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반복 181120
강남-요한복음 19장 3절(십자가 반복)181120a-이근호 목사
요한복음 19장 3절부터 하겠습니다. 1절부터 보면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 했고 군병들이 가시면류관 엮어서 머리에 씌우고 자색옷을 입히고 이렇게 했지요. 이 빌라도 예수님한테 무슨 감정이 있습니까? 무슨 사적인 감정이 있어요? 감정이 없지요.
누구를 의식하느냐 하면은 빌라도가 총독이죠. 총독인데 총독의 통치 받는 그 지역이 민중들이 분란을 일으키기 때문에 책임이 자기의 중앙정부로터 로마의 중앙정부로부터 자기가 책임추궁을 당해요. 평화롭게 돼야 되거든요 평화롭게.
평화롭게 돼야 되는데 자유를 얻으려면요 평화를 포기해야 돼요. 그리고 평화를 얻으려면 자유를 포기해야 됩니다. 자유를 얻겠다하면 평화를 포기한다는 말은 곧 무슨 상태에 들어가느냐 하면 전쟁 투쟁 상태에 들어가는 거에요. 자유 또는 자유권을 얻으려면.
교회에서 교인이 자유를 표망한다면 그것은 교회 당국과 싸움 전쟁에 들어가야 됩니다. 싸워야 돼요. 그런데 평화를 얻는다. 조용한게 좋고 은혜로운게 좋지 이러면 뭘 포기해야 돼요? 자유를 야금야금 자유를 이걸 갉아먹게 되어 있어요. 자유의 여지를 꽉꽉 조이게 만든다니까요.
이것을 실험해보려면 결혼해보면 됩니다. 가정의 평화를 원한다면 남편은 자기의 자유를 포기해야 돼요. 남편하면 안되고 남성성을 가진 쪽이 포기해야 돼요. 남성성입니다. 여자 남자 규정 안 했어요. 남자 성격이 많은 쪽에 주도권이 있게 되면 가정의 한쪽은 자기의 자유권을 완전히 내팽개쳐야 됩니다.
그걸 일반화시키면 뭐냐 하면 ‘일반화’시키는거에요. 다 그렇게 일반화 시키게 되면 수입이 부부가 수입이 많은 쪽이 주도권을 쥐게 되어 있고 수입이 적은 쪽은 음메 기죽어하고 이렇게 살아야 가정이 다복합니다. 그런데 남자는 이상해. 열등의식 같은게 있어가지고 돈도 못 버는 주제에 무시하겠지 라는 자기 생각 때문에 오바하는 수가 있어요. 오바한다고. 그러면 가정 평화는 날아가 버립니다.
문제가 부부 문제 같으면 가정 평화 깨져도 괜찮아요. 문제는 여파가 자식의 어릴 때 트라우마까지 작용한다는 것. 제3자인 자식이 우리 당사자에 의해서 제3자에 불과한 자식이 그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게 된다 이 말이죠. 그런게 있어요. 가정은 뭐와 같으냐 하면 마치 비닐하우스 온실 같아야 하거든요. 모든 것을 용납하는 공간. 모든 것을 용납하는 공간.
저는 그것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타조알 속이라 이렇게 봅니다. 타조알이 두껍잖아요. 바깥에서 뭐 태풍 미세먼지 온다 하더라도 가정에 들어서면 동그랗게 타원형으로 동그랗게 되어가지고 모든 것을 커버할 수 있는 공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그걸 편히 안식이 보장되는 공간, 그게 가정입니다.
그게 가정인데 문제는 가정이 혼자 사는게 아니고 둘이 가정이 살기 때문에 내 뜻대로 내 원대로 되지를 않지요. 그게 이제 문제가 되는 겁니다. 이제 다 오셨으니까 본격적으로 해 봅시다.
자, 요한복음 19장인데 왜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님을 때렸느냐 하는 겁니다. 예수님을 안 때리면 자기가 맞기 때문에 그래요. 자기가 얻어맞습니다 정신적으로 권력적으로. 자기 권력에 손상이 가기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것 지키기 위해서 힘이 상대적으로 약한 희생물이 필요한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은 양쪽 다 유대인이나 헬라인 양쪽 다 희생물의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유대사회는 좀 약간 어렵게 난해하게 하겠습니다. 유대사회라 하는 것은 율법을 거론하는 사회거든요 율법을. 율법을 거론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모든 각자 각자가 율법의 지시에 따르면 된다고 본겁니다. 율법 구약 성경에 의하면.
자, 각자가 법에 따르게 되면 논리적으로 뭐가 필요 없느냐 하면은 통치자가 필요가 없어요. 통치자가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자기가 알아서 자기가 말씀대로 살면 되지 누가 건방지게 나한테 간섭해? 누가 건방지게.
가정에 애 컷다 머리 크고 키 컷다. 간섭 못하거든요. “엄마 내가 알아서 할게.” “네가 뭐 알아서 한다고!” “그러니까 엄마 말 안 듣는거야.” 이렇게 된단 말이죠. 법이 있는데 그 법대로 살면 되지 이제는 뭐 엄마도 자기보다 키가 작으니까 힘도 약하고.
