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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사무엘상 42강 (소유욕), 마태복음 104강(임금)강의-

소유욕(삼상 15장7-24절)
대전- 42강

이근호

2018년 9월 18일
본문말씀: 사무엘 상 15:7-24

(삼상 15:7) 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치고
(삼상 15:8)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삼상 15:9)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삼상 15:10)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삼상 15:11)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삼상 15:12)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더니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삼상 15: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즉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하니
(삼상 15:14) 사무엘이 이르되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라
(삼상 15:15) 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는지라
(삼상 15:1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가만히 계시옵소서 간 밤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신 것을 왕에게 말하리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말씀하소서
(삼상 15:17)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삼상 15:18) 또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삼상 15:19)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삼상 15:20)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삼상 15:21)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삼상 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 15: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삼상 15: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사무엘 상 15장 7절부터 9절 까지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말렉과 전쟁을 유발시키셨는데 여기서 아말렉이 먼저 공격했다는 것을 아셔야 되요. 이스라엘이 먼저 공격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에게 아말렉을 붙여 공격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무엇을 이야기 하냐 하면 죽음의 의미 즉 죽음이란 게 뭐냐를 알게 하는 겁니다. 보통 죽음이라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 목숨이 끊어질 때 비로소 죽음을 안다고 하잖아요. 그러나 그것은 죽은 당사자만 알지 살아있는 사람은 타인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이상 죽음에 대해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면 죽음이란 것을 나중에 알면 되지 지금 살아있을 때는 구태어 죽음을 알아야 되냐는 생각들을 하겠지요. 하나님께서 죽음을 알게 한다는 것은 인간을 처음 만들 때는 죽음이란 것이 없었다는 겁니다. 죽지 않을 인간을 만든 거에요. 죽지 않을 인간을 만들어 놨는데 무슨 난리를 쳐서 죽게 되는 인간이 되었다면 인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죽음의 의미가 하나님 앞에 더 중요한 거에요. 왜냐하면 죽음의 의미를 함유하고 있어야, 갖고 있어야 원래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을 알 수가 있어요. 하나님께서 그냥 하늘에 계시면 우리는 하나님을 몰라요. 하나님이 이 땅에 와도 우리는 하나님을 몰라요.

하나님을 아는 순간이 하나님이 뭔가를 알려 줄 때인데 그것이 뭐냐하면 죽음입니다. 인간에겐 죽음 없이는 하나님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됨은 살아있다고 우기는 인간에겐 알 길이 없습니다. 살아있다고 하는 것은 가짜 인간이기 때문에 나는 살아있기 때문에 죽음과는 나와는 상관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쪽에선 죽음을 품고 왔는데 그것을 마중 나오는 인간은 죽음을 도외시 한다는 것은 그 둘 사이에 대화가 될 리 없지요. 교회에 가 보세요. 죽여 주세요 하고 나오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죽음을 앞장 세워 우리에게 나타나셨는데 교회에 가면 죽여 달라는 사람 하나도 없지요. 그러니 교회가 절간하고 똑같은 거에요. 아무 의미 없는 곳입니다. 살아 있는 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찬양한다면 뭐가 빠졌습니까? 무슨 요소가 빠졌어요? 죽음의 요소가 없잖아요. 살아 있는 내가 살아 계신 하나님께 헌금을 한다. 뭐가 빠졌어요? 죽음이 빠진 거에요. 죽음이 빠지면 가상 신을 섬기고 있는 겁니다. 살아 있는 나를 더 살려 달라고 가상 신을 만들어 놓고 비는 거에요. 알다시피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멀쩡히 살아있으면서 할 수 있는 어떤 요건도 없어요.

하나님과 함께 죽을 때 비로소 하나님과 함께 있는 거에요. 하나님만 죽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부러 가져오신 죽음 안에 우리가 합류할 때 비로소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사귀는 중입니다. (죽음 안 = 십자가 안) 같은 이야기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피 안에서 또는 성령 안에서 같은 말이에요. 신약 성경에서 사도 바울의 편지에 보면 인간을 두 종류로 나눕니다. 십자가 안에 있는 사람과 바깥에 있는 사람. 서울에 있는 사람과 재전에 있는 사람을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 안에 있는 사람과 죽음 밖에 있는 사람으로 나눕니다. 이게 맞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맞는 이야기인데 한국의 기독교 150년 동안 아무도 이야기를 안 하니까 말하는 나도 성경과 다른 소릴 하는 느낌입니다. 한국 교회는 교단 안에서, 교회 안에서 그것을 이야기 하고 있어요. 여러분은 어느 교단에 속합니다. 어느 교회에 속합니다만 이야기 했어요. 등록 하세요. 백날 교회에 속해 있어도 살아 있는 체 가는 거에요. 만약에 지금 여기서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그 가정 안으로 들어가요. 가정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가정 안으로 들어가요. 아파트 밖으로 나왔다가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는 거지요. 그러면 하나님과 무슨 관계있어요? 아무 상관없거든요.

