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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배제 181210강의-

20181210a 부산강의 : [시편]16(9편)-배제
(강의:이근호 목사)

시편 9편입니다. 1절에 보면,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사를 전하리이다”

주께서 일하신 것을 기사라 하지요. 시편 9편을 대하면서 먼저 생각할 것이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들 중에 오직 이스라엘에게만 계시했다는 사실입니다. 아주 특이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인간을 만든 건 맞아요. 맞는데 자신의 비밀과 자신의 계시는 이스라엘에게만 준 거예요.

그러면 이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에 대해서 굉장히 불편합니다. 자기만 아는 이야기를 남들에게 소개하려면 저쪽에선 안 받아주는 게 너무나 당연하거든요. 만약에 받아준다면 무슨 원리에 위배되느냐 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만 택했다는 그 원리에 위배되는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하나님께서 오직 이스라엘 나라를 제사장 나라로 만들었거든요. 출애굽기 19장에서. 그러면 구원은 누구 받는 거예요? 이스라엘만 받아요.

그러면 이스라엘 외에는 구원받으면 돼요, 안 돼요? 안 되는 겁니다. 그 원칙을 하나님께서 계속 유지시켜 나가는 겁니다. 우리는 이런 오해를 해요. 이스라엘을 택해서 다른 민족도 구원시킨다, 라는 이스라엘을 전쟁기계로 사용해서 그들에게 전파하게 되면 모든 인간에게 구원을 얻게 하려고 먼저 이스라엘에게 계시를 줬고 그들의 전도하게 되면 이방인들도 구원받는다, 라는 식으로 이해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이 방법이라면 처음부터 이스라엘만 선택했다는 사실을 무효화시켜야 돼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일하시는 이유는, 내 아들이거든요.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서 아버지 되고 싶어 해요. 하나님은 하나님이지 아버지가 아니거든요. 그런데 아버지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경우냐 하면, 아브라함언약 가운데서 아버지가 돼요.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버지잖아요. 하나님의 약속으로 주어진 자식이 발생돼야 아브라함은 아버지 값을 해요. 아브라함에 생산된 이삭에게 육적인 아버진 맞는데 하나님의 자기 표상, 그러니까 나는 택한 백성의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아들이 된다는 그 표상, 그 내용은 아브라함언약에서 이삭이 등장해야 되지 이삭이 빠지면 나타낼 수 없는 겁니다.

출애굽기 4장에서 이스라엘은 내 아들이라 했잖아요. 그러면 아들 된다는 것은 아버지 값을 하겠다는 거예요. 그러면 기존에 아버지가 누가 있어요? 권사님, 아버지 살아 계십니까? 아버지 계시니까 권사님이 태어났잖아요. 기존에 아버지가 있단 말이죠. 기존에 아버지란 인상, 이미지 다 있지요.

아버지의 이미지란 아버지가 있을 때 난 없었다는 게 이미지거든요. 아버지 있음에 자식이 생기는 겁니다. 아버지가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아들은 나중에 있는 거예요. 이게 아버지와 아들의 이미지 관계에요. 우리가 아버지를 생각하는 것은 먼저 계셔서 나를 만들어준 분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잖아요.

따라서 이 인간세계에서는 하나님은 없어요. 하나님이 아버지로 등장할 때만 하나님의 아들이 등장하는 겁니다. 그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언약관계라 하는 거예요. 주기도문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 하지요. 보통 교회 교인들이(신자라 할 수 없지만) 기도할 때 뭐라 합니까? 아버쥐~ 아들 값을 해야 아버지지. 아들 값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아버지에요.

기존에 집안에 같이 살던 아버지의 이미지를 그대로 하나님 세계에 덮어버린 거예요. 너무나 일방적입니다. 무턱대고 덮는 거예요. 보통 가정에서 아버지라 하면 아버지가 마음 넓어서 어지간한 것은 다 용납이 되고 용서가 되고 도와주잖아요. 그 이미지를 그대로 교회로 가져와서 하나님 아버지도 우리 아버지와 같을 것으로 생각해서 그냥 아버지라고 부른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이 아버지 티를 낼 때만 그 현장이 아들이 생기는 겁니다. 그냥 하나님은 아버지 아니에요. 누구한테만 아버지겠어요? 아들에게만 아버지인데 그 아들이라는 것이 언약이 없이는 하나님의 약속이 없이는 발생되지 않습니다. 언약은 창세전에 나와요. 창세전에 이미 확정됐습니다.

이야기를 다시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이스라엘에게만 줬고 이스라엘의 이름은 아들이에요. 그런데 이 말은 아들로서 구원의 범주는 확정돼버렸어요. 우리는 그렇게 생각 안 하고 모든 인간은 하나님(신)이 만들었으니까 알아서 구원하겠지. 그렇지 않습니다. 아들만 구원해요. 당신은 그걸 어떻게 아는가? 이스라엘에 준 계시에 의해 알아요. 그 계시가 뭔데? 언약이에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렇게 많이 만들어놨는가? 아들 된 자와 아들 아닌 자를 구분 짓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구분을 어떻게 하느냐? 언약으로 구분하지요. 언약 안에 있는 사람은 아들이고 언약 밖에 있는 사람은 아들이 아니죠. 그럼 아들이 아닌 자는 어떻게 되는가? 천국에서 약속에서 배제되잖아요. 이 땅에서 언약에서 배제되지요. 그 속성이 그대로 이 세상이 끝나도 똑같이 돼요. 천국에서 배제된 자 지옥 가요.

