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라
갈라디아서 5:13-15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오늘 말씀에서는 “서로 종노릇하라”는 말씀으로 바꾸어 언급합니다. 종이란 상대에 대해서 나의 권리를 외치지 말하는 말씀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이만큼 해준다면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느냐”는 식으로 상대에게 묻지 말라는 말입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마태복음 5:41에도 나옵니다.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기준은 서로가 서로를 판단하거나 측정할 수 없고 오직 주님만 개입해서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겁니다.
특히 마태복음 5:41의 말씀은, 그 당시 유대사회에 통용되던 다음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마 5:38)
즉 보복하는 심령을 희생당하는 심령으로 바꾸라는 겁니다. 과연 이런 결과를 유발하기 위해 평소에 인간들이 갖고 있는 왜곡된 말씀 이행 정신을 들추어내기 위해 예수님이 먼저 ‘말씀대로 하시는 희생’을 남겼습니다.
성도에게 이 마음으로 이끄시는 겁니다. 즉 희생이 보복의 완성이라는 겁니다. 보복이 없어졌다는 말이 아닙니다. 희생 차원에서.
희생을 근거로 보복하시겠다는 겁니다. 이게 아니라면 아예 하나님 쪽에서 인간들 쪽으로 그 어떤 말씀도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어차피 모든 게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실패 없이 진행될 것 같으면 인간에게 새삼 “말씀 지켜라”라는 요구가 필요치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할 필요도 없고, 사랑 안 하셔도 상관없는 것이 합당한 대상을 향해 주어지는 겁니다. 따라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 내용을 보충하기 위해 길고 무한한 설명이 따르는 서술 꼬리가 필요합니다.
우리 인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위해 먼저 “서로 미워하라”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즉 ‘미움’을 드러내게 하므로서 그 미움이 출현되는 원천을 성도들이 인정하기를 원하십니다.
미움을 아는 만큼 사랑을 알게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 미움’이 기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