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80601b 울산강의-레위기 19장 : 위반자자유게시판레위기

20180601b 울산강의-레위기 19장 : 위반자(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시작하겠습니다.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어떻게 지키느냐? 그 말씀이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면 우리는 자극을 받아서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려고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딜레마에 빠집니다. 그 딜레마에 빠지는 사례가 누가복음 10장에 나옵니다. 어떤 율법사가 와서 하는 말이,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 했는데 그러면 이웃이 누구냐고 예수님께 물었어요. 이웃을 너와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든지 또는 몇 미터 근처에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하면 되는데 예상 밖의 사건이 들어가 있는 예를 들어요. 그 사건에서 등장인물이 레위인 지나가고, 제사장 지나가고, 사마리아인 지나가고, 강도 만난 사람 나오거든요. 이 네 부류의 사람 어느 누구도 강도 만난 사건을 예상 못했어요. 무슨 말이냐 하면,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는 그것이 우리가 지키는 것이 아니고 사건 안에 있는 사건을 사건 되도록 하나님께서 진행시키는 하나님 자신의 프로그램이에요.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이 하나님을 지켜요. 인간이 지켜주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가치와 자존심을. 하나님이 던진 말씀을 누가 지키는가? 하나님 본인이 지켜요. 본인이 지키면서 누굴 배제해야 되느냐 하면, 감히 생명나무를 못 따먹는 저주받은 땅에 와 있는 인간이 감히 출제자의 의향도 모르면서 문제 풀었다고 우기는 그 인간들이 그 문제를 풀겠다고 덤벼들 때 그게 바로 죄의 조장입니다. 어떻게 오나? 자기 의, 나는 의인이다. 나는 하나님 말씀대로 산 의인이고 싶을 때 바로 죄가 조장되는 겁니다. 죄가 확대되고 확산되고 들춰지는 겁니다. 인간이 말씀에 위반할 때 자기를 죄인으로 보지 않아요. 인간의 정신은 죄로 보지 않고, 이것을 못 지켰지만 딴 것은 지켰잖아, 라고 기어이 새롭게 자기가 의인됨을 증명하는 새로운 구성에 나서는 겁니다. 교도소에 가 보세요. 다 사기꾼이지만 자기 엄마한테는 효도했다는 겁니다. 내가 남 등쳐먹었지만 명절에 꼭 엄마를 찾아볼 정도로 효심이 극심한 사람이 자기라는 거예요. 내가 사람은 죽였지만 길거리에 거지한테 동냥했다는 거예요. 내가 마약 팔아 번 것 중에서 오만 원을 노숙자한테 준 적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상황도 인간은 그 상황을 통해서 자신이 막 가지는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주력해요. 그쪽으로 쏠리게 돼있습니다. 그게 바로 아담의 초상에 들어있는 악마의 본모습이에요. 악마가 그런 짓하게 만들어요. 홀로 살겠다는 겁니다. 자기 잘한 걸 모아서 홀로 살겠다는 거예요. 내게 옳은 것이 정의고, 내가 한 것이 사랑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무조건 나는 의롭고 나는 사랑 많고 인정 많은 사람으로 전환되는 쪽으로 모든 세상 돌아가는 것을 그렇게 해석하게 되는 겁니다. 인간은. 그게 바로 하나님의 화를 돋우는 거예요. 하나님이 둘러친 보쌈, 어린양의 피를 아주 노골적으로 발로 차고 짓밟는 행위가 되는 겁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누가복음 10장에 어떤 율법사가 말하기를 29절에,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얼마나 중요한 말입니까? 이것이 이 사람에게만 해당됩니까? 모든 인간에게 다 해당되는 겁니다. 어떤 짓을 해도 변명과 핑계는 끝없이 나옵니다. 자기가 나쁜 짓해놓고 이것은 사회가 자기로 그렇게 하게 했다고 사회 탓으로 돌리잖아요. 어떤 짓을 해도. ktx 여직원들 데모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대법원 판결이 잘못 됐다는 거죠. 모든 것은 나는 의로운 데 세상이 합당한 보상을 안 해줬다는 겁니다. 따라서 내 보상은 내가 알아서 챙기겠다는 겁니다. 그게 인간이 남이야 죽든 말든 등쳐먹는 이유입니다. 