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요한복음 18장 1절(사랑의 전달)180904b-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요한복음

강남-요한복음 18장 1절(사랑의 전달)180904b-이근호 목사

지난 시간에 첫째 시간에 언어는 봉투라고 했습니다. 언어는 봉투고 그 안에 의미가 담겨 있지요. 담겨있는데 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전달할 때에 너는 죽었고 내 안에 산다고 갈라디아서를 인용해서 그렇게 이야기 했어요. 그러면 요한복음 다음에 바로 갈라디아서 나오지는 않지요. 절차가 있을거 아닙니까. 그 절차가 뭐냐 하면 바로 18장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의 배신에 의해서 예수님이 잡혔습니다. 잡혀서 체포 당해서 나중에 십자가에 죽지요. 예수님한테는 자기 죽음에 있어서의 자기 매개체 그걸 매개체라고 하는데 가룟 유다라는 매개체가 있어요. 물론 가룟 유다 내부를 쪼개 보면 거기에 누가 들어있느냐 하면 사탄이 들어있어요.

그런데 우리 인간은 자기가 구원 받고자하고 자기가 하고 싶을 때 어떤 매개도 없어요. 왜? 다같이 악마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대구 사람 서울 사람 미국 사람 아무 의미 없어요. 예수님께서 자기 언어에 담긴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제시된 것은 사탄이라는 그 매개성이 필요합니다.

악마가 예수님의 죽음에 참여했다는 것은 악마가 무엇의 대표자냐 하면 모든 인간세계를 통괄하는 통괄권이 아버지로부터 위임을 받았잖아요. 악마가 나서서 예수님을 죽이는데 결정적으로 관여했다는 말은 악마의 통치를 받고 있는 모든 세상에 모든 것들이 악마의 뜻에 따라서 같이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는 뜻이에요. 세상에 모든 것이.

일본을 2:1로 이겼잖아요 한국이. 그거 십자가하고 관련되어 있습니다. 제가 만약에 목사고시 시험 짓는다면 아시아의 축구게임과 십자가를 논하라면 됩니다. 방탄소년단의 팬클럽에 가서 십자가를 논하라 이런 것. 아무도 못 맞히겠죠. 세상에 일어난 어떤 사소한 일도 모기가 윙하고 돌아다니는 이 모든 일도 십자가에서 나온 거예요. 그래서 첫째 시간에 이걸 방사라고 했죠 ‘방사’

예수님이 자기 존재를 확산 시키는 거예요 사방으로. 여러분 치마처럼 확 퍼지는 겁니다. 뿌리는 거예요. 어느 것 하나 주와 무관한 일은 없습니다. 따라서 어느 것 하나 나와 관련된 일은 이 세상에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왜냐하면 이미 그 응축되는 그 중심체가 예수님이기 때문에 나한테 이익이 있다든지 나에게 손해가 있다든지 이런 일은 아예 그런 의미조차도 우리는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아까 악마의 통치를 받은 이상은 내 자신을 위해서 언어를 만들어 내지요. 언어를 매개로 사용해서 내게 필요한 현실 구성에 나섭니다. 현실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꾸역꾸역 나를 빛낼 현실을 계속 다듬어 나가는 겁니다. 나 자식 이만큼 키웠다든지. 내가 고생해서 너 다 키웠다든지 이런거. 계속해서 자기 역사 자기 스토리를 구성해 내는 거에요. 그러면 주님께서 딱 오게 되게 되면 그것은 뭐냐?

언어에 대한 의미 활동을 주님께서는 뭐로 삼느냐 하면 성도한테는, 크게 쓸께요. 침묵이에요 ‘침묵’. 입 다물라. 그 입 다물라 예요. 우리는 입 안 다물죠. 절대로 안 다뭅니다. 간절함에 막 기도하고 막 난리도 아니예요. 새벽기도 나오고. 우리가 침묵을 안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나 좋아라고 세상에 필요한거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세상이 그리스도 중심이 아니고 세상은 내 중심으로 보는 거예요.

이래서 구원 받겠느냐 더 착해야 해. 아니 이 경건으로는 안돼 더 경건해야해. 완벽에 완벽을 기해야 돼. 남 두 시간 기도하면 난 세 시간 기도하고, 더 철저하고. 내가 전에는 함부로 기도했는데 이제는 꿇어앉아서 기도하고. 옛날에는 우리나라에 진도만 가도 선교하고 했는데 이제는 아프리카 가든지 마다가스카르에 가가지고 의료봉사를 하던지 그렇게 인간극장 나온 것처럼 그것처럼 봉사하고. 인간극장하고 있어요 지금. 마다가스카르 가서 의료봉사 기독교 봉사하고 있어요. 그렇게 하던지 그렇게 해야 더 신나고 이러는데.

그 마다가스카르 의료봉사 그 사람 죄인들입니다. 그 죄인을 부러워하면 안돼지요. 그 사람은 그 사람의 현실을 또 그런 식으로 구성하는 거예요. 망상인데 그 사람은 거기에다가 의미를 주는 거예요. 의미를 주면 안 되는데 자꾸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자꾸 가미될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침묵 안 합니다. 뭐든지 활동해요. 그러니까 우리가 침묵 안 하니까 누가 침묵하겠어요? 주님이 침묵하죠 주님이. 그래 잘났다 그래 네가 정말 너 알아서 해라 나 입 다물고 있을께. 주님이 침묵해버려요.

그 침묵의 기간이 뭐냐 하면 바로 단절입니다 ‘단절’. 이게 십자가의 단절이에요. 단절입니다. 월드컵할 때 4강 갈 때 8강인가 4강 할 때 박지성이가 한 골 넣었죠? 세레모니가 뭐냐 하면 이거예요.(쉿) 입 다물라고. 내가 감독 히딩크 만날 때까지 가만 있어라. 히딩크 만나 안고 난리 났지요. 주님께서의 침묵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참지 못하고 떠들고 있다는 겁니다. 자기가 한 것에 대해서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난리도 아니예요. 오른손이 했는데 왼손이 파티 열고 난리예요. 그 자랑질을 못 해가지고 자제가 안돼요. 도무지 가만 있을 수가 없어요. 선교 해놓고 사진 찍고 뭐하고 가슴 찢는 회개 막 책 내고 이런 소리 하면 우리 김철기 목사가 또 싫어할텐데.

