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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요한복음 17장 13절(하나님의 작품)180703b-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요한복음

강남-요한복음 17장 13절(하나님의 작품)180703b-이근호 목사

자, 지난 첫째 시간 끝에 격리한다 했습니다. 이 격리를 예수님만 격리하는게 아니예요. 인간도 격리합니다. 그 제가 어느 강의에서 광주강의에서 그런 이야기 했지요. 하나님의 일은 인간이 먼저 일을 해 놓고 모방해서 그게 아니다라는 식을 일을 하신다 했지요. 이것도 마찬가지예요. 인간이 인간은 자기 자신을 격리해요.

어떻게 자기 자신을 떼어 놓느냐 하면 지금의 나, 지금의 나와 점점 미래의 나로 떼어 놓고 지금의 나보다 더 성공적인 나 성공적인 나를 이렇게 격리시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뭐가 작용하냐 하면 아까 이야기 했잖아요. 불확실성이 여기 작용해요. 불확실성을 확실로 메꾸기 위해서 자기 현재의 나하고 미래의 나하고 자신이 본인이 그렇게 갈라놓게 하는거예요.

이게 뭐냐 하면 인간에게 희망이라고 해요. 희망. 희망이라고 이야기하고 정신분석학에서는 이걸 자아 이상이라고 합니다. 어려운 말로 하는데 그냥 쉽게 해서 꿈, 희망. 지금의 나도 만족스럽지만 나는 내 욕망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금보다 항상 더 나은 나. 지금 만약에 한 5억 있다면 5억 있는 그 순간에 벌써 10억이 탐이 나고 10억이 있어야 100억이 탐이 나게 되어 있지 처음부터 100억 탐내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처음부터 그렇게 안 되거든요.

뭐가 있다하는 것은 이제는 더 큰 것을 가질 수 있는 그런 확실성이 더 강렬해졌다고 기대를 하게 마련이다 이 말이죠. 블로흐라는 독일의 철학자가 이야기한게 바로 그게 뭐냐 하면 바로 희망의 철학 인간은 희망 없이는 못 산다 희망의 철학. 인간은 희망 때문에 사는 거예요.

교인이 50명 있을 때 100명 원하고 100명 되면 1000명을 원하고 처음부터 5000명 원하는게 아니고 조금 되니까 아 내가 주의 종인 모양이다. 주의 사자인 모양이다. 진짜 나 아니면 주의 일이 안 되는 모양이다. 그럼 하나님이 나를 키우겠지. 동업자니까 키우겠지. 하청업자니까 하겠지. 안되면 결국은 또 자살하고.

이 불확실성을 하는데 있어서 이 불확실성을 메꾸기 위해서 예수도 찾고 하나님 찾고 기도하고 성령 받는다고 주시면 부르짖으면 성령 받는다 해가지고 열심히 전도하려고 하고, 이 모든 것이 뭐냐 하면 이 구조, 현재 나와 미래의 나의 격리구조가 유지되는 한 이것은 계속해서 악마의 시험이 되는 겁니다. 가룟 유다 되는 거예요.

이것도 시도해보고 저것도 시도해보고 좋다는 것은 다 시도해보는 거예요 좋다는 것은. 살 빼려고 온갖 것 살 빼려고. 다이어트 약 너무 먹어서 배불러. 온갖 것 공에 엎드려 봤다가 천장에 매달려 봤다가 요가해 봤다가 황제 다이어트 고기도 먹어봤다가. 오후 5시 식사하고 아침 6시까지 아무것도 먹지 마세요. 옛날 이거 해가지고 53kg 됐어요.

옛날에 우리 할머니하고 제가 살았는데 부모님은 장사나가고 할머니랑 살았는데 할머니가 귀찮잖아요 나이가 많으니까 손자 밥 해주기가. 그러니까 빨리 해치우고 주무시려고 오후 5시에 저녁주고 아침 6시에 밥 먹었어요. 몸무게가 53kg. 그때는 슬펐어요. 남자가 몸이 이래가지고.. 지금은 그리워요. 지금도 이 방법을 한번 사용해보니까 효과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효과있다는 말은 또 내가 기대한거예요. 보장확실성으로 메꾸려고 한겁니다.

불확실성을 갖고 있다는 말은 이게 표적고 악마의 표적이고 계속 악마의 공격 대상이 되는 겁니다. 너 그러면 인간 망한다. 끝장나는 거야. 너 되고 싶은거 있잖아. 여기서 실패하면 안 되잖아. 성공해야지. 남자가 칼 뽑았으면 뭐가 되든 되야지 이런 식으로. 자꾸 남들이 보잖아 남들이. 너에게 하는 기대가 가득인데 여기서 주저하면 안 되잖아. 너는 할 수 있어. MY WAY. 윤태균의 MY WAY. 이거는 몰라도 되. 나중에 찾아보세요. 아저씨들 좋아하는 노래. 할 수 있어. MY WAY 팝송 아닙니다. 우리나라 노래 있어요. 트로트예요.

그래서 주님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격리를 할 때 어떻게 격리를 하느냐 하면 주님과 제자들 사이에 경계를 떼어 버립니다. 기어이 격리를 해버려요. 여기서 일어나는 것은 불확실성이 아닙니다. 뭐가 일어나냐 하면 십자가 + 부활이에요. 예수님께서 이 땅을 거쳐가면서 경험했던 아버지의 구원을 아버지의 구원을, 아버지로부터 구원받은 예수님 자기 경험을 이 땅에 제자들에게 이 멸망되는 세상 이 캄캄한 세상에서 남겨둠으로서 제2의 제3의 예수그리스도를 이들을 통해서 표출을 하려고 하시는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왜? 예수님이 가신 빠져나가신 코스가 십자가와 부활이기 때문에.

