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나와 너 181204강의요한복음

강남-요한복음 19장 10절(나와 너)181204a-이근호 목사

요한복음 19장 10절부터 제가 읽겠습니다.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11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

예수님께서 빌라도와 만납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를 상대해 주시는 이유가 뭘까요? 오늘날 주님이 우리를 상대해 주는 것과 똑같은 취지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만날 때 빌라도는 예수님을 뭐라고 보느냐 하면은 빌라도 하고 예수님이 만납니다. 만날 필요도 없는데 만나요. 예수님을 싫어하는 사람은 유대인들이잖아요. 거기에 제 3자인 이방인인 여기 빌라도가 끼어들 하등의 이유가 없는데 빌라도가 끼어듭니다.

줄곧 예수님께서 공생애 가운데 누구한테 비난받고 누구한테 배척을 당합니까? 어떻게 이방인들이에요? 유대인들이죠. 그러면 이 문제를 유대인과 예수님 사이로 이렇게 마감이 되어야 되는데 거기에 이방인 빌라도가 여기에 끼어들었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이 빌라도는 그 사고방식이 뭐냐 하면은 세상 권세적입니다. 세상 권세적이니까 이거는 뭐 그냥 세속, 정치성 또는 정치력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대할 때에 메시아도 아닌 자가 왜 메시아로 자칭하느냐 때문에 화가 난겁니다. 메시아는 두 가지 기능이 있지요. 메시아는 하나는 구원자 기능이 있고 구원자로서 구원할 사람 빼놓고 나머지는 뭘 하느냐 하면 나머지는 심판자 역할을 하는겁니다. 이 구원자, 심판, 이 기능을 하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이 메시아를 유대인들이 고대한거에요.

그럼 유대인들이 고대할 때 그 메시아가 자신들에게는 심판주가 되겠습니까? 구원주가 되겠습니까? 구원자가 되겠지요. 자기는 구원자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본인이 구원될 수 있다는 그 확신 때문에 본인이 납득이 되고 이해가 되는 그런 구원자를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단 말이죠.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하는 것이 평소에 자기들이 하는 생각한 그 구원자에 부합되지 않는다는거에요. 일치되지 않는 겁니다.

구원자에 일치되지 않는다는 말은 곧 무엇이 일치되지 않는다는 말이냐 하면 심판주에게도 일치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갇혀있기 때문에. 당신은 우리의 구원자 될 수 없어요 라는 말이나 당신은 이방민족을 심판할 수 있는 자격자가 못 됩니다 라고 같이 이야기 할 수 있는 거에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구원자 심판자로 할 때에 세속, 정치성 또는 정치력으로 하는게 아니죠. 이들의 이런 판단을 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바로 ‘율법’이 되는 겁니다.

율법으로 구원자 심판주를 찾고 있었는데 자기 힘으로 예수님을 제거 못하니까 이 율법에다가 뭐를 가져갔느냐 하면은 세속 정치력을 결합을 시켰습니다. 자기들이 돌로 치면 안 될까요? 그 유대인들이 사도바울 돌로 치듯이 왜 이거는 예수님을 돌로 쳐서 자기 율법 있잖아요 율법에. 율법에 율법을 어긴 자는 돌로 치라면 돌로 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왜 예수님을 돌로 안 쳤을까요? 너무 귀찮은 코스를 왜 밟는가 이 말입니다.

오늘 뒤에 나옵니다만 자기들은 그만한 형편이 못 되고 있다는 거에요. 사람을 자기가 죽이고 싶지요. 누가 없으면? 빌라도 로마의 통치가 없으면 세속 정치성이 없으면 자기들끼리 자체라면 돌로 칠 수가 있지요. 그런데 만약에 돌로 치고 난 뒤에 자기는 누구한테 추궁 당하느냐 하면은 세속 정치권력에 추궁을 당합니다.

왜냐하면 로마의 통치하에 있기 때문에 완전히 로마법을 개무시했다는 평을 받아버리면 그들의 하는 조치가 로마법에 의해서 자기들 민족이 위태로울 수가 있어요. 그래서 결과는 동일한 결과를 얻되 이왕 그렇게 자기가 로마의 통치를 받을 것 같으면 로마 통치자의 그걸 매체로 해서 자기가 원하고자 하는 결과를 얻어내면 로마한테도 별 하자가 없는 것이 되고 로마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것도 되고 그 다음에 자기 소위의 목적도 이룰 수 있으니까 그런 식으로 몰아간겁니다. 예수님이 또 워낙 유명한 사람이니까 또 그렇게 했겠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빌라도를 만날 때는 그런 차원에서 만난게 아니에요. 예수님께서 빌라도를 만날 때는 오늘 읽었던 본문의 취지 때문에 그렇습니다. 11절 말씀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서 뭘 끄집어내느냐 하면은 네가 거기 11절에 보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지금 빌라도에게 무슨 권세가 없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네게 넘겨둘 권세가 있다? 없다? 권세가 없는거에요. 빌라도는 자기 뜻대로 나를 유대인에게 넘겨줄 권세는 없는거에요. 권세가 없는데 빌라도는 뭐라고 주장했느냐 하면은 나한테는 그 앞에 10절에 보면 나한테는 뭐가 있다? 권세가 있다는거에요. 권세가 있다. 나에게는 권세가 있다는 겁니다.

