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예언자 181109강의베드로전서

서울의존강의20181109a 베드로전서2장 10-13절(예언자)-이 근호 목사

베드로전서 2장 10-13절

10절,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11절,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절,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3절,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베드로전서 2장 10절이죠.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이렇게 규정짓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라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그렇게 지칭을 해버려요. 본인이 그것을 어떻게 느끼든, 인식을 하든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규정을 그렇게 확정을 지어버렸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 본문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뭐냐 하면, 백성이 아니었더니 이제는 백성이라고 했다 이 말이죠. 그러면 백성 아닌 것과 백성인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느냐, 그 차이를 발견하면 되겠죠. 그 차이도 모르면서, “나 백성이래, 나 백성이래.” 나 백성이라고 하면, 전에는 백성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백성이라고 하면 그럼 전에 백성 아닌 것하고 지금하고 어떤 변화가 있었느냐고 물어보면, “변화? 모르겠는데.”라고 하면 안 되겠죠.

그 차이를 아셔야 되고요, 그 다음에 그 차이를 우리 힘으로 이겨낼 수 있었습니까? 아니죠. 그렇죠. 백성이 아닌 자가 어떻게 사느냐를 먼저 우리가 확실하게 아셔야 됩니다. 백성인 자와 백성 아닌 자가 차이가 있다면, 그럼 백성이 아닌 자는 어떤 자인가를 분명히 해야 되겠죠. 백성이 아닌 자, 그 대표적인 자들이 누구냐 하면 놀랍게도 이스라엘, 유대인들이에요. 백성이 아닌 자가.

왜 그러냐 하면 그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지난 강의 때에 어떻게 했습니까? 건축자들의 버린 돌(7절), “아이고, 쓸데없어. 갖다버려!” 예수님을 갖다버린 거예요. 갖다버렸을 때에 그 갖다버린 그 취지가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왜 예수그리스도가 그들에게는 쓸모없는 존재이었던가를 우리가 살펴봄으로서, 백성 아닌 자의 특징이 확연하게 드러나죠. 우리가 유대인들에게 고마워해야 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갖다버림으로서 “아, 백성이 아닌 자는 저렇게 예수님을 갖다버리는구나.”라고 이미 어떤 기준이 정해져버렸단 말이죠.

그렇다면 오늘날 교인들이나 사람들을 만날 때, 예수님을 증거 하게 되면 그 백성이 아닌 자는 유대인들처럼 똑같은 반응을 나타날 게 분명합니다. 똑같은 반응을. 백성이 아닌 자는 아닌 자들끼리 똑같은 반응이죠. 그럼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이 나중에 죽어서 가는 곳이 어디겠어요? 지옥이죠. 죽어서 뭐 불구덩이도 좋지만, 그들이 죽기 전에 하는 행세, 죽기 전의 태도, 그것을 미리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반가워요.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일단의 무리, 사람들이 있다 이 말이죠. 사람들이 있는데, 여기에 예수님이 오셨죠. 이 사람들은 내가 죽어서 좋은 데를 가야지, 라는 생각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것입니다. “죽어서 좋은 데를 가야지. 죽어서 지옥 안 가고 천국가야지.”라고 했다 이 말이죠. 그러면 지옥과 천국의 주가 되신 주님께서 미리 오신 거예요. ‘내가 죽어서 가보면 알겠지.’ 또는 ‘갈 때 내가 선택 제대로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이 사람들이 먹고 있었는데, 일찌감치 천국과 지옥을 가름하시는 분이 그들 속에 들어오셨잖아요. 이 무리들이 유대인들이고.

그래서 이 유대인들한테 고마워하라 이 말입니다. 유대인들한테. 유대인들이 우리들이 하는 태도를 미리 다 보여줬다는 점에서 좋은 선례가 된 거예요. 먼저 예가 된다 이 말이죠. 그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대접했습니까? 베드로전서 1장 7절에 보니까,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라고 했잖아요. 쓸모없다고 버렸다고 아까 제가 말씀드렸죠. 쓸모없다고 버렸잖아요. 예수님이 쓸모없는 거예요. 예수님이 불필요하다 이 말이죠.