주님께서 침묵을 하는 것이 제자들과 헤어지는 순간입니다. 단절입니다. 우리 잠시 이별하자는 잠시 헤어지자. 잠시 헤어져 버리면 각자가 소속이 뚜렷하게 드러나요. 침묵이라는 것이 하나의 하나의 갭으로서 강요를 딱 해버리면 우리가 아무리 호소해도 주께서 침묵하시거든요. 아무소리 안 한다 이 말입니다. 침묵한다는 말은 네 말 안 들어 준다는 거예요. 네가 평소에 사람에게 하는 그 개소리를 나한테 짖지 마라는 겁니다. 나한테 하지 마라 이 말입니다.

그렇게 되게 되면 주님께서 침묵하게 되면 드디어 우리의 본색이 드러납니다. 주님이 안 도와 주는데 뭐. 주님이 안 도와 주는데 나라도 설쳐야 되지 않겠느냐 하고 자기 살 궁리에 들어가게 되죠. 그게 요한복음 제일 마지막장이에요. 요한복음 제일 마지막장이 21장이잖아요. 21장에 보면 누가 누구를 찾아옵니까? 제자들이 예수님 부활한 예수님 찾기 위해서 노력합니까? 어떻게 됩니까?

제자들 7명 모여가지고 12명중 가운데 5명 어디로 가버렸는지 가버렸어요. 7명 모여가지고 고기 잡을 때 그때 주님이 나타났잖아요. 주님이 먼저 나타났거든요. 그때 베드로 하는 말이 나타나주셔서 죄송하다는 거예요. 베드로의 심정은. 우리가 알아서 찾아가셔야 하는데. 뭐 찾아갈 수도 없지만 어디 있는지 모르죠. 주께서 찾아오신 거예요. 왜 찾아오셨느냐 하면은 의미라는 것은 내게 의미가 있을 때 타이밍이 맞아야 그 때 의미가 생기는 거예요.

자,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그 I'm missing you. 그 사람을 그리워하고 보고 싶을 때 내가 그리워하고 보고싶을 때 딱 나타나게 되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몰라요. 구약에 그렇게 나오잖아요.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을 만날 때 그 에스더가 나타난 그 타이밍이 어떤 타이밍이냐 하면은 왕이 자기 왕비인데도 불구하고 왕비한테 막 뿅 갔어요. 나라의 반을 주겠다. 나라의 부동산을 반을 주겠다는 겁니다. 강남이고 뭐고 반을 주겠다는 거예요.

얼마나 반했으면 아까 복습해봅시다. 사랑은 뭐다? 나를 잊어버리는 거예요 나를 잊어버리는 것. 그대 있음에 나같은 것은 상관없다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그런 시절이 있었잖아요 여러분들도. 그대 있는 걸로 내 삶을 대신 한다면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그런 이야기 했어요. 우리의 사랑은 연습도 없이 무대에 올라간다. 우리의 사랑은 연습도 없이 무대에 올라간다. 그런데 이게 꿈일지도 몰라 꿈인지도 몰라. 이게 비나리라는 심수봉의 노래. ‘비나리’. 우리 사랑 꿈인줄 몰라. 연습도 없이 무대에 올라가는 거예요 연습도 없이.

왜냐하면 뭔가 왔거든요. 확 오니까 내가 옛날에는 사랑 오기 전에는 내가 누구한테 반했어요? 나의 잘남에 반했어요. 그런데 그 사랑이 왔을 때는 내 잘남을 그야말로 아낌없이 포기해버립니다. 아낌없이. 나를 개무시해도 반갑다예요. 당신이 나를 개무시한다면 오히려 그게 나한테 영광입니다예요. 메조키스트적인 그런 자학적인 것이 있어요. 있는데. 지금 남의 이야기처럼 듣는다. 그런 사랑을 안 해 봤으니 뭐. I miss you. 나는 당신을 그리워한다.

그 말은 나는 내가 안 그립다는 겁니다. 더 이상 나는 가치 없다는 거예요. 당신 앞에서 나는 서슴없이 고백하는데 나는 당신에 비해서 전혀 가치 없습니다. 내가 가치 없음을 당신이 가치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용납하겠습니다. 미친거 아니냐 그렇게 하겠지만 사랑을 만나면 그렇게 돼요. 그런데 그게 자유예요.

그동안 자기 몸뚱아리 챙기느라고 얼마나 고생들 했습니까? 얼마나 고생했어요. 도덕이 나쁜 이유는 자기 파괴요소가 없어요. 도덕이나. 윤리나 도덕이나 자기 파괴요소가 없습니다. 계속 자기 잘 나야 돼요. 남자분들이 여러분들이 여자분들은 몰라 남자들이 왜 군대 이야기를 그렇게 괴로워하면서도 하는 이유를 알겠어요? 군에는 사랑하려고 가는게 아닙니다. 군에 애인 만들려고 군에 가는게 아니잖아요. 군에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가는 거예요. 나를 지독하게 사랑하기 위해서 군대생활하니 이게 얼마나 힘들어요. 얼마나 힘듭니까.

여자가 처녀로 살면서 그렇게 힘들지요. 그런데 누가 자기를 안전하게 보호해준다는 제안을 하면서 손에 물도 안 묻히겠다는 거예요. 물론 고무장갑 끼워 주겠지만. 손에 물도 안 묻히겠다 무조건 다. 이게 왜 좋으냐 하면요 그동안 내가 나 챙긴다고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내가 하고싶은거 다 해주겠다는데 물론 그건 빈말이지만. 경제적 여건이 되야 되겠지만. 일단 기분은 좋다 이 말이죠. 내 꿈은 그동안 내가 힘들여서 했는데 이제는 내 꿈을 내 이상을 나 말고 다른 사람이 해준다니까 아낌없이 그대 품안에 아낌없이 안겨버리는 거예요. 이제는 그쪽이 전적으로 나를 책임질거니까. 아이 낳을 때까지만 유효한 겁니다.

주님께서 단절해놓고 제자들은 도망쳤어요. 제자들의 본색이 드러났죠. 그럼 7제자들 함께 있으면 뭐냐 하면 그 있는 자리가 뭐냐 하면 죽음의 자리예요. 그 죽음의 자리가 늙으면 죽는 자리가 아니고 예수님이 없는 자리예요. 그냥 고기만 있어 고기만 잡으면 되는 거예요. 옛날에 했던 거 그대로 돌아가는 겁니다. 3년 동안 따라다니면서 교육받은거 그거 다 잊어 버려요. 시험치고 나면 다 잊어버리듯이 다 잊어버렸어요.