지난 오후 설교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수님께 복을 달라고 힘을 달라고들 하는데 제가 황금 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를 했지요. 황금 알을 매일 낳으니까 그 안에 뭐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까? 황금 덩어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내지는 황금을 만드는 기계가 그 안에 있는 줄 알았어요. 죽여 놓고 보니까 보통 거위와 똑같았습니다. 그리고 백숙이라도 해 먹었는지, (웃음) 똑 같아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고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병자들을 고치셨잖아요. 그래서 예수님 안에 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요. 그러면 예수님을 한번 그렇게 쪼개 보자 말이죠.

쪼개 보니까 뭐가 들어 있어요? 설교 시간에 말했듯 그 안에 황금이 들어 있는 게 아닙니다. 능력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에요. 세상 사람들의 무시가 들어 있어요. 세상 사람들에게서의 버림받음이 들어 있는 거에요. 그 버림받음이 풍랑을 잠잠케 했고 그 버림받음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그 버림받음이 우리 죄를 사해 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하고 나처럼 세상에게 버림받을 수 있느냐 따를 수 있느냐를 묻는 거에요. 당당하게 버림받는 그 능력이 천국에 들어 온 것이 확인되는 것이고 버림받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남에게 무시당할 수 있는 능력.

다른 예수는 상상하지 마세요. 다른 예수는 없어요. 복음 가지고는 목회 안 됩니다. 이런 소릴 하는 데 무슨 목회가 되겠어요? 안 됩니다. 헌금하려고 돈 넣으려다 빼요. 택도 없는 소리지요. 절에 가던 사람이 교회로 올 때 그 인간이 그 인간이에요. 절은 산에 있어서 머니까 가까운 교회로 가는 거에요. 그 인간 안 변했습니다. 변하지도 안는데 천국에 간다? 이건 예수님께서 극구 말리는 겁니다.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한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너희가 이 세상을 실컷 봤잖아 보고 본 것을 통해서 구성된 사고방식이 있을 게 아닙니까? 인생관이랄지 가치관.

그렇지요? 그냥 보기만 했을까요? 인간이 듣기만 했을까요? 이 세상에서 보고 들은 것 가지고 구성되는 게 있다는 말입니다. 그게 인생관이고 가치관이잖아요. 그런 가치관과 인생관은 천국에 올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알지 못한다는 말은 천국은 그런 구성된 사고방식으론 넣어 주지 않는 곳이에요. 그러면 사람들이 어떤 사고방식이어야 되냐고 묻겠지요. 그게 바로 예수님 안에 들어 있는 사고방식, 예수님이 보는 안목으로 세상을 보는 겁니다. 30년째 이야기해도 사람들은 못 알아들어요. 이야기를 해서 알아들을 것 같으면 말도 안하지요.

교회가 믿는 하나님은 우상이라고 옛날부터 이야기 했거든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요. 교회가 내세우는 예수는 가짜 예수에요. 왜? 내가 안 변하는데 30년 40년이 되도 내가 안 변했어요. 교회에 다니면서 뭐를 하냐 하면 내가 하고 있는 일에 플러스에요. 내가 하는 일도 꽉 쥐고 있고 또 교회에 다니면서 취미 생활 하나 더 보태고 8+1이에요. 9+1이든지 지금 갖고 있는 것이 6 이라면 거기에 하나 더 보태서 온전히 7로 해서 살아 있을 때는 6으로 죽을 때는 하나 더 보태서 7로 하려고 이것을 제가 보험 드는 것과 같다고 했잖아요. 그게 아니에요. 교회에선 그게 맞는데 성경을 보면 아니라니까요.

