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요한복음 18장 8절(떨어져 나감)180918a-이근호 목사
강남-요한복음 18장 8절(떨어져 나감)180918a-이근호 목사
요한복음 18장 1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기드론 시내가 그 다윗성과 감람산 사이에 있어요. 다윗성은 어디고 또 감람산은 또 어디냐?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모르는 사람은 하겠는데 그래서 이스라엘 답사 동영상 올려놓은 곳에 있습니다. 거기에 76번을 오늘 아침 새로 올려놨어요. 기드론 골짜기를 건너 가면서 요한복음 18장 기드론 이거 보면서 아 올려놨구나. 거기에 우리 세 사람이 기드론 골짜기 올라간다고 헥헥 거리면서 올라가는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올려놓은게 있어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성전산이라고 하는데 성전산. 성전산인데 모리아 산이 있어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그곳에다가 황금돔, 황금돔이 이렇게 되어 있고 황금돔은 여러분 보셨지요? 제가 올려놨으니까. 황금으로 되어 있어요. 진짜 황금이에요. 이슬람 성전이고 여기에 성전 있고 이것이 윗성이라고 해요. 윗 다윗성이라고 하고 이쪽에 옛날 아랫성, 아래도시라고, 도시라고 할거 없고 아랫성이라고 원래 다윗은 여기 있었요. 위에 있다고 윗성. 이렇게 돼요.
여기에 골짜기로 되어 있거든요. 여기 감람산이에요. 감람산에서는 여기 이만큼 높으니까 훤하게 다 보이는거예요. 여기가 기드론 골짜기예요. 감람산에서 이렇게 해가지고 겟세마네 동산이 감람삼이거든요. 베다니는 여기 있고 베다니하고 잘 통하는 데가 동쪽 성문하고 통하게 되어 있어요. 여기 몇 미터냐 하면 주기도문 교회 감람 겟세마네 교회 성당 전부 여기서 우리 세 사람이 건너갔는데 여기에 보면 압살롬의 무덤이 있어요. 여기에서의 거리가 얼마 안돼요. 한 500m 밖에 안돼요. 500m. 그래가지고 계단으로 올라갔는데 헥헥 거리면서 올라가는 장면이 있을거예요.
그래가지고 이렇게 쭈욱 가가지고 가게되면 마가의 다락방, 마가의 다락방인데 여기서 여기까지 한 3km? 내지 2.5km~3km 쯤 될 거예요. 지금은 도로가 잘 닦여있지요. 안토니아라는 요새가 있고 요새는 무슨 요새냐 하면 본디오빌라도 본부예요. 빌라도의 성체 또는 본부. 빌라 총독 빌라도. 안토니 요새는 뭐하냐 하면 예수님 최종 재판하는 곳. 예수님 재판하는 곳이에요. 바로 여기 나가면 ‘비탄의 길’이라고 해요. 비탄의 길, 슬픔의 길이라고 해가지고 여기에 골고다 언덕까지 가는 길이 있어요. 길이 예수님 십자가 가는 길입니다.
이렇게 가는 길이 있는데 여기는 길이 얼마 되느냐 하면 한 500m에서 1km 쯤 될거예요. 여기까지 가는데. 얼마 멀지는 않아요. 다 걸어서 가봤으니까. 한 1km 쯤 됩니다. 우리가 여기서 걸어서 갔으니까. 여기에 가야바 제사장의 집과 그리고 가야바 제사장의 의회라고 하죠 의회, 공회. 가야바 제사장의 공회. 요새 국회의사당 쯤 되는. 여기 중간에 뭐냐면 헤롯 안디바스의 궁이 있어요. 바로 그 위에 안토니아 빌라도의 궁이 있어요.
예수님께서 여기에 언제 여기 감람산에서 기도하는데 감람산 기도하다 체포될 때가 언제냐 하면 목요일 밤 10시에요. 밤 10시. 요새 같으면 목요일 밤 10시 드라마 수목 드라마 할 밤 10시에 예수님이 여기서 기도를 시작합니다. 기도 언제 하느냐 하면 제자들은 이제 3명은 자고 새벽에 새벽이 되니 금요일, 금요일 새벽에 여기서 체포가 됩니다.
그런데 이 목요일날 밤 10시에 감람산에 오는데 그 전에 어디 있었느냐 하면 낮에 마가의 다락방에 가셔 가지고 내 살과 내 피 이건 새언약이라고 해가지고 사전 조치를 다 했습니다. 자기가 살과 피를 찢어 주시고 피를 흘릴 것을 다 아시고 사전에 예수님께서 자신의 이런게 중요한거예요. 예수님 자신이 이렇게 실제로 잡혀서 십자가에 죽을걸 아시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뭐냐 하면 새 언약을 했거든요. 새 언약식을 했다고요.
그러면 예수님 자신이 뭐가 되느냐 하면 예수님 자기 자신이 하는 일에 하나의 상징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모든 일하심이라든지 말씀이라든지. 우리는 이야기하면 그걸로 끝나지만 예수님은 이야기하고 말씀하시고 행동한 그것이 완성을 내다보고 하는 거예요. 그냥 빈 말씀이라든지 빈 행동이 하나도 없어요.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이.