자, 그러면 이 이야기를 한번 끄집어내봅시다. 유대인들이 있고 이쪽에 예수님이 있고, 예수님과 유대인들은 서로 대척관계다. 예수님은 쫓겨난 거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밀어냈다. 예수님은 밀려나가신 거예요. 그러면 여기서 첫째로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억지로 구원할 의사가 있다? 없다? 없는 거죠. 예수님이 “어디 나를 밀어내!” 하면서 권총하고 칼 들고 “이래도 안 믿어?” 목 조르면서 이러지는 않았다 이 말이죠. 미니까 그냥 밀린 거예요.

지금도 하늘나라 천군천사 보내가지고 “나 이런 존재다.”라고 해서 “아이고! 깜짝 놀랐습니다. 진작 말씀하시지. 그럼 믿어줄게요.” 이런 식으로 유대인들에게 한 게 아니고, 약해도 너무 약하게 하신 거예요. 약해도. 그리고 예수님이 잡힐 때 천군천사가 나타나지도 않았어요. 창조주가 마귀한테 잡혀서 죽는데도 불구하고 천군천사는 그냥 대기상태에 있었어요. 조용했어요. 물론 빛이 없었지만. 어쨌든 소규모적이었지만 대규모적인 것은 아니었잖아요. 무덤 속에 있는 사람이 살아나기는 했지만. 그때 뭐 단군의 조상들이 있었습니까? 고조선시대에 뭐 있었어요? 없었죠. 그냥 조용하게 넘어갔잖아요.

이 말은 뭐냐 하면, 내가 니 싫다는데 강제로 믿게 하지는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드러냈죠. 목 졸라서 강제로 믿으라고 이러지는 않았다 이 말이죠. 예수님은 밀면 쉽게 자빠질 정도로 약하게 오신 거예요. 그럼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왜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교회에서는 그렇게 부르짖는데, 실제로 예수님은 우리가 싫다고 하면 곱게 물러갈 정도로 그렇게 약하게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그 이유가 뭐냐 하면은 이 땅에서 예수님이 강할까요? 인간이 강할까요? 이 땅에서 인간이 강한 자로서 행세를 해왔다는 것을 그대로 들추어내주는 겁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강자한테 붙어있는 사람은 필히 예수님의 약자 됨을 이해 못하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우리가 결혼생활, 사회생활하면서 여러분 가정에 가훈이라고 붙여놓을 글씨를 쓴다면, 저한테 좋은 가훈 하나 이야기해달라고 한다면, 약하게 살자! 이런 것. 목사님. 착하게 살자가 아닙니까? 으응, 약하게 살자. 차카게 살자는 조폭들이 하는 거고. 약하게 살자. 뭐 그 밑에 다른 것 없습니까? 지는 게 남는 거다! 뭐 이런 것. 또 없습니까? 가자! 패배의 길로! 뭐 이런 것.

어느 누구도 그걸 선뜻 받아들이지 못할 거예요. 왜냐하면 정말 그 말씀대로 된다면, 우리가 평소에 생각했던 내가 되고 싶은 것이 다 없어지죠. 그래서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뭐냐 하면,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것은 뭔가 있다는 것입니다. 뭔가 있음에 하나님께서는 혐의를 두시는 겁니다. 수상하다는 거예요. 뭔가 있음에.

지난 낮 설교에 이야기했지만, 사도바울은 성경해석에 끝판왕을 보여줬다고 했죠. 우리도 성경해석의 끝장을 한번 봅시다. 뭔가 내가 있어서 착하게 사는 것이 착함입니까? 아니면 내가 없어지는 것이 이게 우리의 운명이에요? 어느 게 운명이에요? 바르게 사는 것이 운명이에요? 내가 이 땅에서 없어지는 것이 운명이에요? 서서히 늙어서 결국 없어지잖아요. 그렇죠. 착하게 살면 안 늙는다든지, 안 죽는다든지, 뭐 그러한 보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착하게 살든 나쁘게 살든 없어지죠.

