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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헛수고 180810강의베드로전서

서울의존강의20180810a 베드로전서1장 20-25절(헛수고)-이 근호 목사

베드로전서 1장 20-25

20절,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21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22절,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라
23절,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4절,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절,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베드로전서 1장 20절을 봅시다. 20절,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이렇게 되어 있죠. 시간의 시작은 예수님으로부터 된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시작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시간이 끝이 있다는 것을 통해서 알죠. 그러면 시간이 끝이 있다는 것을 또 어떻게 아느냐, 시간이 끝이 있다는 것은, 처음 시간이 시작하는 것이 천지창조와 더불어 시간은 나타납니다. 창조와 더불어서. 해와 달과 별들이 시계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것들이 있는 한, 시간은 재깍재깍하고 변화를 보여준다 이 말이죠.

근데 그러한 창조물들이 사그리 다 없어진다면, 이건 변화의 여지가 없죠. 변화의 여지가 없으면 시간도 같이 없는 것입니다. 시간은 변화를 통해서 파악이 되기 때문에. 그 변화가 없으면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가 없어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시간을 만들었다는 것은, 예수님 자체가 변화가 있다는 말입니까? 변화가 없다는 말입니까? 예수님 자체는 변화가 없어요. 예수님 자신이 변화가 없어요.

제가 한번 써 볼 테니까 어느 것이 맘에 드는지 골라잡으세요. 자, 첫 번째 경우하고 두 번째 경우하고 둘 중에 어느 것이 맘에 드는지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보세요. 일단은 여자 분은 놔두고 남자 분에게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예를 드는 겁니다. 우연히 카페에 갔는데, 어떤 여인이, 그냥 여자가 아니에요. 여인이에요. 마침 햇빛이 사선으로 테이블 반을 차지하면서 드리워져있는데, 여인이 앉아있는 거예요. 옆모습을 보니까, 한눈에 확 반할 정도였어요. 그리고 이 카페는 마른 꽃이 걸려있는 카페에요. 이 여인은 창가에 앉아서 뭘 마시는데, 외로움을 마셔요. 자, 이 남자가 한눈에 딱 반해버렸다 이 말이죠.

그러면 이 남자가 반한 이 여인은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비스듬히 눈부신 햇살을 받으면서 앉아있는 여인에게 반해버린 겁니다. 그러면 여자가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근데 여자가 아름답지를 않아요. 다만 아름다움을 봐주는 남자가 있기 때문에, 남자의 심성 속에 그 여인은 아름다운 겁니다. 그러면 이 남자에게 이 여인이 너무 아름답다는 것이 각인된 이 순간을, 이게 만약에 2개월 전이라면, 그렇다면 이 여인을 어디서 찾을 수가 있습니까? 나중에 알고 보니까 같은 동네 사람이었고, 혼자 살고 있고, 혼자 사니까 작업 대상이 되겠죠. 혼자 사니까. 껄떡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길에서 만났는데, 그 여자는 분명히 그 여자에요. 이 여자가 맞는데, 이런 게 어려워요. 내가 반한 여자는 지금 길에서 만난 분명 그 카페에 있었던 그 여자가 아니에요. 내가 반해버린 그 여자는 카페에 앉아있어야 돼요. 그것도 마른 꽃이 걸려있는 그곳이어야 하고 햇빛이 비스듬히 와 비춰야 하고 그것도 똑바로 앉아있으면 안 되고 옆으로 앉아있어야 돼요. 그러면 이 남자의 이상향에 있어서 이 여인은 있어요? 없어요? 존재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나중에 한 6개월 뒤에 가보니까 그 카페가 재개발 들어갔어요. 철거되었어요. 그 상황을 재현할래야 재현할 수가 없어요. 철거당해가지고.

