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없는 세계 180605
강남-요한복음 17장 3절(인간이 없는 세계)180605a-이근호 목사
자, 첫째 시간 시작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7장3절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만약에 여러분들이 그 선교단체 대학생이라면 제가 간사라면 제가 이렇게 이야기 할거예요.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제가 영생을 받는 비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성경대로 하겠습니다 라고 이야기 하면서 요한복음 17장 3절을 받아쓰세요 라고 빈칸에 쓰는거 있잖아요 쓰면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딱 썼지요? 물어놓고 이제 여러분들은 이 사실을 알았으니까 영생 받았어요? 안 받았어요? 물어보는 겁니다.
우리가 성경대로 합시다. 성경에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면 이단되기 때문에 절대로 이단에 빠지면 안 되기 때문에 성경대로 해야되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이제 그 하나님 아시고 예수님 알았으니까 영생을 얻었어요? 안 얻었어요? 이렇게 물어보지요. 그러면 학생들이 한글로 번역된 한영으로 번역된 이것으로 하던 뭐 한글로 보라고 하면 또 꼭 영어로 찾아보는 사람 있어. 잘못됐는가 싶어서 그거나 이거나 똑같은 거예요. 헬라어도 마찬가지고.
어 그럼 우리 영생 얻었네요. 이렇게 한단 말이죠. 예 이제 영생 얻었습니다. 그러니까 참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게 되지요. 그러면 요한복음 17장 오기까지 창세기부터 구약, 신약에 모든 이야기는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이에 다 날라가버려요. 소용없는 이야기입니다.
구약에 있는 이스라엘 이야기가 왜 필요할까요? 바로 아담이 범죄하고 난 뒤에 바로 예수님 보내가지고 나 아니? 나 예수다. 알겠습니다. 구원 영생 끝나는 문제이지요. 왜 구약 이스라엘이 왜 있고 이스라엘 역사가 왜 있고 광야가 왜 있으며 여리고 성이 왜 있으면 신약에 예수님께서 그냥 와 가지고 나 예수다 믿어라 나 예수거든 이렇게 해서 알려주고 영생 얻고 하지않고 왜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고 왜 그리 복잡한 절차가 왜 필요하냐 말이죠.
이게 뭐냐 하면은 영생이 인간 없는 세계예요. 인간이 없어요. 인간 없는 세계입니다. 천국은 인간이 없어요. 인간의 자리에 아들이 계신 나라가 천국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천국이 아들의 나라예요. 사람은 빠져야돼요. 예수님이 제2의 아담이고 마지막 아담이거든요. 예수님에 의해서 새로운 피조물이 만들어진 자, 그들만 영생의 혜택을 누리는 겁니다. 기존의 인간들아 가라 이 말입니다. 뭐 알고 자시고 믿고 필요 없어요. 그냥 가는 거예요. 그냥 그거는 돌려보내버리는 겁니다. 단 인간이라는 이유 때문에. 인간이라는 이유 때문에 아담에 속했다는 이유 때문에 그들은 영생에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이 하나님의 취지가 단호한 취지가 창세기 3장에 에덴동산에서 추방하는 취지와 딱 맞아 떨어져요. 생명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 지금 식으로 하면 영생을 영생답게 보호하기 위해서 필히 인간은 영생이 있는 그 자리에 흔적 없이 그걸 퇴출시켜야 된다는 원칙. 그 원칙을 그대로 지금 요한복음 17장까지 끌고 오고 있습니다. 애들 모아놓고 간사되어서 자 노트 적으세요 그런 문제가 아니예요. 요한복음 17장3절 백날 외워보고 백날 해봐도 그래가지고 영생 되는게 아닙니다.
그러면 인간들이 여기에 대해서 이런 하나님의 취지에 대해서 인간들은 단호하게 거부를 하겠지요. 왜냐하면 본인이 속하지 않은 나라는 아무리 그게 천국이라도 나한테 실적이 없잖아요. 실적이 없으면 인간은 무의미하게 봐요. 내가 그 주인공이 되어야 돼요. 내가 그 자리에 참여돼야 돼요. 왜냐 인간들은 줄곧 그런 식으로 살아왔어요.
내가 존재함에 그걸 최종적 의미로 두고 살아왔다 이 말이죠. 자기가 여기 있음을 밝히는 그걸 최종적 의미로 두고 살아왔어요. 나 빼놓고 남들끼리 좋은 잔치 벌리는 것 어떤 파티 벌리는 것 그것은 아무리 그 잔치가 영광이 되더라도 그것은 나의 분노의 표적이 될 뿐입니다. 나를 도외시했기 때문에. 그런데 인간이 없는 세계예요 영생의 세계는. 영생은 인간이 없는 세계입니다.