이게 전도서 내용이에요. 의롭게 살아도 악인이 사는 것 다 받고요. 종로 고시원에서 화재가 나서 죽은 사람들 중에서 나쁜 사람들만 있겠습니까? 착한 사람들도 있지만, 뭐 불나면 소용이 없네요. 죽죠. 그리고 악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일찍 죽는 것도 아니고, 벼락 맞아 죽는 것도 아니고, 고생고생 하는 것도 아니고, 벌 받는 것도 아니에요. 만사형통해요. 그걸 어떻게 설명할 건데요? 악한데,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

이 말은 뭐냐 하면 이렇게 설명하죠. 내가 착하게 있다든지 악하게 있다 할 때, 착한 것 악한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고, 뭔가 있다는 의식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거예요. 있다는 의식이. 내가 있다가 돼버리면 무엇을 거부하느냐 하면, 자꾸만 없어질 거라는 것을 나는 싫어할 거라고 자기의 본색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되는 겁니다. 나 여기 있으니까 나 계속 있을래가 되는 거예요. 지금 얼굴들을 보니까 전혀 동의하지 않는 얼굴들인데.

아까 가훈부터 시작해봅시다. 가훈이 뭐냐 하면, 패배하자! 약하자! 죽자! 근데 이런 가훈들을 선뜻 안 받아들이는 이유가 뭐냐 하면 그냥 인간은 있음 그거부터 출발해서 이왕 있는 것을 계속 있고 싶어 하는 그 본성이 있는 거예요. 있고 싶어 하는 것. 근데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말씀은 뭐냐 하면 자기가 없어지는 거예요. 인자가 고난 받고 죽는다. 자기가 없어지는 것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게 아버지의 뜻이다. 아버지의뜻은 뭐냐 하면 요한복음 10장에서 내가 죽는 것이라는 겁니다. 교회에서 목사들이 설교할 때, “자, 본문 요한복음 10장 봅시다.여러분들에게 물어봅니다. 여러분 예수님처럼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게 하면 뭣도 모르고 “아멘. 예.”라고 할 거라 이 말이죠. “그러면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내가 이 땅에서 온 것은 죽으러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 죽겠습니까?” “노멘. 안 됩니다. 아니 되옵니다.” 뭐 이렇게 나올 거란 말이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쓸데없다고 밀치고 버린 이유를 여러분들이 분명히 아셔야 돼요. 하나님의 백성은 없어요. 항상 주님은 이 땅에서 없어지거든요. 그렇다면 성경에 나오는 백성도 예수님이 없어지면 결국은 이 땅에서 백성은 없는 겁니다. 없는데, 오늘 본문에 너희들은 백성이 아니었는데 백성이라고 하잖아요. 그러면 없음에서 있음이 있을 때, 여기에 다른 것을 집어넣는 겁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있어서 착해서 백성이 된 것이 아니고, 있어서 악해서 백성이 된 것이 아니고, 이 있음 자체를 갈아치우는 겁니다. 다른 있음으로 바꿔치기 하는 거예요. 쉽지요? 이거 쉽지 않습니까? 내가 있다는 것 말고 주님이 계시다는 것으로 바꿔치기 하는 겁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밀쳤는데 자기 몸 그대로 가겠다는 거예요. 이게. 내 몸을 바꿔치기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냥 가겠다는 거예요.

유대인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은 정말 이거는 무식하고 철딱서니 없는 일이에요. 왜냐하면 그들은 구약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전혀 구약을 안 믿고 있어요. 구약 요엘 2장을 한번 보겠습니다. 28절,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절,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라고 되어 있죠.

