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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가족 180821강의요한복음

강남-요한복음 17장 24절(가족)180821a-이근호 목사

요한복음 17장 24절,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오늘 할 것을 읽어 봤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것은 고정된거예요. 이 읽었던 이 말씀을 딱 보게되면 어떤 변화의 여지가 없어요. 확정된거예요. 처음부터 창세 전부터 확정된거죠. 아버지와 아들과 그리고 구원받을 사람, 그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새로 이렇게 이미 다 정해져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이 기도에.

그렇게 되게 되면 우리 인간은 이렇게 정해진게 아니고 변화되잖아요. 변화되니까 이미 창세 전부터 고정되고 확정된 여기에 인간이 연계를 할 수 있는 재주가 인간한테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변하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날마다 변해요. 주님은 변하지 않지요. 변하는 자가 변하지 않는 자의 합체 그 세계에 뛰어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게 결합이 되려면 우리가 변하는 우리가 뭐로 굳어져야 되겠어요? 고정되야 되겠지요? 왜냐하면 이 말씀 자체 24부터 26절 자체가 여기 아버지 이름으로 저희를 알게하고 ‘저희’ 라는게 내게 주신 자, 그 자체가 변화가 아니고 고정된거예요. 고정되었기 때문에 변화된 자가 고정이 되려면 변화한 그 자체는 뭔가 고정된 쪽에서 조치가 가해져야 됩니다. 주님 쪽에서 와서 늘 변하는 우리를 스톱! 이렇게 해가지고 확정, 창세 전에 확정된 그 확정을 그대로 유지를 해줘야돼요.

인간이 변하니까 이걸 그림을 이렇게 동그라미 하지 않고 흐릿하게 하겠습니다. 인간은 변하니까. 늘 변하니까. 어제하고 오늘도 다르잖아요. 그런데 요한복음 17장에서는 확정된겁니다. 완전히 확정된거죠. 확정된 것이 변화 쪽으로 가려면 여기 확정된 것 안에 뭐가 들어있느냐 하면 주님이 사랑하는 자 또는 아버지가 주신 자 그냥 뭐 사랑하는 자라 합시다. 주님이 사랑하는 자, ‘성도’지요. 성도가 영원 전부터 이것은 확정되어 있지요? 성도의 존재가 이 안에서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 안 되십니까?

그 현상범 그 현상 포스터 보세요. 현상 포스터 인상 험하게 해가지고 식당같은데 보면 현상범 쫙 붙어 있지요? 그 사람들이 진짜 표정 굳어가지고 확정되있지요? 그렇죠? 그런데 실제로 밖에 나와보면 모자 쓰고 돈 빼가는데 그 사진이 아니다 이 말이죠. 그 사진이 아니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을 체포해서 경찰서 데려오게 되면 그 현상범에 있는 사진, 그것과 똑같이 만들어서 유치장에 집어넣는 계획을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 이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되시겠습니까?

왜냐하면 우리 모습이라고 하는 것은 변하는 우리가 나를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것 과 관계없이 창세 전에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에서나 야곱이 태어나기 전에 창세 전에 아버지와 아들하고 이미 확정이 된거예요. 확정이 되었는데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어요.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매일같이 변합니다. 매일같이 변하니까 이 변하는 모습 자체하고 확정된 모습 자체하고 이게 안 맞는거예요. 맞지를 않아요.

