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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필연 180608강의베드로전서

서울의존강의20180608a 베드로전서1장 13-15절(필연)-이 근호 목사

베드로전서 1장 13-15

13절,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14절,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15절,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예수를 우리가 안 믿는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집니까? 하나님께서 만들어놓은 세상, 인간들이 방해해 놓아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차질이 일어났다든지, 하나님의 계획대로 안 된 적이 있어요? 없죠. 만약에 이 집에서 애 돌잔치를 한다. 예를 들어 목사님 댁에서 돌잔치를 한다고 할 때에, 트럼프하고 김정은하고 평화회담 한다고 해서 이 돌잔치를 취소해야 됩니까? 아니죠. 그쪽은 그쪽에서 하던지 간에 여기에서는 돌잔치를 하잖아요. 인간들이, “나 이제 예수 안 믿을래. 나는 이제 교회 안 나갈래.” 이런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에 차질이 일어나는 겁니까? 차질 없지요.

그렇다면 오늘 본문말씀에서 15절에 보면,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거룩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우리가 거룩 안 해도 하나님의 거룩에 지장이 될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의 일에 대해서 차질이 없는데, 하나님은 우리보고 거룩하라고 합니다. 근데 우리가 “나 안 할래. 나 삐졌어.” 이런다고 해서, 하나님이 “아이고, 너 때문에 속상해서 나도 거룩을 포기했어.” 뭐, 그렇게 되는 겁니까? 아니죠.

하나님의 일은 그냥 하나님의 일만 꾸준히 해내가면, 하나님은 자기만족이기 때문에 전혀 하나님의 일에 하자나 실수라는 게 없습니다. 그러면 믿으라는 의미가 뭐냐, 믿으라는 게, 믿어라가, 너희들이 안 믿으면 내가 하는 일을 실패로 간주하겠다, 라는 그런 취지가 아니라는 말이죠. 너희들이 안 믿는다고 해서 주의 일이 실패로 끝날 리는 없다 이 말입니다. 그걸 믿으라 이 말입니다. 그것을. 그게 거룩이에요.

내가 하나님의 일에 보탬이 될 때 하나님은 더욱 기분이 좋아지고, 우리가 안 보태면 삐지고, 보태면 하나님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그래서 하나님도 인간 없이는 일을 못한다, 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오늘 본문 14절에 보면 그게 뭐라고 되어 있는가 하면, 그것을 사욕이라고 합니다. ‘사욕’, 사사로운 욕심이죠. 사사로운 욕심과 반대가 되는 말이 뭐냐 하면 거룩이에요. 거룩.

그러니까 사사로운 욕심이 거룩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고, 사사로운 욕심을 내지 말라고 한 것은 내 앞에 얼쩡거리지 말라는 겁니다. 방해하지 말라는 겁니다. 13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라고 되어 있죠. 여기에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한다고 했는데, 마음에 허리를 안 동이고 근신 안 하면 주께서 안 오십니까? 주께서 안 오실 거예요? 허리를 동이든 안 동이든 관계없이 주께서 타이밍 맞춰서 오신다 이 말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천사 두 사람이 내왕했어요. 천사 두 사람이 할 일은 뭐냐 하면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실시하고, 그 다음에 심판 가운데서 롯의 가정을 건져내는 일을 천사가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천사의 하는 일은, 여러분 잘 생각해보세요. 천사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을 때에, 하나님이 “야! 소돔과 고모라 심판해!”라고 했을 때에, 천사가 말리면서 “아니, 좀 지켜봅시다. 심판이 뭐 그리 급합니까? 제가 가서 소돔과 고모라가 악한지 안 악한지 살펴서, 진짜 악하구나 싶으면 제가 신호를 보낼 테니까, 그때 하늘에서 유황불을 확 보내세요. 일단은 유보시킵시다. 제가 실제로 조사해서, 그걸 실사라고 하는데, 이정도면 심판할만한지 감사를 해서, 그 감사결과가 하늘나라에 올라가면 그 감사결과에 의해서 그때 심판해도 늦지 않습니다.” 이렇게 한 거예요? 아니면 아예 심판하기로 작심하고 내려온 겁니까? 심판하기로 작심하고 내려온 거예요.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 있어서 누가 사사로운 욕심을 냈느냐 하면, 아브라함이 말렸죠. 아브라함이 보기에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은 이미 결정된 거잖아요. 결정됐는데 아브라함이 말립니다. 의인 50명만 있으면, 의인 50명하고 악인하고 같은 차원에서 멸망시키는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기준에 모순되지 않습니까? 오히려 아브라함 쪽에서 자꾸 심판을 지연시키려고 애를 썼어요.