그런데 이 영생이라는 것이 그냥 주면 될텐데 영생이 이 땅에 와서 활동을 시작합니다. 전쟁을 벌리지요. 그게 그 전쟁이 뭐냐하면 이겁니다. 무상으로 심판해드리겠습니다. 원래 공짜라 하면 되게 좋아하잖아요. 되게 좋아하는데 공짜로 공짜를 준다 이렇게 하게 되면 굉장히 좋아해요. 공짜라 하면 옛날 말에 양잿물도 마신다 했습니다. 어릴 때 양잿물 그게 괜찮은 주스인줄 알았어요. 어릴 때는 몰랐으니까. 주스 탄 물인줄 알았는데 아니였어요. 죽는 물이였어요. 공짜라면 챙기고 보잖아요.
주님께서 하신일은 뭐냐 무상으로 심판을 해주겠다는 겁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자력으로 영생에서 떨어지지 않으니까 내가 공짜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공짜로 천국에서 떼어내 주겠다는 거예요. 너 분수에 맞도록 떨어져 나가도록 해주겠다는 겁니다. 이게 주님이 하시는 전도입니다. 우리가 아는 전도하고 완전히 180도 다르지요. 떨어져 나가는 거예요. 떼어내는 겁니다. 그게 누구로부터 떼어 내느냐 하면은 예수그리스도 앞에 얼쩡거리지 마라. 예수그리스도 앞에 얼쩡거리지 말라.
4절에 봅시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절에 보면 제가 방금 말한 근거가 나옵니다.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자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따로 선별해서 다른 장소에 따로 인간과 예수님 사이를 따로 구분 지을 필요가 있는 겁니다. 그것도 무상으로. 인간의 노력 말고 주님 자신의 노력으로 떼어낼 필요가 있어요. 주님의 심판은 무슨 심판이냐 하면 인간들과 예수님 본인을 혼자 떼어놓는 작업이 이게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서 말한 심판입니다. 내가 온 것은 심판하러 왔다고 되어 있지요. 그 심판이 뭐냐 하면은 바로 구분 짓는 거예요. 사람들 일부로서의 예수님이 아니고 예수님이 따로 다른 예수님 외에 모든걸 따로 하는 겁니다.
요한복음 보게 되면 그 심판에 대해서 3장 또 유명한거 있지요. 3장 18절에 보면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뭐다?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되어 있지요. 지금 이 말씀을 보게 되면 내가 내 아들을 세상에 보낸 것은 심판을 위함이 아니요 라는 그 말만 들으면 하나님께서 봐주는 것처럼 느껴지잖아요.
그게 아니고 봐주는게 아니고 노골적으로 본격적으로 심판 이미 받았다는 것을 들추어내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신거예요. 논리가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시험할 때 산성이냐 알카리냐 할 때 그냥 아무것도 그냥 없이 가만보면 그냥 용액이예요. 그런데 뭐 하나 들어갔다 나와요. 리트머스 시험지를 해가지고 들어갔다 나오는 겁니다.
산성은 푸른색을 리트머스 푸른색을 붉은색으로 바꾸는게 산성이예요. 그래서 외울 때 이렇게 외웁니다. 푸른 산에 불난다 이렇게 외워요. 푸른 산이니까 푸른 산에 불난다 이렇게 외우는 겁니다. 거기에 뭐가 들어갔다 나오면서 이거 시험하기 이미 이전부터 그거는 산성이였어요. 이 세상은 그냥 있으면 심판이 심판 받는다는 것이 납득이 안돼. 왜 그냥 태어나서 그냥 살 뿐인데.
다시합시다. 다시. 오늘 17장 3절에 보면 영생은 하나님의 아들 그 보내신 아들 믿는거라 했잖아요. 했지요? 그러면 이 말은 영생에 대해서 언급한거예요. 영생에 대해서. 그런데 그 영생에 대해서 영생은 하나님과 그 보내신 아들 예수그리스도 현재 이 예수님은 이 말씀하실 때 예수님이 사람들 보기에 사람이예요? 하나님예요? 인간들 보기에. 그냥 사람이지요.
그러면 하나님 계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계시고 자기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고 백성들이라고 보잖아요. 그걸 구분하는거예요. 니들이 아버지를 아는게 아니고 유독 오직 only 예수님 자신만 예수님 하나님 아버지를 유일하게 안다는 것을 알 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이겁니다.
