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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사무엘상 41강( 오지마라), 마태복음 103강( 막살았다) 180828강의-

오지마라 (삼상 15장1-24절)
대전- 41강

이근호

2018년 8월 28일
본문말씀: 사무엘 상 15:1-24

(삼상 15:1)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삼상 15:2)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삼상 15:3)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삼상 15:4) 사울이 백성을 소집하고 그들을 들라임에서 세어 보니 보병이 이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만 명이라
(삼상 15:5) 사울이 아말렉 성에 이르러 골짜기에 복병 시키니라
(삼상 15:6) 사울이 겐 사람에게 이르되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가라 그들과 함께 너희를 멸하게 될까 하노라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그들을 선대하였느니라 이에 겐 사람이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니라
(삼상 15:7) 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치고
(삼상 15:8)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삼상 15:9)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삼상 15:10)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삼상 15:11)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삼상 15:12)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더니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삼상 15: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즉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하니
(삼상 15:14) 사무엘이 이르되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라
(삼상 15:15) 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는지라
(삼상 15:1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가만히 계시옵소서 간 밤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신 것을 왕에게 말하리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말씀하소서
(삼상 15:17)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삼상 15:18) 또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삼상 15:19)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삼상 15:20)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삼상 15:21)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삼상 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 15: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삼상 15: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사무엘 상 15장에 보면 아말렉과 전쟁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데 우리가 만약 이스라엘 입장이라면 고요하고 조용하게 살기를 원했을까요? 말썽 없이 예수님의 인생이 고요했으면 고요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지요.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동행하니까 자기들에게 별다른 일은 생기지 않겠지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동행한다는 결과가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자신의 안위와 행복을 제공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평소에 자신들이 원했던 안정된 생활을 그들은 구원이라고 이해한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오해이지요. 자기들이 기대하는 행복이라는 것, (행복 = 구원) 이라고 본 겁니다. 이것을 이스라엘이 주장했지요. 교회에 나와서 불행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잖아요. 교회에 나와서 행복했다면 구원받은 증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행복이나 구원이라는 것은 아무 탈 없는 거에요. 안정되고 여유 있는 생활이겠지요. 이 세상에서 착하게 살 때 없는 사람이 착하게 살 가능성이 많습니까? 있는 사람이 착하게 살 가능성이 많습니까? 있는 사람이지요. 좀 베풀어도 자기의 생활에 지장이 없을 때 착하게 사는 겁니다. 좀 손해 봐도 마음에 평정을 갖는다면 사람들 보기에 대범한 사람처럼 보이지요.

옛날에 큰 부자가 있었는데 그 부자가 차를 긁혀서 5만원 정도 손해 봤다고 해서 울고불고 안하지요. 그런데 하루 일당이 오 만원 되는 사람이 오다가 오 만원을 잊어버렸다. 이건 난리가 나는 겁니다. 그것을 보고 부자가 그까짓 오 만원 가지고 난리를 피우나 나를 봐! 나는 오 만원 손해 봐도 안정되잖아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적으로 볼 때 많이 가진 자가 선해요. 많이 있고 여유 있는 자가 착하지요. 자기 집 옆에 교회가 있다면 교회에 왜 나갈 까요? 이유가 빈 마음으로 가진 안을 거 아니에요. 아무 기대나 욕심 없이 교회에 가진 안는다는 말입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이 5 라면 교회에 나가고 나서 3이 될 리가 없고 7, 8 ,9 ,10으로 늘어나길 기대하며 교회에 나가는 겁니다. 교회에 나갈 때부터 자기의 행복과 구원을 요구하는 겁니다. 이것이 특별히 인간성이 더 나빠서가 아니고 하나님과 동행했던 자들이 이렇게 생각했던 겁니다. 하나님과 동행 안했던 자들이 이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고 동행했던 자들이 이렇게 생각했던 겁니다. 동행 했던 자들이 생각한 구원이라는 것은 안정되고 아무 탈 없이 사는 것을 생각한 거에요. 이런 것을 원하는 이스라엘 자체를 하나님께선 어떻게 보시냐 하면 낚길 미끼로 본겁니다.

