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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무능성 181106강의-

강남-요한복음 18장 39절(무능성)181106a-이근호 목사

요한복음 18장 38절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였더라” 라고 되어 있지요.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예수님의 심정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뭐냐 하면은 ‘예수님의 심정’을 성령이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에 보면 성령만이 하나님의 가장 깊은 뜻을 알고 있다. 그래서 성령이 온다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깊은 뜻에 우리가 받는게 돼요. 알게 돼요. 그러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게 되지요 성령이 오게 되면.

이 말은 성령이 안 오게 되면 하나님에 대해서 모른다가 되겠지요. 성령이 오게 되면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아니까 성령이 안 온 상태에서는 하나님을 모르는게 되지요. 그래서 고린도전서2장 앞에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은 하나님이 안 왔을 때 성령이 안 왔을 때 그들의 하는 그 내어놓은 결과물이 뭐냐 그게 그렇게 되어 있어요. 성령을 안 받았을 때 그들은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하면은 십자가에 대한 몰이해, 십자가에 대한 이해를 못하게 되어 있어요. 성령을 안 받게 되게 되면.

그럼 성령을 안 받게 된다는 말은 인간이 성령을 요구하지는 않잖아요. 성령은 하나님이 주시고 싶은 사람에게 주시기 때문에 결국 성령은 여기 계시다면 성령을 모르는 사람이 십자가에 대해 이해를 못 한다 몰이해라면 모든 인간들은 십자가에 대해서 자신의 지혜로서는 이해를 못하는 형편에 있지요. 자신의 지혜로서는. 모든 인간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거에요.

그러면 내가 무식하다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은 본인이 아무리 공부해도 그걸 알 길이 없어요. 하나님 쪽에서 뭐를 들이대야 됩니까? 십자가 사건을 들이댈 때 ‘아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자신의 무지에 대한 지각이에요. 자기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아는게 되는 겁니다.

다시 하겠습니다. 성령이 오지 않으면 인간들은 십자가에 대해서 이해하지를 못해요. 몰이해니까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오게 되면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또는 하나님의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구나 라는 것을 성령이 옴으로써 비로소 이게 자각하게 되요. 성령이 옴으로써.

왜냐하면 성령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갖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마음은 뭐냐? 하나님의 마음이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은 뭐냐 하면은 너희들은 너희 자신 조차도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도 역시 모르고 있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세상 보기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보는 마음이에요.

이단교회의 특징은 이단교회의 특징이 뭐냐 하면은 인간 자체를 안 건드린다는 겁니다. 이단교회의 특징이에요. 인간 자체를 건드리지 않아요. ‘이 무식한 자들아’ 라고 건드리지를 않아요. 무식자들을 건드리려면 뭐 여러분들이 공부를 했습니까? 이렇게 건드리는게 아니고 여러분 성경을 알아? 이렇게 건드리는게 아니고 십자가만 전하면 십자가만 증거되면 곧 십자가 증거하는 그 목적과 이유가 뭐냐 하면은 ‘우리들은 무식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십자가가 증거되는 거에요. 이거는 하나님의 성령의 일입니다.

기존 교회가 인간을 안 건드린다는 말은 바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하지 않고 있는거에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다른 구절에 보면 이걸 ‘걸림돌’, 십자가는 걸림돌이다. 걸림돌이라고 하는 것은 걸려서 털썩 자빠지는 거에요. 자빠진다는 말은 그 사람의 품위, 위신, 직업, 학력, 재산 상관없이 누구든지 십자가 앞에서는 다 넘어지게 만드는 십자가에요. 직분 이런거 관계없이.

십자가 앞에서 나는 몰이해다. 다시 말해서 나는 무식하다. 다른 말로하면 더 크게 노골적으로 하면 나는 무능자다 무능자다. 십자가 앞에서 나는 무능자가 되는 겁니다. 이것을 증거하라고 자기 자신이 십자가로 인하여 그냥 나 무능하다 하면 또 나 무능하다는 것을 자랑질하니까 무엇에 근거해서 나는 잘하고 싶어도 나는 무능자고 알고 싶어도 무식자고 그럴 수밖에 없는가를 십자가를 증거하는 겁니다. 십자가를 증거하는 거죠.

그러면 내가 십자가 알기 전까지 우리가 헌금하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교육받고 예배드리고 뭐 하는 여러 자기 바겐세일하고 바자회 열고 선교한다고 나대고 하는 그 모든 것도 뭐냐 하면은 이게 유능한 것이 아니고 무능의 극치를 보여주는 거에요. 무식의 극치를. 아 우리 교회 부흥됐다 헌금 얼마고 교인 수 얼마고 이게 뭐냐? 무식과 무능의 극치를 보여주는 겁니다. 우리 가족 화목하고 이런거 전부다.

