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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잃어버린 상태 181002강의요한복음

강남-요한복음 18장 8절(잃어버린 상태)181002a-이근호 목사

자, 요한복음 18장 8절부터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볼 때 어떻게 보느냐 하면 ‘잃어버린’ , 잃어버렸는데 아버지가 주신자로 보는 겁니다. 이 내용이 어떻게 생각하면 상당히 난해할 수 있는데 아버지 여기 있고 세상에 아들 계시지요.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자가 있는 겁니다. 주신 자가 있는데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자를 주면 우리의 상식에서는 뭐가 성립되지 않느냐 하면 잃어버림 자체가 여기 없어야 되겠지요. 줄 때 확실하게 주기 때문에.

그런데 예수님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예수님께서 아들에게 아버지께서 주신 자는 필히 잃어버림이 요건으로 갖춰져야 된다는 겁니다. 잃어버림이 성사되어야 비로소 아버지께서 주신 자가 된다는 겁니다. 잃어버려야 되는데 잃어버릴 때 잃어버린 자가 스스로 알아서 그 아버지께로 찾아올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로 찾아올 수가 없습니다. 잃어버렸는데 잃어버림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 오셨다 이 말은 이 아들, 예수님 하는 일에 무엇이 포함되어 있느냐 하면 잃어버린 자가 스스로 올 수 없는 데도 불구하고 잃어버린 자 마저 아들에게 오게 하는 그 기능이 예수님이 하는 기능에 포함이 되어 있어요.

그러면 그 다음 문제는 지금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지요? 그 다음 문제는 이들이 잃어버렸다 할 때에 어디서부터 어디로 잃어 버렸느냐 하는 것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그 잃어버림이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바로 생명의 대척관계, 생명의 반대가 뭐냐 하면 ‘죽음’이죠. 죽음이죠.

어떤 영화에 보면 신부가 수녀한테 묻는데 이런걸 물어요. 신부가 나오는 그 영화인데 “기적의 반대말이 뭐냐?” 이렇게 물어요. 기적의 반대말이 뭐냐? 자, 기적의 반대말이 뭡니까? 기적의 반대말. 묻고 답변을 안 해줘요. 기적의 반대말은 이게 정답은 ‘저주’ 입니다. 저주에요. 왜 그러냐하면 사람들이 원하는 기적은 될 수 있는대로 저주에 안 빠지는 것이 계속 자기가 살고 있는대로 살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들이 원하는 기적의 반대말은 어쨌든간에 내 것이 빼앗기지 않는 저주 받는거죠. 내 것이 손해나지 않는 것, 내 목숨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을 그것을 기적이라고 보고 그 반대말은 뭐냐 하면 저주가 되는 겁니다.

이 영화가 뭐냐 하면 ‘The Nun’ 이라는 영화에요. 지금 개봉하고 있어요. 루마니아에 수도원에 거기에 지옥이 올라오는 구멍이 있는데 그것을 폭격 맞아가지고 그 구멍이 뚫려가지고 악마가 구멍으로 올라와가지고 난리도 아니에요. 그래서 그 천주교 바티칸에서 수녀 한 사람 신부 한 사람 해가지고 다시 봉합해서 악마가 더 이상 세상에 들끓지 않도록 그 영화입니다.

nun 이란 뜻은 뭐냐 수녀라는 거에요. 수녀원에서 일어난 일. 거기에 보면 왜 천주교가 마귀 종교인지 다 나와 있어요. 악마가 물리친다고 용을 써. 악마가 악마를 그야말로 사도행전 19장에 나온거 있지요.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아는데 너 누구냐는 식으로. 악마가 이야기하잖아요. 나는 예수도 알고 그 다음에 누구도 압니까? 바울도 알잖아요. 그럼 바울이 생각하는대로 생각하면 되는데 바울이 생각하는대로 생각을 못해요. 자기 것을 지키려고 해요.

천주교에서 기적은 뭐냐? 천주교가 부흥되는게 기적이에요. 이게 자기거잖아요. 교회 기적은 뭡니까? 자기 교회 자기 부동산인 교회 부흥되는 거에요. 이게 바로 이게 The Nun 이잖아요 이게. 이게 이단이란 말이죠. 어떻게 저주 안 받으려고 다시 말해서 어떻게 하든지 ‘나’라는 것이 잃어버리지 않도록 단도리하는 여기 이거에 겁을 먹고 기적과 은혜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내 것을 잃어버리지 않기 살아온 내 것 잊어버리지 않기.