아무리 잊어도 잊어버릴 수가 없는 것이 뭐냐? 살아있는 나를 내가 살리지 않으면 아무도 못 살린다는 것. 내 인생을 내가 책임져야지 예수라도 책임 안 진다는 것. 내가 부지런히 벌어야 내 자식이고 나도 살 수 있다는 것. 자기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거예요. 그것은 지워지지 않아요. 인간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아무것도 달라진게 없었어요.

내 스스로 달라져서 예수 믿는다는 것은 그것은 악마의 속임수였습니다. 안 달라져요. 그리고 내가 처해있는 나의 현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시키는 이 현실이 유일한 현실이라는 거예요. 누가 나보고 죽었다고 해? 나는 지금 말하고 손이 움직이잖아. 이게 어떻게 죽은거야 라고 철썩같이 이것만이 현실이라고 보는 겁니다. 갇혔는데. 그게 꿈에 갇힌 거예요. 사실은 망상에 갇히고 현실에 갇힌 거예요.

왜냐하면 주님 안 계셔도 상관없는 삶이기 때문에. 주님 안 계셔도 상관없는. 나만 튼튼하면 아무 행복에 지장이 없는 세계. 그 세계가 바로 현재 사랑 없는 세계에요. 왜냐하면 나를 잃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은 뭐라고 했습니까? 제일 처음에 강의할 때. 뭐라고 했어요? 세자로 ‘일체감’ 이라고 했지요. 나는 남이 있으면 안돼 일체감 필요 없어. 남이 있으면 귀찮아 짜증나요. 나이들면 다 짜증나요. 누워 있으면.

그런데 주님 없는 그 자리에 주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럴 때 베드로가 뭘 느꼈느냐 하면은 주님께서 거기에 찾아왔잖아요. 저는 이것을 낯선 가까움. 분명히 낯선데 주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느끼는 겁니다. 고기 잡아서 주님과 빠이빠이 했는데 주님은 우리를 빠이빠이 하지 않았어요. 어디 있는지 알았어요. 주께서 제자들 일곱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어요. 어디에 지금 살고 있는지 알았어요. 고기 잡으러 갔는가? CCTV까면 다 나와요. 주님은 우리를 잊어본 적이 없어요.

그때 주께서 하는 단어가 두자의 단어가 나옵니다. 단어는 뭐라고 했습니까? 봉투라고 했지요. 그 봉투 안에 의미 담기죠? 뭐라고 했느냐 하면 사랑이라고 하는. 베드로보고 하는 말이 네가 나를 그 다음에 사랑하느냐? 고기를 더 잡아주는게 아니에요. 분명히 고기를 더 잡아 줄 수도 있지요. 배 오른편에 던지라 했으니까. 요한복음 21장에 그렇죠? 21장인가 20장입니까? 네 오른편에 던져라 할 때 21장이죠.

오른편으로 던져라 했을 때에 이것은 고기 문제가 아니에요. 고기 문제가 아니고 말이 이상합니다만 익숙한 낯섦이죠. 분명히 익숙한 음성인데 왜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는지. 그게 왜냐하면 내가 건널 수 없는 그 단절을 주께서 훌쩍 뛰어 넘은 거예요. 나는 저쪽에서 갈수 없는데 갈수 없음을 분명히 해놓고 우리가 아무리 애써도 갈수 없는 그 장소 그 낯선 장소에서 주님께서 이쪽으로 와버린거예요.

그러면 주님이 설정한 그 낯선 공간에 제자들이 포섭된 겁니다. 덮쳐진 거예요. 주님의 계심에. 그리고 계셨다는 그 증거가 뭐냐 하면 그 질문이 모든 중심 되는 핵심 단어가 너 몸 건강하냐? 응? 고기 많이 잡았어? 이게 아니고 네가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이야기 합니다. 나를 사랑하느냐고. 이 말은 저는 이걸 어느 설교에서 사랑은 모든 것의 모든 것. everything. 모든 것의 모든 것. all. 모든. 모든 것. 전부.

자, 그렇다면 이걸 요한복음 18장과 연관시켜 봅시다. 요한복음 18장에서 예수께서 이 말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기드론 시내라고 하는데 시내라고 할 것도 없어요 가보니까. 저는 이걸 돌판 있어서 그냥 걸어갔어요. 예루살렘과 감람산 그 사이를 기드론 시내라 하는데 그냥 물도 없어요. 그냥 가면 되는데 약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데. 거기 가가지고 있는데 거기서 예수님이 체포당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예수님이 가룟 유다한테 체포 당한 그 장소에 성당이 서 있어요. 또 성당에 들어가봤잖아요. 그 성당이 얼마나 아름다우냐가 문제가 아니고 성경의 실제 이야기라는 거예요. 요한복음 마태복음 이게 실제 이야기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한 것도 신화 동화 만화 꾸며낸 것이 아니고 실제로 있다는 겁니다.

제가 그 거기 예루살렘 답사 가가지고 제일 큰 내 개인적으로 사적으로 제일 충격 받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은 바로 천사가 왔다는 목자의 들판. 목자의 들판을 보면서 이게 천사가 온 그 들판을 보는 동시에 나의 내 중심의 현실은 망상에 불과하다. 모든 세상은 천사중심이고 주님 중심이지 영적세계 중심인데 그 앞에서 어디 깝죽대면서 내 중심을 거기에다가 내 중심의 인생, 나 이렇게 살았습니다를 어디 거기에다가 갖다 들이 밉니까. 무슨 내 인생이 있어요. 주님 앞에 포섭되고 전부 다 포함될 뿐인데요.

그것만해도 거기까지 멀리 간 비행기 값 뽑았습니다. 일인당 500만원 든다고 보면 돼요. 일인당 500만원. 많이 비싸지요. 여러분도 한번 갔으면 한다 생각 들었어요. 가기 전에는 다 환상이라 했는데 이왕 환상인거 가보면 더 괜찮잖아요. 가룟 유다 왔을 때에 그 장소에서 제자들과 이제는 헤어집니다. 예수님이 따로 가요.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낯선 가까움이라 했는데 낯선 친숙함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 이상하게 어려운데. 예수님이 인간 제자들+예수님 함께 있었잖아요. 함께 있었을 때 과연 함께 있었느냐 하는 겁니다. 절대로 함께 있었던게 아니예요. 함께 같은 아람어를 쓰시고 숙식을 같이해도 같이 있었던게 아닙니다. 제자들은 몰랐어요.