통치자가 스스로 내 통치자 나를 관리하는 통치자라고 나서버리면 바로 뭐가 좋은 점이냐 하면 바로 간섭쟁이가 나한테 더는 필요가 없이 돼요. 그러한 본성을 사람은 자율 또는 자유라고 하는데 자유라고 이야기 하는데 그것 때문에 아담이 악마한테 유혹받아가지고 선악과를 없애버린겁니다. 무슨 따먹지 말라고?! 그 하나님의 간섭에서 탈출하는 겁니다. 독립하는 거죠. 독단적으로 내 인생 하겠다.
그러니까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대응은 간단합니다. 그러면 너는 인간다움이 없어 ‘인간다움’. 오늘 첫 번째로 나오는 중요한 키워드가 되겠지요. 인간다움. 인간다움이란게 과연 뭐냐? 인간다움이. 인간이 인간다움을 설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느냐 하는 겁니다 인간이.
인간이 인간다움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 논하고 인격에 대해서 논하고 평등에 대해서 논하고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인권을 갖고 있고 ‘천부 인권설’이라고 하는데 존 로크의 천부 인권설 거기에서 따와서 그걸 참고로 한게 바로 미국의 ‘독립 선언문’입니다. 독립 선언문 종이로 헌법 한 장 밖에 안돼요.
한 장 밖에 안 되는데 미국 시민이 거기에 2억 4천, 5천이 거기에 동의한다는게 희한하죠. 이상하죠. 참 이상하죠. 전부다 인간은 뭔가 공통적인 것이 흐르고 있다는 뜻이잖아요. 인간의 모든 권리는 인기와 품위와 영광은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해서 인간들이 그 신을 안 믿는 무신론자부터 시작해서 유시민같이 신을 안 믿는 자부터 시작해가지고 이슬람이고 뭐고 불교 모든 거기는 이의를 안 달겠다는 거에요.
무슨 말을 하는지 취지를 아시겠습니까? 무신론자가 무슨 뜻이에요? 신을 안 믿잖아요. 신을 안 믿는데 하나님이 부여한 이 ‘인권’은 누구도 훼손 못 한다는 이 하나님과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누구도 거기에 대해서는 싫다하지 않는다 이 말이에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신이 없다며?! 신이 없는데 ‘신마저 나를 후원해준다면 나는 더 신나지’ 라는 그런 의식은 어디서 발생된겁니까?
결국은 이것은 모든 것의 독립이 아니에요. 말을 제대로 해야 돼요. 모든 것을 자기 발 아래 통치하겠다는 겁니다. 신마저도. 나 하나 잘 되기 위해서 모든 것은 존재해야 나는 마땅하다고 그렇게 생각한다 이거는 자기 본심을 말로 표현하면 그렇게 되는거에요. 모든 것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잘했다고 박수치고 후원해주는 그것이 내가 갖고 있는 내 본질에 가장 합한 상황이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님께 사적인 악한 감정을 갖고 있는게 아닙니다. 언제 봤다고 그러겠어요. 때린 이유는 내가 예수를 때려줘야 이 빌라도가 예수를 때려줘야 나의 나됨, 나의 인간다움이 더 빛을 발하고 그 가치가 계속 유지가 된다는 겁니다. 이게 어떻게 본디오 빌라도에게만 일어날 일이에요?
아까 내가 ‘보편성’이라고 했지요. 모든 인간은 동일하다고요. 모든 인간에 그런 요소가 다 있는거에요. 그러면 예수 믿는다는게 뭐에요? 본디오 빌라도라는 껍질을 째고 거기서 튀어 나왔다는 이야기잖아요. 예수 믿는다는게.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다는게 그거잖아요. 나 본디오 빌라도 안 될래 그런 뜻이란 말이죠.
그게 인간의 힘으로 가당한 이야기 입니까? 그게 가능해요 그게? 누가 여러분 한번 무시해 볼까요? 기분 안 나쁜가? 기분 나쁘잖아요. 그건 본디오 빌라도잖아요 본디오 빌라도죠. 사람이 가만히 있다고 즐거운게 아니에요. 남을 미워하는 사람을 미운소리 해줘야 즐겁다니까요. 누가 김아무개가 걸려서 쏘아대야 그게 기분 좋아요. 남을 괴롭혀야 내가 즐겁다 이 말입니다. 그게 인간다움이에요.
인간다움이라고 하는 것은 뭔가 내가 의도적으로 내가 박살냄이 있기 때문에 나 이정도야 라는 것이 계속 지속된다는 그 감정이 그 감정위에 인간의 인간다움이라는 것을 정립이 된다 이 말이죠. 전에 제가 그런 이야기 했거든요. 교사가 학교에 있는 선생님이 365일 늘 같을 수가 없어요. 어떤 때는 첫째시간부터 기분 좋아 싱글벙글 할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첫시간 들어오면서부터 기분나빠가지고 애들을 막 조져놓는 그런 날도 있거든요.
부부싸움했을 때는 별로 기분 안 좋을 때는 초반부터 걸리기만 해라 이런 식이고 뭐 집안에 좋은 일 있고 이러면 그 다음부터는 공부 못해도 “수학 나와 풀어 못 풀어? 못 푸니까 학생이지.” 그냥 다 넘어가요.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어 다 좋아요. 사람은 니체가 그런 이야기 했지요. “사람은 기분따라 산다”. 그 고매한 진리가 뭐냐? 딱 이겁니다. 사람은 기분따라 살아요.