왜냐하면 하나님 보시기에 무능하고 무식한 인간이 가정의 화평할 권한이 없어요. 내 인생이 편하게 될 자격이 자격을 논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의 그 행동은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그 행동 하나에 뭐가 포함되었느냐 하면은 성령을 받지 않는 상태에 대해서 인간의 행동 속에는 복수심이 담겨 있습니다.

그 복수심이라고 하는 것은 내 인생이 이렇게 사는 것은 좀 억울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인간은. 내 인생이 이렇게 된 것은.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내가 보기에 내 인생은 이런 식으로 전개되면 안돼라는 강한 고집같은게 있습니다. 자아에 대한 집착이죠. 그래서 자기 인생이 자기 욕망에 영 충족되지를 못하니까 빨리 그걸 보완을 하고 빨리 보상을 얻어내려고 하는 거에요.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은 이상하게 자기 자신을 피해자라고 느끼는 겁니다. 그래서 억울할만하다는 거에요 자기 자신은. 무슨 근거로 자기 자신을 그렇게 너는 인생을 살면서 분통 터뜨리고 억울하다고 느끼느냐 무엇에 잘나서 그걸 제시하냐 하면은 나는 내가 알고 내가 유능한걸 어떤 가능성이 있는걸 내가 알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에요. 바리새인 생각하면 쉽게 나오지요. 유대인들 생각하게 되면.

그런데 십자가는 뭘 의미 합니까? 십자가를 전하는 사도 바울 보세요. 과거에 그 사람이 뭐냐 하면 사울이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사울. 사울일 때 그 사람이 하는 일이 뭐였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던 일을 했지요? 자기는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는 거에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걸 뭐라고 이야기 하느냐 하면은 예수님 본인을 핍박했다고 하는 거에요. 본인을 핍박했다.

그러면 사울이라는 사람이 놓친게 있어요. 뭘 놓쳤느냐 하면 관계망을 놓친거에요. 예수님과 예수님의 백성 사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망에 대해서 본인이 그걸 몰랐던 겁니다. 자기는 사람을 핍박하는 것이지 예수 핍박하지 않았아요. 왜냐하면 예수는 이미 죽었으니까 뭐 존재하지 않으니까 핍박 안 되고 다만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충성이라고 본거에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타나가지고 사울에게는 안 보이는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관계망이 있는데 그것은 안 보이잖아요. 안 보이니까 마음 놓고 핍박한거에요. 그 보이지 않는 관계망을 거론해서 사울에게 찾아왔다면 사울에게는 비록 보이지 않지만 관계망이 있어요? 없어요?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망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몰랐어요? 실제로 알았지요.

그러면 사울이 사도가 되고 난 뒤에 뭘 안거에요? 이 세상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과 그 백성 사이의 관계망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그런데 엄연히 존재하는데 그 존재하는 것을 누가 방해하느냐 하면 사울 나름대로의 하나님 섬긴다고 예수 믿는 사람 핍박했잖아요.

그럼 사울이 왜 그런 이야기 했느냐 하면 자기와 관련된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니까 자기와 관련된 인간들의 관계망이 있을거 아닙니까? 그래서 이걸 논리적으로 하면 전개를 이렇게 할 수 있어요. 인간들의 관계망이 주님의 관계망을 방해하고 도전하고 공격하는 것, 그게 이 현실세계입니다. 이 현실세계. 사도를 통해서.

내가 나 된 것은 그동안 나에게 가르쳤던 많은 사람들의 아는 사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나한테 교육하고 세뇌하고 잔소리했던 그것이 그냥 날라가지 않고 그것이 나라는 관계망을 형성한거에요. 저 분은 나한테 돈 준 사람, 저 사람은 나한테 쓸데없는 사람 관계망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혼자 살아가는데 혼자 살아가는게 아니에요. 눈에 밟힌다는 뜻이 무시해도 되는 그런 사람들이 무시해서는 안 되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사람은 나 혼자다 이렇게 하지만 사람이 행동할 때 그냥 행동 못하잖아요. 무시 못 하는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행동하게 되어 있어요. 부모가 암에 걸렸다. 무시되던가요? 아니죠. 부모는 부모인생 나는 내 인생인데 아프다하면 뭔가 돌봐야 된다는 관계망이 이미 형성되어 있지요. 그 관계망을 놓고서 부모가 암에 걸리고 누가 이렇게 힘들다 하면 괜히 부화가 나는 겁니다. 화가나는 거에요. 뭔가 내 인생이 긁혔던 상처가 난 느낌이 든다니까요 내 인생에. 억울하고 싶은거에요. 억울한 느낌 든다 이 말이죠.