이 말씀에서 도대체 그 꿈의 내용은 뭐고, 그들에게 성령이 왔을 때 장래일은 뭐냐 라고 궁금해 할 거예요. 그 궁금한 것에 대해서 그 다음 구절에 나옵니다. 30절,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세 가지, 피와 불과 연기 기둥. 피와 불과 연기는 뭐하는 용도냐 하면 이 세상을 작살내는 용도에요. 세상 없애버리는 겁니다. 지금 제가 계속 강의하는 내용이 뭡니까? 있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이야기를 제가 계속 했죠.

자, 아주 더 쉽게 해봅시다. 유대인들에게 누가 왔습니까? 예수님께서 오셨죠. 자, 그러면 말을 바꿉시다. 유대인들에게 피와 불과 연기가 온다면? 유대인들은 있음입니까? 없음입니까? 유대인들은 없어지죠. 심판하는데, 불로 사그리 다 싸질러버릴 건데 뭐 사람이고 개고 소고 남을 것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들이 마지막 때에 피와 불과 연기가 오게 되면 그들은 다 없어지는 거예요. 사이판에 태풍이 불었다. 아주 심하게 불었어요. 그러면 태풍에 나무들이 날아가면 어제까지 있던 그 나무의 자리에 나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나무가 없죠. 나무가 없잖아요. 그러면 피와 불과 연기가 오게 되면 그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죠.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와버리면 없는데, 예수님이라는 사람이 와버리니까 그들은 없다고 여기지 않고 자기들이 있다고 여기는 거예요. 만약 그들에게 피와 불과 연기가 온다면 그들의 모든 흔적은 날아가 버리고, 그러면 있는 것은 뭐만 있습니까? 불과 연기와 피만 그 자리에 남겠죠. 노아 홍수 때 비가 많이 왔잖아요. 거기에 인간의 문명이나 문화가 있을 게 아닙니까? 근데 많은 비가 싹쓸이해가면 거기에 뭐가 남습니까? 없지요. 남기는 뭐가 남아요. 없죠.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남는 것은 물밖에 없죠. 물은 뭐냐 하면 심판의 도구다 이 말입니다. 심판의 도구만 달랑 남죠. 요엘서에서 자녀들은 장래 일을 말할 것이고 젊은 자들은 이상을 볼 것이고 늙은이는 꿈을 꾼다는 이 말이 뭐냐 하면 이 세상은 시원하게 싹쓸이해서 날아간다는 예언을 지금 성신에 의해서 보여주는 거예요. 세상에 있던 모든 것이 다 없음으로 바뀐다는 예언이다 이 말이죠.

오늘 제목은 뭐냐 하면 ‘예언자’에요. 이거는 우리가 지난 시간에도 했지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은 그냥 백성이 아닙니다. 전부 다 뭐냐 하면 예언자집단이 되는 거예요. 예언자집단.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보면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렇게 되어 있죠.

이걸 한마디로 말해서 뭐냐 하면 예언자에요. 예언자. 예언자의 특징은 본인이 있는 것이 아니에요. 기능이 있고 그 기능이 있으매 따라붙는 것이 뭐냐 하면 자신의 몸이라는 말이죠. 역할이 먼저 있고, 있고 없고는 역할이 먼저 결정되는 거예요. 내가 있다, 없다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겁니다. 내가 있다, 없다는.

어떤 드라마를 찍는데 어떤 사람은 딱 1회에 나와 가지고 죽는 역할이에요. 그게 끝이에요. 1회, 2회, 3회... 쭉 그 사람은 안 나타나요. 왜? 1회에서 죽어버렸어요. 1회에. 그러면 그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 첫 회에 나왔던 그 사람을 안 찾아요. 왜? 그 사람의 역할이 끝났기 때문에 안 찾아요. 유대인들의 역할은 뭐냐, 주님 앞에 심판받고 죽는 역할이에요. 예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죽어 마땅하잖아요.