내가 저 사람 집 담 넘어 훔치는 것은 내가 누구한테 사기를 당했기 때문에 이 세상에 대해서 내가 밀릴 필요가 없다는 자세로 내가 남한테 빼앗겼지만 가만있을 내가 아니지. 내가 또 남의 것을 뺐음으로서 내 몫은 내가 챙기겠다는 거예요. 꼭 군대내무반 식기 잃어버리는 것과 똑같아요. 군에서 정기적으로 장비가 제대로 있는지 조사를 해요. 저쪽 내무반 조사할 때 다 맞아요. 이쪽 내무반 조사하는 사이에 몰래 저쪽 내무반 것을 이동해서 다 맞아요. 조사 끝나면 저쪽에 찬합이고 군화고 열 몇 개 모자라요. “아랫돌을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괸다.”는 식으로 세상이 다 그렇지, 뭐. 세상 그런 것 아닙니까. 세상 다 그런 거예요. 내가 억울한 일 당할 때 가만있으면 지가 병신이거든요. 내가 당한만큼 또 내가 그것을 남한테 그저 무작위적으로 랜덤, 아무 안면도 없는 사람에게 자기 손해 본 걸 보상받음으로 말미암아 너는 알아서 하라고 하죠. 꼭 사기 당한 사람이 사기 친다고. 이 사람은 자기가 옳게 보이기 위해서 이웃이 누굽니까, 라고 나섰어요. 제가 첫째 시간에 이야기했듯이 이 사람은 이미 정답에서 멀어졌어요. 왜냐하면 이웃을 사랑함의 정답이 뭐라 했습니까? 내가 위반자라 했잖아요. 내가 그 말씀에 비춰서 애초부터 위반자였습니다. 나는 상한 심령입니다. 그 말씀이 오기 전까지는 나는 내가 이웃을 사랑한다고 여겼는데 주께서 사랑하라는 그 말씀이 오는 순간, 이건 왜 나한테 명령하는가? 너는 죽었다 깨나도 사랑 못할 인간이란 걸 지적하기 위해서 이 말씀 주셨다고 받는 것은 어린양의 피의 가치를 중요시여기는 사람이에요. 내가 내세울 것은 행함이 아니라 나를 용서하시는 그리스도가 내민 피 묻은 손에 의해서 천국 가게 됐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피를 피답게 돋으라지게 드러내기 위해서 “주여, 저로 하여금 천하의 죄인 되게 하옵소서.”라는 그러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이게 바로 자유입니다. 막 산다고 죄가 조장되는 게 아니에요. 막 살지 않음으로서 죄가 조장되는 겁니다. 막 살지 않아 보세요. 주의 깊게 절제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그게 본격적으로 죄가 드러나는 거예요. 내 이웃이 누구냐고 율법사가 물은 이유는, 조심조심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테니까 이웃이 누군지 정답만 알려주신다면 나머진 제가 알아서 말씀 지키겠습니다. 그런 인간은 예수님의 피가 필요치 않은 인간이에요. 가룟 유다 같은 인간입니다. 마귀 들린 거예요. 오늘날 교회는 지옥 못 보내서 환장한 것 같아. 오는 족족 지옥으로 다 보냅니다. 율법, 말씀 지켜서 복 받으라고. 말씀 안 지키면 손해가 오고 말씀 지키면 이익이 온다고 하니까 평소에 인간들이 본인이 누군지 몰라요. 위반자인지 모르고 무조건 나는 이익 되는 쪽으로 사는 것이 자기한테 합당한 줄로 착각하고 있어요. 나는 손해 보면 안 되는 인간이고, 남의 자식 물에 빠져도 내 자식은 물에 안 빠져야 되는 자식이고. 무슨 그런 억지가 있어요. 아침에 눈떠서 살아있으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내 죄로 벌써 죽어야 되는데 눈뜨고 있으니. 멀리 있거든 전화해보세요. 별일 없지. 은혜인줄 알아라, 인간아. 너 잘나서 사는 게 아니야. 예수님께서 사건을 일으킵니다. 이 강도 만난 사건을 아무도 예측 못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잖아요. 강도 만난 사람이 있었는데 제사장, 레위인 그냥 지나가고 어떤 사마리아인이 와서 강도 만난 사람을 치료해주고 자기 돈 더 내겠다고 하면서 여관에 안전까지 취했던 사람. 예수님에 의해서 이 예상 못한 사건에 대해서 ~하지 말라가 아니라 ~했다고 나와요. 뭘 하지 말라는 것은 미리 율법에 예측이 돼서 율법이 있는 걸 알고 내가 이 말씀을 지켜야지, 이럴 경우에는 성립되는데, 강도 만난 사건은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 레위인과 제사장, 이 사람들한테는 얼토당토않은 돌발사건이 터진 거예요. 실제 문제에 있어서 선한 사마리아인은 강해요. 실제 사건 속에서 이웃 사랑을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가? 사건이 우선이고 거기에 종속된 자가 선한 사마리아인이라고 안 사람은 사건이 사건 되기 위해서 사건에 휘말려버리죠. 다시 말해서 성도란 예수의 피를 믿는 게 성도가 아니고 십자가 사건에 함몰된 사람, 그 파도에 휩쓸려 들어간 사람이에요. 우린 뭘 해도 위반자고 죄인데 이걸 알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웃을 사랑하는 유일한 분인 것을 증거 할 수 있는 거예요. 이웃을 사랑한 사람은 이웃을 사랑한 분이 예수님인 것을 증거 한 사람이에요. 너는 왜 못하나? 나는 위반자거든요. 