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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줄타기 하지 않는 복음.(펀글)묻고답하기히브리서

2001102818 - 히 6장 13-20 (맹세의 성취) 이근호 목사주일 오전 설교 -------------------------------------------------------------------------------- 2001/10/29 (20:36) from 61.80.229.254' of 61.80.229.254' Article Number : 31 이근호 Access : 304 , Lines : 73 2001년 10월 28일 18강 - 히 6:13-20 (맹세의 성취) 맹세의 성취 2001년 10월 28일 본문 말씀 :히브리서 6:13-20 6: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 보다 더 큰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6:14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6:15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6: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 6:1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6: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6:19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6: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구원의 근거로서 오늘 본문이 제시한 것은 맹세입니다. 하나님의 맹세하심입니다. 그리고 그 맹세를 이루는데 있어 어느 구석에도 인간들의 공로가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인간을 배제시킵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한 것도 없이 구원받게 됩니다. 예수님이 살던 당시에 바라새인들과 사두개인 및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신경을 바짝 쓰고 있었던 점은,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 힘으로 달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들에게는 율법이 있었습니다. 이 율법을 가지고 자신의 구원을 이룩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들에게 제시한 구원의 근거는 따로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6:26-28절에 보면,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살이 구원의 근거요 예수님의 흘리신 그 피가 구원의 근거입니다. 따라서 개인적인 그 어떤 노력이나 수고도 구원의 근거에 포함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살이 찢겨지고 예수님께서 피를 흘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인간의 노력과 땀과 희생은 하나님 앞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구원의 근거로 인해 그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피와 살이 자신들의 구원방식을 막는 장애물로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9:32-33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사도는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예수님의 살과 피만이 구원의 근거입니다. 이처럼 복음은 간결하고 단순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는 이것을 복잡하고 혼잡스럽게 만듭니다. 잡스럽고 요란스러운 것을 섞여 넣어야 된다고 목사들이 교인들보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주장들을 허용해 주면 안됩니다. 이들은 교회 내를 경쟁의 장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경쟁을 유발할 수 있는 것들을 섞어 넣는 것입니다. 그래놓고 그것을 구원의 근거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들은 복음에 관심이 없습니다. 교인들을 통해서 자신과 가족이 생존하고 살찌우기 위해 이런 수법을 쓰는 겁니다. 교인들끼리 싸움을 붙여놓고 그런 와중에서 교회와 더불어 자신이 배불리려 합니다. 옛날 어린이 라디오 방송에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누가 누가 잘하나"입니다. 교회를 이런 시합하는 분위기로 몰아가고자 합니다. "누가 단시간 내에서 권사나 장로로 진급하는가?"에 관심 갖도록 유도합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4장에 보면 참된 천국은 이런 식이 아닙니다. 올바른 성도는 자신이 썼던 면류관마저 벗어서 하나님 발 앞에 던지면서, 다음과 같이 찬양합니다. "이것은 오직 주께서 쓰셔야 합당합니다. 모든 만사가 다 주님의 인도로 된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맹세를 이루신 것에 대한 당연한 대우입니다. 여러분, 교회 내에서는 그 어떤 경쟁도 필요치 않습니다. 여기 나무 십자가를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양편에 쓰레기 봉지 들고 오셨습니까? 아니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과부와 고아를 돌봐주시고자 했습니까? 이 세상의 모든 병자들을 다 고쳐 주시려고 하십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었다고 해서 그 다음부터 물만 보면 그 위로 걸어다녔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였다고 해서 그 다음부터 일체 식사 준비는 안하고 예수님이 늘 기도해서 얻은 음식만 먹었습니까? 아닙니다.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 표적을 보여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말씀하시기를, "요나의 표적 이외에 다른 표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요나의 표적이 다름 아닌 예수님의 살과 피라는 구원의 근거입니다. 예수님이 사셨던 일평생이 바로 이 요나의 표적을 완성시키기 위한 활동이었습니다. 다른 활동은 없습니다. 어떤 중풍 환자는 병에서 나았지만 그는 병에서 나은 것이 아니라 죄에서 나았다는 증거로서만 중풍 병에서 나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바로 받아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옆에서 같이 십자가 달려 죽어가던 강도가 어떻게 구원받았습니까?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에 저를 기억해 주옵소서"하니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오늘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구원의 근거로서 아무 것도 필요치 않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간단하고 간결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런 사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본문에 아브라함이라는 분이 등장합니다. 그 사람은 보통 우리들과 같은 분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실제로 창세기 15:5-6에 보면,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정말 그 당시, 아브라함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물로 자식조차도 없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붙잡으시고 일방적으로 약속을 퍼부어 주시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그저 받는 것뿐이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이런 믿음이 없었기에 예수님 앞에서 다 걸려 넘어졌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보면, 이런 믿음까지 인간의 행함의 하나로 보지 않고 그것조차 하나님의 은혜, 즉 선물로 보고 있습니다. 이처럼 철저하게 인간의 의도를 배제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14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 보다 더 큰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즉 하나님 자신의 맹세라는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 스스로 지켜내는 그 맹세로서 아브라함에게 다가간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 맹세 지키라고 명령하거나 부탁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자기 맹세로서 끝까지 몰고 가시는 겁니다. 아브라함의 구원은 아브라함 자신의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의 맹세를 지키신 그 결과가 결국 '아브라함 구원'이라는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마치 축구 선수가 공을 요리조리 드리블하고 결국 슛 골인하듯이 말입니다. 