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요한복음 17장 8절(맞춤 신앙)180619b-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요한복음

강남-요한복음 17장 8절(맞춤 신앙)180619b-이근호 목사

자, 두 번째 시간 합시다. 첫 번째 끝에 제가 이런 이야기 했습니다. 왜 주님은 다시 살아나서 바로 승천하지 않으시고 왜 아버지께로 간다고 분명히 사전에 돌아가시기 전에 그렇게 여러번 이야기 했는데도 바로 아버지한테 가시지 않고, 40일동안 머무르다 가신 이유가 뭐냐?

그렇게 그걸 부활기간인데 부활 하셔서 40일 동안 있잖아요. 제 말은 부활과 승천이 같지 않다는 말입니다. 승천은 아버지께로 그냥 올라가버리는 거예요 구름타고. 그 승천을 부활하고 같이 봐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승천은 아버지께로 완전히 가버리는 거고 부활은 무엇과 짝을 이루느냐? 무엇과 이렇게 연결되느냐? 십자가 죽은 적이 있음을 부활을 통해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바로 죽음의 생산적 효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생산적인 효과를 이렇게 확대시켜 나가는 겁니다. 부활이라는 말은 반드시 이 앞에 짝을 이렇게 연결되어야 되요. 무엇과 연결되느냐 하면 죽었음, 죽었음과 연관되어서 부활이라는 말이 연결이 되어 있어요. 부활된 분은 죽었었다 죽었던 그 분이라 이 말이죠. 부활된 분은 죽었던 그 분이 부활이기 때문에 만약에 너희들이 부활에 참여하려면 필히 뭘 거쳐야 된다? 반드시 죽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죽음은 인간이 죽는 죽음은 의미가 없어요. 인간은 날 때부터 죽어있기 때문에 자기가 죽는 죽음은 자살하든 뭘 하든 교통사고 나든 그건 의미가 없어요.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유일하게 의미있는 죽음은 예수님의 언약에 의한 죽음, 십자가의 죽음, 세상적으로 하면 그 죽음만이 생산적 효과를 내는 거예요. 살아있는 사람을 더 살게 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고 복이 아니다 이 말입니다. 살아있다고 우기는 인간을 십자가에 죽음에 같이 죽게 하는 그것만이 그 사람이 영생을 얻는 유일한 방식이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왜 십자가의 죽음에 동참 시키느냐 하면은 인간이 살아 있으면 하는 짓이 뭐냐 면 찬양이든요 헌금이고 전도고 선교고 예배 참석이고 성경공부고 이런거 한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이런 인간이 천국갈수 있겠어요? 못가지. 교단 만들고. 교회 만들고. 그거 뭐 오락이죠. 글 써서 올리고. 그게 오락이지 그게. 그거 누구 증명하는 겁니까? 나 살아 있다를 증명하잖아요. 그거는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거예요.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그동안 방해 받았는데 누가 방해했는가? 그거는 제자들이 아주 대표적으로 보여줬잖아요. 그러시면 안됩니다 하니까 예수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 했잖아요.

성경 내용 따지고 보면 굉장히 간단하고 쉬워요. 간단하고 쉬운데 왜 이 쉬운걸 우리가 어렵게 여겨졌냐 하면 자꾸 내가 살아있는 내가 상상하기 때문에 그래요. 어떤 모델을 멋있게 살아있는 내 모습을 자꾸 그리기 때문에 그래요. 주님이 생각하는 것과 정 다른 쪽 생각을 해요. 정 다른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첫째 강의 뭐든지 성경말씀을 그 모델 정해놓고 그 모델에다가 끼어 넣지 말라고 했지요.

죽음의 생산적 효과를 산채로 집어넣게 됩니다. 그러면 성도는 산채로 미리 죽음을 알기 때문에 죽음을 경험을 하기 때문에 어떤 죽음을 이야기 하느냐 하면은 성령을 안 받은 사람은 아이고 재수 없어 죽는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아이고 내가 이렇게 뭐 죄 지어서 죽는구나 흔히 상식적으로 이야기 하지만 성도의 죽음은 그런게 아니예요. 예수님의 사역을 표현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자기 인생에다가 예수님의 사역이 거기 침투해가지고 가득 넘쳐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여러분 시체를 여름철에 시체를 들판에 내던지듯 방치했다. 몇 일만 일주일만 지나도 거기 찾아 가보면 구더기가 뜯어내죠. 시신 전부 다 훼손하잖아요. 뜯어내잖아요. 우리 인생이 그래요. 나이들면 나이 들수록 점점 우리 인생은 세월이란 구더기가 와가지고 다 뜯어 먹어요. 대상포진도 걸리고 어깨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그렇게 살고 싶어도 저항할 수 없는 그러한 벌레들이 있어요. 세월이라는 벌레, 시간이라는 벌레.

그러니까 자꾸 뭘 생각하느냐 하면은 그런 현실을 애써 거부하기 위해서 꿈속에서는 자기가 청춘인냥 그렇게 느껴지고 옛날에 잘나갈 때 이렇게 했는데 옷도 뭐 이렇게 옷도 젊게 입고 나이든 여자분인데도 60,70 가까이 된 분인데도 젊은 애들처럼 단발머리 해가지고 자기도 흉하고 보는 사람도 흉하고 머리 깎는 미용사도 흉하고 말은 못하고 돈은 주니까. 자꾸 젊게 하고 다리는 완전히 말라 비틀어 졌는데 미니스커트 여기까지 입고 젓가락 나무 젓가락 움직이는 거지. 진짜 볼썽 사납다 하지요. 왜 그렇게 몸부림을 치느냐. 보톡스 벌겋게 이렇게 부풀어 가지고 퉁퉁 부어서 거북이 얼굴처럼 뭘 얼마나 했던지. 재벌가의 사모님처럼 전부다 보톡스 다 말 잘못하면 안 된다. 한사람 또 원수된다. 아주 막 청춘을 돌려달라고 난리도 아니예요.