예수님께서 분리가 됨으로써 이 제자들에게 사랑이 없다가 아니라 제자들이 있는 이 현실에 뭐가 없느냐 하면 바로 사랑이 없는 거예요. 이쪽에 사랑이 없어요. 사랑이 없다는 말은 아까 이야기하면 뭐가 없다고 말합니까? 일체감이 없다는 말 2가 없다. 제대로 된 2. 2가 있고 1가 될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구원이라는 것은 내가 구원 받는 것이 아니고 구원 받은 예수님에 꼽사리 끼는 겁니다. 예수님의 구원이에요. 나의 구원은 없어요. 인간 구원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구원 밖에 없어요. 왜냐? 예수님의 언약 상대자이기 때문에 그래요.

제가 대구강의에서 한 것 잠깐 이야기해볼까요. 약속과 언약의 차이점은 뭐냐 하면 약속은 하나의 스케쥴이에요. 계획이다 이 말이죠. 박미선 씨가 이야기했잖아요. 이야기는 내가 할 테니까 글은 네가 써라. 순풍산부인과에서 그런 이야기했답니다. 자기는 말하고 남한테 어려운거 시키고. 약속은 주님이 하나님 아버지가 하시고 그걸 구체화시키는 계약 상대자는 언약 상대자 계약 상대자예요. 언약은 계약입니다.

여기는 뭐냐 하면 상대자가 있어야 언약이 돼요. 주께서는 이루는 것은 약속을 이루는게 아니고 뭘 이루느냐? 언약을 이루는 거예요 언약을. 언약을 예수님이 이루었다는 말은 언약은 누구도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뜻을 이룰 사람이 있다? 없다? 아무도 없다는 겁니다. 이걸 아까 뭐라고 했느냐 하면 인간은 자기 일을 이루는데서 어떤 매개체가 없는 거예요.

내가 소원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기도한다고 이루어지는게 아니예요. 왜? 인간에게는 어떤 매개체가 더 이상 필요치가 않아요. 왜냐하면 내 뜻을 위해서 하나님이 계신게 아니기 때문에. 내 뜻을 위해서. 내 현실 잘 되기 위해서 주님이 계신게 아니기 때문에. 내 뜻을 위해서 어떤 단어를 쓰시고 어떤 용어를 쓰시면 주여 내 기도를 들어 주시겠습니까? 기도 마지막에다가 예수 이름 갖다 붙이면 들어 응답해 주시겠습니까? 이런게 소용 없어요.

죽은 놈이 이상한 소리 하는걸 그걸 왜 들어줘요. 죽은 자인데. 그래서 제대로 기도하려면 뭐냐 하면 주여 제가 죽어있다는 것을 또 까먹었으니까 죽어 있다는 것을 계속 인식하게 하옵소서 라는 기도를 하면 되죠. 죽었다는 사실을 계속. 그럼 죽은 자가 어떻게 죽느냐 하면 죽은 자는 누가 봐요? 이게 오늘 제목을 이걸로 할까? ‘견본’ 이라는게 있지요 견본? 견본. 주님은 주님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를 견본이 필요한 거예요. 우리 자신을 필요한 거예요. 그것 봐 죽었지만 내가 살려줬다는 것을 우리를 통해서 자기의 성취를 보여주고자 하는 겁니다. 거 봐 나쁜 짓해도 봐라 구원받잖아 이런 거. 자기밖에 몰라도 가끔은 예수님 십자가 앞에서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알잖아. 이런게 기적이란 말이죠 이런게. 이런게 다른 사람하고 달라요.

낯설다는 말은 뭐냐 하면은 용어 또 어려운게 나오지만 낯설다는 말은요 내가 동그라미 친 바운더리 친 그 바깥이다 이 말이죠. 낯설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것은 내가 익숙하게 알거든요. 그 안에 바깥에 있다. 그걸 뭐냐 하면 여분의 것이라고 하는 겁니다. 사랑은 여분의 것이에요. 안 줘도 괜찮은데 주신 거예요. 안 줘도. 나같은 인간을 구원 안 해도 되는데 구원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구원을 사랑합니다. 왜? 낯설고 여분의 것이기 때문에. 횡재라는 말 있지요? 그게 딱 어울려요. 왠 떡이냐. 갑자기 제목이 ‘왠 떡이냐’.

저는 백날 구원해도 구원 하나 안 하나 똑같아요. 우리는 구원 하나 안 하나 나 잘 되는 것 외에는 생각할 줄 우리는 마귀한테 그것만 배웠고 우리가 할 수 있는게 그거예요. 나 잘 되는 거예요. 나 뽐내는 거예요. 남에게 보여주는 삶, 우리는 주특기 그겁니다. 남한테 보여주는 삶이에요. 아내가 머리했는데 남편이 가만있으면 섭섭하기 짝이 없어요. 예를 들면 갈라 서 이렇게 나와요. 뭐야? 잘 나왔다 물어야지. 머리 잘 나왔냐고 물어줘야지. 그런데 남편의 바운더리에는 그게 없어요. 남편은 지금 프로야구 보고 있어요. 삼성이 지금 5등 가을야구 그것만 보고 있어요. 그 앞에 머리 들이밀어도 그거 관계 없어요.

인간은 각자 살아가는 거예요. 그게 자연스럽고 할 줄 아는게 그거 밖에 없어요. 제발 할 줄 아는 것만 하세요. 더 이상 유별나게 주를 위해서 하지 말고 본인 잘 하는거 있잖아요. 자기 챙기는 것. 변명하는 것, 자기 죄 감추는 것. 그거 뭐 안 가르쳐 줘도 안 배워도 그렇게 잘 하더라구요. 그거 하세요. 그래서 주님의 사랑이 늘 낯설게 느껴지도록 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감사가 안 나옵니다. 익히 아는 것은 감사가 될 수 없어요. 당연한게 되지요.