이유가 뭐냐 하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과 고모라에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알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이라는 것은, 누구 건지고 나머지기 몽땅 심판하는 것이 아니고 모조리 심판이에요. 모조리 심판. 모조리 심판이라고요. 그러면 소돔과 고모라에서 만약에 의인 50명만 있으면 나머지기 악인하고 멸망시켜버리면 억울하게 심판받는 사람이 있으니까, 이거는 심판을 정지시켜야 된다는 생각이, 계속 기도하는 가운데서 지금 아브라함 본인 생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아브라함이 서서히 느끼기 시작합니다.

50명, 45명, 그 다음에 40명, 30명, 20명, 10명, 10명 단위로 끊어가죠. 마지막 기도가 뭐냐 하면, “10명만 있어도 봐주세요.”라고 했는데, “아니오.”했으니까, 그럼 이거는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이 몇 명 있다는 말입니까? 10명 단위로 끊어가게 되면, 10명 그 다음에 뭡니까? 0이죠. 없죠. 하나님께서 심판한다는 것은 모든 인간이 마땅히 심판받을만해서 심판하는 거예요. 그래서 토 달면 안 돼요.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자기 조카가 있으니까, 어쨌든 간에 조카를 심판에서 면제시키려고 애썼는데, 아브라함이 오해한 것이 뭐냐 하면 언약에 의한 심판 실시는 아브라함이 빽쓴다고 해서 이게 변경될 사항이 안 됩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구원받았습니까? 못 받았습니까? 구원받았죠. 그 구원받았잖아요. 롯을 건지고 자시고 할 것은, 아브라함의 언약에 준해서 하시는 그 실행자는 하나님 본인이에요. 하나님의 자비에 의해서 구원받은 겁니다. 그걸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건진다고 그렇게 한 거예요(창19:29).

왜냐하면 아브라함과 뭘 맺었습니까? 언약이 있죠. 지금 제 뜻이 무슨 뜻인지 좀 생뚱맞다고 생각을 하는데,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조카 롯을 건졌다 이 말이죠.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그렇다면 소돔의 심판에서 뭘 첫째로 알 수 있느냐 하면, 구원은 심판하기 이전에는 구원이 아예 성립이 안 된다는 이야기에요. 심판을 전제로 했을 때만, 그 심판이 끝나고 난 뒤에 비로소 남은 자, 살아남은 자, 구원자가 나오는 겁니다. 살아남을 때 구원자가 인식이 돼요. 구원자가. 심판과 병행해서 구원자가 생겨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는 말은, 소돔과 고모라에서는 ‘아브라함을 생각하사’니까, 그럼 오늘날 마지막 때의 심판에서 구원받는다면, ‘누구를 생각하사’가 되겠어요? 옛날에는 아브라함 언약이잖아요. 지금은 뭐가 되겠어요? ‘예수님을 생각하사’ 자기 택한 백성을 건지죠. 그러면 예수님을 생각하사에서 뭘 빼야 돼요? 예수님을 생각하사에서 뭐가 얼쩡거리고 방해가 되면 안 됩니까? 사사로운 사욕을 부리면 안 되겠죠.