권세가 없는데 권세가 있다 했으니까 예수님께서 그 죄라는 것은 어디서 발생되느냐 하면은 바로 이 권세에서 발생되는거에요. 권세에서. 죄라는게. 개인적으로 도덕적으로 그게 죄가 아니고 권세에서 네가 소속감에서 오는거에요. 특정한 권세 자체가 죄가 된다면 거기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은 전부다 자동적으로 죄인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어느 바보가 그런 권세에 매여 있는걸 좋아하겠느냐 하는데 어느 바보가 아닙니다 이게 지금.

19장 15절에 보면 누가 한번 읽어 볼까요.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됐습니다.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다시 말해서 그런 권세를 개인적으로 자유를 누리면서 나는 어떤 권세도 메이지 않아. 나는 자유로워 라고 외치고 싶지만 이 사람들이 유대인들이나 빌라도가 권세를 없이 하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소속감에 있는 것을 도리어 안정적으로 원하고 있는 겁니다. 소속감 있는 것을.

그래서 이 군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군중이라는 개념이 달리 말하면 공동체가 되겠지요. 공동체, 군중. 이 군중이 뭐냐 하면은 뭐를 노리느냐 하면은 권세에요. 군중 자체가 권세지요. 이걸 저는 ‘초법’이라고 합니다. 법을 초월하는거예요. 어젠가 우리나라 로켓트 올라갔지요? 로켓트 쏘아 올리면 로켓트가 뭘 뚫고 갑니까? 대기를 뚫고 올라가지요. 대기라는 것을 초월하지요.

이 군중들의 속성들이 뭐냐 하면은 각자 제각기 각자 초법적인 속력을 갖고 있어요. 거기 구성인들이. 저와 여러분들 말하는 겁니다. 모든 인간들은 이상하게 법을 언급하고 뭐 세상을 언급하지만 솔직하게 따져서 이야기 하자면 초법적인 존재이고 싶어합니다. 그런 성향을 갖고 있어요. 초법적인 존재. 인간이 근원적으로 할 수 있는 마지막 외침은 뭐냐? 인간이 외칠 수 있는 가장 솔직하고 또 솔직보다 솔직 제곱 곱하기 솔직 가장 솔직한 그 이야기는 뭐냐 하면은 “저리 가”예요.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은 이거에요. 저리 가. 혼자 있고 싶다. 창세기 3장 이야기입니다. 혼자있고 싶은 거에요. 유치원에 가면 유치원 선생들 있지요. 애들을 잘 돌봅니다. 어린이집하고 유치원은 약간 급이 달라요. 유치원은 4년 나왔고 어린이집은 연수원 나왔거든. 학원 다녔거든요. 배우는게 달라요. 다른데. 그 애들은 배울 때 얼마나 철저하게 몬테소리부터 해서 얼마나 많이 배우느냐 하면은 애들을 천사처럼 다루는걸 배울거에요.

그런데 퇴근 시간 됐는데 애가 안가고 있다. 칭얼댄다. 뭐라고 합니까? 낮에 태도하고 다르죠. 저리 가. 빨리 너희 엄마한테 가. 귀찮아죽겠어. 연세 많은 부모한테 자식들이 효도한답시고 손녀 손자 데리고 옵니다. 반가워하지요. 보고싶었네 뭐 하지요. 저녁 설거지하고 이제 부모 마음은 뭐냐 하면 이거에요. 빨리 너희 집 가라. 올 때 반갑고 갈 때는 더 반갑잖아요. 곱배기로. 나도 밤에는 숨 좀 쉬자.

자식에 대해서 홀로 있는 시아버지나 시어머니 홀로 돌보는 것은 하지요. 그러나 부부 사이에 시아버지나 시어머니 이름으로 또는 장인 장모 이름으로 누가 끼어들게 되면 정말 내 인생 아닌거 같아요. 이거는 늘 긴장된 모습으로 지낸다는 것이 너무 견디기 힘든 겁니다. 언제까지 견뎌야 되는가? 돌아가실 때까지 견뎌야지요. 그러면 대책은 있어요. 뭐냐 하면 요양원 알아보는 겁니다. 핑계대고 대충 보내지요. 좋게 좋게 보내는 겁니다.