제가 아는 사람이 있는데 아들이 하나 밖에 없어요. 두 부부가 아들이 이뻐서 조금만 공부 잘 하면 우리 아들 천재 같애 아이큐 150 넘는거 같아 이렇게 호들갑 떨어요. 그래가지고 아들이 해달라고 하는거 다 해줘요. 건담이고 뭐고 아이가 어릴 때부터 해달라는거 다 해줬습니다. 애가 그걸로 부모한테 감사할 줄 알았어요. 부모의 착각이에요. 욕망의 차감의 법칙도 몰랐던 거예요. 경제의 기본. 사람이 한번 레벨이 올라가게 되면 점점 더 더더더 레벨이 올라간다는 사실을 몰랐던 겁니다. 분수에 안 맞는 것을 계속 달라고 합니다.

부모로서는 사는 보람이 그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해서 그 아이가 만족하는 것 내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만족하는 것을 그 부부의 유일한 세상사는 보람이었어요. 아이가 도가 넘쳤어요 이제는. 세상에 고등학생이 차 사달라고 하는 거예요. 운전면허증도 없어요. 그래서 이거는 좀 심하다 해서 아빠가 그것도 잠시 화를 냈어요 잠시. 안 된다. 잠시 화냈다고 그 아이가 아파트 15층에서 문 열고 투신을 시도합니다. 아이 누가 그렇게 키웠습니까? 누가 그렇게 키웠어요? 부모가 바보 등신같이 자식이 부모한테 잘해주면 자식이 부모한테 고맙다고 생각할 줄 알았어요. 부모한테 고맙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빈말인데 그것은 더 빼내기 위한 하나의 언어의 매개에 불과하거든요.

세상에 무슨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자식 없어요. 왜그러냐 하면 자식은 누구한테 태어났느냐 하면 그 부모 밑에서 태어났거든요. 부모가 그 자식이 부모를 사랑할 때는 나중에 자기가 자기 자식 사랑할 때, 그동안 너무 심했다 생각해서 예의 삼아 부모한테 부모 노래 부르면서 이제야 부모의 사랑을 불효자는 웁니다 이러면서 그 때 때우기 위해서 봉투 10만원 넣고 때우기 위해서 한 소리 이벤트에 불과한 거예요.

절대로 인간은 부모를 사랑할 수 없어요. 왜? 생겨먹은게 그래요. 이게 못 되서가 아니예요. 그럼 자식은 왜 사랑하느냐? 자식은 끝까지 자기 소유거든요. 부모가 자식이 부모를 이용해가지고 부모가 아플 때까지 늙은 부모 다 온갖 다 시키고 용돈 쥐꼬리만큼 주고 내쳐도 그런 자식을 부모는 미워하지를 않아요. 미워하지 않는 것 때문에 자식이 점점 더 고질병이 더 심해져요. 이제 부모는 더 함부로 해도 괜찮고 내 쫓아도 상관없다 하더라도 남이 그 자식을 욕해도 누가 막느냐? 부모가 나서서 막아줘요. 내 자식 누가 욕 하냐고. 부모는 끝까지 자식을 버려놓는 당사자가 부모입니다. 그놈의 말도 안 되는 사랑이라는 이유 때문에.

사랑이 그런 거예요. 사랑이 인간의 사랑은 그런 겁니다. 그 현실이라는 현장을 떠날 수가 없어요. 그런데 현실을 인간은 떠나지를 못하면서 현실이 뭔지를 몰라요. 왜? 외부에서 나에게 내가 어떤 인간이라는 것을 알려 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둘 다 바보거든요. 같은 인간이 다 바보니까 아무도 알려줄 수가 없습니다. 명절 돼 보세요. 전부 다 지 자식 자랑 공부 자랑 명절 때 쭈욱 큰집에 다 모여서 고스톱 치면서 이야기하는거 보면 전부 다 지 자식 공부 천재 천재 아닌 애가 없어. 전부 다. 공부 못 하면 딴 거 또 잘 해. 게임 잘 한다는 거예요. 나중에 올림픽 나가서 e-게임해서 우승하겠다는 겁니다.

어떤 애는 또 공부는 못하지만 벌써 춤은 잘 춘다는 거예요. 우리나라에 걸그룹이 300:1입니다. 300명이고 성공할 수 있는 비율이 0.01%에요. 통계로 딱 나옵니다. 왜 부모가 자식한테 미치느냐 하면 달리 미칠 데가 없거든. 달리 투자할 데가 없어요. 부모 생겨먹은게 그거에요. 그 부모 밑에 그 똑같은 자식이 나왔으니까 그 자식도 또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장소에요. 장소, 자리. 내가 속해 있는 그 환경이 말해줍니다. 인간은 자기 자리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 자리를 대표하는 것은 사탄이고 그 사탄을 12제자 가운데 누가 대표했다? 가룟 유다가 대표한 거예요.

가룟 유다가 예수 팔아먹자 12제자 다 깨졌어요. 가룟 유다는 망해도 우리끼리 만나자 그런거 없어요. 다 깨졌어요. 따라서 잡힐 때 제자들이 안 잡아서 잡혔다는 일은 벌어지지 않아야 돼요. 따라서 여기에 보게 되면 예수님이 알아서 잡히는 걸로 되어 있어요. 상당히 재미있는 문제지요. 예수님이 잡힐 때에 그러시면 안 됩니다 붙잡을 수 있는 능력자는 인간 속에 있었다? 없었다? 아무도 없었어요. 자, 예수님이 인간 세계에서 현실 꿈이죠 꿈인데 하여튼 개꿈인데. 인간 세상에서 빠져나오잖아요. 빠져나올 때 예수님이 인간에게 떠밀려서 빠져나온게 아니고 예수님이 알아서 빠져나온 거예요.

왜냐하면 사탄도 천사거든요. 천사는 자기 일이 없어요. 천사는 하나님이 시키는대로 할 뿐이에요. 원래 천사는 피조물이거든요. 악마가 인간세계에 있으니까 자기가 왕질하지 주님 앞에서는 하나님 앞에서는 악마는 자기 주장 못해요. 가룟 유다야 네 할 일 해야지 그러니까 가룟 유다가 얼굴 확 돌아가면서 나간 거예요. 마귀 마저 누가 다룹니까? 주님이 다루시는 거예요. 마귀 마저.