그 시간 뜯어먹는 벌레, 시간이라는 벌레 누가 보냈습니까? 그 주님이 보내셨잖아요. 인간은 살아있어도 산게 아니라고. 노상에 던져 놓은 더운 날 방치해놓은 시신과 마찬가지라고. 뭐 말하고 뛰고 축구하니까 살아있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정치하고 뭐 민주당 투표하고 하니까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죠? 북한하고 미국하고 회담하니까 둘 다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집니까? 시신이 움직인거예요. 주님의 힘의 의해서 시체가 움직인거예요 시체가.

아무도 살아있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가 죽음으로서 모든 인간이 다 죽은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머리 깎고 절에 가도 죽은 것이고 부처 되어도 죽은거고 신부 되도 죽은거고 목사 되도 죽은거예요. 싱가폴에 가 있는 부모님 죽은자예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보여줄 수 있는 십자가의 의미는 뭐냐? 십자가의 의미는 모든 자가 이 세상에서 다 죽은 자다. 이 세상에서. 이 세상 자체가 모든 인간을 죽은 인간으로 이미 확정지어 졌다. 그걸 어떤 안목에서? 십자가 지신 나의 안목에서 볼 때 이 세상은 이미 죽은 세상이다. 그걸 몇 일만에 보여주느냐? 그걸 몇 일만에 보여줍니까? 40일. 40일은 마태복음 4장에 나오지요. 4장인가 3장인가 4장에 보면 예수님 광야에 시험받을 때 몇 일 시험받지요? 40일 시험 받지요. 예수님께서 40일 시험받는 것은 4장 맞네요.

40일 시험 받을 때에 거기서 마귀 시험 받는 테마가 주제가 뭐냐 하면 이 세상은 이미 누구 손에 넘어 갔다는 거예요? 악마 손에 넘어 갔다는 겁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님이 마귀를 시험하는게 아니예요. 시험하는 자가 누구냐 하면은 갑이 누구냐 하면은 마귀예요. 을이 누구냐 하면은 예수님이예요. 심사위원이 악마라니까요. 통치자가 악마예요.

악마가 평소에 인간을 통치하는 조건 가지고 그 조건을 그대로 예수님한테 세 가지를 줬는데 그게 테스트가 된겁니다. 그 시험이에요. 사람은 떡 없으면 못살고 사람은 타인 없으면 못살고 남 없으면 못살고 사람은 희망 없으면 못 사는 겁니다. 떡 없이 못사는 것은 와닿고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외로워서 못살아요. 그리고 세 번째는 뭐냐 세상 부귀영화에 대한 집념, 집착, 뭔가 나도 출세할 수 있어 나도 성공할 수 있어 나도 부자될 수 있어라는 그 희망인데 그 희망의 자료들이 뭡니까? 바로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한계 안에서 그 희망이잖아요. 천국 갈거니까 빨리 죽이세요 그런 희망은 별로 안하지요.

사람은 왜 사람들이 성경보기 싫어합니까? 성경 보게 되면 그 성경 보면서 거기서 성경 안에 이번 다음 주에 주식 거래 상황 이런거 있으면 성경 안 볼리가 없어요. 미리 땡겨서 사놓으면 되니까. 다음 주에 나오는 이번 토요일날 로또 당첨 숫자는? 뭐 이런게 있으면 성경 안 볼리가 없어요. 거기에다가 유명한 영화배우 바람피우다 걸려서 이혼한다 이런거 있으면 안볼 수가 없어요. 왜? 자기보다 망했거든. 기분 좋다 이 말이죠.

성경은 우리가 누구로부터 통치를 받으면서도 마치 통치가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요소. 마치 자연스럽고 내추럴한 거. 이건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제공한 인간 밥먹고 살라고 주는 기본 바탕, 조건같은 것들. 설마 이것마저 마귀라면 정말 우리는 이 세상 진짜 볼일 다 봤다 할 정도 그런 것. 절대로 이것은 마귀가 준게 아니야 그것을 이미 악마는 다 장악한거예요.

어떤 사람이 그런 이야기 했어요. 복음이 유럽에 가니까 철학이 되고 그 철학이 종교개혁을 거치니까 교회가 되고 그 교회가 미국에 가니까 기업이 되고 그 미국에 있는 교회가 한국에 오니까 초기업이 됐다. 정확한 말이에요. 신학? 그거 신학 그거 철학입니다. 사람들 포섭하기 위해서 만든 철학이에요. 그리고 루터 칼빈 한게 뭐가 있어요? 네 교회로 구원받지 않고 내 교회로 구원받는다는 거예요. 교회중심주의예요. 개신교가 교회중심주의. 집단중심주의 교회 중심주의예요.

너만 주의 종이냐? 이거와 똑같은 거예요. 안 그래도 얽히는게 많지만 너만 주의 종이냐? 이거예요. 그래서 그 교회가 시도한게 뭐다? 기업입니다. 이 교회를 운영하려면 뭐가 필요하겠어요? 돈이 필요하겠지요. 그 돈을 빼내는 방식. 방식 중에 하나가 뭐냐? 돈을 잘 쓴다. 돈을 성경대로 쓴다 하면 수입이 많아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예요. 아 우리가 그 교회 돈내도 헛돈 내는게 아니고 주의 영광을 위해서 하늘나라 확장을 위해서 야무지게 내는구나. 심지어 우리 목사님은 월급도 안 받는데 세상에 착할 수가. 우리 목사님은 그렇게 낮춰서 낮춰서 가난하게 허름한 빌라에 살고 아파트 줘도 안산데. 우리 목사님은 요즘은 없지만 옛날에 포니, 고급차도 안타고 모닝타고 다닌다.