그러면 하는 것도 없이 효도 소리만 들으려하는 바깥에 일하는 남편은 “너 우리 어머니 모시기 그렇게 싫어?” 이렇게 나와요. 그리고 그 이야기 나오면서 곧 나오는 이야기가 뭐냐 하면은 이집 살 때 엄마가 얼마 보태줬냐? 대출 누구 이름으로 했냐 그 이야기 반드시 나옵니다. 형제들이 엄마 모신다는 조건하에 2억 대출 그냥 2억 대출 정도가 아니라 그냥 받았잖아. 2억값을 해야지. 1년 모시고 요양원 보내면 형제들이 돈 개워내라고 얼마나 닦달내겠느냐.

얼마나 손자 손녀 잘 보느냐 이렇게 남편들이 이제 뭣도 모르고 여자의 마음도 모르고 그렇게 하지요. 그러면 여자가 하는 말이 당신 말 다 맞는데 내가 숨을 못 쉬겠다 숨을 도대체. 사람 숨 좀 쉬자 숨 좀. 그럼 남편이 하는 이야기가 어머님이 너 사랑하고 너 어머니 좋아한다며 마음껏 숨 쉬어라. 공기 없냐? 하거든요. 공기 있다고 숨 쉬는게 아니에요.

이번에 아가 수련회를 준비하면서 제가 늘 생각하는 것은 천국은 여성의 세계다. 천국은 여성들만 사는 세계. 천국은. 오늘도 비슷한 이야기 나올거에요. 남성은 못갑니다. 한명도 못가요. 왜? 모두가 신부가 되기 때문에. 예수님의 신부가 되거든요. 여성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가는게 아니고 여성처럼 치인 사람, 당한 사람, 여성이란 이름으로 몹쓸 일을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 그래서 이거는 생물학적으로 남성 여성이 아니라 남성성 여성성, 천국은 여성성의 세계다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관심있는 것은 죄에요. 죄가 어떻게 이 세상에서 초법적으로 만들어지느냐에 주목하라는 겁니다. 그렇게 되게 되면 여기서 이제 강의 내용이 어려워지는 이유가 딴게 어려워지는게 아니고 빌라도 있지요. 빌라도하고 누구하고 만났다 했습니까? 예수님 만났지요. 거기서 죄를 끄집어낸다 하지요. 죄의 성질을. 죄의 초법적인 성질을 이야기할건데.

여기서 이것 자체는 쉬워 보이지만 이게 문제가 어려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나’의 위치가 어디 있느냐 하는 거에요. 나의 위치. 여기에 뭐 중계방송 한번 할까요? 우리는 여기에 따로 이렇게 관람석에 앉아서 이걸 생각할까요? 아니지요. 우리가 어딘가 섞여야 된다 이 말이죠. 우리가 섞이는 장소가 뭐냐 하면 군중이죠. 그럼 군중과 빌라도의 관계가 뭐냐 하면은 군중의 대변자가 빌라도에요. 우리의 군중들의 의사를 너는 대변만 하면 돼.

쉽게 말해서 군중들의 입장에서 빌라도는 시시하게 보는거에요. 네가 우리의 총독이나 총독자가 아니라 너보고 부탁하는 내가 사실은 초월적 존재라고 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빌라도에게 자꾸 강요하는거에요. 죽이라고. 예수님을 빨리 사형시키라고 요구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누굴 보고 죄라고 했습니까? 빌라도 보고 죄라고 이야기 했지요. 빌라도 보고. 그러면 예수님과 빌라도 둘을 축약해서 둘 사이에 왜 의사가 서로 의사가 교환이 안 맞게 되는가? 서로 의견 타진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뭐냐를 조사해봐야 되겠지요.

빌라도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자기의 피고 또는 죄인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빌라도는 영어로 ‘I’ 라고 한다면 예수님은 뭐가 되겠어요? ‘you’가 되겠지요. 빌라도가 나라면 예수님은 너가 되는 겁니다. 10절을 한번 봅시다. 10절을 보게 되면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그다음에 뭐라고 되어 있어요? 내가 뭐를 “놓을 권세가 있다.” 내가 그다음에 나와 너의 관계로 빌라도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나와 너의 관계로.

그런데 예수님은 빌라도 보고 죄가 크다고 했어요. 예수님은 뭐냐 하면은 예수님하고 빌라도는 뭐냐 하면은 ‘it’이 되요. ‘그것’이 되요. 인칭 대명사를 빠져 버립니다. 왜냐하면 인칭이라고 하는 것은 초법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초법이 되지 않은 상태가 무슨 상태냐 하면은 이 질서상태거든요. 인간의 질서는 인간 대 인간의 질서는 형식적으로나 언어로 되어 있고 언어를 응축시키면 뭐가 되느냐 하면 법이 되요.