그리고 그렇게 여러분들 머리가 좋으면 그렇다면 예수님을 체포하는 배신하는 가룟 유다나 체포하러 오는 바리새인과 그 당시의 로마 군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이게 우연이 아니고 예수님이 알아서 전부다 적절하게 배당을 하는 거예요. 역할을 맡긴 거예요 역할을. 왜냐하면 그런 것 자체가 이 세상 자체가 주님을 위한 상징이기 때문에. 이 세상 자체가.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추석명절 이것도 예수그리스도 십자가와 관련되어 있어요. 어느 것 하나 풍랑 이는 것 바람 부는 것, 미국에 동남부에 태풍 부는 것 어떤 것도 어떤 폭풍 부는 모든 하나도 예수그리스도께서 미리 다 정확하게 일으키지 아니한 일이 없어요.
그 이야기가 어디 나오느냐 하면 바로 요한계시록에 나옵니다. 일곱인 쭉 나오지요? 일곱 나팔 쭉 나오지요. 일곱 대접 나오지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다 필요에 의해서 쓸데없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적절하게 딱 그 구성되어야 될 구성 요건으로 다 집어넣은 겁니다. 아시겠지요?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하면 아이고 내가 주님 앞에 이런 잘못을 하다니 내가 주님 앞에 이렇게 헌신하다니. 자기 자신, ‘나’라는 것 ‘나’라는 이 주체를 우리는 제거해야 된다 이 말 입니다. 내가 알아서 마음 야무지게 먹어서 일을 이렇게 인생을 이렇게 살아가는게 아니예요. 주께서 이렇게 다 필요해서 이렇게 이런 상황을 만든 겁니다. 특별히 우리 자신에게 주변에 만나야 되는 사람 만났다가 또 이별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미워하는 사람 모든 그 변화도 결코 나를 위함이 아니라는 겁니다. 내 행복을 위해서 그런 일이 만나고 이런 일이 없어요. 그리고 나의 가정 또는 내 교회 내 국가를 위해서 그렇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주님께서 필요해서 그렇게 들어 쓰신 거에요.
어제 대구 강의에서 제가 그런 예를 들었잖아요. 무대에 서커스 주인이 오랑우탄 손 들고 왔다고. 오랑우탄이 이렇게 걷지요. 팔 하나 걸쳐놓고. 그게 피조물이 해야 될 일입니다. 주님은 보이지 않는 거에요.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을 보이는 것으로 전부 다 배치를 해 놓은 거에요.
목요일날 저녁에 낮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내 살과 피를 먹으라고 해서 떡과 포도주를 나눠주시고 그날 밤에 10시에 감람산에 가가지고 기도하시고 금요일날 새벽에 잡혔습니다. 목요일날 10시에 새 언약 세우시면서 새 언약 세웠다는 말은 자물쇠 다 잠궜다는 이 말인데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말입니다. 플러스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시몬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베다니거든요. 시몬의 집에서 목요일날 마리아가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서 향유를 팍 부쉈습니다. 향수를 뿌린거예요.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것은 나의 장례를 위함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자기 장례식을 위해서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준비하신 거에요. 목요일날. 전날밤에 잡히기 전날밤에. 그럼 수요일날은 뭐했느냐. 수욜일은 뭐 수요일은 주로 비가 많이 오는가요? 수요일날에는 성전에 대해서 완전히 성전 박살난다고 설명했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피가 이게 유일한 현실을 다 집결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 피 이전에 전부 다 뭐가 되느냐 하면 전부 다 모형이 되버리거든요. 그 중에 모형 중에 뭐냐 하면 성전이거든요. 내가 곧 성전이거든요. 예수님이 곧 성전이다 이 말이죠. 마태복음 12장 6절에 보면 예수님을 성전이라고 하지 않고 예수님을 성전보다 더 큰 이라고 했다 이 말이죠. 성전보다 더 커요. 성전도 대단히 큰데 예수님은 성전보다 더 큽니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있기 때문에 성전은 있을 이유가 있어요? 없어요? 있을 이유가 없는 겁니다.
성전이 있을 이유가 없다고 하는 것은 성전을 관리하게 위해서 성전을 관리하고 거기서 행사하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직책과 역할들은 전부 다 이제 다 예수님 십자가로 인하셔 소용이 없는 거예요. 헛짓이 되는 거예요 헛짓이. 수요일 그 이야기 하신 거예요. 성전 박살난다고 그리고 인자가 구름타고 온다고. 내가 말 잘못했네.
베다니에서 시몬의 집에 언약을 한게 수요일이에요 수요일날. 성전을 월요일부터 화욜일에 가면서 늘 숙소를 베다니 문둥병 집에서 주무셨거든요. 베다니 문둥병 집에서 주무시고 여기서 수요일날 마리아한테 그 향수를 하면서 장례를 치르고 이제 목요일날 아침에 새언약하고 바로 여기서 감람산에 가셨어요.