여러분 그게 고단수인지 모르겠어요? 그게 마귀의 고단수입니다. 그것도 하나의 수법이에요. 제발 나를 이 교회에서 쫓아내지 말고 재계약 해달라는 하나의 수법입니다. 겸손.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개혁해야 됩니다. 하는 인간들 있잖아요. 개혁해야 됩니다. 한국교회 썩었다 하는 인간들. 마귀입니다. 성령 받으면 복음 전하지 그딴 소리 안합니다. 교회를 어떻게 해볼까 그런 소리 하는게 아니예요. 어떤 목사는 헌금해가지고 50%이상을 주변의 가난한 사람 고아와 과부 어려운 사람 돌본다고 장사 수완입니다.

그 일을 통해서 뭐냐 하면은 내가 여기 살아 있어야 될 정당성이 있다는 거예요. 나는 계속 살아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어떻게? 그것도 어떻게 살아있다? 영화롭게, 영화롭게. 아이고 대단하구나 훌륭한 주의 종이다. 영화롭게 살아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심지어 이거는 목사 뿐만 아니라 장로 집사 권사 전부 다 일반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월요일 공부 마치고 식사하면서 누가 그런 이야기해요. 불교란 뭐냐? 불교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긍정입니다. 자기 긍정. 자기가 부처지요. 자기 긍정이예요. 불교신자는 절에 안가도 절에 안가고 이름만 있어도 불교신자로 쳐줍니다. 어딜 가도 자기 긍정으로 살면되니까. 예수님은 자기 부인이거든요. 우리보고 자기부인하란 말이 아니예요. 네가 갇혀있다는 겁니다. 누구한테? 네가 상대할 수 없는 그 힘에 갇혀있다는 겁니다.

그걸 어떻게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근거가 어디있습니까 할때에 그 다음부터 이제 중요합니다. 십자가 죽으심으로 사흘만에 부활했잖아요. 부활하셔가지고 제자들에게 늘 같이 다녔습니까? 아니면 우발적으로 나타났습니까? 우발적이죠. 그 점이 중요한거예요. 우발적으로. 세 번 내지 두 번 나타났어요 우발적으로. 사도행전에 보면 몇 번 나타났더라? 두 번 내지 세 번 나타났어요. 제자들에게.

누가복음에 보면 누가복음에 24장에 보면 글로바에게 나타났지요. 거기 한 번하고 또 한 번 더 하고 하여튼 세 번 나타났지요. 마지막은 제자들 고기잡을 때 나타나셨고. 자주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거 왜 그랬느냐 하면은 이미 십자가로 인하여 이들은 뭐냐 하면 죽은 자이지요. 그럼 이 죽은 자를 다루는 방식은 뭐냐? 죽은 자를 다루는 방식은 지금 예수님은 부활했잖아요. 살아났지요.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과 이미 죽은 사람한테는 개인적으로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습니다. 오늘 제일 중요한 이야기 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아요 개인적인 만남은.

이 부활이라는 이 체재와 그리고 인간들이 인간들 지배하에 있는 악마들 체제. 이 체제와 체제 사이에서 만나요. 개인적으로 만나면 어이 훌륭해라 용기내고 이렇게 만나게 되는데 체제를 염두에 두고 만나게 되면 그 주고받는 내용이 체제와 구조에 관한 내용을 가지고 만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열심히 기도하라 이건 아무 의미 없어요. 그전에 기도 얼마나 열심히 했다고요.

체제와 구조를 하게 되면 이거는 인간의 행함으로 이 끊어진 관계를 더 이상 인간의 행함으로는 돌파할 수가 없습니다. 뚫어낼 수가 없어요. 그래서 사도행전에 보면 40일동안 계시면서 거기서 무엇을 재건하느냐 하면은 이 구조, 악마가 통치하는 이 구조. 제가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악마의 통치하는 구조는 인간이 있음으로는 아까 해변이라고 했지요. 해변과 바다하고 모래사장 이야기 했잖아요. 제가 예를 든게 너무 어렵습니까? 인간이 아무리 추적해도 그 경계선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고요. 끝이 없다고요. 미지의 X 라고 했지요.

그러니까 시간과 공간에서 사단이 뭘 제거하느냐 하면은 시간을 제거해버려요. 그 다음에 뭘 제거하느냐? 공간을 제거해버립니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요소가 칸트의 선험적 요소가 뭐냐 하면은 인간의 이성은 시간과 공간을 절대화 시켜놓고 그다음부터는 모든걸 따진다고요. 이야기 괜히 했다.

시간과 공간 없애버립니다. 주님 이스라엘의 때가 언제입니까? 물어요 인간은. 인간은 왜 묻느냐 하면은 시간을 따져가지고 그때 준비하려고. 주님 오실 때 준비하려고. 이게 갇혀있다는 것을 완전히 몰라요 인간은. 자기의 한계를 모른다니까요. 어느 때에 오십니까? 어느 장소에 오십니까? 그것도 소용없어요. 시간과 공간의 의미가 없다니까요. 시간과 공간 의미 없어요. 그래서 여기서 이 체재와 예수님의 부활의 체재 아버지와 함께 있는 부활의 체재와 이 시간의 체계에서는 유일하게 통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바로 예수님이 빠져 나왔던 그 길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예수님 부활하시면서 임의로 일방적으로 찾아가요 일방적으로. 오늘 제목 일방적이 좋은데. 일방적으로 찾아가요 일방적으로.