그걸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나를 생각하사 나를 심판에서 빼내 줄 리는 있다? 없다? 없는 거예요. 내가 믿었으니까, 내가 교회 다녔으니까, 내가 예수를 의지하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걸 봐가지고 나를 구원시킬 것이다. 그게 바로 사사로운 것이고, 그게 바로 하나님의 거룩을 훼방하는 거예요.

구원받았으면 이제는 거룩하라고 명령이 왔기 때문에, 이제는 구원받은 내 입장에서 조금씩, 조금씩 거룩에 가까이 가게 되면, 하나님이 거룩하라는 명령대로 한 이 거룩의 집대성, 비축되고 저장된 거룩, 모태신앙부터 해서 20년, 30년 교회를 다니면 다닐수록 더욱더 누적이 되고 마일리지가 쌓이고 쌓이는 그 거룩. 하나님께서는 그 거룩이 아까워서라도 절대로 내치지 않을 것이라는 그게 바로 비-거룩이에요. 그게 사욕이라니까요. 그게.

지금 누구 생각하고 있는 겁니까? 지금 예수님을 생각하사 구원하는데, 하나님을 자기가 가로막아버려요. 교회 열심히 다닌 것, 헌금한 것, 전도한 것, 충성한 것, 교회 청소한 것, 꽃꽂이 한 것. 봉사한 것, 선교비 한 것, 내 자식을 위해서 중보 기도한 것, 이런 것을 좀 감안하사, 저를 생각하사 구원해주세요. 하나님은 뭐라고 하시느냐 하면 나는 니하고 계약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니하고 의논한 적이 없어요.

하나님은 롯을 생각하사 롯을 소돔과 고모라에서 끄집어낸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소돔과 고모라에 있어요? 바깥에 있어요? 바깥에 있어요. 그 바깥을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어려운 말로 외재성이라고 합니다. 외재성. made in China, USA하는 그런 외제 아닙니다. 바깥에 존재하는 성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깥에 존재하는 외재성이 왜 중요한가 하면은, 외재성을 모르게 되면 내부적으로 인간은 필연을 만들어내요. 외재성을 모른다 치면 내부적으로 뭘 만드는가 하면 필연을 만들어요. 필연.

필연이라고 하는 것은 원인이 들어가면 반드시 결과가 나온다는 이걸 필연이라고 해요. 외부적인 사항이 없어버리면 내부적으로 내가 나를 구원하는 온갖 몸부림과 아이디어와 그리고 지혜를 창안하고, 그럴싸한 거룩을 조작해내는 겁니다. 조작된 도시. 조작해내는 거예요. 누구끼리? 같은 교인들끼리. 같은 눈에 보이는 인간들끼리. 경쟁적으로. 교회에서 목사가 누구하나 칭찬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은 가만히 있으면서 마치 디스 당한 느낌이 들죠. 갑자기 밉상 받은 느낌이 들어가지고 그 다음부터는 뭐냐 하면 보이지 않는 경쟁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이 분은 어려운 가운데도, 병들었지만 이렇게 감사헌금을 하는 것을 보세요. 보통 상식적으로는 좋은 일, 기쁜 일, 자기에게 자랑거리가 있을 때나 감사헌금을 하는데, 이 분은 병들었어도, 병든 가운데서 주의 은혜를 알았다고 했고, 감사헌금을 하는 것을 보세요. 여러분들도 좀 본받으세요.”라고 목사가 강단에서 그런 소리를 한다는 것은, 지금 교회 재정이 어려운데 눈치껏 좀 하라는 뜻이에요. 그냥 돈 내라고 하면 될 것을 가지고 빙빙 돌려서 이야기를 해요. 간단하게 돈 내세요! 이러면 된다 이 말이죠.