위반자와 피의 만남, 위반자와 십자가의 만남, 그 장소가 바로 말씀이 사건화 된 처소입니다. 이제부터 좀 어렵게 이야기할게요. 출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나올 때 주님께서 그 인간들에게 뭘 당부한 게 아니에요. 네가 어느 자리에 놓여있는지 보란 겁니다. 이 말은 출애굽이 출애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출애굽의 발판이 이동하고 있어요. 그러면 그 이동한 자리가 광야일 수도 있고, 약속의 땅일 수도 있고 하겠지요. 인류의 모든 역사가 죄가 더 깊어지는 죄가 변모해가는 역사에요. 계속해서 죄가 더 늘어나는데 늘어난다는 것은 역사가 가만있지 않고 어디로 이동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울산도, 한국 땅도 그렇고 세상의 모든 것이 결국 어디로 이동하겠습니까? 결국은 멸망의 길로 이동해요. 멸망의 길인데 그건 뭐냐? 주님 발 앞이라고 보면 돼요. 예수님이 심판주니까 심판주 앞에 가야 돼요. 고린도후서 5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람은 주님의 심판대 앞에 나온다 했거든요.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10절) 심판대 앞에 끌려가고 있는 중이에요. 지금 멀리 보이는 심판대 앞에 조금씩, 조금씩 가까이 가고 있는 중입니다. 심판대에 끌려간다는 말은 결국 뭐냐 하면, 주님께서 먼저 그냥 그물을 던지고 그물 안에 있는 자와 그물 밖에 있는 자를 구분 짓는 작업이 계속 된다는 뜻이거든요. 그물이라는 것은 개인이 아니에요. 공간이에요. 어느 자리란 말이죠. 내가 밟고 있는 공간에서 운용되는 공간을 공간답게 그리스도의 피, 어린양의 피를 드러내기 위해서 계속해서 투입되고 있는 그것이 뭐냐 하면, 레위기 19장의 말씀들이에요. 쉽게 말해서 네가 어느 자리에 와 있느냐? 피 묻은 자리에 와 있음을 알라는 거예요. 얼마나 잘났는지 묻는 게 아니에요. 얼마나 실수 안 하고 완벽한지를 묻는 게 아니고 네가 무엇을 딛고 있느냐는 겁니다. 말씀의 장이, 토대가. 레위기 19장 9절 봅시다.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희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이게 뭐냐 하면, 히브리인이 애굽에 있을 때 타국인이고 가난한 자였어요. 노여였어요. 그러니까 판을 옮긴다니까. 출애굽으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사건이 이제 장을 이루는 거예요. 어떤 공간을 이루는데 실리콘 모형 판 위에 그들을 배치해서 옮겨가는 겁니다. 여러분, 라디오나 티비 뒤에 보면 칩 판이 있지요. 칩이 꽂히는 판, 칩 하나하나가 이스라엘로 보면 돼요. 이스라엘이 피 묻은 판위에 꽂혀있을 때에 율법을 통해서 꽂혀있는 거예요. 율법과 피가 연결돼있으니까. 주님 주신 모든 율법과 제사법이 연결돼있으니까. 그렇게 해서 나는 잘났다가 아니라 이 전체가 주님의 용서와 긍휼이 주님 자신의, 어린양의 피에 의해서 거룩이 된 그러한 공간이 이 공간이라는 겁니다. 여기 나오지요. 19절에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이게 바로 너희들은 선택됐기 때문에 이방민족과 섞이면 안 된다는 거예요. 잘났다, 못났다가 아니라 네가 있는 자리가 저쪽 이방민족을 용납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겁니다. 지금 제가 하는 말이 맞는다면 이스라엘은 지속적으로 싸움 벌이는 나라입니다. 아까 다이아몬드 이야기했지요. 다이아몬드 안에 유리제품이 들어오려고 하는 거예요. 저리가라고 떠밀 때 싸움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면 새순교회와 다른 교회가 싸웁니까? 아니지요. 새순교회 교인 여러분 마음속이 싸우는 거예요. 여러분 마음속에 두 종자가 들어있는 거예요. 두 종자가 들어있는 걸 다행인줄 아시기 바랍니다. 두 종자 있는 것도 몰라요. 그냥 아담의 dna만 있는 줄 알지. 그리스도의 성령을 받아야 두 종자지요. 강의 다시 하겠습니다. 우리의 제사를 하나님이 받는다는 게 참 신기하고 기적이라니까요. 왜 그러냐 하면 우리의 것을 안 받아요. 하지만 어설픈 우리의 기도와 모든 것, 이게 죄거든요. 죄를 의로 바꾸는 분이 계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 안에서 아버지께서 어설픈 우리를 사랑으로 받아주시는 거예요. 이게 복음입니다. 이게 진짜 기독교에요. 그렇게 되면 나는 계속해서 죄인 중에 괴수가 돼야 되는 겁니다. 그게 자유라 했지요. 사람이 자기 절제, 자기 관리에 들어가면 자유롭지 못해요. 항상 벌벌 떨며 살아야 돼요. 내가 행동 잘못하게 되면 멀리 간 아이가 나중에 벼락을 맞는다는 이런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요. 