서 내가 벗어날 수가 없어요.

‘너’라는 것은 ‘나’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나’ 빼놓고 다 ‘너’에요. 하나님이든 예수든 남이든 이웃이든 가족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나’ 빼놓고 다 ‘너’에요. 완벽한 타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응했다” 이 말은 내가 ‘나’가 아니고 성경이 ‘나’가 되요. 성경 안에 계신 분이 ‘나’가 되고 그 ‘나’를 빛내기 위해서 주님의 복음의 광채를 빛내기 위해서 우리는 뭐가 된다? 우리는 ‘너’가 되는거에요. 우리는 설정해놓은 그 시나리오대로 그 군병들은 가위 바위 보 할 수밖에 없어요. 찢으면 안돼. 왜? 시편 22편에 이미 예언되었기 때문에. 꼼짝마라입니다.

말씀에서 우리는 한발자국도 못 벗어나요. 감기 걸려가지고 지금 기침해도 그것도 이미 짜여진 각본대로 기침하는거에요. 두 번 기침하고 한 번 쉬고 두번째하는 그것도 짜여진 각본대로 하는 겁니다. 발걸음도 마찬가지고요. 원스텝 투스텝 쉬고 올라가는 그것도 전부다 각본 짜여 진거에요. 그 각본의 결과는 뭐냐? 나는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가 최고다. 나만 최고다. 나만 최고다. 나의 소원은 감기에서 낫는 것.

북핵 핵문제가 아니라 지금 나의 감기 낫는게 최고 문제에요. 판콜A 하나 먹든지 두 개 먹든지 세 개를 먹든지. 당장 코앞에 있는 것. 그게 나한테 중요하지 북한 핵문제 뭐가 중요합니까? 최저임금 그거 조절하는게 중요하지 김정은 오는게 뭐가 중요해요 서민들에게. 안중요하잖아요. 만약에 어떤 아들이 있는데 아들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는 경험하고 싶다해서 나이지리아에 갔다. 나이지리아에 코이카 있어요. 군대 가기 싫어가지고 군에 가지 말고 해외봉사하는 그런거 있어요.

애가 코이카 가가지고 나이지리아에 봉사하러 가게되면 엄마는 나이지리아라는 그런 나라가 있는지도 몰라요. 남편은 알지. 월드컵 맨날 본선 나오니까 알지만. 여자는 모르잖아요. 그때부터는 나이지리아를 위해서 기도하는 겁니다. 왜? 그 안에 누가 있기 때문에. 자기 분신이 있잖아요. 이게 인간입니다. 계속 내가 어느 정도로 개판인 것을 주께서 발굴해줘요. 그게 우리네 분주하기 짝이 없는 우리네 인생입니다. 이상하게 바빠요. 우리는 나 살기 위해서 바쁜데 주님께서는 죄 발굴하기 바빠요. 끊임없이. 오늘도 52m 들어갔다.

그 발굴에 방법은 성경과 동반해서 병행해서 발굴합니다. 오늘 성경은 요한복음 19장이잖아요. 빌라도 그 빌라도 아니야. 너야. 새롭게 발굴합니다. 자기가 총독의 값을 한다고 건방 떨면서 내가 봐주면 내가 관용해주면 나한테 잘 보이면 너 풀려날건데. 우리는 이러한 얼마나 타인에게 얼마나 허세 떨었습니까? 허세 떤다는 것은 이미 어느 위치에 있다는 것을 자부하는거에요. 꼭 대리가 신입사원한테 허세 떨지요. 그런데 뒤에 과장 오면 끽소리도 못하잖아요.

모든 것은 주님의 통, 주님의 초법, 예수그리스도 위해서 세상의 모든 일은 부지런히 개미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이거는 이런 고백이 성령이 있어야 나올 고백입니다. 모든게 성경에 응하게 함이거든요. 이 말씀하고 마치겠습니다. ‘성경에 응한다’는 것은 ‘내 인생에 대해서 내가 책임질 필요 없다’는 겁니다. 대구 강의에서 그런 이야기 했습니다. 대구강의에서 죄를 회개하되 내가 지은 죄가 아니고 내가 속한 세상이 지은 죄지요.

세상이 지은 죄를 내가 책임질 수가 없어요. 앞으로 잘 하겠다고요? 세상 떠났습니까? 지금 죽었어요? 세상에 남겨있는 이상은 내가 처리하고 책임질 수 있는 죄는 없습니다. 다 그 이상이에요. 얼마나 이 자리에 오고 싶겠습니까. 그니까 권투해야돼요. 세상이 나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무슨 변수가 일어날지 누가 알겠습니까? 교인들 좀 왔다고요? 다음주일날 하나도 안 보여도 ‘성경에 응하게 함이라’입니다.

모이고 다음에 모입시다. 희망사항이에요. 희망사항입니다. 내가 죽을지 이렇게 팔릴지.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순간~~’내가 나올줄 알았어요.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순간 주께서 말씀에 응하기 위해서 말씀을 듣게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중요한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자기 주제파악하게 하옵소서. 주의 십자가 일이 세상의 한 모퉁이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고 지금 벌어지는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날 반복적인 사태인 것을 우리는 왜 미처 몰랐습니까? 죄에서 건져준 사람이기에 말씀만 우리 입에서 토해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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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6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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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