그럴 때, 사람들이 구원받은 사람보고 묻기를, "당신은 어떻게 해서 구원받았습니까?" 물으면 그 사람이 뭐라고 답변하겠습니까?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자기 맹세 때문입니다"라고 답변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쏟아진 숱은 축복은 순전한 하나님의 일방적 맹세의 결과입니다. 지금 오늘날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은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 축복이란 자식의 생산이나 재산의 증식이나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이지만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죄 씻음에서 오는 영생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약속에 대해 맹세로서 다가오는 겁니까? 그것은 보통 인간 사회에서 인간들끼리 하는 맹세와 같다는 겁니다. 그 이야기가 16절에 나옵니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 여기에 보면. 사람들은 반드시 성취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자기보다 더 위대하고 힘있고 실현 가능성 있는 인물을 거론합니다. 즉 "내가 제시한 약속은 반드시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맹세'라는 표현을 쓰신 것은, 반드시 실현된다는 겁니다. 아브라함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무 소리 안하고 이 맹세를 믿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인간하고 맹세하지 않은 걸까요? 그것은 인간이 하는 모든 맹세는 인간 스스로의 자존심과 자기 의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은 자신의 오기와 자신의 긍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임의로 뜻을 제정해 놓고 높으신 하나님은 들먹이는 것입니다. "얘야 봐라 나는 저 율법을 반드시 지켜냄으로서 내가 얼마나 성화되고 성숙되고 하나님도 인정해 주는 신앙의 소유자인 것을 보여 줄게"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33-36절을 통해 일체 맹세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 대목은 이러합니다. "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맹세를 하지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여기에 보면 " 헛맹세를 하지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라는 인간들의 주장이 나오지요? 오늘날 교회 사기꾼들이 하는 수작이 늘 이런 식입니다. 자식을 신학교 보내라고 서약한 것을 반드시 지키고, 교회에 작정 헌금한 그 맹세를 지켜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 모든 경우는 오로지 하나님이 자신의 맹세를 이루기 위한 재료들이지 결코 인간들의 자기 오기나 자기의 신앙심을 측정해 보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겁니다. 인간들은 세상의 움직임을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한 증거로 삼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니, 하나님의 맹세의 초점은 오직 '제사장 직' 에 쏠려 있습니다. 제사장직이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유일한 통로라는 말입니다. 달리 말씀드려서, 인간이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맹세의 작품인 대제사장 직을 통해서만 인간은 구원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9절에서는 이직을 '영혼의 닻'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닻이란 어는 한 지점에 고정적으로 매여 있다는 뜻입니다. 인간이란 아무리 세월을 많이 먹어도 자존심이나 오기의 활동은 멈추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의 맹세와 충돌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영혼의 닻이 필요합니다. 닻이란 어느 정도까지는 활동하는데 있는 융통성이 허용되지만 궁극적으로 닻까지 뽑히지는 않습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대 제사장 직을 닻처럼 여깁니다. 비록 우리 인간이 죽을 때까지 완벽하지는 않지만 끝까지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은 구원의 닻입니다. 십자가의 피 흘리신 사건은 이미 하나님의 맹세 성취의 차원에서 일어나 버린 사건이기에 그 어떤 경우에도 그 효과가 취소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 자만이 영생의 닻이 있는 사람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남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맹세보다 이미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맹세만 내세울 수 있는 믿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장병엽: 줄타기는 남이 보아도 위태롭습니다,근데 자신은 평안하다고 합니다.스릴이 넘쳐야 복음이 있는건지는 모르겠는데 아리까리 한것과 확실한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교인도보고 교단도 바라보고 하면 씩씩한 복음이 나오긴 애시당초 틀린겝니다.부탁하기는 하나님의 맹세는 너무나도 일방적이어서 본인이 반드시 이루시거든요,지켜보고 떡이나 얻어 먹읍시다.(그게 긍휼을 베푸는분에게 대한 예의입니다.) [11/17-12:58] 장병엽: 왠지 윗글이 괞쟎다고 추천 하시는분이 이리 고마운지... [11/17-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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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5 묻고답하기 평해주십시요!(펀글) - 최고관리자 04-11-23
634 묻고답하기 죽은 자의 하나님과 산 자의 하나님 - 최고관리자 0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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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람 ➜ 묻고답하기 줄타기 하지 않는 복음.(펀글)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04-11-17
630 묻고답하기 Re..답변 감사함니다...몇가지 더 질문드림니다.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11-17
629 묻고답하기 Re..부산강의 루터와 칼빈의 비교 강추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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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 묻고답하기 찝찝한 천국 제거 작전 - 최고관리자 04-11-13
626 묻고답하기 아래 질문에 대한 추가 질문을 해도 되는지요? 창세기 최고관리자 04-11-13
625 묻고답하기 Re.. 그럼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인지요?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11-07
624 묻고답하기 Re..네 무슨 의미인줄 압니다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11-04
623 묻고답하기 Re..목사님 저서 원고자료 업부탁합니다.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11-04
622 묻고답하기 목사님 저서 원고자료 업부탁합니다. - 최고관리자 04-11-04
621 묻고답하기 Re..11월3일-수요예배,음성설교가 잘 안들리...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11-04
620 묻고답하기 창세기 25장에 대한 질문입니다 창세기 최고관리자 04-11-02
619 묻고답하기 청함과 선택의 두 배후싸움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4-10-30
618 묻고답하기 Re..목사님. 질문입니다.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10-29
617 묻고답하기 Re..오늘 수요설교 마지막 부분에서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10-28
616 묻고답하기 오늘 수요설교 마지막 부분에서 갈라디아서 최고관리자 04-10-27
615 묻고답하기 Re..인간의 값어치는?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10-22
614 묻고답하기 Re..목사님.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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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 묻고답하기 질문 드립니다 이사야 최고관리자 0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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