그리고 그때 반했던 그 여자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어요. 근데 그 다음에 보니까 그 여자가 몸빼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거예요. 그러니까 도저히 이 남자가 반했던 이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 거예요. 존재하지 않지만 그 남자는 미치는 겁니다. 왜? 존재하지 않지만 이미 자기 속에 그 여자의 아름다운 것이 쏙 들어오고 말았으니까. 그 다음부터는 동일한 여자라고 할지라도 자기한테는 성이 안 차요. 이런 경우가 바로 존재입니다. 존재라고 하는 것은 이미 고정되어 버렸어요. 고정.

두 번째 경우는 뭐냐 하면 어떤 여자가 있는데 시시해요. 별로 땡기지를 않아요. 근데 그 여자가 같은 동네에 사는데 만나면 만날수록, 한번 만났을 때는 별로였어요. 두 번 만났을 때도 별로였어요. 세 번째 만나서 인사를 하고 하는데, 이제는 그 여자에 의해서, 적극적인 그 여자에 의해서 본인이 좋아하게 되는 변화가 일어났어요. 첫 번째 경우는 본인 쪽에서 꽂힌 거고, 두 번째 경우는 그 여자가 이 남자의 정신을 변화시켰습니다. 변화시켰죠. 그러면 이 남자는 말합니다. “나는 처음에는 안 좋았는데 자꾸 보니까 좋더라!”

자, 첫 번째 경우와 두 번째 경우에서 어느 것이 좋습니까? 물론 결혼한 사람한테는 둘 다 안 좋아져야 되죠. 예를 들어서 한 겁니다. 첫 번째, 두 번째에 있어서 정말 어느 것이 사랑이냐 이 말이죠. 사랑은 1번이겠어요? 2번이겠어요? 이게 정답내리기가 굉장히 힘든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1번은 없죠. 존재하지 않죠. 카페 재개발 들어갔으니까. 존재하려면 그 카페가 있어야 되고 그 테이블이 있어야 되고 그 햇빛이 있어야 되고...

근데 그 여자 앞에 뭐가 있느냐 하면, 약간의 못생긴 친구를 데리고 왔다고 칩시다. 그러니까 이 남자가 여자한테 꽂히는 순간 못생긴 이 여자는 죽어야 돼요. 못생긴 건 죽어야 돼요. 못생긴 건. 나머지기는 항상 제거해버립니다. 어디서 이쁜 것한테.. 근데 그 여자한테는 못생긴 것 때문에 이쁜 것이 더 부각이 되었어요. 그러면 이 친구는 죽으면 안 돼요. 못생긴 친구가 있어야 한조를 이루어서 부각이 되거든요.

사람들에게는 뭐가 환상이냐 하면 존재가 환상이에요. 모든 존재가 환상입니다. 우리 애가 이뻤는데, 만약에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 이쁜 애가 어디에 갔어요? 벌써 없죠. 이뻤던 그 손녀가 10년 후에 동일한 그 손녀라 할지라도 엄마에게 있어서, 그 할머니에게 있어서의 그 이뻤다는 그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 꽂히는 거예요. 존재는 환상입니다. 환상. 인간은 사랑의 대상이 존재로 굳혀져버려요. 존재로. 우상이죠. 우상.

지금 예수님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그러면 그 변화에 우리가 따라줘야 해요. 더우면 더운 대로 받아들여야 하고 추우면 추운대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나는 이 더운데서 못 살아!”라고 고집을 부립니다. “왜 너한테는 특별히 더워서는 안 되는데?” “나는 더운 것은 싫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 “나는 안 더워야 돼.”라는 그것에 고정관념이 확정돼버리면, 그게 환상인데 그걸 믿어버려요. “나는 안 더워야 될 사람이다.” 그걸 확정짓고 믿고 있어요. 환상을 소유하게 됩니다.