내 행동 잘못하게 되면 내 자식이나 내 가족이 하루아침에 망하는 수가 있어. 이거는 조마조마 불안 불안해서 참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겁니다. 반대로 살아야 돼요. 제가 얼마나 나쁜 인간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를 흘려야 됩니까? 이런 쪽으로 그리스도 피와 만나며 살아야 돼요. 어린양의 피는 그 약속을 믿는 자에게만 해당이 되게 돼있어요. 애굽 사람은 해당이 안 됩니다. 따라서 19장에 그리고 뒤에 나오는 모든 것은 애굽에서 이방민족은 어떻게 사는지 결국 그것을 너희가 알고 그 식대로 살고 싶어 할 거예요. 여기 레위기 19장 27절에, “머리 가를 둥글게 깎지 말며 수염 끝을 손상치 말며 죽은 자를 위하여 너희는 살을 베지 말며 몸에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이게 오늘날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요. 왜냐하면 율법 준 그 당시는 듣는 사람은 다 알아요. 이방민족들이 어떻게 몸에 문신을 하고 장례식에서 애도를 표시하기 위해서 살을 베었고 머리 모양은 어떻게 했는지 다 알아요. 그걸 견주어서 그들처럼 하지 말라는 거예요. 만약에 그들처럼 하지 않았는데 문신을 한 그쪽이 경제적으로 너무너무 잘 되고 부흥하고 이스라엘은 맨날 가난하다면, 젊은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본 적도 없고 무시하는 사람들은 어디서 자기 모델을 찾겠습니까? 자기보다 좀 더 잘 살고 좀 더 멋있게 살고, 하고 싶은 대로 다하는 그것이 기대고 희망사항이잖아요. 젊은 애들이 예수를 믿습니까, 방탄소년단을 믿습니까? 팬클럽, 방탄소년단을 믿잖아요. 조회 수가 수억이 된다니까요. <강남스타일> 조회가 수십억이 넘어요. 가사가 뭡니까? 주님 스타일? 아니에요. 강남스타일이라니까. 그 자식이 누구 몸에서 났습니까? 내 자식이니까 내 몸에서 태어났지요. 내 몸에서 태어났는데 강남스타일이야. 참. 그러면 원판도 강남스타일. 교육하는 방식도 강남스타일. 복층이 아니고 단층이에요. 전부 다. 잘 되면 말씀 지켜서 복 받았다고 우기고. 못 되면 왜 힘들게 하느냐고 따지고. 자기 분수를 몰라요. 어디서 나왔는지 몰라요.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출애굽은 사건이에요. 인간 누구도 예상을 못한 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피 흘림으로 내가 구원받는 것, 이건 내가 도저히 예상 못한 거예요. 들은 적이 있지요. 성경에 본 적은 있지만 내 인생의 사건으로 다가오기 전까지는 아무리 해도 몰라요. 십자가 사건이 직접 오기 전까지는 십자가 피 믿어줬다고 자랑질 할 지옥 갈 인간밖에 안 돼요. 나 십자가 피 믿는다, 복음 안다. 복음 안다는 사람이 왜 그렇게 많은지 몰라요. 교회마다 다 복음 안데요. 사는 것은 강남스타일.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그런 인간이 있다는 말이 아니에요. 없어요. 그런 인간 없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이에요. 본인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예수님 본인의 사건으로만 실현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웃 사랑? 우리는 어림도 없어요. 제가 아까 이야기했잖아요. 이웃 사랑하려면 남들을 이해해야 되는데 우리는 비축된, 내가 살아온 기억이 다르기 때문에 내 딴에 해줘봐야, “어머니, 그런 뜻이 아닌데요?” 이렇게 나온다니까. 며느리 인생과 자기 인생이 달라요. 얘를 맡겼는데 얘가 울 때마다 아이스크림 주고 초콜릿 주고 한 거예요. 집에 가서 보니까 아토피 벌겋게 올라왔어. 난 잘해준다고 했는데. “내가 당부했잖아요, 어머니. 아이스크림 먹이지 말라고. 알레르기 있다고.” 앞으로 안 맡겠다고 하면 돼요. 두 번 다시 안 맡깁니다. 레위기 19장의 이야기는 우리가 노터치, 손을 떼야 돼요. 들어야 돼요. 레위기 19장 11절 봅시다. “너희는 도적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며” 이것 결국 죽으란 이야기에요.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은, 사람이 거짓말인지 거짓말 아닌지 하는 기준이 하나님과 동일할 때만 거짓말 안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하늘의 기준을 몰라요. 그러면 우리는 말을 할 때 어떻게 말하느냐? 나한테 이익이냐, 아니면 나한테 손해냐가 우리의 기준입니다. 거짓말 안 해서 이익이 온다면 우리는 거짓말 안 해요. 그게 거짓이에요. 목적이 이미 자기중심이에요. 그게 거짓말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취지와 완전히 배치되는 겁니다. 