그러면 이 멸망의 이 세상이 예수님의 이런 불확실성이 아니고 예수님은 확실성이거든요. 확실한 것을 믿으라가 아니라 주님이 주신 것 그 자체가 더 이상 손댈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 자체가 완전품이 되는 거예요. 믿음으로 끼어들 수 없어요. 그냥 경험하면 되는 겁니다 경험. 내 구원 말고 내가 열심히 해서 얻은 구원 말고 하나님이 다 이룬 구원을 매일같이 그것을 경험하면 되는 거예요.

여기 송파에 가면 석촌호수 있지요? 석촌호수에 이렇게 가면서 물 같은거 발에 닿으면 바람 살랑살랑 불면 석촌호수가 호수니까 물기가 일어날게 아닙니까. 그런데 바람을 내가 후후 붑니까? 아니죠? 부는 바람에 발만 집어넣었을 뿐인데 신발 끝에 물이 적셔 오잖아요.

그러면 이 세상은 뭐냐? 이 세상은 전부다 바람 바람 바람이다. 주님의 완성된 말씀에 응한 세상이잖아요. 그래서 뭘 경험하느냐 하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예수님이 몸소 체험했던 그 경험, 얼마나 미움 받았어요. 그 경험 그 아버지의 구원을 이제는 격리된 채로 하나가 된 우리 멸망되지 않은 사람에게 그대로 주어지는 겁니다. 여기 14절 누가 한번 읽어 보세요 14절.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참 세상이라는 것이 가만있으면 누가 날 안 건드리는데 우리가 분해되어서 우리가 멸망되지 않는 순간부터 세상에 모든 변화에 성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모를 때는 저 사람이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하느냐 사람 대 사람의 관계로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지요. 사람 대 사람으로 이해하게 되면 그 사람이 나를 미워한다면 내 쪽에서 어떻게 하면 되요? 친절하게 해주고 친근하게 해주고 그 사람에게 맘 안 상하도록 잘해주면 사람 대 사람의 관계가 서로 정으로 주고 받는건데 그렇게 섭섭하게 나한테 안 대할 것이라는 그런 계산이 되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복음에 의해서 멸망에서 해소되어서 구원받는 사람이 되는 순간 그 사람이 나에게 미워하고 시비거는 것은 그러한 윤리적 도덕적 차원이 아니예요. 악마의 작용이 되는 겁니다. 악마가 흔들게 하는 작업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그러면 그럴 경우에는 방법이 뭐냐 하면은 바로 이 격리를 나에게 적용시키는 겁니다.

자, 어떻게 적용시키냐 하면 아까 격리했을 때 공식이 뭐라고 했습니까? 뭐 +뭐라고 했습니까? 십자가 + 부활이죠. 그러면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십자가 죽으심이라고 하는 것은 아버지가 예수님을 버리신거죠. 아버지가 예수님을 버린다는 말은 죽인다 이 말이죠. 왜 죽입니까? 죄 있음을 보고 죽였잖아요. 예수님 지은 죄는 없지만 대신 짊어진 죄 때문에 아버지가 예수님을 버리잖아요.

그래서 방법은 뭐냐 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미워하면 되잖아요. 철저하게 미워하는 것 우리 자신을. 남이 나를 미워하는 것보다 더 미워하는 거예요. 남이 나를 미워하는 것보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의 오류는 자기를 미워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착각이요 오류입니다. 착각이고 오류예요. 사람이 왜 남들 앞에 벌벌 떱니까 본인이 본인을 철저하게 안 미워해서 그래요. 자꾸 본인을 살려내려고 애쓰다 보니까 점점 더 군대귀신 다 끌어모으는 거예요. 길 가는 모기까지 다 무네. 파리 날파리까지 다 달려들어.

자, 하나님의 구원이 하나의 저 범종, 범종 알죠? 아주 큰 종. 선덕여왕 신라의 박물관 가면 흔히 말하는 전설에 의하면 에밀레종 있잖아요. 아이 삶아서 했더니 에밀레~하는 전설. 범종이 있단 말이죠. 범종에서 치면 범종에서 은은하게 뭐가 나옵니까? 웅~~~하고 이렇게 점잖은 소리가 쭈욱 나오지요? 범종. 치면 댕~~~하면 웅~~~~하고 나오잖아요.

그러면 그 근처에 있던 풀숲에 있던 날파리 다 기어들어가 여기 다 붙어 있다. 세상은 뭐냐 하면 날파리예요. 하나님의 성경의 완성이 구원~~~~~주님이 다 이루었다~~~이렇게 나오니까 온갖 날파리 다 끌어온거예요. 해봐야 그 소리가 죽습니까? 그 날파리 청동 쪼가리 딱딱한데 날파리 붙어봐야 소리 줄일 수 있어요? 이 대범한 소리를.

사람이 왜 세상을 무서워하느냐 하면 이 범종이 아니고 그 카페에 보면 손님 오면 딸랑딸랑 조그마한 종. 이 불확실성 때문에 너무 옹졸하게 살다보니까 딸랑 딸랑 하는데 이거는 아무나 날파리가 다 건드려. 아 어떡하지 어떡하지. 맨날 어떡하지. 아침 눈만 뜨면 어떡하지 어떡하지. 염려 걱정해요 자기 것 지킨다고. 거대한 종이 아니고 개 목에 있는 강아지나 개 목에 있는거. 촐랑댈 때마다 딸랑딸랑 촐랑대는거 있잖아요. 그 얍삽하죠. 돈도 안 비싸. 문방구에 가면 한 개에 천원만 주면 사는 그런 종. 이런 종은 수억 줘도 못 사. 천원짜리 종 있잖아요. 촐랑대는 종. 그러니까 네 종이 크냐 내 종이 크냐 교회와서 자랑한다고.

