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45 - 위반자
[18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45 - 위반자 18,10,15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오늘은 교재 108페이지부터 하겠습니다. ** 율법에 의하면 안식일을 지키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을 어떻게 지킵니까? 안식일 날 하루를 쉬면서 제사를 드리면 됩니까?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의 취지를 알려고 하면 반드시 안식일을 위반하는 사람들이 출현해야 한다는 겁니다. (민 15:32)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민 15:33) 그 나무하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의 앞으로 끌어왔으나(민 15:34) 어떻게 처치할는지 지시하심을 받지 못한 고로 가두었더니(민 15:3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사람이 나무를 하는 것은 전혀 잘못이 아닌데, 그런데 그것을 안식일에 하게 되면 문제가 된다는 겁니다. 인간 세계에서 '시간' 이라는 것은, 인간의 행함을 옹호하고 추구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그래서 그 뒤를 따라가게 되는데, 즉 "내가 옛날에 이렇게 행했다. 저렇게 행했다" 라고 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게 시간이라는 겁니다.그러니 우리 인간은 특정 시간에 자기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그것을 누구에게 요청한 적도 없고, 요청할 마음도 없는데, 그런 것에 구애받으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말이죠. 자기 인생은 자기가 알아서 살려고 하기 때문에, 무엇을 하더라도 자기가 하는 것이지, 남들의 지시는 받기 싫어한다는 것이죠. 이게 인간의 본성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시간과 공간 !!하지만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자기들만 사는 나라가 아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나라인데, 그런데 그게 하나님의 존재만 달랑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오실 때는 무엇을 가지고 오셨는고 하니까, 하나님의 시간과 공간까지도 가지고 오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것은, 자기의 삶, 즉 자기의 생존, 자기의 생계를 고려하면서, 그 나름대로의 시간과 공간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가축이 많다고 하면 당연히 목초지가 많은 공간을 원한다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당연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렇게 풀이 많은 곳에 가야 자기 가축을 먹일 수 있고, 그래야 자기가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있다는 말이죠. 그렇게 해야 자기의 삶이 윤택해지기 때문에, 그래서 목초지가 많은 공간을 원한다는 겁니다. 그런 것이 이미 인간이라는 존재에 내포되어있다는 말이죠. 이것을 우리 인간들끼리 하게 되면 탓할 사람이 전혀 없는데, 누구나 다 좋은 목초지에 가축을 키우려고 하고, 이것은 다 동의를 한다는 겁니다. 물론 누구나 다 차지할 수는 없고, 그런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운이 좋구나" 라고 하고 끝내게 되는데, 그런 사람만 그런 공간을 차지하게 된다는 말이죠. 간섭쟁이 하나님 !!그런데 하나님께서 들어오시면서 "그런 공간은 잊어라" 라고 하시는데, 그러니 하나님이 들어오셨다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하나님이 아니고, 간섭쟁이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간섭을 해도 대충 하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 존재의 바닥까지 긁어가면서 하신다는 말이죠. 이러한 하나님을 누가 좋다고 믿겠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선택하고 골라서 믿는 하나님이라고 하면 애초부터 엉터리인데, 자기가 좋아서 고른 신은 진짜 하나님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 쳐들어오신 하나님, 그것을 '침노' 라고 하는데 말이죠. 마치 정복자가 쳐들어와서 자기 수하에 두는 것처럼, 그렇게 오신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그런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바닥, 생존의 바닥, 생존의 바닥 자체를 완전히 노출시켜버린다는 겁니다. 시간과 공간을 통해서 말이죠.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시간과 공간을 따로 있는데, 그것을 우리 인간이 자신의 생존에 필요하다고 여기는 시간과 공간 의식과 마주치게 함으로서, 우리 인간의 존재 바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하신다는 겁니다. 내가 무엇을 감추어야 하지? 창세기 3장에 보면, 인간이 범죄하고 나서 한 첫 번째 행동이 무엇인고 하니, 자기를 가리는 것인데 말이죠. 그것은 뭔가 감출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하지만 인간은 가리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가리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만, 정작 자기가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그것은 모른다는 겁니다. (창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물론 육체적인 것을 감추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지금 경기도 도지사의 몸에 점이 있다는 것 때문에 매스컴이 시끄럽다는 겁니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그 점 때문에 말이죠. 그게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아무튼 인간은 그 누구라도 그런 게 있다고 하면 당연히 가리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인간은 그렇게 자기의 수치를 가리고 싶어하고, 그래서 옷을 입는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것을 언제 허용합니까? 그 타인이 용납될 때만 그 감추어진 것을 허용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곧 결혼인데, 그러면 그 타인에게 자기의 은밀한 것을 같이 공유하겠다고 하는 결정을 누가 내립니까? 그것도 본인이 내린다는 겁니다. 그렇게 자기가 결정을 한다는 것은, 누구든지 타자에게 공개하지 않은 은밀한 것이 다 있다는 말이죠. 그러면 자기가 가리면 가릴수록 자기가 절대화가 되겠습니까? 그게 아니면 흐지부지하게 되겠습니까? 가리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점점 더 절대화가 된다는 겁니다. 대문이 많다는 것은?오스트리아에 어느 백작이 만든 성이 있는데, 한 번도 적에게 정복을 당하지 않았다는 말이죠. 제가 그것을 동영상으로 보았는데, 절벽 꼭대기에 지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입구가 무려 9개라는 겁니다. 그러니 적들이 짜증이 나서 공격을 하지 못하는데, 9군대를 일일이 다 통과를 해야한다는 말이죠. 그렇게 뭔가 대문이 많다고 하는 것은, "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라는 의미인데, 그것은 맞선을 볼 때도 마찬가지인데, 선을 보면서 다 공개하는 경우는 없다는 겁니다. 조금 조금씩 허용을 한다는 말이죠. 즉 "우리 사이는 여기까지 공개해도 되는 사이다" 라는 것인데, 이것이 인간의 시간과 공간인데, 그래서 만난 것을 기념하는 백일축하파티를 열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서 뽀뽀까지는 허용하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감추는 것이 많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외부로부터 강력하게 자기를 지키고 싶어한다는 것인데, 그렇게 자기를 지키고 싶어하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과는 점점 더 멀어진다는 겁니다. 그것이 마태복음 16장 24절에 나오는데 말이죠.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주여, 살려주세요 !!거기에 비해서 세리나 강도, 그리고 자기를 개 같은 여자라고 했던 수로보니게 여인의 경우에는 어떻습니까? 물론 이 여인은 자기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자기는 감추고 싶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그만 작살이 나고 말았다는 겁니다. 자기에게는 귀신이 들린 어린 딸이 하나 있었는데, 즉 집안에 우환이 있었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런 자기 집에 하나님이 들이닥침으로 말미암아서, 자기가 지키고 싶어도 전혀 지키지 못할 형편이 되고 말았다는 겁니다. 그렇게 자기가 지키려고 했던 그 모든 수고가 허사로 돌아갔을 때, 그러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모습 그대로, "주여, 살려주세요!" 라고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