예수님 하니까 또 잊어버렸죠. 예수님 말고, 예수님이야기 할 것 없이 아까 이야기한 요엘서 이야기를 해봅시다. 피와 불과 연기 앞에서 모든 인간은 살아남을 수 있습니까? 화성에서 한번 살아볼래요? 화성에서요. 못살죠. 이 땅을 주님이 접수한다면 이 땅이 화성이 되는 거예요. 지구에는 한명도 못살아요. 주님이 오실 때, 현재 우리가 사는 방식을 그대로 인수인계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방식을 고집해요.

그러면 주님의 방식과 맞지 않은 사람은 주님과 더불어 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못살아요. 어디에 맞느냐 하면 피와 불과 연기가 여기에 부합이 돼요. 그곳은 뭐냐 하면 지옥이에요. 주님께서 이 땅을 지옥으로 만드시는 이유는, 불심판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다녀가시고 보니까 이 땅은 예수님이 사는데 적절한 땅이 아니에요.

그러면 예수님 자신이 예언자거든요. 예언자고 왕이고 제사장이잖아요. 그 예수님 자신이 세상을 볼 때 그렇게 보는 그 예언의 기능을 이제는 내 백성이, 전에는 내 백성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내 백성이 되었다고 할 때 그 기능을 인수인계 받는 겁니다. 예언자 아닌 백성은, 예언자 아닌 자는 백성이라고 입에 붙이지 마세요. 백성 아니에요. 사명 없는 사람은 주의 백성이 아닙니다. 어디 놀러가는 줄 알아요? 예수 믿고 그냥 놀러 가면 되는 줄 아는데.

예수 믿고 그냥 놀러 가면 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게 주님의 예언적 사명과 관련되어 있어요. 자, 전에는 사명이 없었어요. 그냥 인간 있음이 인간인줄 알았어요.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고 난 뒤에 사명 있음이 주님과 함께 있어요. 주님과 함께 살려면 주님이 주시는 기능과 역할과 사명이 있을 경우에만 주님과 함께 사는 환경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유대인들은 백성입니까? 백성 아닙니까? 자, 유대인들의 문제점이 뭐냐 하면 본인이 있음부터 출발하는 거예요. 내가 여기 있다는 거예요. 내가 여기 있다. 내가 여기 왜 있느냐 하면 공기와 그리고 따뜻한 햇볕과 단비, 이런 것이 있으니까 그거 덕분에 내가 여기 있잖아, 라고 우기는 거예요.

그러나 요엘서 2장에 보면 이게 시효가 다 돼가요. 다 끝난다고요. 마지막 때는 피와 불과 연기, 아주 싹쓸이 하겠다고 작심하고 오시는 거예요. 거기에 인간들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느냐? 이 가운데서 계속 있음이 되겠느냐? 안 되죠. 노아가 방주에 들어갈 때까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했잖아요. 근데 그건 비 안 올 때 이야기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홍수가 왔을 때 거기에서 노아식구 빼놓고, 노아도 마찬가지고, 그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았다, 시집가고 장가갔다, 인간으로서 했다는 이게 과연 변명이 되겠느냐 이 말이죠. 안 되죠.

그러면 노아는 왜 살았어요? 노아에게 새로운 기능이 부여되어진 겁니다. “언약 안에서 놀아라. 언약 안에 들어가라. 방주를 만들어라.” 그거잖아요. 노아는 그냥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사명과 역할이 있다 이 말이죠. 사명에 빨려 들어가 버리니까, 사명이 있음에 의해서 살아가는 노아 가족 여덟 명과 사명 없음의 사람한테는 완전히 물귀신이 다 됐죠.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뭐 베드로전서 이야기하니까 노아는 잊어도 되고 그러는데, 그런 거 아니에요.

성경말씀은 하나같이 일관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합니다. 전부 다 뚫리게 되어 있어요. 왜 우리가 이런 해석을 못하느냐 하면 교회가 너무 많아서 그래요. 행복한 교회부터 해가지고. 교회가 너무 많아가지고, 그거는 사람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위락(위로와 안락)단체, 친목모임 있잖아요. 사람들이 만들어낼 수 있어요. 하나님이름으로 만들어낼 수 있거든요. 더 크게 만들고. 그루밍인가, 나는 처음에 구루마인줄 알았어요. 대한예수교합동측이다 이 말이죠. 큰 교회다 이 말이죠. 인천에 있는 큰 교회.