세상은 상대할 가치가 없어요. 그렇게 알려면 내가 멸망 받을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철저하게 자기를 개무시해야 합니다. 자기를 개무시해야돼요. 내가 나를 무시하면 무시할수록 상대는 전혀 겁나지 않습니다. 화분 던지고 과일 던지고 해도 나부터 화분 던져 놨는데 뭐. 기내식에 두 끼 안 나와도 괜찮아요. 그 쿠폰 삼만원짜리 두 개 얻으면 되니까. 아까 그 기내식 하청업자 자살했다고 했지요. 왜 죽습니까? 겁이 나서 죽은 거예요. 왜 겁납니까? 딸랑 딸랑 나는 당신의 영원한 종입니다. 딸랑 딸랑 잔종이죠 잔종. 오늘 제목을 잔종이라고 할까? 신규어다 이거.

철저하게 자기를 밟고 군화발로 진흙에다가 뭉개야돼요. 자기를 미워하지 아니하면 상대방을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상대방을 미워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을 미워 안 하게 되면 세상을 부러워해요. 나는 언제 저 사람처럼 되나. 부러워져요. 밀폐된 공간 문을 바깥에서 잠궜는데 그것도 모르고 같은 제한된 산소 나눠먹게 하면서 그게 많이 산소 먹었다고 살쪄있을 때 인생 성공입니까? 갇혀있기는 마찬가지 아닙니까? 갇혀있기는 마찬가지란 말이죠. 빠져 나오려고 문고리 교회가 문고리인데 문고리 백날 해봐야 열리지도 않아요.

다시 말하지만 주님의 다 이루심이 찾아와야 돼요. 주님의 범종이 찾아와야 돼요 범종이. 우리는 그 범종 때문에 에밀레~ 죽은 아이처럼 되야 돼요. 아이 하나 잡아서 갑자기 불교신화가 됐네. 우리 아이 하나 죽어가지고 예수 그리스도 완성됐다는 범종이 되어버린 거예요. 격리구조를 시킨 이유가 이미 인간들이 나름대로의 악마의 사주를 받아서 나름대로의 어떤 목표가 있어요.

아까 지금의 나와 그 다음에 소망의 나가 있다고 했지요? 그 소망을 천국으로 바꾸고 하늘나라로 바꾸고 바꿔도 그 구조는 똑같아요. 이미 나를 위한 소망이라면 그것은 이미 그 구조는 악마가 사주한 인생체계입니다. 인생살이예요. 하지만 제가 아까 이야기했잖아요. 그런 구조를 메꿀 수 있는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요. 확실하게 메꾸지만 또 불안해요. 지금 내가 하루에 성경 3장, 기도 한 두 시간하는데 이래가지고 되겠어? 세상이 점점 더 어려워 가는데 한 두 시간 4시간으로 더 하고 성경 7장 읽고 본인이 본인을 스스로 만들어요.

아까 했잖아요. 법과 제도가 왜 투입된다고 했습니까? 확실치 않으니까. 이 예수 그리스도의 패 가지고 모자라니까. 다른 괜찮은 패들을 전부 다 쥐고 있는 거예요. 손가락이 모자라. 화투 46장 다 쥐고 있어가지고 막 빠질 참이야. 나중에 막 잃어 버려요. 우리 자신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왜냐? 갇혀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거예요. 진짜 우리가 기도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한다 이런 얘기가 아니고 갇혀있다는 그것 아까 어디 갇혀있다고 했습니까? 멸망의 세상에 다 한 동기생이에요. 멸망의 세상에 갇혀있는 이상은 갇혀있는 자로 보지 멸망될 자로 보지 우리를 고유의 우리 사적인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 어떤 인간도 가치 없어요.

따라서 말씀이 와서 우리를 가지고 녹여버려요. 분해시켜 버려요. 분해 시켜서 한쪽은 천국으로 한쪽은 지옥으로. 그러면 영생 얻는 사람은 어떤 장벽을 통과했습니까? 장벽이라고 했는데 그 장벽이 죽었다와 영생 살았다 영생 사이에 예수님의 십자가 자체가 장벽이 되지요. 왜 인간들이 장벽을 스스로 힘으로 뚫을 수 없느냐 하면은 인간이 예수님을 내쳐서 만들어진 장벽이기 때문에. 뭐가 들어있어요? 나는 당신이 꼴보기 싫어! 라고 내쳤다 이 말이죠. 내쳤고 이쪽 편에 있는 아버지는 예수님을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을 죽여버렸지요. 자기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죽여버렸다 이 말이죠.

그렇다면 십자가를 해가지고 이쪽은 뭐냐 하면 마땅히 죽어 마땅한 멸망될 자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 예수님이 다 보여준거예요. 이거 보여준게 성공한게 뭐냐 하면 성경에 응하게 함이라. 성경해석을 할 때에 반드시 이렇게 나와야 돼요. 우리는 멸망해도 마땅하다. 어떤 행함도 소용이 없다. 우리는 불가능함 속에 갇혀있다. 이것이 계속 나와야 됩니다.