그러면 화요일날은 뭐했느냐. 화요일날은 성전에 들어가가지고 성전 청결을 했어요. 성전 청결을. 그리고 월요일날은 뭐했느냐 하면 베다니에 오셔가지고 나귀타고 오셔가지고 왕이라고 환영 받았습니다. 왕이라고 환영 받고 물론 백성들이 오해한거죠 잘못된 사고방식이죠. 환영 받고 화요일날 무화과나무 저주하고 그 다음에 성전 이런게 성전이 아니라고 하고 성전을 부숴버려라 내가 구름타고 온다고 이야기 했고 그리고 수요일날 특히 마리아한테 장례 준비한다고 산 사람에게 산 사람을 마치 죽은 사람처럼 향수를 뿌려대는 겁니다. 관에 향수 뿌리듯이 살아있는 주님에게 향수를 뿌린다 이 말은 마리아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바쳤잖아요. 그러면 예수님을 살아있는데 죽은 자로 봤지요.
그러면 그럼 죽은 자는 누가 죽은 자 됩니까? 예수님이 죽은 자로 본다면 내가 예수님 앞에 살아 있다는 이 자체도 이건 살아있는게 아니라는 생각이죠. 그런 생각을 가졌지요. 그러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살아있는 예수를 믿는게 아니고 거기서 이미 시간적으로 더 늘여보자 이 말이죠.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분을 우리가 죽어야 되는데 우리 대신 죽으신 분이라는 그 아직 남아있는 미지의 역할까지 수용해서 예수를 믿어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오늘날 성령 받은 사람은 뭘 이야기 합니까? 우리를 위해서 이미 죽었다가 우리를 의인되기 위해서 이미 살아나셨다라는 것을 아울러 포함해서 우리가 믿어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이 살아있습니까? 내가 살아있습니까? 주님이 살아있는 거예요. 그걸 아울러 믿어져야 돼요 성령이 오게 되면. 나는 죽고 내안에 누가 산다? 그리스도가 아울러 믿어져야 돼요. 이건 노력해서 신학공부해서 믿어지는게 아니고 성령이 와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거울 보면 우리가 살아있잖아요. 눈뜨고 있고 그리고 다른 사람도 살아있지요. 그런데 성령 받은 사람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주 안에서 내가 나를 보는 거고 저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으면서도 죽은 줄도 모르고 지금 살아있다고 열심히 더 살아볼라고 애쓰고 있는 그런 모습이라는 그런 안목을 가지고 이번 추석 때 모이시기 바랍니다. 죽은 귀신들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금요일날 새벽에 목요일날 해가지고 어디로 갔느냐 하면 여기 가야바 집에 갑니다. 그 다음에 가야바 집에서 여기서 재판을 받아요. 재판을 받고 그 다음에 어디로 가느냐. 본디오빌라도가 있는 안티오 요새로 갑니다. 요새로 가는데 빌라도가 다시 어디로 보내느냐 하면 헤롯 안디바스로 보내고 다시 빌라도로 가고 여기서 재판 받으시고 바나바 살아나고 예수님은 잡혀서 골고다로 이렇게 가게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체포되야 될 이유가 뭐냐? 네 가지로 볼 수 있어요. 첫째는 뭐냐 하면 백성을 선동했다는 겁니다. 백성을 선동했다. 백성을 선동했고 두 번째는 뭐냐 가이샤에 통치, 가이샤는 로마 그 시의 통치자입니다. 로마에서 본디오빌라도가 아니고. 로마에 있는 가이샤의 통치에 대해서 반발했다는 거예요. 세 번째가 뭐냐 하면 세 번째가 똑같은 건데 선동했다 그러면 세 번째가 백성을 미워했다는 겁니다. ‘선동했다’와 ‘미워했다’는 좀 다르죠? 비슷한데 좀 달라요. 백성을 선동했다 백성을 혹했다 미워했다. 네 번째가 제일 중요한데요. 자진해서 스스로 자신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했다는 거예요.
이것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을 죄가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 체포당할 때. 이걸 우리가 본디오 빌라도의 입장에서 봅시다. 이 네 가지를 가지고 이런 천하의 죄인을 죽여주세요 라고 가야바 쪽에서 요청을 했는데 본디오 빌라도에게. 본디오 빌라도의 입장이라고 생각을 해 봅시다. 이것은 무슨 문제냐 하면 이것은 행정문제가 아니고 뭐냐 하면 이거는 종교문제지요. 유대인의 종교문제잖아요.
만약에 집사님이 대통령이다. 대통령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은 대통령이라고 칩시다. 치는데 대통령되어 취임해가지고 뭐 이렇게 하는데 막 청와대 청원 들어와요. 뭐냐 하면 조계종 원장을 바꿔 달라 이렇게 하게 되면 조계종? 조계종? 조계종이 뭐지? 남의 종교잖아요 불교 이야기 아닙니까. 불교이야기를 대통령이 왜 개입해요? 아 몰라 몰라 너희들 마음대로 해 이러잖아요.