예배당 크게 지으면 다 채워지게 마련이고, 가서 좋은 소리만 하는데 안 모일 리가 있어요? 손해 아닌데. 그러나 그들이 교회에 올 때 뭘 포기를 못해요? 나 여기 있음을 포기 못하는 거예요. 살려달라는 거예요. 미쳤어요? 왜 살려주는데. 지가 뭐라고. 아니, 하나님의 언약이 살려주심입니까? 아니면 요엘서에 있는 불과 연기와 피 입니까? 완전히 불 심판이에요. 그게 언약이라니까요. 제가 만든 거 아니에요.

저보고 멱살 잡지 말고. 제가 만든 게 아니고, 아, 그냥 나중에 이 지구상이 불 심판을 받는구나! 그걸 미리 알아 당겨서 챙겼으니까 얼마나 신납니까? 지금 SK가 이겼는지, 두산이 이겼는지, 그 문제는 지금 중요하지 않아요. 김 광현이 투수로 던졌는지, 누가 던졌는지 그거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겁니다. 이번에 지면 내년에 한국시리즈 나가면 되고. 그건 큰 문제가 아닌데. 중요한 것은 김 광현이가 공 던지다가 죽어버렸다면 이제는 문제가 되는 거예요. 김 광현 투수가 죽었다. 원래 죽게 되었어요. 예언에 의하면.

이 땅의 속성은 모든 것이 있는 것도 없어지는 속성이 계속해서 솟구쳐 올라오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오후설교 때 초반에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요, 샌드위치이야기를 했어요. 샌드위치는 빵이 두 조각이잖아요. 안에 샐러드가 들어있고. 성도는 빵조각이 두 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가족들이나 일반사람들은 자기라는 빵조각 하나밖에 없어요. 어쨌든 간에 이 하나밖에 없는 것을 계속 월급 받고 해서 계속 살려내야 돼요. 운동을 하든지, 똥배가 들어가게 하든지, 안 그러면 요양병원에 가든지, 계속 살려내는 거예요.

그러나 성도는 조각이 몇 조각입니까? 두 조각이에요. 하나의 몸은 날아가도, 이 몸은 아담과 연결이 되어 있고, 다른 몸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는 거예요. 따라서 한 조각이 날아가도 다른 조각이 주와 함께 영원히 사는 겁니다. 샌드위치 빵조각이 두 개에요. 지금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 백성 아닌 사람과 백성인 사람의 차이가 뭡니까? 빵조각 두 조각의 차이에요. 이쪽은 두 조각인데, 이쪽은 조각이 하나밖에 없어요.

조각이 하나밖에 없으니까, 계속 살려달라고 교회 다니고 난리도 아니에요. 그러나 이쪽은 뭐냐 하면 이왕 살았으니까 죽어도 좋다는 거예요. 죽어도 좋다고 하니까 요새 드라마이야기 인데, 아침에 일어났는데 수요일, 그 다음도 수요일, ‘죽어도 좋아’라는 괜찮은 드라마에요. 여러분은 볼 필요 없어요. 아침에 깨보니까 11월 7일, 그 다음도 똑같은 11월 7일... 아이디어가 좀 특이하다는 그런 생각을 했는데... 저도 바빠요.

학교 교육에서 가르치는 것은 네 몸은 시간과 공간으로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 중첩되어 있다는 거예요. 이중이다. 이중. 오늘 이거 샌드위치 하나만은 아세요. 밥 먹고 사는 것 똑같은데, 차이점이 이 두 조각이라니까요. 두 조각인데, 근데 둘 다 건재한 것이 아니고 한쪽이 한쪽을 밀어내요. 아담에 속한, 살고자하는 이것을 주께서 밀어내는 거예요. 밀어낼 때 뭐로 밀어내느냐 하면 바로 예언, 기능으로 밀어내는 겁니다.