장로들보고 돈 내라는 소리를 못해요. 그 사람들은 옛날에 목돈 냈거든요. 싸가지 없는 것은 젊은 것들이라니까요. 늙은 것들이 목돈내서 벽돌건물 지어놓으니까, 싸가지 없는 젊은 것들은 지 점심 값만 내고 있어요. 지 밥값만 내고 있는 거예요. 옛날 늙은 교인들이 부흥사한테 속았든지 뭐 속아가지고 에어컨을 떡 해놓으니까, 젊은 교인들은 에어컨 전기 값도 안내는 거예요. 에어컨 켜는데 전기 안 하고 에어컨이 되겠어요. 남 고생한 것에 자기는 숟가락만 얹고 등쳐먹겠다는 거거든요. 그래놓고 헌금 좀 하라고 하면 저는 워낙 믿음이 없어서..., 믿음이 있어서 헌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거는 믿음과 관계없이 양심문제로 헌금 내는 거예요. 양심문제로.

어쨌거나 외재성이 없는 것, 내부성, 내부적으로 봤을 때는 모든 것이 우연인데, 우연적인 상황들을 억지로 꿰맞추어가지고 필연을 만들어요. 필연. 필연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이렇게 기도했더니만 이런 기도응답이 나왔다는 것이 나와요. 원인과 결과를, 그 원인에다가 자기 행위를 집어넣고, 이렇게 하니까 이런 결과가 나왔으니까. 이게 사욕이에요. 사욕. 이런 원인을 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 중간에 뭘 집어넣느냐 하면 ‘주의 은혜로!’ 이렇게 하거든요. 주의 은혜로 이런 결과가 나왔다.

원인은 주의 은혜가 아니에요. 자기 뜻이고 자기 욕심인데, 내 뜻대로 했는데 주의 은혜로 해서 내 뜻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돼버려요. 그러면 이거는 시작을, 프로젝트를 누가 실시한 거예요? 내가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누가 시다바리에요? 주님이죠. 내가 한 계획을 무조건 주님이 내 지시에 따라야 돼요. 무조건 주님이 내 지시에 따르고, 내 뜻은 무조건 도와줘야 해요. 워낙 본인의 계획이 고상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자부하기 때문에.

다시 이야기합니다. 거룩이라고 하는 것은 거룩부터 먼저 언급하는 것이 아니고, 사욕이 뭘 막는다? 거룩을 막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께서 14절에,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라고 했죠. 그렇다면 베드로의 이 말은 니가 하나님의 거룩이 되려면 너의 사욕은 걷어내야 한다는 겁니다. 걷어내야 해요. 국 끓일 때, 뼈 고아낼 때 둥둥 떠 있는 기름을 국자가지고 걷어내잖아요. 떠내야 뽀얀 국물이 되죠. 사욕을 떠내는 작업을 해야 된다 이 말이죠.

그 떠내는 작업을 한다는 말은, 사욕이 지속적으로 계속 올라온다는 말입니까? 얼추 올라오다가 안 올라온다는 이 말입니까? 계속 올라오죠. 계속 올라오고 떠내고, 올라오고 떠내고... 그 작업이 하나님의 거룩한 작업이에요. 그것을 가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라는 겁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럼 몇 번 지면 그 다음부터는 십자가를 안 져도 됩니까? 지고 몇 미터 가면 그 다음부터는 수고했다고, 그 다음부터는 지지마라고 하시는 겁니까? 어떻게 되는 겁니까?

예수님의 경우를 한번 봅시다. 예수님이 가신 그 경로가 15번까지 있어요. 예수님이 피곤해서 벽에 손댄 것은 이게 3번인가 그래요. 고난의 길. 거기에 가봤잖아요. 빌라도 재판장부터 시작해서 골고다까지 열다섯 가지의 경로를 후대사람들이 해놨어요. 해놓고, 어떤 사람은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는 사람도 있고 하는데, kbs에 보면 순례의 길이라고 목요일 8시에 했는데, 그 장면이 나와요. 제가 예루살렘 찍은 그 장면도 잠시 나오죠. 주님 가신 이 길을 실제로 밟고 가면 상당히 감격스러워요.

