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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구조와 정서 180910강의시편

20180910a 부산강의 : [시편]13(7편)-구조와 정서
(강의:이근호 목사)

시편 7편 1절에 보면,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는 모든 자에게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그렇게 돼있지요. 시편을 보면서 되게 쫓긴다는 느낌이 들잖아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 사는 모습에 빚지지 않는 한 누구한테 쫓기는 법은 없다 이 말이죠. 쫓기는 사람이 생각하는 그 하나님, 또는 신앙과 오늘날 각자 살면 그만인 사람과 연결이 잘 안 되는 거예요.

시편의 특징은 굉장히 다급하거든요. 한 쪽은 다급한데 한 쪽은 느긋하고. 그런데 다급한 사람이 어떤 신앙적 고백을 내놓을 때 와 닿지 아니하고 그건 그 사람의 개인적인 문제지 우리와 상관없다는 겁니다. 물론 은혜 되고 안 되고는 나도 이 사람처럼 집안에 다급할 때에 갑자기 사고가 일어난다든지 내가 애지중지 키우는 자식이 잘못 된다든지 자기 인생에 장벽이 있거나 몸이 아플 때는 시편을 보면서 눈물 울리면서 은혜 받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런 건 자주 있는 경우가 아니고 대부분은 그냥 평온하지요.

평온한 것과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는 모든 자에게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하실 때에 우리는 생각하기를 다윗은 평온할 때가 없었는가, 늘 쫓겼는가? 그런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어려울 때 하는 이야기가 다윗이 갖고 있던 보편적인 신앙을 대신할 수 있느냐는 것부터 우리가 신경이 쓰이는 거예요. 그걸 의심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인생을 살면서 어려울 때 한 번 한 이야기가 그 사람의 전부를 다 대신할 수 있고 대변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만약에 어려울 때 한 이야기가 대신할 수 없다면 시편은 우리가 어려울 때 볼 책이지 평소에 볼 책이 아닌 게 돼요. 그러면 성경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거죠. 다급할 때 보는 시편이지 평소에는 우리와 상관없게 돼버립니다. 그렇지 않고 시편에 나오는 다급해 보이는 내용이 우리가 평소에 몰랐던 걸 대신한다면 우리도 늘 다급해야 되느냐는 문제가 생깁니다. 다급하지 않으면 잘못 됐다는 생각이 들 거고.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억지로 다급한 것을 미리 상상해서 용을 써야 되느냐는 문제도 생기거든요.

그래서 시편 7편 1절만 보면서 우선 이것부터 생각해봅시다. “객관적으로 나는 나를 모른다.” 객관적으로 모른다는 말은, 인간은 어디에 마음 뺏기고 있느냐 하면, 정서에 마음 뺏기고 있어요. 정서란 말 아시지요. 상당히 감정이 풍부한 것, 정서적인 것. 정서란 말이 어려우면 비슷한 말로 기분. 기분 따라 사는 거예요. 자기가 기분 따라 살다보니까 그때그때 웃기면 웃으면 되고, 슬프면 울면 되고, 날씨 덜 덥고 기분 좋으면 기분 좋다하면 그만이고. 그거는 객관적이 아니에요. 주관적이죠.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서 보라는 책이 아닙니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성경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알기 쉽게 말해서 우리는 자기 정서에 푹 빠져서 자기 즐거움에 집착돼있을 때 집착된 내 모습 말고 그 외부의 모든 공기의 순환이나 날씨나 해와 달 모든 것은 누가 운영합니까? 주님이 운영하지요. 주님이 운영하는데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 관심 없고 자기 정서에 푹 빠져있는 겁니다. 그럼 이건 뭐냐 하면, 하나님은 따로 노시고 우리 따로 노는 게 돼요. 과연 이렇게 따로 노는 것이 성립이 되느냐 하는 겁니다. 성립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따로, 우리 따로 성립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 때문에 그러냐 하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가 계시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중보자에게 넘겼다는 말은, 중보자께서 아버지 뜻을 이루기 위해서 계속 우리 자신에게 자기 정서에 빼져있고 매료돼있는 인간에게 중보자적인 요소를 계속해서 인간을 장악하고 다루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이 된다는 말은, 중보자께서 나라는 인간을 다루는 방식을 내가 이해하고 알아줄 때, 아버지도 알고 아들을 알게 되면 그것이 바로 영생이라 했잖아요. 요한복음에 나오지요. 영생이란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가 보내신 자를 아는 게 영생이에요.

그러나 우리는 자기 정서에 빠져 하루하루 눈떠서 기분 좋으면 좋은 거고 자기 기분에 빠져버렸어요. 이렇게 돼버리면 예수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 사이에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삶에 있어요. 저 사람도 자기한테 빠져있고 우리도 우리에게 빠져있고. 객관적인 것은 둘 다 통합한 객관성은 없고 각각 자기 주관에 따라서 자기 스케줄 따라서 살아가는 거예요.