왜냐 모든 인간은 자기를 하나님이 아는 자로 끼워넣기 하기 때문에. 그 끼워넣기를 빼는 것이 바로 이것이 무상으로 심판해주는 거예요. 예수님을 모른다 하면 아 내가 예수님 몰랐네 이게 아니고 예수를 모른다는 사실이 그냥 예수님 모른 것에 대해서 지식이 모자른 것이 아니고 그 자체가 처음부터 심판의 대상이었다는 유일한 증거가 된다는 사실을 예수님 단독적으로만 아버지를 안다는 것을 통해서 지금 증명해내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은 예수님 빼놓고 나머지 인간을 보세요. 제자들도 마찬가지고 나머지 인간은 뭐냐 인간없는 세계예요. 영생은. 그 인간 없는 세계의 취지는 무엇과 같다고 했습니까? 에덴동산에서 영생나무 하나 터치하지 말라고. 단지 영생나무 터치하지 말라고 그 자신이 만든 인간을 과감하게 저 저주받은 땅으로 내쫓아 버리잖아요.
그 저주받은 땅에 대해서 제가 아까 그 오기 직전에 유투브 첫 번째 강의할 때 뱀이 저주받을 때 배를 땅에 대고 온다 했지요. 배를 땅에 한번 대 보세요. 땅에 대면 시야가 뭐 밖에 안보입니까? 이거는 지평선 밖에 안보이지요. 모든 태어나면서부터 땅에 엎드렸다고 보게되면 땅이 자기 세계의 전부예요.
땅에서 출생하면 성공한거고 땅에서 실패하면 실패자로 보는 겁니다. 보는게 납작 엎드려서 밀착형 땅 밀착형 존재예요 인간이. 마귀가 그렇게 저주 받았으니까 인간도 마찬가지인거예요. 그 마귀의 품성 따라가니까.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사람은 땅이라는 그 테두리 범주 안에서 너 잘났다 나 잘났다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도 종교가 있고 신이 있고 하늘이 있지 않습니까? 물으면 그것은 뭐냐하면 땅의 밀착형이 여기에 이 땅에 없는 것을 상상하게 되겠지요. 그걸 유토피아라고 하는데 미지의 세계. 없는 세계를 상상하게 되어 있어요. 땅이 있으니까 너무 고되니까. 땅에 밀착해서 땅의 것을 먹는다 이 말이죠. 땅의 것이라는 것은 뭐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죠 뭐. 돈은 하늘나라에는 필요 없거든요. 돈은 어디에 필요합니까? 땅에서 살기위해서 필요하잖아요. 그러면 땅에서부터 나서 흙에서부터 나서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것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면 제가 이렇게 하면 목사님 그렇게 생각 안하는 사람 어디 있습니까? 다 그렇게 생각하지. 그게 제 말이에요. 그게 제말이에요 그게. 제가 그 말에 아주 적극적으로 동조합니다. 그러면 또 동조한다고 기분 나빠해요. 그러면 천국은 누가 갑니까? 이렇게 또 삐진다고요. 동조해줘도 문제라. 천국 누가 갑니까?
영생이라는 것은 천국 갈 사람이 없어야 그게 영생의 나라예요. 왜 자꾸 갈 사람이 없다는데 왜 우기냐 이 말이죠. 마귀 심보예요. 못 들어가는데 안 들어가면 되지 왜 못 간다는데 왜 굳이 들어가야 되느냐. 천국에 갈 사람은 인간은 없습니다. 그럼 인간은 없다는 말은 그러면 여기 요한복음 11장에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자는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자는 따로 있는데 그럼 이 사람들 인간 아니냐? 있네. 왜 자꾸 없다고 우기느냐 이렇게 나올겁니다.
인간부터 출발합니다. 인간이 뭐로 바뀌느냐 하면 사물로 바뀌어야 되요. 사물로 바뀌고 여기서 인간 또 나와요. 이 앞에 뭐가 붙어요. 뭐가 붙느냐하면 ‘새 인간’ 붙습니다. 새 인간 되려면 인간에서 새 인간은 안돼요. 인간에서 하나의 사물 물체 창세기 3장에서 뭐라 하느냐면 흙.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흙 죽음이죠.