이제 시간이 있는 이유를 알겠죠. 시간과 더불어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불가능성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 시간이라는 것을 투입시켜버립니다. 니는 어떻게 해도 본래의 니 모습을 찾아낼 길이 없다는 거예요. 계속해서 인간은 자기에게 꽂히고 자기가 좋았다고 하는 그것을 계속해서 없는데도 찾고 있는 거예요. 없는데도. 그런 경우가 없는데도.

주님께서는 뭐냐 하면, 예를 들어서 이런 겁니다. 엄마가 아들에게 볶음밥을 맛있게 해줬어요. 근데 그날따라 애가 배가 고팠는지 평소대로 그냥 해줬는데 맛있다는 거예요. 치즈가 녹아내리면서 치즈랑 같이 먹으니까 맛있었던 모양이죠. 엄마는 자식이 맛있다고 하면 연발로 한 일주일을 계속해서 먹이잖아요. 근데 두 번째 먹으니까 맛이 없는 거예요. “엄마! 맛있는 거 해줘”라고 하는 거예요. 엄마가 하는 소리가 “똑같아. 재료 똑같고 다 똑같아.” “아니야. 아니야. 그 맛이 아니야.” “어쩌라고? 그럼 어쩌라고?”

우리 주님께서 계속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줍니다. 주는데, 그 은혜에 대해서 고마워하거나 감사하지 않는 겁니다. 헛바람 들은 거예요. 인간은 헛바람이 들은 겁니다. 마귀에 의해서 신이라고 잠시 착각했던, 그런 나라는 존재를 본인이 잊지를 못해요. 잊지 못하는 것이 자기를 힘들게 하는 거예요. 잊지 못한 것이. 점점 늙잖아요. 늙으면 수용을 해야죠. 나는 늙는다. 늙으면 나중에 죽는다. 이걸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수용하라 이 말이죠. 근데 나는 늙으면 안 돼! 나는 아프면 안 돼! 나는 더우면 안 돼! 그럼 어쩌라고?

인간은 그 변화를 누가 줬는지는 생각을 안 하고, 내가 꽂혔으니까 내 뜻대로 모든 세상이 돌아가야 되는 겁니다. 주님께서 인간에게 변화를 줌으로 말미암아, 니는 좀 완전히 주저앉아라 이 말이죠. 니는 좀 깨져라 이 말입니다. 내가 존재의 전부니까. 예수님만 살아있게 니는 좀 죽어 도! 이 말입니다. 인간 자체가. 예수님만 살아있게. 니가 살아있다고 설쳐대니까 예수님의 존재가 완전히 무가치하게 되잖아요. 그게 바로 복음입니다.

베드로는 이 복음을 고발용으로 사용해요. 뭐, 열두제자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창세전에 주님께서, 20절에 “그는 창세전에 이미 알려진바 되고”라고 할 때, 우리보고 뭐 지식하나 얻으라고 준 말씀이 아니에요. 고발하는 겁니다. 이 말씀이 왜 안 먹히느냐, 이미 우리는 완고한 내 존재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완고한 내 존재가. 예수님이 뭐라고 하던 나는 관심도 없어요. 더운데 다 귀찮아요. 중요한 것은 내가 중요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너라는 것을 그렇게 고집부리지 말고, 주님이 먼저 계시고, 존재는 주님으로 족해요. 그 다음에 존재에서 뭐가 나온다? 변화가 나오잖아요. 그 변화에 니가 같이 휘말려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겁니다. 그게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 바로 24절에 나옵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이 이해를 하시고 24절을 보게 되면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모든 육체는 뭐라고 했습니까? 모든 육체는 풀 같고, 근데 목사님 풀도 존재라는 뜻이 아니에요? 그건 존재라는 뜻이 아니에요.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꽃이면 괜찮은데? 그 다음에 나온 말이 뭐냐 하면, 풀은 어떻게 돼요?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죠.