사도행전 19장에 이야기했잖아요 내가. 귀신이 뭐라고 합니까?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안다. 이 말이 뭐냐 하면 하나님 쪽에서 주님 쪽에서 사도 바울을 다루는 걸 내가 알고 있는데 너는 나하고 같은 편이면서 나를 쫓아낸다는 것이 네가 말이 되나? 너는 주님이 몰라 이 말 아닙니까. 어디 쫄개가 어디 쫄개가 주인을 쫓아내요. 이 세상은 모든걸 악마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악마를 겁낼 필요가 없다니까요. 워~해도 겁내지 마세요. 복도에서 턱턱 걸어와도 겁내지 마세요. 여고괴담에 나왔어요. 겁내지 마세요.

주께서 허락하지 시키지 않으면 절대로 우리 생명 못 뺏어가요. 살고 싶어도 죽을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어떤 뮤지컬하는 사람이 칼로 칼 치기 해서 배우가 죽었다고 하는데 그 시간이 그거 안 해도 죽게 되어 있어요. 그거 안 하고 박해미하고 같이 있어도 죽게 되 있어요. 갑자기 헉하고 죽게 되어 있다니까. 죽는 환경은 죽는 요건과 그 변수는 주님이 장만해주는 겁니다. 내가 죽을 장만 하는게 아니에요. 번개탄 피워 죽으려고 해도 그 가게에 하나도 없어요. 그 사람 못 죽어요. 다음 날로 미뤄야 돼. 어떤 사람은 한강 뛰어내리려고 했는데 물 너무 차가워서 못 그 다음 날로 미뤄서 살았잖아요. 물 차가우면 못 뛰어내려요. 좀 괜찮게 죽어야지 추워서.

세상의 모든 발걸음과 모든 움직임 모든 동작 하나하나가 절대로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게 아닙니다. 세상 안에 갇혀있거든요. 마귀는 새장 안에 갇혀있습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해요. 주께서 빠져나갈 때 죄 안에서 빠져나갔습니다. 그러면 들어올 때 어떻게 들어오느냐 부활하셨잖아요. 다시 들어옵니다. 그럼 다시 들어올 때 뭐를 포함되느냐 하면 예수님 다시 들어올 때 사랑이 있잖아요. 사랑한다고 했지요. 사랑 안에 뭐가 포함되어 있느냐 하면 바로 ‘단절’, 다른 말로 하면 ‘너의 죽음 나의 죽음’ 이 ‘죽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안에 그 의미가 포함된 사랑입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 죽자 이 말이에요. 나 너 찾아온 것은 우리 꼭 끌어안고 임당수에 그냥 같이 죽으라고 온 겁니다. 그럼 우리 집에 가훈은 뭐가 되겠어요? 죽자가 되겠지요. 앞으로 뭘 하면서 살겠다가 아니라 주식을 어디 투자하면서 살고 펀드를 어떻게 분산하면 몇 개 들어서 살 거가 아니고 펀드를 어디 들어야 내가 죽을 수 있느냐. 건강검진을 일년에 몇 번 받아야 내가 죽을 수 있느냐 이걸 생각하면 돼요. 그 오메가3를 하루에 몇 번 먹어야 내가 죽을 수 있느냐. 그럼 오메가3를 안 먹으면 죽지 않겠느냐 안 먹으면 골병 들지요. 그러니까 건강하게 죽어야 돼요. 쌩쌩하게 죽어야 돼요 쌩쌩하게. 아침에 조깅해야 돼요. 다이어트해서 깨끗하게 뱃살 줄이고 몸매 괜찮게 죽어야 돼요.

왜? 그 죽는 것이 사도 바울의 소원이었기 때문에 사도바울의 소원인 거예요. 제가 그 저 주일날 했지만 우리가 고인을 떠나보낸게 아니라 우리가 남겨진 자입니다. 아이 우리는 남겨두고 먼저 가면 어떡해. 오히려 누가 누구를 위로해야 하느냐 하면 남겨진 자를 위로해야 돼요. 형님 우리 남겨졌습니다. 아이고 진작가지 않고 순서가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글쎄 말입니다. 아이고 동생아 너무 안됐다. 지금 돌아가신 분 보고 울면 안 되고 우리가 울어야 돼 우리가. 또 순서 탈락했거든요.

날 안 데려가고 왜 어머니를 왜 돌아가게 하십니까? 고생 내년 되면 더 더울 거 아닙니까? 내년되면 더 덥거든요. 내년 되면 아파트 전체가 다 정전 되면 에어컨도 못 킨다니까. 아프트 전체가. 어떻게 그걸 견딥니까? 날씨는 덥지요. 겨울은 얼마나 또 추울까요. 얼마나 좋겠나 빠져버렸으니까. 이거는 뭐 엄마가 같이 데려가지 않고 혼자 가버리고 얼마나 이기주의예요. 자식은 고생하라고 남겨두고. 오메가3 에다가 또 로얄제리 먹어가면서 또 뭐더라 더블엑스? 암웨이에서 또 나온게 있나봐요. 그거 먹어가면서 오늘 또 혈압약까지 먹거든요. 죽자. 이거 먹고 죽을 때 쌩쌩하게 퍼덕거리면서 죽자. 늘 이렇게 해야 되고 차 오면 비켜야 되고 왜? 그냥 하면 또 비참하게 죽으면 안돼. 비켜야 되고 또 cctv 달고 도둑놈한테 죽으면 안 되니까 그거 해야 되고 다 해야 돼요. 주께서 허락하신 거기 때문에 마다할 일 없습니다. 선물이니까.

자, 마지막으로 이야기 할 것은 바로 ‘불러냄’ 이에요. 어떻게 불러내느냐 하는 겁니다. 주께서 불러내실 때 어떻게 불러내느냐 하면 우리에게 낯선 체험을 줍니다. ‘낯선 체험’. 낯선 체험이라고 하는 것은 기존의 것을 우리가 딱 이렇게 움켜쥐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거예요. 나 이런 인간이야 나 이게 현실이야 나 이만큼 고생해서 이런 인생 내 가정 이루었어 라는게 있는 겁니다. 기존에 있어줘야 그것과 대비해서 ‘낯섦’ 이라는 것이 성립이 되잖아요.