이걸 밀어내면 산다가 아니라, 니가 사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맡긴 사명과 기능이 살아야 돼요. 이쪽 안 믿는 사람은 누가 살아야 돼요? 내가 살아야 돼요. 내가 죽으면 하나님이고 예수님이고 다 소용이 없다는 거예요. 일단 나부터 살고 그리고 내 가족도 살리고, 살리고, 살리고 맨날 살리는 것밖에 안 하는데, 이쪽 성도는 뭐냐 하면 주님만 살리는 거예요. 주님만 살아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겁니다. 그리고 주님 때문에 내가 진즉에 가야 되는데 안 죽고 있다는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예언의 내용이 되는 겁니다.

그런 것을 상상해 볼 수 있거든요. 마치 노아가 방주해놓고, 비도 오지도 않아요. 구름도 하나도 없어요. 비 올 기미가 하나도 안 보이는데, 자꾸 이웃들한테 비 온다고 이야기 하는 것하고 똑같은 거예요. 주변사람들은 노아가 짜증이 나요. 짜증나고 밀치고 싶고 진짜 건축자들의 버린 돌처럼, 제발 두 번 다시 내 눈 앞에 띠지 말라고 밀어내고 싶은 거예요. 바로 그 기능, 노아의 기능을 누가 인수인계 받게 되었다? 바로 오늘날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인 사람들이 인수인계를 받게 된 겁니다. 그것을.

그러니 예수 믿고 예수님한테 뭘 도와달라고 찾지 마세요. 안 도와줍니다. 왜냐하면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그 의도자체가, 전제가 뭐냐 하면 나는 무조건 오래 살아야 되겠다는 그러한 ?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727건 중 10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2,502 강의 연출 190111 야고보서 최고관리자 19-01-12
2,501 강의 최종성 190111 베드로전서 최고관리자 19-01-12
2,500 강의 무산된 꿈 190108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9-01-08
2,499 강의 유튜브(264강, 265강) 식사 , 사귐 190108 - 최고관리자 19-01-08
2,498 강의 사무엘상 45강(하나님의 변동), 마태복음 107강(관계망) - 최고관리자 18-12-27
2,497 강의 [18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49 - 이웃의 역할 - 최고관리자 18-12-23
2,496 강의 순수 슬픔 181218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8-12-18
2,495 강의 유튜브(262강, 263강) 인생의 짐, 크리스마스 181218 - 최고관리자 18-12-18
2,494 강의 희생물 181214 베드로전서 최고관리자 18-12-15
2,493 강의 너 빠져 181214 야고보서 최고관리자 18-12-15
2,492 강의 배제 181210 - 최고관리자 18-12-10
2,491 강의 [18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48 - 사귐의 효과 - 최고관리자 18-12-10
2,490 강의 비-현실 181207 레위기 최고관리자 18-12-07
2,489 강의 나와 너 181204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8-12-04
2,488 강의 유튜브(260강, 261강), 아름다움 , 목사의 실수 181204 - 최고관리자 18-12-04
2,487 강의 사무엘상 44강(인간의 한계), 마태복음 106강(명백한 사실) - 최고관리자 18-11-27
2,486 강의 [18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47 - 복합인생 - 최고관리자 18-11-26
2,485 강의 십자가 반복 181120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8-11-21
2,484 강의 유튜브 (258강, 259강) 뚫림과 닫힘, 행함과 노동 181120 - 최고관리자 18-11-21
2,483 강의 [진리의 가격] - 최고관리자 18-11-15
2,482 강의 [18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46 - 이게 나야 - 최고관리자 18-11-12
2,481 강의 인간없음 181112 시편 최고관리자 18-11-12
열람 ➜ 강의 예언자 181109 베드로전서 최고관리자 18-11-10
2,479 강의 관통 181109 야고보서 최고관리자 18-11-10
2,478 강의 무능성 181106 - 최고관리자 18-11-06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