기도를 할 때 어떤 보상이나 이익을 바라고 기도한다면 이미 그 기도는 거짓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그런 기도가 아니에요. 오죽 했으면 로마서 8장에서 기도하는 우릴 보고 성령이 탄식하겠습니까. 아이고, 인간아. 그것도 기다라고. 직접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우리를 위해서 탄식하시면서, 탄식이에요. 답답해하시면서 애통해하시면서 우리를 위해서 대신 기도해주심으로 말미암아 미리 아신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 자를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자를 영화롭게 만드는 겁니다. 결국 성도는 뭘 아느냐 하면, 잘못 된 원인자로 사건을 시작해서 내가 들어가는 그것이 원인이 아니고 결과는 다른 분의 올바른 원인에 의해서 생긴 것이라는 것을 내가 원인이 되었다는 것과 대조하는 가운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죄 용서함을 받고 감사하는 그러한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뜻은, 고맙고 감사하지 않거든 살지 말라. 죽어라 이 말이에요. 모든 일에 고맙고 감사하지 않으면 그것은 주의 일이 아니에요. 벌벌 떨면서 착한 일 해야지 하는 것은 착한 일 한 보상을 내가 원인으로 집어넣고 내가 바르게 했다는 그 원인으로 나온 결과를 열매를 따먹으려 하는 거예요. 손에 쥐려고 시도하기 때문에 이건 시작부터가 거짓말로 치고 들어간 거예요. 자기 위주니까. 나는 이런 결과를 받아 마땅하다는 말은 지는 잘났다는 말이고, 오늘 본문에 의하면 위반자가 아니란 뜻이거든요. 위반자 아니면 애굽에 살지 주님과 같이 삽니까? 니 혼자 살지 십자가 붙들고 왜 사느냐 말이죠. 십자가 붙들고 사는 자는 그런 모습이 나와선 안 되지요. 성령께서 나중에 회개케 하실 겁니다. 주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회개시키는 것이 그거에요. 잘하라고 하는 게 아니고 왜 고마운 줄 모르고 왜 감사가 없느냐, 이 말입니다. 매사에. 참 제가 이런 이야기하면 목사님도 답답하네, 하고 따질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치통, 아토피, 그리고 간지러움, 대상포진, 이런 사람들이 너는 감사가 되고 고마움이 되냐? 너는 대상포진 아니고 이빨 아직까지 안 아프니까 감사와 고마움을 상상할 수 있잖아요. 그러나 지금 치통, 지금 대상포진, 지금 아프고 진물 나는 사람에게 감사와 고맙지 않다고 죽으라는 건 너무 심하지 않느냐고 하거든요. 제가 아까 결과적으로. 사람이 아프면 감사가 나오는 게 아니고 원망과 불평이 나옵니다. 주님 하라는 대로 다 했잖아요. 주님 시키는 대로 다 했습니다. 복음 받아들이고 십자가 다 했는데 나한테 왜 이런 손실이 옵니까? 그러는 거예요. 그 사람은 아무리 해도 자기 원인성을 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말하는 고맙고 감사하라는 것은 뭐냐 하면, 결과적으로 그 결과가 나로 하여금, 어느 인간치고 원인을 생각하지 않는 인간은 없어요. 그 원인을 지우개로 지워나가는 결과가 주어지는 거예요. 자, 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사람을 돌봤습니다. 그 사람이 집에 가서 재수 없이 괜히 강도 만난 사람 만나서 다 털렸어. 안 도와줘도 되는데 왜 도와줬지? 이렇게 생각할까요, 자기가 사건에 휘말려 들어갔다고 생각할까요? 휘말려 들어갔지요. 그러면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사건에 휘말려 들어갔으면 내가 그 현장에 타이밍 맞추어서 가게 된 것은 누구 뜻입니까? 주님 뜻이죠. 그러면 아토피, 대상포진 걸렸다는 이 말은 결국은 주님이 날 사랑한다는 주님이 생각한 그 사건의 현실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내가 휘말려 들어간 거죠. 그럼 아픈 역할만 하면 돼요. 참 속 편한 이야기한다. 그냥 아프면 안 돼요. 아프면서 원망하는 역할하면 돼요. 실컷 원망해놓고 돌아서서 죄송합니다. 주님께서 병 고쳐주는 게 아니고 죄 사함해주는 것도 모르고 병만 낫게 하면 좋은 하나님인 줄 생각했습니다, 라고 뒤돌아서서 십자가 생각할 때에 이것마저 내 몸으로 주의 뜻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런 배역을 맡은 게 됩니다. 물론 배역 치고는 상당히 안 좋은 배역을 맡았지요. 그래서 어떤 분이 대상포진 때문에 서울에 유명한 병원에 가니까 딱 한 마디 했어요. 그 사람이 상당히 개혁주의 신학적이에요. 당신이 아픈 것은 dna 때문입니다. 그게 정답이에요. 