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 180511
안양20180511a약2장12절(교환)-이 근호 목사
시작하겠습니다. 야고보서2장12절 할 차례입니다. 2장12절에 보면,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이렇게 되어있지요. 심판의 반대말이 긍휼이에요. 성경은 심판부터 먼저 이야기해요. 심판부터 먼저 딱 이야기하게 되면 “어머야? 큰일 났네.” 이렇게 이야기하잖아요.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쫙 깝니다. 일단은.
심판을 쫙 깔아 놓고 그 심판을 깔 때 그 원칙이 있어요. 어떤 인간의 행함도 심판을 이길 수 없다. 요건 제 이야기가 아니고 바로 그 위에 10절, 11절 이야기에요. 왜냐하면 누구든지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를 어기면 다 어긴다고 분명히 10절에 나와 있잖아요. 그렇지요.
그 말씀하는 것은 일단 깔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어떤 인간도 행함으로 모든 율법을 지킬 수 있다는 말입니까? 없다는 말입니까? 없다는 거예요. 요게 야고보서에 나오잖아요. 요게 신약이라는 말이죠. 신약이라면 그러면 구약 적으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노아 외에 모든 사람들은 어디 갔느냐 하면, 다 물속에 잠긴 거 아시지요? 노아 외에. 그러면 심판이 오기 전에 홍수 오기 전에 노아와 다른 사람을 비교해 보세요.
노아와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되면 노아에 있는 것이 그들이 없는 것이 뭘까요? 지금 심판이 딱 터지니까 노아 빼놓고 나머지 다 물속에 잠겼습니다. 그 물속에 잠긴 사람을 가지고 성경에서는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팔고 했어요. 그런데 먹고 마시는 게 잘못입니까? 그러면 노아는 안 먹었어요? 노아는 장가갔으니까 자식들이 있을 게 아닙니까.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그 다음에 사고팔고. 장사해야 될 게 아닙니까? 생산이 남게 되면 나머지는 물물교환 하던지 팔고 사고 해야 된다 이 말이지요. 그게 일상생활인데 일상생활을 나쁘다고 이야기하게 되면 안 나쁜 게 뭐가 있겠어요? 뺄 게 없어요. 일상생활인데. 일상생활을 충실히 하는데 이게 뭐가 나쁘냐는 말이죠.
어떤 가정에 애가 태어났는데 10년 동안 부모 밑에 있다가 20살 돼서 정성했다. 갑자기 하늘에서 물이 떨어졌다. 홍수가 떨어졌다. 그 애가 20살 동안 살면서 그다지 나쁜 것을 뽑아내려 해도 뽑아낼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부모가 주신 돈 가지고 공부하면서 이제 20살 돼서 살았기 때문에. 자기가 나쁜 짓 할 수 있는 기회조차도 없잖아요. 태어난 지 6개월 됐다. 태어난 지 1년 됐다. 애가 기저귀에 오줌 누는 게 잘못입니까?
그런데 제가 하는 말은 뭐냐 하면, 노아라는 인간의 행동과 노아 말고 다른 사람의 행동 사이에 잘잘못을 따질 수 있는 어떤 것도 우리가 찾아낼 수 없다는 이야기를 제가 하는 겁니다. 그런데 노아는 다른 사람과 똑같이 살았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없는 게 있어요. 없는 게. 그걸 창세기6장에서는 두 자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뭐가 있느냐 하면 “노아는 은혜를 입었더라.” 라고 되어있습니다. 은혜를 입었더라.
실험실에 콩이 열 개가 있는데, 콩과 콩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없어요. 같을 수는 없지요. 약간 찌그러진 것, 동그란 것, 납작한 것 있지만, 그래도 납작된 콩이고 동그란 콩이고, 콩 콩 콩이에요. 똑같아요. 다 콩이란 점에 똑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핀셋을 가지고 이쪽에 있는 콩 열 개중에 그 중에 한 개를 끄집어내서 이쪽으로 옮겼다면 같이 옮김을 당하지 않은 콩들이 그 옮기는 콩보고 뭐라고 하겠어요? “니는 뭐가 잘나서 저쪽으로 가느냐” 라고 따지겠지요. 따질 때 그 옮겨가는 하나의 콩 입장에서는 “나는 이래서 너희보다 더 훌륭해.” 하는 말을 할까요? 못할까요? 못하지요. 그러면 여기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행함에 속하지 않는 그 무엇, 그것이 바로 노아한테는 뭐냐 하면 은혜가 되는 겁니다. 은혜. 그러면 앞에 뭐가 있느냐 하면 요건 붉은 걸로 할게요. 하나님의 심판이지요. 아까 노아의 물 심판 했잖아요. 야고보서2장 10절에서는 뭐로 심판한다 했습니까? 야고보서2장 10절에서는 이걸 모든 율법을 지켜도 하나를 못 지키면 다 못 지키지요. 이게 율법이지요. 노아 때는 물로 심판하던 것이 신약 때는 율법으로 심판하는 거예요. 율법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판하는 겁니다.