천국에서 배제됐다면 흔히 말하는 선교나 전도가 어떤 양상으로 전개돼야 됩니까? 언약 증거하고 방금 제가 이야기한대로 언약은 무슨 용도입니까? 배제하기 위한 용도에요. 전도 참 쉽지요. “너 아니야.” 이게 전도에요. “너 교회 오면 안 돼.” 이게 전도라니까요. 교회 오세요, 하는 게 전도가 아니고.

사도바울이 사도행전 마지막에서 뭐라고 고백하기를,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했죠. 사도행전 전체가 누가 봐도 선교하는 전도하는 책이잖아요. 전도의 진수가 마지막에 나옵니다. 네가 나한테 많이 들었잖아. 들었지만 무슨 용도로 들은 거예요? 깨닫지 못하는 용도로 들은 거예요.

왜 깨닫지 못하느냐 하면, 구약의 선지자, 문서를 남기는 선지를 문서선지자라 합니다. 문서선지자의 시초가 이사야거든요. 이사야 6장에 보면,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한다는 말이 나오지요. 이사야 선지자가 유대 나라, 주변 나라에 전도하면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스라엘에 너희들이 십분의 일이 남아도 그것마저 작살나버린다.

그리고 예레미야에도 그런 말씀 나와요. 너희들 중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의를 안다면 내가 이 도성을 멸망하지 않겠다. 이거는 소돔과 고모라에만 나오는(창세기 18장) 게 아니고 예레미야에도 나와요.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넒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렘5:1) 예레미야도 문서선지자거든요.

계시는 누구한테 줬다? 이스라엘. 계시의 내용은 언약이라 했지요. 언약으로 이스라엘은 아들이 됐지요. 아들이 될 경우에만 비로소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고 아버지가 되는 거예요. 아들이 발생될 때 아버지가 되는 거예요. 아들이 없으면 그냥 하나님이에요. 일반 신이에요. 아들과 아버지는 언약의 두 내용입니다. 창세전에 예정된 내용이 아버지와 아들이에요.

그러면 이스라엘을 통해서 전 세계로 복음을 전한다는 데 그런 취지는 없어요. 그런 내용을 이스라엘에게 준 적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뭐냐 하면, 아들을 더욱 더 아들답게 하는 그것이 목적 끝이에요. 그러면 언약을 선교한다, 전도하는 것은 구원받기 위해 전도하는 게 아니고 아들인 자와 아들 아닌 자를 구분 짓기 위해서 전도하는 거예요.

구분하는 방식은 딱 하나밖에 없어요. 오직 아들에게만 계시 주었다는 그 사실. 아들 아니라면 안 믿어져야 되고 못 알아들어야 마땅한 하나님의 일관된 조치가 된다는 겁니다. 세상은 아들중심, 언약중심이 아니고 자기중심이잖아요.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자기중심이란 말을 했지만 사실은 자기중심이 아니고 악마의 마음중심이에요.

악마의 지배를 벗어난 그런 인간은 없어요.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이 이미 악마의 마음을 접수한 순간부터 아담의 자식 모든 후손들은 계속해서 악마의 통치 하에 있습니다. 그걸 로마서 5장에서 죄가 왕 노릇한다는 거예요. 그 증거를 대라. 그 증거가 죽는 거잖아요.

목사님, 장기 둘 줄 알아요? 장기를 재미있게 두는데 사모님이 와서 이건 일도 안 하고 맨날 장기만 두나? 신경 바짝 쓰면서 장기를 두고 있는데 위에서 엎어버렸다. 그러면 장기 두었다는 사실을 없어졌지만 그래도 장기판과 알은 남아 있잖아요. 인생을 보세요. 인간이 한평생 신경 써서 살아왔는데 죽어버리면 남는 게 뭐가 있습니까?

바둑, 장기는 판이라도 남지 인간은 죽었다는 그 순간부터 이미 없어진 거예요. 다시 말해서 우리는 몽땅 없어지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없어질 걸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진솔한 이야기, 이거는 진지한 이야기고 당연한 이야기에요.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애써 거역하는 것이 더 부자연스러워요.

방금 이야기를 적으면, 살다 죽으면 안 산 것이 된다. 맞지요. 그리고 안 태어날 수 없는 거고 살지 않으면 죽음도 없고 죽게 되면 사는 것도 없어지고. 결국 남는 것은 죽음만 남지요. 이 죽음을 죽음답게 이야기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땅에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겁니다. 죽음을 이야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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