그냥 집어넣으면 우리는 그 모습 그대로 갈 수가 없어요. 뭔가 예수님 쪽에서 하나님 쪽에서 조치가 취해져야돼요. 그 조치가 뭐냐? 변화하는 것을 창세전에 확정된 자기 백성의 그 자태로 완전히 굳어져서 영원히 천국에서 살게 되는 겁니다. 그걸 오늘 본문에서 요한복음 17장에서 뭐냐. 그걸 가지고 사랑받는 자라고 되어 있지요? 내게 주신 자 또는 사랑받는 자라고 이야기해도 되고요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또 24절에 보면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 라고 되어 있지요? 내게 주신 자. 내게 주신 자.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진도 나가겠어요. 내게 주신 자로 되는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변화한다고 했지요. 점선으로 제가 그렸잖아요. 변화하면서 우리는 뭘 생각하느냐 하면 자기가 안 변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자기가 고정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는 어지럽지 않아요. 변화하지 않아요. 하니까 여기 있는 요한복음 본문 읽었던 17장을 자기가 고정된 자기의 이것을 반대로 거꾸로 담으려고 하는 겁니다. 담으려고 하는거예요. 여기서 이제 문제가 일어나는 겁니다.

자, 그 문제를 이제부터 시작해 봅시다. 마그리트라는 20세기 초의 화가가 있어요. 화가가 이런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런 그림을 남자들 서양 남자들 피는 파이프를 그려놓고 여기에다가 제목을 달았어요. 제목이 뭐냐 하면 ‘이것은 파이프가 아닙니다’ 라는 제목을 달았어요. 이 사람의 생각은 모든 이 사람의 그림의 가치는 바로 철학이 담겨있어야 된다는 그 가치에 의해서 그림을 그린겁니다.

실물 사진같이 파이프를 그려 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닙니다 라고 했다 이 말이죠.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누가 봐도 그림에 제목 보기 전에 이 그림만 있을 때는 누가 봐도 파이프로 보는 거예요. 그런데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고 이것은 하나의 액자죠 액자. 지금 제가 이렇게 그려놓으면 이것은 화이트보드가 되겠지요. 이거는 화이트보드인데 사람들은 이것을 뭐로 봅니까? 이걸 파이프로 담배 피는 파이프로 본다 이 말이죠.

그래서 그 화가 마그리트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닙니다 라고 이야기함으로서 이 사람이 의도한 것은 뭐냐 하면 진실과 그리고 이미지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진실과 이미지가. 인간은 진실을 말하는게 아니고 거기에 말하여지는 것, 보여지는 것을 자기가 그대로 받아들이는거예요. 그러면 누가 말하고 누가 보여집니까? 바로 내가 말하고 내가 보는대로 하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변해요 안 변해요? 나는 변하지요. 변하는데 파이프를 보면서 이것은 파이프라고 장담하면서 이 그림은 파이프다 라고 장담하는 것은 무슨 소리냐 하면 나는 어떤 경우라도 나는 변하지 않는 것을 자기가 스스로 우기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겁니다 우기면서.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보는 자기가 보고싶은대로 보고 말하고싶은대로 말하는데 그러면서도 자기는 그걸 뭐냐. 진실이라고 이게 파이프니까 진실이라고 이야기하는거예요.

그러나 이 세상은 진실은 없고 두 사람이 있다면 인간들 이야기 하는 것은 진실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본 것에 상대방의 동의를 얻고 그 상대방이 본 것을 동의해주면 둘에 의해서 그걸 가지고 뭐냐 진실이다 진리라고 우기는 경향이 있어요. 그렇게 우겨버립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뭐냐 하면 내린 결론은 진실을 이미지로 만드는 이 작업에 무슨 작업을 했기에 인간은 이미지만 소비하면서 진실을 언급하느냐? 도대체 이 작업이 뭐냐? 이 작업이 바로 가상작업이에요. 모든 것을 가상적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게 되는 겁니다. 누가? 인간들이 그렇게 하는거예요 인간들이.

그래서 나타나는 세계가 무슨 세계냐 하면 바로 가상세계에요. 이 가상작업을 가지고 보드리아라고 하는 철학자는 바로 ‘시뮬레이션’이라고 하고 그렇게 생긴 것을 ‘시뮬라크’라고 해요. 가상현실. 더 놀라운 사실은 진실이라는 것이 있고 이미지가 있는 것이 아니고 이 가상현실 또는 이 가상작업이 뭐를 만들어내느냐 하면 진실을 그 때 그 때마다 만들어 내는거예요. 가짜가 진짜를 다루고있고 지배하고있고 가지고 노는거예요.