말씀 앞에서 모든 인간은 자기 행함으로는 구원이 된다? 안 된다? 안 된다는 이야기를 2장10절에서 하고 있는 겁니다. 이걸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말씀을 주신 적이 없다는 것. 인간이 지킬 수 있는 것은 주신 적이 없어요. 아무리 말씀대로 살고 모이기에 힘쓰고 성경 듣기를 원하지만, 동창생이 미국가자 하면 후다닥 갑니다. 성경을 언제 봤는지...., 미국 갑니다. 미국 갈 때 그래도 성경책 들고 가야지. 그런 일 없습니다. 이게 우리의 평소지요.
다시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으로 지킬 수 있는 말씀을 준 적이 있다? 없다? 없어요. 인간이 지킬 수 있는 말씀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말씀은 예수님만 지켜요. 그래서 다 이루었다 하시고 그 지킨 것을 뭐로 주느냐 하면 행함 차원이 아니고 뒤에 하나 더 있는 것. 은혜 파이프를 통해서 은혜를 줘버립니다. 이게 바로 선물이에요. 마지막 심판할 때 “니 어떻게 살았느냐?” 를 묻는 게 아니에요. “내가 준 선물 아직도 있느냐” 라고 묻는 겁니다.
내가 준 선물. 그런데 주님이 준 선물의 특징이 뭐냐 하면, 인간의 행함과 별개로 주신 거거든요. 이걸 로마서3장에서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 율법 외라고 해요. 율법 외. 율법 있고 그리고 율법 외 있고.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지 못했지만, 율법 외로 뭘 얻는다 했습니까? 의인이 돼요. 그러면 내가 의인됐다면 내 행함이 끼어 들 것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어요. 내 행함이 끼어 들 게 전혀 없습니다.
그러면 행함이 끼어 들 게 없는데도 끼어 들겠다할 때에 그것에 관한 방법이 뭐냐 하면, 주님께서는 율법을 들이대 버립니다. 들이댈 때 이렇게 합니다. “야, 너 이리와.” “너, 율법 몇 개 지켰어?” “한90% 지켰는데요.” “그러면 10% 못 지켰잖아.” “그건 뭐 인간인 이상 못 지켰지요.” 하나를 어기면 다 어긴 거예요. 자기 딴아 99%지키면 대단하지 않습니까? 다 어긴 게 돼요. 하나님의 구원 방법이 인간이 뭐에 집중한다는 것을 하나님이시니까 모를 일이 없지요. 그걸 간파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문제를 아주 쉽게 했는데, 문제가 그냥 쉬운 게 아니에요. 여기 복잡한 문제가 있습니다. 행함으로도 의로움을 얻지 못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데 은혜를 오늘 12절에서 13절에서는 이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은혜하고 같은 말인데 여러분이 답변해보세요. 은혜가 뭐라고 되어있지요? 긍휼. 긍휼은 불쌍히 여김이거든요. 불쌍히 여긴다는 거예요.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내가 손을 안대면 니는 끝났어!” 이게 불쌍히 여김이에요. 불쌍히 여기는 거예요. 불쌍히 여김이 계속 유지되어야 되겠어요? 사라져야 되겠어요? 계속 유지되어야 돼요.
요한계시록2장에 보면 에베소교회에 하나님께서 지적하기를 첫사랑을 잃어버렸다 하는 거예요. 첫 사랑을 첫 긍휼로 바꿔봅시다. 그러면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고. 처음에 왔을 때는 “하나님의 은혜로 긍휼로 구원받았습니다.” 하고 자신만만하게 말을 해놓고 한 10년, 20년 복음알고부터는 그 다음부터는 헤헤거리면서 “나는 저 사람보다 낫습니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뭘 잃어버린 거예요? 첫사랑을 잃어버린 거예요. 내가 전에 이야기했잖아요. 사랑이란 이유가 없다고요.