그런데 그쪽에서 하는 말이 우리가 때릴 수는 있어도 죽일 수는 없다는 거예요. 기어이 죽여달라는 거예요. 그런데 집사님 부인이 죽이려고 하는데 밤에 잠을 못 잤어요. 저 사람은 죽을 분이 아니다 꿈자리 사납다 이렇게 하니까 빌라도의 입장에서는 뭐냐 하면 정치와 관련이 없는 종교문제입니다. 종교에 대해서는 자기가 전문가다 아니다? 전문가가 아니예요. 전문가가 아니라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선과 악을 구분할 능력이 없는 겁니다. 선과 악을 구분할 능력이 없게 돼요.
자,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들의 어떤 친구나 여러분 친척이나 누가 여러분에게 잔소리를 할 때에 그게 여러분 귀에 선과 악의 관련해서 이야기 한 것으로 들립니까? 아니면 나한테 내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들리십니까? 어디에 기분 나빠요? 선과 악이 너무 뚜렸해서 그래서 기분 안 좋고 그런겁니까 아니면 왜 내가 하는데 네가 왜 관여하느냐 그게 기분 나쁘죠.
인간은 모든 인간은 자기가 신이라고 여겨요. 신입니다. 네가 뭔데 신을 건드리느냐 이것 때문에 기분 나빠요. 심지어 부부 사이라도. 부부 사이라도 심지어 부부 아니라도 서로 남자 여자 서로 사귈 때도. 뭐 구하라인가? 그것도 뭐 치고 박고 이런 것도. 뭐냐 하면 내가 나는 신인데 너는 왜 내가 신이라는 그 신을 네가 그만큼 왜 대우를 안 해주느냐 때문에 삐지는 겁니다. 데이트폭력이 일어난 거예요.
서로가 자기를 신으로 인정해주는데 네가 그만큼 합당한 대우를 나한테 해달라는 겁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예수그리스도가 어떤 존재냐 하면은 귀찮은 존재예요. 본디오 빌라도가 그동안 신 아닙니까? 신인데 유다 나라의 총독이니까 신이잖아요. 신인데 예수그리스도를 빌미로 해서 신의 위세에 신답지 않은 비전문가가 될 가능성이 있어요 비전문가. 종교문제기 때문에.
이걸 비전문가가 되면 나중에 여기서 머뭇거려 버리면 계속해서 이 사람들이 신의 허점을 파고 들어올 수가 있어요. 그러면 권력 통치를 못합니다. 그래서 이참에 어떻게 하느냐 하면 그 어떤 나한테는 하자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책임을 누구 책임으로 돌리느냐 하면은 정치가 종교보다 우월하다는 그 사상에 의해서 종교문제를 결단을 내려버립니다. 종교문제를.
그러니까 종교보다 뭐가 더 위다? 정치, 이 통치가 종교보다 더 위에 있다는 거에요. 너희들이 말하는 이 신의 문제보다 로마의 통치가 더 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오늘날 중국하고 똑같아요. 공산당이 예수보다 더 세다 공산당이. 예수보다 더 세다는 본 때를 보여주고 십자가 부수고 교회 폐쇄하잖아요. 그래서 예수님을 체포한겁니다.
다시 한번 정리해 봅시다. 월요일에 오셔가지고 나귀 타셨고 화요일날 오셔가지고 무화과 나무 저주하고 성전청결하고 수요일날 오셔가지고 잠은 어디서 잤느냐 하면 베다니에 있는 시몬의 집에서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주무시면서 가까우니까 500m나 1km 쯤 되겠다 얼마 안돼요. 수요일날은 바로 성전에 대한 파괴이야기하고 내가 구름타고 온다는 것과 그리고 수요일날 중요한 것은 뭐냐 베다니 집에서 장례를 살아있는 예수님을 위해서 마리아가 향수를 부어서 장례를 준비했다는 사실.
목요일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새 언약을 세우잖아요. 내 살과 내 피를 마셔라. 그들이 살과 피를 마시는게 아닙니다. 뭘 마셨습니까? 포도주마셨고 떡 먹었지요? 떡 먹었어요. 상징을 먹은 겁니다. 심지어 이거 먹을 때 누가 계신줄 알아요? 가룟 유다도 있었어요. 가룟 유다도 먹었어요. 먹고 밤 10시에 감람산에 겟세마네 올라가가지고 기도하셨고 새벽 늦게 금요일날 새벽에 체포되고 가야바에 집에 가가지고 가야바의 집 바로 옆에 가야바 회의하는 데가 있어요. 산헤드린 회의하는 데가 있어요. 국회의원들 거기서 회의해가지고 아까 네 가지 죄목 가지고 신랄하게 고발하고 때리고 이랬어요.