그러면 여기에다가, 모든 육체를 풀로 봤기 때문에, 그 풀에다가 모든 육체를 집어넣어봅시다. 우리 자신부터. 그럼 우리 자신은 어떻게 된다? 우리 자신은 마르게 되어 있고, 우리 자신은, 모든 존재는 추락하게 되어 있다 이 말이죠. 어느 존재가 우리에게 그렇게 가혹한 형벌을 내리십니까? 어느 존재가? 바로 창세전부터 계신 예수님의 존재가 우리에게 그런 형벌과 처벌을 했다는, 그런 조치를 했다는 거예요. 24절,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이걸 가지고 25절에 보니까, 25절,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그게 바로 두자로 복음이라고 되어 있어요. 아! 참, 사도 대단하죠. 제가 수요일에 두 번씩이나 도끼로 쪼갠다는 말을 했던 모양이죠. 나는 그냥 사람보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드라마를 보고 한 이야기인데, ‘같이 살래요’에 나오는 이사장 부인이야기. 천하에 교양이 있는 체를 해가지고 말하는 것도 하여튼 얄밉게 말하는 그것. 그래서 제가 사람 죽이라고 쪼개는 것이 아니고 그 안에 뭐가 들어있어서 그렇게 교만한지를 그게 보고 싶어서 쪼개라고 두 번씩이나 이야기를 했거든요.

근데 제가 참 가혹하게 이야기를 하더라는 거예요. 근데 제가 말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복음이 뭐냐 하면 쪼개는 정도가 아닙니다. 아주 고갈시켜버려요. 저수지에 비 오면 저수지가 출렁거리면서 아주 풍부하게 보이죠. 근데 만약에 가뭄이 들었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 저수지가 바닥이 드러나 버리죠. 주님께서는 아예 벼르고 있습니다. 바닥을 드러내요. 우리 자신의 바닥을. 뭐로? 말씀으로. 무슨 말씀을 지킵니까? 말씀은 우리가 가린 모든 것을 증발시켜버리는데. 황폐죠. 고갈.

그래서 우리의 밑바닥을 드러내는 겁니다. 우리의 바닥은 결국은 그릇에 불과하고, 아무것도 담긴 게 없는 바람. 그게 헛바람이라고 하는 겁니다. 헛바람. 자, 어느 정도로 헛바람이라 하면, 저의 주특기, 노래가사가 동원됩니다. 노래가사를 들어보면 여러분들이 이 노래를 아실 거예요. 옛날 이수만이 부를 때, 그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이게 헛바람인줄 몰랐어요. 가사가 뭐냐 하면,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 헛바람!

이 노래를 옛날 이수만이가 불렀을 때, 그래, 난 욕심 안 내겠어. 그냥 사랑하는 사람하고, 비둘기 집이 크지 않잖아요. 장미넝쿨로 해가지고, 별로 크지 않잖아요. 이 정도로 하면 욕심이 없겠지, 라고 누가 이야기를 하겠지. 헛바람! 작은 비둘기 집, 창문 하나에 얼굴 두 개 내미는, 이것마저 헛바람이라고 한다면 헛바람이 아닌 게 어디에 있어요? 다 헛바람이죠. 바짝 고갈시킨다니까요. 인생을. 말라비틀어지게 만들어요. 누가? 주님이. 올해도 만만치 않지만 내년에는 45도까지 올라가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진짜 바짝 마르죠. 비도 안 오고 45도. 지금 포르투갈 45도, 스페인이 45도까지 올라갔다는데. 그 나라들 천주교 순례관광 수입으로 먹고 사는 나라인데, 지금 마리아님 뭐하고 있는지 몰라?

사람이 망상이나 허상이 없으면 그냥 변화에 순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변화에. 왜? 그냥 빈 그릇에 무엇이 담기든 간에 그거는 제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죠. 아니, 그런 식으로 고백한다면 최고죠. “주께서 내 인생에 뭘 담을 지는 내 소관이 아니고 주님 소관입니다.”라고 빈 그릇을 그냥 제공하면 되는 것이거든요. 무엇이 담기든. 빨간 것이 담기든 파랑이 담기든, 담긴 대로 살면 되는데. 그런데 뭔가 꽂힌 것, 기억들이 가동돼버리면, 그것이 결국은 자기가 뭔가 된 줄로 여기면서 살아가는 거죠.