이스라엘이 지극히 인간적인 본성에 의해서 교회에 나가고 나서 더 행복하고 아무 탈 없고 가정이 안정되게 된다는 것을 미끼로 해서 이것을 부숴버리는 쪽으로 가요. 왜냐하면 행복을 생각할 때 인간은 지금의 행복으로 만족하지 않잖아요. 지금의 행복이 7이라면 8. 9. 10.. 점점 행복이 높아지는 어떤 노선이, 길이 형성되겠지요. 그런데 이 길의 끝은 천국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천국은 이 길 말고 네가 원하는 길에는 천국이 없다는 겁니다. 넓은 길에는 천국이 있습니까? 없지요. 사람들이 넓은 길로 가는 이유가 그 만큼 행복해지는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그 길로 가는 겁니다.

그런데 좁은 길은 고생이 많아요. 그래서 아무도 그 길로 안 가려고 하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동행 하시게 되면 가기 싫은 길도 억지로 가게 만들어요. 인간이 현재에 만족하는 하느냐 하지만 인간 자체가 이 땅에서 나름대로의 흔적을 남기려 하는 존재입니다. 너 어디로 갈거냐? 하는 겁니다. 이렇게 가면 안되지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이용해서 내가 원하는 길을 갈 것이다 라는 의도를 강제로 꺾어 버립니다. 주님의 인도함 때문에 안가고 싶은 길도 주님이 동행했다는 이유 때문에 가야될 길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쪽 주님의 길로 가게 되면 인간은 뭐를 포기해야 됩니까?

자신의 행복과 구원은 포기해야 되지요. 그래서 인간은 구원 될 자격이 없습니다. 행복 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들의 본심이라는 것은 인정해요. 누구나 태어나면서 행복하고 싶은 것은 본심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본심이라는 이유 때문에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기도라는 것, 헌금하면서 은근히 노리는 것, 이 모든 것은 무엇과 결부되어 있어요?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그것 관리해서 열심히 교회 다니고 헌금하고 그렇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성향을 이용해서 오히려 그것을 꺾어버리십니다. 좌절시키지요.

좌절시켜서 주님이 가는 길로 가게 하는데 우리가 가는 길은 어떤 길이냐 하면 잘못된 길로 가는 이유가 뭐냐하면 자신의 구원 때문에 설정했잖아요. 그러면 이 쪽 길은 무엇을 포기해야 되요? 내가 구원받아야 한다는 것은 접어야 되요. 포기해야 되요. 이쪽 길은 나와 관련된 곳이 아니고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는 길이 되요. 하나님의 이름은 한자로 하면 주가 되고 주가 주되심에 다 이루셨다는 그 길. 그 길로 이스라엘이 강제로 가게 되는 겁니다. 오늘 날 우리도 마찬가지이고 주가 주되심을 드러내며 가는 그 길이 주님께 인도함을 받는 우리가 갖고 있는 의도와 비슷한 것도 아니고 완전히 대척 관계, 반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되요.

내가 원하기 때문에 주께서 안 들어 주시는 거에요. 내가 원한다는 이유 때문에 에가 군대에서 훈련받고 좋은 곳을 가기를 원하기 때문에 안 들어 주시는 거에요. 아침에 눈 뜨면 우리가 기대하는 게 있잖아요. 그 기대가 내가 원하기 때문에 안 되는 거에요. 만약에 내 기도대로 된다면 나는 악마와 동행중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중이 아니고 악마는 인간을 격려만 하면 되요. 격려하고 넘어질 때 일으켜주고 격려만 하면 되요. 7번 넘어져도 8번 일으켜서 힘내라!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 열심히 기도해라! 이게 악마가 하는 일이에요. 네가 가는 길이 내 길이야! 이게 악마가 하는 일이에요.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게 아니에요. 네가 가는 것은 네가 잘되는 것이고 내가 가는 것은 내가 잘 되는 건데 이것이 같을 수 없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15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동행하면서 아말렉이라는 종족과 전쟁을 일으킵니다. 아무 탈 없이 안정되게 조용하게 살고 싶은데 주의 길에는 전쟁이 기다리고 있는 거에요. 하고 싶었던 전쟁이 아니에요. 전쟁에서의 승리 보다 더 좋은 것은 아예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나날이 더 좋아요. 아프다가 건강해지는 것보다 처음부터 안 아픈 게 더 좋아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자기의 인생에 스크래치가 나지 않는 것.