예를 들면 에스더 4장 같은데 보면 그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 나오지요. 자, 그 본문을 가지고 설교한다고 칩시다. 그 설교하고 난 뒤에 나중에 목사님 우리가 죽으면 죽으리라 해서 죽으면 구원받습니까? 이렇게 나오면 이거는 성경 해석이 잘못된 거예요. 주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라. 우리끼리는 알지요. 우리끼리는 알잖아요. 공경 대상입니까? 식사하는 사람은 알지요. 공경 대상이에요?

인간은 이미 누구를 공경하고 있습니까? 나를 공경하고 있지요. 나를 공경하고 있는데 거기에다가 이미 절대적 공경 대상이 있는데 누구를 공경해요? 부모요? 공경 못 합니다. 어떻게 해도 잘 해줘도 못하고 못해주니까 더욱 더 못 할 뿐이고. 왜? 이미 공경대상이 나다 이 말이죠. 공경대상이. 그러니까 에베소서에 나오는 부모를 주 안에서 공경하라는 말은 결국은 뭐예요? 너는 멸망되어도 싸다. 따라서 뭘 나한테 기대하고 뭘 어디를 가? 구원을 받아? 주제파악도 못한 채 어디서 하느냐 이 말이죠.

우리는 격리되어야돼요. 격리된 상태에서 우리는 무엇을 경험해야되요. 범종이라고 했지요. 하나님의 구원을 만끽해야 되고 경험해야 됩니다. 내가 만들어낸 구원말고 하나님의 구원을. 그러면 성령이 와서 결국 쓰레기를 치우는 식으로 걷어내지요. 하나님이 이미 구원받은 사람을 이끼 끼듯이 곰팡이 끼듯이 자꾸 뭐가 낍니까? 하나님의 구원 예수님의 영광은 뭐로 자꾸 녹이 슬어요? 무엇의 영광 때문에. 내 영광 나의 잘남 나의 가치 있음 나 포기하고 싶지 않아 나는 내가 더 중요하다는 녹이 자꾸 끼겠지요. 그걸 가지고 제가 지난 주일 낮설교에 이걸 가지고 뭐라고 했느냐 하면은 이걸 인간의 자유라고 했잖아요.

인간의 자유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선택과 인간의 결정된 사항을 인간은 자유라고 해요. 나 하고 싶은대로 내가 결정하고 구애받지 않고 내가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을 자유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성령께서는 어떻게 한다고 했습니까? 성령께서는 이 자유를 다 삭감한다고 했잖아요. 제거한다고 했잖아요.

성령이 오게 되면 우리는 주여 이거 할 수 있습니다 저거 할 수 있습니다가 아니라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만 살아. 다른 군소리 하지 말고 내가 지령한 대로 살아 너는 나만 쳐다봐. 너의 주인이 네가 아니야. 주인은 따로 있고 우리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에요. 주인이 밥 먹을 때 우리는 신발끈 맬 가치도 없어요. 세례요한이 그런 이야기 했잖아요. 내 뒤에 오시는 분에 대해서 내가 신발 끈 풀거나 신발 받들 그런 입장도 안 된다고요.

그렇게 격리가 됐으니까 그렇게 격리가 될 때에 다른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그런 모습을 보고 얼마나 비웃고 놀리겠습니까. 네가 교회가고 난 뒤에 수입이 얼마나 늘어나고 네 몸은 얼마나 더 건강해지고 네 가정은 더 화목해졌느냐고 우리에게 우리의 믿음을 자꾸 날파리가 와가지고 들러붙으면서 흔들어 대는 거예요. 무슨 말이냐 하면은 가룟 유다의 말을 제가 대변하는거예요.

자,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탬이 된다고 생각해서 내 자유를 가동시켜가지고 내 선택으로 예수를 믿었다 이 말이죠. 믿고 난 뒤에는 뭘 찾아야 되요. 믿고 난 뒤에는 우리는 어떤 격리구조가 있어요. 예수 믿기 전과 믿은 후의 내 모습은 얼마나 성공적으로 변화됐는가 우리는 기대하고 있는거예요. 기대하고 있는데 기대하고 있다는 말은 예수님이 보다 내 기대에 부응하는 확실성이 있기를 원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렇게 분석하고 주께서 어떤 복을 줬나 따져보니까 그 확실성이 갈수록 점점 질이 떨어지는 거예요. 목사님 교회에 젊은 사람들 많이 왔다 갔잖아요. 왔지만 간 사람도 많이 있잖아요. 왜 왔다가 갈까요? 올 때 그냥 빈 마음으로 온게 아닙니다. 자기 나름대로의 소망을 가지고 온거예요. 소망을 가지고.

다시 말해서 확실한게 없어요. 다만 확실하기를 은근히 기대하면서 불확실성을 가지고 온겁니다. 그렇게 왔는데 오고 난 뒤에 가족 깨져버리고 자기 몸은 아프고 멀쩡한 것도 아파버리고 자식은 가출했고 가출해서 잘 살면 다행인데 가출해서 문제 일으켜가지고 합의금 달라고 하네. 하여튼 어릴 때 마음의 상처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긴 곤란하지만 갑자기 연락이 온다든지 하여튼 내 인생이 개판되버린거예요.

이게 뭐냐 성경에 의해서 내 인생이라는 것 내 인생 자체가 이게 형체가 이게 아이스크림 녹듯이 형체가 무너져버리고 없는거예요. 곽을 짜가지고 이것이 내 인생이다 라고 정해놓은게 있는데 말씀이 오니까 완전히 이걸 주께서 쥐포 뜯듯이 뜯어버리는 겁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꿰매죠. 주워서 풀 붙인다고요. 완전히 풀 붙일 때에 이게 또 반칙이 있다고요.