그럼 기존에 있는 것은 뭐냐? 쉽게 말해서 행복의 요건이 뭐냐 하면 돈과 명예와 건강 이 세가지만 있어도 명예 속에 많은게 포함되니까 남이 날 알아준다 이 말 아닙니까. 돈과 명예와 건강 이 세 가지만 있어도 행복한 거예요. 그런데 여기에 이게 기존의 것이란 말이에요. 행복이란 돈+명예+건강 이 세 가지로 기본 되어있는데 여기에 주님께서는 포함되지 않는 낯선게 들어와요. 낯선게 들어오는 순간 이 세 가지를 잠시 잊어버리게 되는 겁니다. 잠시에요 잠시. 어떤 사람은 3초 어떤 사람은 5초 가는거 있는데 잠시 잊어버리게 돼요.

그게 뭐냐 하면 낯선 분이 새로운 존재로 다가와요 존재. 새로운 존재니까 몸으로 들어가죠. 먼저 봅시다. 인간은 나는 행복하다 돈 있어야 되고 명예 있어야 되고 건강하다 할 때 이 주인공이 누구예요? 이 주인공이 누굽니까? 제가 주인공이라고 했지만 어렵게 말해서 이 주체가 누구예요? 내가 주체지요. 그러면 주님이 찾아와 버리면 내가 주체가 뭐로 바뀌느냐 하면 이게 객체로 바뀝니다. 하나의 객체로 바뀌어요.

그러면 주님 오게 되면 나는 나 밖에 몰라 이렇게 됐는데 이게 뭐로 변합니까? 2가 되지요. 이 주님이 주인이 되고 나는 주님을 위한 객체가 될 때 이 둘 사이에 뭐가 형성되겠습니까? 바로 사랑이 되지요. 사랑은 단절되었는데 다시 말해서 내가 주님을 사랑한 적도 없고 좋아한 적도 없고 기다린 적도 없고 오시라고 한 적도 없어요.

우리가 주님을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할 때는 우리가 빌어먹을 때만 그런 소리 나와요 진심으로. 그렇잖아요. 인간이 빌어먹지 않는 상황에서는 예수님 오시옵소서하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은 그냥 오시지 말고 돈 들고 오시고 명예 들고 오시고 건강케 해주시고 빈손으로 오지 말고 선물 들고 오라 이 말이거든요. 북한이랑 똑같아요. 회담 올 때 그냥 빈손으로 오면 싫어해요. 세상이 다 그런 거예요.

사랑은 단절이라는 말은 사실은 내가 사는 동네이야기만 기억하고 있어서 그 기억이 모아져서 우리는 이것을 현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기억한 것. 내가 경험한거 말고 기억한 것. 기억하더라도 내게 유리하지 않기 때문에 잊어버리고 이거는 기억이 안 되잖아요. 내가 기억한 거예요 기억한 거. 내가 기억한 것의 집대성이 바로 이것이 현실로 본겁니다.

주님께서는 그 기억을 무슨 기억으로 보느냐 하면 조금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그 기억을 뭐냐 하면 다녀간 기억. 다시 말해서 내가 이 세상을 다녀갔다는 그 기억을 우리는 기억하지 못해요. 주님의 체험이거든요. 주님의 체험을 우리 속에 집어넣을 때 우리는 이 사랑이 어떤 사랑이냐 하면 낯선 사랑이 되면서 주의 자리에 있던 것을 객체로 바뀌어 버립니다. 여러분들 표정 보니까 모르겠다는 표정인데 그러면 쉽게 하겠습니다.

인간은 모든 것이 명사거든요 명사. 명사에서 명사로 갈 때 앞에 뭐가 필요하느냐 하면 여기에 동사가 필요해요 동사가. 내가 여기 있는데 나는 뭐가 되고 싶다 할 때에 뭐가 되고 싶다 할 때 이것은 명사로 이렇게 굳히잖아요 명사. 확정된 명사로 덩어리로. ‘나’ 라는 덩어리로 만들 때 그 다음에 여기서 동사니까 동사는 뭐냐 하면 뭐 이렇게 행하자 이렇게 행하면 되잖아요. 그렇게 행하자 될 때 이 동사 자리에다가 주님께서는 여기에다가 네가 모든 동사 행함은 죽음이다.

죽음에서 나온 동사다 라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겁니다. 주님의 죽음. 그런데 나의죽음이죠. 나는 죽은 행동으로 밖에 보지 않는다. 여기 마주해서 뭐냐 하면 예수님의 죽음이 주님께서 원하는 너에서 주께서 원하는 명사로 가버리죠. 그렇게 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명사에서 이것을 저는 나의 소망 나의 희망 기대 돈과 명예와 건강 이렇게 되지요.

인간은 열심히 실천이라는 이름의 행함을 집어넣습니다. 그냥 놀면 뻔뻔스럽잖아요. 뭔가 기도를 하든지 헌신을 하든지 주님께 착하게 살아야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 이 명사는 주님께 생각하는 명사는 이게 끊어져 단절되어 있다 이 말이죠. 그럼 방향을 틀어야죠. 현재 나라는 인간이 나의 행함으로 이쪽으로 빠지는 것을 주님께서는 주님의 행함 주님의 죽으심에 빠져버리면 내가 모르는 낯선 목적의 주님 앞에 객체, 주님의 신부로서 낯선 객체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주님께서 요구하는 나의 모습과 내가 기대하는 나의 모습과의 여기서 뭐가 됩니까? 여기 끊어져 있음을 발견하지요. 이 끊어져 있음이 뭐냐 하면 이게 뭐로 이어져야 되느냐 이게 감사로 이어져야 됩니다 감사. 그래서 요한복음 18장이 있는 겁니다. 내가 너희에게 잡혀갔을 때에 이 세상 빠져나올 때에 너희들 다 도망갔잖아. 도망간 너희를 내가 다시 찾아왔다는 말은 네가 나한테 더 이상 해줄게 있다는 말이에요 없다는 말이에요? 없다는 말이에요. 그게 없다는 말이에요. 내가 일부러 찾아온 거예요.

주께서 먼저 사랑한다고 찾아오신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만약에 철이 없어가지고 사랑하면 뭐 내가 원하는거 주셔야 되지 않습니까? 하는데 그건 네가 원하는 명사고 주께서 가자하는 명사는 이미 이거는 주께서 다 해놨어요. 신데렐라 그 공주처럼 이제 시집만 가면 돼요 시집만. 여기서 시집 가봤잖아. 또 가면 돼요. 시집만 가면 돼요.