이게 니체 전에 누가 이야기 했느냐 하면은 스피노자가 이야기 했어요 스피노자. 스피노자의 윤리라는 것은 뭐냐 하면은 “기분 좋은 일하면 선 되고 기분 나쁜 일하면 악 된다” 이게 스피노자 윤리입니다. 그리고 스피노자가 이런 이야기 하면서 사람들에게 도전하고 시비 걸지요. 내 말이 틀렸거든 나와봐라. 내 말이 틀렸거든 나와봐라.
하나님이고 뭐고 성경 그런 이야기 하지마 그건 너하고 상관없는 이야기 하지 말고 실제로 이것 제끼고 저것 벗어놓고 딱 놓고 인간 그 자체만 놓고 보자 이 말이죠. 아무리 착한 일도 억지로하면 기분 나쁘죠. 그러면 그거는 선이 아니죠. 그런데 스피노자가 뭘 놓쳤느냐 하면은 가장 인간이 기분좋을 때가 뭐냐를 놓친거에요. 가장 인간이 좋을 때가 뭡니까? 내 원수가 내 눈 앞에서 망하는 것을 내가 목격할 때 가장 기분 좋아요.
여러분들 솔로몬 왕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기도에 응답했지요. 응답하면서 하나님께서 안 해도 되는 말씀을 하셨어요. 뭐라고 했냐 하면은 네가 기도할 때 남들처럼 부자 되거나 잘 들어야돼요. 오늘날 한국교회 기도하고 비교해보세요. 부자 되거나 잘 살거나 네 원수가 망하는 것을 기도하지 아니하고, 기도하지 아니하고 라고 했어요. “기도하지 아니하고”.
그러면 여러분들이 교회갔을 때 이 세가지 다 빼고 합시다. 빼고 한번 기도해보죠. 기도할게 아무것도 없어요. 기도할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내 자식 수능 잘 치고 전부 다 나 잘 되는 거잖아요. 없어요. 그러면 솔로몬의 기도의 응답이 주님한테 합했다면 자기는 그냥 빈 파이프 그냥 통로로만 써주시옵소서 통로로만. 위에서 물을 보내면 저수지 위에 쪽에서 아래쪽으로 보낼 때 무슨 파이프가 있어야 될게 아닙니까. 물고있지요. 그걸로만 사용해 달라는 거에요.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오류없이 누락없이 왜곡없이 탈없이 그냥 백성들에게 그대로 내가 통치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직접 통치해 달라고 이렇게 한거에요. 이거는 뭘 의미하느냐 하면은 자기 자신을 비우는 겁니다. 수면내시경할 때 다 물도 안마시고 아침식사도 안 해요 다 비우듯이. 자기 위를 다 비우듯이 자기 인생을 다 비우는거에요.
다 비우게 되면 뭐도 비워야 되느냐 하면은 바로 평화도 없애야 되고 특히 뭐도 포기해야 되요. 나의 자율과 나의 자유도 포기해야 되요. 자기를 부인하니까 자기를 부인하는게 말만 부인하면 안 되잖아요. 뭐를 포기하는거에요. 나의 자유를 포기하옵소서 이거잖아요. 나의 자유를 포기하옵소서. “주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이걸 인정하는 거에요.
마태복음 8장에 백부장이 뭐라고 했습니까?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나이다”. 예수님이 놀래가지고 세상에 이만한 믿음 못 봤다고 했지요? 제가 이런 성경 이야기를 볼 때 그냥 보지 마시고 나의 본성 빌라도 있잖아요 아까 빌라도. 나의 본성을 가지고 그 말씀과 대면해 보시라 이 말입니다. 자기 자신을 훌륭하다고 여기지 말고.
말씀만 하옵소서 뭐든지 하겠습니다 이렇게 나오지 말고. 나의 본성이 뭔가를 분명히 알고 말씀 한번 보라 이 말이죠. 과연 내가 정말 내가 기적의 사람인지 아니면 흉내 내는 사람인지 한번 보라 이 말이죠. 내가 정말 기적 받았는지. 이건 내가 생각한 내가 아니야 라고 하든지 아니면 이건 원래 내가 기대했던 기획했던 내가 원래 의도했던 그래 그 인간 맞아 라고 나오던지.
여러분 생각하기에 그거야 기적이죠 하지요. 그러면 그게 기적이라면 일억오천 날려도 입 다물어야 되요. 일억오천 날려도 입 다물어야 된다고요. 왜? 그거는 그 기적에 비하면 이거는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푼돈이지 돈 10원 잃어버린거에요. 돈 10원 잃어버렸다고 그렇게 울고불고 달려들면 안 되잖아요.
진짜 기적이라면 제 말은 기적을 따내기 위해서 애쓴거 말고 기적은 저기 있는데 아직은 미흡하니까 아직은 결핍되어 있으니까 마저 챙기자 이거 말고. 그거는 시도하는 거고요. 어떤 현자가 이런 소리 현자라 하는 것은 지혜로운 자, 현자가 이런 인생의 결론을 내렸어요. 뭐냐 하면은 그래도 미움보다는 사랑이 낫고 비록 불안정하지만 인생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 낫다라고 어떤 현자가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세네카 스토아 에피쿠로스 학파에 있는 그런 유명한 요새말로는 인생을 단순하게 살아서 행복에 이르는 길 그런거 하는 사람 있어요 로마에. 로마에 있는 변호사입니다. AD 1세기경인가 그 사람이에요. 정치와 관련되어서 일찍 죽어 별로 끝이 분명치 않은 사람인데. 어떤 현자가 그렇게 이야기한다고 하는데 내가 봤을 때 현자가 아니고 어느 환자가 이야기했어요.