자, 지금까지는 서론이고요. 계속해서 진도를 나가봅시다. 지난 시간에 그런 이야기를 했는가? 어떤 사람이 저한테 그래요. 복음이 뭡니까? 뭐, 다 알지만, 달리 복음이 뭔지를 한마디로 말해서 뭐냐, 복음이 뭐냐 만남이에요. 근데 사람은 그 만나는 사람을 누가 정하고 싶은가 하면 내가 정하고 싶어요. 나한테 이익이 되는 사람은 만나고, 안 그러면 안 만나고 싶거든요. 그런데 진짜 복음을 만난 사람은 내가 예상 못한, 내가 원치 않은 만남이 주어지는 겁니다. 만남이. 예수님을 학수고대한 사람은 유대사회에서 아무도 없습니다. 목수의 아들을 만나려고 그렇게 고생하고 성경을 연구한 게 아니거든요.

그 당시의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메시야 상(像), 이미지가 따로 있어요. 그런데 그 이미지를 어디에서 끄집어내는 겁니까? 본인들이 끄집어내는 거예요. 그런데 그들이 원하는 만남은 자기의 존재가 고정된 것처럼 자기가 원하는 메시야도 존재로서 확정되고 고정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확정되고 고정된 것. 메시야 만났다. 끝. 그걸로 천국까지 계속 이어져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근데 주님은 오셔서, 베드로전서 1장 24절의 말씀처럼 24절,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절,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이 말씀에 준해서 예수님이 와버린 겁니다. 근데 이 말씀에 준해서 예수님이 오셨다는 말씀이 어디에 나옵니까? 라고 물으면 이사야 40장에 보면 나와요. 2절에 보면,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이래 되어 있어요.

그 다음의 말씀은 쉬운 말씀이 아니에요. 3절,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라고 되어 있고요. 5절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의 말씀하셨느니라” 이래 되어 있어요. 여기서 제가 뭐가 어렵다고 이야기했느냐 하면, 말 또는 말씀, 그냥 말이라고 합시다. 말씀이라고 하면 선입관이 있기 때문에. 말이라고 합시다. 말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정착할 수 있는 방식이 뭐냐는 겁니다. 인간은 몰라요.

말씀이 이 세상에 정착하는 방식은, 말씀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자신들이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그 말씀을, 율법을, 계명을 지키면 현실화된다. 이 땅에 온다고 된 거예요. 그렇게 되면 뭐가 문제가 되느냐 하면 죄사함이라는 자체가 의미가 없어요. 말씀대로 사는데 무슨 죄가 있어요. 말씀대로 사는데. 안 되잖아요. 지금 메시야가 온다는 것이 뭐냐 하면 죄지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시키는 겁니다. 그러면 기정사실화를 시키기 위해서 메시야가 오면 죄라는 것이 뭐냐 하면 그 말씀과 말씀을 이 땅에 정착시키는 방식이 틀려먹었다는 거예요. 그러면 어디가 문제냐? 이사야 40장 5절에서 육체가 문제라는 거예요. 내가 문제에요. 내가 말씀 지켜서 알아서 죄를 없애고 의가 되는 것이 아니고, 만남이 이루어져야 해요.

그런 만남이 이루어지려면, 그 만남으로 오시는 분은 누구냐 하면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서 오시는 거예요. 그럼 그 다음부터는 쉬워요.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서 오시는 분에게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내가 스스로 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어요? 없어요? 없는 거예요. 그게 말씀의 기능입니다. 말씀의 기능은 나름 내 존재를, 아까 존재이야기를 했죠. 마른풀이 걸린 창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시는 그 이야기죠.

내가 내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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