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39 - 어둠 속의 빛
[18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39 - 어둠 속의 빛
18,07,16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93페이지부터 하겠습니다. 우리가 전도서를 그냥 보게 되면 전도서는 이 세상의 허무함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즉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고 하는데, 그 모든 것이 헛되다고 한다는 말이죠.
(전 1: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여기에서 '모든 것' 이라는 것은, 일체의 예외가 없는데, 즉 제외됨이 없다는 겁니다.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도 그렇고 말이죠. 우리는 이 세상을 보면서 관찰을 하는데, 그 관찰이 과학의 기초라는 겁니다. 갈릴레오도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가 보게 되면, 우리 주위에 있는 해와 달과 별을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관찰을 통해서 본다는 말이죠.
그냥 보는 것과 관찰을 하는 것의 차이점이 무엇인고 하니, 관찰을 할 때는 세상의 변화 속에서, 그것을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그렇게 환원시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을 관찰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관찰을 하게 되면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제외를 시킨다는 말이죠.
우리가 자기 집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가로수의 나뭇잎이 몇 개인지, 그런 것은 헤아리지 않는데, 왜냐하면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니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하지만 신호등의 불이 빨간색인지 파란색인지, 그런 것은 중요하다는 말이죠.
그렇게 제외시키는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는고 하니까, 바로 '나'에게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나에게 이익이 된다. 손해가 된다, 불필요하다" 라고 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손해가 되면 피해버리고,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일단 남겨두고, 그리고 이익이 되는 것은 관찰을 하는데, 혹은 집중을 한다는 말이죠. 그게 어떤 관찰이고 집중인고 하니, 의식을 가지고 한다는 겁니다.
훗설의 '현상학' !!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나오는 이런 철학사조가 있는데, 그것을 '현상학' 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게 무엇인고 하니까, "과학이라는 것은 진리가 아니고, 내가 얻고자 하고 보고자 하는 범위 내에서 필요한 것만 축출할 뿐이다. 그러니 진리가 아닌 필요에 의해서 축출한 것인데, 그것을 가지고 전체를 다 장악한 진리라고 우기지 말라" 라고 하는데, 그것이 곧 훗설의 현상학이라는 말이죠.
이것으로 철학이 엄청난 충격 속에 빠지게 되는데, 왜냐하면 그 이전까지 철학은 진리를 추구했는데, 다윈의 진화론이 나오고 하면, 그런 것을 다 끌어 모아서 "인간이 어디에 의지를 하면서 살 것인가?" 라고 하면서, 자기 몸과 마음을 다 떨어서 맡겨도 괜찮은, 그런 안정감을 주는 최종적인 진리를 얻기 위해서, 그래서 진리를 추구하고 탐구하고 노력을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현상학이 나옴으로서 어떻게 됩니까? 사람이 사람마다 진리가 다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까, "너는 너에게 필요한 것을 관찰하고, 나는 나에게 필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