다른 부모 멀쩡한데 왜 내 부모 아픕니까? 이렇게 억울한 느낌 든단 말이죠. 자식들도 마찬가지고. 그게 뭐냐 하면은 인간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관계망 속에 자아가 놓여 있는 겁니다. 그동안 우리가 자기가 잘난체 하는 것은 주변에 관계망에 있는 사람들이 아이고 효녀 났다 아이고 착하다 붕붕붕붕 마구 띄운거에요. 그리고 거기에 걸맞게 나는 행동해야 된다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촉구했고 재촉해온겁니다.

방금 길게 이야기한 것을 오늘 본문 주제와 관련되어 있는데 이것을 쉽게 용어를 한다면 누가 나를 착복하고 있는 거에요. 착복이라는 말은 뭡니까? 딱 이렇게 내 것 만들기에 오므라드는 것 착복. 저 사람은 나한테 필요한 사람이다 이건 내 자식이다 딱 착복하는 거에요 인간은. 착복하면서 그만한 착복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그런 자격이 나한테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나 너 하나 책임질 수 있는 여력은 있어. 이런 식으로 말이죠. 너는 내 사람이야 이런거 말이죠.

그리고 나한테 잘못된게 아니고 내가 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잘못되어있을 때는 내가 부화가 나는 이유는 관계망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은 본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이게 좀 어려운데 예수님은 뭐를 증명하느냐 하면은 이걸 증명해요. 나는 여기 없다. 나는 여기 없음을 증명합니다. 나는 이 땅에서 없어지고 사라져야 될 존재라는 것을 증명해요.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자기 죽음을 증명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자기 죽음을.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유일하게 있는 것이 나이고 느껴지는 나이고 나는 내가 여기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평생을 살아가죠. 내가 여기 있음을. 그래서 오늘 본문같은 경우에는 두 개의 관계망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뭐냐 하면 빌라도 및 유대인들의 관계망.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착복하고 있어요. 우리는 우리 편이다 일종의 공동체라 하지요.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한 패 먹고 있습니다 한 패. 단결되었어요. 그리고 이야기합니다. 뭐냐 하면 자기들이 이렇게 여러 사람들 한 패 되어있으니까 예수님께서 뭐를 신문하느냐 하면 우리 편은 이만큼 되는데 당신 편은 몇 명이죠? 당신은 어느 정도 세력화 되어있고 당신이 얼마나 우리만큼 힘 쎄? 우리만큼 네 편 많아? 네 편 먹는 사람 많아? 라고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데

그게 뭐냐 하면은 여기에 37절에 보면 네가 왕이냐? 네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묻는 것은 바로 그런 뜻이에요. 우리는 든든하게 유대인의 내가 총독이고 지금 이 땅에서 왕질하고 있는데 너는 그렇게 거스르고 잘난 척하고 있는데 도대체 이 이스라엘 유대 땅에서 네 편은 얼마나 돼? 라고 묻는거에요. 사람이 어떤 질문을 할 때는 자기한테 신경쓰고 있는 그것을 타인한테 질문하게 되어 있어요. 자기 신경쓰는 것을.

아 참 벤츠 참 좋으네 이 말은 뭐냐 하면 나도 저런 차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이에요 그게. 자기가 관심있는 것에 대해서 그쪽에 질문하는 거에요. 너 남자친구 멋있어? 이건 뭐냐 하면은 나도 좀 멋있는 남자친구 있었으면 좋겠어. 내가 관심있는 그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아까 그 동영상할 때 레이싱한다 경주하는 것.

나는 이런 것 갖고 있는데 나보다 혹시 더 좋은 옷 나보다 더 좋은 옷을 걸친 사람 없을까 라고 하는 것은 타인을 우회해가지고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이 옷이 내 존재의 보상을 충분히 해주고 있는가를 보는 겁니다. 그런데 옷 입고 있는데 옷이 뒤에 찢어졌다. 여기에 대해서 복수심을 발휘하죠. 나는 이정도 옷을 입는데 긁어놨으니까. 나는 이것을 복수할만한 권한이 있고 자격이 있다고 보는 거에요.

