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
갈라디아서 5:16-17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
누구로부터 욕을 얻어먹는 경우가 있을 겁니다. 이 경우 대부분의 경우는 욕얻어 먹는 쪽이 납득되지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두 사람이 같은 세상관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서로 다른 판단 기준으로 각자의 생활을 하고 있다가 마주친 겁니다. 이는 곧 서로 다른 정의관과 죄악관을 지니고 있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선생님께서 어떤 학생에게 지적할 때, 그 학생을 본인이 만들어낸 질문이 아니라 선생님이라는 외부인으로부터 강요받는 질문 앞에서 노출된 겁니다.
그러면 그 학생을 그 외부 질문에 대해서 답변을 하면서 기존의 자기 세상관이 수정 내지는 교체될 것을 강요받게 됩니다.
이것을 ‘배운다’라는 겁니다. 학교는 ‘배우는 곳’입니다. 수정되어야 할 곳이고 자신이 변화되어야 될 곳입니다. 이 말은 곧 내가 학교에 오기 전에 ‘문제 있는 존재’라는 것을 학교에 입학해서 새삼 느껴야 한다는 말도 됩니다.
그런데 그 학교에 예수님이 상주하고 계시는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예수님이 이 세상 사정을 너무나도 잘 아십니다.
친히 만드셨고 친히 체험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도 ‘육체의 소욕’을 아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아시는 것은 ‘성령의 소욕’도 아십니다.
이는 그 바뀌는 방식을 독점적으로 알고 계시다는 말씀도 됩니다. 이 독점적 방식은 다름이 아니가 세상의 대세를 장악하고 있는 세상관으로부터 욕 얻어 먹는 방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탐욕의 세계’로 보십니다. 탐욕이란 욕심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것을 욕구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시도를 말합니다.
결국 이 세상으로부터 욕을 얻어먹는 이유는, 이 세상 것에 탐심을 안 갖고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당한 경험에 참여하고 있다는 현상이 이런 겁니다.
십자가란 바로 두 이질적인 탐욕이 정면으로 충돌되는 지점에 나타난 사건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곧 십자가의 반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