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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51강-YouTube강의(자만)20180918-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신명기

251강-YouTube강의(자만)20180918-이 근호 목사 제 251강, 제목은 ‘자만’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죠. 이 말씀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구원하기 위한 용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아요. 그러나 이 약속은 구원하기 위한 용도뿐만이 아니고 저주를 유발하기위한 용도로 이 말씀이 주어집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말씀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저주가 주어진다 해서 이 저주는 지금 대기상태에 있어요. 말씀을 안 지키기기만 해봐라. 이런 식으로. 이 얼마나 무서운 거예요? 사람은 혼자 살고 싶어요. 사람의 특징은, 사람이 선악과를 따먹고 악마와 한통속이 되었다는 그 증거가 뭐냐 하면 그 어떤 간섭이나 그 어떤 통치도 받고 싶지 않아요. 잔소리도 듣고 싶지 않아요. 내가 그 사람에게 필요할 때 내가 나서지, 내가 있는데 그쪽에서 쓸데없이 조언한다든지, 교훈한다든지 이런 것 자체도 인간은 역겨워한다는 겁니다. 한두 번 참지만은 그 다음부터는 참을 수가 없어요. 이게 인간의 본성이에요. 인간은 자기 자신을 뭐로 보느냐 하면은 작은 신이라고 봅니다. 자기가 신이라고 이렇게 노골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행세를 가만히 보게 되면 누굴 이용할 생각을 하지 누굴 사랑할 생각은 없고, 그리고 그 누구로부터도 조언이라든지, 본인이 원하지도 않는데 조언이라든지 도움을 주는 것을 상당히 싫어합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이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어느 정도로 대단한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어느 정도로 형편없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이 말씀을 주시는 거예요. 성경말씀에 보면 이걸 지키는 자는 복을 받고 이걸 안 지키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되어 있죠. 얼른 생각하면 복 받는 사람이 50퍼센트 되고 저주받는 사람이 50퍼센트로 보이지만, 성경에서 두 가지의 경우가 있다고 해가지고 복을 받을 수 있는 능력자는 이 세상에서 아무도 없습니다. 결국 복이라는 의미를 쓰시는 것은 복 받을만한 사람이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복을 이야기했고, 그 두 번째 나오는 저주이야기는 저주받은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아예 저주 속에 태어났다는 것, 모든 인간이 죄 속에 태어났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저주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인간 대 인간으로 보게 되면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 사람에게 힘을 얻기 위해서 굉장히 겸손하게 할 그러한 요령 같은 것, 기술 같은 것을 세월이가면서 습득하게 되어 있어요. 하나의 처세술 같은 것. 그 사람에게 호감을 얻어가지고 내게 필요한 것을 그 사람으로부터 뽑아내기 위해서 온갖 도덕적으로 괜찮은 품성을 가진 것처럼 위장합니다. 겸손하고 예의바르고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인내성이 있고. 서둘지 않고 굉장히 침착하고. 그리고 마음 낮추고. 겸손한 태도를 갖춥니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하한선이 있어요. 하한선. 그 누구에게나 겸손하지 않아요. 그 누구에게나 배려하지 않습니다. 자기한테 이익이 없는데 배려한다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누가복음 10장인가 보면 선한 사마리아인이 나오죠. 예수님께서 강도 만난 사람을 설정해놓았어요. 강도 만난 사람을 설정해놓고 그 무대에 세 사람이 지나가게 하죠. 제사장 지나가게 만들고 레위인 지나가게 만들고. 제사장, 레위인들, 이 사람들은 뭐가 전문이냐 하면은 말씀을 실천에 옮기는 전문가들이에요. 말씀의 이 뜻을 실천에 옮기려고 한다면 이렇게 옮겨야 된다는 것을 남에게 모범적으로 보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이 사람들이에요. 근데 그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할 때에 굉장히 순수해보이지만, 강도 만난 사람이 일어났을 때, 일단 강도 만난 사람은 자기에게 책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그 시간에 바빠요. 백수가 아닙니다. 노숙자가 아니고, 어디 할 일 없어 찾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자기 일이 있어요. 