때리고 빌라도가 다시 헤롯 안디바스 집으로 갔다가 다시 빌라도로 보내가지고 체포해서 십자가 가셨는데 십자가 못박힐 때가 아침 7시에 박혔고 돌아가실 때가 뭐냐 하면 오후 3시에 운명하셨고 그다음에 시신 거두어서 그 다음에 금요일 밤부터 유월절이거든요. 빨리 처리하는 거에요. 빨리 처리해가지고 무덤에다가 넣었습니다. 그리고 죽으시고 사흘만에 일요일날 날짜로 계산해서 사흘만에 세 번째 날에 예수님께서 기상해서 자기 입었던 옷 딱 개어 놓으시고 걸터앉아 있으니까 마리아 오셔 가지고 옷은 여기 있는데 사람은 어디 갔습니까? 아저씨 혹시 봤어요? 누구 찾는데? 우리 주님 찾는데요. 나잖아 나. 그런 대목도 있고 또 천사가 이야기 하는 대목도 있어요.
자, 거기서 예수님이 오늘 본문 요한복음 18장 봅시다. 예수님이 여기서 잡히는데 잡히시면서 잡히시는 이유가 뭐냐 하면은 다 떠나버리는거에요. 예수님 곁에 예수님 주변에 아무도 없게 하시는 겁니다. 그 이유가 요한복음에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육은 영과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그것 때문에 그래요 육은. 요한복음에만 그래요. 다른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안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제자들을 떠나는 이유가 같이 있을 수 없는 자가 너희들은 같이 있었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거에요 그동안. 눈에 보이니까 같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거에요.
그러면 처음에 애초부터 예수님은 혼자였습니다. 처음부터. 혼자였는데 제자들 12명 우르르 따라다니면서 떡도 먹고 뭐 이렇게 하니까 예수님하고 같이 붙어 있는 사람인 것처럼 여겼던 겁니다. 하지만 그 모든 사고방식은 여기 요한복음 18장에 뒤에 나오지만 베드로가 여기서 뒤에 나옵니다. 여러분 잘 알다시피 베드로가 배반하죠. 배반할 때 여러분 무슨 동물이 울지요? 닭 울잖아요. 닭이 울지요. 베드로가 12제자의 대표로 보고요.
예수님과 베드로가 같이 붙어 다닐 때에 그 제자들은 다른 제자들과 함께 붙어 다니는 것처럼 예수님도 그중에 하나로 같이 붙어 있다고 그렇게 생각한 겁니다. 여기 18장 17절 봅시다.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다. 나는 제자가 아니다 하고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베드로가 자기가 제자가 아니라고 분명히 했지요. 베드로 말이 이게 맞는 말이에요.
베드로가 생각한 예수님 스승이라면 그렇다면 그 스승은 베드로 말대로 그 예수님이 생각한 그 스승의 제자는 아니에요. 베드로가 생각하는 그 스승의 제자일수 있지만 예수님이 생각한 그 스승의 제자는 아닙니다. 이건 오늘날 지금 본격적으로 어려운거 나와요. 이제부터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는게 아니에요. 잡혀주는 거에요. 예수님께서 잡혀줌으로 말미암아 이것은 나쁜 사람들이 또는 가룟 유다가 잡았다는 것이 아니라 가룟 유다나 가룟 유다 말고 다른 제자도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도 예수님 곁이 있을 수가 없어요. 있을 수가 없는데 그동안 예수님 곁에 있었던 것이 이게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겁니다.
다시 본래 돌아가는 거에요. 본래 돌아가는게 뭐냐 하면 단절입니다. 영과 육은 요한복음 3장 나오듯이 지금 요한복음 하고 있잖아요. 영과 육은 결코 이게 통하지 않아요. 육으로 난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육으로 난 것은 그 결과가 육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인데 뭐냐 하면은 그 자체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어요. 어떤 체계? 원인과 결과라는 논리적 체계가 자체적으로 갖추고 있어요. 뭔가 원인이 있어야 뭔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바로 육의 세계의 특징입니다.
기도를 해야 응답받지 이게 육이거든요. 바쳐야 복을 받지 이게 육이다 이 말이죠. 예수를 믿어야 구원받지 이게 육이에요. 예수 믿어서 구원 못 받아요. 그것은 육적 세계에서 이야기 하는 거에요. 다시 말해서 종교 세계에서나 통하는 일이에요. 육이 있어야 될 이유는 그게 그냥 육으로 마감된다는 거에요. 육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역할이 육의 역할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는 말이 말씀이거든요. 말씀이 말씀답게 역시 나는 육이였었어. 그걸로 되면 족합니다. 더는 욕심내면 안돼요.
영은 이런 육과 단절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은 역할이 뭐냐 하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되는 거거든요. 예수님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내 제자라고 해요 내 제자. 제자들 보고 내 제자라고 했잖아요. 그럼 제자들이란 말은 제자들 있을 때에 제자란 말은 육적인 이해지만 육적인 개념이지만 예수님이 제자라고 할 때는 영적개념이에요. 영적개념으로 갈려면 육적으로 아는 제자 개념과 떨어져 있어야 돼요. 끊어져 버려야 된다 이 말이죠. 그러면 제자들은 떠났지만 제자의 관계는 예수님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새로 시작되는 겁니다.