그리고 그 에스겔 37장 말씀에 의하면 바짝 마른 뼈, 곧 흙이 되기 직전의 뼈. 그런걸 의미하는 겁니다. 인간에서 사물로 변하고 새 인간 되지요. 그러면 바라기는 이거는 그냥 기대 사항이지만 진짜 내 소원인데요 여러분들이 성령받아서 새 인간되기를 저는 소원합니다. 정말 너무 소원해요. 뭐 언제봤다고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마음은 그런 마음이에요. 여러분들이 새 인간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새 인간되려면 여러분들 인간으로 보면 안 되고 자기 자신을 뭐로 봐야돼요? 인간에서 사물로 흙이거든요. 인간에서 사물로 안 그러면 그 나무로 나무라 하는 것은 뭘 의미하냐 하면 바로 요새 장례치를 때에 나무에다가 육을 뿌리는게 또 유행을 탔어요. 돈 좀 비싸지만은. 뭐라하죠? 수목장, 수목장할 때 그 나무 잎사귀가 여러분 그 나무 잎사귀 줄기가 인간에서 사물로 인간이 결국 인간에서 사물이 된다는 이런 소설 써서 상 받은 사람이 있어요. 한강이라는 한씨고 이름이 강이라는 여자 작가가 이거 써서 상 받았어요. 이거 제가 평을 해놓은거 같은데. 하여튼 있습니다.
사물로 결국 인간은 사물이 된다는 거예요. 바짝 너무 다이어트 오래 하지 마시길. 새 인간이 될 경우에 새 인간은 인간에서 나오는게 아니고 바로 나의 죽음을 전제로 해서 나오죠. 고린도후서 4장에 나오잖아요. 예수의 생명이 내 죽을 육체에 통해서 온다는 말은 예수님이눈으로 우리를 볼 때 뭐로 본다? 인간으로 보지 않고 죽을 육체로 보는 거예요. 하나의 사물로 보는 겁니다. 하나의 바짝 마른 뼈로 보는 겁니다.
뼈로 봐가지고 우리를 살려냄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자기 솜씨를 맘껏 자랑질할 수 있는 거예요. 너 같은 인간도 내가 살려냈잖아 라고 동네방네 자랑하는거. 그 자랑하는데 편승한 사람이 바로 사도요 전도자가 되는 겁니다. 주님께서 나를 생전 예상도 못한 인간으로 만들어 놨다. 오죽했으면 사도 바울보고 미쳤다고 이야기 했겠어요. 네가 미쳤구나. 그래 미쳤다 왜! 아이고 네가 미쳐야 되는데 못 미쳐서 내가 안타깝다 라는 겁니다. 못 미쳐서.
그리스도의 사랑에 미쳐야 되는데 왜냐하면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아니한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라는 이 명제, 이 문장 자체도 이게 미친 사람 아니면 이게 어떻게 서슴없이 그게 나옵니까. 그것도 가족들 올케한테. 올케 시누이한테 이게 나옵니까? 혹시 시누이 계시면 이게 나오든가요?
아이고 형님 동서간에 형님 이래가지고 뭐 이렇게 반갑게 맞이하지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 저주를 받을지어다 그게 동서 형님 만난 인사입니까 이게? 그렇게 할 수 있겠어요? 속으로 누르고 누르고 눌러야지. 분명히 제가 이야기 했어요. 이 세상은 인간이 없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주인공 되는 세계를 세상으로 봐요. 그게 뭐냐 바짝 엎드려서 땅에 밀착형이기 때문에. 땅 외에는 안 보이고 믿을 거는 땅 밖에 믿을게 없어요. 땅에서 얻는 수확가지고 목숨을 부지하려는 악마가 내 안에 집어 넣어준 그런 생존의 방식 외에는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이거는 교회 가도 마찬가지고 교회 안 가도 마찬가지고 교회 다니나 안다니나 공통점은 뭐냐? 이 땅의 것으로 사는 것이 사는 거다.
그러면 그들에게 물어봐요. 영생은 뭡니까? 물으면 영생은 오래 길게 사는거다. 오래 길게 사는거. 창세기 3장도 안 읽어봤어. 오래 길게 사는 것을 염려해서 주님께서는 그걸 짧게 살라고 에덴동산에서 추방한거예요. 그들이 그 상태에서 그 썩어빠진 그 성질 가지고 생명나무 따먹어 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이거는 안 되거든요. 그래서 그들을 죽이기 위해서 세상을 만든겁니다. 왜 우리가 태어났는가 왜 죽는가를 알리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난 거예요.
4월 15일은 김일성 생일이예요. 4월 15일 기억하는 이유가 있어요. 그거는 뭐 이야기 안합니다. 제 딸의 생일인데. 왜 태어났는가? 죽음이 뭔가를 증거하기 위해서 태어난거예요. 이 땅에서. 왜 하나님은 인간을 안 받아주는가 증거하기 위해서. 왜 영생은 인간이 없는 나라인가. 인간이라는 것은 이미 인간 자체가 이미 수상한 인간이에요. 불신한 인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이라고 할 때에 결국 요한복음 16장은 뭐냐하면 창세기 이스라엘 역사 통해서 보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은 아니라고 했지요. 부활은 내가 안 죽는 지금 인간으로 계속 인간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이 부활이 생기기 때문에 부활은 복음의 핵심이 될 수가 없어요.