일방적으로 찾아가면 바람같이 온다고 했지요? 성령이 올 때 어떻게 옵니까? 성령을 붙잡을 수 있어요? 아니예요. 그냥 부활하시면서 불쑥 들어오시고 그들이 예상 못할 고기잡을 예상 못할 때 갑자기 베드로야 그물을 오른편에 던져라 했잖아요. 요한복음 거기서. 그리고 우리 같으면 예수님 부활했잖아요. 옛날처럼 오순도순 같이 식사하고 같이 승천하실 때까지 만이라도 같이 계시면 되는데 그렇지 않아요. 예수님은 찾아 오셨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이 어디 계신 줄도 모르고 언제 오신 줄도 모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과 함께 있던 그 구조에서 예수님이 빠져나갔기 때문에 그래요. 시간과 공간에 의해서 현실을 닫았던 그 구조, 그 구조가 하나님의 예수님의 영광을 가리는 구조였거든요. 악마가 지배하는 구조였단 말이죠. 어느 인간도 그 자신의 생존의 욕구를 탈피할 수가 없어요. 거기에 매여 산다는 것은 곧 악마의 대변인으로 살고 악마가 쥐고 흔드는 데로 살 수밖에 없어요. 화분 던지고 던져도 월급 받고 살아야 되요. 살아남는게 그게 과제라니까 이 땅에서는. 살아남는게. 왜? 자기가 살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주님 보시기에 뭐냐 하면은 너는 살 필요가 없어. 남아있는 것은 시간의 구더기, 공간의 구더기가 너를 매일같이 하루 살면 하루씩 너의 신체에서 뜯어내는 것 밖에 없어. 시신 뜯어내듯이. 결국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그 원칙 원리만 있을뿐이에요. 그 원리가 우리 안에서 내장되어서 장착되어서 계속 가동되고 있는 겁니다. 지금 우리는 죽어가고 있어요. 반겨야됩니다 이 사실을.

세상 사람들도 죽어가고 있지만 살겠다고 설치고 우리는 죽어가고 있으면서도 그냥 죽어가는 것이 아니고 그냥 죽어가면 지옥가지요. 그냥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경험했던 그 경험에 입각해서 우리는 죽어 마땅함을 알면서 죽어가고 있다니까요 죽어 마땅함을. 주님의 죽음을 안고 간다니까요. 갈라디아서 2:20절에 뭡니까?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어디에 못 박혔습니까? 십자가에.

그 당시 십자가가 어디있는데요? 저 가봤거든요. 그 십자가 있던데 지금 교회되었어요. 지금 십자가 없어요. 아주 순박하게 이렇게 십자가 하니까 거기 뭐 십자가 3개 있고 뭐 이런줄 알지만 십자가 3개 어디 있습니까? 없어요 그거. 그냥 남아있는 것은 예수님 눕혀있던 바위. 한 1m80쯤 되는 바위. 얼마나 울면서 뽀뽀해놨던지 반질반질해요. 그 바위가 있을 뿐이지 그냥 교회예요 교회. 인위적인 교회라니까요. B.C 3세기 4세기 5세기 때 세웠던 콘스탄틴 대제 그 누나가 만들었던 그 교회라니까요 교회.

그런데 갈라디아서 3장에서 뭐라고 합니까? 십자가가 눈 앞에 보인다고 했지요. 시간과 공간을 거의 구애받지 않는거예요. 설거지 하다가 성령 받을 수 있습니다. 통하는 겁니다. 숨통이 통하듯이. 환기통 뜷듯이 그냥 설거지 하다가. 아까 토네이도 봤지요? 토네이도의 제일 끝에 점은 나 창세전부터 구원받았잖아 생각이 문득 드는거예요 문득. 그걸 또 오래 붙잡으려고 하지 마세요. 성령은 인간에게 안 붙잡힙니다.

인간이 살아있을거 같으면 붙잡을 수가 있어요. 인간은 죽은 자이기 때문에 죽은 자의 위치로 가야되요. 죽은 자는 붙잡는 것도 의미없고 행하는 것도 기도도 의미 없어요. 죽은 자는 뭘 해도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꺼리의 덩어리입니다. 뭘 해도. 죽어가면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뭐냐? 장로님 뭐겠어요? 죽어가면서 해야할 일은? 죽으면 되는 겁니다. 참 쉽죠 잉? 참 쉬운거예요. 남편한테 잔소리하면서 죽어가면 되는 거예요. 참 쉬운거예요. 죽어가면서 어떤 요소들이 예수님을 주 되심의 영화로움을 나의 머리로부터 받았던 이 품성이 이 본질이 어떤 식으로 작용해서 주님의 영화로움을 갉아 내었고 공격했고 훼방했고 대들었고 반발했느냐 이 말이죠.

인간에게는 뭐가 있다고 했습니까? 마지막 놓지 못하는 마지막 패를 가지고 있지요. 그 패가 뭐냐? 그 패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했지요. 어떤 사람한테는 자식일수가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의 이화여대 나온 것일 수도 있어요. 이화여대 나온지 모르겠습니다만 안 나오셨으니까 마음 놓고. 그럴 수 있어요. 어떤 사람은 서울대학 나온 것을 자기의 마지막 카드. 어떤 사람은 또 총신 나온 것을. 지방신학 아니고 총신 나온 것을 마지막 카드. 어떤 사람은 복음전도자라는 것을 마지막 카트라 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 아내가 미인이라는 것. 여기는 해당사항은 없습니다만은. 자기 아내가 미인이라는 사실.

딴 거 다 했는데 그거 해버리면 성령이고 뭐고 악령이고 확 다 튀어나오는 거예요. 그 이야기 있잖아요. 다른 건 다 건드려도 좋은데 그거 건드리면 확 나오는거 있어요. 어떤 사람한테는 다른 사람은 다 좋은데 어떤 욕을 해도 이거 건드리면 가만 안 둔다. 양자로 컸다는 것. 지금 인간 극장하고 있어요. 클래식 기타치는 사람. 자기 양자로 태어났다 하면 화내버려요. 인간은 모든걸 비웠다 해도 비운거 아니예요. 인간은 아무리 비워도 마지막 쥐고 있는게 있어요 쥐고 있는거. 너 홀어머니지? 이런거 있잖아요. 불행한 과거의 과거사 이런거.

그렇게 끝까지 마귀가 안 놓는거예요 인간을. 끝까지. 깡패가 되든 뭘 하든 끝까지 내 가치 내 영화로움 나의 존재의 의미만큼은 내 힘으로 미지의 X를 내 힘으로 죽기 전까지는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게 뭘 방해한다? 주님의 영화로움을 훼방하는 거예요. 뭐 헌금하고 십일조하고 다 해도 기어이 마지막 쥐고 있는 것이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그 마지막 패를 쥐고 있는 겁니다.