제자들이 제자란 것을 배신할 때 비로소 그게 제자다운 거에요. 왜? 끊어짐의 내용을 이제는 베드로나 12제자가 품게 되게 되기 때문에. 끊어졌는데 주님 쪽에서 제자되게 하셨다는 그 내용이 합류되어 있어야 그게 제자입니다. 끊어짐이 내용이 없으면 이건 제자도 아니고 성도도 아니고 신앙인도 아니에요. 제자 될려고 열심히 애썼습니다 하는 그거는 교회제자훈련에나 하는 소리지 그런건 성경에 없어요. 주께서 제자되게 하셨잖아요 되려 주님께 반문을 해야 된다니까요. 아니 주님이 제자되게 하셨잖아요 주님이. 나 제자 안 될려고 내뺐는데 깍쟁이처럼 내뺐는데 주께서 성도되게 하셨고 제자되게 하셨잖아요.
그게 아버지께서 내게 주지 않으면 아버지께서 내게 보내지 않으면 내게 올수 없다 그 말씀을 계속 유지시켜주는 겁니다. 어렵기 때문에 제가 쉬운 예를 들께요. 에베소서 5장에 보면 부부 이야기 나오죠. 부부 이야기 나올 때 사도 바울이 부부 이야기를 하면서 이것을 끊어 버려요. 뭐냐 하면 서로가 서로를 소유할 수 없다는 겁니다. 소유를 끊어버려요. 소유를 엑스칩니다. 부부이야기를 하면서. 소유에 대해서 엑스친다는 말은 뭐냐 하면은 그동안 육의 부부에서는 서로를 자기 상대로 삼는 식으로 부부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겁니다. 육은 육의 티를 내야 되거든요.
육이 뭐냐 하면 육은 소유를 통해서 육은 계속 행세를 하는 겁니다. 뭐든지 세상에 있는 인간세계에서 제일 화근이 뭐냐? 전부다 모든 걸 소유 대상으로 보는 거에요. 내 것으로 보는 거에요. 돈이든 자식이든 국가든 교회든 뭐 예수님이든 하나님이든 삼위일체든 전부다 내 소유가 되는 거에요 내 소유가. 그게 육의 특징이에요. 그런데 에베소서 5장에 보면 부부이야기를 하는데 소유 개념을 끊어버리고 무슨 개념을 여기서 하냐 하면은 섬김 개념으로 이야기해요 ‘섬김’.
남편 된 자들아 아내를 섬기는 것은 교회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자기 목숨을 버린 것처럼 버려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이게 바로 섬김이에요 섬김. 섬김하니까 또 우리나라 왔던 미국대사 이름 같은데. 섬김. 섬김은 그대가 있음에 내가 있다는 거에요. 그리고 아내된 자는 남편을 섬기는 것을 교회가 예수님을 섬기는 것처럼 섬겨라. 양쪽 다 뭐만 남아요? 양쪽 다 섬김이 남지요? 섬김 받았으니까 저 사람은 내 소유다가 안 통하는 거에요. 내 소유가 통하지를 않습니다. 이제 오늘 강의에 제일 어려운 대목인데요. 이게 진짜 어려워요.
예수님의 제자는 없어요. 예수님은 혼자입니다. 옛날부터 혼자였어요. 처음부터 12제자 함께 있을 때도 혼자였어요. 왜? 예수님은 육이 아니고 영이니까 육이 아니니까. 그럼 옆에 붙어있는 플러스 12명은 전부 육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의 예수님의 영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 십자가에 잡힙니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예수님이 바리새인 군인들과 그 종들과 군대에게 잡힌게 아니고 제자들에게 체포됐다고 보시면 되요. 왜냐하면 제자의 대표가 누굽니까? 가룟 유다 아닙니까. 이게 요한복음 6장 마지막에 나오거든요. 예수님이 12제자를 보면서 그 대표자를 뭐로 보느냐 하면 가룟 유다로 봐요. 요한복음에서는.
12제자 쭉 이야기 해놓고 그중에 하나가 마귀다 이야기 한 것은 나는 마귀 들린자를 택했다는 거에요. 그리고 12제자의 운명 예수님의 운명은 예수님이 택했던 그 제자와 관련성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마귀는 육입니까? 영입니까? 마귀는 영이잖아요. 예수님의 하는 모든 말씀은 영적으로 이야기 하는 거에요. 베드로는 그것도 모르고 제가 떠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하는데 그건 자기가 무슨 말인지 몰라요. 육적이니까. 내가 예수님을 붙드니까 나는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원인 결과의 고리를 계속해서 베드로가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 고수한 결과가 육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육으로 이야기 할 때는 예수님을 딱 붙들고 안 놓을려고 할 수 있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에 베드로가 자기를 스스로 제자다? 아니다? 본인이 고백했잖아요. 제자다? 아니다? 나는 저분의 제자가 아닙니다 라고 노골적으로 이야기 했잖아요. 나는 저분의 제자가 아니다. 그러면 베드로는 그동안 누구의 제자였어요? 본인의 제자죠. 본인이 본인을 소유하고 있었던 거에요. 예수를 섬긴게 아닙니다. 인간은 자기가 자기를 섬겨요.