그 말은 뭐냐 하면은 내가 하루하루 살고 평생을 살아도 항상 머릿속에 있는 것은 나 여기 존재하고 있음 그만한 자격 있음 그거 증명하려고 인생을 살아가는 거에요. 아까 그 이단교회 이야기 했는데 이단교회는 그런 사람들이 집합하는 곳입니다. 자기가 살 자격 있다고 그러니까 그만한 자격 있으니까 신이시여 더 잘 살게 해주되 더 살게 해주되 이왕이면 행복하고 더 오래 풍족하고 안 다치고 건강하게 살게해주옵소서. 우리 가정 화목하고 그거 바라고 교회오는거에요. 교회와서 비는데 무당집하고 같은겁니다. 보이스피싱에 돈 뺏기는 거에요 그런거. 그걸 교회 탓하고 목사 탓하면 안돼요.

지난 그 낮 설교했잖아요. 교인이 나빠요. 교인이 나쁜거에요 교인이. 너는 무식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어 라는 십자가의 이야기를 왜 목사들이 안합니까. 오는 고객들이 내 존재의 가치를 증명해 달라고 오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뭐냐 나 죽었잖아 자기 죽음을 증명하는 거에요. 예수님은 자기 죽음을 증명하는 인생을 사는 겁니다. 나 여기 없어야 될 존재라고 나 없다고. 너희들 관계망에 의하면 나는 전혀 이 땅에서 엮어진 관계망이 형성되지 않는 없는 사람이에요. 그 두 견해의 충돌입니다. 오늘 본문이. 두 견해의 충돌이고 하나의 하나님 그렇게 되는 과정이고.

자, 그걸 어떻게 실시하느냐 하면 이제 예수의 심정을 알았으니까 예수님께서 은근히 즐기고 있습니다. 너희들이 나를 어떻게 없애버릴 것인지를 너희들이 할 수 있는 너희 속내를 다 펼쳐보라. 속내가 뭐냐 하면 우리들은 여기에 이 땅에 건재해야 된다는 그 속마음 그것이 내 앞에서 어떻게 숨겨지지 못하고 노출되는지를 한번 시작해봐라 이 말이죠. 그래서 빌라도부터 먼저 시작했지요. 너 편 몇 명이냐?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는겁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자, 왕은 백성을 그다음에 뭐다? 백성을 뭐한다? 아까 했잖아요. 착복하고 있잖아요. 내가 책임질께 인생. 그러니까 너는 나를 왕이라고 생각해라. 서로가 서로를 착복하고 있는거에요. 이 착복이라고 하는 것은 있음을 확인하는 거에요. 있고 또 있고 오늘 또 있고 있음을 계속 꼭 찍어서 확인하는 겁니다. 나 여기 있지. 내일 아침 되면 또 아 나 여기 있구나 자기 여기 있다는 것을 되게 좋아하는 거에요.

모든 CF나 드라마 모든 영화 뉴스나 이런거 한번 보세요. 그 모든 드라마나 CF나 전부다 한마디로 말해서 뭐냐 하면은 나 여기 있어야 된다는 거에요. 있어야 된다는 울부짖음이에요. 나 없어지면 안된다는 울부짖음이라니까요. 그게 시든 그게 예술이든 문학이든. 뭐 알쓸신잡인가 뭐 나와가지고 그런 것도 전부다 하나의 문학 인문학 과학 교양 전부다 이 모든 것이 뭐냐 하면은 무조건 무조건 무조건 우리는 여기 있어야 돼 그겁니다.

종교라는 것은 문화활동이죠. 종교는 문화활동이에요. 나 여기 있음을 제대로 확인받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그러나 주님은 떠납니다. 떠나요. 그래서 있음 쪽에서 주님은 어떤 모습으로 예수님 쪽에서 기대하느냐 하면은 너희들이 나를 떠밀 것이라는 거에요. 제발 어울리지 않거든 사라져라 하는 식으로 있음이 그냥 있음이 아니고 떠미는 거에요.

CF에 그런거 있잖아요. 이 그레이색 하는데 욕인지 뭔지 모르지만 제발 좀 나와! 변비약. 제발 좀 나와! 이 그레이색 욕하면 안 된다 참. 그거 지금 주님보고 하는 거에요 그게. 내 편 아니거든 좀 나가라 그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은 바로 39절입니다. 그레이색 나와요.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놓아준다는 말은 살려준다는 말이에요.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다른 말로 하면 너희들이 이 사람을 왕으로 섬기고 이 사람의 백성이 되고 싶으냐고 묻는거에요. 그러니까 뭡니까?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다. 저 사람 좀 이렇게 우리 코앞에서 우리 눈앞에서 좀 없애주세요 라고 하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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