자기 일을 제쳐두고 자기와 상관없는 자기가 책임지지 않아도 될, 그러한 일에 덤벼들 그러한 무모한 짓을 하지 않을 사람들입니다. 그냥 가버렸어요. 그런데 세 번째 등장하는 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자기 일이 있어요. 자기 하던 일이 있다 이 말이죠. 근데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자기와 떨어지지 않는 자기 일의 일부라고 보고, 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자기를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이웃이라는 개념으로 그 사람을 도와줍니다. 마치 이웃을 사랑하기를 자기가 제 몸을 사랑하듯이. 그 이웃이 강도 만난 것을 자기가 강도 만난 것으로 동일화시키는 것이죠.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이유가 예수님 자신과 그 외에 모든 인간을 대비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사마리아 사람처럼 세상일을 자기 일처럼 그렇게 여기는 사람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어요. 다른 사람은 없어요. 그렇다면 그것이 바로 유일한 사랑이고. 사랑을 이렇게 구축해놓으면,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것이 뭐냐 하면 모든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두 가지로 전부다 이렇게 응축이 될 수가 있어요. 모을 수가 있어요. 거기다 집합을 할 수가 있어요. 결국은 예수님 빼놓고 사랑할 수가 없다는 말은, 사랑의 반대말이 교만일 수도 있고 자만일 수도 있어요. 미움일 수도 있고. 자만이라는 것, 미움이라는 것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한, 이것은 자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자만은 물론 예수님 보기에 자만이지만, 본인은 그게 자만이 아니고 이 세상에서 밥 먹고 살기 위한 하나의 어쩔 수 없는 요령이죠. 자기부터 챙겨야 살지, 남이 나의 필요한 것을 다 채워주지 않으니까. 너무나 상식적인 것이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런데 그게 말씀 앞에서는 자만이 돼버립니다. 왜냐하면 율법 안에, 말씀 안에 주님의 절대적인 사랑이 들어있기 때문에, 온전한 사랑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 말씀 앞에서 어떤 인간도 자만이라고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 모든 인간은.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이래 되어 있어요. 율법이라는 그 자체에서 자기가 뭘 발견할 수 있느냐 하면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린다는 겁니다. 자기보다 율법을 더 사모한다는 것은 율법 없이 내가 그냥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는 사람이에요. 말씀 없이는 못 살겠다는 겁니다. 떡이냐, 말씀이냐 할 때에 떡을 선택하지 않고 말씀을 선택하는 거예요. 돈이냐, 말씀이냐 할 때에 돈을 선택하지 않고 말씀을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본인을 위해서 살지 않기 때문에 말씀에 매인자라고 할 수 있어요. 또는 말씀의 사람, 말씀에 의해서 만들어진 사람이라고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말씀에 종속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 사람만이 눈에 뭐가 보이느냐 하면 악인이 보이고, 죄인이 보이고, 오만한 자가 보입니다. 그런 자만이. 맨날 성경책만 들여다보라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어떤 현장이든 그게 말씀이 우선되는 현장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화장실에 가든, 세수를 하든, 직장에 다니든, 교회에 가든, 어떤 그 순간에도 내 이익을 위해서 있는 순간이 아니고 말씀이 말씀대로 노골화 되고 투명하게 드러나는. 말씀이 현재 여기에 있다, 말씀이 여기에 살아있어, 모든 것은 말씀대로 지금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체험하는, 체험의 장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 사람만이 자만하지 않는 사람, 오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의 완성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다 이루었다고 했으니까. 어떤 현장이든 십자가만을 위해서 그 현장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 인정하는 사람, 믿는 사람, 그 사람만이 안에 십자가 들어있는 오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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