나 살겠다고 인간은 어떤 수단도 다 부릴 참인데 그 부활하니까 좋다고 굉장히 좋아해요. 교회 이름이 부활의 교회가 있어요. 뉴스에 나왔어요. 부활의 교회라고. 보이스피싱이 그 교회 앞에다가 보이스피싱하다가 부활의 교회 전도사들이 잡아가지고 신고해가지고 표창받은 그 이름 보니까 부활의 교회예요. 십자가 해놓고 무슨 부활의 교회라고.
주님께서는 이 영생 만드는 작업에 인간이 이렇게 무지하고 몽매해도 주님은 인간의 무지몽매하는 이유 때문에 영생 만드는 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쓰는게 뭐냐 하면 무상으로 앞에 무상으로 하면 잘 이해 안 되니까 중간에 넣읍시다. 무상으로 그 다음에 친절하게 친절하게도 심판해주십니다.
이게 바로 뭐냐 하면은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 내용입니다. 심판에 관한겁니다. 지난 그 대전 겨울수련회 할 때 세 번째 시간이였습니다. 제목이 엘리사와 엘리야인가 그런 제목에 보면 그런 이야기를 내용으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왕 중심의 세계로 이스라엘 하다가 왕 중심의 왕 자체의 다윗 언약 이후에 이게 내리막길로 꽂아 내려가요.
왕으로 지상에 천국을 만든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 줄기차게 나오는 왕 있잖아요. 그 왕이 점점 더 쇠락해져요. 아무리 훌륭한 왕이 등장해도 그 왕은 실패로 끝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왕 중심의 체계에서 뭐로 바뀌느냐 하면 선지자 중심의 체계로 바뀌는 거예요. 선지자 중심의 체계로. 바뀌면 왕 중심은 땅의 힘 지상의 힘으로 왕 중심으로 눈에 보이는 나라를 건설하는 겁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뭐냐 하면 천상 위와 관련되었기 때문에 선지자의 역할은 뭐냐 하면 세우는 것이 아니고 세우는 것을 헐어버리는 역할을 해요. 46년동안 지은 성전을 깨뜨린 취지도 그런 취지입니다. 그러면 건축물을 헐어버리면 거기서 뭐가 남겠습니까? 얼마 전에 4층 건물 무너졌는데.
자, 건축물이 허물어졌다. 그러면 뭔가 허물어 졌으니까 남는게 없겠지요. 그런데 시편 118편 22절인가 거기에 보면 남는게 있어요. 뭔가 있었는데 뭉게져야만 남아지는게 있어요. 읽어볼께요. 22절에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자, 그러면 그 버린돌 하나 하나님이 건져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용납하는 겁니까? 인간들이 세운 건축물이 세우도록 하나님께서 허용을 하겠지요.
그러면 인간들이 건축물을 세운다는 말이 성전을 의미하는데 인간들이 성전을 세우고 성전이 있다는 것을 통해서 그것을 어떤 느낌이 드느냐 하면 우리가 있으니까 성전이 있으니까 성전을 지었으니까 설마 우리를 버리지는 않겠지..가 되겠지요.
자, 다시 이야기 합니다. 인간이 성전을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세웠습니다. 그러면 인간들 생각은 뭐냐 하면 하나님 지시한데로 성전을 세웠으니까 솔로몬 성전 세웠으니까 이 성전을 하나님 쪽에서 우리를 내치지는 않을 거라고 보는 겁니다. 내치지는 않는다. 우리를 받아준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하나님께서 인간이 세운 것을 허물어 버린다면 이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무슨 메시지냐 하면 성전을 허무는 정도가 아니고 내가 애초부터 너희를 내친다는 그 주님의 심중이 성전이 허물어진 그 성전을 허무는 그 사역에 작업에 담겨있는 거예요.
그러면 인간과 하나님 완전히 결별되었지요? 그러면 허물어진 그 벽돌의 조각 하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에요? 인간들은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가 되어 있지요? 그러면 그 중의 하나의 돌. 모퉁이 돌 그 버린 돌을 쥔다면 더 이상 그 돌에서 인간들이 자기 권리나 자기 천국 주세요 영생 주세요 하는 그 권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인간이 사물이 된 상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