예를 들어서 회사 직원이 대리가 부장 앞에서 이거 따옴 오렌지 참 맛있어요. 이렇게 하는 이거는 아부하는 거죠. 과장님 주신거 참 맛있어요. 이거는 아부하는 거에요. 법적인 지시가 아니에요. 그런데 부장이 들고 와서 대리 앞에서 아이고 쥬스 맛있는데 이 말은 뭐냐 또 사달라는 이야기입니다. 언어를 사용하는 그 지위, 그 위치가 거기서 새로운 법을 양상시킵니다. 법적 관계로서 법적 관계를 새롭게 재정립해나가지요.

시어머니가 전화해서 며느리보고 우리집 김치 잘됐다. 전화를 했어요. ‘아 어머니 김치 하셨는데 김치가 맛있게 되었구나.’ 이렇게 알아들으면 그 며느리 바보에요. 그런 뜻이 아니라니까요. 그런 뜻이 아니고 김치 가지러오라 이 말이에요. 너희들 두집 세집 너희들 형제 김치 다 해놨으니까 빨리 김장 하지말고 우리집 김치 가져가라 이 말이에요.

그러면 가져가면 되지. 가지러갈 때 그냥 가면 안되지요. 봉투에 돈 넣어서 간만에 가는데 눈치가 그렇게 없어 눈치가. 그런 기회 아니면 언제 며느리 보겠습니까? 어디 보고싶어서 보는게 아니에요. 나 여기 존재한다는 것을 각인시키기 위해서 한시도 잊지 말라는거에요. 너희들끼리 재미있게 하하호호 살지 말고 늙은 부모 이렇게 김장하면서 손 시려워가면서 기껏 하면서 김장하면 손 얼마나 시려운지 장갑 껴도 시려워.

이게 무슨 뜻이에요? 안방에 보일러 넣으라 이 말입니다. 안방에 보일러 넣어달라 이 말이지 그냥 와서 김치 달랑 먹지 말고 그거는 정말 철딱서니 없는 신세대 며느리 같으면 “어머니 김치 맛있어요.” 또 김치 말고 또 가져갈거 없는가 고대 유물같은거 없는가 또 찾아가지고 명품진품 나오는거 있잖아요. 부모꺼는 다 내꺼니까 무조건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참 친정갈 때 그러는데 시댁가서는 그러지 못하죠.

인간의 관계는 빌라도가 죄라고 언급을 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죄가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은 바로 모든 중심을 ‘나’로 보고 나머지 모든 인간을 ‘너’로 보는 이 구조가 죄의 구조입니다. 내가 너에게 꽃이라 했?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727건 중 10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2,502 강의 연출 190111 야고보서 최고관리자 19-01-12
2,501 강의 최종성 190111 베드로전서 최고관리자 19-01-12
2,500 강의 무산된 꿈 190108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9-01-08
2,499 강의 유튜브(264강, 265강) 식사 , 사귐 190108 - 최고관리자 19-01-08
2,498 강의 사무엘상 45강(하나님의 변동), 마태복음 107강(관계망) - 최고관리자 18-12-27
2,497 강의 [18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49 - 이웃의 역할 - 최고관리자 18-12-23
2,496 강의 순수 슬픔 181218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8-12-18
2,495 강의 유튜브(262강, 263강) 인생의 짐, 크리스마스 181218 - 최고관리자 18-12-18
2,494 강의 희생물 181214 베드로전서 최고관리자 18-12-15
2,493 강의 너 빠져 181214 야고보서 최고관리자 18-12-15
2,492 강의 배제 181210 - 최고관리자 18-12-10
2,491 강의 [18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48 - 사귐의 효과 - 최고관리자 18-12-10
2,490 강의 비-현실 181207 레위기 최고관리자 18-12-07
열람 ➜ 강의 나와 너 181204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8-12-04
2,488 강의 유튜브(260강, 261강), 아름다움 , 목사의 실수 181204 - 최고관리자 18-12-04
2,487 강의 사무엘상 44강(인간의 한계), 마태복음 106강(명백한 사실) - 최고관리자 18-11-27
2,486 강의 [18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47 - 복합인생 - 최고관리자 18-11-26
2,485 강의 십자가 반복 181120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8-11-21
2,484 강의 유튜브 (258강, 259강) 뚫림과 닫힘, 행함과 노동 181120 - 최고관리자 18-11-21
2,483 강의 [진리의 가격] - 최고관리자 18-11-15
2,482 강의 [18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46 - 이게 나야 - 최고관리자 18-11-12
2,481 강의 인간없음 181112 시편 최고관리자 18-11-12
2,480 강의 예언자 181109 베드로전서 최고관리자 18-11-10
2,479 강의 관통 181109 야고보서 최고관리자 18-11-10
2,478 강의 무능성 181106 - 최고관리자 18-11-06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