육이 할 수 있는 것은 뭐냐? 내가 죽도록 충성하여 나를 섬기는 것. 그게 육이 할 수 있는 거에요. 내 행동이 원인이 되어서 괜찮은 나라는 결과물을 내는 것. 그런 의식과 사고방식이 그것이 육이에요. 그리고 어떤 인간도 그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교회에 교인이 천명이다 천명하면 뭐합니까. 천명의 신들인데. 전부다 자기 섬겨요. 목사는 목사 섬기고 장로는 자기 섬기고 전부다 자기 섬겨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평소에는 자기가 겸손하니 누굴 섬기니 봉사하니 해도 누가 옆에서 잔소리를 이렇게 하게 되면 옳고 그른 것을 떠나서 네가 뭔데 나한테 잔소리 하느냐. 다시 말해서 나는 신인데 신을 겁없이 건드리느냐 이 말입니다. 신인데. 자녀들 키울 때 자녀들이 자식이 아닙니다. 신들이에요. 잘해줄 때 엄마 좋아 엄마 아빠 좋아 뽀뽀뽀하죠. 조금만 형한테 잘해주고 동생한테 못해주면 동생 난리납니다. 갑자기 영물 돼요. 마귀모습 다 드러납니다. 부모도 늙어가면 마찬가지고요. 부모도 연세 많아80넘고 90가까이 되버리면 진짜 귀신인지 부모인지 구분 안 돼요.
대구 강의에서 그런 이야기 했잖아요. 효자만나 골병든다고. 제발 효자 되지 마세요. 부모를 학대하는 겁니다. 뭐 살려 보겠다고 왜 그래요. 부모는 효를 받을 자격이 안돼요. 육이기 때문에. 참 좋은거 가르쳐 주죠. 부모는 절대 자식한테 대우받을 자격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자식을 자기 소유로 사용했기 때문에 안돼요. 이거는 자식이라는 신을 모독하는 거에요. 부모라는 신이. 아주 냉혹하게 봐야 됩니다 세상을. 껍데기 위장하는 것 윤리 도덕으로 걸쳐놓은 그것 다 벗겨버려야 되요.
예수님께서 여기 계시고 예수님께서 홀로 되셨다. 의도적으로 홀로 되셨어요. 제자들은 다 떠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홀로 되신 이걸 우리 자신에게 한번 적용시켜 봅시다. 여러분들 친구 한 10명 되는데 어느날 다 떠나 버리고 여러분 혼자 남는다면 여러분 자신을 정말 인간으로 안 볼 거에요.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분간 안 될 겁니다. 살았다는 말은 살았다는 것은 타인이 남이 나를 증명해줘야 그때만 사는 거에요. 친구가 나한테 전화 연락을 해주고 집안 식구나 사람들이 나에게 대우를 줄 때만 나는 살아 있어요.
남들이 나를 살았다고 이야기 해줄 때 살아 있지 만약에 남들이 나를 연락 안 해주게 되면 나는 살아있는게 아니고 죽은 인간입니다. 부부싸움하면서 여자의 최후의 무기는 눈물도 아니에요. 말 안 하기. 마치 남편보기를 투명인간 보듯이 하는 거에요. 옆에 지나가도 비켜가고 각 방 쓰고. 마치 없는 것처럼 이 자리에 현존하지 않는 것처럼. 그러면 남편은 대책은 하나 밖에 없어요. 빌든지 아니면 패든지 둘 중에 하나. 빌든지 패든지. 서로 말하고 싸울 때는 아직 정이 있다는 말이에요. 말하고 싸울 때는.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이 말은 뭐냐하면 옳다는 말이 아니고 내가 나는 신인데 네가 나를 좀 신처럼 좀 받들면 안 되겠니 라고 요구하는 거에요. 자기는 안 섬기면서 상대는 나를 좀 신으로서 섬겨달라고 서로가 요청하는 거에요.
처음에 결혼해서 애 없을 때는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 애 생기면 이제는 자식이 있으면 그런 것도 없어지죠. 서로 자식한테 잘 보이려고 알랑방구를 자식한데 다 뀌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 신 뭉개져도 괜찮아요. 자기가 받들 수 있는 자식이 앞에 있으니까 자식 좋으면 자기는 어떻게 뚱뚱보가 되어도 괜찮아요. 그 정도로 희생적이거든요. 나중에는 소유대상 되지만.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제자라는 것을 새로 시작하는 거예요. 내가 너희들이 제자다라고 한 것을 누가 빠진 상태에서? 가룟 유다가 빠진 상태에서 새로 들어가는 겁니다. 가룟 유다나 제자나 나머지 11제자나 똑같은 입장인데 주님이 끝까지 사랑을 해야 되는데 여기서 뭐냐 하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룟 유다는 알아서 자기가 자살함으로서 알아서 창자 터져 죽었잖아요. 알아서 끊어졌지만 이 제자들 입장에서는 주님께서 이 제자들을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을 주셔가지고 성령 안에 뭐냐 하면 내가 너를 제자라고 했잖아라는 것이 제자 속에 이게 keep이 되요. keep이 되게 되면 이 제자는 예수님 때문에 제자 된 거예요. 본인이 나 제자 되면 어떤 이익이 있을까? 제자 되면 천국가지. 이런 나라는 것이 제거 됩니다. 나 가 제거된 상태에서 여기 연결되는 것. 이것을 가지고 뭐냐 하면 오늘 제목이에요. 이걸 부르심이에요. 제자를 끊어버리고 부르심으로 가는 것 부르심으로. 내가 너를 불렀다는 거에요. 내가 너를 호명했다는 겁니다.