도인이거든요 도인. 도인의 특징이 있어요. 자기 때문에 피해보는 사람이 생각이 안 난대요. 이게 도인들의 특징이에요. 자기 때문에 피해 보는 사람을 생각 못해요. 빌라도가 빌라도 답게 되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희생물 됐다는 것을 빌라도는 도저히 생각을 못합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물으면서 자기는 진리를 자기 코 앞에서 진리를 밟고 있어요. 진리를 채찍질 진리 이리와! 진리를 줘패고 있어요. 진리를 죽으라고.
빌라도가 그냥 채찍으로 끝내려고 했어요 이 사태를. 봐 나 너희들 편이잖아 너희들 내 말 들어. 난 네가 싫어하는 예수를 내가 이렇게 팼잖아. 이정도 신용 보여줬으면 우리 이선에서 정치적 협상 보자 이렇게 하는데 그 뒤에 19장 쭉 보면 유대인들이 발악을 해 미쳤어 이 인간들이. 기어이 죽여달라는거에요 기어이. 기어이 죽여달라는거에요.
빌라도가 네가 죽여라 하니까 우리는 죽일 권한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빌라도와 이 유대인 사이의 대화는요 과연 죽일 죄가 있느냐 그걸 왔다갔다 하는게 아닙니다. 이미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죽이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당신도 여기에 합세해라. 그렇지 않으면 우린 당신 중앙정보부에 고발하겠다 이렇게 나온겁니다.
빌라도가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야 이것들 미쳤지. 고집도 이런 고집이 있느냐. 빌라도가 답답해서 물었어요. 도대체 그렇게 너희들이 못 죽여서 환장한 이 인간이 그래 너희들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느냐 라고 하니까 유대인들이 그런건 묻지 말고 그런건 묻지 말래요. 그건 네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고 결정은 우리가 결정하고 너는 그냥 싸인만 죽이라는 싸인만 하라는거에요.
너무 이건 터무니없는 주장이죠 논리죠. 그렇게 논리 주장하면서 유대인들이. 오늘 우리가 본문을 보면서 그 이유를 밝혀내야 돼요. 십자가는 인간의 한계를 만들어요 십자가는 인간의 한계를. 인간이 행동은 자기의 본질을 그대로 노출하는데 그 본질이 어떤 제한된 영역 안에서만 그렇게 멈추고 있어요. 뭐가 안 되느냐 하면은 이게 안돼요 이게. 초월이 안돼요 초월이.
어떤 대화를 한다든지 대화도 행동이니까 대화를 한다든지 행위를 할 때에 초월의 요소를 못 보이면서 인간은 행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은 인간에서 인간으로 말미암아 인간으로 나아가거든요. 그러니까 어떤걸 해도 인간이 할 수 있는 것,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만 계속 내뱉고 있고 행동하게 되어있어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인간에게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어떤 의미에서 오늘 강의에 가장 중요한 건데요. 제일 중요한데 해봅시다. 예수님의 부활을 부활에서 인식이 두 가지 인식이 있어요. 하나는 인간적인 인식이 있고 두번째는 성령의 인식이 있는데 인간적인 인식에서는 뭐냐 하면은 죽었다가 깨어났다는 겁니다. 죽었다가 깨어난거에요. 죽었다가 깨어났으니까 죽었을 때 몸하고 깨어났을 때 몸하고 어떤 몸이에요? 동일한 몸이겠죠? 왜? 죽었다가 깨어났기 때문에.
그런데 성령 입장에서는 죽었다가 다시 산거에요. 다시 산거 맞지요? 깨어난게 아니잖아. 그렇죠? 갑자기 반말해서 미안합니다. 깨어난게 아니고 다시 살아났잖아요 다시. 다시 살아나가지고 누구도 못 알아봐요. 제자들도 못 알아봐요. 그 몸을 못 알아본다니까요. 못 알아보고 그리고 만지려니까 만지지말라는 거에요. 왜 이유가 뭐냐 하면 몸이 다르다는거에요 몸이. 무슨 몸하고? 너희들 몸하고 내 몸이 다르다는 거에요.
이거는 뭐냐 하면은 단순히 몸과 몸으로 이어지는게 아니고 이쪽 인간에 속한 인간의 몸에 속한 이 몸의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이전한겁니다. 이동한거에요. 그러니까 베드로도 제자도 못 따라오는 거에요. 길이 어딥니까? 길을 모르지요. 그냥 지평선 이동 같으면 가지요. 강남에서 잠실로 이거는 언제든 따라갑니다. 지금 도마가 물었어요. 지금 어디로 갑니까 묻는 것은 지금 잠실로 갑니까? 어디 수서로 갑니까? 그거 묻는거에요. 잠실 수서 같으면 왜 못갑니까 딱 붙어가지고 팔짱끼고 가면 가지요.