무슨 수로 인간이 자기부인이 됩니까? 자기가 자기를 놓아요. 마지막 쥐고 있는 패가 살아있는 한 자기는 결코 죽은 자가 아니고 그 패가 있고 그게 나한테 지금 있고 그것이 감추어지고 안 들켰다는 그 보람 때문에 자기는 지금 자살할 수가 없어요. 지금 자기는 살 보람을 느끼는 겁니다. 그럼 자살은 왜 죽지요? 마지막 패, 그것이 자기의 힘으로 죽일 수 없다고 느낄 때. 목사는 목사로서의 자존심이 있잖아요. 이런 것. 교회는 교회로서의 자존심. 그거 무너지면 아이고 나같은 거 살면 뭐하나 하고 죽어버리죠.

그래서 예수님의 12제자들 가운데서 오늘 본문 12절 한번 봅시다. 17장 12절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나오지요? 지금 예수님께서 갸롯 유다가 자기를 배신한다는 것을 사전에 알았어요? 몰랐어요? 요한복음 6장에도 이미 알고 있었어요. 너희들 중에 아버지가 택했느니라. 그중에 하나는 마귀니라 했거든요. 그리고 요한복음 14장에 보게 되면 네 할 일을 해라 이런 대목 나오잖아요. 하여튼 나오지요? 사탄에게 갸롯 유다에게 하라했지요.

자, 그러면 지금 오늘 본문 이야기하게 되면 무슨 이야기 되느냐 하면 왜 갸롯 유다를 배신할 줄을 알면서도 왜 12제자 속에 집어넣고 왜 갸롯 유다가 배신하게끔 아시면서도 그들을 제자로 거두어 드렸느냐? 그리고 마귀가 사탄이 갸롯 유다에게 들어가는 것도 주님이 지시해서 들어갔거든요. 들어가고 니 할 일해라 해서 갔다 이 말이죠. 그러면 마귀를 왜 그렇게 자기 제자 속에 심어놨느냐?

그 이유가 뭐냐 하면은 예수님 보기에 갸롯 유다가 마귀지만 갸롯 유다 본인과 그 제자들 보고 다른 사람들 보기는 그 갸롯 유다는 그냥 평범한 우리와 같은 똑같은 인간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보고 사탄아 물러가라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 같은 동기제자들 보기에는 같은 인간들 보기에는 그냥 인간들이예요. 지금 이 자리에는 저와 여러분 보기에 같은 인간들이죠. 여러분 중에 누가 마귀다라는 것 우리가 압니까? 모릅니까? 알 수가 없지요. 알 수가 없는 이유가 제가 이야기 했어요 뭐냐? 인간은 그냥 보는게 아니고 어떤 모델을 가지고 본다니까요. 자기 자신이 예상한 것 가지고 그냥 봐요. 인간은 그냥 볼 수 있는 눈이 없어요.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봐요. 자기가 보고싶은대로 보고 인간은 자기 한계를 못 벗어난다니까요.

그러니까 주님께서 기도할 때 인간 빼고 아버지와 예수님만 기도해놓고 구원받는 것은 누구 소원대로? 아버지와 아들의 소원대로만 자기백성을 건지는 겁니다. 건졌을 때 비로소 건질 때 성령이 오는데 두 구조사이에 체제 사이에 성령이 올 때에 비로소 뭐냐 하면 아 내 구원에 나의 행함이나 노력이 일체 필요치 않은 이유를 비로소 제자들이 산 채로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그 다음부터는. 산 채로. 그 예수님의 죽으심의 취지와 의미를 산 채로 그 구원의 완성된 의미를 산 채로 경험하는 거예요.

마태복음 9장에 그런 말씀 있지요.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그 다음에 뭐라고 됩니까?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왔다 이렇게 되어 있지요? 같은 질문이에요. 왜 예수님께서는 12제자들 가운데 왜 갸롯 유다를 심어놨습니까? 똑같은 질문이에요. 갸롯 유다가 제자들의 대표자이기 때문에. 갸롯 유다가 인간을 대표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유일하게 예수님 죽으심 유일하게 예수님 팔아먹은 사람이 누구예요? 갸롯 유다죠. 그럼 갸롯 유다의 마음가짐 속에 뭐가 침투되어 있습니까? 예수님은 반드시 팔아먹어도 마땅한 자야 라는 그 내용이 어디 들어 있겠습니까?

베드로한테 들어있지 않아요. 베드로는 지금 무서워서 도망가기 바빴고. 갸롯 유다 안에 들어 있어요. 그런데 갸롯 유다안에 그 생각이 들어 있지요? 들어있는데 예수님은 일방적으로 갸롯 유다를 뭐라고 봤습니까? 안에 뭐가 들어있다? 사탄이 들어 있지요? 사탄이 들어 있다는 것을 다른 제자들은 알았어요? 몰랐어요? 몰랐습니다. 돈 맡은 회개이기 때문에 그 잔금 치르러 간줄 알았어요. 떡값하고 포도주 값 내러 간줄 알았지. 제자들은 사탄인줄 모르고 갸롯 유다도 몰라요. 예수님이 일방적으로 알잖아요.