누굴 위해서? 우리 구원을 위해서? 아니에요. 예수님 자신이 불렀다는 그 사실이에요. 네가 천국가는 것은 내가 내 쪽에서 너를 놓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너에게 찾아왔기 때문에 그런거에요. 그걸 찾아옴이 성령이거든요. 그래서 요한복음은 계속 성령 이야기 합니다. 아까 그 수요일날 저녁에 마리아한테 미리 향유 부음 받았다고 했지요. 미리 받은 장례식이죠.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성령 온다는 것은 이미 미리 받은 천국이에요 이게.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의 모형이 되고 상징이 되는 겁니다. 성도는. 전에는 누구 주인이냐 하면 내가 주인이에요. 내가 주인인데 내가 주인해서 해봤자 결국 실패라는 것을 누가 대신 다 보여줬습니까? 고맙게도 12제자가 육에서 시작한 일이 어떻게 파토나는가를 깔끔하게 다 보여줬어요. 어디서? 십자가 잡힐 때. 예수님 잡힐 때에. 내 육이 예수님의 육을 품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습니까? 주님 가는데 목숨 바치겠습니다 하면서 어떤 고난도 하겠습니다. 심지어 여기 오늘 본문에 그 뒤에 보면 말고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말고라는 사람은 괜히 거기 붙어 있다가 베드로한테 어떻게 되었습니까?
베드로한테 아주 열정적인 베드로한테 칼에 베였지요. 다른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어떻게 했습니까? 말고의 귀를 떼구르르르 굴러갔다 말이죠. 귀가 뚝 떨어져가지고 떼구르르르 굴러가니까 예수님께서 지금 체포되는 입장에서 얼른 주워가지고 말고의 귀를 붙여줬어요.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은 예수님 자신이 안 잡힐수도 있는 문제고 죽은 자를 살리고 인간도 만들어 내시는 분이고 떨어진 귀도 갖다 붙일 정도로 그렇게 장인이라면 그게 장인이거든요.
서울시내에 구두 만드는 동네가 무슨 동입니까? 성수동이죠? 그 성수동 장인들 구두 잘 고치잖아요. 주님은 온 우주의 장인이잖아요. 온 우주의 장인이 지금 체포당하고 있습니다. 체포를 의도적으로 시도한거에요. 의도적으로. 영이 육에게 체포당함으로 말미암아 육은 육이고 영은 영이고 연결점이 없음을 분명히 하시는 거에요. 분명히 하시는 거에요. 그래서 육의 노력과 육의 의지로서 절대로 영의 세계 천국에 오지 못한다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끝까지 일을 마무리 해주시는 겁니다.
그리고 여기 18절에 보면 좀 이상한 대목 나와요. 6절에 보면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땅에 엎드리죠. 질문을 누가 하느냐 하면 뭐냐 하면 질문을 여기 4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다 아신다 했거든요 빨리 니가 맡은 역할 니 배역 있잖아 니가 그 역할 빨리 빨리해 하는 거에요.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그러니까 뭘 유도하느냐 하면은 그들이 누굴 찾는다는 겁니까? 나사렛 예수를 찾지요. 그런데 나사렛 예수를 어떻게 하려고 찾습니까? 잡아죽이려고 하잖아요. 그걸 다 아신다 이 말입니다. 그걸 다 아신다는 말은 뭐냐 하면 내가 죽는데 너희들이 좀 고생들이 많다 이 말입니다. 내가 알아서 죽는데 너희들이 참 고생들이 많다 이 말입니다. 요한복음 10장에 그런 내용이 나오는데 누가 나를 여기 10장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10장 18절에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했어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내 몫을 빼앗는 것이 아니고 그다음에 뭡니까? 스스로 버린다. 스스로 이거는 자살인데? 스스로 버리는 거에요. 예수님이 스스로 버리는 거에요. 이걸 어렵게 이야기해서 뭐냐 하면 하나님은 하나님하고만 상대한다는 뜻이에요.
하나님은 스스로의 패배에서 스스로 실패해서 스스로 성공하는 거에요. 자기가 실패의 자리를 자기가 만들고 자기가 만든 실패의 자리에서 자기가 성공함으로 말미암아 어느 누구도 실패나 성공의 하나님 외에 누구도 끼어들지 않게 하는 것. 그것만이 악마를 악마답게 지옥에 보내는 유일한 방편이 되는 겁니다. 어렵지요. 10분 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