약도 없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못 고칩니다. 얼음찜질이나 하세요. 우리는 처음부터 ‘~말며’에 해당되는 사람이에요. 이래서는 안 되는데 우리 조상이 그러하기에 우리는 하지 말라는 것은 다 하고 하라는 것은 절대로 안 할 수밖에 없는 본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게 왜 그러냐 하면, 이방나라와 이스라엘이 싸우기 이전에 먼저 이스라엘 내부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람의 싸움이 벌어진 겁니다. 그것은 인간의 모든 행동은 욕구와 욕망에서 비롯됩니다. 이 욕구와 욕망이 인간의 몸에서 나와요. 정신병이든 대상포진이든 아토피든 이 몸이 문제라니까. 몸이 어떤 속성을 갖고 있느냐 하면, 주의 말씀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주의 처소 아닙니까. 주와 함께 있으면 주의 처소 아닙니까. 주님 앞에서 몸은 어떤 몸이냐 하면, 쇠하고 퇴락되어야 될 몸이에요. 다른 사람들도 늙고 병들고 죽고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몸으로 이유를 알아야 돼요. 다른 민족은 죽어도 모르고 죽지만 이스라엘은 이유를 알고 죽어야 돼요. 그 이유가 레위기 19장입니다. 계속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 말씀을 지키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지켜서 이익 보겠다는 나의 일방적인 주장이 같이 결합되어 나오거든요. 내가 이만큼 지켰으니까 남들보다 더 큰 보상을 주셔야 주님과 동업자지, 그래야 주님 말씀 지킬 마음이 있지. 이렇게 되는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주님께선 네 몸은 이방인의 몸과 다르다는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고린도후서 6장 14~16절을 누가 읽어보세요.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어찌 하느냐 할 때 우리의 답변은 간단합니다. 돈이 생기거든요. 왜 같이 하느냐? 돈이 나오기 때문에 합니다. 돈이란 바로 내가 스스로 내 몸을 살리는 유일한 방법은 돈 버는 방법밖에 없어요. 내가 날 안 살리면 아무도 살려줄 사람 없어요. 내 몸일 경우엔 그래요. 만약에 내 몸이 내 것이 아니고 주의 몸이라면 누가 책임지고 살려주십니까? 주님이 책임지고 살려주시는데 그 방법이 내 몸을 주님이 알아서 죽여주십니다. 이런 방식으로 살려줘요. 그게 싫은 거예요. 주님의 방식이 내 방식과 비교해볼 때 그게 싫은 거예요. 그러면 안 믿는 사람과 함께하기 이전에 누구와 함께하기를 싫어합니까? 주와 함께하기를 싫어하는 이방인임이 들통이 난 겁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남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우리가 주와 함께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거예요. 자꾸 우리를 주님 편에 두지 마시고 벨리알의 편에 둬야 돼요. 빛의 편에 두지 마시고 어두움 편에 속해요. 그래서 이 말씀이 비로소 이해됩니다. 우리는 주님이라면 천 리, 만 리 내빼고. 교회 나와도 세상친구 얼마나 많습니까. 모임이 왜 그렇게 많은지. 초등학교 동창생 만나서 미국 놀러가고, 세상사는 모든 정보들, 어디 아파트 사놓으면 오른다는 그 정보들. 무슨 친구가 그렇게 많은지 교회 다니는 친구는 서넛이고 나머지 수백 명 전부 다 안 믿는 친구에요. 왜? 강남스타일이니까. 사는 재미를 그쪽에서 다 배웠거든요. 교회 주일학교가 안 되는 이유가, 세상 재미가 더 좋기 때문에 그래요. 교회 가라 해도 재미없어서 안 간다는 한 마디에 부모들이 얘들 교회 안 보냅니다. 재미없다는 데 어떻게 해요. 걔들도 인권이 있는데. 그래서 복음 아는 사람들은 아예 놔둡니다. 내 책임이냐? 주님 책임이지. 몰라. 말해도 듣지도 않는데 강제로 끌고 갈 수도 없고. 부모는 복음 아는데 자식들은 복음을 모르느냐? 그게 왜냐하면 내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복음에서 도망치는 그 본성이 내 몸에 나타났거든요. 내가 그런 사람이에요. 그래서 성령께서 날마다 관리해주지 아니하면 자식들이 내빼는 그 세상 속으로 순식간에 합류할 가능성이 항상 있어요. 우리는 매일 절망해야 되고 매일 새사람 돼야 돼요. 매일같이 내 구원받기에 실패로 끝나야 됩니다. 그렇지 주님의 도우심이 느껴지지 않아요. 지 잘나서 하는 것은 어느새 빛이 아니고 어두움이 돼있고 이방인이 돼있어요. 따라서 주님께서 이 말씀을 주시는 것은 우리가 위반자라는 사실을 날마다 새롭게 이해함으로써 아까 어떻게 빛이 어두움과 함께하며 그리스도와 함께하느냐는 그 말씀은 우리가 할 몫이 아니고, 우리가 원인제공해서 말씀 성취라는 결과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의 잘못된 원인을 비껴나가서 주님이 원인이 되어서 우리는 날마다 이런 인간으로 확인시켜주는 겁니다. 