생각해보세요. 여러분들이 늘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어떤 불상사나 불행한 일 끔찍한 일 나쁜 경우 그렇게 생각되는 그 진원지가 어디에요? 가만히 커피마시면서 생각나는 것은 어쩌지? 어떡해? 뭐든지 어떡해 조금만 여유 있다하면 불상사가 끊이지 않고 늘 상상되는 그 근원지가 어디냐 이 말이죠. 우리 마음이죠.

저는 그걸 마음에 가래 끓는것 같다 그러는데 가래가 계속 올라오는 거에요. 좀 지저분한 이야기지만. 마음속에 계속해서 어쩌지? 어떡해? 그러면 안 되는데? 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올라오는 거에요. 나 그러면 망할거야. 나 망하면 안 되는데. 그렇게 하면 나 완전히 망했지. 자꾸 부정적인 생각이 발생되는 그 염려의 그 장소는 뭐로 구성되어 있을까요? 무엇이 나로 하여금 지칠 줄 모르고 계속 지치는 줄도 모르고 계속 나오는 것은 이게 뭐냐 이 말이죠. 그걸 우리가 탓하는게 아닙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주님이 하시는 일에 그러한 불상사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 필수 코스에요. 요한복음 18장에 보게 되면 의도적으로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렇게 이야기 하거든요. 9절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이렇게 되어 있지요? 그러면 아버지께서 주신 자를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우리 인간들 입장에서는 이래요.

예수님께서 이 깜짝 놀랄만한 일을 안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누가 예수님을 체포하는 일이라든지 예수님의 위상이라든지 지금까지 온 업적이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그 주변에 있던 12제자가 11제자가 든든하게 한번 주님을 이렇게 가까이 했더니만 그대로 천국까지 골인. 이게 얼마나 안심되는 일입니까? 종교를 불교에서 기독교로 바꿨더니만 천국까지 그대로 무사하게 골인. 그걸 우리는 기적이라고 이야기 하고 은혜라고 하나님의 은혜라고 그렇게 원하고 있잖아요.

사실은 교회에서 기도하고 헌금하고 전도하는 이 모든 것이 결국 뭐냐 하면 지칠 줄 모르고 끓어오르는 가래처럼 계속 나오는 나는 망하면 안돼 이러면 인생 조지는거야 라는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서 어떤 사전의 처방을 하나님 앞에 아부하는 식으로 갖다 앵기는게 아닌가 하는 그런 느낌을 제가 많이 받습니다. 그냥 느낌이 아니에요. 실상이죠. 기도해도 불안 불안 헌금해도 불안 목돈해도 불안 교회 참석해도 불안 불안. 이거 왠 불안감? 항상 이 불안감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오는 겁니다.

그 원인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구원하는 그 코스와 우리가 생각하는 코스가 안 맞아서 그래요. 하나님의 코스는 우리를 예수님한테서 떼어놓는 거예요.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다 나 좋아라고 믿잖아요. 그것을 떼어놓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방법은 뭐냐? 하나님을 안 떨어지는 방법을 찾아요 우리는.

주님의 방법은 뭐냐? 구원의 방법은. 다시 말해서 주님과 떼어 놓는 방법을 사용하시는 거에요. 주님과 이렇게 떨어지고 잃어버렸을 때에 주님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방법은 뭐냐 하면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많이 모자란다는 생각을 계속 갖게 하십니다. 주님과 연이 닿은 사람들은. 자기가 모자라고 자기가 아는게 참 점점 더 없다고 느끼는 것은 어떤 관심사가 자동적으로 어디에 있느냐 하면 좀 더 주님에 대해서 알아가고 복음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겨요. 왜? 자기가 많이 모자라니까. 그런데 자기가 모자라지 않고 넉넉하다고 생각하는 그 다음부터 엉뚱한데 정신 팔고 있습니다.

목사 같으면 교회 부흥이나 신경 쓰고 교인 수나 신경 쓰고 자기의 실력이나 업적 같은게 남이 안 알아줄까? 그 과시하기 위해 신경 쓰고. 이게 뭐냐 하면 이만하면 됐다란 뜻이거든요. 그런데 성경말씀을 보면서 왜 나 아직까지 이렇게 아는게 없어. 나는 왜 이리 무식해. 나는 왜 모자라 같으면 어디에 자꾸 관심이 가느냐 하면 주님의 그 깊이 있는 말씀과 복음에 대해 관심 있다 이 말이죠. 그만큼 자기 실력으로 구원되는게 아님을 아는 거에요 자기 실력으로. 주께서 계속해서 이끌어 주고 채워주고 도와주고 하셔야 된다는 겁니다.