그런데 주님께서 가는 곳은 인간이 없는 영역이에요. 인간이 없는 영역. 인간이 예상을 못하는 영역이에요. 왜 예상을 못하느냐 하면은 인간은 한계에 갇혀 있거든요. 주님께서 인간이 있으면 주님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휘발유통 요새 휘발유가 좀 싸다고 하니까 우리 동네는 1459원. 휘발유통 하나 붓고 인간이 있잖아요. 인간 영역에다가 여기에 골을 파요. 파가지고 여기에 휘발유를 뿌려 놓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불 질러버려요. 주님께서.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인간은 이 불 밖으로 못나오죠? 여기 안에 갇히게 되지요. 이게 바로 창세기 3장에 나오는 ‘두루 도는 화염검’ 아닙니까. 이게 십자가의 의미 속에 이게 담겨있는거에요. 창세기 전체 다 담겨있는거에요. 예수님의 부활의 몸은 그 안에 쪼개보면 뭐가 들어있느냐? 창세기부터 예수님 죽을 때 까지 모든 성경의 내용이 그 안에 다 들어 있는 몸이에요. 말씀으로 꽉꽉 채워진 몸이라고요. 속이 찬 만두.
말씀으로 꽉꽉 채워진 그 몸이 그 몸이에요. 그런데 인간의 몸은 어떤 몸이냐 하면 이미 선악과로 인하여 말씀에서 끊어져서 악마의 손에 맡겨진 몸이 되는 겁니다. 인간의 몸은 어떤 행동을 해도 그게 말씀에 위배되는 정도가 아니고 말씀을 대적하고 말씀을 곡해하고 말씀에 도전하는 그 힘이 작용하는 그 사고와 행위와 언어가 인간의 몸에서 다 나옵니다.
특히 이번 수련회 아가 하잖아요. 아가의 인간의 아가 준비하면서 제가 알게 된 것은 하나님은 인간의 사랑을 받지 않는다는 거에요. 인간의 사랑을 받지 않아요. 뭐 때문에 내가 ‘거짓말’이라는 조항조의 가사를 뒤에다가 교재에다가 갖다 붙였겠어요. 사랑한다는 말도 거짓말, 돌아온다는 말도 거짓말.
인간의 사랑을 받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게 오늘 십자가와 관련되어 있어요. 그것은 바로 인간 자기 내부에 ‘우상’이 들어 있기 때문에 우상이. 내가 누굴 사랑하잖아요. 그 전에 이야기했던 다말 있지요? 암논 배다른 씨가 다른 이복형제간의 이복오빠가 누이동생 다말을 너무 사랑했지요? 아가에 보면 여러분 읽어 봤지요? 아가 짧으니까 읽어 보게 되면 사랑이 뭐가 됐다? 사랑이 병이 됐다 라고 나와요. 얼마나 사랑하면 병이 되어 아파 누울 정도 되겠어요. 암논도 그랬던 모양이라.
그래서 다말을 사랑했는데 둘이 옛날에는 근친결혼이 많이 때문에 좋게 행복하게 살면 되는데 여러분 아시다시피 동침을 하고 난 뒤에 그다음에 어떻게 됐습니까? 성경에 이렇게 되어 있잖아요. 사랑한 것보다 더욱더 그걸 갑자기 미워진거에요. 맥주병 따니까 거품 없는 콜라병 그렇게 느껴지던가요? 왜 그렇게 됐지요? 에게~이거였었어? 그런 뜻인가요?
암논이죠. 암논은 다말을 사랑한게 아니에요. 뭘 사랑했느냐 하면 다말을 통한 존재하지 않는 여성성을 여기서 끄집어낸겁니다. 존재하지 않는 여성성을 사랑하게 된거에요. 그래서 자기는 다말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지요. 하고 나니까 자기가 사랑하는 그리워하는 그 여성이 이 여성이 아니였어. 아니였던거에요.
그럼 뭘 사랑한거에요? 그게 바로 우상이에요. 그게 우상이라니까. 인간은 자기를 빼닮은 사람을 사랑해요.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사랑한다고요. 악마죠 악마. 여자로 나타난 악마죠. 암논이 안 죽었으니 말이지 아마 압살롬 오빠가 안 말렸으면 죽일수도 있는 문제에요. 만약에 누이동생이 이렇게 해놓고 내 인생 책임져야지 붙들었으면 왜 질척대냐 할거에요. 왜 이렇게 질척대느냐 할거에요.
그러면 사랑은 어디 있느냐? 사랑은 내가 갖고 싶은 것과 그 사이에 사랑이 있어요. 항상 실체는 없어요. 없고 자신의 욕망의 미흡함과 결핍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사랑의 이름으로 그걸 대신 때우는 겁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엄마가 자식보고 뭐라고 합니까? 자식 이름도 안 불러요. 학교 갔다 오면 뭐라고 합니까? 아들! 이런다고요. 아들아 아 자 붙이지도 않아요. 아들! 자긴 딴에 친근하게 대화한다고. 자식이 엄마를 이용하는 줄도 모르고. 엄마는 좋아가지고 아들! 갔다 왔어? 아들 맛있는거 해줄까? 그 엄마는 지금 아들이 우상이라니까요.