날마다 찢겨지는 내 인생 말씀에 의해서 내 인생이라는게 없고 말씀에 의해서 녹아져야 되는데 쪼가리가 이렇게 끊어져 있으니까 이 쪼가리를 우리가 억지로 붙이는 거예요. 이 붙이는게 뭐냐 하면 왜곡된 편집 있지요? 그걸 편집하는 것 동영상 편집하는 것. 왜곡된 편집을 이게 괜찮은 건전한 자기의 자아상이라고 이게 우기게 되는 겁니다. 이게 벌써 뭐냐 하면 오류예요 오류.

매일 우리가 생각하는게 뭐냐 하면은 괜찮은거 끌어 모아가지고 자기 재구성. 자아 재편성하는 거예요. 자아의 재편성. 마치 프로야구할 때 에이스라고 던졌는데 에이스라고 해가지고 여자분들은 야구 잘 모르잖아요. 내가 무시하나? 투수 가운데서 제일 잘 던지는 투수. 던졌는데 돈 수십억 줬는데 이미 지금 몇 월달이야? 6월달 3개월 지금 전반기 끝나가는데 적어도 한 10승 투수 이래줘야 되는데 2승 8패. 2군으로 내려가 이러겠죠. 팀하나 잘되기 위해서는 못하는 선수를 계속해서 방출하고 새로운 팀을 트레이드 바꾸고 이렇게 하잖아요. 야구팀도 그런데 하물며 우리가 자아 구성하는데 매일같이 실제는 그거예요.

건전한 것 안 놓치고 쓸데없는 것은 무책임하게 내 편 아니다. 방출해버리고 계속 건전한 것 건전한 것. 살만한 가치를 하나님 보시기에 이쁘다하고 아이고 착하다 이렇게 소리 듣도록 매일 자기 관리하는 거예요. 그게 가룟 유다가 했던 겁니다. 패를 쥐고 계속 패 관리 하고 있는 거예요. 제가 또 이렇게 하면 앞으로 그러지 말라는 이야기죠? 하는데 그러는데 그러지 말라는 이야기 아닙니다. 그러지말고 아니고 이렇게 생각해버리면 자기의 결정과 나의 선택이 또 나오겠죠.

주님께서는 지금 이야기 하는 것이 뭐냐 하면은 이게 녹이다 녹. 먼지거든요. 주님이 주님의 자기의 의를 하나님의 의를 지키는데 우리보고 하라고 하지 않아요. 성령이 알아서 이걸 뜯어내요. 깎아낸다고요. 오래된 녹 낀 어선같은 것 페인트칠 다시 하려고 갈르잖아요. 성령께서 그걸 갈르는데 너무 아파요. 이빨 할 때 아픈 것처럼 아파도 너무 아파요. 들쑥날쑥 들쑥날쑥 난 것을 가지런히 하려고 하니까 얼마나 아파요 그래. 이렇게 된걸. 이거 억지잖아요 억지.

우리 본성은 뭐냐 악마예요. 그런데 악마를 악마의 요소를 끄집어 내 버리면 이건 우리 전부거든요. 내 잘난 맛에 사는 것이 전부 아닙니까? 미래의 성공을 보는게 전부잖아요. 이걸 무참히 긁어내버리니까 우리가 얼마나 아픕니까? 욥 같은 경우에 또 제자들이 가는 길이 그래요. 그 아픈게 뭐냐 하면은 바로 주님이 죄도 없으면서 죄를 주님이 소유하고 있을 때에 아버지가 보시기에 그 위치가 아파야 될 위치인 것을 우리에게 경험케 하시는 겁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드라마 다모에 보면 그게 나와요. 아프냐? 나도 아프다. 뭐냐 하면은 같이 아파야 이게 사랑이라는 겁니다. 사랑은 좋은 것만 같이 나눠야 사랑이 아니고 아플 때 같이 아파하는게 사랑인겁니다. 갑자기 다모 이야기 했는데.

주님께서 이 땅에 십자가 하게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내가 십자가 지는게 아니고 자기 십자가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는 그 주의 말씀 있잖아요. 그 말씀을 이미 우리는 이 범종 안에 완성되어 있어요. 완성되어 있는데 완성된 이 웅~~하는 완성되서 나와서 뭐라고 하느냐.

십자가 갈 길과 그리고 뒤에 영생의 배경이 된 십자가 길에서 이게 나오게 되는 거예요. 나올게 될 때에 성도의 주변에 어디에 포위되어 있습니까? 어디에 휩싸여져 있습니까? 바로 예수님을 미워했던 그 멸망의 세계에 그대로 녹아져 있는거예요. 이태리 풍듀인가 퐁듀라는거 있지요? 치즈 녹인데다가 빵을 찍어 먹는거 이런거 있잖아요. 우리의 삶은 성도의 삶은 뭐냐 하면은 멸망이라는 소스를 날마다 찍어먹는거예요. 날마다 멸망이라는 것.

백날 해도 문 열고 나오면요 우리는 혹독하게 현장성을 경험할 수밖에 없어요. 그 현장성이 뭐냐 하면은 바로 나한테 이익되는 이익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찾아 다녀서 찾아 가려면 내가 결정해야 되겠죠. 나의 결정과 내 선택이 한시도 쉴 틈이 없어요. 내가 결정해요. 지하철을 탈것이냐 버스를 탈것이냐 그것도 결정해야 되요.