스케줄이란 말을 했지만 중보자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은 뭐냐 하면, 중보자께서 프로그램화시킨 거예요. 인간을 만들 때 그냥 만든 게 아니고 프로그램이 안에 들어있어요. 일종에 영화 와 비슷한 건데 모든 것이 다 이유 없이 태어난 게 없고 어떤 움직임 하나 우리의 발걸음도 마찬가지고 우리의 머리카락 자라는 것, 모든 것은 그냥 중보자와 무관해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집 하나 사는 것도 중보자와 관련돼있어요.

만약에 내가 집을 구입했다. 나는 집을 구입했다고 하면 불신자와 다를 바 없어요. 똑같아요. 저들도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사람, 내가 어제 낮에 죽은 자(시체)로 봤는데 죽은 자의 특징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져있어요. 끊어진 것도 본인 쪽에서 끊은 게 아닙니다. 악마한테 끊도록 허락한 것이고 그것마저 그리스도 앞에서 프로그램화 된 거예요. 악마의 존재와 활동은 예수 그리스도와 무관한 게 아니에요. 왜냐하면 악마는 예수님의 피조물이거든요. 예수님이 만드신 게 악마에요. 악마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관계를 끊고자하는 것도 그리스도가 꼭 해야 될 일의 필수 요건이 되는 겁니다.

고린도후서 4장 4절에 보면, 악마가 하는 일이 뭐냐? 이 세상 신이 하는 일이 복음의 영광을 가리는 거예요. 그럼 집을 구입했다면 성도는 무엇과 관련돼있느냐 하면, 집을 구입할 때 예수님께서 나에게 왜 이런 일을 시켰습니까, 라고 돼야 돼요. 내가 구입했다면 주체가 ‘나’가 돼요. 내가 이번 집 구입에 주인공 노릇한단 말이죠. 그러나 그렇게 되면 불신자와 차이점이 없어요. 중보자의 프로그램이 여기서 나타나지 않은 겁니다.

그러면 중보자가 우리의 정서에 빠져있고 감정대로 살아가는 불신자와 똑같지요. 그런 사람을 성도답게 특화시키는 것, 성도는 이런 점에 다르다고 특화시키는 방법이 뭐냐 하면, 말씀의 실재성을 접촉하는 일을 해요. 말씀은 여러분이 아시잖아요. 말씀에 의해서 천지창조 했으니까. 모든 우주의 프로그램화 된 하나님의 원칙, 원리로 보면 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풀의 꽃같이 사라지지만 무엇은 영원하리라? 말씀은 영원하죠. 영원하다는 말은 영원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일시적인 것이 잠시 나타났다 없어진다 이 말이에요.

말은 간단하지만 상당히 중요한 거예요. 우리 인간 잠시 있는 존재거든요. 잠시에요. 안개가 물방울이잖아요. 물방울은 잠시 만들어졌다가 아침 열시면 없어지잖아요. 이게 야고보서 4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안개라도 괜찮지만 물방울이에요. 안개의 특징은 멀리서 보면 있는데 가까이 오면 없는 것, 사라지는 것, 이게 안개입니다. 멀리서 보면 뿌연데 특징적인 것 하나를 뽑아낼 가치가 없어요. 전체를 안개라 하니까. 전체를 보는 안목에 의해서만 발견되니까.

인간은 안개 속의 물방울 같은 존재라서 물방울 자체로는 의미 없고 전체로 안개라 보면 되지요. 그것도 잠시에요. 왜 모든 것이 없어져야 되느냐 하면, 있어야 될 것만 있어야 되기에 그런 거예요. 있어야 될 게 뭐냐 하면, 이 세상은 빛이 있으라 하매 있었더라. 모든 것이 말씀만 명령만 있어야 돼요. 또는 다른 말로 하면, 지시만 또는 요구조건, 요구사항만.

그 다음에 실재성이란 것은 유일하게 허상이 아니라는 거예요. 말씀의 실재성은 말씀만은 허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의 가치는 태어나기 전에 인간의 가치가 있고 죽고 난 뒤에 인간의 가치가 비로소 알려져요. 그래서 이게 어려워요. 태어나기 전에 창세전에 이미 사랑받기로 된 사람과 미움 받기로 정해져 있잖아요. 태어나기 전에 이미 정해져있고 그게 말씀의 실재성, 구체적으로 하면, 아버지와 아들이 의논한 거죠. 그걸 약속이라 하죠. 약속이 구체화 된 것을 언약이라 하고.

태어나기 전에 이미 정해져있고 죽고 난 뒤에 비로소 알고. 왜? 천국 아니면 지옥, 지옥 아니면 천국이니까. 그러면 중간에는 혼선이 일어나요. 갈치 대가리 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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