아들 사랑하는게 아니에요. 자기가 원하는 아들 되주기를 간곡하게 아들에게 지금 부탁하고 있는 겁니다. 내가 원하는 자식이 이 자식인데 너 그 레벨 그 수준 좀 맞춰줘. 이거 요구하고 있는거에요. 내가 이렇게 겸손하게 비노니. 인간의 한계라고 하는 것은 바로 믿을 수 없는 같은 인간을 붙들고 사는게 한계 아닙니까. 인간이 인간을 붙들고 살아가는거에요.
그런데 우상의 특징이 뭐냐 하면은 교류가 없어요. 이게 특징이에요. 우상의 특징이. 유대인들이 예수를 왜 죽였느냐 하면은 자기가 원하는 메시아가 아니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메시아가 아니에요. 결핍이죠. 아~~나는 당신같은 메시아 원한적 없다. 어디서 이 가짜가!! 이렇게 되거든요.
그런데 빌라도의 우상은 자기가 통치하는 유대 나라가 자기의 우상이 되지요. 자기의 원하는 데로 제대로 평안이 되기를. 로마 평화를 ‘팍스 로마나’라고 이야기 하는데 로마 특유의 평화라고 하는데 그걸 두자로 하면 이거에요. 두자로 하면 ‘황폐’, 세자로 하면 ‘황폐함’. 다 작살내는 겁니다. 로마의 평화는 완전히 싸그리 조지는거에요. 이게 평화에요.
동양에 훈노족이라고 하는게 있지요. 훈노족 있고 그게 나중에 뭐냐 훈족이 되고 그게 나라 세운게 헝가리라는 나라인데 기마민족 유목민족 쳐들어 와가지고 유럽의 반달족인가 이런거 같이 덩달아 쫓겨 가가지고 로마제국이 밑에 압박해가지고 로마제국이 망하거든요. 로마제국이 망할 때 그렇게 말했어요. 밀리고 밀리고 밀려서 떠밀려 온거에요. 마치 중국 미국 무역전쟁에 시달리는 것처럼.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에 있어서 그 모든 사람들에 있어서 자신들의 그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결핍에서부터 인간은 행동에 나서게 된다는 거에요. 어떤 사람이 이렇게 대구 강의 때 그런 이야기 했습니다. 어떤 명랑하고 쾌활하게 보이잖아요. 분명히 마음의 상처 있습니다. 지금 남 앞에 지금 연극하고있는 거에요. 너무 과도하게 친절하고 과도하게 명랑하고 과도하게 웃는 사람 주의해야 됩니다. 주여~~이런 사람 있잖아요. 남의 지갑을 주워도 주여! 엎어져도 주여! 아주 자기가 스스로 훈련이 잘되어 있어요. 자기 우상에.
인간은 우상 외에는 믿을 마음이 없습니다. 오직 우상이 우상다울 때 가장 인간은 믿게 되요. 자기 결핍 이미 자기가 결핍이 있다는걸 자기가 만들고 신은 그 결핍만 채워주면 되니까. 결핍은 내가 만든 우상이거든요. 내가 만든 우상은 우상적인 방식에 와서야 내가 채울 수 있는 겁니다. 인간은 어떤 상상에 그 우상을 만들고 거기에 합체되지 않은 빈칸은 인간은 우상다운 방법을 통해서 자꾸 접근해가죠. 어프로치라고 접근해가죠 접근.
모든 학문도 과학도 어프로치라고 해요. 진리라 하는 것은 가까이 더 가까이 근접하게 가까이 더 가까이. 그게 이제 미분 적분인데 계속해서 가까이 100%는 아니지만 99.9999% 순도를 높이는거에요 계속해서. 순도 높이는건 좋은데 순도 높이다 늙어 죽거든요. 그럼 죽으면 어디 가는데 그건 생각도 못했지. 일단 자기가 살았다 치고 시작하니까 이게 우상이 되는 겁니다.
이사야 44장에 보면 우상에 대해 나와 있어요. 44장 9절에 보면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이 이야기를 누가 하느냐 하면은 여호와 하나님이 하셔요 이사야를 통해서. 그럼 이사야 없다고 칩시다. 이사야 없으면 누가 없겠어요? 이 세상에 누구 말이 안 들리겠습니까? 선지자가 없으니까. 하나님 없지요.
그러면 하나님 없으면 뭐도 없어져요? 우상이라는 용어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니까요. 그냥 신이죠. 그냥 신이에요. 여호와 이름만 외우면 될 거 같으면 우리는 이름만 외우면 돼요. 여호와 여호와 여호와 믿습니다. 여화께서 이름만 하시는 분이 아니고 이름에 그 여호와에 이름에 품고 있는 내용이 이스라엘 역사라는 실제 역사를 통해서 계속해서 변화를 주고 사건을 일으켰잖아요.