그럼 무엇과 무엇의 단절입니까? 인간들의 생각과 마귀의 생각과 여전히 지금도 여전히 이것이 끊어져 있는 거예요. 인간들은 끝까지 무슨 생각을 한다? 이성적인 인간적인 생각 밖에 안 해요. 갸롯 유다가 왜 자살했습니까? 자살한 이유가 나와 있어요. 양심의 가책이 되어 죽었다는거예요. 내가 선생님을 내가 팔아먹다니. 그것 때문에 죽은거예요. 아무리 파고 파도 해안선에 어느 것이 바다냐 어느 것이 모래사장이냐 끝까지 계속 파봤자 결국은 누구 이야기 입니까? 내가 양심을 내 양심을 내가 속였다는 거예요. 참 훌륭하지요? 세상에 양심 속였다고 자살한 사람이 그게 흔한 일입니까? 아니지요.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이야기 하는게 뭔지 알아요? 성령이 오지 아니하면 모든 일처리나 모든 그것을 갸롯 유다 방식과 그대로 그 안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거예요. 교회 나와서 목사 장로 집사 됐든 뭐든 간에 바르게 하면 되지 착하게 살면 되지 열심히 하면 되지 헌금하면 되지 교회커지면 주께서 도와 주셨겠지 전부다 이 사고방식. 그런데 그 사고방식에 뭐가 포함되어 있어요? 절대로 예수는 내게 필요한 예수는 절대로 내 허락없이 죽어서는 안 된다. 내가 살아있는 한 예수도 살아있어야 되. 자기 살기 위해서 예수 믿는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땠습니까? 그 방식이 바로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보시고 예수님의 방식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방법은 예수님 자신이 이 땅에 죽는 겁니다. 이 땅에 죽는 거예요. 왜 예수님 왜 죽었습니까? 이 40일이란 시간동안 보여줬지요. 40일 이란 시간동안 누구한테 시험받았지요? 40일 기간, 시간 기간. 시간이거든요. 뭘 보여줍니까? 이 세상은 몽땅 누구의 손아귀에 있다? 악마의 손아귀에 있다는 것을 40일 동안만 해도 충분한 거예요.

이 40일 동안 시험 받음으로서 예수님 입장에서는 무엇이 확증됐어요? 인간 세상은 어떤 인간도 마귀의 세상에서 못 벗어나고 마귀는 끝까지 인간세상을 통치할 것이라는 확정적입니다. 이 마귀세계에서 예수님은 죽었던거예요. 그러니까 십자가에서 아버지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바로 이 세상을 대표하여 보여주는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신거예요. 아버지께서 아들을 버리심으로 말미암아 이게 뭐냐. 이 세상 자체가 이 곽지어진 40일 곽지어진 세상 자체가 아버지의 뜻에서 뚝 떨어져서 지옥이 되는 겁니다. 그럼 남은 일은 뭡니까? 성도의 남은 일은 성령의 남은 일은 사도의 남은 일은 뭡니까? 딱 하나 밖에 없어요.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자기 백성 끄집어내는 거예요.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겁니다. 여기에 같이 중력에 의해서 떨어지고 있는 지옥가고 있는 이 네모난 40일 네모진 이 곽 속에서 끄집어내는 방식이죠. 인간의 힘으로 될까요? 안되지요. 빠져나오는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바로 성령이 하시거든요.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겁니다. 요한복음 16장 8절에 나오지요? 네가 성령이 오게 되면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어요 다른 생각. 어느 생각? 우리 인간들의 생각.

목사님 인간들의 생각이 마귀생각 아닙니까 이러는데 여기서 우리인간들 입장에서는 마귀라는 말 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인간에게는 마귀가 포착되지 않아요. 인간들의 생각은 끝까지 인간들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생각이에요. 신학이 그거거든요 신학이. 끝까지 신학적이에요. 철학적이고 과학적이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따지기 좋아하고 분석하고. 백날 갇힌 갸롯 유다가 마귀인줄 몰랐다니까요. 예수님만 알았지 다른 사람은 몰랐어요. 갸롯 유다 본인도 몰라요. 아이고 내가 선생님을 팔아먹다니 이러고 있다고요. 자살해도 몰라요. 자기가 누구인지를. 이 각진 네모 속에서.

성령이 와야 됩니다. 성령이 올 때 어떻게 오느냐? 오늘 본문에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무슨 자리를 마련했다고 했습니까? 제일 첫째 처음으로 이야기 했는데. 저희라는 자리를 마련하시고 이 저희라는 자리는 그냥 아버지와 아들만 있을 때 마련된 저희죠. 따라서 이 저희 다시 말해서 택한 백성. 요한복음 17장 읽어보세요. 17장 9절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해서 기도한다 안한다? 안하고 세상 중에서 어떤 자들이 있어요? 지금 사람 낚는 어부가 되야 되잖아요. 빼내야될 자기백성이 있다 이 말이죠. 오늘 강의가 어려운 것 같지만 사실 안 어려워요. 지금 예수님께서 다시 이야기 할게요. 이거 진짜 이 시간 끝나도 잊지 마세요. 예수님께서 이런 이야기 할 때 제자들이 있었다 없었다? 자고 있었어요. 육신이 약하니 자고 있었어요 없었어요. 이 현장에는 아버지와 아들밖에 없어요. 아버지와 아들의 계획대로 프로젝트대로 움직이는 겁니다. 실수가 있을까요? 없지요. 실패 있을까요? 없지요. 성공 안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예수님 빠져 나올 때 마귀가 따라와도 발목 잡아도 발목 떼고 성공했거든요. 아버지 뜻대로 죽음으로써 더 이상 마귀가 따라올래야 따라올 수 없다 이 말이죠. 따라오면서 생산된 것이 뭐냐 하면은 40일이예요. 40일 동안. 이쪽 세계의 40일과 대비해서 이쪽 새로은 세계 40일을 마련 한거예요. 하늘나라라고. 부활의 나라라고. 이것은 이쪽이 빛이라면 이쪽은 어두움이에요. 부활의 세계가 생명이라면 이쪽은 죽음인겁니다.

옛날 내가 함께 있던 그 너희들은 지금 이쪽 자리로 옮겨가야 되요. 옮겨가는데 예수님 빠져 나온 코스를 통해서만 옮겨가요. 그게 뭐냐 하면은 그 코스가 예수님 이 땅에 일하실 때 성령 임했거든요. 성령으로 일했고 이제는 그 일하시는 성령 때문에 예수님이 성공했잖아요. 성공했거든요. 그 성령을 세례주는 분이라고 요한복음 1장에 요단강 세례 받을 때 세례요한이 미리 예언했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의해서 저분은 사람들에게 뭐를 줄 자다? 성령으로 세례 줄 자예요.