지금도, 매일같이. 그래서 우리가 사는 공간이 어떤 공간이냐? 고맙게도 감사하게도 말씀이 역사하고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그러한 말씀의 세계에 우리가 죄인으로서 들어가게 돼있습니다. 고린도후서 보면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떻게 함께 있느냐 할 때 주여, 저는 평생 이 말씀 못 지킵니다. 교회친구와 헤어지라면 헤어지지 동네 계모임은 못 헤어집니다. 곗돈 부은 게 15년인데, 안 됩니다. 괌이니 좋은데 다 가는데 교회 사람들과는 기껏 이스라엘 같은 땡볕에나 가고. 도대체 내 몸에 어느 게 이득이냐 말이죠. 어느 게 나한테 행복하냐. 우리의 타고난 평생가도 없어지지 않는 욕망은 세상 쪽이지 주님 쪽이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는 겁니다. 여러분, 말을 잘 들어야 돼요. 우리가 구원받는 이유는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뭔가 저쪽이 모르는 게 있어요. 못난 자를 십자가 피로 구원했다는 사실을 평생 잊을 수가 없어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돈으로 사는 세상이거든요. 돈으로 모든 것이 환산되는 세상이기 때문에 교회는 돈을 내잖아요. 그래서 돈 버는 쪽에 먼저 손이 가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갑니다. 그런 울산바닥에 대구바닥에 왜 우리를 살게 하셨습니까? 바로 이곳이 천국에 가기 전부터 이곳이 천국이라는 사실을 다이아몬드처럼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에요. 이게 거룩이에요.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용서가 억만금을 줘도 살 수 없는 것을 얻은 거예요. 내가 돈 주고 산 것도 아니에요. 그냥 들어왔어요. 그래서 지난 낮 설교에 그런 이야기했거든요. 성령을 받았다면 우리가 얼마나 잃어버리고 망했어도 우리는 남는 장사를 했잖아요. 하나님의 십자가 언약과 성령 받았으면 다 잃어도 대상포진이나 다 날아가도 우리는 남는 장사입니다. 인생 마지막 웃는 자가 승자라고. 결국 말씀을 던지면서 어디로 가는가? 이 모형 판은 움직입니다.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 도달됩니다. 모든 인간, 절에 가든, 성당 가든, 안 믿든 간에 한국에는 무교자가 50%가 넘는다는데 100%가 된다할지라도 그때는 무덤에서 인자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올 거예요. 우리는 미리 들은 거고. 그들은 나중에 듣게 돼요. 여러분, 세상을 부러워하면 지는 겁니다. 부러워할 건더기가 있어야 부러워하지. 뭐가 부러워요? 화분 던졌다고, 가위 던졌다고 부러워요? 나도 이 컵 던져볼까요? 던지면서 지옥 가는, 그들의 판이 고정된 게 아닙니다. 지옥으로 움직이고 있다니까요. 그런데 그 움직임을 몰라요. 이 세상 판은 모형이거든요. 가짜고 말씀은 진짜고. 오늘 본문에서 하는 것은 우리의 어떤 권리를 포기하고, 14절에 나오잖아요. 장애자라고 놀리지 말고 품삯을 아침까지 두지 말고. 이 모든 말씀은 너도 똑같은 신세 아니냐는 그런 뜻이에요. 너도 같은 위반자란 말입니다. 그리고 이방인처럼 그들의 풍습을 따르지 말고 문신 새기기 말고. 그리고 특별히 23절 보게 되면, “너희가 그 땅에 들어가 각종 과목을 심거든 그 열매는 아직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기되 곧 삼 년 동안 너희는 그것을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겨 먹지 말 것이요 제 사 년에는 그 모든 과실이 거룩하니 여호와께 드려 찬송할 것이며 제 오 년에는 그 열매를 먹을지니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 소산이 풍성하리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그러니까 삼 년 지나고 제 오 년째 먹어라. 할례를 거쳐서 먹어라. 이 할례가 유월절에 했던 할례거든요. 출애굽할 때 할례하지 않으면 먹지를 못했어요. 할례 행하고 어린양의 고기를 먹고 피 바르고 했단 말이죠. 그 출애굽이 옛날 사건이 아니고 사건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새로운 양상, 예상 못할 새로운 사건으로 출애굽 내용이 포함된 채 마지막까지 계속 가는 겁니다. 32절에 보면, 나이 든 사람에게 순종하고. 