그렇다면 주의 이름을 믿는다는 말은 뭡니까? 이제는 주님이 갖고 있는 고유한 그 사건, 그 사건이 나를 덮친다는 이야기예요. 내 인생은 조져놨다. 그 와중에 뭐가 등장해야 하느냐 나의 원하고 내가 믿고자 했던 신은 실제로 나의 인생을 이끄시고 만들어가시는 그 하나님의 손 앞에서는 하나님의 사건 앞에서는 그게 뭐가 된다? 우상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거에요. 내가 얻고자 하는 인생 자체가 이거는 우상이라는 나라를 우상에서 만들어 낸 시나리오고 하나의 가상 소설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초월적인 영적인 내용이 안 나오거든 그 사람 만날 이유도 없고 전화할 필요도 없어요. 왜? 우상이 우상끼리 만나서 뭐하는데? 카페 커피값만 날라가지 뭐 뭐가 있어요. 다시 이야기 합니다. 부활이라는 몸은 말씀이 합류되고 그게 완성된 그 결실물 또는 완성품이 바로 부활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부활되려면 예수 이름 믿으면 안 되고 예수님에게 일어난 그 말씀의 사건이 공히 똑같이 우리 몸을 상대로 이게 벌어져야 됩니다. 몸이 벌어지게 되면 우리가 예상한 부활 예상한 천국이 아닌 완전히 다른 천국과 다른 부활의 몸이 말씀에 의해서 이게 구성되게 되어있어요. 완전히 다른거에요.
우리의 예상이 되면 우상이 되고 우상이 아니라면 우리의 예상과 빗나가는 길로 우리의 인생은 인도 받아야 돼요. 내가 예상하지 않는 길로. 내가 나의 원대로 되지 마옵시고 하는 그 길로 가야 돼요 정말. 내가 뜻대로 안 되는거에요. 그럼 내 뜻대로 안 될 때 그냥 반발할까요? 곱게 가만히 순한 양처럼 가만 있을까요? 반발할까요? 반발하지요. 그러니까 날마다 죽여버리는 거에요 우리를. 살려놓으면 방해하니까 죽여버리는 겁니다. 우리를 죽은 자로 간주하는 것 날마다 죽는다 했잖아요. 날마다 우리를 죽은 자로 간주하는 거에요.
그럼 죽은 자로 간주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이 이렇게 살아 있을 때 그 전체 덩어리가 뭐 되냐? 그 전체 덩어리가 감사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고마움의 대상이 돼죠. 그래서 여기 하나의 공식 하나 만들어냅니다. 사람을 만날 때 감사할 줄 아는 사람 만나세요. 어떤 일을 해도 우리의 만남은 우연히 아니고 주의 뜻이다 라는 식으로 만나는거. 주님의 뜻이다.
물론 그런 식으로 멘트를 날려주는 사람은 전세계 수억 명은 될거에요. 이슬람하는 사람도 다 용어가 있어요. 알라 뜻이요 하고 다 사기쳐놓고 이것도 신의 뜻이라고. 뭐 압살라 기억이 안 난다. 상투적으로 내뱉는 아멘 비슷한 말 있어요. 갑자기 잊어버렸는데 쉬는 시간에 찾아봐야 되겠다. 그런 이야기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주님께 일어난 사건이라고 했지요? 하나님의 존재가 덧입혀지는 것은 이것은 우상이에요. 주님이 일어난 사건 무슨 사건입니까? 오늘 본문에 있잖아요. 십자가 사건. 십자가 사건에서 예수님 단독으로 일으킨 사건이 아닙니다.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려면 여기저기 도와줘야 돼요. 빌라도가 도와주고 그리고 누가 도와주고? 그리고 유대인들이 도와주고. 누구는 또 도와줘요. 제자들도 도와주는데 어떻게 도와줘요? 도망치는 비겁함 자체를 보여주면서 도와줘야 돼요.
그러니까 우리는 어떤 요소냐 하면 빌라도 요소 도망치는 비겁한 제자 요소 그리고 자기는 누구한테 간섭받을 필요없고 자기 잘났다고 자기는 택한 백성이라고 우기는 이 모든 요소, 이 모든 요소가 우리 자신임을 들추어내는 식으로 사건이 우리에게 덮치는 겁니다. 왜? 우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우리 구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십자가 사건 그 자체의 반복이 중요하니까.
십자가 사건을 일으킨다 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식으로 기여한 바는 없고 도리어 우리 자신도 모르는 우리 우상성이 그대로 노출되었다는 것. 발각 당했다는 사건으로 현장화 돼요. 그렇게 된다고.
오늘 본문을 한번 봅시다. 3절을 한번 봅시다. “앞에서 와서 자색옷을 입히고 머리에 씌우고” 자색옷을 입히고 이거 지금 예수님이 요구한겁니까? 아니죠. 그들이 그렇게 했지요. 그럼 제가 여러분들한테 물어봅니다. 왜 이 사람들이 자색옷을 입히고 유대인 시키고 유대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이런 모욕적인 것을 하고 속박을 왜 때립니까 하고 물으면 그 답이 19장에 보면 가득 나와 있어요.
이렇게 된 것은 28절 봅시다.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그 다음에 뭐라고 되어 있어요?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니까 어떤 인간도 성경에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말씀의 지배에서 예언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어떤 것도. 그리고 그 어떤 말씀도 29절에 보면 유명한 말씀 나오죠.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심이라” 되어 있고 30절에 보면 유명한 말씀 나오는데 저한테만 유명한거에요 저한테만.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그 다음에 뭐라고 나옵니까? “다 이루었다”.
주님의 관심사가 어디에 꽂혀 있습니까? 관심사가? 아버지와 예수님 사이에 말씀 있잖아요. 그 말씀대로 ‘다 이룸’이 아들의 본분이고 해야 될 업무였던거에요. 거기에 인간들은 보조로 말려든거에요. 그 소용돌이에. 모든 말씀은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함이라고 요한복음 5장에 그대로 맞아요.