어쨌든 간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은 언제 끝났습니까? 죽어서 끝났죠. 마지막 열다섯 번째 그 장소가 뭐냐 하면 예수님을 염한 그 바위에요. 그 염한 바위를 제가 사진 찍어서 올려놨잖아요. 그 바위에서 사람들은 울고 거기에 키스하고 그렇습니다. 주님 묻었던 그 바위라고. 원래는 그 성묘교회 자체가 지붕도 없죠. 그냥 벌판이죠. 십자가지셨으니까. 지금은 성묘교회로 그럴듯하게 만들어놓고, 동네는 완전히 시장판이고, 대구 서문시장 포목점 같아요. 얼마나 많은지. 시장골목으로 해서 올라가야 해요. 십자가 지고 가는 길이.

예수님의 십자가 지시고 가신 그 길은 십자가 한번 질 때마다 사는 길이 보이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 한 번 질 때마다 길이 점점 좁아져서 이제는 그 길이 인간들이 살 수 있는 어떤 모든 가능성이 점점 줄어드는 거예요. 요령껏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죠. 그럼 인간의 본성은 사는데 있습니까? 죽는데 있습니까? 사는데 있죠. 사는 게 본성이죠. 살기 위해서 뭘 하느냐 하면 원인을 자꾸 이야기하는 거예요.

인간이 내재적으로 하나님한테 이거 해드리겠습니다, 저거 해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은 이런 식으로 내 인생 끝내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이런 식으로 해서 좀 더 길게 살아볼랍니다, 볼랍니다, 라는 취지로 원인을 집어넣어요. 아니, 바라지 않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 봤어요? 뭘 안 바라고 교회 나온 사람 봤어요? 뭘 안 바라고? 교회 나오고 기도할 때는 뭔가 다 꿍꿍이속이 있잖아요. 바라는 것이 있잖아요. 자기부터, 자기의 뭔가 포부라든지, 목적이나 소망을 실어서 교회 나오고 한다고요.

그냥 교회 구경하려고, 교회 뭐 하는 동네인가 해서 가지는 않는다 이 말이죠. 교회는 비는 곳이에요. 그 빌 때에 비는 당사자가 누굽니까? 내가, 본인이 빌잖아요. 그 기도내용은 누구 속의 한풀이에요? 내 속에 안고 있는 것을 기도방식으로 이렇게 털어 내놓는 겁니다. 그래서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는 거죠. 답답해서. 그 전에 얼마나 기도를 지 맘대로 해봤겠어요. 하다하다 이제는 막다른 길에 가서, ‘에이, 이래도 안 되고 내 수완대로는 안 되니까 이제는 빌어보자.’해서 비는 겁니다.

여러분 구약에 있는 사사기 한번 보세요. 사사기에 사람들이 처음부터 어려울 때 하나님께 간구했습니까? 아니죠. 그 뒤에 열왕기상, 열왕기하에 나오는 왕들 보세요. 외부사람들이 쳐들어왔을 때 처음부터 하나님께 빌었습니까? 상납할 것 상납하고, 바칠 것 바쳐서, 인간적인 면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고, 그래도 점점 더 사태가 궁지에 몰리니까, 아이고, 뭐 죽기 아니면 살기로, 그만 마지막 선택으로 하나님께 돌아오잖아요. 마지막 선택으로.

그러니까 사사기나 사무엘서 보게 되면 마지막 선택이 왔을 때 그들의 태도는 어떤 태도였습니까? 더 이상 우리의 할 도리는 다했다. 더 이상 우리가 할 것은 없다. 그렇게 하는데, 뭘 위해서 본인이 할 수 없다는 겁니까? 뭘 위해서? 목적이 뭐예요? 살아보자는 겁니다. 어쨌든 살아보자는 거예요. 왜 살아야 되는데요? 살 이유가 뭐가 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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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7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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