깨끗하게 구두 닦고 나면 반들반들 하잖아요. 그것처럼 내 인생도 항상 윤기 있고 기름지고 아무 탈 없이 흠집하나 없이 깨끗하게 살기를 원하지요. 백설 공주처럼 그런데 계모 만나서 작살나지요. 나중에 공주가 아니고 거지처럼 됐지요. 그래도 (난장이들이) 위해 주잖아요. 어디가도 예쁜 건 티가 나! 백설 공주가 예쁘지 않았다면 이웃 나라의 왕자가 반했겠어요? 안 반했겠지요. 그런데 성경이 재미있을까요? 백설 공주 이야기가 더 재미있을까요? 백설 공주 이야기겠죠. 보세요. 자기 행복이야기 아닙니까? 인간이 뭔가 잘못 고른 것이 아니에요. 잘못 고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이미 자기가 고를 것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거 할래? 저거 할래? 하나님이 물어도 이미 자기가 정해져 있어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주시면 내가 안 고를래야 안 고를 수 없지요. 그러나 내가 원치 않은 것을 고르려 하면 반드시 주께서 주시는 것을 거부하게 되어 있어요. 이미 자기 마음에 정해진 것이 있다는 말이거든요. 그 마음이 바로 악마의 성품입니다. 나만 잘되면 되는 거에요. 그래서 천국은 내가 살기 좋은 나라가 천국입니다. 우리가 한 평생 살아 봤잖아요. 살면서 천국을 경험했습니까? 아니면 세상 경험입니까? 기억나는 것이 지금 한번 돌아다보세요. 줄곧 기억에 남는 것이 천국 경험이에요? 이 세상의 기억입니까? 세상 기억이지요.

어디를 가요? 천국을 가요? 생각나는 것이 세상 밖에 없는데 무슨 천국을 선택합니까? 기껏 아는 것이 세상이고 세상에서 좀 더 잘 살고 잘 되고 여유 있는 것 그런 것만 머릿속에 가득 들었는데 어딜 가요? 참! 거짓말도 무슨 그런 거짓말이 있어요! 더울 때 죽고 싶습니까? 아니면 에어컨 팡팡 트는 곳에 가고 싶어요? 덥다고 죽고 싶지 않아요. 에어컨 있는 곳에 가서 더 살고 싶어요. 인간은 자기 욕망에서 스스로 벗어 날 수 없습니다. 악마가 심어준 성품에서 스스로 탈출이 불가능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탈출할 때 알아서 탈출하라는 것이 아니고 탈출할 수 없다는 뜻이에요.

내가 동행하지 아니하면 너는 내가 있다는 것이 귀찮고 짜증스럽고 힘들더러도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로 데려 갈 때는 군소리 하지 말라는 겁니다. 네 인생이 완전히 망가져서 엉망이 된다하더라도 그렇게라도 주님께서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로 데려가시는 겁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악마의 성품에서 조합된 거에요.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겁니다. 나 좋으라고 하는 거지 누구 좋으라고 하는 세계는 안 가려고 해요. 남 좋은 일 시킬 필요 없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바탕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주께서 가신 길은 십자가 길 이거든요. 십자가로 갈 때는 반드시 자기를 부인하라는 겁니다.

15세기에는 데카르트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철학자가 연구를 스스로 해봤어요.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는데 단 하나만 의심 할 수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것이 옥수수일까? 과일일까 사과일까? 의심할 수 있어요. 저것이 바나나이냐? 사과이냐를 의심할 수 있고 지금 내가 꿈에서 사과를 보는 것인지 현실에서 보는 것인지 의심할 수 있어요. 그러나 아무리 따져도 의심 할 수 없는 게 하나가 뭐냐 의심하는 나는 의심 할 수 없다입니다. 꿈꾸고 있는 나는 의심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은 뭐라고 합니까? 그것마저 의심하라는 겁니다. 나마저 의심하라는 겁니다.

이게 가능해요? 불가능해요? 불가능한 거지요. 사무엘 상 15장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동행한다고 했습니다. 동행한다고 할 때 이스라엘 쪽에서 보면 굉장히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왜냐하면 천지창조를 하신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동행해 주니까 그 바탕에 깔고 있는 게 있어요. 잘 되는 것. 내가 잘 되게 되면 나만 잘되는 게 아니고 기본적으로 가정이에요. 남녀가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으면 나에서 그냥 있는 것이 아니고 나라는 숫자가 늘어나지요. 그렇다면 나라는 가정도 내가 잘되는 이상으로 가정도 잘됐으면 좋겠다. 그러면 자기가 농사를 짓는다면 간 고등어는 언제 먹습니까?

농사짓는 나 말고 옆에 자기 직업에 전념하는 사람 하나 있어줘야겠지요. 물고기 잡는 사람도 있어야 되지만 옆에 통닭 튀겨주는 사람이 있어줘야 가끔 먹어줘야 되잖아요. 안 좋은 기름이지만 스트레스 받을 때 콜라와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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