사소한 것도 다 해야되요. 고양이하고 개 키우는데 고양이 먼저 사료를 줄 것이냐 개한테 줄 것이냐 아주 사소한 이것. 2:8로 할 것이냐 3:7로 할 것이냐 모든지 선택이에요 선택. 그런데 그 선택을 할 때 그냥 선택하는게 아니예요. 이 선택했을 때 뭘 기대한다? 내가 옳은 선택이 되가지고 나한테 유리한 선택이 되서 좋은 결과가 나올 때 미리 땡겨서 나는 즐거워하겠다는 그런 마음의 결심이 있는거예요. 그게 바로 가룟 유다의 심보라니까요. 그게 멸망받을 심보예요. 이거는 죽을 때까지는 이거는 계속해서 녹이 끼는거예요.

그렇게 하게 해놓고 십자가를 앞장세워서 성령이 와놓고 그걸 뜯어내고 그걸 긁어낼 때 많이 아파? 좋은걸 기대했는데 남들이 놀리잖아요. 미워할 때 그냥 미워하는게 아니고 아이고 교회다니더니 꼴 좋다. 교회와서 예수 믿어서 챙긴거 뭐가 있나? 손가락으로 한번 해봐라 뭐 이런 식으로 얻어 챙기기는 지금 있는 것도 완전히 다 망가졌는데. 그럴 때 남들이 나를 비웃고 그 다음에 누가 비웃고? 내가 나를 비웃고. 그러면서 느끼는 것은 확실하냐? 다시 또 다시 무슨 성? 확실성을 또 따지게 되요. 내가 지금 확실히 구원받았는가. 확실히 구원받으면 그 다음에 갈등이 뭐냐 하면 주님의 확실성을 갈등을 시키는게 아니예요.

참 인간이 이렇게 나약해요. 주님이 확실하냐를 따지는게 아니고 주님은 완전한데 나와 주님사이에 믿음이 혹시 어설픈 믿음이 아니냐 이 말이죠. 이 흔들 다리에서 줄 두 개 다 끊어져가지고 한 번 더 건들면 와장창 다 끊어져 가지고 25년동안 예수믿고 지옥가는거 아닌가? 믿음이라는 것을 자꾸 상정하는 거예요. 이게 없는데 이게 없거든요.

내 자유의 선택에 의해서 예수를 골라 잡은게 아니잖아요. 이거는 마귀가 시켰다 이 말이죠. 주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신거예요. 주님의 자율권이예요. 주님이 자기가 원해서 이렇게 범종안에 집어넣었는데 마귀는 뭐냐 하면은 우리를 똑똑하게 인식시켜 가지고 네가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가 보라 하는거예요.

고린도후서에 나오지만 너한테 믿음이 있는가 확신이 있는가 너 믿음이 있는가 돌아보라 성경 말씀 나오는데 그 성경말씀을 보면서 또 뭘 따지느냐 하면은 그걸 그 말씀을 지키려고 해요. 그래 확실한 믿음. 고린도후서 한번 봐야되겠다. 고린도후서 마지막에 13장 5절에 보면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무슨 자니라?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이 말씀을 내가 지켜버리면 이건 나의 선택과 결정이 가미가 되요. 그러면 우리는 뭘 기대하느냐 하면 이 말씀을 지킨 상태에서 믿음의 성공을 내 모습을 그리게 된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이건 뭐냐 하면은 내가 나와 나를 뭐합니까? 격리시킨거예요. 그리고 그 사이에 나의 믿음으로 아주 잘못된 다리를 건설하는 겁니다. 불안하지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격리시키는가. 우리를 둘로 격리시켜 버려요. 하나는 멸망될 나와 이미 구원받은 나를 합니다. 멸망될 나를 뭐라고 하느냐 사도 바울은 육이라고 하고 구원받은 것을 영이라고 해요. 그러면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고 겉사람은 후패해야 되지요. 이렇게 격리하는 이유가 바로 십자가와 부활의 효과예요. 십자가와 부활이라고 하는 것은 죄가 없으면 십자가 질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죄인을 위해서 대신 죽었다면 십자가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누가 느껴져야되요? 내가 죄인이것을 느껴져야 되겠지요? 그 죄를 느껴지는 것을 누가 담당했어요? 바로 내가 구원받으니까 내가 담당해야지요. 내가 바로 죄인이에요. 그리고 내가 뭐다? 의인이에요. 이게 말씀의 십자가 부활에 의한 나타난 두 가지의 양상이잖아요.

아까 세상적으로 봤을 때 두 가지 양상이 뭐라고 했습니까? 멸망당할 자와 구원될 자 있고 개인적으로도 이미 격리되어 있으니까 우리의 육은 날마다 죄고 그 죄를 십자가 피로 끊어서 영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육을 쓰시도록 마귀가 와서 육을 흔들도록 주께서는 허락해요. 허락해놓고 성령이 오게되면 이런 육이라 하는 것 에잇 육! 육 이라하는 것을 알게되면 우리 자신이 좋아할까요? 싫어할까요? 미워하지요. 미워하는 그게 영적이라니까요. 남이 나를 미워하기 전에 먼저 내가 선점해서 선수쳐서 내가 나를 밉다 이 말이죠. 내가 나를 미우니까 세상에 두려울게 하나도 없네요. 그럼 우리의 희망은 더 미워지는거 밖에 없지요.

