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41 - 질문 속의 답
[18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41 - 질문 속의 답
18,08,20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96페이지부터 하겠습니다.
** 이번 전도서의 주제가 '허무에서 심판으로'입니다. 곧 '끝 되기' 라는 말입니다.
허무에서 심판으로, 즉 '끝 되기' 라는 것이 어디에 나오는고 하니, 그것이 다름이 아닌 '전도서' 라는 성경에 나온다는 겁니다. 물론 성경말씀을 듣지 않고 보지 않으면 그만인데, 그러면 허무도 날아가고 또 심판도 같이 날아간다는 말이죠. 그러니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즉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성경을 볼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도움이 된다고 여기고 성경을 보는데, 그런데 만약에 그 성경내용이 허무에서 심판으로 나아간다면, 그러면 "나는 듣지 않을 거야" 라고 하면 그만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성경은 바로 그것을 노리고 우리 인간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꿈으로 다가온 하나님의 계시 !!
여기 교재를 보면, 창세기 28장을 언급하면서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런데 이 꿈이라는 단어자체는 '허망함', '아무 것도 아님', 더 나아가서 '신경을 쓸 필요조차도 없음', 그게 바로 꿈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꿈을 창세기 28장에서는 하나님께서 계시로 주셨다는 말이죠.
그러면 하나님의 계시는 꿈과 같다는 것인데, 그렇게 꿈이기 때문에 허망하고, 아무 것도 아니고, 신경을 쓸 필요조차도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굳이 귀를 기울여 들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죠. 그게 바로 하나님의 계시라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성경말씀을 들을 필요도 없고 읽을 이유도 없다는 말이죠. 성경이 그런 식으로 다가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시가 꿈으로 왔다는 것은, 물론 그게 우리 인간에게는 허망하게 느껴지는데, 하지만 그게 허망하게 느껴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 인간 쪽에서 외부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계시를 강력하게 밀어부쳐서 쫓아내겠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허망한 꿈으로 왔으니 말이죠. 그렇게 됨으로서 하나님의 계시를 거부하는 우리 인간의 본성이 노출된다는 겁니다.
앗, 뜨거워 !!
그러니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듣기 싫거든 듣지 말라. 보기 싫거든 보지 말라. 또 믿기 싫거든 믿지 말라" 라는 것인데, 완전히 배짱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호기심이 있어서 무엇인가를 더 알고 싶어하는데, 그래서 성경을 보는 순간 성경은 마지막에 무엇이 있다고 합니까? 심판이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놀라서 그만 놓고 만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라고 해서, 그래서 성경을 보면 뭔가 좋은 것이 있는 줄로 알고 보았는데, 복을 받을 줄 알고 말이죠. 그런데 성경의 마지막 결론을 보니, "인간은 어떻게 살아도 허무하고, 결국은 심판을 받아서 지옥에 간다" 라고 하니, 그래서 마치 뜨거운 냄비를 만진 것처럼 "앗, 뜨거워!" 라고 하면서 놓게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미처 자기도 몰라던 자기 자신의 본성이 들통나는 순간이라는 말이죠. 우리 인간에게는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 챙기고, 그렇지 않은 것은 얼른 놓아버리는 성질이 있다는 것을, 바로 그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게 된다는 겁니다.
구약성경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이 나오는데, 성경을 보면 나타나는데, 물론 보지 않으면 전혀 모르는 인물이고 말이죠. 그런데 그 아브라함이 복을 받았다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들도 복을 받으려고 그 성경을 본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 복이 무엇인지 보니까, 아브라함이 늙어서 자식이 없는데, 그만 자식이 생겼다는 말이죠. 그래서 "아하, 이런 수도 있구나. 하나님은 역시 전지전능하시고 좋은 분이야. 없는 것에서도 만들어주시는 구나" 라고 하게 되는데, 그렇게 도저히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나이에 자식이 생기는 것을 복이라고 여긴다는 겁니다.
그런데 창세기 22장을 보면, 그 자식을 불에 태워서 번제물로 바치라고 한다는 말이죠. 없는 자식이 생겼으니 좋았는데, 그래서 복이라고 여긴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보니, 하나님께 그 자식을 죽여서 자기에게 바치라고 하는데, 그러면 과연 그것까지도 복으로 여길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것까지도 복으로 수용할 수 있느냐는 말이죠.
(창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창 22: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무슨 말인고 하니, 없는 것에서 받아 챙기는 것은 복일 줄로 아는데, 그런데 있는 것을, 그것도 100세에 얻은 그야말로 귀하고 귀한 자식을, 그것도 자기 손으로 죽여서 불에 태워서 하나님께 바치는 것, 그것까지도 복의 내용으로 집어넣을 용의가 있느냐는 겁니다.
수능시험을 앞두고 교회에 기도를 하는데, 물론 겉으로 말로는 실력대로 치게 해달라고 하지만, 속마음은 전혀 그게 아니라는 말이죠. "아는 것만 나오게 하소서" 라고 한다는 겁니다(ㅋㅋ). 그런데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 점수가 평소보다도 더 나오지 않았다면 천만다행인데, "아하, 꿈이구나. 하나님이고 뭐고 아무 것도 아니야"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고 하니까, 수능점수가 예상한 것보다 더 잘 나오게 되면, 그러면 이제 심각해진다는 겁니다. 드디어 악마의 올무에 제대로 낚였다는 말이죠. 우리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원하지도 않고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그게 우리 인간이고, 그게 정상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