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9:27-30(상 속)
Re..마 19:27-30 (상 속)
이름 : 이근호(IP:)
마태복음 19:27-30(상 속)
19: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19:28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19: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19: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인간과 하나님은 창조력에 대해서 경쟁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즉 인간들은 자신들이 발휘하는 것이 하나님이 발휘하는 하나님의 창조력에 다소나마 보탬이 될 것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협동해서 비로소 하나님의 일은 된다고 믿고 싶어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지만 인간은 존재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나 오늘날 우리들이나 예수님의 '새롭게 하심'의 의의나 취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꾸만 기존 세계에 대해 집착하고 그것을 고수하려고 발전하는 취지에서 '새로움'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가난한 자가 부자가 되는 것도 새로움이요, 죽어 가는 내가 부활되는 것도 새로움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사람은 이 '하나님의 죽음'과 만나지 않고 우회해서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합니다. 즉 '하나님의 죽음'과 무관한채 하나님과의 관계를 터 놓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나님의 죽음'과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얻고자 예상해 놓은 하나님의 뜻이 흐지부지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욕망이 원하는 '새로움'도 죽음앞에서 물거품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어떤 공장에 노동자들이 제품 만드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어떤 사나이가 뛰어들어와서 하는 말이, "나는 길이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고 외치고서는 그만 그 자리에서 입에 거품 내뿜고 죽었다면 이처럼 황당한 일이 또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이 우주 전체의 운명에 대해서 연관을 짓고 일을 하시는데 비해 인간은 그저 자신의 좁은 입장만 고집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이든, 남이든 오로지 자기 우선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인간이 죽어야 될 이유는, 인간들이 이런 자신의 뜻을 바꾸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대듭니다.
우리보고 '하나님 죽음'을 이해했느냐고 다꾸치시면서 다가오십니다. 죽음을 앞장 세우지 않는 하나님의 뜻을 다 거짓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우리는 삶의 영속성을 주장하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자 합니다. 즉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게 될까요?"하면서 말입니다.
죽음을 전제로 하면 모든 것이 무의미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죽음' 앞에서 그동안 인간이 갖고 있었던 하나님에 대한 인상과 개념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들이었는가 가 명백해집니다. 자기가 죽고 싶지 않다는 본능 위에 무엇을 실어 본들 그것은 '하나님 죽음' 앞에서 죄악이 됩니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 22:31-34절에 보면 베드로의 객기가 또 나옵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저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가라사대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도무지 어느 진정 '나' 자신인가를 결정지을 수 없습니다. 즉 내가 원하는 주체상이 하나님의 원하는 주체상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무엇을 하든 그 행함이 원인으로 작용해서 결국 죄 값으로 죽음이 이릅니다.
하나님은 주시는 분이지 우리들로부터 받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시편 50:8-15에 보면, "시 내가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수염소를 취치 아니하리니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에서 '내 이름으로 모든 것을 버린 자'라는 의미를 아시겠지요. 왜냐하면 애초부터 도무지 우리 것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우리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그저 죽은 자로서 태어나 본래의 죽음의 세력에 의해서 죽음으로 갈 따름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만일, 베드로식으로 자기 것을 내밀면서 영생달라고 한다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처럼, '나중 될 자'가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은 옛날 12지파를 없는데서 생기게 하듯이 영생도 그런 자에게만 주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12제자가 대표적인 모델이 되는 겁니다. 이처럼 구원이란 하나님의 그저 주심으로만 가능합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