어떤 아가씨가 남자와 사귄다. 결혼을 복음 안에서 결혼을 하면 어떻게 하느냐 하면 지금 결혼하는 내가 밉잖아요. 그럼 남자를 만나서 본인이 더 미워지도록 하게 되면 복음적으로 결혼한거예요. 복음적으로. 왜냐하면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오면 오늘 저녁 뭐야? 오늘 저녁 라면 끓인거야 하면서 라면 끓이고 파 다지면서 막 우는 거예요. 양파를 잘라서 그러나 왜 울고 있어? 아니야. 라면 끓이는 내가 너무 미워.

계락 톡 파 송송 라면 끓이는 이 라면 밖에 못해주는 내가 너무 미워. 걱정 하지마 내가 있잖아. 아니야 나는 그럴 자격도 그런 보호받을 그런 여자 안돼. 흑흑. 이런 여자 미친 여자. 거의 없겠지요. 결혼해서 네가 나한테 해준게 뭐가 있어 이런게 보편적인데 모든 걸 하면서 나같은 이렇게 못난 여자인데 당신같이 이렇게 남자를 만나게 해 주신 당신 앞에 별 면목이 없어. 아들 하나 낳아가지고 또 우내. 쌍둥이를 낳아야 할 걸 한명만 낳아서 미안해. 왜이래. 자꾸 미안하게. 그러면 한쪽은 다독거려주고 한쪽은 울기 바빠가지고 싸울 새가 없어. 뭐 자기 주장이 있어야 싸우지.

남편이 아내가 미워서 가락지를 해주니까 아내는 그 가락지 팔고 머리카락 짤라가지고 나같은 여자는 백발되서 괜찮아 나 절에 갈 거야. 이렇게 나온다면 좀 과한 이야기지만 이건 뭐 싸울 이야기가 없지요. 극단적인 이야기에서. 주께서 그렇게 하게 하시면 그렇게 해야돼요. 나같이 이렇게 고린도후서 13장 보세요. 믿음이 있는가 보라. 있어야 믿음이 있지. 주여 나 같은건 믿음이 없습니다 그게 바로 육을 통해서 네가 구원받았다가 아니라 십자가가 표출된다니까요. 십자가의 공로가 부활의 능력이 너를 통해서 이렇게 표출되게 되면 그것이 우리가 주님의 범종 안에 들어있는 우리의 역할이고 우리의 할 일이 되는 겁니다.

참 오늘 본문이 보통 어려운게 아니예요. 15절 16절 봅시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보세요 이게 바로 우리 조지는거 아닙니까. 왜 주님은 후딱 좋은데 가버리고 우리는 남겨두고 뭡니까 이게. 스승님은 좋겠다 제대하고 우리는 고생하고. 이게 뭐냐 이 말이죠. 그게 아니고 격리되어 있으면서도 격리될 수 없는 관계.

악마가 아무리 쑤시고 세상의 어떤 환란과 곤고나 어떤 권세나 이 권세는 악마를 보면 되요. 어떤 권세. 어떤 법적이고 제도적인 권세라 할지라도 주님의 사랑에서 그리스도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그러니까 하나님의 구원을 드러내기 위해서 철저하게 우리를 이용하는 거예요. 이미 구원시켜놓고. 이미 구원 시켜 놓고. 그럼 거지 나사로는 왜 죽었는가? 그건 그 용도가 그 용도니까 그렇게 했고. 거지 나사로와 12제자 다르잖아요. 12제자는 죽을 때 되어야 죽어요. 그런데 그게 죽음이 아니라니까요. 이미 장벽을 넘어버리면 죽는 것도 영생이에요. 영생의 일부가 영생이란 것은 우리와 끊어지지 않는 관계가 영생이거든요. 그렇다면 그 관계가 유지되는 한 우리가 돌에 맞아 죽으나 어디 굶어 죽으나 그 자체가 영생에 표현입니다. 영생의 징후가 되지요. 증거가 되지요.

다시 이야기합니다. 자기를 미워하지 않으면 세상 사는게 무섭다니까요. 철저하게 자기를 밟아야 되요. 자기를 밟을 때 요령을 알려드립니다. 밟는 요령은 아까 우리에게 자유가 있다고 했잖아요. 자유가 우리에게 뭐 한다고 했습니까? 선택과 결정이잖아요. 이 선택과 결정은 항상 육에서 나와서 육으로 갈 수밖에 없지요. 내 선택과 결정에 대해서 어떤 기대를 하지 않는거예요. 어떤 기대를.

기도했다 뭐 헌금했다 내가 예수 믿는다 거기 그거 하면서 동반되서 나오는 어떤 기대함 희망 내가 이걸 함으로서 지금보다 더 잘된다는 어떤 성과를 아예 우리가 포기하는 겁니다. 생각하지 않는겁니다. 그러면 포기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 이 미래 자리는 주님의 몫이에요. 주께서 그냥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주시는 의의 열매들을 줘요. 그러면 우리는 아까 제가 인간은 결과만 받고 사는 거예요.

그냥 소나기 오면 소나기 맞는 거예요. 소나기 오라고 기대하지 말고. 오면 태풍오면 태풍 받고 소나기 오면 받고. 우산 준비 하지 마세요. 우산을 준비하는 그 순간에 갑자기 가스 불 키다가 그냥 나올 수가 있어요. 우산 준비 해야지 하는것 조차도 주님의 허락 없이는 우산을 손에 못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손에 가졌더라도 전철 타다가 놓고 내린다 이 말이죠. 지하철은 비 안 오니까 그냥 다른거 하다가 전철 떠났는데 아차! 우산. 또 두리번 거리죠. 도둑질 할라고. 정신 나간 노인네가 그냥 놓고 갔다 싶어서. 흠뻑 생쥐처럼 비 맞는 것은 내가 원한게 아니잖아요.