진짜는 절대로 말하면 안돼요. 왜냐하면 진짜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진짜도 모르면서 그래도 당당한 이유가 진짜가 진짜를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모두가 당당한 거예요. 왜냐하면 전부 다 가짜이기 때문에 그런겁니다. 전부다 거짓이기 때문에 그런거예요. 거짓이 거짓이라는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세상 자체가 이게 보통 이게 가상이라고 하면 별로 안 좋게 보잖아요. 가짜니까.

가짜세계에 있어서 이들이 서로 소통하고 있는 그 이것이 뭐냐 하면 이게 유일한 현실이 되는 거예요 유일한 현실. 유일한 현실. 진짜 현실은 가짜만이 통용되는 현실이 이게 유일한 세계예요. 옛날에는 뭐냐 하면 가짜가 있다면 그 다음에 반드시 뭐를 추구해야 돼요? 진짜를 추구해야 되죠? 그러나 인간이 옛날에 그렇게 살아왔던 것은 뭐를 몰라서 그래요.

왜냐하면 진짜라고 하는 것은 가짜가 만들어낸 것이 진짜예요. 가짜가 만들어낸 것이 진짜라고요. 그러니까 이것은 뭐냐? 바로 ‘독재’가 되지요. 독재는 항상 끝이 좋아요? 안 좋아요? 나쁘게 되죠. 여기에 독재가 등장하고 전통이 등장하고 진리가 등장하는 것은 꼭 뭐냐 하면 이 가짜 세계를 나만이 진짜를 안다고 해가지고 손에 쥐기 위한 어떤 전체주의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계속해서 인간은 진실이라는 것을 언급하게 되어 있어요. 이 세상에서는.

예를 들면 인간이 소비하는 것이 이미지만 소비한다는 그 증거가 가방이 있는데 가방이 브랜드가 없는데 가짜 가방이에요. 10원짜리를 5만원짜리고 가짜 만든게 있고, 루이비통이라는 그 가방은 150만원 짜리인데 중국에서 만들어서 가짜에요. 둘 다 가짜에요. 자, 돈이 있다면 둘 다 가짜인데 어느 가방을 사겠습니까? 이왕이면 같은 가짜라도 명품이라는 브랜드가 있는 것을 사겠지요?

왜냐하면 사람은 이 가방의 기능이 문제가 아니고 뭐가 문제냐 하면 이미지를 소비하기 때문에. 이미지. 그런데 왜 이미지가 소비되느냐 하면 이미지가 가짜 사회에서 그게 사람들이 선호하기 때문에 그래요. 남들이 그걸 선호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옛날에 여자들이 젊은 여자들이 성형을 하게 되면 상당히 굉장히 부끄러워 가지고 숨겼던 일이 있었어요. 숨겼거든요. 진짜 성형하면 방송에 출연도 못하게 하고 이랬단 말이죠.

그런데 지금 고3 졸업 기념으로 성형을 한다고요. 고3 졸업하고 난 뒤에. 성형할 때 전부 다 왜 성형을 하느냐 하면 진실은 없는거예요. 중요한 것은 남들이 나한테 요구하는 것은 진실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이쁘다’는 이미지를 요구하기 때문에 그래요. 이쁘다는 이미지를. 그 시대의 그 시대가 요구하는 이미지에 내가 끼어들어야 그 시대와 함께 살 수가 있는 겁니다.