그러면 우리가 성도니까 묻는 것은 무엇을 행했습니까가 아니라 무얼 받았습니까? 묻는다고요. 혹시 뭘 받아 본적 있어요? 받기는 뭘 받아요 맨날 교회에 내기만 했지. 뭐 받아 본적 없는데요. 집에 있는 돈은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인데 내가 누구한테 받아 본적이 없는데요. 그거 말고 떡 말고 이웃사랑 말고 나의 희망 말고 그런 것 조차도 악마의 손아귀에 있다는 것을 아는 안목. 그게 오래 두 시간 세 시간 안가도 되요. 두 시간 같으면 축구 한 게임 뛰는 거예요. 그만큼 안 뛰어도 괜찮아요. 3초도 괜찮아요.

예수님이 계셨던 세계에 우리가 계신 것을 감사합시다. 그래서 히브리서에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천사를 위함이 아니라고 했어요. 천사는 이 세계에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활동만 할뿐이지. 이 땅에 산 사람은 인간을 위해서 자기 택한 백성을 위해 살았어요. 택한 백성을 위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구원하셨을 때 죽은 십자가의 흘린 피 때문에 그런거예요. 예수님의 피가 언약 피로서 완성을 하시고 완성한 그 힘을 이 부활의 세계가 이쪽에 침투하는 겁니다. 어떻게 뭘 버리고? 뭘 극복하면서?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아요. 임의로 필요한 사람에게 임의로 찾아오시는 거예요 임의로.

세상의 어떤 첩보 드라마 식으로 이야기 하면 이렇습니다. 아주 그 스파이들이 많다는 유명한 도시 베를린. 어떤 사람이 허름한 아파트 작은 아파트에 있는데 똑똑. 혹시 고구마 삶습니까? 고구마 없고 감자는 삶습니다. 이게 암호라. 좀 유치한 암호이지만. 암호예요. 들을 귀 있는 자는 듣는거죠. 성령을 통해서 미리 찜해놓은 자기 백성이 있는 거예요. 그 백성을 주께서는 성령을 미리 보내시고 그 다음에 그 사람들만 챙겨서 데려가는 방식입니다. 이게 요한복음에 나오는 구원의 방식이에요.

그런데 데려감을 당할 때 그 데려감을 당한 사람의 자세가 어떤 자세냐 하면은 바로 예수님께서 이 네모 아래쪽에 악마의 세상에서 빠져나올 때 악마의 세상에서 생활하면서 당했던 그 수모와 밉상과 외골수라고 폄하 받았던 것 미쳤다고 놀림 받았던 것 이런 모든 것 네가 뭐 귀신들렸나? 쓸데없는 소리하고 이런 오해와 곡해 그것을 그대로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됩니다. 다가오게 되면 자신은 이미 성령 안에서 이 땅에 태어난 것 자체가 곧 죽은 자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그리고 이 땅에는 뭐가 없다? 영생이라는게 없다는 거예요. 인간은 자기 목숨을 오해하면 안돼요. 목숨 있다고 살아있는게 아닙니다. 영생은 따로 있지 이 목숨 살아있다고 이걸 생명이라고 보면 안돼요. 요한복음 보면서 그런 소리 하는게 아닙니다. 그건 성경 덮을 때 하는 소리예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예수님이 생명이라면 다른 사람은 생명 아니예요. 성령을 통해서 생명 주게 됩니다. 주게 되게 되면 우리 안에서 뭐가 펄떡이냐 하면 바로 죽은 지체 안에서 죽은 시신 안에서 예수님의 생명이 넘치는데 그 예수님의 생명이 곧 예수님의 주 되심이 증거되는 현상 효과가 발생되는 거예요.

누구 힘으로? 우리 힘이 아니예요. 우리가 그걸 인위적으로 하면 안돼요. 그러면 또 그것이 나의 영광이 되고 나의 자랑거리가 되죠. 그럼 무슨 힘으로? 성령께서 우리를 육을 지적질하면서 반대결과로서 그걸 내는 겁니다. 지적질 하면서. 만약에 이 컵에 쥬스가 내 것이 아닌데 걸핏하면 내가 마시겠다 하면 그때마다 떼찌! 하듯이 치는거예요. 네 꺼 아니고 주의 것이라고 이렇게 하는 거예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모든 것은 주님 때문에 살아가는데 우리는 그 몇 초 안 되서 돌아서면 나 때문에 내 인생이 있다고 또 오해하거든요.

그러면 때가 되면 또 주님께서는 또 마지막 패를 쥐고 있구나. 네 인생이라고 우기는 이유가 뭐냐? 놓치고 싶지 않은 패가 있습니다. 그 패가 뭔데? 저 이화여대 나왔어요. 이화여대 다 잘사는데 나도 잘 살아야되지 않겠습니까. 품위있게 품위있는 여자로서. 지금 이화여대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옛날에는 대단했거든요. 특히 이화여대 가정과. 다른 과는 과도 아니예요. 이화여대 가정과. 꼭 60넘은 사람들 그 과. 현모양처.

이렇게 빠져나오면서 우리가 힘들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예수님을 쫓던 그 악마가 가만있지를 않아요. 다시 이야기 하지만 몇 번 이야기 하는데 하도 중요해서 이야기 합니다. 악마가 우리 인간 속에서는 악마로 나온다? 아니면 뭐로 나온다? 이성으로 나온다. 따지는 거예요. 네가 아무것도 안 해가지고 복 받을 수 있겠나? 따지는 겁니다. 네가 얼마 전에 착한 일 했잖아요. 야 너 복 받을거야. 따지는 거예요. 선악을 따지는 거예요. 원인을 제공하고 원인에 대한 합당한 결과가 나올거라고 그렇게 기존의 내가 믿고 싶은 내 영광을 위해서 했던 그 논리가 죽을 때까지 심지어 죽기 직전 숨을 이렇게 헉헉 거리면서도 그 논리가 내 안에서 발목을 잡고 계속 하는겁니다. 이번에 내가 사업 안 되는 것은 내가 나쁜 짓을 해서 그러는거야. 온갖 것 다 생각나지요.