모든 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 무시하고 주의 말씀에 응하는 차원에서 주께서 그렇게 한걸음 두걸음 이끄시고 인도하시는 겁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경험이예요. 온 몸으로 경험하고 체험하는 겁니다. 비록 남들 보기에는 우리가 내침을 받아요. 그 가운데 우리는 알아요. 이게 내 죄를 아는 것과 주님의 이 죄인을 용서가 섞여 있는 체험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 완성을 위해서 지금 우리가 주님 앞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그 즐거움이 있다는 것. 감사가 있다는 것. 이렇게 이야기해도 세상가면 또 무서워해요. 또 무서워해요. 만약에 지금 546번을 타려고 하는데 지금 성경공부 했으니까 착한일 했잖아요. 그러면 가자마자 15초 내에 도달하면 주께서 또 오늘 주의 일 한다고 은혜 주셨네 이러는데 그 가자마자 15분 만에 온 차가 가버렸어요. 에이 씨....성경공부해도 소용없어요. 안 도와줘. 성경공부 한 후에 어떤 효과 같은걸 은근히 기대했는데 자기가 기대했는지도 몰랐죠. 차가 떠나니까 기대했구나가 들통난겁니다.

우리의 소망은 세상을 떠나는 거예요. 이게 주님의 소망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되는게 이 땅에 있으면서도 떠난 것과 같은 관계와 효과를 우리가 맘껏 여기서 나타내고 발산할 수 있느냐 이겁니다.

그다음에 15절 봅시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라고 되어 있지요. 이 이야기가 뭐냐 하면 아까 강의 처음에 한 이야기예요.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더라면 세상은 정상적이에요. 그런데 그 분이 왔다 다녀감으로서 세상 자체가 악이죠. 나쁜 짓 해서가 아니라 그냥 세상 악이고 악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때문에 악이에요.

그 기능과 역할을 주님께서는 누굴 통해서 하느냐? 오늘날 세상에 남은 우리 성도를 통해서 그대로 그걸 하게 하세요.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자유적인 결단과 의지에 의해서 구원의 문고리 쥐었다고 좋아하는데 우리는 그딴거 필요 없이 구원됐다는 그 차이점, 그 차이점이 저쪽에서 완전히 저쪽에서 악이라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체험하고 목도하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이해 못하니까 우리가 이해합니까? 그 사람들 하는 행동을. 전부다 이해하지요. 같은 속성이니까. 성령께서 와서 긁어내니까 우리가 딴 사람이지 우리가 평소에 사는 것과 똑같아요. 안 다치려고 하고 나를 안 건드렸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 전혀 우리는 달라질거 없고 앞으로 달라지지 않을거예요. 80, 90되도 마찬가지예요. 성령께서 늘 이렇게 십자가의 구원을 감사케 하시는 겁니다.

한 절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세상은 악입니다. 그리고 계속 악이다 악이다 하는 것을 누구를 통해서 제자들을 계속해서 남겨둠으로서 분명히 하시는 거예요. 16절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이 말은 뭐냐? 너희들은 세상과 비교하거나 상대할 필요 없다. 그들은 범종에 붙어 있는 날파리들. 쓸데 없는 날파리예요. 뭐 귀농하겠다고요? 날파리 어떻게 하려고? 잡초 어떻게 하려고?

도시 생활은요 세 끼 후딱 밥 먹고 난 뒤에 여가할 수 있지요. 농촌생활은 아침 먹고 잡초 뽑고 점심 준비하고 점심 먹고 날파리 쫒아내고. 하루 종일 그야말로 가장 동물에 가까운 밥먹고 자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할 여지의 여분의 시간이 남아있지 않아요. 제일 좋은 것은 귀촌하는 것이 아니고 돈 벌어서 도시에 사는 것. 병원 가까운데 사는게 최고지. 촌에 가서 여름철에 벌레한테 진드기한테 물려가지고 병 걸려가지고 인간은 이 세상은 아무것도 우리와 비교할 가치가 없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내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내 자신 자체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에게 덮친 것은 예수님의 의고 예수님의 구원이고 하나님의 구원이지 내가 엮어낸 내가 영글어낸 나의 구원이 따로 없기 때문에 우리는 나만 그러면 는데 나만 그런게 아니고 세상도 별것도 없으면서 허풍덩어리 허세 덩어리거든요. 개뿔도 아무것도 없어요. 전부다 갇혀 있잖아요.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펜스 저 쪽에 생명이 있잖아요. 우리는 이미 십자가 펜스를 넘어서서 부활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상대할 가치가 없지요.

호날두하고 메시라는 세계적인 선수가 동네축구 아저씨하는 조기축구에서 한골 못 넣었다고 그렇게 애통할 필요 없다 이 말이죠. 놀 때를 같이 놀아야지. 놀 대상을 보고 놀아야지. 세상하고 맞설 이유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없다고 우리 가결합시다. 안 믿는 식구들 안 믿는 가족들 무슨 소리해도 그 허세고 허풍인줄 알고 그냥 싱긋이 웃지요. 천지도 모르면서 날파리가 어디서 범종에 붙어가지고 웅~~웅~~~에밀레하고 그렇게 삽시다.

기도합시다. 하나님아버지 주께서 하신 일에 말려든 것을 감사합니다. 폐쇄된 공간에서 구원받으려고 나름대로 얼마나 애를 썼습니까. 얼마나 마귀한테 속아 넘어 갔습니까. 그것조차도 우리가 마귀와 한통속이기에 속아 넘어갔다는 사실을 이제야 고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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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7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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