여러분, 구약에 보면 율법 없이 구원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냐 하면 욥이에요. 율법 없이 구원된 사람이에요. 본인은 율법 없이 구원된 줄 몰랐어요. 몰라가지고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행함을 가지고 자기한테 쫙 깔아놨습니다. 아들7명이고 딸3명이었습니다. 철없는 애들이 생일잔치를 하잖아요. 그러면 욥이 아버지가 되어서 불러요. 그냥 단체로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씩 불러가지고 그 애를 위해서 번제를 드립니다. 번제.
최초의 제사는 번제에요. “하나님, 얘가 철딱서니 없어서 함부로 까불고 촐랑댔던 것을 제 번제를 받고 어여삐 여겨주세요.” 하고 이렇게 했어요. 한 명씩 한명씩 불러서 다 그렇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를 드릴 때 그 욥의 입장에서는, 처음에 욥이 잘못 생각한 거죠. 욥의 자기 행함이 섞였겠어요? 안 섞였겠어요? 당연히 섞이지요. 정성을 그렇게 했잖아요. 정성을.
흔히 말하는 교회에서 중보기도가 그거 아닙니까. 저 자식을 위해서 내가 얼마나 중보기도를 했는데 만약에 그 자식이 신천지에 빠졌다 하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얼마 전에 신천지 이야기했지요. 우리 아는 집안에서 약사 돈 갔다 바쳐가지고 납치해가지고. 아직도 납치해있어요. 경찰 찾아오고.
그럴 때 내 자식을 이만큼 서른 살까지 키워났는데 그것도 잘 키웠는데 신천지에 빠졌을 때 부모심정이 굉장히 아프지요. 남의 자식 신천지에 빠져도 상관없어요. 내 정성이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욥의 시작은 이상하게 욥이 믿음이 있는 거 같은데 이게 믿음에 테두리는 있어요. 테두리는 있는데, 믿음 있는 건 맞아요. 하지만 알맹이는 자기 행함으로 꽉꽉 채워놨어요. 욥이 처음에. 꽉꽉 채워놨습니다.
주께서 그 행함을 다 들어내십니다. 다 들어내면서 뭘 하느냐 하면, 일이 이렇게 잘 된 것과 내가 하나님 앞에 정성을 바친 것과 연결돼 있던 연결고리를 다 끊어버려요. 니가 이렇게 잘된 것은 니 행함 의로움이 아니라는 그걸 다 들추어내버립니다.
그래서 중간에 욥이 뭐라고 하는가 하면 이럴 것 같으면 차라리 저를 태어나지 말고 일찍 죽이셔야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발언까지 해요. 자기 창조했음에 대한 거부로 나와요. 그러니까 제일 마지막 친구 엘리후가 드디어 욥 입에서 하나님의 창조하심에 대해서 시비거리가 터져 나오게 하는 겁니다. 토할 때 신물까지 나오듯이 액이 나오듯이 속에 있는 게 다 나왔어요. 욥도 죄인이었던 겁니다. 욥도 죄인이었습니다.
그걸 종교로서 카바를 했는데, 다 드러내니까 나 잘못 없고 이런, 이런 일은 누구 잘못이다? 하나님의 조치가 불합리합니다. 하나님이 뭔가 문제 있습니다. 라고 했을 때 엘리후가 세상에 하나님이 만드신 그 피조물이 자기를 만든 창조주를 보고 저렇게 뭔가 문제 있다고 욕을 하는 저런 사람이 드디어 욥의 본성이었다고 다 드러내는 겁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어요. 그쯤하면 하나님께서 욥을 버릴만한데 하나님의 긍휼이 잘해서 플러스로 주님의 은혜를 주는 게 아니고 잘했음을 바닥을 드러냅니다.