자, 그러면 여러분들이 여기에 동의하신다면 일단은 성령에 의해서 나쁜 의미 좋은 의미, 성령에 의해서 여러분들을 ‘미친 사람’으로 보겠습니다. 성령에 의해서. 악령이 아니고. 악령에 미친 사람은 바깥에 많이 돌아다니니까. 아이들 여기 학원에 많이 다니잖아요. 여기 악령이 얼마나 많이 돌아다닙니까. 여러분 일단 성령에 의해서 미친 사람으로 보겠습니다. 그리고 제 논리에 뭔가 문제 있거든 여러분 문제 있다고 이야기 하세요.
여러분 성령에 의하게 되면 여러분 뭐가 되느냐 하면 일종의 마법사가 되요. 마법사는 누구하고 싸우냐하면 인간계와 싸웁니다 인간계. 해리포터. 마법사가 인간계와 싸웁니다. 그런데 인간계가 마법사를 뭐하냐 하면 핍박을 해요. 지금 성경 이야기가 갑자기 쉬워졌죠? 그런데 나는 마법사 되기 싫어. 그런데 마법사 된 어떤 영이 우리 속에 들어오게 되면 우리는 결국은 이것이 기생충처럼 우리 속에 들어오게 되면 이게 자생이 돼서 결국 우리를 죽음에 넘깁니다. 우리 자신을.
이런 이야기를 인간계는 하나도 몰라요. 무슨 말인지 몰라요. 그래서 제가 성령 미쳤다고 하잖아요. 어떤 사람은 저보고 계룡산 도사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김영한 이라고 숭실대 교수하다가 지금은 은퇴했는데. 성경에서는 주님이 마법사로 오신거에요. 마법사로 와가지고 인간계를 박살내려고 하는 겁니다. 멸망시키려고.
그걸 아는 인간계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 인간의 가치와 의미를 지키기 위해서 단합해요. 단합해서 그때는 적이 없어요 서로가 하나가 되어서 이 재수 없는 마법사, 인간을 박살내려는 이 불의한 마법사에 대해서 강력하게 저항해서 결국 마법사를 죽음에 이르게 해버려요. 죽음으로 쫓아내버려요.
죽음으로 쫓아내니까 이 마법계가 일단은 물러가자 해서 일단은 물러가놓고 그 다음에 자기들끼리 세력화해가지고 자기들끼리 어떤 최초의 마법사가 되는 예수님의 그 정신과 영이 그걸 이들에게 뭘 하느냐 하면 이걸 배당을 해요. 분배를 해줘요. 분배를 해주니까 원래 인간계에 속한 인간들인데 이게 뭐가 되느냐 하면 기억이 납니다. 뭐가 기억이 나느냐 하면 예수님의 죽으심이 기억이 나버린거에요. 예수님의 십자가가 기억이 나는 겁니다.
기억나서 적은 것이 뭐냐? 요한복음이에요. 마태복음 누가복음.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결정해야 되요. 여러분들 인간계에 속할겁니까? 마법사 될렵니까? 이런 이야기 하고 있는거에요 지금. 이 성경 자체가. 그냥 교양 쌓기 위해서 도 닦는 식으로 보고 있는게 아니에요 지금. 교양 쌓기 위해서 보는게 아닙니다. 네 본질이 뭐야? 누구야 너?! 하고 똑같은 거에요. 너 누구야 하는 것 하고 똑같은 이야기에요 이게.
이 성경에 요한복음 그대로거든요. 그런데 이걸 그대로 만약에 그대로 교회에서 해보면 교회 가게가 안돼요. 왜냐하면 목사의 우상은 뭐냐 하면 교회입니다. 교회라는 가게에요. 사업체입니다. 그러면 교인들의 우상은 뭐냐 하면은 집구석이에요. 각자 우상이 있습니다. 자기 가정이라니까요. 가정이니까 목사는 뭐냐 하면 자기 우상 잘되기 위해서 교인들에게 닦달하고 있는겁니다. 시간 바치고 돈 바치고 몸 바치고 자꾸 닦달내고 있어요. 봉사라는 이름으로.
이런거 잘하는 사람들 있어요. 수녀들. 수녀 신부들 잘해요. 우리나라 통계에 보면 수입이 적은 하위 50등에 보면 수녀, 전도사, 신부들 쭉 있어요. 하위 50등에. 50등이라도 괜찮아 왜냐하면 그 사람들 성당 부동산 있으니까. 부동산이 더 쎄거든요. 월급보다 부동산이 있으니까. 자기 우상을 키우기 위해서 제발 닦달하면서 악령을 가합니다.
교인들 어떻게 압력을 가하느냐 하면은 내 우상 봉사 안하면 네 우상 조진다 이렇게 되는 거에요. 협박과 급박을 받지요. 협박과 급박을 받고 이정도 낼 수 있는데 어떻습니까? 라고 제가 주일날 이야기 했던 용어 뭡니까? 이정도는 해냅니다 하고 주고받는걸 뭐라고 했어요? 제가. 교역을 하고 있는거에요.
내 우상 지키기 그러니까 더러워서 가는거에요. 왜냐하면 내 우상 지키기 위해서.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