그거하고 오늘 본문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면 항상 하나님은 일을 하실 때는요 일을 일이 벌어지고 난 뒤에 그 다음에 하나님이 나서요. 일이 먼저 일어나고 난 뒤에 먼저 인간들이 하는 것을 봐서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움직이십니다. 이것은 천국은 처음부터 천국이라는 것은 없어요. 없고 지옥을 먼저 만들어놓고 그 다음에 천국이 와요. 지옥의 이야기 인간이 저주 받는 이야기는 창세기 3장이지요. 그런데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이야기는 마태복음 3장이에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그러니까 여기 신학교수들도 헷갈리는 거예요. 그러면 구약 때 하늘나라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그 문제가 등장해 버려요. 구약 때 이스라엘에게 하늘나라가 와 있느냐 안 와 있느냐? 만약에 와 있다면 지금 세례요한이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된 이야기죠. 벌써 와 있다고 이야기해야죠. 그런데 뭐라고 하느냐 하면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이 이야기는 뭐냐 하면 지금은 하늘나라가 없었는데 곧장 들이닥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약 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그 나라는 무슨 나라냐 하는 겁니다. 개념상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왕 되시고 왕의 통치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왕궁으로 개념상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 개념이 신약에 마태복음 3장에서는 통하지를 않는 거예요. 하늘나라는 없었던 겁니다. 그 없었던 것은 뭐냐? 그게 바로 하나님께서 일을 하실 때에 바로 인간들이 어떤 형편이냐 하는 것을 이렇게 쑤셔보는 거예요.

쑤셔봐가지고 그들이 갖고 있는 자기가 우리가 이스라엘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 뭔가 이 이스라엘이 이상하게 흘러간다. 뭔가 우리 이스라엘이 사기가 아닌가? 가짜가 아닌가? 이게 제대로 된 이스라엘 맞아? 라는 것을 들추어내고 그 다음에 나는 잃어버린 양을 나는 이방인에게 가지 않고 나는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왔다 나는 이스라엘을 위해 왔다고 예수님께서 세례요한 이후에 등장해버리죠.

일이 먼저 움직이고 그 뒤에 주위를 봐서 뒤에 그냥 들이닥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제목을 저는 “사기” 라고 하겠습니다 사기. 왜 이게 사기냐 하면 인간은 자기가 변화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변화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으면 진리가 이 고정된 내가 진리를 알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자신이 확정되었다고 생각하게되면 곧바로 뭘 찾느냐 하면 바로 진실과 진리를 찾지요.

뭐가 문제예요? 자기가 변화한다는 사실을 지금 모르고 있는거예요. 변화한다는 사실을. 그러면 제가 아까 요한복음 17장하면서 처음에 뭐라고 했습니까? 요한복음 17장 24절 쭉 읽으면서 그게 뭐라고 했던가요? 고정되었다고 했지요 고정, 그게 고정 되었다. 그게 고정되어 있으면 인간 쪽은 이 고정된게 아니예요. 인간은 가짜가 되는 겁니다. 이미 예수님 기도 가운데 저쪽이 진리로 확정이 되어버리면 그거 빼놓고는 전부다 가짜가 되는 거예요.

거기에 들어갈 인간 있잖아요. 아버지가 주신 자,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자’ 그게 진짜예요. 그 진짜에 대해서는 인간은 변화하기 때문에 그 진짜에 끼어들 수 있는 어떠한 방법도 없고 어떠한 수단도 그러한 그 길도 인간에게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뭐하면 되느냐? 본인의 가짜됨을 계속 발산하면 돼요. 이게 우리의 인간이 할 일입니다. 계속 가짜만 계속 쏟아내면 돼요 가짜만.

제가 이번 수련회 할 때 선교는 없다 했지요. 그럼 선교 없으면 그럼 사도 바울 돌아다니고 1차, 2차, 3차 돌아다닌건 뭐냐? 그것은 이미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고정된 겁니다. 네가 증인이 되리라고 고정된 거예요. 증인이 되라고 고정됐는데 사도바울이 1차, 2차, 3차하고 돌아다니고 하니까 사람들은 그걸 뭐로 보느냐 하면 우리도 저래야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우리도 선교해야 되고 전도해야 되는 것처럼 그렇게 느껴지는 겁니다. 왜? 인간은 진리를 갖고 싶어 하니까. 참된 것을 얻고 싶어 하니까. 그게 나를 살린다고 확신 갖고 살고 싶어 하니까.