뭐로 보느냐 그냥 니가 못난 존재라고 드러내고 그 다음에 긍휼을 은혜를 줘버려요. 줘버리면 나중에 욥기 42장에 보면 나오지요. 그렇게 말 잘하던 욥은, 얼마나 욥 이야기가 욥기에 가득 차 있습니까. 그렇게 말하더니 마지막에는 제가 할 말이 없습니다. 라는 거예요. 할 말이 없어버려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요? 왜냐하면 구원된 자는 변화가 있어야 됩니다. 세상에 살 때는 누구하고 비교하느냐 하면 같은 교인들하고 비교해요. 같은 교회 다니는 사람으로 비교하고, 목사하고 괜찮은 목사하고 비교하고 그리고 나하고 비교하고. 이 땅에 비교가 된다 말이죠. 그게 변화되어야 돼요.
욥이 왜 그렇게 욕을 했느냐 하면 친구하고 자기하고 비교한 거예요. 욥을 보면서 우리가 세상체제에서 발견할 수 없는 것을 뽑아낼 수 있습니다. 그건 뭐냐 하면 사탄이 뭐냐 하는 거예요. 사탄이. 욥기1장에 나옵니다. 사탄이 이렇게 이야기해요. 사탄의 그 생각을 이렇게 알려준 주님께 감사합시다.
사탄이라는 게 얼굴 시커멓고 퍼렇고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사탄이 한 내용이 성경에 이렇게 알려줬어요. 그 사탄의 이야기를 한 번 적어볼게요. 요 생각이 사탄입니다. ‘까닭 없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이게 사탄입니다. 사탄은 인간을 알아요. 인간은 자기 위주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있어요. 원래 인간을 사탄이 그렇게 변하게 한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늘나라가려면 변해진 인간을 또 바꿔야 돼요.
자꾸 제가 일방적으로 변한다 해가지고, 괜찮은데 왜 그러느냐 하지 말고 지금 괜찮다고 여기는 것이 이게 벌써 우리의 본래의 내가 아니라니까요. 본래의 내가 아니에요. 본래 주님이 만드신 인간들이 아닙니다. 그걸 우리가 부모의 죄에서 태어났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걸 성경 크게 보게 되면 요번 수요일에 했지만, 내가 어떠함이 아니라 했지요. 아담이 어떠했다. 라고 해야지 나는 이런 짓을 했어요. 나는 맴매 맞아야 돼! 나는 나쁜 사람이야. 이러지 말라는 말이지요. 아담자체가 나로 하여금 그런 바닥을 냈는데 왜 개별자로 자꾸 머물고자 하느냐 말이죠. 이건 진짜 중요한 거예요. 개별자, 보편자 이 내용은요, 우리는 개별자에서 개별자는 가짜에요. 가짜는 이미 가짜기 때문에 진짜의 나라는 못 갑니다. 개별자에서 보편자로 바꿔야 돼요. 바꾸려면 개별자를 믿지 말아야 돼요. 보편자를 믿어야 돼요. 나를 믿지 말고 보편되신 두 번째 아담 예수님을 믿어야 돼요. 예수님의 행함이 우리를 구원한다니까요.
내 어설픔이. 내가 100점이 안돼요. 99점까지 가도 99점해도 아까 나왔잖아요. 야고보서2장10절, 모든 율법을 지키다가도 하나를 어기면 빵점이다. 빵점이에요. 사탄을 통해서 욥은 다른 사람하고 비교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욥이 어려웠을 때 친구 세 명이 찾아오잖아요. 세 명 찾아오면서 욥이 자기의 구원을 받았느냐 인데 구원 테두리는 사실은 욥이 잘해서 구원받은 게 아니고 주께서 이미 정해놔서 한 거예요.
욥을 통해서 뭘 끄집어내느냐 하면 예수님의 고난을 영을 통해서 미리 보여주는 겁니다. 그리고 고난 뒤에 뭐가 나오느냐, 고난 + 영광이 나오지요. 그러면 고난이 없다면 영광의 길로 간다? 안 간다? 못가지요. 고난 가야 그 길이 영광의 길인데, 고난 안 들어가는 길이 무슨 영광이에요. 그건 길이 끊어져있습니다. 가짜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어려운 게 고난을 임의로 하면 되느냐, 안 되느냐, 고난을 임의로 하면 안돼요. 왜 성질대로 살아야 되느냐 하면 성질대로 살게 되면 사람은 성질만 부리는 게 아니고 성질 + 뭐를 겨냥하느냐 하면 기대하는 바가 있어요.