중세 때 화가들이 여러분들 중세 끝나고 르네상스시대 때 화가 그림들 있잖아요. 그림 보니까 잘 그렸어요? 안 그렸어요? 유명한 명작들 보면. 너무너무 잘 그렸죠. 어떻게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저렇게 묘사를 하고 살아있는 것처럼 그렇게 하느냐. 정말 이 사람들 실력있다 하는데 그 사람들 베낀거에요.

‘Camera Obscura’ 라고 하는데 Camera Obscura가 뭐냐 하면 중세 때 처음 발명한 거에요. Obscura 가 뭐냐 하면은 암실이에요 ‘암실’. 방이 있는데 어떤 방이 있는데 캄캄한 방이에요. 구멍만 뚫어 놨어요. 구멍만 뚫어 놓고 이 앞에 마차가 지나간다든지 산이 있다든지 동물이 지나가고 태양이 비친다면 여기에 이 벽에 있는 이 그림자가 비치게 되면 이 산의 형상이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이렇게 나타나겠습니까? 거꾸로 나타나겠어요? 거꾸로 나타나죠.

이게 뭐냐 하면 구멍이 너무 커도 흐릿하고 적으면 안보이고 적당한 거리에 적당한 벽이 있으면 그림자가 이걸 통해서 사물이 사람이 있다면 사람은 위 아래 하고 겹쳐져 가지고 사람이 거꾸로 보이는 거에요. 이게 처음의 카메라의 원리입니다. 카메라의 원리에요. 카메라의 원리니까 여기에다가 프리즘 거울 같은 것을 장치하게 되면 거꾸로 된 것을 바로 딱 할수 있습니다. 그 밑에 도화지만 딱 놓으면 되요. 도화지 딱 놓고 습자지 놓고 그래도 베끼면 되는 거에요. 참 쉬워요. 그림이 아니고 복제를 하는 거에요 복제를 이렇게 하는 거에요.

여기서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이 세상이 예수님이 실천한 일을 뭐하고 했습니까? 모형이고 뭐라고 했습니까? 그림자지요. 이 그림자가 이 세상 자체가 어둡고 죄로 컴컴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바깥에 있는 것은 전부다 거꾸로 보이는 겁니다.

특히 놀라운 것은 뭐냐? 이 암실같은 이 세상에서는 우리 과거 현재 미래 이렇게 가잖아요. 그런데 이 주님의 계시 주님의 그림자 입장에서는 뭐냐 하면 미래로부터 현재로 시간이 이렇게 흘러옵니다. 다 이루었다 하는게 그 말이에요. 이미 미래의 관점에서 지금이 현재가 있는거에요. 미래의 관점에서. 미래의 이미 완성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들만 현재의 인간들은 체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한테 체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는 그림자니까. 성도는 주님의 그림자니까. 이게 로마서에 보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의 입장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면 그 일을 통해서 염려가 자꾸 생기는 거에요. 이래서 내가 천국 가겠나? 탈락된거 아닌가. 염려가 자꾸 발생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 염려에 대해서 뭐가 동원되겠냐 하면 그냥 염려만 끝나는게 아니라 뭔가 염려에 대해서 나름대로 대책을 세울거에요. 그 대책이 뭐냐 하면 할 수 있는대로 자기가 주님 앞에 주님을 이만큼 사랑하고 주님 앞에 충성을 다하고 순종을 다하고 주님 앞에 껌뻑 죽고 나 주님 위해서 살아갑니다라는 티를 자꾸 내야되겠지요.

그게 뭐냐 하면은 10절에 나옵니다.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이게 베드로가 주님과 자기가 한편이라는 것을 본인이 보여주고 싶은거에요. 베드로가 주님과 한편이고 한편 값을 해야 된다. 적어도 첫 수제자니까 그 행동은 어디서 나온 것이냐 하면 바로 자기가 과거에 경험한 것을 현재에 발휘하고 있는거에요.