왜냐하면 그들은 과거의 사건을 알고 있기 때문에. 33절에, “타국인이 너희 땅에 우거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도 애굽 땅에서 34절에 객이었느니라. 간단하지요. 결국은 하나님께서 출애굽 할 때 우리가 원인이 아니고 우리를 위반자로 보고 십자가 피로 보쌈해서 하나님께서 천국으로 데려간다. 그 말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하나님 아버지, 사람이 자기가 죄인인 것을 인정한다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어떤 수모를 당해도 마땅하다는 고백이 병행된다는 것을 말씀하시기에 참 우리 힘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살아있는 모든 것이 주의 은혜로 살아있음을 죄 용서의 결과임을 감사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177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6,742 강의 유튜브 (236강, 237강) 사는게 중독, 왜 안 믿어지는가 180605 창세기 최고관리자 18-06-05
열람 ➜ 자유게시판 20180601b 울산강의-레위기 19장 : 위반자 레위기 최고관리자 18-06-05
16,740 자유게시판 20180601a 울산강의-레위기 19장 : 위반자 레위기 최고관리자 18-06-05
16,739 자유게시판 291강-갈 4장 16-20절(해산의 수고)180603-이 근호 목사 갈라디아서 최고관리자 18-06-04
16,738 자유게시판 187강-여호수아 1장 5–6절(모세언약의 연속성)20180603-이 근호 목사 여호수아 최고관리자 18-06-03
16,737 묻고답하기 하갈과 사라 - 최고관리자 18-06-03
16,736 강의 위반자 180601 레위기 최고관리자 18-06-01
16,735 자유게시판 140강-창 37장 1-4절(야곱의 족보)180530-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18-05-31
16,734 강의 사무엘상 38강( 나 알기), 마태복음 100강 (죽은 자의 해석) 180529 - 최고관리자 18-05-29
16,733 강의 [18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35 - 정의란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8-05-28
16,732 자유게시판 290강-갈 4장 12-16절(변하는 인성)180527-이 근호 목사 갈라디아서 최고관리자 18-05-28
16,731 자유게시판 186강-여호수아 1장 1–4절(여호수아의 등장)201800527-이 근호 목사 여호수아 최고관리자 18-05-27
16,730 자유게시판 광주강의20180525b 마가복음12장 13-17절(다른 공간)-이 근호 목사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18-05-27
16,729 자유게시판 광주강의20180525a 마가복음12장 13-17절(다른 공간)-이 근호 목사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18-05-27
16,728 묻고답하기 해산의 수고 - 최고관리자 18-05-27
16,727 자유게시판 강남-요한복음 17장 3절(예수님의 옆자리)180515b-이 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8-05-26
16,726 자유게시판 강남-요한복음 17장 3절(예수님의 옆자리)180515a-이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8-05-26
16,725 자유게시판 안양20180511b약2장12절(교환)-이 근호 목사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18-05-25
16,724 자유게시판 안양20180511a약2장12절(교환)-이 근호 목사 야고보서 최고관리자 18-05-25
16,723 자유게시판 139강-창 36장 31-34절(에돔의 나라)180523-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18-05-24
16,722 자유게시판 289강-갈 4장 8-11절(헛된 일)180520-이 근호 목사 갈라디아서 최고관리자 18-05-21
16,721 자유게시판 185강-신 34장 9 – 12절(모세 같은 선지자)201800520-이 근호 목사 신명기 최고관리자 18-05-20
16,720 묻고답하기 변하는 인성 갈라디아서 최고관리자 18-05-20
16,719 묻고답하기 여름수련회 교재와 안내 - 최고관리자 18-05-20
16,718 자유게시판 완료자 (마 24장 40절-51절) 대전- 99강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18-05-18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