성질은 두 가지가 있어요. 선악과 따먹었으니까. 나쁜 성질 발휘는 나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요거 하고, 이것도 참 나쁘지만, 더 심각한 문제가 좋은 일을 했으니까 내가 기대한 것이 엄청 빠른 시간 내에 성취될 것이라는 이 두 번째 이거 어떻게 할 겁니까? 내가 교회 가서 착한일하니까 자식들한테 복이 올 것이라는 그 기대. 누가 이걸 부정할 거예요? 이게 본심인데. “아니야. 아니야. 이건 기복신앙이야.” 여러분, 기복신앙을 없애는 것도 기복신앙이에요. 기복신앙을 없애는 그 착한일이 기복신앙 안했을 때 주어질 보너스 까지 다 줄 거라는 기대를 인간은 하게 마련이에요.
주님께서 욥을 어디까지 낮추느냐 하면 아예 모든 기대가 자살로 이어지는 지점까지 가게 만드는 겁니다. 욥에 나오는 이야기고 내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고. 이제는 나는 소망 없다. 이걸 욥기에서 한두 번 이야기한 게 아닙니다. 나는 이제 소망 없다. 끝났어! 친구들한테 이야기합니다. 친구들아! 잘 먹고 잘 살아라. 나는 요걸로 얼마 안가서 죽는다. 욥은 얼마 안가서 죽는 줄 알았어요. 죽는다.
하나님하고 사탄하고 했던 내기 중에서 딴 거는 다 건드려도 생명은 건드리지 말라, 를 욥이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처음에. 처음에 몰랐어요. 하나님께서는 사탄으로 하여금 까닭 없이 하나님을 안 믿게 되어있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까닭 없이 안 믿어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욥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뭐를 제거하느냐 하면 요걸 제거하는 거예요.
아무 이유 없이 하나님을 믿는 방법은 ‘이유 없음’ 이게 바로 뭐냐 하면 ‘사랑’이라 하는 겁니다. 사랑. 그리고 다른 말로 하면 아까 했지요. 요걸 본문에서 긍휼이라 했습니다. 이게 긍휼이에요.
새로운 손님이 오셔서 시간이 지났지만 처음부터 다시 하겠습니다. 이건 다시 해도 괜찮아요. 야고보서2장12절부터 하는데, 12절하면서 제가 10절과 연관시켰습니다. 10절에 뭐라고 했던가요? 온 율법을 지켜도 하나를 어기면 다 날아간다. 그걸 제가 밑에 깐다 했지요. 그걸 제가 율법을 깐다 했지요. 율법을 깐다했는데 처음에 구약 때 노아 때는 뭘 깐다고 했어요? 물로 깔았지요. 물로 깔았을 때 물에 빠진 사람과 노아의 평소의 행함에 차이가 있다? 없다? 전혀 없어요. 왜?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 팔았으니까. 그러면 노아가 그들에게 없는 게 하나가 있어요.
그게 뭐라고 하느냐 하면 창세기6장에 보니까 노아는 뭘 입었더라? 은혜를 입었더라, 라고 되어있어요. 은혜. 그런데 은혜를 입은 것을 이걸 신약의 방식으로 한다면 신약에 율법을 깔아버려요. 전에는 아까 뭘 깐다고 했습니까? 물을 까는 거죠. 소돔과 고모라에서는 뭘 깔았다? 불을 깔아버렸어요. 불을 깔았는데 신약에서는 율법을 깔아버립니다.
율법을 깔아놨는데 그럼 율법을 지키면 되지. 하는데 10절에 보니까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것도 10년 이상 지키다가 하나를 어기면 다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려요. 율법은 12절에 보니까 율법이 무슨 역할을 하느냐 심판의 역할을 해요. 심판 받을 자처럼 말하기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이리 되어 있잖아요.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만약에 여러분이 저한테 묻는다면 12절이 무슨 뜻인가, 물어보면 이런 거예요.
성경에서 좀 아는데, 말씀에 비하니까 말씀이 딱 와보니까 “나는 심판 받아야 마땅한 존재다.” 라는 그 고백을 하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심판받아 마땅하다. 왜? 온 율법을 지켜도 하나를 어기면 다 위반이 되니까. 율법 위반자로서 무빙, 움직이는 거예요.
그러면 이건 뭐냐 하면 심판받을 자로서 무빙, 움직이는 겁니다. 심판받을 자로 움직인다는 말은 “그러