그런데 내가 믿음 좋아서 떨쳐내는게 아니고 성령께서 한결같은 성령께서 바로 그 사실을 예수님이 당했던 그 수난과 고난에 반복인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겁니다. 끝까지 우리가 이야기 할 것은 십자가 눈 앞에 보이는데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 누가 너희들을 꼬시더냐? 꾀더냐 하는 것은 마귀한테 해당되는 거거든요. 이것은 마귀입니다 해도 되고 나의 유식한 논리와 그리고 정결하게 살았던 내 인생 품위유지했던 내 한평생 지난 과거 남한테 해코지 한 적 없고 남한테 성낸 적 없는 온유와 화평과 자비와 형제우애 뭐 온갖 것 도움되는 성경 구절 그런 것들이 악마의 앞잡이가 되어서 나의 발목을 잡는 겁니다.

그게 왜 중요하느냐? 그러니까 나는 지금 죽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만약에 자식이 마지막 패라면 내가 죽고 싶어도 저놈의 자식 결혼할 때 내가 손잡고 가야되잖아요. 결혼식장에. 결혼식장에 손잡고 가는게 뭐 대단한겁니까? 가기 위해서 절대로 나는 좌절해서는 안 돼. 그러니까 아버지가 용기를 내는 것도 자식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 달라요. 자식 있으면 자식 봐서라도 이혼안하고 끝까지 악착같이 남편을 용서하면서 살게 되고. 그런데 그 자식이 교통사고 나서 죽었다. 그 다음부터 이혼 다 깨져버리죠.

어떤 사람은 자식이 죽고 난 뒤에 그 잘살던 집을 대번에 이사가는 사람이 있어요. 천주교 신자인데 예수 믿는다는데 소용없어요. 재수 없다는 거예요. 이 집 이 터가 안 좋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그 집에 있는 한 내 눈앞에 아른거리는 얼마전까지 살아있던 내 자식의 흔적이 있어서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이사 간다는 거예요. 그 패가 결국은 뭐냐? 마지막 패는 자식이 마지막 패가 된다는 겁니다. 죽을 때까지 우리는 뭔가 못 놓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게 있어줘야 우리가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게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주님의 언약적 원칙이 계속 우리한테 가동되는 하나의 재료로서 활용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겁니다. 누구한테만? 성령이 있는 사람한테만.

끝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그렇게 해서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주의 영광돌리는데는 우리가 보탠 적 없고 오히려 주님이 일방적으로 죄인을 구원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공로와 영광은 오직 주님과 아버지께서 다 하셨습니다라는 요한복음 기도내용대로 그대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물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 아버지께 영광이 된다 이 말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하나님 보시기에 이미 죽은 자인데 시간이 와서 날마다 뜯어 먹는데 그런 이야기는 들리지 않고 어쨌든 폼나게 살아봐야 된다는 그 일념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나의 마지막 패가 되고 마지막 보물이 되는 이 우상성을 죄라고 들추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75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6,792 자유게시판 296강-갈 5장 1절(종의 멍에)180708-이 근호 목사 갈라디아서 최고관리자 18-07-09
16,791 자유게시판 192강-여호수아 2장 8–11절(라합의 고백)20180708-이 근호 목사 여호수아 최고관리자 18-07-08
16,790 묻고답하기 할례와 전체 율법 갈라디아서 최고관리자 18-07-08
16,789 강의 유혹 속의 존재 180706 - 최고관리자 18-07-06
16,788 자유게시판 145강-창 38장 1-6절(유다이야기)180704-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18-07-05
16,787 자유게시판 241강-YouTube강의(기도와 성전)20180703-이 근호 목사 - 최고관리자 18-07-04
16,786 자유게시판 240강-YouTube강의(하나님의 지령)20180703-이 근호 목사 - 최고관리자 18-07-04
16,785 강의 하나님의 작품 180703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8-07-03
16,784 강의 유튜브(240강, 241강) 하나님의 지령, 기도와 성전 180703 - 최고관리자 18-07-03
16,783 자유게시판 191강-여호수아 2장 1–6절(문책성 탐색)20180701-이 근호 목사 여호수아 최고관리자 18-07-01
16,782 묻고답하기 종의 멍에 - 최고관리자 18-07-01
16,781 자유게시판 144강-창 37장 31-35절(애곡하는 야곱)180627-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18-06-28
16,780 강의 사무엘상 39강( 믿음없음) , 마태복음 101강 (쳐내기) 180626 - 최고관리자 18-06-26
16,779 자유게시판 294강-갈 4장 27-29절(잉태)180624-이 근호 목사 갈라디아서 최고관리자 18-06-25
16,778 자유게시판 죽은 자의 해석 (마 25장 1절-41절) 대전- 100강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18-06-25
16,777 자유게시판 나 알기 (삼상 13장1-14절) 대전- 38강 사무엘상 최고관리자 18-06-25
16,776 강의 [18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37 - 성령 없는 현실 사도행전 최고관리자 18-06-24
16,775 자유게시판 190강-여호수아 1장 16–18절(순종)20180624-이 근호 목사 여호수아 최고관리자 18-06-24
16,774 자유게시판 광주강의20180622a 마가복음12장 18-27절(바꿔치기)-이 근호 목사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18-06-24
16,773 묻고답하기 자유하는 여자 갈라디아서 최고관리자 18-06-24
16,772 자유게시판 안양20180608b약2장14절(구성)-이 근호 목사 야고보서 최고관리자 18-06-24
16,771 자유게시판 안양20180608a약2장14절(구성)-이 근호 목사 야고보서 최고관리자 18-06-24
열람 ➜ 자유게시판 강남-요한복음 17장 8절(맞춤 신앙)180619b-이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8-06-23
16,769 자유게시판 강남-요한복음 17장 8절(맞춤 신앙)180619a-이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8-06-23
16,768 자유게시판 143강-창 37장 25-27절(팔려간 요셉)180620-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18-06-21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