그게 사기성입니다. 아까 이야기 했잖아요. 먼저 하는 것 보고 주께서 뒤에 들어온다고요. 뒤에 차고 들어온다고요. 이스라엘 만들어가지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저주 아래 있게 하는게 도끼 이야기를 왜 합니까? 세례요한이. 도끼 어디에 쓰려고 도끼 이야기 왜 합니까? 이방 나라 조질려고 부수려고 합니까? 아니죠. 도끼가 나무뿌리 어디에 놓여 있습니까? 이스라엘에 놓여 있잖아요. 그럼 그동안 이스라엘을 꾸준히 주께서 인도하신 이유가 뭐예요?

주께서 이스라엘을 가까이 하시고 동행하시고 그렇게 아니하면 인간은 자기가 가짜인걸 몰라요. 정상인줄 알고 있다 정상인줄 알고. 주께서 그 이스라엘을 일하게 하고 움직이게 하고 열심 내게 만들어서 그다음에 그들이 도끼에 잘릴 수 밖에 없는 저주 받은 민족인 것을 분명히 하시고 드디어 심판주로서 들이닥쳐 버리는 거예요.

보고 하는걸 보고 들어닥쳐요. 뭐라고 하느냐 천국이 가까이 왔다할 때 그걸 그 천국이 천국이 아니고 뭐냐 하면 가짜를 작살내고 그 뒤에 주어지는 천국이죠. 그러면 애초부터 인간이 천국을 기대한다는 자체가 자기의 분수를 모르고 그런 발상을 한 거예요. 자기의 주제의 파악을 못하고 생각을 한 거예요. 구원을 생각한다는게.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몰라요.

이 세상에는 뭐만 소비한다 했어요 아까? 뭐만 소비한다? 이미지만 소비해요 이미지만. 전통적으로 교회가 등장해서 이게 진리라고 하는데 그 교회가 결국은 교회가 진리라고 주장하는 교회가 결국은 무슨 사업해요? 우리 교회 건물 잘 지어 놨습니다 하지요. 이게 뭡니까? 이게 교회가 진리를 전파한게 아니고 우리 교회 괜찮습니다라는 이미지를 그렇게 전파하지요 이미지를.

사도행전에서 사도 바울이 돌아다니면서 이야기한 것은 바로 이겁니다. 죽음조차도 중요하지 않다. 나의 죽음조차도 중요하지 않다. 여러분의 죽음도 나의 죽음도 죽음조차도 이게 시시한 문제라는 겁니다. 그게 뭐냐 하면 예수님이 죽었다가 예수님이 살아났다. 그게 중요한 문제지 내가 몸 아픈데 어떻게 살까요? 그거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예요. 왜냐하면 가짜니까. 이미지니까.

본체는, 실체는 따로 있어요. 이미지부터 먼저 깔아놨어요. 그 이미지가 가짜 이미지예요. 가짜 이미지 먼저 깔아놓고 그 가짜 이미지가 왜 가짜냐 하면 이게 시도 때도 없이 변해요. 어제 다르고 어제 오늘 다르고 오늘의 내가 다르고 또 내가 달라지고. 여러분 혹시 그런 경험 있습니까? 밤에 잠을 자는데 마귀가 여러분들을 강제로 끌고 가는 그런 경험 해본 적 있습니까? 꿈 속에 꿈에.

마귀가 여러분들을 옭아매가지고 “가자 지옥으로!” 이래가지고 강제로 끌고 갈 때 여러분 무서워요? 안 무서워요? 되게 무섭지요? 무지무지하게 무서운 거예요. 그 꿈 속에서 뭘 원하느냐 하면 도움을 요청하는 겁니다. 그 도움에 대해서 요한복음 17장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17장 읽어보겠습니다. 25절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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