인간은 과거에 기억된 것을 현재에 써먹게 되어 있어요. 기껏 안다는 것이 과거에 아는 거에요. 대구 강의에서 그런 이야기 했잖아요. 미래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고요. 대구 강의에서 은혜 이야기할 때 두가지 이야기했잖아요. 하나는 이미 알고 있는 은혜와 아직 모르고 있는 은혜 이야기했지요? 주님께서는 아는 은혜를 은혜로 보지않아요. 왜냐? 아는 은혜를 이미 인간의 자기 실력으로 업적으로 실적으로 이미 이게 자기 소유가 되었기 때문에 이거는 은혜가 아니거든요.

여러분 성경에 사도 바울에게 성도에게 규정할 때 뭐로 보느냐 ‘봉사자’입니다. 봉사자거든요. 봉사자의 특징은 뭐냐 하면은 업적과 실적을 생각하지 말아야 봉사자에요. 업적을 실적을. 봉사란 것은 뭐냐 하면은 이미 은혜를 받았잖아요 이미 은혜를. 이미 은혜를 받았다 하는 것은 자기가 계산하지 않는 사태다 이 말입니다. 내가 계산하고 예상하지 않는 사태에요. 내가 과거에 이게 은혜라고 생각했다면 이건 미래에서 온 것이 아니고 과거에 자기 실력 발휘한거 밖에 안되요.

만약에 베드로가 칼 빼가지고 예수님을 제가 지키겠습니다 하는 식으로 행동에 나서는 그래서 예수님과 나는 떨어질 사이가 아니고 지금도 함께 있음을 그런 식으로 보여주겠다는 것은 그것은 일반 사람들하고 할 때 하는 이야기에요. 이건 거꾸로 된 상이 아니라고요. 빛이 없는 상태에서 같은 어둠과 어둠 상태에서 인간이 인간을 할 때는 성의를 보인만큼 그 사람이 뭔가 나한테 혜택을 줄 것이라는 그런 거래관계죠.

인간은 기껏 할수 있는게 그런거 밖에 못해요. 잃어버리려면 확실하게 잃어버려야돼요. 이거는 자식들이 애먹일 때 부모들이 뭐라고 합니까? 그럴려면 집나가 이렇게 하죠? 뭐 아버지야 집나가라 하지만 어머니는 잠시 후에 뒤에 또 돌봐주잖아요. 나가라는 이야기 아니야. 아빠가 화나서 하는거니까 아빠 화 풀리면 다시 전화하면 돼. 잘못했습니다 하면 되는거야. 너 아빠 몰라?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런 식으로 하지요. 주님께서 잃어버렸다는 말은 인간의 힘으로 본인이 알아서 기어들어 올 수 있는 그 장소가 아니에요. 인간쪽에서 붙들수있는 주님이 아니다 이 말이죠.

아까 그 이명직 목사하고 가면서 이야기 했잖아요. 개천절 이야기했죠. 목사님 낼 생일이라고 했죠? 하늘이 열린 날이 생일이랍니다. 아 참 생일이 아니고 결혼기념일. 그런데 성경에서 인간이 밑에서 시도해가지고 하늘문이 안 열리게 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원래 하늘문은 없어요. 그래서 마가복음은 찢어진다고 했죠. 강제로 하늘쪽에서 강제로 문이 없는데 강제로 찢고 그 다음에 성령세례가 오신거에요. 인간쪽에서 어떤 방법으로 문을 찾아서 열 수 있는 어떤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겁니다.

그게 오늘 본문같으면 뭐냐 하면 ‘잃어버린 자’ 되게 하는 거에요. 다시 제자들이 예수님 못찾아 오는 그 장소까지 예수님과 제자들은 헤어져야 되는 겁니다. 헤어질 때 한 10km 헤어질까요? 너무 가까워요? 그럼 한 20km? 30km 쯤 헤어지면 됩니까? 천리 헤어지면 못 찾아오겠습니까? 그정도가 아닙니다. 제자들 입에서 나는 그 사람을 모릅니다 하는 소리까지. 여기에 그 소리까지 나와야 돼요.