성령을 안 받은 사람은 자기가 살고 있는 이 집에 좀 허술하니까 개선하려고 하고 자기가 동사 자기가 열심히 걸레질 해가지고 반들반들 깨끗하게 되면 자기가 아는 범위에서 자기가 행하기 전보다 더 깨끗해졌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 집에. 그런데 이층집은 완전히. 그래서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것 아까 기억이란 말 했지요. 내가 아는 현실 속에서 우수한 현실로 개선해볼라고 열심히 노력하는데 여기 일층집이라면 이층집에 누가 있느냐 하면 주님의 나라 천국이 있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천국을 원하는게 아니예요. 내가 경험했던 것보다 더 우수한 더 사회적으로 더 나를 행복케 해주는 여기를 지향하면서 행동을 조심해야 얻을 수 있다. 실천을 바르게 하면 얻을 수 있다. 맨날 이렇게 하는 거예요. 왜냐 일층과 이층은 단절되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이층에서 내려와가지고 가자! 손목 비틀고 데려갑니다. 손목 비틀고. 우리는 계속 이러시면 나 실패해요 하는데 너는 실패해도 괜찮아. 이러면 저 죽습니다. 그만 살아야지.

자꾸 봉투의 의미가 달라져요. 내가 원하는 의미를 주는게 아니고 내가 낯선 의미가 계속해서 말씀 속에서 나오는 거예요. 내가 이거 지켜서 우리 애들 공부 잘하고 요한복음 봐야지. 왜? 그거하면 애들 공부 잘하겠지. 내가 원하는걸 달라고 하는데 주께서는 내가 그런 너의 행함이 소용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마지막으로 주님은 어떻게 하느냐 주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행함과 우리가 하는 행함을 계속 대비를 시켜가지고 이것이 서로 끊어져있음을 확인해서 우리로 하여금 감사케하는 겁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주께서 이미 다 이루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일은 항상 뭐로 끝나겠어요? 감사와 고마움으로 일어나는 겁니다.

그 가운데 필수적으로 나의 고집과 나의 어리석음과 나의 착각과 망상을 있는데다 다 노출시킵니다. 그게 뭐냐 내 인생 꼴아박았다. 내 인생 망가졌다. 남한테 남을 통해서 내 인생을 구축하는데 내 친척 앞에 명절날 내놓을게 없네. 애는? 꼴찌했습니다. 주식은? 말아 먹었습니다. 집은? 쫓겨났습니다. 뭔가 내놓을게 없어. 서울에 있는 애한테 너 명절날 안 내려오나? 취직했나? 취직 못 했습니다. 시집은? 못 갔습니다. 내려오지 말아라.

사람은 보여주는 삶을 사는데 이게 명사인데 이게 현실에서 나한테 강요받은 건데 전혀 없는 거예요. 취직 못 해도 내려가세요. 너 왜 그렇게 사니? 나 이렇게 사는 것도 내가 감사한줄 이제 알았어요. 주께서 이렇게 살게 했습니다. 그것 봐라 또 주님 핑계댄다. 네가 게을러서 못 해놓고 네가 실수해놓고 너 음주운전 해서 200만원 물어줬잖아. 그것도 모르지? 이 뻔뻔한 것. 나 뻔뻔함으로 삽니다. 너 음주운전 했잖아. 주께서 그렇게 하게 하십니다. 세상에 뻔뻔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이러면서 삽니다. 그렇지만 나만 그런게 아니라 아버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인간은 찾아오지 않으면 구원 없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사랑의 전달에서 십자가란 단절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다 이루었다는 사랑으로 찾아와서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내 인생에 관여하지 않고 내 인생에서 손을 놔버리게 해주신 그 은혜를 감사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70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열람 ➜ 자유게시판 강남-요한복음 18장 1절(사랑의 전달)180904b-이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8-09-14
16,916 자유게시판 강남-요한복음 18장 1절(사랑의 전달)180904a-이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8-09-14
16,915 자유게시판 20180910b 부산강의 : [시편]13(7편)-구조와 정서 시편 최고관리자 18-09-13
16,914 자유게시판 20180910a 부산강의 : [시편]13(7편)-구조와 정서 시편 최고관리자 18-09-13
16,913 자유게시판 155강-창 40장 9-20절(꿈 해석)180912-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18-09-13
16,912 강의 사무엘상 42강 (소유욕), 마태복음 104강(임금) - 최고관리자 18-09-11
16,911 자유게시판 20180907b 울산강의-레위기 20장 : 하체 레위기 최고관리자 18-09-11
16,910 자유게시판 20180907a 울산강의-레위기 20장 : 하체 레위기 최고관리자 18-09-11
16,909 강의 구조와 정서 180910 시편 최고관리자 18-09-10
16,908 자유게시판 305강-갈 5장 22-24(성령의 열매)180909-이 근호 목사 갈라디아서 최고관리자 18-09-10
16,907 자유게시판 201강-여호수아 6장 1~5절(여리고성 앞에서)20180909-이 근호 목사 여호수아 최고관리자 18-09-09
16,906 묻고답하기 헛된 영광 갈라디아서 최고관리자 18-09-09
16,905 자유게시판 안양20180810b야3장13절(역신학)-이 근호 이사야 최고관리자 18-09-08
16,904 자유게시판 안양20180810a야3장13절(역신학)-이 근호 야고보서 최고관리자 18-09-08
16,903 강의 하체2 180907 레위기 최고관리자 18-09-07
16,902 자유게시판 154강-창 40장 5-8절(바로의 두 신하)180905-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18-09-06
16,901 자유게시판 249강-YouTube강의(극장과 교회)20180905-이 근호 목사 - 최고관리자 18-09-06
16,900 자유게시판 248강-YouTube강의(말씀의 권위)20180905-이 근호 목사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18-09-06
16,899 강의 사랑의 전달 180904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8-09-05
16,898 강의 유튜브 강의 (248강, 249강) 말씀의 권위, 극장과 교회 180904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18-09-05
16,897 강의 [18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41 - 질문 속의 답 창세기 최고관리자 18-09-03
16,896 자유게시판 304강-갈 5장 18-21(육체의 열매)180902-이 근호 목사 갈라디아서 최고관리자 18-09-03
16,895 자유게시판 강남-요한복음 17장 24절(가족)180821b-이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8-09-03
16,894 자유게시판 강남-요한복음 17장 24절(가족)180821a-이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8-09-03
16,893 자유게시판 200강-여호수아 5장 13~15절(군대 장관)20180902-이 근호 목사 여호수아 최고관리자 18-09-02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