그래도 사람들은 성경을 안 보거든요. 교회엔 가도 성경은 안 봐요. 다시 이야기 합니다. 전쟁이 없이는 죽음의 의미를 모릅니다. 아말렉이 쳐들어 와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붙여 붰을 때 지난 설교에서도 했지만 모든 전쟁은 여리고 성 안에 있는 사람이나 여리고 성을 돌고 있는 사람이나 똑같아요.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별난 사람들이 아니에요. 설교하면서 막 살아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오해하기를 착하게 살다가 악하게 사는 것으로 오해들 하는데 그게 아니고 막 살아라는 말은 마음을 낮추라는 이야기입니다. 악하게 사는 게 마음을 낮추는 것이 아니에요. 악하게 사는 게 자랑인줄 알고

마음을 낮추라는 것은 번거로운 것이나 귀찮은 것이나 더 이상 이런 게 남아있지 않다는 겁니다. 한 평생 살면서 이런 고백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주님만으로 좋아요. 이런 고백이라면 무엇이 무섭지 않으냐 하면 번거로운 일이나 귀찮은 일이니 짜증나는 일이 더 이상 겁나지 않아요. 주님만으로 족하게 되면 사람들은 살면서 번거로운 일이 생길 까봐 미리 겁을 내요. 집 하나를 사고 옮길 때 서류 하는 것을 겁내잖아요. 기차 표 예매하는 것도 짜증나요. 예수님만으로 좋아요를 두 자로 하면 자유라고 해요. 어떤 번거로운 일이라도 와라 나는 그것을 귀찮게 여기지 않겠다는 거에요.

누구를 만나도 괜찮아! 나는 주님만으로 족하기 때문에 그런데 귀찮고 번거로운 있다는 예수님 만으로 좋은 rpo 아니에요. 뭔가를 기대하는 것 때문에 일이 짜증나는 거에요. 그런데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 있다는 것은 뭔가 은근히 기대하는 것이 있어요. 예수님만으로 족하다는 말은 기대하는 것이 끝났다는 말이에요. 내가 원하는 것이 다 끝났어요. 타인을 만난다는 것, 타인을 만날 때 두렵지 않던가요? 여러분이 나중에 상견례 할 때 하번 보세요. 지금은 웃지요. 며칠 앞두고 한 번 보세요. 멸 벌 되지도 않는데 이 옷 골랐다가 저 옷 골랐다가 이거 입어 볼까? 저거 입어볼까? 상당히 두려워요.

그런데 예수님만으로 족해요 할 때는 사돈이 어떻게 하든 아무 신경 안 써져요. 그 쪽이 나를 뭐라고 이야기 하든 그래서 파토 나도 상관없어요. 기대를 안 하는 거에요. 기대를 안 하는 방법은 우리가 주님이 아는 죽음 안에 있어서 죽음은 지옥이거든요. 여기가 지금 지옥이라 해 봅시다. 뜨거워서 나가고 싶은데 문이 잠겨 못 나간다고 해 봅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살려 주세요라고 밖에 할 수 없지요. 그게 지옥이에요. 지옥에서 외칠 수 있는 성도의 고백은 뭐냐 주님 살려 주세요라고 밖에 안 하지요. 주님이 살려 줬잖아요. 죽음에 있을 때, 지옥에 있을 때 주님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지,

주님으로 완결되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는 겁니다. 기대할 것이 더 이상 없어요. 아말렉과 이스라엘의 만남에서 이쪽 이스라엘은 언약이 있고 저쪽 아말렉은 언약이 없는 비언약입니다. 그러면 언약의 최종 모습은 뭡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이지요. 예수님의 죽음이지요. 그래서 이쪽엔 예수님의 죽음이 들어 있고 저쪽엔 없는 거에요. 아말렉은 죽음을 몰라요. 이스라엘은 이번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죽음의 의미를 아는 거에요. 살다가 죽었다고 해서 죽음의 의미를 아는 게 아니에요.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의 의미는 그냥 꼴가닥 해서 목숨이 끊어지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목숨이 끊어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 같으면 살다가 힘들면 자살하면 되요. 편히 쉬려고 자살들 하잖아요. 누구 마음대로 편히쉬어요. 한 번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고 그 다음에 끝입니까? 끝이라면 제가 여기 올 이유도 없어요. 그 다음은 본격적이라니까요. 그 지옥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로 무서운 것이냐 하면 차라리 이 땅에서 불의한 뇌물로 친구를 사는 남에게 횡령했다는 소리를 듣고 사는 게 낫다는 거에요. 지옥에 비하면 이 땅에서 너는 돈이나 횡령하고 감옥에나 가라고 지적 받고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이 차라리 저 지옥보다는 훨씬 옳은 선택이라는 겁니다. 불의한 청지기 이야기는 누가 복음 16장에 나옵니다.

(히 9: 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주님께서는 착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주제 파악하라는 거에요. 자기가 죽은 것도 모르고 착해서 뭐할 건데 착한 건 써 먹을 데가 없다니까요. 아무 쓸데없어요. 어차피 지옥 갈 거 착하다고 해서 천국에 넣어주는 것이 아니잖아요.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은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고 예수님이 오셔서 보여 주시는 겁니다. 그게 뭐냐 나처럼 죽으면 구원받는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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