여기 성경에 뒤에 보면 나옵니다. 17절에 보면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또 26절에 보면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뭡니까? 닭이 울더라”. 베드로하고 닭하고 차이 없다 이 말입니다. 짐승하고.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한다고 미리 예고 했잖아요. 예수님이 닭이 운다고 예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주님 보시기에 예고한 닭이나 예고한 베드로나 닭 = 꼬끼오, 꼬끼오 = 베드로고. 베드로 본인이 누구인지 모르기 위해서 꼬끼오를 옆에서 같이 결부시켜 놓은겁니다. 니가 제자될 바에 닭이 제자되겠다. 정말 이렇게 멀리 있어도 찾아오기 마련이거든요. 아예 마음 자체가 마음 자체에서 예수님이 생각하는 빛이 생각하는 빛의 세계에서 생각하는 그 예수님이 베드로 세계에 아예 없었음을 완전히 확인되는 들추어지는 그 자리까지 말입니다.

엉뚱한 예수님, 전혀 예수님같지 않은 예수님. 가짜 예수님. 그것을 베드로가 알아야 돼요. 베드로가 자기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했잖아요. 그 제자가 ‘Camera Obscura’ 완전히 뒤집어 져야 되요. 제자인 척하는 제자 엉터리 제자 가짜 제자. 그리고 스승도 따져보면 가짜 스승.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했을 때 다 도망갔어요. 배신한 가룟 유다만 아니고 도망한 제자들 그 나물의 그 밥이에요. 비빔밥 전부 다 똑같아요. 그리고 그것이 필수적인 절차였다는 겁니다 이게. 필히 그래야 돼요. 다 잃어버려야 그 다음에 그 다음이 뭐냐 하면 잃어버려도 되는데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날 다시 살린다는 것이 오직 예수님의 하심에 의해서만 예수님께서 행하심 안에서만 그것이 성사되어야 합니다.

자, 그러면 어디까지 잃어버려야 되는가? 그걸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질문을 던질테니까 답변을 해보세요. 예수님 살아있습니까? 답변해보세요. 살아계십니까? 안 보이지요? 그럼 예수님 믿는다는 말은 죽은 귀신 믿는다는 말과 똑같은 거죠? 안 보이는 안 보이는 유령을 지금 일반 사람들 살아있는 것처럼 똑같이 살아 있다고 인정하는게 되지요? 그렇지요?

그거 헛깨비 쫓는거 아니에요? 이거는 예수 10년 되고 20년 되고 30년 되도 관계없어요.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주위에 사람이 다 꺼지고 다 사라지고 다 핍박한다 할지라도 전혀 상관없을 정도 되야 돼지요. 왜냐하면 주님이 계시다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 다 미워하고 다 없어진다 할지라도 그 뭐 별게 아니죠.

제사를 지내는 것은요 죽은 조상을 기억해서 존경해서 예를 드리는 거지요 제사를 지내는 것은. 그럼 제사 지내는 사람은 죽은 귀신이 있다는 말입니까? 없다는 말입니까? 죽은 사람은 없고 이미 죽으셨음을 기억하고 자손들에게 그분의 덕이다라는 것을 보람을 느끼는 거죠. 만약에 진짜 조상이 와서 제사상에 그걸 먹고 간다면 그것은 조상숭배가 아니고 무당이에요. 신들린겁니다. 가짜 무당 배운 무당말고 신들린 무당은 어떻습니까? 신들린 무당이 만약에 권투를 한다면 슉슉 내가 하는 이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야 이럴거란 말이죠.

무당이 작두에 올라갔다. 춤춘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냐 하면 왜 작두냐 하면은요. 그냥 스펀지에 요새 라텍스 스펀지에 재미나게 하는게 아니고 작두에 올라가는 이유는 스펀지에 올라가면 자기가 재미나서 까부는건지 진짜 귀신이 까불게 하는지 구분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작두는 아무나 못 올라간다 이 말이죠. 그야말로 진품 진짜 귀신들린 자만이 작두에 올라가서 춤을 춘다는데 진짜 신들리면 그렇게한다 하거든요.

나는 그거 안 믿고 싶어요. 나같으면 그 작두에 올리는게 아니고 도루코 칼날에 올려버려야지. 작두라 해도 두껍다 이 말이죠. 여자 몸무게가 한 보통 50-60 잡으면 얼마 안 아픈 훈련만 되면 굳은살 배기면 괜찮단 말이죠. 제대로 하려면 도루코 면도날에 해야지. 생각하면 너무 끔찍하다. 너무 장난기가 많다. 누가 한번 작두에 올라가면 내가 가서 보면 작두가 이만해서 특수 주문했어 전혀 안 다치는 정도. 약간 날카로운거 이거는 훈련만 하게 되면 굳은살 있어서 괜찮은거.

남자들 100m 17초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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